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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의 사토리(Satori)란?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352

by 노용헌

바르트(Barthes)는 푼크툼(punctum)을 ‘고결한 제스처’, ‘득도(得道, satori) 공허의 통과’라고 설명한다. 불교는 언어와 개념을 초월한 깨달음(悟り, satori)을 추구하고, 기독교는 진리를 계시(Revelation)의 형태로 제시한다. 노자는 도덕경 52장에서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한다. ‘늘상 비추고 있는 상태’ 즉, 습상(習常)을 실천하라고 한다. 붓다(Buddha)는 이를 ‘깨달은 자’로 말한다. 변한 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작은 미묘한 변화들을 응시하고, 그 속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 그 변화 속에서 변화의 사건들을 ‘통찰’하는 것. 사토리는 그 과정일 것이다. 공허함 속에서도, 인생 무상함에서도 초월하는 무언가. 그것이 찌르는 듯한 아픔, 사진의 푼크툼이다. 말은 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것. 그것이 푼크툼이다.


사진의 말은 아마도 단문(短文)이 아닐까 싶다. 서사의 과정이 장문(長文)이 아니라, 하이쿠(Haiku)의 짧은 시와 닮았다. 그것의 수사학적 확장 가능성은 짧은 단문에서 오는 울림이다. 일본 하이쿠(俳句)에서 말하는 것은 와비(侘び)와 사비(さび)의 개념이다. ‘와비’는 본래 “모자람”이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말이다. 초기에는 궁핍하거나 외로운 상태를 뜻했으나, 선종(禅宗)의 영향과 함께 점차 의도적인 소박함과 결핍 속의 아름다움, 즉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정적이고 조용한 기쁨”이라는 미학적 개념이고, ‘사비’는 본래 “녹슬다”는 뜻의 동사 사비루(錆びる, sabiru)에서 유래하였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낡아지고 퇴색해 가는 사물의 상태를 긍정하는 정서이다. 즉, 시간과 함께 쓸쓸해지고 고요해지는 세계 속에서 발견되는 깊은 아름다움이다.


“うしろすがたのしぐれてゆくか”

“뒷모습, 겨울비 속으로 사라져 간다.”

타네다 산토카(種田山頭火)의 하이쿠이다. 겨울비 속으로 사라져 가는 뒷모습에서 덧없는 인간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산토카의 삼락(三樂)은 걷기, 술 그리고 시였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의 시이다.


우리는 꿈을 꾼다. 마치 꿈속에서 영화를 본다. 잠에서 깨면 그 여운이 남는다. 그 여운은 영화의 스토리가 다 기억되는 것이 아니고, 한 장의 사진으로 기억에 남는다. 각인된 기억, 이미지 한 장의 사진은 나의 감정적 의식이 일치된 무언가이다. 사진은 때로는 눈을 감고 본 이미지의 출현(出現)이다. 카프카(Kafka)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물을 우리의 머릿속에서 몰아내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내 이야기는 나의 눈을 감는 방식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눈을 뜨고 촬영하지만, 사진을 감상할 때는 눈을 감고 감상해보자. 내 눈 앞에 보여진 한 장의 사진 이미지를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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