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23. 예술과 정치

by 노용헌

며칠전 내창이형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거문도 유림해수욕장을 동문들과 함께 다녀왔다. 한 예술학도였고, 총학생회장이었던 형은 과연 어떤 꿈을 꾸었을까? 예술은 정치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가능할까? 이 말은 과연 사람은 사회정치적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갈수 있을까?라는 말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프랑스의 제도권 미술사조인 신고전주의, 낭만주의와는 달리 화가 쿠르베는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19세기 정치적 격동기에서 레지옹도뇌르 훈장 수상을 보이콧하는 등 국가의 권위에 저항하였다. 그는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얼리즘의 기초는 이상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상을 거부하는 것은 개인을 해방하는 것이고 결국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인 발언들이 그리고 그의 예술이 과연 그 시대의 정치를 이끌었을까. 예술이 가진 힘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예술은 정치적인 세계에 어떤 울림을 전할까.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리고 참여예술, 민중예술이라 불리웠던 예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속에서 어떻게 평가되어질까. 예술을 위한 예술인가? 민중을 위한 예술인가?라는 질문들은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이후에도 계속되어진 질문들이었다.


진보보다 더 부조리한 것이 있을까.

인간은 일상에서 증명된 것처럼 인간과 지극히 비슷하고 다를 것이 없는 데 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항상 야만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폭죽> 중


1848년 보들레르는 루이 필립 왕을 퇴위시키고 공화국을 선포한 ‘2월 혁명’에 참여했다. 그 해 6월 일어난 민중봉기는 잔혹하게 진압당했고, 남자만 참여한 보통선거로 12월 대통령에 선출된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51년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되었다. 봉건제에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현대성(Modernité)은 보들레르의 상징이었다. 이런 정치적 혼란과 한 예술가 보들레르의 감수성은 우울한 감정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부르주아파나 사회주의파가 모두 같은 실수를 범하는 것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둘 다 열정적인 선교사들처럼 외치고 있었다. 한쪽은 부르주아 도덕을, 다른 한쪽은 사회주의 도덕을 설파하고 있었고, 그는 예술이라는 중간에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외치기에도 애매한 낭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P136> 소설속의 주인공 쇼스타코비치는 살기 위해서 기회주의자로 몰리기도 했지만 예술은 누구의 것일까 사이에서,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소시민이었던 것이다.


민중미술이 대두되었던 80년대 우리사회는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서 정치적, 사회적인 문화예술운동이 펼쳐졌고, 이와 같은 민중미술운동의 위상을 한겨레 신문의 윤재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 문화예술운동은 구호문화에 대한 실천문화로서, 지배문화에 대한 저항문화로서, 기성문화에 대한 도전문화로서, 그리고 보수문화에 대한 진보문화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게 되었다고 풀이 할 수 있다.” 사실 리얼리즘을 근간으로 하는 민중미술과 대립각을 세웠던 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속에서 복잡한 양상을 띄었고, 그 속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민이 늘어갈 뿐이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내 청춘 한갓 캄캄한 뇌우였을 뿐,

곳곳에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었네

천둥과 비바람에 휩쓸려간 내 정원엔

빨간 열매 몇 안 남았네.

지금 나, 사상(思想)의 가을에 이제 들어섰으니

삽과 갈고리 들고 다시 긁어 모아야지,

홍수가 지나며 묘혈처럼 곳곳이

커다란 웅덩이를 파놓았으니,

누가 알리,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모래톱처럼 씻긴 이 흙속에서

활력이 될 신비의 양분을 얻을지를?

오 고통이여! 오 고통이여! 시간은 생명을 좀먹고

내 심장을 갉아내는 정체모를 원수는

우리가 흘리는 피로 자라며 강대해지는구나!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악의 꽃> 중 원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