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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년

by 노용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는 2019년 개봉한 미국, 영국의 범죄 영화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감독하고 각본을 썼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 후반 뉴 할리우드 시절 할리우드로, 맨슨 패밀리를 실화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이 영화의 앙상블 캐스트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다코타 패닝, 제임스 마즈든, 티머시 올리펀트, 에밀 허시, 데이미언 루이스, 클리프턴 콜린스 주니어, 버트 레이놀즈와 알 파치노가 출연한다. 제72회 칸 영화제(2019)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이다. 이 영화는 소니 픽처스 릴리징 배급으로 2019년 7월 26일 개봉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브래드 피트)과 미술상(바바라 링외 1명)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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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이 말한다. “그럴수록 이탈리아에서는 맥퀸한테 다 목을 매요. 맥퀸은 늘 거절하고, 말론 브란도도 늘 거절하고, 워렌 비티도 늘 거절하고, 그래도 이탈리아에서는 계속 시도하죠. 그 배우들을 데려올 수 없으면, 타협하죠.”

릭이 되묻는다. “타협해요?”

마빈이 더 설명한다. “말론 브란도를 원할 때, 버트 레이놀즈를 써요. 워렌 비티를 원하면 조지 해밀턴을 쓰고.”

마빈이 자신의 배우 경력에 사망 선고를 내리는 동안 릭의 눈 안쪽에서 눈물이 차오른다. 그 욱신거리고 따가운 자극이 느껴진다.

마빈은 릭의 괴로움을 모르는 채 말을 끝맺는다. “이탈리아에서 릭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이탈리아에서 릭을 원할 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릭을 원하는 이유는, 스티브 맥퀸을 원하지만 맥퀸을 데려올 수 없기 때문이에요. 맥퀸을 데려올 수 없다고 깨달으면 자기들이 데려올 수 있는 맥퀸을 원하게 되겠죠. 그게 바로 릭이에요.”

마빈 슈워즈의 잔인하도록 솔직한 말에 릭 달튼은 뺨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것도 흠뻑 젖은 손으로 있는 힘껏 갈긴 손바닥에 맞은 것 같다.

어쨌든 마빈의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이 좋기만 하다. 릭 달튼이 장편 극영화 주인공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였다면 마빈 슈워즈를 아예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만나자고 먼저 청한 사람은 릭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악역을 연기하기보다 장편 극영화의 주인공으로 배우 경력을 더 쌓고 싶은 사람은 릭이다. 그리고 릭에게 현실을 알리고, 릭은 전혀 모르지만 마빈은 전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영화계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마빈의 역할이다. 이탈리아 영화에 미국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게 하는 에이전시로서, 릭 달튼을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무비 스타로 만드는 것은 마빈에게 아주 좋은 커리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마빈이 릭 달튼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 당황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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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를 볼 때면, 배우들에게 할리우드 영화에 없는 리얼리티가 보였다. 정말로 확실히 클리프가 좋아하는 배우는 미후네 토시로였다. 미후네의 얼굴에 집중하느라 자막을 놓치곤 했다. 클리프가 파고든 또 다른 외국 배우로는 장 폴 벨몽도가 있다. <네멋대로 해라>에서 벨몽도를 봤을 때 생각했다. ‘원숭이처럼 생겼네. 내 마음에 드는 원숭이.’

클리프가 좋아한 폴 뉴먼처럼 벨몽도에게도 스타 배우의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폴 뉴먼은 <허드> 같은 영화에서 나쁜 놈을 연기할 때에도 여전히 보기 좋은 나쁜 놈이었다. 그러나 <네 멋대로 해라>의 벨몽도는 단순히 섹시한 멍청이가 아니었다. 소인배, 좀도둑, 쓰레기였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이 인물은 감상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이런 쓰레기들을 늘 감상적으로 그린다. 할리우드의 거짓 중에 이게 제일 심하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탐욕스러운 잡놈들 핏속에는 감정 같은 게 아예 없다.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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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짐보>에는 클리프에게 말을 거는 무엇이 있었다. 미후네도 아니고 스토리도 아니었다. 클리프는 그 다른 무엇이 어쩌면 구로사와 감독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로 본 구로사와 영화는, 앞의 두 편이 어쩌다 나온 걸작이 아니라는 증명이었다. <거미집의 성>에 클리프는 완전히 나자빠졌다. 원작이 셰익스피어 <맥베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조금 걱정했다. 클리프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감동받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쯤 클리프는 영화를 보면 대개 조금 심드렁했다. 흥분을 원하면 자동차로 트랙을 돌거나 지저분한 모터사이클을 타고 모터크로스 코스를 달렸다. 그러나 <거미집의 성>에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무수한 화살로 뒤덮인 갑옷을 입고 거친 흑백 영상에 담긴 미후네의 모습을 보았을 때, ‘클리프 부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팬이다’라고 확고히 정해졌다. (P48-49)


트뤼포의 영화도 두 편 보았지만, 반응할 수 없었다. 영화들이 지루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지루한 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트뤼포 동시 상영에서 본 두 편의 영화는 클리프를 전혀 사로잡지 못했다. 처음 본 <400번의 구타>에는 차게 식었다. 어린애가 왜 저러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클리프는 그 영화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지만, 영화 얘기를 꺼냈다면 우선 아이가 발자크에게 기도하는 장면을 말했을 것이다. 프랑스 애들은 그러나? 그게 일반적이라는 뜻이야, 아니면 걔가 좀 이상한 애라는 뜻이야? 미국 어린애가 벽에 윌리 메이스(미국 프로 야구 선수) 사진을 붙이는 거랑 같은 의미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단순한 얘기는 아닌 거 같아. 아니, 이상하잖아. 열 살짜리 애가 발자크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그 어린애가 트뤼포 감독 자신의 모습이라고 하면, 트뤼포는 자기가 얼마나 잘났는지 관객한테 자랑하는 거지. 그런데 솔직히, 화면에 나오는 그 아이는 전혀 잘나 보이지 않아. 이런 애를 주인공으로 무슨 영화를 만들어?

<쥴과 짐>의 매가리 없는 멍청이들도 짜증스러웠다. 클리프는 <쥴과 짐>에 빠져들 수 없었는데, 그 영화의 여자 주인공에 빠져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영화를 좋아할 수 없는, 그런 영화였다. 클리프는 그 여자를 그냥 물에 빠져 죽게 두었으면 영화가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P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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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 로‘에 세 번째 시즌(1961~1962년 시즌)을 제작할 때였다. 릭의 대역으로 클리프 부스가 왔다. 처음에 릭은 클리프가 마땅찮았는데, 정말 중요한 이유 때문이었다. 클리프가 스턴트맨으로는 너무 잘생긴 것이다. ’바운티 로‘는 릭의 잔치였다. 릭의 의상을 입었을 때 릭보다 잘생긴 스턴트맨이 뻐기며 돌아다닌다? 릭이 바라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릭의 귀에 클리프가 제2차세계대전에서 세운 공적이 들려왔다. 클리프는 그저 단순한 전쟁 영웅이 아니었다. 제2차세계대전 최고의 전쟁 영웅이었다. 무공 훈장을 받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훈장은 시칠리아에서 이탈리아군을 무찌른 공로로 받았다. 보기 드문 영광인 두 번째 훈장은 여러 이유로 수여됐는데, 가장 큰 이유는 히로시마에 폭탄을 떨어뜨린 미군들을 빼고, 적인 일본군을 클리프 부스 병장만큼 많이 죽인 미군은 없기 때문이다. (P64-65)


웬드코스가 말했다. “이봐, 솔직히, 루이스가 나치놈들을 죽이면서도 표정이 안 바뀐 건, 루이스가 용감했기 때문이 아니야. 자네가 연기를 못해서 그런 거지.”

두 사람 다 전화선을 사이에 두고 웃었다.

웬드코스가 말한 사건은 이렇다. 릭이 새신부와 함께 로마에서 베네딕트 캐니언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히피 세 명(여자 두명과 남자 한 명)이 집에 침입해 식칼과 권총을 휘두르며 위협했다. 릭과 클리프는 침입자들을 재빨리 해치웠다. 인정사정없이 싸워서 세 명 모두 죽였다. 클리프는 거실에서 릭의 새신부 프란체스카를 보호하며 남자와 여자 한 명의 얼굴을 짓뭉갰다. 습격 당시 수영장 튜브 의자에 있던 릭은 히피 여자가 쏜 총에 맞을 뻔했다. 릭은 나중에 경찰에 말했다. “그 빌어먹을 히피가 내 머리를 완전히 박살낼 뻔했어요!”

그리고 웬디코스가 감독한 영화 <맥클러스키의 열네 주먹>의 장면 그대로, 릭은 맥클러스키 촬영이 끝나고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화염 방사기로 침입자를 불살랐다. (릭이 나중에 이웃에게 말했다. “그 빌어먹을 히피를 내가 통구이로 만들었죠.”)

총칼로 무장한 히피들이 어떤 목적으로 릭의 집에 침입했는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어쨌든 위험하고 사악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클리프가 침입한 남자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묻자, 남자는 악마를 들먹이며 말했다. “나는 악마다. 악마가 해야 할 일을 하러 왔다.”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히피 침입자들이 약에 취해 악마 의식을 치르러 온 것으로 추리했다. 확실한 것은 그 히피들이 분명 집을 잘못 골랐다는 점이다. (P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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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릭은 이 이야기의 교훈으로 넘어간다. “그러자 존스가 그러더라. ‘그래, 그래도 돼. 때려눕혀도 돼. 조감독이 잘못했네. 그런데 조감독을 때려눕히기 전에 자네 배우 조합 카드를 꺼내고 성냥을 그어서 불태워. 조감독을 때려눕히는 건, 배우를 그만두겠다는 뜻이니까.”

클리프는 이전에 보였던 반응을 또 보인다. “알았어, 알았어. 좆 같은 놈이 갈구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릭이 말한다. “내 말은, 젠장, 주인공 배우가 말도 안 되는 걸 할 수 있다고 우길 때마다 누가 걔네를 때리면 촬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야. 로버트 콘래드나 대런 맥개빈도 돌봐주는 사람 없으면 딱 일주일도 제대로 일 못 할걸.” 릭이 계속 설명한다. “가토 역을 했던 그 난쟁이 놈, 그놈도 빌어먹을 배우야! 배우라는 족속이 남이 써준 대사 읊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널리고 널렸고!”

릭은 뭘 알고 말하는 배우들을 꼽는다. “전투에서 적군을 죽인 이야기를 오디 머피랑 나눈다? 그건 되지, 짐 브라운이랑 미식축구 터치다운 얘기를 나눈다? 그것도 되지. 소냐 헤니랑 스케이트 얘기를 한다? 그것도 돼. 에스터 윌리엄스랑 수영 이야기? 해. 이거 빼고 나머지는? 다 헛소리야. 아, 또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전쟁 영웅 스턴트맨이지!” (오디 머피, 짐 브라운, 소냐 헤니, 에스터 윌리엄스는 각각 영화배우가 되기 전에 전쟁 영웅, 미식축구 선수, 스케이트 선수, 수영 선수로 활약했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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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맨슨이 낡은 ‘호스티스 트윙키 컨티넨털 베이커리’ 트럭을 타고 테리 멜처의 집을 향해 구불구불한 시엘로 드라이브를 지나 간다. 찰리는 자신이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찰리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왔을 때에는 목적이 있었다. 작곡한 노래를 팔고, 직접 불러서 녹음하고, 음반사와 계약을 따고, 로큰롤 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취해서 멍한 아이들의 영적 지도자, 가출한 여자애들로 이루어진 하렘의 지도자가 되는 건 스타가 되려는 과정에서 그저 곁다리로 벌인 일일 뿐이다. 처음에는 잘 먹혔다. 사실, 처음에는, 정말 잘 먹혔다. 그 여자애들 덕분에 비치보이스의 드러머인 진짜 록 스타 데니스 윌슨과 친분을 쌓았다. 이어서 윌슨의 친구 그렉 재콥슨과 도리스 데이의 아들 테리 멜처도 알게 됐다. (P189)


찰리는 자신의 명성을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명성을 바랐다. 그러니 음악은 세상에 찰리를 알리는 출발점일 뿐이다. 찰리를 통해 역사하는 신의 힘으로, 예수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를 썼듯, 찰리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을 작곡할 것이다. 데니스 윌슨처럼 플래티넘 앨범 액자를 벽에 걸기 위해서가 아니다. 데니스 윌슨처럼 스포츠카 여러 대를 갖고 싶어서가 아니다. ‘크로우대디’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지 라이더> 사운드트랙에 노래를 수록하려는 게 아니다. KHJ 방송국의 미친 홍보용 콘테스트에 리얼 돈스틸과 함께 출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다.

테리 멜처에게 들려줄 연주를 준비하는 동안 찰리 맨슨은 초조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맨슨 패밀리는 찰리 맨슨의 동기와 욕망이 덜 순수할지도 모른다고 얼핏 느꼈다.

모든 일이 잘되기를 모두가 바랐다. 그러나 그 일에 모든 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목장에 찰리 뻬고 아무도 없었따.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 너무 애쓰지 마.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어.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신은 웃지.’ 이것은 찰리의 가르침이었다. (P19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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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클리프 부스가 1966년에 자기 아내를 죽였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스턴트맨 사회 안에서 클리프 부스의 유명한 점 목록에서 전쟁 영웅이라는 사실은 한 단계 내려와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스턴트맨 사회에서 클리프 부스의 유명한 점 목록의 세 번째 칸은 ‘링거’로서의 재능이 차지했다.

클리프 부스는 1960년대 영화계에서 링거로서는 최고였다.

링거가 뭐냐고? 사전을 찾아보지 마라. 속어니까.

가령, 자신이 스턴트맨 감독인데, 소속 스턴트맨들한테 항상 고함을 지르는 정말 못된 감독과 일하고 있다고 치자. 혹은 늘 스턴트맨만 탓하고 자기 실수를 스턴트맨에게 뒤집어씌우는 돌대가리 배우가 있다고 치자. 스턴트맨 감독이나 그 팀원은 감독의 대가리를 내리칠 수도, 배우의 등짝을 갈길 수도 없다.

그래도 스턴트맨 감독은 고정된 팀원이 아닌 스턴트맨을 당일치기로 고용할 수 있다. 이런 스턴트맨이 ‘링거’다.

링거는 스턴트맨 팀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즉, 쓰레기한테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 스태프들 전원이 다 보는 앞에서 하면 더 좋다. (P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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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가 세트장에서 벌인 싸움 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은, 가장 유명한 무술가인 이소룡과 나눈 ‘우정의 대결’이었다.

클리프의 경력에서 ‘이소룡 사건’으로 알려지게 될 이 사건이 벌어진 당시에는 이소룡도 아직 슈퍼스타나 전설적 인물이 아니었다. ‘배트맨’ 시리즈의 인기에 편승해서 돈만 노린 싸구려 텔레비전 드라마 ‘그린 호넷’에서 주인공 그린 호넷의 조수 가토 역을 연기하는 배우였을 뿐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이소룡은 드라마 배역보다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의 ‘가라테 코치’로 훨씬 유명했다. 이소룡 스스로가 자신을 ‘가라테 코치’라 부른 건 아니고, 할리우드에서 이소룡을 그렇게 불렀다. 요즘 유명인들이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운동을 하듯, 스티브 맥퀸과 제임스 코번, 로만 폴란스키, 제이 세브링, 스털링 실펀트 등등 모두가 이소룡을 집으로 불러서 무술을 배웠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무술인이 로만 폴란스키와 제이 세브링, 스털링 실리펀트에게 발차기를 가르치며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마치 무하마드 알 리가 제임스 가너와 톰 스모더스, 빌 코스비에게 권투를 가르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고 할까. 그렇지만 이소룡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찰리 맨슨처럼, 영혼의 ‘사부’가 되는 것은 그의 보조 수단이었다. 찰리 맨슨이 록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이소룡은 영화 스타가 되고 싶었다. 찰리 맨슨에게 데니스 윌슨이 있었다면 이소룡에게는 제임스 코번과 스털링 실리펀트가 있었다. 찰리 맨슨에게 테리 멜처가 있었다면 이소룡에게는 스티브 맥퀸과 로만 폴란스키가 있었다. (P24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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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라도 샤론은 영화를 ‘영화’로 생각하지 않았다. ‘예술’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영화는 예술이 아니었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토마스 하디의 책과 달랐다. 영화는 그저 즐길 거리였다. 오락이었다. 그러나 폴란스키와 함께 지내며 영화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설득되었다. 폴란스키의 <로즈메리의 아기>는 토마스 하디의 “테스”가 예술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로즈메리의 아기>는 예술이다. 종류가 다를 뿐이다. 샤론은 <로즈메리의 아기> 원작 소설도 읽고, 폴란스키의 영화도 보았다. 폴란스키의 영화가 훨씬 예술적이다. 샤론은 위대한 작가와 동등한 능력으로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들도 있다는 사실을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다. 모든 감독이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감독이 그런 것도 아니다. 남편 빼고, 샤론이 같이 작업한 감독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몇몇 그런 감독이 있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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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는 술집 안을 쭉 지나가며 길디드릴리를 자세히 보았다. 소를 팔아 번 돈이 바탕이 된 마을에 걸맞게 화려한 술집이었다. 또 이제부터 어떤 계획에 맞춰 행동해야 할지 심사숙고했다. 아니, 적어도 계획이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오랜 친구를 죽이면 큰 재산의 3분의 1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당연히 자니에게는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을 위한 계획이어야 하나? 글쎄, 자니는 아직 정확히 정하지 못했다. 자니는 칼렙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머독의 각본에 도움이 되려면 칼렙에게 같이 일하겠다고 말하고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현명한 작전이었다. 다만 이 좋은 계획이 잘 먹히려면 조건이 필요했다. 칼렙이 파고들어 자니와 머독의 관계를 알아내면 안 된다. 칼렙이 사실을 알아내는 날이 자니의 장례식 날이다. 칼렙을 막고 아버지의 재산을 얻는 게 계획이라면,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그러나 자니는 열두 살 때 이후로, 또 직접 땅을 파서 어머니를 묻은 뒤로, 또 하나의 계획을 품고 있었다. 머독 랜서가 자신과 엄마한테 한 짓에 복수하리라. 그리고 솔직히 그런 점에서 보자면, 칼렙은 자니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하고 있었다. 머독은 벼랑 끝에 몰렸다. 절박했다.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이랬다. 자니가 더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인가 피인가? 아버지의 목장인가 어머니의 복수인가? 안정인가 만족인가?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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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라 조가 커다랗고 지저분한 발을 캐딜락 사물함에 얹고, 더러운 발바닥으로 앞창의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를 문지름 묻는다. “배우였어요?”

“아뇨, 스턴트맨입니다.”

데브라 조가 들떠서 말한다. “스턴트맨? 훨씬 좋다!”

클리프가 묻는다. “정말요? 왜 훨씬 좋아요?”

데브라 조는 그럴듯하게 말한다. “배우들은 가짜예요. 다른 사람이 쓴 대사만 말해요. 멍청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사람을 죽이는 척해요. 베트남에서 매일 진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클리프는 생각한다.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데브라 조가 말을 잇는다. “스턴트맨? 스턴트맨들은 달라요. 빌딩에서 뛰어내리잖아요. 몸에 불을 지르고, 두려움을 껴안아요.” 그리고 찰리에게서 배운 철학으로 넘어간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방법은 두려움을 껴안는 것뿐이에요. 두려움을 정복하면 무엇에도 정복되지 않는 사람이 돼요.” 데브라 조는 예쁜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무슨 개소리야.’ 클리프는 생각하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할리우드 프리웨이 북쪽 진입로로 들어선다. (P35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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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이 다시 알린다. “감독님, 아까 말씀드렸지만 저는 셰익스피어를 별로 안 읽었어요.”

워너메이커는 손을 내저으며 딱 부러지게 말한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릭은 왕좌만 장악하면 돼요.”

릭이 되묻는다. “왕자를 장악해요?”

워너메이커가 선언하듯 말한다. “덴마크를 지배해야 합니다.”

릭이 생각한다. ‘햄릿이 덴마크 사람인가 보네.’

워너메이커는 덴마크 왕자 은유를 마무리한다. “폭력적으로 지배하는 겁니다. 잔인하게 지배하는 겁니다. 카우보이 사드처럼 지배하는 겁니다. 어쨌든 지배하는 겁니다.”

릭은 생각한다. ‘사드? 그건 누구야? 햄릿에 나오는 인물인가?’

워너메이커는 ‘연기를 지도하는 감독’ 연기를 계속한다. “랜서 집안 남자들한테 미라벨라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죠.”

릭이 끼어든다. “예쁜 아이죠.”

워너메이커가 말한다. “순수의 화신이죠. 거칠게 살아온 거친 남자들은 이 소녀를 숭배합니다. 그런데 이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벌어졌죠. 자기들 인생에서 제일 빛나고 값진 보석이 파렴치한 악당 디코토한테 잡혀갔어요! 이제 릭은 그 남자들한테 의심을 넘어서 확신을 줘야 합니다. 릭의 장단에 맞춰 춤추지 않으면 미라벨라의 목숨은.....” 워너메이커가 손가락을 탁 튕기고, 릭도 따라서 손가락을 탁 튕긴다. “..... 끝장난다고.” 감독은 배우에게 묻는다. “이해했죠?”

배우가 대답한다. “이해했습니다!” (P369-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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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은 빈 술잔을 들어서 제임스에게 건배한다. “이런, 완전히 행운의 사나이네. 그런 기회를 잡은 걸 고맙게 여겨.”

제임스는 약간 날카로워진다. “행운을 얻은 게 아니라, 와야 할 일이 다행스럽게 온 거죠. 그러니까 그냥 지나가다가 횡재한 건 아니라는 말이에요. 빌어먹을 ‘오지 앤드 해리엇’에서 ‘안녕, 리키? 햄버거 먹을래?’한느 대사만 하면서 7년이나 썩었다고요.”

릭이 자신의 말을 더 다듬는다. “이런, 이런, 이런, 분에 넘치는 행운을 얻었다는 말은 아니었어. 비꼰 것도 아니고, 오늘 촬영하면서 봤는데, 자네는 정말 확실히 주인공을 맡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내 말은 그냥. 나도 자네 같았다는 거야. ‘웰스 파고 이야기’에서 한 회 출연했을 때 할리우드가 나 때문에 들썩였지. 그다음에 곧장 ‘바운티 로’로 이어졌어. 어쨌든 내가 말하려는 건, 지금이 바로 자네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는 거야. 이 순간을 자네는 나보다 고맙게 여기면 좋겠어.”

제임스가 묻는다. “선배는 그 순간을 감사히 여기지 않았어요?”

릭이 확언한다. “여기긴 했지.” 그리고 릭은 빈 칵테일 잔으로 제임스의 어깨를 톡 치며 말한다. “그런데 지금만큼 감사히 여기지는 않았어.”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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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우 사이에 침묵이 잠시 흐른다. 그리고 더 젊은 배우가 말한다. “와, 배우라는 직업은 굉장하지 않아요?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아요. 그렇죠?”

10년 만에 처음으로 릭을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깨닫는다. 미커, 브론슨, 코번, 모로, 맥거빈, 로버트 블레이크, 글렌 포드, 에드워드 G, 로빈슨을 비롯한 그동안 함께 작업한 멋진 배우들 모두, 키스한 여배우들 모두, 겪은 사건들 모두, 함께 일한 재미있는 사람들 모두, 가 보았던 장소 모두, 연기해야 했던 재미있는 스토리 모두, 신문과 잡지에서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본 순간 모두, 멋진 호텔 방들 모두, 자신을 꾸며 준 분장 담당과 의상 담당 들 모두, 한번도 읽지 않은 팬레터 모두, 준법 정신 투철한 시민으로 할리우드를 운전하며 다닌 순간 모두, 릭은 자기 소유인 멋진 집을 둘러본다. 어린아이였을 때에는 공짜로 하던 일, 카우보이인 척하는 것으로 돈을 벌다니.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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