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빠삐용> 1974년
영화 <빠삐용>(2019)
카라카스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던 이듬해인 1967년 7월, 60세에 한 ‘사내’가 <카라카스 신문>에서 알베르틴 사라쟁에 관한 기사를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아마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일년 만에 자신의 탈출과 수감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포함해 세 권의 책을 쓴 자그마한 흑인 여성 알베르틴 사라쟁이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였다.
사내의 이름은 앙리 샤리에르, 1933년에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카엔의 도형지로 보내졌다가 먼 길을 돌아온 사람이었다. 한때 ‘뻐삐용’이라 불렸던 앙리 샤리에르는 1906년에 아르테슈의 교육자 집안에서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지금은 베네수엘라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가 베네수엘라에 둥지를 튼 것은 그의 범죄 기록보다는 그의 시각과 말솜씨에 감명받은 베네수엘라 국민들 덕이기도 했고, 13년에 걸쳐 지옥 같은 도형지를 벗어나고자 했던 노력과 투쟁이 과거보다는 미래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앙리 샤리에르는 1967년 7월 카라카스의 프랑스 서점에서 알베르틴 사라쟁의 <아스트라갈>을 샀다. 그때까지만 해도 샤리에르는 자신이 겪었던 모험에 대해 글을 쓸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활동가이고 삶의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예리해 보이는 눈빛에 너그러운 마음이 묻어나는 그는 남프랑스 특유의 걸걸하고 따스한 음성으로 입담 좋게 이야기를 풀어내서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몇 시간이고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그는 내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에게 내 모험을 보냅니다. 전문 작가에게 이걸 쓰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마치 직접 이야기 듣는 것처럼 생생한 그의 모험담이 세상에 나왔다. (P11-12)
차장검사는 프라델 법관이었다. 변호사회의 모든 변호사들이 꺼리는 검사였다. 그는 프랑스와 영국의 단두대와 형무소의 일등 공급자라는 서글픈 명성을 얻고 있는 사람이었다. 프라델이 공소를 제기했다. 그는 공식적인 기소자일 뿐, 인간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법과 정의를 대변하고, 법을 능란하게 다루어 자기 편으로 기울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사람이었다. 그는 독수리 같은 눈을 살짝 내리깔아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자리보다 높은 단석에서, 족히 1미터 80센티는 됨직한 큰 키로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붉은 망토는 벗지 않았지만 법관 모자는 벗어서 앞으로 놓고, 빨랫방망이처럼 큼지막한 두 손은 단상을 짚고 있었다. 금반지는 그가 기혼자임을 나타내고, 새끼손가락에는 윤이 나는 말발굽으로 만든 고리를 반지처럼 끼고 있었다.
그는 나를 더욱 압도하기 위해 내 쪽으로 몸을 살짝 숙였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봐,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맹수의 앞발 같은 내 손은 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너를 갈가리 찢을 발톱이 내 영혼 속에 있지. 모든 변호사들이 나를 두려워해. 사법관직에서도 제일 위험한 차장검사로 몰린 것도 바로 내가 한번 노린 먹이는 절대 놓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네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궁금하지 않아. 나는 그저 네게 불리한 모든 증거를 활용할 뿐이야. 몽마르트르에서 보낸 네 방랑 생활, 경찰이 모든 증언과 자료들, 그리고 예심판사가 모은 그 역겨운 잡동사니들로 널 철저히 혐오스런 인간으로 만들 거야. 저 배심원들이 널 이 사회에서 몰아내도록 하고 말겠어.’
내가 최소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면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너무나 분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P17-18)
“무기징역, 엄중히 감시할 것.”
정말이지 정신나간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지금 막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람이 그새 자살 기도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나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기죽지 않을 것이다. 모두를 상대로 싸울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행동에 옮길 것이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고할까? 무엇 때문에? 다른 법정에 서면 더 나은 기회가 있을까? 그러려면 시간을 얼마나 허비해야 할까? 일년, 어쩌면 열여덟 달..... 무엇 때문에? 무기징역 대신 20년형을 받으려고?’
결국 어떻게든 탈옥하기로 마음을 먹자 형기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재판장에게 이렇게 묻던 한 죄수의 말이 떠올랐다.
‘재판장님, 프랑스에서는 무기징역이 몇 년이나 되나요?’
나는 독방 안을 서성였다. 아내를 달래주기 위해 아내에게 속달 우편을 한 통 보냈고, 또 한 통은 세상과 맞서 혼자서 꿋꿋이 오빠를 변호해주었던 누이동생에게 보냈다.
이제 끝났다. 막은 내렸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가슴 아파할 것이다. 가엾은 아버지는 외딴 시골 촌구석에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얼마나 괴로워하고 계실까. (P23)
게다가 그 자를 위해서는 알렉상드르 뒤마 덕에 제대로 된 요리법도 준비해두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동굴 같은 감옥 속에 갇혀 굶어죽도록 내팽개쳐졌던 그 불쌍한 녀석과 똑같이 할 것이다.
그래, 그 검사는 분명 책임이 있다. 빨간 옷을 입은 그 독수리가 한 짓은 최대한 무시무시한 최후를 받아 마땅하다. 그래, 그거다. 폴랭과 형사들 다음으로는 그 독수리에게만 매달릴 것이다. 일단 빌라를 하나 빌릴 것이다. 두툼한 벽과 아주 육중한 문으로 막힌 깊고 깊은 지하 동굴이 있는 빌라여야 한다. 만일 문이 충분히 두껍지 않다면 내가 직접 매트리스와 삼 부스러기로 틈을 메울 것이다. 그 다음 그놈을 납치해서 그곳에 가둘 테다. 벽에 고리를 박아서 사슬로 꽁공 묶어놓아야지. 그러고 나면 그때는 내 차례인 것이다! (P29)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갔다. 검은색 작은 줄무늬가 있는 하늘색 나비였다. 벌 한 마리가 그 나비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창가에서 윙윙댔다. 저 곤충들은 하필 이런 곳에서 무얼 찾는 것일까? 저 겨울 태양에 미쳤나보다. 아니면 너무 추워서 감옥 안으로라도 들어오고 싶은 것이든지. 겨울 나비는 부활한 나비인가보다,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 있을까? 그리고 저 벌은 왜 제 벌집을 떠나왔을까? 이런 곳에 다가오다니 얼마나 무모한 바보인지 모르겠다. 감방장에게 날개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오래 살지 못할 테니까.
트리부야르는 끔찍한 사디스트였다. 나는 그와 관련된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 매혹적인 곤충 두 마리가 나를 찾은 다음날, 몸이 좋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데다가 외로워 죽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 사람의 얼굴이 보고 싶고, 사람의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흉한 얼굴이어도 좋고 최소한 목소리만이라도, 그냥 무슨 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얼어붙을 것같이 추운 복도에서 발거벗은 상태로, 벽에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은 채 여덟 명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그 줄의 끝에서 두 번째에 서서 의사 앞으로 갈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세상이 보고 싶었다. (P46-47)
생 마르텡 드 레는 죄수들로 득실거렸다. 그곳에는 두 부류의 죄수가 있었다. 단순히 징역살이를 하는 800명에서 1,000명 가량의 도형수들과 유형에 처해진 500명쯤 되는 유형수들이 서로 달랐다. 도형수들의 경우는 뭔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었다. 형벌은 7년 징역형에서 무기징역형까지 다양했다. 사형에서 감형되면 자동적으로 무기징역이 되었다. 그런데 유형수들은 좀 달랐다. 세 번에서 일곱 번의 유죄 판결을 받으면 유형수가 된다. 사실 그들 모두가 도저히 구제할 길 없는 도둑들이어서 우리는 왜 사회가 그들로부터 일반인들을 보호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문명인에게 그런 특별한 형벌을 가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서툴게 좀도둑질을 하다가 여러 번 붙잡혀서 유형수가 되는 이들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평생 도둑질을 해봐야 1만 프랑도 훔치지 못하는 이들이 무기징역형까지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거야말로 프랑스 문명의 가장 큰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은 복수를 할 권리도 없고, 사회에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신속하게 제거할 방법도 없다. 그런 사람들이말로 그렇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하는 대상인데도 말이다. (P67)
“우리는 떠날 거야. 우리하고 함께 갈래?”
“싫어. 빠삐용. 나는 다른 사람과도 관계가 있어. 다섯 달만 있으면 내 동료가 석방되는데 탈출하고 싶지 않아. 탈출은 만반의 준비가 되어야만 해. 네가 마음이 급한 건 이해해. 하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창살로 막혀 있어서 많이 힘들 거야. 내가 도와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마. 난 이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난 여기서 내 친구가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거야.”
“잘 알았어, 샤탈. 이런 데 살면서 서로 솔직해야지.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
“하지만 어쨌든 쪽지나 다른 심부름은 해줄게.”
“고마워, 샤탈.”
그날 밤, 경기관총 일제 사격 소리가 들렸다. 이튿날 알아보니 인간 망치 쥘로가 탈출을 한 것이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는 좋은 친구였다. 기회를 포착해서 제대로 활용한 모양이었다. 그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15년 후인 1948년에 나는 베네수엘라인 백만장자와 함께 아이티에 있었다. 그곳에서 카지노 사장과 그의 도박장 경영을 두고 계약을 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밤 카바레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나가는 데 우리와 동행했던 흑인 아가씨 --숯처럼 검은 피부였지만 프랑스 지방의 좋은 가정에서 잘 교육받은 것 같은-- 가 내게 말했다.
“우리 할머니는 부두교 성직자인데 지금 프랑스 노인과 살고 있어요. 그분은 카옌에서 탈출해서 20년째 우리 할머니하고 살죠. 허구한 날 술만 마셔요. 그분 이름이 쥘 마르토지요.”
나는 술이 번쩍 깨는 듯했다. (P95)
“자네는 여러 번 섬을 나가봤으니 빠삐용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줘. 세 사람 모두 경험이 없으니까.”
그러자 그가 곧 설명했다.
“오늘 초저녁에 썰물이 시작돼. 새벽 3시면 조류가 바뀔 거야. 6시쯤 해가 지면 아주 강한 물살이 세 시간도 안 걸려서 출구 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는 데려다줄 거야. 멈춰야 하는 시간은 9시야. 가까운 나무를 꼭 붙잡고 밀물 여섯 시간을 기다려. 그럼 새벽 3시가 될 거야. 그 시간엔 절대 움직이면 안 돼. 물살이 그다지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니까. 4시 반에 강 한가운데로 나가, 해가 뜰 때까지 한 시간 반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50킬로미터는 갈 수 있어. 그 한 시간 반에 네 운명이 달린 거지. 6시에 해가 뜰 때는 바다로 들어가야 해. 간수들이 혹시 발견하더라도 쫓아가지는 못해. 다시 밀물이 시작되면서 출구가 막히거든. 그들은 출구를 넘지 못하고 자넨 이미 건넌 거지. 자네 목숨은 그들 눈에 띄는 그 초반에 얼마나 멀리 나가 있느냐에 달린 거야. 여긴 돛이 하나밖에 없어. 자네 배엔 뭐가 있었나?”
“주돛 하나하고 삼각돛 하나요.” (P131-132)
나는 동이 틀 무렵에샤 간신히 잠이 들었다. 10시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보웬이 웃으며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친구들. 여태 잤어요? 늦게 들어왔나 보군요. 즐겁게 지냈습니까?”
“안녕하세요. 네, 어제 늦게 들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천만에요! 그런 일들을 겪었는데 당연하죠. 자유인으로서 첫날 밤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이 당연하죠. 경찰서까지 동행하려고 왔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두 분이 이 나라에 불법으로 들어왔다는 걸 정식으로 신고해야 해요. 그 절차를 밟고 나서 친구분을 만나러 갑시다. 벌써 일찌감치 엑스선 촬영을 했다는군요. 결과는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우리는 부리나케 단장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보웬이 대령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친구들.”
대위가 서툰 프랑스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밤새 안녕하셨죠? 포트오브스페인이 마음에 드시던가요?”
여성 장교도 인사말을 건넸다.
“아, 그럼요! 아주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가볍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경찰서로 출발했다. 약 200미터 거리라 걸어서 갔다. 모든 경찰관들이 우리에게 경례를 하면서 별다른 호기심 없이 바라보았다. 우리는 카키색 제복 차림의 흑인 보초 두 명 앞을 지나서 준엄하고 위압적인 사무실로 들어섰다. 배지와 메달이 잔뜩 달린 카키색 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반바지 차림의 50대 장교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프랑스어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앉으시죠. 정식으로 신고받기 전에 간단히 이야기부터 나누죠. 나이가 어떻게 되죠?”
“스물여섯하고 열아홉입니다.”
“죄목이 뭐였습니까?”
“살인죄였습니다.”
“구형은?”
“무기징역형입니다.” (P166-167)
“탈출은 어디서 한 거야?”
“생 로랑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카스카드라고 불리는 삼림 수용소, 우리는 자유롭게 지내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 전부 다섯 명이었는데 식은 죽 먹기였지.”
“어떻게 다섯 명이야? 나머지 둘은 어디 있어?”
잠시 난처한 듯 침묵이 이어지자 클루지오가 말했다.
“이봐, 남자들기린데 알 건 알아야지, 말해보라고.”
“내가 다 얘기할게. 사실 우리 다섯이 같이 탈출했거든. 근데 지금 없는 칸 출신 두 놈이 자신들이 어부였다고 하더라고. 자신들이 배에서 하는 일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면서 탈출하는 데 돈을 한 푼도 안 보탰지. 그런데 가다 보니까 두 놈 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지 뭐야.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이 스무 번은 될 거야. 처음엔 네덜란드령 기아나 해안선 가까이 항해하다가 나중에 트리니다드 근처로 갔어. 조지타운과 트리니다드 중간에서 놈 하나를 내가 죽였지. 그놈은 죽어 마땅했어. 공짜로 탈출하려고 자기가 유능한 뱃사람이라고 모두를 속였으니까. 그리고 또 한 놈은 자기도 죽일까봐 겁먹고는 폭풍에 시달릴 때 키를 놓고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었고, 남은 우리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배에 물이 가득 찬 것도 여러 번이고, 암초에 부딪쳤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했고, 사나이 명예를 걸고 맹세코 내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야.”
“사실이야. 정말 그랬어. 우리 셋 다 그놈을 죽이기로 합의를 봤어. 어떻게 생각해, 빠삐용?”
나머지 두 사람이 말했다. (P179)
“고맙습니다. 신부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다시 떠나서 다른 위험들과 맞서게. 자네가 출발하기 전에 세례를 해주고 싶군, 어떤가?”
“신부님, 당장은 이대로가 좋습니다. 제 아버지는 저를 특정한 종교 없이 키우셨습니다. 그분은 선량한 마음씨를 가진 분입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시기 위해 새로운 태도, 말씀,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지금 제가 세례를 받는다면 한편으로 아버지를 배신하는 셈이 됩니다. 새로운 신분을 얻어서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때까지는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그때가 되면 아버지께 편지해서 아버지의 철학을 버리고 세례를 받아도 되겠는지 여쭙겠습니다.”
“이해하겠네, 어쨌든 하느님은 자네와 함께 계시네. 자네를 축복하고 하느님께서 지켜주시기를 빌겠네.” (P198)
그는 젖은 수건으로 탁자를 닦아냈다. 탁자가 마르자 이번에는 내 손에 돌멩이를 쥐어주며 내 이야기를 그림으로 말해보라고 했다. 내 그림은 그의 것보다는 조금 복잡했다. 나는 두 손이 묶인 남자 한 명과 무기를 들고 그를 바라보는 두 남자를 그린 다음, 처음 남자가 뛰어가고 두 남자가 총을 겨누며 뒤를 쫓아가는 그림을 그렸다. 같은 장면을 세 번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조금씩 추격자들로부터 멀어져 마지막에는 경찰들이 추격을 멈추고 남자는 계속 달려서 그들의 마을까지 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마을을 표현할 때는 원주민들과 개를 그렸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 족장이 내게 두 팔을 벌린 모양을 표현했다.
내 그림이 그리 형편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남자들끼리 한참 동안 의논을 하더니 족장이 내가 그린 것처럼 두 팔을 벌렸기 때문이다. 내 뜻을 이해한 것이다. 그 원주민 공동체의 이름은 과지라였다. (P221)
“나를 받아들여주고 내게 모든 것을 내준 이 부족의 위대한 족장 자토께 여러 달 동안 당신들 곁을 떠나도록 허락해 주시길 청합니다.”
“왜 친구들 곁을 떠나려 하는가?”
“나를 짐승 쫓듯 추격해온 사람들을 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 덕분에 이 마을에서 안전하게, 행복하게 지내면서 잘 먹고, 고결한 친구들을 만나고, 내 가슴에 따뜻한 빛이 되어준 아내들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피신처를 얻었다고 해서 고통스럽게 싸우는 것이 두려워 평생을 그곳에서 안주하는 짐승이 될 순 없습니다. 나는 적들과 정면으로 싸우러 갑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내 아버지에게로 갑니다. 하지만 이곳에, 내 아내들 랄리와 조라이마, 그리고 우리들의 결실인 아이들에게 내 영혼을 두고 갑니다. 내 오두막은 내 아내들과 앞으로 태어날 때 내 아이들의 것입니다. 바라건대 누군가 그 사실을 잊거든 자토 당신이 그에게 일깨워 주십시오. 당신의 개인적인 보살핌 외에도 또 다른 남자 우슬리가 밤낮으로 내 가족을 지키게 해주십시오. 나는 당신들 모두를 무척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겁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혹시 내 의무를 다하다가 죽더라도 내 정신은 당신들에게, 랄리와 조라이마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내 가족과 다름없는 과지라 원주민 당신들에게로 올 것입니다.” (P259)
물과 함께 밀려든 쥐들과 지네류 그리고 작은 게들은 참을 수 없이 혐오스러운 것들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물이 빠져나가자 두께가 1센티미어도 넘는 질척한 진흙만 남았다. 나는 그 진창에 빠지지 않으려고 신발을 신었다. 흑인이 내게 10센티미터 길이의 판자 조각을 던져주며 내가 누워 자야 할 판자부터 시작해서 감방 안의 진흙을 복도로 퍼 나르라고 말했다. 그 일을 하는 30여분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음 밀물 때까지, 그러니까 정확히 열한 시간 동안은 물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 물이 찰 때까지 썰물 여섯 시간과 밀물 다섯 시간을 계산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조금 우습게 여겨졌다.
‘빠삐용, 넌 바다의 조수를 계산할 운명을 타고났나 보다. 네가 신경을 쓰든 안 쓰든 달은 너와 네 삶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군. 오르락내리락 하는 조수 덕분에 감옥에서 탈출할 때도 마로니에서 쉽게 나올 수 있었으니 말야. 트리니다드와 쿠라사우에서 나올 때도 조수 시간을 계산해서 나왔지. 리오 아샤에서 붙잡혔던 것도 충분히 멀리 나갈 정도로 물살이 세지 않았기 때문이고, 여기서도 역시 이 조수에 몸을 맡기고 있구나.’ (P283)
엉터리 정보를 입수한 기자 한 명이 나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는 내가 교회 반란의 주모자였으며 보초 한 명에게 독약을 먹였고, 마지막엔 거리 쪽 변압기를 건드려 전등을 차단한 것으로 보아 외부 공모자와 함께 집단 탈출을 꾀했다고 썼다. 그는 ‘프랑스가 최대한 빨리 우리나라에서 무시무시한 프랑스 악당을 치워주길 바란다’는 말로 결론을 맺었다.
조제프가 아내 아니와 함께 찾아왔다. 경사와 경찰 세 명이 따로 따로 찾아와서 지폐 절반을 요구했다고 했다. 아니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이 어쨌든 약속은 지켰으니 돈을 주라고 했다. 실패한 것이 그들 잘못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일주일 전부터 평소에는 침대로 사용하는 외바퀴 손수레를 타고 뜰을 산책했다. 수레의 손잡이에 수직으로 고정시킨 나무 조각 두 개 사이에 천을 팽팽하게 묶어놓고 그 위에 두 발을 올린 채 누워 있었다. 그렇게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발이 부러진 뒤 2주일 정도 지나자 붓기가 반쯤 빠져서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발꿈치뼈 두 개가 부러진 사실을 알았다. 나는 남은 평생동안 평발로 지내게 되었다. (P326)
아랍인은 전보다 더 친절했다. 그는 전에 마튀레트가 한 일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주었다. 예심 판사를 맡은 대령이 누가 우리에게 배를 구해주었는지 알아내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뗏목을 만들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간수들을 습격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클루지오에게는 5년 그리고 마튀레트에게는 3년을 구형할 것이라고 했다.
“네 별명이 빠삐용(프랑스어로 빠삐용은 나비라는 뜻)이라며? 내가 기필코 두 날개를 잘라서 다시는 날지 못하게 해주지.”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이 될까봐 내심 두려웠다.
이제 법정에 서기까지는 두 달 남짓 남았다. 진작에 독화살을 하나라도 챙겨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독화살이 있었더라면 규율 구역에서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 나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걷기가 훨씬 더 편해졌다. 프랑수아 시에라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와서 장뇌유를 발라주었다.
그 마사지는 내 발과 정신에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살아가는 데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P340-341)
“격리자들, 너희도 알겠지만 이 집은 이미 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이 잘못을 했을 때 징계를 하는 집이다. 여기서는 애써 너희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걸 우리도 알기 때문이다. 대신 알아서 기도록 혼쭐을 내지. 이곳 규칙은 딱 한 가지다. 입 닥치고 절대 침묵할 것. 서로 연통하려다가 발각되면 아주 호된 벌을 받게 된다. 심하게 아프지 않은 한 의무실에도 갈 수 없다. 부당한 의료 요청도 처벌 대상이다. 내가 할말은 이것뿐이다. 아! 흡연도 엄격하게 금지된다. 간수들, 이들을 샅샅이 수색하고 각자 독방에 집어넣어라. 샤리에르, 클루지오, 마튀레트는 같은 건물에 두어선 안 된다.”
10분 후에 나는 A동 234호 독방에 수감되었다. 클루지오는 B동, 마튀레트는 C동에 배치되었다. 우리는 서로 눈길로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살아서 나가고 싶으면 그 비인간적인 규칙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나는 오랜 탈출 동지들이었으며 불평 한 마디 없이 나를 믿고 따라주었고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 자랑스럽고 용감한 동료들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로 힘을 합쳐 끈끈한 우정으로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했던 지난 열네 달을 떠올리니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독방 안을 꼼꼼히 살폈다. 전세계 자유의 어머니이자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낳았던 내 조국 프랑스 같은 나라가, 아무리 프랑스령 기아나라 할지라도 대서양의 버려진 작은 섬에 생 조제프 격리소 같은, 야만적으로 인간을 탄압하는 건물을 갖고 있을 거라고는 추측은커녕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P372-373)
독방 뒤편에서 뭔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저게 뭘까? 혹시 옆방 사람이 철창을 통해 내게 뭘 던진 걸까? 나는 그게 뭔지 분간하려고 애썼다. 어둠침침해서 흐릿하지만 길쭉한 것이 보였다. 막 주우려고 하는데, 그것이 벽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놀라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그것은 벽에 다다르더니 벽을 조금 기어오르다가 다시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벽이 너무 밋밋해서 쉽게 매달려 움직이질 못했다. 세 번을 거푸 벽을 따라 오르려다가 실패하고 네 번째 다시 떨어졌을 때 나는 그것을 발로 짓이겼다. 슬리퍼 밑이 물컹했다. 도대체 뭐지? 무릎을 땅에 대고 최대한 가까이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길이가 적어도 20센티미터는 되고 폭이 굵어 손가락 두 개 정도 되는 커다란 벌레였다. 주워서 변기 속에 집어넣기도 끔찍할 만큼 역겨웠다. 나는 얼른 발로 차 침상 밑으로 밀어넣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봐야겠다. 그동안 지네류의 벌레들은 숱하게 보아왔다. 벌레들은 으레 높은 지붕에서 떨어졌다. 나는 벌레들을 잡거나 밀치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벗은 몸 위를 기어다니도록 놔두는 법을 배웠다. 자칫 잘못해서 물리기라도 하면 얼마나 아픈지도 배웠다. 그런 종류의 혐오스런 벌레가 물면 불덩이처럼 열이 올라 열 두 시간 넘게 지속되고 거의 여섯 시간 동안은 몸이 뜨거워 죽을 지경이 된다. (P376-377)
강렬한 빛살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게 뭐지? 꿈속에서도 확실하게 지각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수감된 내 인생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내려다본 내 오른쪽 손등이 쭈글쭈글했다.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그 사이 내가 이렇게 늙어버렸구나. 시간이 어떻게 흐른 거지? 그때 나를 둘러싼 빛줄기가 점차 부드러워지며 하나의 영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 하느님. 이제야 저를 찾아주셨군요. 그런데 무력한 당신의 아들은 지금 너무도 슬프고 억울합니다. 제게 왜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 겁니다. 대답해주십시오. 맹세컨대, 주님. 저는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가련한 아들아, 너의 죄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인생을 낭비한 죄, 너는 그토록 소중한 네 젊음을 방탕하고 삿되게 흘려보냈다. 사랑과 용서를 위해 마련된 시간들을 분노와 마음으로 가득 채웠다. 자, 눈을 뜨고 보거라. 그러므로 네가 지은 죄는, 그 무엇보다 중한 것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굵은 눈물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그때 느닷없이 인간의 소리 같지 않은 끔찍한 소리가 날 깨워 퍼득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그 소리는 내 뒷방이거나 아니면 아주 가까운 방에서 들려왔다.
“개자식아, 여기 내 구덩이 속으로 내려와. 위에서 감시하는 데 지치지도 않냐? 이 구멍 속이 어두워서 볼거리를 반은 놓치잖아.”
“입 다물어. 안 그러면 호되게 혼이 날 줄 알아!”
간수가 말했다. (P400)
별들 속으로 여행한 덕분에 오랫동안 절망에 빠지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절망에 빠졌다가도 곧 극복하고 안 좋은 생각들을 몰아 내주는 상상의 여행을 다시 시작하곤 했다. 셀리에의 죽음은 그 날카로운 위기의 순간마다 나를 승리자로 느끼게 해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난 되뇌었다. 나는 산다, 산다, 나는 지금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아야만 한다. 살아야만 한다. 언젠가 다시 자유를 되찾기 위해 살아야만 한다. 내 탈출을 방해한 그놈은 죽어서 다시는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기필코 자유로워질 것이다. 어찌되었든 서른여덟에 나간다 해도 결코 늙은 나이도 아니고 다음 탈출은 더 나을 것이다. 분명히. (P501)
프랑스에서 전쟁이 터졌다. 그 바람에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탈출에 책임이 있는 장교들은 누구든지 파면된다는 규칙이었다. 그리고 탈출 도중에 잡힌 죄수들은 무조건 사형이었다. 탈출을 꾀한 사람은 자유프랑스군(드골이 독일에 저항하기 위해 망명지 런던에서 조직한 군대)에 합류하려 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었다. 탈출 외에는 무엇이든 묵인되었다.
프루예 소장은 두 달 전에 떠났고, 새로 온 신임 소장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난 달리 방법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8시에 생 조제프로 출발하는 배를 탔다.
내가 목숨을 구해주려 했던 소녀 리제트의 아빠는 이제 생 조제프 수용소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지난주에 가족과 함께 카옌으로 떠났다. 생 조제프 소장의 이름은 뒤탱이고 르아브르 출신이었다. 그가 날 맞았다. 나는 서류를 들고 나와 동행한 간수장과 함께 부두에 도착해서 그곳 간수에게 인계되었다.
“자네가 빠삐용인가?”
“네, 소장님.”
“아주 특이한 인물이군.” (P529)
베라 백작이 말했다.
“어쩌면 그게 석방될 방법일지도 몰라.”
바로 그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 전에는 어느 누구도 ‘석방’이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 가엾은 도형수들 모두에게서 희망의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드골 군대에 합류하려면 반란을 일으켜야 하는 거야? 빠삐용.”
“미안하지만 난 누구에게도 사면해달라고 할 생각 없어. 프랑스법에 ‘복권’이라는 말이 다 뭐야! 난 나 스스로 ‘복권’시킬 거야. 탈출해서 자유로워지면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보통 사람이 될 거야. 어느 누구도 다른 식으로는 해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난 탈출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지 할 거야. 제도를 드골에게 주든 말든 관심 없어. 또 너희들이 그런 일을 꾸민다고 해도 높은 데 앉아 있는 놈들이 뭐라 그럴지 알아? 너희들이 프랑스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들 스스로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제도를 탈취했다고 할걸. 게다가 누가 이길 줄 알고? 드골이? 아니면 페탱이? 난 전혀 모르겠어, 단지 내 부모, 내 누이들, 내 조카들을 생각해서 내 조국이 침략당한 것이 가슴 아픈 한심한 죄수일 뿐이야.”
“하기야 우릴 눈곱만큼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회를 위해서 이렇게 걱정하고 있어봐야 한심하기만 하지.”
“당연하지. 경찰들, 사법기관, 헌병들, 간수들, 그건 프랑스가 아니야. 그저 완전히 정신이 비뚤어진 사람들이 모인 다른 계급일 뿐이지. 그들 중 얼마나 많은 놈들이 지금 독일 놈들의 노예가 되려하고 있냐 말이야? 프랑스 경찰들이 동포들을 붙잡아서 독일 놈들한테 넘기고 있다니까? 다시 말하지만, 난 어떤 이유가 되었든 반란을 일으킬 생각 없어. 탈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대단히 진지한 토론이 계속 이어졌다. 드골 편과 페탱 편으로 나뉘어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제도에는 간수들에게나 죄수들에게나 라디오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우린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P554-555)
1.정신이상자들은 모두 끔찍한 두통에 시달린다.
2.귓속에서 윙윙대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3.신경이 몹시 예민하기 때문에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누워 있지 못하고 신경 발작으로 몸을 떨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온몸이 경직되고 경련을 일으킨다.
따라서 그 증상들을 직접적으로 알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발견되도록’ 해야 한다. 내 광기는 의사가 나를 수용소에 보낼 결정을 할 만큼 충분히 위험하되 구속복이나 구타, 금식, 약물주사, 지나친 냉욕 또는 온욕 처방을 받을 만큼 너무 과격해선 안 된다. 연기를 제대로 해서 군의관을 감쪽같이 속여야 한다.
나에게 유리한 점이 하나 있었다. 왜, 무엇 때문에 내가 미친 척을 한단 말인가? 의사는 그 질문에 대해서 아무런 논리적인 설명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분명히 승산이 있었다. 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그들은 나를 디아블로 보내기를 거부했다. 난 마튜가 살해된 뒤로는 더 이상 수용소 생활을 견딜 수 없었다. 이제 꾸물거릴 때가 아니다! 결심했다. 나는 월요일에 의사를 찾아갈 것이다. 아니다, 내가 직접 아픈 기색을 비쳐선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대신 알리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사람이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나는 방 안에서 비정상적인 두어 가지 속임수를 쓰기로 했다. 그러면 모범수가 간수에게 말할 테고, 간수는 나를 검진 명부에 기입할 것이다. (P574)
나는 요란한 바람과 파도 한가운데에서 힘껏 소리를 지르면서 그 친구가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거대한 파도가 우리를 통째로 뒤덮었다. 나는 있는 힘껏 우리의 뗏목을 떠밀었다. 그도 제대로 당겼는지 우리는 파도에 휩싸인 채 단숨에 그 바위 틈을 빠져나왔다. 그가 먼저 통 안에 올라갔고, 이번에 내가 올라가려는데 다시 거대한 파도가 뒤에서 덮치며 유난히 불쑥 튀어나온 뾰족한 바위를 향해 우리를 가뿐히 밀쳐냈다. 그 엄청난 충격에 통들이 산산 조각나고 말았다. 파도가 물러가면서 나는 바위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떠밀려갔다. 내가 막 헤엄을 치려는데 다시 한 번 파도가 덮치며 날 곧장 해안으로 실어갔다. 나는 말 그대로 바위 틈에 착륙했다. 그리고 다시 떠밀리기 전에 단단히 바위를 붙잡고 매달렸다.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채 간신히 그곳에서 빠져나왔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 바다에 뛰어든 장소에서 100미터 이상 떠밀려온 상태였다.
나는 정신 없이 소리쳤다.
“실비디아! 어디 있어?”
아무 대답도 없었다. 나는 아연실색해서 땅바닥에 누웠다. 바지도, 털스웨터도 없어지고 양말만 신은 알몸이었다. 맙소사, 내 친구는 어디로 갔지? 나는 다시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어디 있어?”
바람과 바다, 파도만이 내 말에 대답할 뿐이었다. 그곳에 얼마나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는지 모르겠다. 몸이나 정신이나 완전히 맥이 풀린 상태였다. 분을 못 이기고 목에 걸고 있던 작은 가방을 집어던지면서 울부짖었다. (P591)
디아블 섬은 살뤼 제도의 세 섬 중에서 가장 작은 곳이었다.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바람과 파도가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곳이기도 했다. 좁은 연안 평지가 바다를 따라 펼쳐지다가 갑자기 불쑥 솟은 높은 고원에 간수 초소와 10여 명의 도형수들이 쓰는 작은 막사가 하나 있었다. 디아블에는 공식적으로 평범한 죄수들은 보내지 않고 사형수와 정치적 이유로 유배된 죄수들만 보내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각자 함석 지붕을 얹은 작은 집에서 살았다. 월요일마다 일주일치 식량이 주어졌고 매일 빵 한 덩어리씩이 배급되었다. 리용 근처 어딘가에서 온가족을 독살시킨 레제르 박사가 의무관 역할을 했다. 정치범들은 일반 도형수들과는 어울리지 않았고, 이따금 카옌에 섬의 이런저런 도형수에 대해 항변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루아얄로 돌려보내졌다. (P599)
디아블을 떠나온 지 60시간이 되었다. 내가 바다에서 얼마나 멀리 들어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물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바닷가에 가서 몸을 말리고 햇빛을 쪼이기로 했다. 남은 물도 없었다. 마지막 남은 코코넛 과육 세 줌을 맛있게 먹고 상처에도 발랐다. 과육에는 기름이 많아서 화상을 진정시켜주었다. 그런 다음에 담배를 두 개비 피웠다. 나는 실뱅을 생각했다. 이번엔 아무런 이기심 없이, 친구 없이 혼자 탈출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깊은 슬픔만이 가슴을 옥죌 뿐이었다. 눈을 감았다. 마치 그러면 친구가 산 채로 매장되던 모습이 보이지 않기라도 할 것처럼.
자루는 나뭇가지 사이에 잘 고정시켜놓고 코코넛 하나를 꺼냈다. 열매를 다리 사이에 끼고 코코넛을 힘껏 내리쳐서 둘로 쪼갰다. 군도로 깨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편이 껍질을 까기가 훨씬 더 편했다. (P635)
“바다에서 발견되었을 때 어디에서 오는 길이었습니까?”
“프랑스령 기이나의 유형지에서요.”
“당신들이 탈주한 정확한 지점을 말씀해주십시오.”
“저는 디아블 섬에서, 나머지 두 사람은 프랑스령 기아나의 쿠루 근처에 있는 이니니 준정치범 수용소에서요.”
“당신의 형기는?”
“무기징역입니다.”
“동기는?”
“살인입니다.”
“중국인들은?”
“역시 살인입니다.”
“형기는?”
“무기징역입니다.”
“직업은?”
“전기공입니다.”
“저 사람들은?”
“요리사들입니다.”
“당신들은 드골 편입니까, 페탱 편입니까?”
“우리는 그런 건 전혀 모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부끄러움 없는 새 삶을 찾고자 하는 죄수들일 뿐입니다.”
“밤낮으로 열려 있는 감방을 내드리겠습니다. 지금 한 말을 확인한 다음에는 곧장 석방할 겁니다. 당신들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지금은 전시라 평상시보다 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드레 만에 우리는 풀려났다. (P684-685)
그는 나비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다시 말했다.
“얼마에 팔겠소?”
“언젠가 그렇게 드문 종류는 500달러는 나간다고 당신이 말하지 않았소?”
“나비 수집가들에게는 그런 얘기를 여러 번 했어요. 이 나비를 잡은 사람의 무지를 이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소.”
“그럼 500달러를 내든지, 아님 관두든지.”
“사겠소. 자, 여기 계약금으로 수중에 있는 돈 60달러를 주겠소. 영수증을 써줘요. 내일 잔금을 가져오겠소.”
“좋습니다. 저 나비는 다른 곳에 보관해두죠. 여기 영수증이오.”
이튿날 개점 시간에 맞추어 그 미국인이 왔다. 이번에는 돋보기를 들고 나비를 자세히 살폈다. 그가 그 나비를 뒤집어 볼 때는 조금 겁이 났다. 그는 아주 흡족한 얼굴로 내게 돈을 주고 자신이 가져온 상자에 나비를 담은 다음 영수증을 가지고 떠났다. 두 달 뒤 나는 형사들에게 체포되었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경찰 총감은 프랑스어로 내가 한 미국인에게 사기죄로 고소되었다고 설명했다.
“당신이 사기를 쳐서 500달러에 판 날개 붙인 나비 때문입니다.”
두 시간 후에 치치와 인다라가 변호사를 동반하고 찾아왔다. 변호사는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에게 나는 나비 수집가도 채집가도 아닌 만큼 나비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저 내 고객들인 채집가들을 돕기 위해 나비를 팔고 있었는데, 그 미국인이 먼저 500달러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그 나비가 진짜라고 생각했다면 거의 2,000달러의 가치가 있으니 오히려 그가 도둑이라고 주장했다.
이틀 뒤 나는 법정에 섰다. 변호사가 나 대신 통역을 해주었다. 나는 내 주장을 되풀이했다. 변호사는 나비들의 가격이 적힌 목록에서 그런 희귀 품종은 적어도 1,500달러 이상으로 적힌 내용을 증거로 제시했다. 결국 그 미국인이 법정비를 지불하고 200달러가 넘는 내 변호사의 수임료까지 지불했다.
모든 탈주한 프랑스인과 인도인들이 한데 모여 집에서 담근 파스티스로 내 석방을 축하했다. 재판을 지켜보았던 인다라의 가족 모두 집안에 대단한 사람이 들어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속지 않고 내가 날개를 붙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P712-713)
“우리보다 문명화된 사람들도 그들이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방에 가두었단 말입니다.”
서장이 말했다.
“문명이 뭡니까, 서장님?”
내가 물었다.
“엘리베이터나 비행기, 지하철을 갖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맞아 주고 치료해준 이 사람들보다 더 문명화되었다는 증거입니까? 제 짧은 소견으로는,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기계 문명의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이 공동체 사람들이야말로 더 인간적인 문명, 더 고귀한 정신, 더 넓은 이해심을 갖고 있습니다. 진보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대신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하는 어떤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박애 정신을 갖고 있단 말입니다. 저는 파리 소르본의 박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이 촌락의 문맹자가 되겠습니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방법조차 잃어버린 사람보다는 인간으로 사는 편이 낫단 말입니다.”
“당신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저기 트럭이 오는군요. 부탁이니 말썽 일으키지 말고 따라주십시오.” (P728-729)
내가 석방된 것은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반은 시민이, 반은 군대가 주도하는 쿠데타가 일어나 공화국 대통령이었으며 베네수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유주의자였던 앙가리타 메디나 장군을 하야시켰다. 매우 훌륭한 민주주의자였던 그는 그 쿠데타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자고 베네수엘라인들 끼리 피를 흘리게 하는 데 반대했던 모양이었다. 그 위대한 민주주의자 군인은 엘도라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혁명 한 달 수 장교들이 모두 바뀌었다. 니그로 블랑코를 찔렀던 죄수의 죽음에 대한 조사가 착수되었다. 소장과 그의 처남은 사라지고 예전에 외교관을 지낸 변호사 출신 소장으로 대체되었다.
“그래, 빠삐용, 내일 자네를 석방시킬 셈이네. 기왕이면 자네가 보살피는 그 가엾은 피콜리노를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네.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으니 내가 하나 내줌세. 자, 이건 자네 본명으로 만들어진 신분증이야. 대신 조건이 있네. 일년 동안은 작은 마을에서 살다가 그 다음에 큰 도시로 옮겨가게. 어느 정도 감시가 따르는 해방인 셈이야. 그동안 자네가 어떤 식으로 사는지 파악할 수 있지. 일년 후에 그 지방 경찰이 모범적인 시민이라는 증명서를 주면 그때는 그 ‘유폐’ 생활도 끝이 나는 거야. 내 생각엔 카라카스가 자네에게 이상적인 마을일 것 같군, 어찌되었든 자네는 그 지방에서 살아도 좋다는 합법적인 허가를 받은 거야. 우리는 이제 자네의 과거에 관심이 없네. 자네는 우리가 다시 기회를 주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했어. 5년 안에 새로운 조국에 귀화해서 진정한 나의 동포가 되기를 바라네.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이 가엾은 피콜리노를 돌봐주어서 고맙네. 피콜리노의 경우 누군가가 그를 돌봐주겠다고 나서야만 석방시킬 수가 있거든. 그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완치되기를 바라자고.”
이튿날 아침 7시. 나는 피콜리노와 함께 진정한 자유의 몸이 되어서 밖으로 나왔다. 심장이 뜨거워졌다. 마침내 내가 ‘나락의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승자가 된 것이다. 1944년 8월이었다. 13년 전부터 그날만을 기다려왔다. (P747-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