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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영화 <트와일라잇> 2008년

by 노용헌

《트와일라잇》,《뉴문》, 《이클립스》, 그리고 《브레이킹 던》으로 이어지는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2005년 출간된 후 수백만 명의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현대의 고전이 되었고, 영 어덜트 문학 내 장르를 재정의했으며 비슷한 작품을 읽고 싶은 독자들의 열망에 따라 아류작이 쏟아지는 현상을 촉발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6천만 부가 팔렸고 3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그녀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로앤 K. 롤링을 잇는 최고의 스타 작가'로 통한다. 2008년 말부터 시작해 시리즈 전편을 원작으로 다섯 편의 블록버스터 장편 영화가 차례로 한 편씩 개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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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핏기 없는 내 모습을 마주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단순히 외모상으로만 피닉스에 적응을 못한 게 아니었다. 학생이 3천 명을 웃도는 학교에서도 적응을 못한 내가 여기서 적응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어쩌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지구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엄마마저도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진 못했다. 가끔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내 머리가 이상한 건지도 몰라.

하지만 원인은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결과였다. 그리고 내일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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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기가 도는 갈색머리 남자애, 이름이 뭐랬지?”

내가 물었다. 흘끔 곁눈질해 보니 그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지만 다른 학생들처럼 민망할 정도로 빤히 구경하는 느낌은 아니었고, 어쩐지 조금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또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에드워드야. 진짜 근사하지? 하지만 시간낭비는 하지 않는 게 좋을걸. 쟤는 데이트 같은 거 안 해. 우리 학교 여학생들 중에는 자기한테 어울릴 만큼 예쁜 애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제시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지만,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저 남자애가 과연 언제 제시카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웃음을 감추려고 입술을 깨물고 나서 다시 그 남자아이를 돌아보았다. 그는 얼굴을 돌리고 있었지만, 그 역시 웃는 듯 뺨의 근육이 살짝 올라간 것 같았다.

몇 분 뒤 그들 일행 넷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같이 눈에 띄게 동작이 우아했고, 심지어 덩치가 가장 크고 우람한 남학생까지도 움직임이 유연했다. 지켜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설레는 광경이었다. 에드워드라는 애는 두 번 다시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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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컬렌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컬렌 집안의 나머지 아이들 넷만이 식당으로 들어설 때까지 초조하게 사방을 살폈다. 그들이 나타나면 그제야 나는 긴장을 풀고 대화를 나누며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이야기의 중심은 마이크가 중심이 되어 2주 뒤에 라푸시 해양공원에 놀러 가는 일이었다. 나도 초청을 받았는데, 가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예의상 가겠다고 승낙했다. 그나마 해변에 가면 여기보다 따뜻하고 건조하겠지.

금요일이 되자 에드워드가 교실에 와 있을까 봐 염려하지 않고 더할 나위 없이 편한 마음으로 생물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분명 자퇴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애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가 계속 결석하는 것이 나 때문이라는 터무니없는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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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엄마가 집에서 나랑 같이 지냈지만, 필을 그리워하셨어. 그 때문에 엄마가 불행해하는 것 같아서.... 차라리 이번 기회에 찰리하고 잘 지내봐야겠다고 결심한 거야.”

나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젠 네가 불행하잖아.”

“그래서 뭐?”

“불공평하다고.”

그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강렬했다.

나는 웃음기도 없이 웃는 소리를 냈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라는 말 혹시 못 들어봤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긴 하다.”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거야.”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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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뭔가 좀 달라져 있었다.

빛 때문이었다. 흐린 날 숲에서 뿜어 나오는 청회색 기운은 여전했지만, 조금 더 밝은 느낌이었다. 나는 베일처럼 창밖을 가리던 안개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벌떡 일어나 밖을 내다본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새하얀 눈이 마당은 물론이고 내 트럭 지붕과 길까지 두툼하게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어제 내린 비가 단단히 얼어붙어 나무에 매달린 고드름은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했지만, 도로는 죽음의 빙판으로 변해 있었다. 마른 땅에서도 걸핏하면 넘어지는 나로서는 아예 지금 다시 침대로 들어가 잠이나 자는 게 안전할 듯했다.

찰리는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도 전에 출근하고 없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찰리와 함께 사는 건 나 혼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나는 외롭기는커녕 그 호젓함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시리얼 한 그릇을 비운 뒤 오렌지주스를 병째로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어쩐지 학교에 가는 게 즐거웠고, 그래서 겁이 났다. 내가 기대하고 있던 대로 공부에 자극이 되는 학교 환경이라든지, 새로 사귄 친구들 때문이 아니란 건 나도 잘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에드워드 컬렌을 보려고 학교에 빨리 가고 싶었다.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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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차가 트럭 모서리에 부딪쳐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바로 전, 뭔가 나를 세게 밀쳤다.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방향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아스팔트에 머리를 부딪친 나는 뭔가 단단하고 차가운 것이 나를 바닥에 짓누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트럭 바로 옆에 주차되어 있던 황갈색 자동차 뒤쪽 아스팔트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승합차가 아직도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트럭 모퉁이에 부딪쳐 방향을 바꾼 승합차는 여전히 빙글빙글 돌며 미끄러져 또 한 번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낮게 내뱉는 욕설이 들려오자, 나는 그제야 누가 나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기다란 두 팔이 나를 감싸며 뻗어나가더니, 승합차가 내 얼굴에서 30센티미터쯤 떨어진 곳에 푸르르 떨며 멈췄다. 커다랗고 하얀 두 손이 닿은 승합차 옆구리 부분이 움푹 파여 있었다.

곧이어 손이 움직였다. 얼마나 빠른지 희미한 형체만 보였다. 한 손이 불쑥 승합차 차체 밑으로 들어가더니, 곧이어 내 몸이 뭔가에 끌려나왔다. 헝겊인형 다리처럼 흔들거리며 딸려나온 내 다리가 황토색 승용차 타이어에 부딪혔다. 이어 고막을 찢는 듯한 쇳소리가 들려오고, 방금 전 내 다리가 놓여있던 자리에 승합차가 내려앉으면서 아스팔트 위에 유리조각을 토해냈다.

턱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일 초 정도의 정적이 흐른 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소동 속에서 여러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모든 외침보다 훨씬 또렷하게, 낮지만 흥분해 있는 에드워드 컬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라, 괜찮니?”

“난 괜찮아.”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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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분명 내 옆에 없었어. 타일러도 널 보지 못했으니까. 내가 머리를 너무 심하게 부딪혔다는 핑계는 대지 마. 승합차가 우리 둘 다 뭉개버릴 상황이었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지. 네가 손을 짚었던 차 옆구리엔 깊이 팬 자국이 남았고, 다른 차도 범퍼가 찌그러졌더라. 그런데 넌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 게다가 승합차가 내 다리를 으스러뜨리려는 찰나에 넌 차를 들어올리고......”

내가 듣기에도 완전히 실성한 듯한 이야기였으므로 계속할 수가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를 갈며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다.

에드워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변명하듯 굳어져 있었다.

“내가 승합차를 들어올려 널 구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의 말투는 내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듯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내 의구심은 더욱 굳어졌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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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른 돌아서서 문이 닫히기 전에 의무실을 빠져나왔다. 에드워드도 바로 내 뒤를 따랐다.

“네가 순순히 내 말을 들을때도 다 있군.”

그가 놀란 듯 말했다.

“피 냄새가 났거든.”

내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리는 나처럼 다른 사람들의 피를 보고 기절한 게 아니었다.

“인간은 피 냄새를 못 맡아.”

그가 반박했다.

“글쎄, 난 맡을 수 있어, 내가 기절한 것도 피 냄새 때문이야. 녹슨 쇠냄새랑..... 찝찔한 냄새가 나.”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내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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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무서운 이야기 좋아해?”

“당연히 좋아하지.”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사로잡으려고 애쓰며, 내가 열광이라도 하듯 대답했다.

제이콥은 근처까지 떠밀려온, 뿌리가 거대하고 허연 거미 다리처럼 튀어나온 나무 잔해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뒤틀어진 뿌리 한 줄기에 가볍게 걸터앉았고, 나는 그보다 아래쪽 나무 몸통에 자리를 잡았다. 바위들을 내려다보는 그의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흥미진진한 눈빛을 계속 유지하는 데만 신경을 썼다.

“혹시 우리 옛날이야기 들어봤어? 퀼렛 부족의 유래 같은 것에 대해서?”

그가 말문을 열었다.

“아니,”

“전설이 워낙 많은데, 어떤 이야기는 노아의 홍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해. 옛날 퀼렛 선조들은 산꼭대기 가장 높은 나무 끝에 카누를 매달아서 노아의 방주처럼 살아남았다는 거지.”

그는 부족의 역사를 자기가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듯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전설은 우리 조상이 늑대라는 건데, 우린 아직도 늑대와 형제 관계라고 믿기 때문에 부족의 율법에 따라 늑대를 죽이는 걸 금하고 있어. 그리고 ‘냉혈족’에 대한 전설도 있지.”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냉혈족이라고?”

난 더 이상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는 척할 필요 없이 곧이곧대로 반응했다.

“응, 냉혈족에 관한 이야기는 늑대 전설만큼 오래된 건데, 최근까지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어. 전설에 따르면 우리 증조할아버지도 냉혈족 일부와 관련이 있대. 그들이 우리 땅을 침범하지 않도록 평화조약을 맺은 분이 우리 증조할아버지라나.”

제이콥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희번덕거렸다.

“너희 증조할아버지께서?”

“증조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처럼 부족 원로셨대. 원래 냉혈족은 늑대와 타고난 원수지간이거든. 그러니까 진짜 늑대는 아니고, 우리 선조들처럼 인간이 된 늑대 말이야. 흔히 늑대인간이라고 부르잖아.”

“늑대인간한테도 적이 있단 말이야?”

“유일한 적이지.”

조바심이 치밀었지만, 제이콥이 내 표정을 감탄하는 것이라 여겨주기를 바라며 나는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냉혈족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적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사시던 때에 우리 영토로 들어와 냉혈족 일당은 좀 달랐대. 다른 일당들처럼 인간을 사냥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부족에게도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된 거지. 그래서 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 그들과 평화협정을 맺으셨대. 그들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우리도 그들의 정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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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사람들의 정체는 뭐야? 냉혈족이 뭔데?”

마침내 내가 묻자 제이콥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흡혈귀지. 백인들은 그들을 뱀파이어라고 부를걸.”

제이콥이 음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나는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드러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저 멀리 몰아치는 거친 파도를 바라보았다.

“소름 돋았구나.”

제이콥이 유쾌하게 웃어댔다.

“너, 얘기를 참 실감나게 잘한다.”

여전히 파도를 응시한 채 내가 칭찬을 해주었다.

“아무래도 정신 나간 얘기 같지? 우리 아버지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한 것도 당연해.”

나는 아직도 그와 얼굴을 마주해도 될 만큼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걱정 마.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을게.”

“방금 난 그들과의 평화협정을 깬 셈이야.”

제이콥이 소리 내어 웃었다.

“무덤까지 비밀로 갖고 갈게.”

그렇게 장담하고 나서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튼 정말로 찰리 아저씨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컬렌 박사님이 이곳 병원에서 일을 한 뒤로 우리 부족 사람들이 병원에 가길 거부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한테 많이 화나셨거든.”

“물론이야. 얘기 안 할게.”

“우리 부족이 참 말도 안 되는 미신에 얽매인다고 생각하겠네?”

그는 장난스레 물었지만, 조금은 진심으로 염려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도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아무튼 넌 정말 무서운 이야기를 실감나게 잘하는구나. 아직도 소름 돋은 게 가라앉질 않았어. 이거 봐.”

내가 팔을 들어올리자 그가 흡족한 듯 웃음을 지었다. (P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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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뱀파이어 A부터 Z까지’라는 제법 쓸 만해 보이는 사이트가 눈에 띄었다. 나는 사이트가 연결되는 동안 초조하게 기다리며 모니터에 뜨는 광고창을 재빨리 닫았다. 마침내 단순하게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된 학구적인 느낌의 화면이 열렸다. 그 사이트 초기화면에 뜬 인용문 두 개가 나를 반겼다.

유령과 악마의 어두운 세계를 통틀어, 유령도, 악마도 아니면서 그에 못지않은 신비와 공포를 간직하고 있는 뱀파이어만큼 경악과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끔찍할 만큼 매혹적인 존재는 다시 없다.

-몬테규 서머스 목사

이 세상에 뱀파이어만큼 그 존재가 잘 입증된 대상이 또 있을까. 공식 보고서, 유명인사들의 진술서, 의사, 사제, 판사들의 증언까지 부족함이 없으니 단서는 아주 완벽하게 갖춰진 셈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뱀파이어를 믿는 자 그 어디에 있는가?

-루소

그 사이트의 나머지 내용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뱀파이어에 관한 다양한 미신을 알파벳 순으로 망라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 ‘다낙(Danag)'이라는 단어를 클릭했다. 오래전 필리핀 제도에 토란의 일종인 타로를 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필리핀 뱀파이어였다. 이야기는 다낙 족이 여러 해 동안 인간들과 함께 일했으나, 어느 날 한 여인이 손가락을 베자 어느 다낙이 여인의 상처를 빨았고, 그 맛에 반한 다낙이 여인의 몸에 있는 피를 모두 빨아 마시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인간과의 유대관계는 끊어지고 말았다고 전했다.

나는 그 사이트의 여러 정보 가운데 그럴듯한 이야기는 고사하고 그나마 낯익은 이야기라도 있을까 해서 조심스레 읽어 내려갔다. 뱀파이어에 관한 미신은 대부분 아름다운 여인을 악마로, 어린이를 희생자로 그리는데 집중되어 있는 듯했다. 또 매우 높은 유아 사망률을 설명하려고 일부러 끼워 맞춘 이야기와 남자들의 간통을 변명하려는 시도도 눈에 띄었다. 몸뚱이 없는 영혼과 부적절한 매장에 관한 경고를 담은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본 영화에서 흔히 다루어지던 이야기는 거의 없었고, 이스라엘의 ‘에스트리(Estrie)'나 폴란드의 ’유피에르(Upier)'처럼 흡혈에 심취한 뱀파이어도 거의 없었다.

정말로 내 눈길을 끈 항목은 세 개밖에 없었다. 루마니아의 ‘바라콜라치(Varacolaci)'는 죽지 않는 강력한 존재로, 피부가 창백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슬로바키아의 ’넬랍시(Nelapsi)'는 자정이 지난 뒤 단 한 시간 만에 마을 전체 주민을 학살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도 빠른 존재였고, 마지막 하나는 ‘스트레고니 베네피치(Stregoni benefici)'였다.

이 마지막 항목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스트레고니 베네피치: 이탈리아의 뱀파이어로, 선한 존재여서 모든 악한 뱀파이어에게는 불구대천의 적이라고 함.

뱀파이어에 관한 수백 가지의 미신 가운데 단 하나라도 선한 뱀파이어의 존재를 주장하는 항목이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P15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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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렌 집안 사람들이 뱀파이어란 말이야?

아무튼 그들이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건 확실했다. 상식 안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범주 이상의 일들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제이콥의 냉혈족 이야기든 내가 생각해 낸 초능력 이론이든, 에드워드 컬렌은...... 인간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는 그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이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만일 사실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에 하나’ 에드워드가 뱀파이어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었다. 나도 내 자신을 못 믿는 마당에, 누구든 내 얘기를 들으면 날 정신병원에 보낼 게 뻔했다.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즉 영리하게 최대한 그를 피하는 것이었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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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거. 내가 피를 마시는지 알고 싶지 않아?”

그의 냉랭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음. 제이콥이 거기에 대한 얘기를 좀 해줬어.”

“제이콥이 뭐라고 했는데?”

“너희는..... 인간을 사냥하지 않는댔어. 너희 가족은 짐승들만 사냥하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고 여겨진다더라.”

“우리가 위험하지 않다고 그랬단 말이야?”

“그렇게 단정한 게 아니라. 위험하지 않다고 ‘여겨진다’고 했어.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퀼렛 부족은 너희가 가지네 영역에 오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이야.”

그는 앞만 바라봤지만, 그가 도로를 보고 있는 건지는 확실치 않았다.

“제이콥 말이 맞아? 인간을 사냥하지 않는다는 거 말야.”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평온하게 내려고 애썼다.

“퀼렛 부족은 기억력이 대단하군.”

그의 속삭임을 나는 확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너무 안심하진 마. 우리와 거리를 유지하려는 그 사람들 생각은 옳아. 우린 여전히 위험한 존재야.”

“난 이해 못하겠어.”

“우리도 노력은 하지. 대개는 우리도 자제력이 뛰어나. 하지만 가끔은 실수도 해. 가령 지금의 나처럼. 너와 단둘이 있잖아.”

“나랑 같이 있는 게 실수라고?”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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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러웠고, 이해할 수 없는 영상으로 가득했지만 일부 장면을 애써 지워버렸다. 처음에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지만 차츰 무의식에 가까워지는 걸 느끼면서 몇 가지는 더욱 확실해졌다.

세 가지는 아주 확실했다. 첫째, 에드워드는 뱀파이어였다. 둘째,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그의 일부는 내 피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셋째, 나는 돌이킬 수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P223-224)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과 갈등을 겪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만일 널 떠나는 게 옳은 일이라면, 널 다치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다치는 쪽을 선택해서라도 널 안전하게 지킬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널 더 좋아하는 거고.”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렇게 못할 거 같아?”

“넌 선택을 내릴 필요가 없으니까.”

늘 예측불허인 그의 기분이 다시 바뀌었다. 장난스럽고 불량한 웃음이 그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물론 이제는 너를 안전하게 지키는 게 내 존재의 의미랄까. 임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긴 했어.”

“오늘은 아무도 나를 해치려 들지 않았어.”

나는 좀더 가벼운 화제로 넘어간 걸 고마워하며 대꾸했다. 그와 더는 작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만일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그를 가까이 두기 위해 일부러 위험에 빠지는 쪽을 선택할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내 얼굴을 살피기 전에 얼른 그 생각을 지웠다. 헤어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아직은 그렇지.”

그가 덧붙였다. (P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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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아래서 보는 에드워드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오후 내내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제 사냥을 다녀와 조금 홍조를 띄기는 했지만 그의 새하얀 살갗은 자잘한 다이아몬드 수천 개가 박힌 것처럼 반짝거렸다. 지금 그는 반짝이는 팔과 조각 같은 가슴을 셔츠 사이로 살짝 드러낸 채 풀밭에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물론 잠을 자는 건 아니었지만 영롱하게 반짝이는 창백한 보랏빛 눈꺼풀은 감겨 있었다. 그는 대리석처럼 매끄럽고 수정처럼 반짝이는 이름 모를 돌로 깎아놓은 완벽한 조각상 같았다.

그의 입술이 이따금씩 움직였지만 너무 빨라 바르르 떨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했냐고 묻자 그는 노래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음역이 너무 낮아서 내게는 들리지 않는 노래.

공기는 내 맘에 쏙 들 정도로 건조하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햇살을 만끽했다. 나도 에드워드처럼 누워서 따뜻한 햇볕에 얼굴을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아 무릎에 턱을 올려놓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에 내 머리칼이 휘날렸고,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에드워드 주변에서 풀잎이 하늘거렸다.

처음에는 그토록 장관이었던 초원 풍경도 그의 장엄한 아름다움 앞에는 빛을 잃었다. (P296-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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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참았어. 어떻게 참았는지는 모르겠어. 난 널 기다리면 안 된다고. 학교에서 널 집까지 따라가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억제했어. 밖에 나와 네 체취를 더 맡지 않으니까. 생각도 맑아지고,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게 쉬워지더라. 나는 형제들을 집 근처에 내려준 뒤 곧장 병원에 있는 칼라일에게 가서 떠나겠다고 말했어.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 다른 가족에게 털어놓은 건 너무 수치스러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만 눈치 채고 있었지.”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우선 칼라일과 차를 바꿨어. 그 차엔 휘발유가 가득했고, 난 어디서든 멈추고 싶지 않았거든. 차마 집에 가서 에스미를 만날 용기도 없었어. 에스미는 나를 그대로 떠나보낼 사람이 아니야. 떠날 필요까진 없다고 분명히 나를 설득하려 했을 거야..... 다음 날 아침에 난 이미 알래스카에 있었어.”

그는 대단히 비겁한 행위라도 고백하듯 부끄러운 말투였다.

“옛날에 알던 이들과 거기서 이틀을 보냈지만..... 집이 그리웠다. 나 때문에 에스미와 다른 가족들이 괴로워하는 게 싫었지. 산속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생각하니, 내가 그토록 견디기 힘든 유혹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어. 달아나는 건 나약한 짓이라고 나 자신을 나무랐지. 예전에 겪은 유혹들은, 물론 이렇게 강렬하지도 않았고 비교할 수도 없지만, 어떻든 견뎌냈으니까. 난 강하다고 생각했다. 대체 네가 뭔데. 대수롭지 않은 계집애 하나 때문에....”

갑자기 그가 씩 웃었다.

“.....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쫓겨나야 하는 건가 싶은 거야. 그래서 돌아왔고.......”

그가 먼 곳을 응시했다.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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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부류가..... 많아?”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저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 걸까?

“아니, 많진 않아. 하지만 대부분 한 곳에 정착하지 않지. 우리처럼 인간사냥을 포기한 경우에만 언제까지나 인간들과 함께 살 수 있거든. 우리처럼 사는 건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한 가족밖에 없었어. 한동안 우리도 그들과 함께 살았는데, 너무 많이 몰려 살면 눈에 쉽게 띄잖아. 우리같이..... 다르게 사는 이들은 서로 어울려 지내는 경향이 있거든.”

“그럼 다른 부류는?”

“대부분 떠돌며 지내. 우리 가족도 모두 그런 시기를 거쳤어. 그런데 그것도 시들해지더라. 하지만 우리들은 대부분 북반구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따금씩 다른 이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해.”

“그건 또 왜?”

그때 우리는 우리 집 앞에 도착했고, 에드워드가 시동을 껐다. 밖은 아주 조용하고 어두웠다. 달도 없었다. 현관 불이 켜 있지 않은 걸 보니 아직 찰리는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오늘 오후에 너 계속 눈 감고 있었니?”

그가 놀리듯 물었다.

“내가 햇빛 속에서 마구 거리를 돌아다니면 사방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겠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햇빛이 적은 곳에 속하는 올림픽 페닌술라를 선택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야. 낮에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하거든. 80년도 넘게 밤에만 활동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넌 모를 거다.”

“그래서 그런 전설이 생겨났나 보네?”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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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일은 영국 국교회 목사의 외아들이었어. 어머니는 칼라일을 낳다가 돌아가셨지. 아버지는 상당히 완고한 분이셨다더군. 신교도가 득세하지, 그분은 로마가톨릭 신자들과 다른 종교인들을 처단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 섰다고 해. 게다가 악의 존재란 것도 아주 굳게 믿고 계신 분이었지. 마녀와 늑대인간..... 뱀파이어 사냥을 선두에서 이끌었으니까.”

나는 그 말에 얼어붙고 말았다. 에드워드도 눈치 챈 것 같았지만,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화형에 처했어. 물론 진짜였다면 쉽게 잡히지도 않았겠지. 연로해진 목사는 순종적이었던 아들에게 악을 퇴치하는 일을 물려줬어. 처음에 칼라일은 아버지를 많이 실망시켰어. 존재하지도 않는 악마를 봤다고 우기거나 무고한 사람을 처단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아주 끈질겼고, 아버지보다 훨씬 더 영리했어. 그러다 도시 하수구에 숨어 살면서 밤에만 사냥을 하러 나오는 진짜 뱀파이어 집단을 찾아낸 거야. 당시에 괴물은, 단순히 미신이나 전설이 아니라 그냥 다양한 삶의 한 방식이었어. 사람들이 삼지창과 횃불을 들고 모여들었고, 칼라일이 발견한 괴물들이 있는 도로 쪽 출입구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어. 드디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지.”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고, 나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자는 아주 늙은데다, 허기가 져 몹시 약해져 있었던 모양이야. 칼라일은 그자가 인간들의 낌새를 눈치 채고 라틴어로 다른 동료들에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어. 늙은 괴물은 거리로 달아났고, 몹시 재빨랐던 스물세살 청년 칼라일은 맨 앞에 서서 추적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을 쉽사리 따돌릴 수도 있었을 텐데, 칼라일 생각으론 몹시 배가 고팠던 것 같다더군. 그래서 돌아서서 공격을 감행한 거지. 그는 칼라일을 가장 먼저 덮쳤지만 바로 뒤에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방어를 해야 했어. 괴물은 두 사람을 죽이고 세 번째 희생자를 데리고 달아났고, 칼라일은 피를 흘리면서 길에 쓰러져 있었어.”

에드워드가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그가 나를 위해 일부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칼라일은 자기 아버지가 자길 어떻게 할지 잘 알고 있었어. 괴물 손에 닿은 것은 무엇이든 철저하게 파괴해야 했기 때문에 시신까지도 불에 태우는게 관례였거든. 칼라일은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했어. 사람들이 괴물과 세 번째 희생자를 뒤따라간 사이에 그 골목에서 몸을 피한 거야. 지하실로 숨어든 그는 사흘 동안 썩어가는 감자 속에 숨어 있었어. 칼라일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기적이라고 해야겠지. 모든 게 끝나고 나서, 칼라일은 자기가 어떤 존재가 됐는지를 깨달았다.”

내 얼굴에 심상치 않은 표정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에드워드가 말을 멈추었다.

“기분이 어때?”

그가 물었다.

“난 괜찮아.”

나는 그를 안심시켰다. 내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깨물기는 했지만, 내 눈동자에 이글거린 호기심을 에드워드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묻고 싶은 게 몇 가진 있을 테지.”

“응, 두어 가지.”

그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더 환하게 웃음 지었다. 에드워드는 내 손을 잡아끌며 다시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그럼 가자. 보여줄게.” (P37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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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인 우리 일행입니다.”

칼라일이 제임스를 향해 호되게 나무라듯 말했다. 로렌트는 제임스만큼 내 체취를 강렬하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의 얼굴에도 이해의 빛이 떠올랐다.

“간식거릴 가져오신 건가요?”

로렌트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에드워드가 입술을 벌려 번쩍이는 이를 드러내며 전보다 더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로렌트가 얼른 뒤로 물러났다.

“우리와 일행이라고 하지 않았소.”

칼라일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저 아인 ‘인간’이 아닙니까.”

로렌트가 반박했다. 그 말 속에 공격적인 느낌은 없었고 단순히 놀란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에밋이 칼라일의 말이 사실이라고 증명하듯 제임스를 노려보며 앞으로 나섰다. 제임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지만, 그의 눈은 계속해서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콧구멍도 여전히 벌름거렸다. 에드워드는 사자처럼 꼼짝 않고 내 앞을 지키고 있었다.

로렌트는 갑작스런 적대감을 무마할 생각인 듯, 달래는 것 같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우린 서로에게 배울 게 상당히 많은 것 같군요.”

“맞습니다.”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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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는 어떻게 죽여?”

그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갑자기 거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유일한 방법은 갈가리 찢은 다음 조각조각 태우는 거야.”

“그럼 다른 일행 둘도 같이 싸우려 할까?”

“여자는 그럴 거야. 로렌트는 잘 모르겠더군. 그들은 서로 유대감이 깊지 않아. 편의상 합류한 것뿐이거든. 초원에서 그자는 분명 제임스 때문에 당황하고 있었어....”

“하지만 제임스와 그 여자는, 정말 널 죽이려고 할까?”

내 목소리가 갑자기 갈라졌다.

“벨라, 쓸데없이 내 걱정은 하지 마. 넌 그냥 너만 무사히 지낼 걱정만 하면 돼. 그리고 제발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줘.”

“아직도 따라오고 있어?”

“응, 하지만 집은 공격하지 않을 거야. 오늘 밤엔 아니야.”

그는 보이지 않는 진입로로 접어들었고 앨리스도 바로 뒤에서 따라왔다.

우리는 곧장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 안에서는 불빛이 환하게 새어나왔지만, 주변 숲의 어둠을 밝혀주지는 못했다. 에밋은 트럭이 멈추기도 전에 내가 앉은 쪽 문을 열었다. 그는 의자에서 나를 안아 내려 넓은 가슴에 안고는 그대로 현관을 향해 달려갔다.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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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벨라. 곧 다시 보게 되기를 빈다.”

그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기를 계속 귀에 대고 있었다. 공포 때문에 온몸의 관절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엄마의 공포 어린 목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자제력을 되찾으려고 애쓰는 사이 시간이 흘러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각이 고통의 벽을 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워야 했다. 이제 나에게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거울 방에 가서 죽는 것. 나는 제임스가 게임에서 에드워드를 이겼다는 것에 만족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절망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마음을 바꿀 만한 어떤 협상이나 제안도 불가능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

나는 최대한 공포감을 억눌렀다. 마음의 결정은 내려졌다. 결과에 대해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앨리스와 재스퍼가 기다리고 있는데다, 그들을 따돌리고 달아나는 건 이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면서 또한 불가능한 임무였다.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다. (P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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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가 네 아버지를 못 잡았다기에 네 뒷조사를 좀더 부탁했지. 내가 고른 장소에서 편안하게 기다리면 되는데 뭐 하러 온 세상을 다니며 널 뒤쫓겠어? 그래서 빅토리아와 얘기를 나눠본 뒤에, 네 어머니를 만나러 피닉스에 와야겠다고 결심했지. 네가 집에 가겠다고 얘기하는 걸 이미 들었으니까 말이야. 처음엔 정말로 집에 갈 작정이라곤 상상도 못했지. 하지만 문득 의구심이 들더군. 인간은 원래 아주 예측하기 쉬운 동물이거든. 어디든 익숙하고 안전한 곳을 좋아하지. 그렇게 생각하니 네가 절대로 숨어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숨는 것도 나름대로 계략이다 싶더군. 물론 느낌이 그랬을 뿐, 확신은 없었어. 난 원래 사냥을 할 때 먹이에 대한 본능에 의존하지. 육감이라고 할까. 네 어머니 집에 가서 메시지를 들었을 때도, 네가 어디에서 전화를 걸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어. 물론 전화번호가 아주 유용하긴 했지만, 남극에서 전화를 걸었을지도 모르는 상황 아니겠어. 내 작전은 네가 가까운 곳에 있지 않는 한 먹힐 수가 없었거든. 그러던 차에 네 남자친구가 피닉스행 비행기를 타더구나. 물론 빅토리아가 나 대신 놈들을 감시하고 있었지. 이렇게 선수들이 많은 게임에선 나라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드니까. 결국 내가 바라던 대로 저들이 네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가르쳐준 셈이지. 난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어. 이미 너희 집에 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모두 감상하고 난 뒤였거든. 적당히 속여 넘길 수만 있으면 나머지는 술술 풀리겠더군. 너무 쉬워서 내 기준으론 게임으로 칠 수도 없을 정도야. 그러니까, 난 네 남자친구가 복수를 하지 않을 거라는 네 말이 절대로 틀리기를 바라고 있는 거야. 이름이 에드워드라고 했던가?” (P50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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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고 넘어갈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 어차피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데, 혹시나 에드워드가 그걸 알아차리고 내 재미를 망칠까 봐 은근히 걱정이었지. 아주 오래전에 그런 일이 한 번 있었거든. 노리고 있던 먹이가 나를 피해 달아난 적이 딱 한 번 있었단 말이지. 예전에 어리석게도 너 같은 먹이를 너무 좋아하게 되는 바람에, 나약한 네 남자친구는 절대로 하지 못할 선택을 했던 뱀파이어가 있었다. 내가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 뱀파이어는, 자기가 일하던 정신병원에서 몰래 그 애를 빼돌렸었다. 난 너 같은 인간들에게 그렇게도 집착하는 몇몇 뱀파이어의 심정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어쨌든 그자는 여자애를 빼돌리자마자 ‘안전하게’ 만들었지. 가엾은 그 계집애는 거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더군, 지하감옥 같은 어두운 골방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탓이지. 몇백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그 계집은, 미래를 내다본다는 이유로 마녀의 낙인이 찍힌 채 화형을 당했을 거야. 그나마 1920년대니까 정신병원에서 전기충격 치료를 받았던 거지. 새로이 젊은 몸으로 눈을 뜬 그 앤 난생처음 태양을 보는 양 새로운 세상을 만끽할 수 있었어. 늙은 뱀파이어가 그 계집애를 강한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나게 했으니, 이젠 내가 탐을 낼 이유도 없어졌지. 그래서 난 복수심에 불타 그 늙은이를 없애버렸다.”

제임스가 한숨을 쉬었다.

“앨리스.”

나는 너무 놀라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래, 바로 네 친구. 초원에서 그 애를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그러니 그 여자애 가족도 이번 경험에서 뭔가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순 있을 거다. 난 너를 손에 넣었지만, 그들은 그앨 데리고 있으니 말이야. 감히 내 손을 빠져나간 유일한 먹이를 데리고 있으니 영광으로 알아야겠지. 그 애가 얼마나 맛있는 냄새를 풍겼던지 아무도 모를 거다. 그때 맛을 보지 못한 게 아직도 후회스러울 지경이야....... 그 앤 너보다도 더 근사한 냄새를 풍겼거든. 미안하구나, 널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다. 네 냄새도 꽤 좋아. 꽃향기 같은 게 나지......”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와 내 코앞에 섰다. 그러곤 내 머리칼을 한 줌 들어 은근히 냄새를 맡았다. 머리칼을 제자리에 돌려놓자마자, 목덜미에 차가운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나를 보며 엄지손가락으로 내 뺨을 재빨리 어루만졌다. 나는 죽도록 도망치고 싶었지만 완전히 얼어붙어 어디 한 군데 움찔할 수도 없었다. (P50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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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잃은 사이 나는 꿈을 꾸었다.

검은 물속을 떠다니며 소름이 끼치면서도 동시에 가슴을 들뜨게 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나는, 내 마음이 불러낸 환청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더 깊고 거칠어 섬뜩한 분노가 느껴지는 또 다른 으르렁거림이었다.

나는 얼굴을 가렸던 손에서 느껴지는 예리한 통증 때문에 곧 다시 수면으로 끌어올려졌지만, 도저히 눈을 다시 뜰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물속에서 내가 바라는 천국, 단 하나뿐인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천사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안 돼, 벨라. 안 돼!”

천사가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목소리 뒤편으로 또 다른 소리들이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끔찍한 소음이었다. 무시무시한 으르렁거림과 뭔가 부러지는 충격적인 소리, 새된 비명. 뭔가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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