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24. 사진은 기억의 편린

by 노용헌

사진은 기억의 조각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들은 아주 직설적이고 강하며 도발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대상의 움직임, 성격, 깊이 그리고 작은 몸짓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 속에 작은 순간을 상자 속에 잡아넣는 것이다. 사진에 대한 가장 특별한 점은 그것이 하나의 조각이란 것이다. 한번 옮겨놓으면 오랜 시간동안 감상할 수 있고,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1/250초로 찍혀진 사진은 그 순간 영원히 기억의 조각으로 남는다. 아마도 사진은 전체 퍼즐중의 한 조각으로서의 기능을 할지 모른다. 전체적인 기억의 부분적인 기억의 조각으로서의 사진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부분적인 기억의 조각일 것이다.

‘사진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과거의 모습을 가르쳐준다.’ 사진은 대부분의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중성자별의 작은 조각들처럼 감정과 의식이 고양된 순간을 저장해둔다. 세월이 흐른후 기억의 화려한 색깔이 희미해질 수도 있고, 다시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생생하게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들이 기억에 또 다른 색을 입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새로운 감정들이 기억을 뒤덮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의 덮개 밑에서 원래 사건은 증발하듯 사라져버린다. <뇌의 문화지도, P132> 우리의 뇌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때문에 그 기억은 조각일 뿐이고, 사진 또한 그 조각의 일부분일 뿐이다. 기억은 조각으로 저장되고 모든 기억은 통째로 저장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완전한 기억의 조각은 편린(片鱗)이다.


비가 억수로 많이 오는 날 파란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사람들, 어느 공간에서 우리의 기억은 그 대상과 사물, 환경을 기억하는 데는 각기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조각의 편린이다. 사진은 의도하고 찍었든, 별다른 의도 없이 찍었든, 그 시간과 공간속의 편린들이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가물가물해져 사진속의 기억은 현재에서 바라보는 과거의 조각이다. 사진은 그 조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그릇에 밥을 담는다. 사진은 그릇과도 같지 않을까. 시간이라는 기억을 사진에 담든다. 내가 바라보는 곳의 내가 느꼈던 그 기억은 고스란히 그릇에 담긴다. 그것이 어쩌면 사진일 것이다. 밥은 그릇에 담긴다. 그릇을 벗어나 밥은 담기지 않는다. 사진의 프레임은 그릇이다. 프레임을 벗어나 사진에 담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은 프레임안에 내용물(밥)을 담는다. 또한 프레임안에 내용은 기억의 편린이다.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은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에서 “사진은 숙명적으로 되돌려지는 시간 속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사진은 찍히는 순간 과거가 되고, 그것은 기억으로 남는다. 시간의 죽음과 박제가 된 시간이라 보기보다는 기억의 조각이고, 그 기억은 현재의 시간속에서 조우하게 된다. 그 기억은 과거이기도 하지만 과거로만 남는 기억은 없다. 언제나 지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진은 그 기억을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게 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쉴새없이 밀려드는 (텔레비전, 스트리밍 비디오, 영화의) 이미지가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는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진이 가장 자극적이다.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 그것의 기본적인 단위는 단 하나의 이미지이다. 정보 과잉의 이 시대에는 사진이야말로 뭔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을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형태이다. 사진은 인용문, 그도 아니면 격언이나 속담 같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순식간에 떠올릴 수 있는 수백 장의 사진들을 마음 속에 담고 있다.”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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