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풍경
최초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이 시인은 거짓말을 한다고 썼다. 그러므로 아주 오래전부터, 현실이란 곧 나쁜 상태와 좋지 않은 사건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예술은 주인공이나 주요 주제가 악일 경우에만, 혹은 세상의 악에 대해 어느 정도 우스꽝스럽게 절망하고 있을 때만 현실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왜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종류를 참고 들을 수 없는 걸까? 볼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는 걸까? 왜 나는 나를 비난하는 말을 단 한 줄만 써도, 나 자신이나 타인을 단죄하거나 조롱하는 말을 단 한 줄만 써도 — 이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그건 그야말로 성스러운 분노여야 할 것이다! -- 당장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까?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탄생의 행복이나 더 나은 내세의 위안에 대해 쓸 일도 영영 없을 것이다. 죽음의 불가피성은 변함없이 나를 이끌고 나가는 주된 정조이겠지만, 그것 자체가 내 주제가 될 일은 영영 없기를 바란다.
-페터 한트케,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