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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64

버리는 사람과 간직하는 사람

by 노용헌

버리는 사람들이 있고,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기적으로 집을, 또는 기억의 구석진 곳과 사랑의 숨겨진 부분을 샅샅이 들추어 비워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리를 한다. 정리를 한다고 믿지만, 실은 공허를 남긴다. 버리는 그 행위는 일종의 장례식이자 죽음이 올 길에 놓인 돌을 치우듯 부재를 길들이는 방식이다.

그런가 하면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서랍 속에, 한마디 말 속에, 사랑 안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며, 무엇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혹시 모르잖아”라고 말한다. 실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한다. 옛 편지나 녹슨 상자, 오래된 약과 지난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간직한다.

간직하는 사람이든 버리는 사람이든, 모든 것을 대신하는 특별한 대상 앞에서만큼은 같아진다. 자신을 해방하는 사람도, 스스로 짐을 지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팅앙 보뱅, 빈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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