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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

영화 <나를 찾아줘> 2014년

by 노용헌

<나를 찾아줘>(Gone Girl)는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한 2014년 미국의 범죄 스릴러 영화이다. 2012년에 출간 된 길리언 플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벤 애플렉, 로저먼드 파이크, 닐 패트릭 해리스, 타일러 페리, 캐리 쿤이 출연한다. 결혼 5주년을 앞두고 사라진 아내를 찾아나선 남편이 전 국민이 의심하는 용의자로 몰리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2014년 9월 26일 뉴욕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첫 공개되었다. 10월 3일 미국 전역에 개봉하였으며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로자먼드의 연기는 비평가들에 큰 호평을 받아, 그는 미국 아카데미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 골든 글로브상과 미국 배우 조합상(SAG) 여우조연상에 후보 지명되었다. 핀처는 골든 글로브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 크리틱스 초이스 영화상 감독상에 후보 지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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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떠올린다. 먼저 그 생김새를 생각한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뒤통수였다. 어딘가 모르게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각도의 뒤통수. 단단한 옥수수 알 혹은 강바닥의 화석 같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품위 있게 생긴 머리’라고 말했을 법한 머리. 누구나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두개골이다.

나는 어디에 있든 아내의 머리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머릿속을 생각한다. 그녀의 생각. 그녀의 뇌. 그 속의 수많은 신경 고리. 그 고리 내부를 광란의 속도로 오가는 지네 같은 생각. 마치 아이처럼, 나는 그녀의 두개골을 열고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그녀의 생각들을 잡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에이미. 무슨 생각하고 있어? 내가 우리의 결혼 생활 중에 제일 자주 했던 질문이다. (P9)


아내는 게임을 좋아했다. 대부분은 신경전이지만 재미를 위한 진짜 게임도 좋아했다. 아내는 결혼기념일마다 공들여 보물찾기를 준비했다. 내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 선물을 받을 때까지, 각각의 단서는 다음 단서가 숨겨진 장소로 나를 안내했다. 보물찾기는 장인어른이 결혼기념일마다 장모님을 위해 준비하던 이벤트였다. 내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장인어른의 이벤트에서 힌트를 얻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에이미의 집이 아닌 우리 집에서 성장했고, 내가 기억하기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준 마지막 선물은 포장도 안 된 채 부엌 조리대 위에 놓여 있던 다리미였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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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둘 다 볼의 같은 부위가 빨개졌다. 이것은 고가 내게 수류탄처럼 던지기를 즐기는, 누이답지 않은 지저분한 농담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우리가 같이 자는 사이라는 소문이 늘 떠돌았다. 쌍둥이의 근친상간. 우리는 지나치게 가까웠다. 우리 둘만 아는 농담과 파티장 구석에서 속삭이던 이야기. 해명할 필요도 없는 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고가 아니니까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하겠다. 나와 내 여동생은 한 번도 같이 잔 적이 없다. 같이 자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 우리는 서로를 무척 좋아하는 것뿐이다.

이제 고는 거시기로 아내를 때리는 팬터마임을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에이미와 고가 절대 친해질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둘은 각자의 영역이 지나치게 뚜렷했다. 고는 내 인생의 알파걸 역할을, 에이미는 모든 사람들의 알파걸 역할을 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도시에 --한 번은 뉴욕, 현재는 이곳-- 살면서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마치 타이밍을 잘 맞추는 배우처럼 내 인생에 휙 들어왔다가 휙 나갔다. 한 사람이 문 밖으로 나갈 때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식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방 안에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고, 둘 다 이런 상황이 조금 곤혹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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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안에 있어?”

곧장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지만, 에이미는 없었다. 펼쳐진 다리미판 위에 다리미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아직 다리지 않은 옷 한 벌이 있었다.

“에이미!”

나는 다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칼은 여전히 열린 현관문 근처에서 양손을 엉덩이에 얹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거실 쪽으로 몸을 틀다가 순간 멈춰 섰다. 카펫에는 유리 파편이 널려 반짝거렸고 커피 테이블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 옆에 협탁들이 쓰러져 있었고 카드 마술을 할 때처럼 바닥 여기저기에 책이 떨어져 있었다. 무거운 앤티크풍 오토만까지 뒤집힌 채 마치 죽은 생물처럼 네 개의 작은 다리를 공중으로 쳐드고 있었다. 이 난장판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가위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에이미!”

나는 큰 소리로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뛰기 시작했다. 주전자가 끓고 있는 부엌을 지나 지하의 텅 빈 손님용 객실로 내려갔다가,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마당을 가로질러 강으로 이어진 좁다란 보트 갑판으로 달려갔다. 나는 우리의 유람용 보트 안을 들여다보며 아내가 있는지 확인했다. 선창에 묶인 채 흔들리는 보트 안에서 아내를 찾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햇빛에 얼굴을 내놓은 채 눈을 감고 있었고 나는 강물에 반사된 눈부신 빛을, 그녀의 아름답고 고요한 얼굴을 엿보고 있었다. 순간 눈을 뜬 아내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집으로 돌아갔다.

“에이미!”

그녀는 강가에 없었다. 집에도 없었다. 에이미는 그곳에 없었다.

에이미는 사라졌다. (P41)


“그냥 의례적인 형식입니다.” 길핀이 말을 이었다. “모든 조치를 하려고 노력하는 거지요. 손도 살펴보고, DNA도 채취하고, 그리고 선생님 차도 좀 살펴봤으면 하는데.....”

“그러세요. 아까도 말했듯이, 마음대로 하십시오.”

“고마워요. 닉,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끔 사람들은 그런 의심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골탕 먹이거든요.”

나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나의 어린 시절을 무언의 비난으로 가득 채웠다. 그는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화를 낼 건수를 찾는 남자들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고는 부당한 트집은 절대 잡히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사람으로 변했고, 나는 권위에 자동적으로 아첨하는 놈이 되어버렸다. 엄마, 아빠, 선생님들, 네, 당신의 일이 편해진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끊임없이 호감을 주려고 애썼다. “넌 사람들이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게 할 수만 있다면 거짓말, 사기, 절도는 물론이고 살인까지 저지를 거야.” 언젠가 고가 말했다. 우리는 고가 살던 옛 뉴욕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요나 시멜에서 크니쉬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내가 그때를 이렇게나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라-- 나는 식욕이 싹 달아났다. 고의 말은 그때까지 내가 한 번도 깨닫지 못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고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을 절대 잊지 못할 거라고. 이 순간은 영원히 나의 뇌리에 박히게 될 거라고. (P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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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부인께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죠?”

그건 나 역시 궁금했다. 한때 에이미는 늘 모든 것을 조금씩 하는 여자였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프랑스 요리를 집중 탐구하면서 신들린 칼 솜씨와 뵈프 부르기뇽을 선보였다. 에이미의 서른네 번째 생일날 함께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을 때는 전음(顫音)을 내며 스페인어로 대화를 해 나를 놀라게 했다. 몇 달 동안 몰래 배운 것이었다. 아내는명석한 두뇌와 탐욕스러운 호기심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경쟁은 그녀의 집착을 부채질했다. 그녀는 남자들을 압도하고 여자들의 질투를 받아야 했다. 그녀는 언제나 ‘어메이징 에이미’여야 했다.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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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군요. 지금 상황이 납치입니까, 실종입니까?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TV 쇼에서 내가 지금 출연 중인 상황과 똑같은 내용에 관한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첫 48시간동안 아무런 진척이 없을 경우 그 사건은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첫 48시간이 핵심이다. “제 말은, 아내가 사라졌다고요. 제 아내가 사라졌단 말입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처음으로, 응당 그래야 하는 방식으로, 겁에 질리고 화가 나서 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끝도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비꼬고 화를 내고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평생을 분투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은 아예 내색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내가 불쾌한 놈처럼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내 배 속은 미끌미끌한 뱀장어로 가득 차 있지만, 내가 하는 말이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을 테니까. 언제나 이것이 문제였다.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아예 통제가 되지 않는 것. (P77)


“우린 한마디로 파산했다.” 아빠가 말한다. “우리 집, 그리고 이 집, 모두 차압됐어.”

나는 엄마와 아빠가 우리를 위해 이 집을 완전히 산 거라고 생각 --추측했다. 주택 비용을 상환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갑자기 창피했다. 나는 닉의 말대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이다.

“말했듯이,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 아주 잘못된 판단을 내렸단다.” 엄마가 말한다. “<어메이징 에이미와 변동이자 모기지>라는 책이라도 써야 할 판이야. 거기 실린 모든 퀴즈에서 우린 낙제점을 받을 거다. 우린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가 될 거야. <에이미의 친구, 현재만 생각하는 웬디>.”

“<모래에 머리를 처박은 해리>.” 아빠가 말을 받는다.

“전적으로 네가 결정할 일이란다.” 아빠가 말을 잇는다. 엄마는 집에서 만들어온 팸플릿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쳐놓는다. 집 컴퓨터로 작성한 막대그래프, 원그래프와 도표들. 눈을 가늘게 뜨고 사용설명서를 봐가며 당신들의 제안이 내게 그럴듯해 보이도록 만들려 애쓰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니 죽을 것 같다.

엄마가 발표를 시작한다.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네 신탁기금을 좀 빌려 쓸 수 있을지 묻고 싶구나.”

우리 부모가 첫 인턴직을 구하려 하는 두 명의 열띤 대학생처럼 우리 앞에 앉아 있다. 아빠는, 엄마가 자신의 다리 위에 부드럽게 손끝을 얹고 나서야 다리 떨기를 멈춘다.

“뭐, 제 신탁기금은 엄마, 아빠 돈이니까 당연히 빌리셔도 돼요.” 내가 말한다. 어서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 희망에 찬 부모님의 표정을 견딜 수가 없다. “빚을 다 갚고 당분간 마음 편히 지내시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하세요?”

아빠가 발끝을 내려다본다. 엄마가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65만 달러.” 엄마가 대답한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돈의 거의 전부다. (P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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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한테는 흔한 일이에요.” 내가 말했다. “아내와 얘기를 한 번 한 사람들은 아내에게 들러붙어요. 소름끼치죠.”

“에이미의 부모님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보니에게 힐러리 핸디와 데시 콜링스에 대해 직접 물어볼까 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 혼자서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이 모양새가 나을 것이다. 나는 장인과 장모에게 슈퍼히어로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장모의 얼굴에 떠오르던 표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경찰은 실마리가 분명..... 집 가까이에 있다고 보는 것 같아.

“사람들은 어렸을 때 그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에이미를 안다고 생각하죠.” 내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보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안다고 믿고 싶어 해요. 부모는 자식을 안다고 믿고 싶어 하고 아내는 남편을 안다고 믿고 싶어 하죠.”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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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는 두렵다. 뭔가가 잘못될 것 같은, 크게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 훨씬 더 나쁜 일이 벌어질까봐 두렵다. 나는 닉의 아내가 아닌 것 같다. 사람인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소파나 뻐꾸기시계처럼 싣고 내려지는 것이다. 물건, 그것도 쓸모없는 물건. 나는 필요하다면 쓰레기장에 던져질, 강 속으로 집어던져질 어떤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P159)

영혼이 쭈그러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에이미는 이번 보물찾기로 우리 사이가 다시 가까워지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녀는 이 단서들을 쓰는 동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에이미. 왜 좀 더 일찍 이렇게 하지 않은 거야?

우리는 한 번도 타이밍이 좋았던 적이 없다.

나는 다음 단서를 꺼내서 읽은 다음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칭찬, 아내의 또 다른 말, 또 하나의 올리브 가지를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에 대한 감정이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지나치게 빨리 변해가고 있었다. (P171)


“그러니까, 그날 싸운 이유가, 닉 씨로서는 듣기 불편하시겠지만, 아내분이 뭔가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인가요?” 보니가 물었다. 순진한 시선. “그러니까, 어쩌면 아내분이 이곳에서 질이 좋지 않은 것들을 접했을 수도 있어서요. 마약 거래상들은 아주 많으니까요. 어쩌면 에이미 씨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겨서 총을 사려고 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신변 보호를 위해 총이 필요했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닉, 우리는 당신이 그 시간, 싸움이 있었던 시간인 밤 열한 시쯤부터 다른 누군가가 에이미 씨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시간 사이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좀 더 생각해보기를.....”

“나 아닌 다른 누군가 말이죠.” (P198)


그녀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었다. 얇은 여름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습기 때문에 곱슬거렸다. 앤디, 그녀는 나를 안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잠깐, 잠깐!” 나는 쉿쉿거리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고 그녀는 나를 껴안았다. 앤디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나는 그녀의 벗은 등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안도와 공포가 뒤섞인 메스꺼운 느낌이었다. 마침내 가렵지 않아서 보니 너무 긁어서 피가 나 있을 때의 느낌.

나는 내연녀가 있다. 이제 나는 내연녀가 있다고 말해야만 하고, 더 이상 사람들의 호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호감이란 걸 얻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내게는 예쁘고 젊은, 아주 젊은 내연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앤디다.

안다. 나쁘다는 것.

“자기야, 도대체 왜 전화를 안 한 거야?”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가 말했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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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이미에게 말하려고 했다.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몇 달이 지나고 또 지나도록 에이미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나갔다. 비겁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그런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나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장인, 장모와 이혼 이야기를 하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분명 그 싸움에 개입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나의 강한 실용주의적 성향도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내가 얼마나 실용적인지, 거의 그로테스크한 수준이었다. 내가 에이미에게 이혼을 요구하지 않은 이유 중 일부는 나와 고의 바가 에이미의 돈으로 산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바의 실질적 인 소유주인 그녀는 바를 정리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쌍둥이 동생이 다시 한 번 몇 년의 인생을 잃어버린 뒤 용감한 척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비참한 상황에서 계속 표류하면서 언젠가는 에이미가 폭발해 이혼을 요구할 거라고. 그러면 나는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P234)


“저는 에이미의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친구입니다. 친구입니다. 친구입니다. 그 말은 세쌍둥이의 울부짖음과 함께 공원 전체로 퍼져나갔다. “제가 갖은 애를 썼지만 경찰은 제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도시에, 에이미가 사랑했고 에이미를 사랑했던, 이 도시에 말하고자 합니다. 이 사람, 닉 던은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아내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우리에게 말해야 합니다!”

보니가 노엘에게 가려고 무대 옆에서 튀어나오자 노엘이 몸을 돌렸고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보니는 필사적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그만해요!

“임신한 자기 아내한테요!”

순간 촛불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장인은 내 옆에서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밑에서는 보니가 두통을 멈추려는 듯이 손가락을 모아 미간 사이를 짚고 있었다. 나는 나의 심장박동과 같은 속도로 번쩍거리는 광적인 플래시 세례 속에서 모두를 쳐다보고 있었다. (P300)


파파라치들에 용감히 맞서며 내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집으로 와준 것은 보니였다. 그녀는 친절하게,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부인은 임신했습니다.

나의 아내가 사라졌다. 배 속에 든 내 아이와 함께, 보니는 나의 반응을 기다리며 --경찰 보고서에 써넣기 위해--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나 자신에게 제대로 처신하라고. 일을 망치지 말라고, 이런 소식을 들은 남자가 할 만한 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하느님 맙소사. 하느님 맙소사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나는 부엌 바닥에서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쥐고 머리는 맞아서 움푹 들어간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P313)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나는 알아차렸다. ‘결혼 5주년을 위해 좋은 것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 좋은 것들이란 나무로 만든 것들일 것이다. 벌한다는 건 누군가를 헛간으로 데려간다는 것. 고의 집 뒤에 헛간이 있었다. 잔디 깎는 기계 부품들과 녹슨 도구들을 넣어두는 곳. 야영객들이 한 명씩 살해당하는 슬래셔 영화에 나올 법한, 오래되고 낡은 별채. 절대로 그곳에 가지 않는 고는 그 집으로 이사했을 때부터 헛간을 불태워버려야겠다고 종종 농담을 했다. 그리고 불태우는 대신 풀이 웃자라고 거미줄이 생기게 방치했다. 우리는 그곳이 시체를 묻기에 좋은 장소라고 늘 농담을 했었다.

그럴 리가.

나는 동네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얼굴에는 감각이 없었고 두 손은 차가워졌다. 고의 차가 진입로에 서 있었지만 나는 거실 창문 앞을 조심스레 지나간 뒤 가파른 내리막 경사를 내려가 곧 고의 시야를 벗어났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 아주 은밀한 곳.

뒷마당의 끄트러미. 숲의 가장자리에 헛간이 있었다.

나는 문을 열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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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은 나를 사랑했다. ‘아’가 여섯 개쯤 들어가는 사랑. 그는 나를 사아아아아아아아랑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것은 진짜 내가 아니었다. 닉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를 사랑했다. 나는, 내가 종종 그러듯이, 특정한 인격을 가장하고 있었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어떤 여자들이 정기적으로 패션을 바꾸듯, 나는 인격을 바꾼다. 어떤 페르소나가 기분이 좋을까. 사람들이 어떤 걸 갈망할까. 요즘은 어떤 게 유행이지?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하나의 페르소나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게으르거나 멍청해서 변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날 밤 브루클린의 파티에서 나는 당시 유행하던 여자, 닉이 원하는 여자를 연기하고 있었다. ‘쿨한 여자’. 남자들은 이것을 언제나 최고의 찬사처럼 말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녀는 쿨한 여자야. 쿨한 여자는 섹시하고, 똑똑하고, 재미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녀는 축구와 포커, 지저분한 농담. 트림을 좋아하고, 비디오 게임을 하며, 싸구려 맥주를 마시고, 스리섬과 항문 섹스를 좋아하며, 지상 최대의 음식 윤간 쇼라도 주최하는 것처럼 핫도그와 햄버거 입 속에 쑤셔 넣으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사이즈 2를 유지하는 여자다. 무엇보다도 쿨한 여자는 섹시해야 하니까, 섹시하고 이해심 많은 여자, 쿨한 여자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 화가 나도 사랑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남자가 뭐든 자기 멋대로 하게 내버려둔다. 마음대로 해, 날 무시해도 괜찮아. 나는 쿨한 여자니까. (P341-342)


모든 단서는 내가 바람을 피운 장소에 숨겨져 있었다. 에이미는 보물찾기를 이용해서 나로 하여금 모든 부정의 현장을 순례하도록 만든 것이다. 나는 약간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에이미가 차를 타고 --아버지의 집으로, 고의 집으로, 빌어먹을 해니벌로--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뒤를 쫓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귀여운 여자애와 섹스하는 나를 지켜보며 혐오감과 승리감에 입술을 뒤틀고 있는 모습을.

에이미가 승리감을 느낀 건 그녀가 나를 호되게 벌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마지막 정거장에서, 에이미는 내게 그녀가 얼마나 똑똑한지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작은 장작 헛간은 내가 보니와 길핀에게 아는 바 없는 신용카드로 산 적이 없다고 맹세한 온갖 물건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비싼 골프채들, 손목시계들과 컴퓨터 게임기들, 명품 옷들. 그 모두가 이곳. 내 동생의 집터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아내가 죽은 다음 즐기려고 보관해놓은 것처럼. (P349)


믿음!

내가 도착한 바로 그때, 남편은 그 여자와 함께 바를 나서고 있었다. 나는 그 빌어먹을 주차장에, 그와 6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그는 내가 있다는 걸 알아채지도 못했다. 나는 유령이었다. 그때는 아직 닉이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녀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따라갔다. 닉이 갑자기 그녀를 나무에 밀어붙이고 --시내 한가운데서-- 키스를 했다. ‘닉이 바람을 피우고 있어.’ 나는 멍하게 생각했고,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그녀의 아파트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문 앞 계단에 앉아 한 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너무 추워서 --손톱이 파래지고 이가 덜덜 떨렸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내가 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리하여 내게는 순식간에 새로운 페르소나가 생겼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흔해빠진 더러운 남자와 결혼한 흔해빠진 멍청한 여자’였다. 그는 자기 혼자서 ‘어메이징 에이미’를 놀랍지 않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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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뉴스를 통해 그들을 본다. 야위고 가냘픈 엄마, 언제나 경직되어 있는 엄마의 목에 있는 홀쭉한 나뭇가지 같은 힘줄들. 두려움으로 두 뺨은 불그레하고, 조금 지나치게 눈을 뜨고 모난 웃음을 짓는 아빠. 평소에는 잘생겼지만 이제 그는 한 장의 캐리커처, 귀신 들린 광대 인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을 가엾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평생 동안 그들에게 하나의 상징이자 걸어 다니는 이상형에 불과했다. 살아 있는 놀라운 에이미. 바보짓 하지 마, 넌 놀라운 에이미야. 우리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 외동아이에게는 불공평한 책임이 따른다. 외동아이는 자라면서 자신은 부모를 실망시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죽어서도 안 된다. 주위에 자신을 대체할 어린애가 없으니까. 어린애는 자기 하나뿐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완벽해지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권력에 흠뻑 취한다. 독재자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P397)


에이미는 둘 중 하나를 원할 것이다. 내가 교훈을 얻고 나라는 나쁜 놈에게 합당하게 전기의자로 처형되거나, 내가 교훈을 얻고 그녀가 받아 마땅한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착하고 순종적이고 벌 받은 불알 없는 남자가 되는 것.

“이 환상적인 보물찾기.” 내가 웃었다. 레베카는 안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아내는 결혼기념일마다 보물찾기를 했습니다. 하나의 단서가 특별한 장소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나는 다음 단서를 찾으면서 보물찾기를 계속 하죠. 에이미는......” 나는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하려고 애썼다. 눈가를 훔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문 위에 걸린 시계는 새벽 12시 37분을 가리켰다. “아내는 실종되기 전에 올해를 위한 단서를 모두 숨겼어요.”

“결혼기념일에 실종되기 전에요.”

“그리고 저는 오직 그것 하나로 버티고 있어요. 보물찾기는 내가 그녀와 가까이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거든요.”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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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분이고 그 무엇보다도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 이번 일이 내게는 너무나도 잔인하게 눈을 뜨게 해주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지독한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나쁜 놈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자신이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저와 대등한, 모든 면에서 저보다 나은 여자였습니다. 저는 저의 불안감, 실직해서 가족을 돌보지 못하게 되는 것,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말도 안 돼......” 데시가 입을 열고, 나는 그에게 쉿 소리를 낸다. 닉으로 하여금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프티트 모르(prtitie mort, ’작은 죽음‘으로 오르가슴을 뜻하는 불어 표현)’와는 다른 종류의 작은 죽음이다.

“이 말도 해야겠습니다. 샤론. 지금 당장 해야겠어요. 저는 바람을 피웠습니다. 제 아내를 속였습니다 전 그런 제 자신이 싫었지만, 그것을 바로 잡는 대신 쉬운 탈출구를 택했습니다. 저는 저를 잘 알지도 못하는 젊은 여성과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대단한 남자라고 착각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현명하고 당당하고 성공한 남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젊은 여성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그녀는 제가 일자리를 잃고 한밤중에 욕실에서 수건에 얼굴을 묻고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의 모든 기벽과 약점도 몰랐습니다. 저는 바보처럼, 제가 완벽하지 않으면 아내가 저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내의 영웅이 되고 싶었는데,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저는 자존감을 잃었고, 더 이상 영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샤론, 전 잘잘못을 구분할 줄 압니다. 저는, 저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아내가 어딘가에서 지금 당신을 볼 수 있다면, 아내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습니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에이미, 당신을 사랑해. 당신은 내가 아는 최고의 여자야. 당신은 내게 과분해. 당신이 내게 돌아온다면 남은 평생 동안 당신에게 보상하며 살 거야. 우리는 이 악몽을 끝낼 방법을 찾아낼 거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이 될 거야. 제발 내 곁으로 돌아와줘. 에이미.” (P538-539)


초인종이 연달아 세 번 울렸다. 닉-닉! 닉-닉! 닉-닉!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한 달 전부터 망설이기를 멈췄다. 문제는 얼른 일으킬 것.

문을 열었다.

아내였다.

그녀가 돌아왔다.

에이미 엘리엇 던은 젖은 듯 몸에 들러붙은 얇은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우리 집 문간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양쪽 발목에는 거무스름한 보라색 고리 모양으로 테가 둘러져 있었고 축 늘어진 한쪽 손목은 노끈에 묶여 있었다. 머리카락은 짧았고, 날이 무딘 가위로 마구 자른 것처럼 끝부분이 너덜너덜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멍이 들어 있었고 입술은 부어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녀가 두 팔을 벌리며 내게 다가올 때, 나는 그녀의 배 근처가 말라붙은 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뭍으로 떠밀려온 인어처럼 입을 열고 두어 번 말을 하려고 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닉!” 마침내 그녀가 울부짖으며 --모든 텅 빈 집에 울려 퍼지는 구슬픈 소리-- 내 품 안에 몸을 던졌다.

나는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

우리 둘뿐이었다면 나의 두 손은 그녀의 목을 두르며 제자리를 찾고, 손가락으로는 그녀의 목에서 완벽한 홈을 찾았을 것이다. 손가락 밑에서 세찬 맥박을 느끼며..... 하지만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뒤에는 카메라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이 낯선 여자가 누구인지 깨닫고 있었고, 집 안에 있는 뻐꾸기시계만큼이나 분명 활기를 띠고 있었다. 몇 번의 찰칵거림과 몇 개의 질문에 이어 소음과 빛이 산사태처럼 쏟아졌다. 카메라들은 우리의 모습을 마구 찍어댔고 리포터들은 마이크를 들고 가까이 오고 있었다. 모두 다 에이미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고함을, 말 그대로 고함을 치고 있었다. 나는 올바른 일을 했다. 그녀를 끌어안고 곧바로 포효하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에이미! 맙소사! 맙소사! 내 사랑!” 그리고 내 얼굴을 그녀의 목에 묻고 두 팔로 그녀를 꽉 껴안으며 카메라에게 15초를 내어준 다음,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이 씨발년.”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애정 어린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친 다음 그녀를 거칠게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P569-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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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살인미수.” 그녀가 말했다.

나는 멈춰 섰다.

“그게 내 원래 계획이었어. 처음에 말이야. 난 불쌍하고 아픈 아내가 되는 거야. 반복되는 사건, 갑자기 심해지는 질환, 알고보니 그녀의 남편이 아내에게 만들어준 칵테일은 모두.....”

“일기장에서처럼.”

“하지만 난 당신한테 살인 미수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것보다는 더 커야 했지. 하지만 난 아직도 중독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어. 당신이 결국 살인자로 발전한다는 생각이 아주 마음에 들어. 당신은 우선 비겁한 방식을 시도하는 거지. 나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것을 이겨낼 거고.”

“내가 그 말을 믿기를 바라?”

“너무나 충격적인 그 토사물. 순진하고 겁에 질린 아내는 만약을 위해 토사물의 일부를 보관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녀에게는 약간의 피해망상증이 있으니까.” 그녀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언제나 차선책을 위한 차선책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실제로 독을 먹었다는 얘기군.”

“닉, 제발. 충격받은 거야? 난 나를 죽인 사람이야.”

“술이 필요해.” 나는 말했고,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떠나버렸다.

나는 스카치 한 잔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커튼 너머로 여전히 카메라 플래시라이트가 마당을 밝히고 있었다. 곧 밤이 지나갈 것이다. 나는 아침이 오고 또 온다는 것을 알고 아침이면 우울해지겠지. (P599)

그러던 중 사건이 있었다. 마침내 내 아버지가 죽었다. 밤에, 자다가 죽었다. 어떤 여자가 그의 마지막 식사를 그의 입 안에 떠 넣어주었고, 어떤 여자가 그의 마지막 휴식을 위해 그를 침대에 뉘었으며, 어떤 여자가 그가 죽은 다음 그의 몸을 씻겼고, 어떤 여자가 내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좋은 분이셨어요.” 그 여자는 감정을 억지로 짜내어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내가 말했고, 그녀는 한 달 동안 웃지 못한 사람처럼 웃어댔다.

나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크고 무시무시한 공허함이 나의 가슴 속에서 입을 벌렸다. 나는 평생 동안 나 자신을 아버지와 비교하며 살았다. 이제 아버지가 사라지면서, 내가 맞설 사람은 에이미밖에 남지 않았다. 작고 칙칙하고 쓸쓸한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나는 고와 함께 떠나지 않고 에이미와 함께 집으로 가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렇다. 나는 내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갔다.

난 이 집을 나가야만 해.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에이미와 영원히 끝을 내야 해. 내가 돌아갈 수조차 없게 우리를 다 태워버려야 한다.

당신이 없으면 나는 뭐가 될까?

나는 찾아내야 했다. 나만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다음날 아침, 에이미가 자판을 두드리며 리서치를 하고 있을 때, 세상에 그녀의 ‘어메이징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때, 나는 노트북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반짝거리는 흰색 페이지를 노려보았다.

나는 내 책의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배우자를 속이고, 유약하고, 여자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이자 당신 이야기의 영웅이다. 왜냐하면 내가 속인 여자, 나의 아내, 에이미 엘레엇 던은 소시오패스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그렇게 썼다. (P628-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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