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잃어버린 도시 Z> 2017년
1925년 1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오후, 뉴저지 주의 항구도시 호보컨의 부둣가를 서둘러 걸어가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떠나는 정기 원양선 S.S. 보번호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마흔아홉 살이라는 나이가 말해주듯 가느다란 머리칼에 희끗희끗한 콧수염이 나 있는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지만, 180센티미터의 키에 근육질로 다져진 몸매를 자랑하는 그는 여전히 건장했다.
코가 복서처럼 휘고 눈매가 매서운 그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에 옴짝달싹못했다. 어떤 이는 사물의 깊이를 꿰뚫는 듯한 그의 눈매를 가리켜 ‘예언자의 눈’이라고 했다.
그는 당대 제일의 탐험가로 이름 높은 퍼시 해리슨 포셋 대령이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에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어깨에 장총을 맨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지금은 정장 차림에 면도까지 깨끗이 하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탐험가들은 단도와 나침반 그리고 종교적 의지만 가지고 미지의 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포셋 대령은 그런 탐험가들 중 마지막 세대로, 지난 20년 동안 그의 탐험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P13-14)
1542년 프란시스코 오렐라나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가 남미 대륙에 처음 발을 내디딘 후, 아마도 지구상에 그곳만큼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이며 생사의 비탈길로 유인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오렐라나와 동행했던 도미니카 출신의 가톨릭 수도사 가스파르 카바잘은, 밀림 속 여전사들이 신화 속의 그리스 아마존족과 놀랄 만큼 닮았다고 전함으로써 아마존은 한층 더 현실에 존재하는 신화가 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영국의 탐험가 윌터 롤리는 아마존 원주민들을 ‘눈은 어깨에 달려 있고, 입은 가슴에 붙어 있다’고 묘사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그의 말을 빌려 <오셀로>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서로 잡아먹는 풍습이 있는 식인종 중에는 머리가 어깨 아래로 자라는 이들이 있다.”
뱀이 웬만한 나무줄기만큼 길다든지 쥐가 돼지만 하다든지 하는,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아마존 밀림에 관한 이야기들은 너무 황당해서 지나치게 과장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여전히 사람들을 매혹적인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엘도라도’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원주민들한테서 전해 들었다는 엘도라도는 온 땅이 금으로 가득해서, 그곳 사람들은 금가루를 사탕수수와 함께 먹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짝거린다고 했다. 따라서 엘도라도만 찾는다면 아무리 힘든 모험도 충분히 보상받을 만했다.
하지만 아마존에 도전한 사람들의 결말은 모두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지금까지 대략 4,000명에 달하는 탐험가가 탐사 도중 사라졌다. 그중엔 식인종 원주민에게 무참히 희생된 사람이 있다는 풍문도 돌았다. 1561년, 스페인 국왕이 보낸 탐사대의 지휘자 로프 아기레는 탐험 과정에서 미쳐버린 부하들을 바라보며 이런 일기를 남겼다.
“왕이시여, 기독교 신자로서 당신께 맹세합니다. 수십만 군사가 오더라도, 아마존에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아마존에는 절망 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P17-19)
1996년 6월, 브라질 출신으로 구성된 탐험대가 아마존의 심장부로 향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주 특별한 탐험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들은 1925년 1월의 어느 날, 아들과 그의 친구를 대동하고 밀림으로 들어갔다가 연기처럼 사라진 영국 출신 탐험가 포셋 대령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브라질 탐험대는 마흔두 살의 은행가 제임스 린치가 이끌고 있었다. 그는 오래전에 어느 기자에게서 ‘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실종 사건’이라는 포셋 이야기를 들은 후 그에 대한 자료를 모조리 찾아 읽었다.
자료에 따르면, 포셋은 밀림으로 들어간 후 5개월 동안은 여러 경로로 영국 왕립 지리학회와 자기 집에 전보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얼마 동안 보낸 전갈은 원주민 심부름꾼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훼손되어 끝내 문명의 땅으로 전달되지 못했고, 그러다가 그만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포셋 스스로도 출발하기 전에 오랫동안 연락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자신의 탐험 경로를 최대한 비밀에 부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점점 궁금해졌다.
“혹시 원주민들에게 인질로 잡힌 건 아닐까? 굶어죽은 건 아닐까? 아니면 ‘잃어버린 도시 Z’에 너무 흠뻑 빠져 돌아오기 싫어진 것일까?” (P28)
2004년, 나는 역사적으로 미스터리한 죽음에 이른 사람들을 조사하다가 ‘잃어버린 도시 Z'와 그곳을 탐험하러 떠났다가 실종된 퍼시 해리슨 포셋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나는 삽시간에 포셋에게 빠져들었고, 아마존에 선진화된 고대 문명이 존재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자료를 다 읽고 난 다음 내 생각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존 밀림 속에 그리스 로마, 이집트 문명과 겨루어봐도 전혀 뒤지지 않는 문명이 존재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말이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는 아마존에 대한 이미지는 석기시대의 인류 모습이다. 이는 문화인류학자들이 발표한 각종 논문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사실로, 현실 너머에 ‘잃어버린 도시 Z'가 충분히 존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환경론자들은 아마존 일대를 때 묻지 않은 열대우림지대라고 얘기해왔다. 그들은 문명의 손길이 닿기 전 아마존 일대는 태초 모습 그대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극이나 남극과 마찬가지로 아마존 밀림지대는 인간이 살 만한 환경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지구 최초의 모습 그대로일 거라는 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이유였다. (P42-43)
잃어버린 도시 Z, 싱구 강, 쿠이쿠로족 그리고 포셋 대령...... 그의 말을 듣는 도안, 나는 지금 헤켄버그 박사가 있는 곳이 몇 해 전 포셋 대령의 발자취를 찾아 떠났던 브라질 출신의 제임스 린치가 이끄는 탐험대가 실종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신 지금 200년 전에 사라진 사람들을 찾아 아마존에 가겠다는 거예요?”
아내가 물었다. 2005년 1월 어느 날 밤이었다.
“200년이 아니라 겨우 80년 전이야.”
“200년이든 80년이든, 아마존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찾아나서 겠다는 거냐고 묻지 않아요?”
“그래.”
“거기가 어딘 줄 알고, 어떻게 찾을 건데요?”
“그건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P45-46)
포셋은 그 밖에도 측량법이나 주변 사물을 기록하고 분류하는 법도 배웠다. 프란시스 갤튼 경이 쓴 <탐험의 기술(Art of Travel)>과 <탐험가에게 주는 조언(Hints to Travellers)>은 지리학회의 비공식적 바이블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으로, 포셋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관찰은 탐험가에게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탐험가에게 첫 번째 도구이자 최고의 도구는 눈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노트와 지도에 관찰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라. 중요한 항목들은 모두 기록하라. 계곡, 계곡의 깊이와 색깔, 산맥과 산맥의 형성 모습, 빙하, 지형의 색깔과 형태, 바람, 기온 등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하라.”
관찰 기록을 자세히 정리하는 일이 1912년 남극 탐험대를 이끌었던 로버트 스코트에게는 완전히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남극 탐험을 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대원들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록을 계속했다. 스코트의 일기장에 남은 그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살아 있는 한 모든 영국인의 심금을 울릴 만한 대원들의 불굴의 의지와 지구력, 용기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 휘갈겨 쓴 이 글과 죽어가는 우리 몸이 그 이야기를 대신해줄 것이다.” (P68)
포셋을 실은 배가 파나마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대운하 건설이 한창이었다. 인간이 자연을 길들이기 위해 시도한 일 중 가장 대범한 공사로 기록되는 파나마 운하 건설로, 1881년 공사가 시작된 이후 2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말라리아와 황열병으로 죽었다.
포셋이 아서 존 시버스와 짝을 이루어 파나마에 도착했을 때는 여름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페루행 선박으로 갈아탈 예정이었다. 엔지니어이자 측량기사인 서른 살의 시버스는 다양한 탐사 경험을 바탕으로 아마존에 가면 포셋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출 것이다.
그들은 페루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안데스 산맥으로 들어갔다. 기차가 해발 3,600미터 지역에 다다랐을 때 일행은 다시 배로 갈아타고 티티카카 호를 건넜다. 티티카카 호는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지대 알티플라노 고원 북쪽에 있는 호수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담수호다. 티티카카 호를 건너면 다시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한다. 기차는 평원을 가로질러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까지 갈 것이다.
포셋과 시버스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볼리비아 접경 아마존 밀림지대로 떠난 때는 1906년 7월이었다. 그들은 노새에 차, 우유, 건조 수프, 토마토 소스에 절인 정어리, 레모네이드 분말, 콜라열매 비스킷 등을 실었다. 콜라열매 비스킷은 격렬한 활동을 하는 동안 힘을 유지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P81-82)
이른바 ‘고무 왕’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였다. 고무 왕은 아마존 밀림 속에서 고무를 발견하여, 이에 대한 독점 생산권을 얻은 후 하루아침에 거부가 된 사람들을 말한다. 한순간 부자가 된 사람들이 누리던 초호화판 삶은 당연히 가난한 자들의 꿈이 되었다.
수천 명이 고무 왕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밀림 속으로 뛰어든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들은 동이 트면 어김없이 채굴용 모자를 쓰고 어두운 밀림으로 들어가 해가 질 때까지 고무나무를 찾아다녔다. 고무나무만 발견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꿈이 그들을 끝도 없이 밀림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하루 종일 굶주린 채 일하다가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돌아온 그들은 채취한 고무액을 쇠꼬챙이에 부어 화로 안에 넣고 그것이 응고될 때까지 몇 시간이고 구부리고 앉아 독한 연기를 마셨다. 그렇게 해서 얻은 고무는 작은 공 하나를 만드는 데 그쳤고, 결국 그들은 굶주림과 설사병으로 죽어갔다. 브라질 작가 유클리데스 다 쿠나는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엄청난 모순을 몸소 실천해 보인,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사람들이었다.” (P85)
푸투마요 강을 방문했던 한 탐험가는 아마존 접경지대의 참상을 전하며 그곳을 ‘악마들의 파라다이스’라고 불렀다. 현지 조사의 지휘를 맡았던 브라질 주재 영국 총영사 로저 케이스먼트 경은 고무 회사 하나가 3만 명에 가까운 원주민을 희생시킨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문명 세계에 보고되었던 그 어떤 끔찍한 사건보다 잔인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포셋은 이미 케이스먼트 경의 증언이 나오기 전부터 영국 일간지와 정부 관료들의 모임에서 아마존에서 벌어지는 문명인들의 잔인한 행위를 비판해왔다. 포셋은 아마존에서 벌어지는 고무 붐이 결국 자신이 생명을 걸고 행하려는 목적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예전에는 탐험가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원주민들까지도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80명으로 시작한 어느 탐험대는 원주민들이 쏘아대는 독화살 때문에 탐사 계획을 포기하고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탐험대는 산 채로 허리까지 땅속에 묻혀 불개미와 구더기, 벌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포셋은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왕립 지리학회가 발행하는 잡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노예 매매를 조장하고, 원주민들의 대량학살을 부추긴 고무 산업이 이방인에 대한 원주민들의 복수심을 불타오르게 했다. 이로써 남아메리카 탐험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P88-89)
1911년 초, 포셋이 그동안 이뤄낸 탐험 결과를 발표하는 왕립 지리학회의 강연장에는 ‘아마존의 리빙스턴’을 보려고 유럽 전역에서 과학자와 탐험가 수백 병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지리학회 회장인 찰스 다윈의 아들 레오나르드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포셋은 유럽인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역이며, 단 한 번도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강까지 어떻게 다녔는지 설명할 것이다. 포셋은 인내, 혼신의 열정, 용기, 선견지명 등 탐험가의 자질을 형성하는 모든 것을 갖춘 우리 시대의 유일한 인물이다.”
다윈의 소개를 받고 연단에 선 포셋은 아마존 밀림을 담은 슬라이드 사진과 약도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탐험을 세인들에게 알리면서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로 말미암아 모험 정신이 있는 다른 많은 사람이 지구상의 소외된 곳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들에게 크나큰 역경과 고난이 뒤따를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몇 안 되는 미지의 땅의 비밀을 벗기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아직 알려진 바 없는 미지의 땅을 탐험하려면 보통의 열정으로는 어림없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위험과 안락한 문명사회 사이에는 넘기 힘든 거친 바다가 놓여 있다.” (P122-123)
아마존 원주민들을 가차 없이 소멸시키는 것은 백인 침입자들의 무자비한 총격이 아니다. 심지어 대포조차도 그들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도 유럽인이 유입하는 홍역이나 감기 같은 질병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오늘날 아마존 원주민들이 그렇듯이 세계의 오지에서 원주민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이라는 이름의 흉기였다. 그중에서도 질병이 대표적이다. 밀림 속에는 존재하지 않던 현대병의 병원균이 원주민들을 한번 습격하면 그에 대한 면역력이 전무한 원주민들은 사소한 감기에조차 속수무책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밀림에서 겪는 일상적인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민간요법을 개발해왔다. 가령 그들은 대원의 피부 속에 있는 구더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전문가다운 솜씨를 보였다. 그들이 상처 부위에 식물의 즙을 바르고는 혀로 이상한 휘파람 소리를 내자 구더기가 머리를 쏙 내밀었다. 그러면 원주민이 염증 부위를 재빨리 짜내 구더기를 빼내는 식이었다.
나중에 그 말을 전해들은 런던의 한 의학자는 코웃음을 치며 그것은 주술의 일종이라고 단정했지만 포셋은 고개를 저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자연치유법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열거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사실들을 굳이 현대 의학 맹신자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원주민들은 열악한 주변 환경과 전통적인 식습관, 원시적인 의료체계 등으로 서구인들보다 평균수명이 현저히 짧다. 그렇지만 그들은 적어도 서구인들처럼 질병으로 죽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들은 대부분 그들 나름의 천수를 다했다.
그렇더라도 그것만으로 아마존 문명의 우수성을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아마존 밀림 속에서 태곳적 원시 인간의 형태로 현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질과 품성이 우수한 데도 서구인들의 눈에는 여전히 미개인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 중 일부의 조상이 밀림 속 어딘가에서 고도의 문명사회를 이루고 살았을까? 아직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고고학적 증거는 없고, 밀림 속에서 인구가 밀집해 살았다는 증거 또한 없다. 따라서 포셋이 평생의 열정을 다해 찾으려 한 ‘잃어버린 도시 Z'가 규모에서는 다른 어떤 원시 부족들보다 크다고 할지라도 문명인의 눈으로 본다면 여전히 원시 형태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포셋을 끝없이 잡아끄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현대인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문명의 수준과 한계를 재단한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우주 너머 어딘가에 지구에서 인간이 이룬 문명, 그 이상의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P154-155)
서구인들은 아마존 원주민들이 자연과 싸우며 살아가느라 매우 포악하고 완고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 밀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들은 오히려 자연과 벗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특히 그들 나름의 세련된 문화를 고수하는 막수비족은 스스로 도기를 만들 줄 알고, 하늘의 별을 보며 행성의 이름도 지어 아이들에게 가르쳤으며, 지나치리만치 춤과 음악을 좋아했다.
새벽 숲의 정적 속에서 한줄기 햇살에 밤새 울던 벌레들이 모습을 감추면 그들의 노랫소리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밀림에서 만나는 부족 가운데는 매우 야만적인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식인 습관이 있는 잔인하고 포악한 부족도 있고, 외부인을 만나면 무조건 독화살을 쏘는 부족도 있다.
하지만 막수비족 같은 원주민들은 누구보다 용감하면서도 생활의 지혜를 자자손손 이어갈 만큼 지적이었으며, 과거에 자기들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아름다운 촌락을 이루며 살았던 조상들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이 있었다. (P158)
문명인이라는 자부심을 버리지 않는 한 아마존 같은 원시 자연 형태의 오지에서는 그곳 사람들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원시적인 생활을 할지라도 거기에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고, 정서가 있다. 그런 면을 존중하기는커녕 무시하고 군림하듯 밀림으로 들어간 사람은 하나같이 심각한 분쟁의 당사자가 되었다.
물론 포셋처럼 이질적인 문명에 경외심을 가지고 밀림 속 깊은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원주민들과 어떻게든 교류하려 애쓰면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그것을 서방세계에 알리는 그들은 진정한 탐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 중에 해밀턴 라이스도 있었다. (P159-160)
포셋은 반데이란테가 보고서에서 가리키는 곳의 후보지를 하나하나 좁혀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반데이란테가 말하는 곳이 브라질 중서부 지방의 마투그로수 주이며, 그 지역을 관통하는 싱구 강 주변 밀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싱구 강은 길이가 2,100킬로미터에 달하는 아마존의 지류로, 마투그로수 고원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아마존 본류로 흘러드는 큰 강이다. 강변 곳곳이 전인미답의 밀림지대와 닿아 있고, 하류는 광활한 습지대로 이어진다. 브라질 정부는 1950년대부터 이곳을 인디언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외부인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막는 한편, 원주민들의 고유한 문화와 풍습을 보존하고 있다.
포셋이 그곳 어딘가에 반데이란테가 목격한 고대도시가 있을 것으로 본 이유는, 싱구 강 유역이 마투그로수의 중심부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그곳 밀림지대 특유의 지형적 이점 때문이었다. 밀림을 감싸고도는 거대한 강은 교통이 편리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연적 방어 기지를 이루게 한다. (P178-179)
포셋은 아마존 원주민들이 문명인들의 침범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믿는 반면, 라이스는 그들이 문명화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라이스는 리오네그로 지역에 학교를 설립했고, 기독교 선교사들로 구성된 의료원도 여럿 세웠다. 라이스는 이런 일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미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언론 인터뷰에서 엄청나게 홍보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라이스와 포셋의 다른 점이지만, 그렇더라도 포셋은 기가 죽었다. 라이스가 첨단 장비로 무장한 뒤 아마존에 갔으며, 이번 탐험에서 고대 부족들의 그림문자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포셋에게는 너무도 충격이었다. (P190)
피나게는 내가 제시한 지도 여러 장을 보며 포셋이 쿠이아바를 떠난 후 바케리족의 땅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북쪽으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거기서부터는 동쪽으로 진행하여 마침내 데드 호스 캠프에 이르렀을 텐데, 거기는 오늘날 싱구 국립공원 안쪽 깊숙한 곳에 해당한다.
“여기 있는 각종 지도를 보면 현지에 직접 가보지 않고는 결코 그릴 수 없는 사실적 묘사들이 보입니다. 따라서 포셋은 바케리족이 사는 마을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라과이아 강으로 향했고, 거기서부터 대서양 연안 지역에 이를 때까지 계속 이동했을 겁니다.”
그가 자기 말에 동조해주기를 바란다는 듯이 시가를 물고 있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웃었다.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들에서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피나게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아마존 밀림 안에서도 기후 조건이 최악인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설마하니 그런 최악의 공간에 ‘잃어버린 도시 Z' 같은 문명화된 도시가 존재했을까? 내 마음속에 일고 있는 의혹을 알고 있다는 듯이 피나게가 말했다.
“호텔방에서 아무리 열심히 지도를 들춰봐야 포셋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찌되었든 당장 바케리족 마을로 갑시다. 거기서 시작해봐야겠어요.” (P208-209)
쿠이아바를 떠난 지 한 달여가 지났을 때, 포셋 일행은 마침내 1차 목표 지점인 바케리 포스트에 도착했다. 1920년 당시 브라질 정부는 바케리족 마을에 ‘바케리 포스트’라는 국경수비대를 설치했는데, 거주민들은 그곳을 문명의 마지막 꼭짓점이라 불렀다. 거기서부터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문명의 끝자락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바케리 포스트는 진짜 원시 자연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라는 뜻도 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1925년, 마지막으로 아마존에 올 때 바케리 포스트로 향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후에 잭이 집에 보낸 편지로 알려졌다. 그만큼 바케리 포스트는 극비상항이었던 것이다.
포셋이 마투그로수의 북쪽 끝에 있는 바케리 포스트를 1차 목표 지점으로 삼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4년 전인 1921년 아마존에 왔을 때, 그는 마투그로수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애마를 권총으로 사살하고 ‘데드 호스 캠프’라 명명한 적이 있다.
포셋은 그곳을 ‘잃어버린 도시 Z’로 들어가는 요충지로 보았지만, 이미 경험했듯이 데드 호스 캠프를 통한 접근은 현재의 인력과 장비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포셋은 바케리 포스트를 통한 우회를 생각했던 것이다. 즉 데드 호스 캠프를 거쳐 ‘잃어버린 도시 Z'로 가는 게 아니라 반대편 지역에서 거슬러 내려가는 방법이다. (P223-224)
포셋의 미스터리를 소재로 한 방송과 연극도 있었고, 심지어 영화도 있었다. <포셋 대령을 찾아라>라는 시나리오는 1941년에 만들어진 빙 크로스비 주연의 영화 <잔지바르로 가는 길>에 주요 테마로 이용되었다. 유명한 아동만화 <틴틴의 모험> 시리즈 즈우 한 권에는 실종된 탐험가가 틴틴을 밀림의 독사로부터 구출한다는 이야기가 포함돼 있는데, 그가 바로 포셋이다.
또한 포셋은 많은 탐험소설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1956년, 벨기에의 찰스 헨리 데위스메는 <포셋 부자의 미스터리>라는 소설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주인공은 아마존 탐험가의 실종을 조사한다. 비록 주인공은 포셋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밝히지 못하지만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냄으로써 포셋의 꿈을 실현시킨다.
1991년에 발표된 베스트셀러 소설 <인디아나 존스와 일곱 개의 베일>에도 포셋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1981년에 발표된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레이더스> 시리즈 중 하나로, 고고학자인 주인공을 내세워 포셋의 행방을 찾아나선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포셋의 일기를 발견하는데, 내용은 이렇다.
“잭이 발목을 심하게 삐어 절룩거리고 말라리아로 인한 고열에 시달리다 3주 전에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가이드가 잭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갔다. 나는 아마존의 상류를 따라 올라가고 있다. 물이 떨어진 지 오래되어 나뭇잎에 붙어 있는 이슬을 핥아먹는 것으로 식수를 해결하고 있다. 혼자서 계속 탐험하기로 한 결정을 나는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가! 나는 바보, 멍청이, 미치광이일 뿐이다.” (P241-242)
브라이언은 어떤 응답도 받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열망하던 ‘잃어버린 도시 Z'의 흔적을 발견했다. 망원경으로 밀림을 자세히 내려다보던 브라이언은 울창한 숲 사이로 갑자기 나타난 평평한 들판에 여러 모양의 탑과 피라미드 형태의 잔해들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절반쯤은 무너져 내렸으나 분명히 피라미드와 탑의 모양을 한 그것들은 그곳에 한때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경비행기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브라이언은 깨달았다. 그것들은 단지 오랜 세월 아마존 일대에서 일어난 토양 침식작용으로 생긴 것으로, 일종의 착시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브라이언은 엉킨 실타래의 매듭을 찾은 느낌이었다. 저것들이 수백 년 전 처음으로 아마존을 찾은 유럽의 탐험가들의 눈엔 필경 문명의 흔적으로 보였을 테고, 그들이 바다를 건너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이 목격한 것들을 과장해서 말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겨 후대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하기도 했다.
포셋은 ‘잃어버린 도시 Z'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오랫동안 유럽의 모든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증빙 자료들을 섭렵했다. 1924년에 작성된 포셋의 문서를 보면 ’잃어버린 도시 Z'를 언급하면서, 그곳이 ‘에덴동산을 닮은 밀림 속의 아틀란티스’라고 적었다. 심지어 그는 ‘잃어버린 도시 Z'가 인류 문명의 발상지일지 모른다는 글도 남겼다. 포셋의 그런 믿음은 관심을 가질수록 그리고 관련 자료들을 찾을수록 점차 신앙으로 굳어갔을 것이다.
그렇다. ‘잃어버린 도시 Z'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존 밀림 속에 그러한 것이 존재했을 거라는 사실은 인류학이나 고고학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아버지의 믿음이 단지 허상일 뿐이었음으로 깨달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P294-295)
남미 대륙에 잉카와 마야, 아즈텍 문명이 꽃피던 시절, 이곳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향유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간혹 각 지역 인디오들 간에 영역 다툼이 있었을지라도 토착민들은 아마존을 젖줄로 하고 안데스 산맥을 지붕으로 삼으며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이들의 평화를 단번에 깨뜨린 것은 13세기부터 이어진 스페인 침략자들의 난입이었다. 스페인 군대는 비록 숫자는 적었을지라도 인디오들이 들고 있는 무기와는 차원이 다른 무기를 가지고 무자비하게 그들을 짓밟았다. 그리하여 멕시코에서 아즈텍 문명과 마야 문명이 삽시간에 잿더미가 된 데 이어 페루에서 잉카 문명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13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남미 대륙 곳곳에서 스페인 군대가 무자비한 침탈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사실 그들이 들고 있는 총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 대륙은 천연두와 흑사병 같은 전염병이 휩쓸고 있었는데, 이 같은 질병이 그 어떤 것보다 더 강력한 살상무기가 되어 무방비 상태의 원주민들을 습격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아마존은 어떠했을까? 헤켄버그는 1,000년 전 이곳에 고도의 문명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소멸했는지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스페인 군대의 남미 대륙 진출과는 다소 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군대를 비롯한 유럽의 침략자들이 남미 대륙에 오기 시작한 것은 대략 13세기부터로, 그 시절을 기록한 역사책 어디에도 아마존 일대를 대대적으로 침략했다는 내용은 없다. 그렇다는 것은, 이곳에 존재했던 문명은 범람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로 하루 아침에 소멸되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잉카나 마야 문명에서 볼 수 있듯이, 이곳에 살던 사람들 역시 대단한 미적 감각을 갖고 있었다. 아름다운 도로, 잘 조성된 드넓은 광장, 멋지게 축성된 다리들이 도시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념물은 피라미드가 아니었다. 기념물 대부분이 수평적 형태였기 때문에 포셋을 포함한 누구도 이곳에서 피라미드나 거대한 왕궁 같은 건축물은 찾을 수 없었다. (P31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