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22. 정치적 이미지로서의 인물사진

by 노용헌

그 사람의 이름과 함께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얼굴 생김생김, 표정, 음성, 말씨, 평소의 옷차림, 걸음걸이와 같은 모습들, 또 함께 있을 때의 느낌, 그의 태도, 성격, 실력, 신의 등등... 이렇게 수많은 생각들이 점차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우리 나름의 사고, 취향에 따라 편집되어 만들어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의 덩어리, 특유한 감정, 고유한 느낌, 이것이 바로 ‘이미지’이다. 세계가 좋아지면서 우리는 옛날보다 훨씬 더 많은 이미지를 빠른 속도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첨단 기술의 발달로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무척 다양해졌다.

이미지의 영향력이 우리 개인의 행동과 사회문화를 형성할 만큼 막강해졌다는 것은 여러 분야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설득력 있는 메시지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의 TV토론은 ‘이후 미국의 선거과정 자체를 바꾸어 놓은 사건’으로 일컬어질 만큼 대중 매체가 선거결과에 얼마만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미지나 상징이 쟁점보다는 '안전'하다는 인식이 선거 전문가들에게 만연되어 있고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상 이미지는 그 정치인의 전략을 강화시키는데 사용된다. 어떤 경우 유권자는 훌륭한 정책을 제시하나 인상이(이미지가) 나쁜 후보자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정책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인상이(이미지가) 좋은 후보자를 선호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케네디와 닉슨이 벌인 텔리비전 토론에서 정치토론을 본 유권자들은 케네디가 토론에서 이겼다고 생각한 반면, 라디오를 통해 그 토론을 들은 사람들은 닉슨이 이겼다고 생각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비주얼시대에서의 이미지의 전략이 그 만큼 중요하다 볼 수 있다. 선거 때가 아니더라도 정치인에게 사진은 중요한 이미지 요소이다. 대표적인 예로 히틀러와 케네디를 들 수 있다. 히틀러는 늘 사진의 뒷배경을 어둡게 처리했다. 사진이 노출될 때에는 군가를 크게 틀어 카리스마를 전달하려고 했다. 또 왜소한 체구와 작은 키가 드러나지 않도록 상반신만 잡았고, 키가 커 보이는 로우 앵글로 찍었다. 케네디의 사진 중 보수적이거나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정면 사진은 거의 없다. 대부분 약간 사선으로 얼굴에 각을 주었고 시선을 높게 처리했다. 세련된 이미지와 새로운 미래에 대한 뉴 프런티어(New Frontier)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데, 박종렬씨는 1988년 ‘신동아’ 4월호에 발표된 <노태우 대통령의 이미지 메이킹 작전>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말하기를, 빈틈없이 펼쳐진 이미지 전략이야말로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비결이며, 6.29 민주화 선언 이후 선거유세와 선거공약, 취임 연설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이미지 관리가 알게 모르게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노태우 후보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의 포스터로 그 인지율을 효과적으로 높였다. 이 포스터 사진에는 80년 광주 학살의 책임자라는 노태우 후보의 이미지를 지우고 가정적이며 휴머니즘이 가득 찬 보통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대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가진 남북정상회담의 사진은 정치인의 이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미지는 일반 대중들에게 호탕한 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당시 스타덤에 오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로 이미지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55년간 우리가 배워왔던 반공 이데올로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바뀐 김정일 위원장의 이런 이미지는 영상 이미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현대 이미지 사회의 산물이기도 하다.


TV나 신문의 보도를 대개의 경우 별다른 의문 없이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또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이 점을 역이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걸프전의 경우를 보면, 미국정부는 자신들이 표방한 첨단전쟁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도의 기술적 통제작전을 전개했다.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의 코 부분에 장착된 카메라로 포착한 화면을 TV로 보도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이것은 결국 사실의 보도를 가장한 허구의 생산이다. 프리랜서가 찍은 베트남전의 경우 전쟁은 참담하게 보도되었고 이것은 미국내의 반전여론을 확산시켰다. 이러한 충격적인 이미지는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되는 영향을 미쳤지만, 1991년과 2003년 이라크의 전쟁에서는 철저히 보도를 통제함으로써 마치 비디오게임과 같은 허구의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미 국방부와 연계한 임베디드 보도지침(embedded program, 종군기자 프로그램)은 미국에게 유리한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종군기자의 중립적인 면보다는 기자들의 움직임과 보도내용을 통제하여 미국의 대변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만든다. 반면 알자지라의 보도는 참담한 피해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참혹성을 알려주고 있다. 상반된 사진이미지는 사진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물사진은 대상이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된다. 유명인들의 초상사진은 어떤 시각 이미지들보다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에, 제품이나 기업의 광고에 자주 이용된다. 또한 인물사진은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필요로 하는 정치가들에게 있어서는 정치적 도구로서 이용되기도 한다. 이미지는 신화와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전달하는데 그중, 정치인의 이미지는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역사상 사진을 정치적 도구로서 가장 먼저 인식한 정치가 중의 하나는 1930년대 독일의 히틀러였다. 당시 히틀러는 뮌헨에서 영업사진관을 개업하고 있던 하인리히 호프만(Heinrich Hoffmann)이라는 젊은 사진가를 통하여 이미지 홍보를 하였다. 반면 1918년 독일 공산당에 입당한 존 하트필드는 나치의 정치선전을 거부하는 포토몽타주로 유명하다. 나치 치하에서 공산당의 기관지 「붉은 깃발」과 노동자들을 위한 화보잡지 「AIZ」(Arbeiter illustrierte Zeiung)를 위해 정치적인 포토몽타쥬를 제작한 존 하트필드는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항하였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유명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그림은 이상화한 지도자의 초상화이다. 나폴레옹의 힘찬 기상과 멋진 말을 타고 산을 넘는 모습은 사실상 허구를 미화한 정치적인 그림이다. 실제로 역사적 사실은 말이 아니라 노새를 타고 알프스의 생베르나르 산을 넘었으며, 그는 키도 작고 볼품이 없었다. 영웅의 이미지를 가장한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시대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통제 관리하는 것을 통치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러한 이미지의 통제는 이데올로기와 권위를 상징한다. 대중 앞에서 군주들의 공적 행사는 스펙타클한 이미지로 연출되었다. 이것은 마치 연예인이 자신의 나쁜 이미지는 골라내고 좋은 이미지만을 정형화하여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미국의 헐리우드 스타 시스템은 대중 스타들의 이미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사진은 과연 중립적일 수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도로 이미지의 전략은 고도로 복잡해진다.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사진은 그 위장과 전위를 통해 대중에게 제공된다. 마치 연예인의 사진처럼 정치인의 사진은 한낮 가쉽성 기사로 암암리에 전달된다. 이데올로기적인 속성을 철저히 위장하고 숨기면서 말이다.


1997년 8월 31일 애인과 함께 차에 탄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파리 센 강변 자동차 도로 중간의 터널에서 오토바이 등으로 뒤쫓아오는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가 자동차 충돌로 죽은 사건은 파파라치의 심각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정치인 등 유명인들의 스캔들이나 프라이버시를 드러내는 사진을 노리는 질 나쁜 사진가들은 인물의 내면을 탐구하기보다는 사생활을 엿보는 관음증 환자처럼 사진을 가쉽성 연예기사처럼 호기심으로 전달한다. 정치인의 행적에 대한 관심은 사진의 초창기 디스데리의 명함판 사진(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콘소트(Consort))에서부터 출발한다. 소형카메라의 기동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점점 더 실감나게 촬영한 유태계 독일인인 에리히 잘로몬(Erich Salomon, 1886-1944)은 유럽 거물급 정치인들의 모습을 캔디드(candid) 형식으로 촬영하여 눈길을 끌었다. 잘로몬이 사용한 몰래찍기, 즉 캔디드 기법은 의식하지 않는, 연출하지 않는 순수한 모습을 전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과 몰래 찍는데서 나오는 윤리적인 면, 파파라치와 같이, 피사체와의 진정한 대화가 결여된 반쪽만의 사진으로 전락할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에리히 잘로몬


<페데리코 몬텔펠트로와 아들 구이도발도의 초상>에서 페데리코의 책을 읽고 있는 모습과 김영삼 대통령의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사진의 경우 집무실이나 또는 종종 책을 읽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은 문무(文武)를 두루 갖춘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암암리에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가렛 버크 화이트의 간디 사진은 다른 상징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간디(Mahatma Gandhi)와의 경험을 "당신이 물레 짓는 사람을 찍기 원한다면 그가 왜 잣는지 생각해 보라. 이해한다는 것은 사진작가에게 있어서 사진 기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간디의 경우 물레 짓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는 수백만 인도인의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라고 이야기한다. 간디를 촬영하기 위해서 그녀는 물레 짓는 법을 배웠다. 물레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인도 국민들에게는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그는 대체로 너무 어둡고, 후면의 반사광으로 인해 사진에 부적당한 간디의 서재에서 아무런 연출 없이 생각에 잠긴 듯한 편한 자세의 간디를 촬영하였다.

이미지와 실체는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이미지의 허상을 실제처럼 여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실제를 바탕으로 기록한다는 것에 무게감이 실리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나 유명인이 아니라도 일반인에게도 자신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길 바란다.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나쁘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표정한 표정, 웃음을 짓고 있는 표정이 아니라 그의 진정한 모습을 담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인 도구로서의 인물사진은 정치적인 목적이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진이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인물사진의 이면에 담겨진 의도와 의미는 무엇인가. 리차드 아베든은 말한다. “가끔 나는 내가 촬영한 사진들이 단순한 사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관심사는 인류가 가진 근본적인 인간성의 본질이다” 한 장의 사진으로 그의 인생과 정신을 담기에는 어쩌면 역부족일지도 모르지만, 사진은 그의 얼굴을 대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사진은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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