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오파드Il Gattopardo> 1963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버트 랭카스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알랭 들롱 주연의 1963년작 이탈리아-프랑스 합작 영화.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와 더불어 1960년대 이탈리아 시네마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시칠리아의 귀족 출신인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가 쓴 동명의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19세기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탈리아를 통일했던 시기의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쇠락해가는 귀족들의 모습을 오페라처럼 웅장하고 우아하게 그려냈다. 제1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그사이 영주가 일어섰다. 거구의 움직임에 충격을 받아 바닥이 흔들렸다. 순간이나마 인간과 인간이 만든 것들의 군주는 바로 자신이라는 확신에 그의 파란 눈이 자부심으로 빛났다. 묵주기도를 하는 동안 앞에 놓여 있던 의자에 두꺼운 빨강 기도서를 올려놓았고 무릎에 펼쳐 두었던 손수건도 제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새하얀 조끼에 넓게 번진 커피 자국을 다시 보고는 약간 불쾌해져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비만하지는 않았다. 키가 매우 크고 힘이 아주 셀 뿐이었다. 키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면) 샹들리에 아랫부분의 장미 장식에 머리가 닿을 정도였다. 그는 손가락만으로 두카토 금화를 휴지 조각처럼 구겨 버릴 수 있었다. 하인들은 포크와 숟가락을 가지고 살리나 저택과 은세공사의 가게를 바쁘게 오갔다. 주인이 식사 도중 치미는 화를 참느라 포크와 숟가락을 휘어 버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P12)
그가 식당에 들어섰을 때는 모두 모여 있었다. 영주 부인만 자리에 앉아 있었고 다들 의자 뒤에 서 있었다. 영주의 자리 앞쪽에는 옆구리가 불룩한 거대한 은제 수프 그릇이 놓여 있었는데 뚜껑에는 춤추듯 뛰어오르는 표범이 장식되어 있었다. 옆으로는 작은 수프 그릇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영주는 손수 수프를 덜어 주었는데, 이는 ‘파테르 파밀리아스,’ 즉 가장의 자랑스러운 임무를 상징하는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는 국자가 수프 그릇 안쪽에 세게 부딪히며 위협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동안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영주가 여전히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표시였다. 영주의 아들이 40년 후에 곧잘 회상했듯이,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소리보다 무시무시했다. 영주는 열여섯 살인 프란체스코 파올로가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프란체스코 파올로가 곧 들어와서 (“죄송해요, 아버지.”) 제자리에 앉았다. 영주는 프란체스코 파올로를 나무라지 않았지만, 양 떼를 지키는 개와 비슷한 역할을 맡은 피로네 신부는 고개를 숙이고 신의 가호를 빌었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지만 후폭풍 때문에 식탁이 얼어붙어 저녁 식사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영주는 푸른 눈을 반쯤 가느스름하게 뜨고 자식들을 하나씩 응시했고 자식들은 공포로 숨을 죽였다. (P24-25)
“물론 외삼촌이죠. 아이롤디 저택 검문소에서 부사관과 대화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요. 삼촌 연세에, 대단하세요! 신부님까지 동행해서! 다 늙은 바람둥이시네요!”
건방지다, 도를 넘었다. 탄크레디는 자신에게는 무엇이든 허용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고 눈웃음을 지으며 돈 파브리초를 똑바로 보았다. 눈까풀 사이로 짙푸른 눈동자, 그의 어머니와 같은 눈동자, 그러니까 돈 파브리초와 똑같은 눈동자가 보였다. 영주는 기분이 상했다. 이 아이는 정말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몰랐지만 나무랄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맞는 말 아닌가. (P38)
삼색기라고! 굉장하군, 삼색기! 그놈들은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악당들 같으니라고! 바보 같은 프랑스 깃발을 흉내 낸 세 줄 무늬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야. 금색 백합 문양이 새겨진 새하얀 우리 깃발하고 비교하면 쓰레기나 다름없지 않나? 어울리지도 않는 색깔이 서로 뒤섞인 깃발이 그자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나?’ 검은 새틴 재질의 넓은 넥타이를 맬 차례였다. 힘든 작업이어서 정치적인 생각은 잠시 미뤄두는 게 좋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감았다. 크고 우아한 손으로 주름을 만들고 매듭을 고르게 매만진 다음, 루비 눈이 박힌 작은 메두사의 머리를 실크 넥타이에 꽂았다. “깨끗한 조끼로 가져와, 이 얼룩 안 보이나?” 시종이 까치발로 서서 갈색 프록코트를 입혀 주었고 베르가모 향수 세 방울을 뿌린 손수건을 건넸다. 열쇠들과 회종시계와 지갑은 직접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외모는 여전히 훌륭했다. ‘늙은 바람둥이’라니, 악당 녀석 같으니라고, 그런 심한 농담을! 녀석이 나만큼 나이를 먹었을 때를 보고 싶군. 지금도 저리 말랐으니 그때는 뼈만 앙상하겠구먼.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살롱의 창문들이 달그락거렸다. 집 안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고 평온했으며 눈부시게 빛났다. 무엇보다 이 집은 바로 그의 소유였다. 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탄크레디가 한 말을 이해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라면.....” 탄크레디는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P40)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두 사람은 아르체트리 천문대에 신속히 보내야 할 외국의 보고서를 두고 의논했다. 계산의 결과인 수의 지지와 인도를 받는 별들, 지금 이 시간에 보이지는 않으나 존재하는 별들이 정확한 궤도에 따라 하늘에 선을 그리는 듯했다. 약속에 충실한 혜성들은 관찰자 앞에 정확한 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혜성은 스텔라의 생각과 달리 재앙의 전령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출현을 예측하는 일은 천체의 숭고한 일상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것의 일부가 되는 이성의 승리를 의미했다. ‘저 아래서 벤디코가 소박한 먹잇감을 쫓아 다니고 요리사가 무고한 가축의 살을 다지게 내버려두자. 이 위 관측소에서는 벤디코의 허세와 요리사의 잔혹함이 조용히 조화롭게 섞이니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오직 하나야, 가장 추상적인 순간에, 죽음과 유사한 순간에 이러한 정신의 삶을 계속 살 수 있느냐는 것이지.’
영주는 평상시의 망상과 변덕스럽던 어제의 욕정도 잊어버린 채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고해성사 때 피로네 신부에게 듣는 의례적인 말보다, 그런 추상적인 사유의 순간에 훨씬 더 편안하게 용서받는 듯했고, 다시 우주와 연결될 수도 있었다. 그날 아침 천장의 신들과 벽 위의 원숭이들은 다시 삼십 분 동안 숨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살롱에서는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P55-56)
사실 아무도 탄크레디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 심각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불안을 마음속 깊이 숨기고 있는 영주와 아름다운 얼굴에 그늘이 진 콘체타만 빼고 말이다. ‘저 아이가 그 녀석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둘이 좋은 짝이 될 거야. 하지만 탄크레디가 더 높은 자리를 원할까 봐 걱정이군. 더 낮은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말이야.’ 돈 파브리초는 타고나기를 선량한 사람이지만 그런 품성은 대개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오늘은 정치적인 상황을 파악해서 기분이 상쾌했기 때문에 안개가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내재된 선량함이 겉으로 다시 드러났다. 딸을 안심시키기 위해 국왕의 군대가 가진 산탄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설명해 주었다. (P57)
10분 후 일행은 람핀체리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에는 거대한 건물이 한 채 있었는데 1년 중 한 달, 수확 철에만 일꾼과 노새를 비롯한 가축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견고하지만 망가져 버린 문 위에서 돌로 만든 표범이 춤을 추었다. 표범의 다리는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부러져 있었다. 건물 옆에는 아까 본 유칼립투스나무들이 지키는 깊고 넓은 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아무 말 없이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헤엄을 치는 장소로, 가축의 갈증을 풀어주는 수조로, 감옥으로, 심지어 묘지로도 사용되었다. 갈증을 풀어 주고 전염병을 퍼뜨렸으며 감금된 기독교인들을 보호해 주기도 했다. 또한 죽은 사람이나 짐승들이 이름 없는 해골로 변할 때까지 그들을 숨겨 주었다. (P68-69)
흠잡을 데 없이 우아하고 단정한 탄크레디는 흙먼지 속에서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그는 말을 타고 일행들보다 30분 먼저 농장에 도착했다. 그래서 먼지를 털고 몸을 씻고 하얀 와이셔츠로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다. 그는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린 뒤 양동이 물에 얼굴을 잠시 비추었다. 그러자 오른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한 얼굴이 나타났다. 석 달 전 팔레르모 전투에서 눈썹 부위에 부상을 입었고, 치료하기 위해 안대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안대는 원래 목적보다는 그때 벌어진 일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짙푸른 왼눈은 짓궂게 반짝였는데, 일시적으로 가려진 오른쪽 눈의 짓궂음까지 표현할 임무라도 맡은 듯했다. 스카프 위의 진홍색 장식 띠는 가리발디 부대의 붉은 셔츠를 입었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는 영주 부인이 마차에서 내릴 때 손을 잡아 주었고, 외삼촌 중산모자의 먼지를 소맷자락으로 털어 주었다. 여자 사촌들에게는 사탕을 나눠 줬고, 사촌 남동생들에게는 농담을 했다. 예수회 신부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시늉을 했고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벤디코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마드무아젤 돔브뢰유를 위로하기도 했다. 모두에게 장난을 쳤고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P69-70)
“신부님, 빈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대사의 아내가 된 콘체타가 상상이 되시오?” 불시에 이런 질문을 받은 피로네 신부는 깜짝 놀랐다.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입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돈 파브리초는 설명하지 않고 다시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돈이라? 물론 콘체타에게도 지참금은 있다. 하지만 살리나 가문의 재산은 여덟 명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 게다가 딸들의 몫은 아주 적다. 그러면 탄크레디는? 탄크레디에게는 그런 돈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마리아 산타 파우의 경우 이미 자신의 영지가 네 개나 있고 삼촌들은 전부 사제이고 검소한 사람들이다. 수테라 가문의 딸들도 있는데, 모두 못생기기는 했지만 아주 부자였다. 사랑,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의 불길과 불꽃은 1년이면 꺼져 버리고 이후 30년은 그 재로 살아간다……. 어쨌든 탄크레디 앞에는 그런 여자들이 줄을 설 것이다. (P93)
오 분이 지나자 문이 열리고 안젤리카가 들어왔다. 첫인상은 충격적이었는데, 그만큼 눈부셨다. 살리나 가문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탄크레디는 관자놀이가 불끈 솟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보는 순간 안젤리카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나머지 남자들은 적지 않은 결함이 있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도 꼬투리를 잡지도 못했다. 거의 그 누구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녀를 평가하지 못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키가 크고 몸매가 좋았다. 크림색과 흡사한 피부에서는 신선한 크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어린아이 같은 입술에서는 딸기향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새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물결쳤고 새벽 별처럼 반짝이는 초록 눈은 석상의 눈처럼 움직임이 없었는데 약간 잔인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고 움직일 때마다 폭이 넓은 흰 드레스가 춤을 추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신하는 여자가 그렇듯이 침착했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그 집에 들어온 순간 긴장해서 기절할 뻔했다는 사실은 몇 달 뒤에야 알게 되었다. (P100)
안젤리카는 집에서 아주 거친 말들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성적인 풍자의 대상이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리고 마지막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참신한 농담이 좋았다. 웃음의 톤이 높아졌고 웃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탄크레디는 안젤리카가 떨어뜨린 깃털 부채를 주우려고 허리를 숙였다. 다시 일어섰을 때 빨갛게 달아오른 콘체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눈가에 작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탄크레디, 그런 추악한 이야기는 고해신부님께 하세요. 식탁에서 아가씨들에게 하지 말고, 적어도 내가 있을 때는 하지 마요.” 그러더니 등을 돌렸다.
돈 파브리초는 잠자리에 들기 전 잠시 옷방 발코니에 서 있었다. 아래 펼쳐진 정원은 어둠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힘을 잃은 공기 속에서 나무들은 녹여 놓은 납 같았다. 가까이에 우뚝 솟은 종탑에서 올빼미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저녁에 인사를 나누었던 구름들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죄가 크지 않아 진노한 신이 가혹하게 벌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 버렸다. 별들은 흐릿했고 별빛은 더운 공기를 뚫고 나오려 애를 썼다. 돈 파브리초의 영혼은 별들을 향해, 손으로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별들을 향해 달려갔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기쁨을 주며 거래 따윈 하지 않는 별들을 향해, 그는 수없이 그랬듯이 공상에 빠졌다. 순수한 지성인인 자신이 계산용 수첩을 들고 곧 차디차고 광활한 공간으로 가는 상상이었다. 수첩에 풀어야 할 계산은 어렵고 복잡하겠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잘 풀릴 터였다. ‘별들만이 순수하지. 유일하게 선량한 피조물들이지.’ 그는 세속적인 공식에 따라 생각했다. ‘어느 누가 플레이아데스성단의 지참금을, 시리우스의 정치 경력을, 베가의 부부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신경 쓰겠는가?’ 그날은 운수가 좋지 않았다. 답답한 속이 신경 쓰여 이제야 알아차렸는데, 뿐만 아니라 별들도 말을 해 주었다. 눈을 들 때마다 익숙하게 무리지어 제자리에 있는 별들이 아니라 한 개의 도형만 눈에 들어왔다. 위에 있는 두 개의 별은 눈이었다. 아래 있는 하나의 별은 턱이었다. 도형은 조롱하는 듯한 삼각형 얼굴로 보였는데, 혼란스러울 때면 그런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성좌에 투영되었다. 돈 칼로제로의 연미복, 콘체타의 사랑, 탄크레디의 노골적인 열광, 자신의 소심함, 안젤리카의 위협적인 아름다움까지, 나쁜 일뿐이다. 산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작은 돌들이 먼저 굴러떨어지지 않던가, 탄크레디! 그가 옳았다. 맞다. 그도 탄크레디를 돕겠지만 탄크레디가 다소 비열하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사실 자신도 탄크레디와 마찬가지였다. “그만하자, 자러 가자.”
벤디코가 어둠 속에서 무릎에 커다란 얼굴을 비볐다. “봐라, 벤디코, 너도 별들과 닮은 데가 있어. 행복하게도 세상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자초하지도 못하니까.” 어두워서 형체가 거의 보이지 않는 개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게다가 코와 같은 높이에 눈이 있고 턱도 없으니 이런 머리로는 하늘에 악령을 불러내지도 못하겠지.” (P108-110)
그의 서재를 나서면서 서로 윙크하며 허용된 만큼의 존경을 영주에게 표했으며, 자신들이 영주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음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통찰력이 빛을 잃어 가는 순간에 발휘된 자신들의 통찰력을 축하하기 위해 손을 비볐다. 반면 영주의 말에 울적해하며 떠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영주가 변절자거나 정신이상자라고 확신했으며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직 증명되지 않은 선보다 이미 알려진 악이 낫다는 오래된 속담을 따르기로 다짐했다. 이 사람들은 개인적인 이유에서도 국가의 새로운 현실을 인정하기를 꺼렸다.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기도 했고 구체제의 혜택을 받았으며 새 체제에 민첩하게 적응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혼란스러운 해방의 시기에 그들의 닭 몇 마리와 콩 몇 자루가 사라졌으며 자원병으로 구성된 가리발디 군대든, 강제 징집된 부르봉 왕조의 군대든 빌어먹을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적어도 십여 명은 ‘반대’에 표를 던질 것이라는 안타깝지만 분명한 인상을 받았다. 소수이기는 했지만 돈나푸가타의 유권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무시하기 힘든 숫자였다. 한편 자신에게 찾아온 사람들은 이 지방의 소수 엘리트이며, 팔라초에 올 꿈도 꾸지 않는 유권자 수백 명 가운데 찬성표를 던지리라 확신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고려해, 영주는 돈나푸가타에서 30표 정도의 반대표가 나오리라 예상했다.
국민투표 날은 바람이 많이 불고 흐렸다. (P137)
투표소의 문이 닫히고 개표 작업이 시작됐다. 밤이 깊어지면서 시청의 중앙 발코니 문이 활짝 열리더니 허리에 삼색 띠를 맨 돈 칼로제로가 나타났다. 촛대를 든 소년 두 명이 양쪽에 서 있었는데 촛불은 바람이 불어 금방 꺼져 버렸다. 어둠 속의 보이지 않는 군중을 향해 그가 돈나푸가타의 국민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등록 선거인 515명: 투표인 512명: ‘찬성’ 512명 ‘반대’ 0명 (P142)
“각하, 돈 칼로제로의 아내는 저를 빼고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집을 나서는 일이라고는 새벽 5시 첫 미사에 참석할 때뿐이랍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때지요. 오르간 연주를 하지 않는 시간인데 한번은 그녀를 보려고 일부러 일찍 일어났습니다. 돈나 바스티아나가 하녀와 함께 들어왔는데 저는 고해소 뒤에 숨어 있었던지라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사가 끝나자 그녀는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검은 베일을 벗었습니다. 맹세컨대, 각하,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바퀴벌레 같은 돈 칼로제로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겨 두려고 바깥출입을 못 하게 했다 해도 이해가 될 정도였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철통같이 비밀을 지키려는 집에서도 소문은 새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녀들의 입을 통해서 말이지요. 아마도 돈나 바스티아나는 짐승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읽고 쓸 줄도 모르고 시계도 볼 줄 모르며 말도 제대로 못 한답니다.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거친 암말 같다고 할까요. 딸을 예뻐할 줄도 모른다고 해요. 잠자리에만 능한 여자인 겁니다.”(P151)
서재로 이어지는 방 두 개를 지나면서 영주는 자신이 매끈한 털에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위풍당당한 표범이라고 착각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조그만 자칼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표범, 하지만 그와 같은 본성을 타고난 사람이 걸머진 십자가라고 할 법한 무의식적인 연상 작용에 의해 프랑스의 역사화 한 장이 머리를 스쳐 지났다. 깃털로 장식한 모자에 화려한 제복을 차려입은 오스트리아의 원수와 장군들이, 조롱하는 표정의 나폴레옹 앞에서 항복하는 그림이었다. 패자들은 분명 기품이 있었지만, 승자는 초라한 회색 외투를 입은 작은 남자였다. 부적절하게 떠오른 만토바와 울마의 그림에 기분이 상한 표범은 화가 나서 서재에 들어섰다. (P157-158)
프란체스코 파올로가 다가와서 자기소개를 하자 눈이 휘둥그래졌는데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정하고 솔직해 보이는 금발 머리 젊은이의 외모에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팔라초 살리나에 초대를 받아 숙박을 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고 마음이 놓였다. 어둠 속에서 팔라초까지 가는 길은 예의 바른 피에몬테 사람과 시칠리아 사람(이탈리아에서 가장 고집이 센)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활기를 띠었다. 가방을 서로 들겠다고 실랑이를 했는데 결국 아주 가볍기는 하지만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 두 경쟁자가 같이 들고 가기로 했다.
팔라초에 도착해서 첫 번째 뜰에 무장을 하고 서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수비대원’들의 얼굴을 보자 몬테르추올로의 슈발레는 다시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러다가 자신을 친절하게 맞이하는 영주와 함께 얼핏 봐도 화려한 방들로 인해 갑자기 정반대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피에몬테의 하급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자신의 땅에서 소박하지만 품위 있게 살던 슈발레는 이렇게 큰 집에 초대받은 적도 없거니와 소심한 성격 탓에 더욱 주눅이 들었다. 반면 지르젠티에서 들었던 피비린내 나는 일화와 그가 도착한 마을의 극도로 오만한 모습, 뜰에 진을 친 ‘도적들’(그는 그렇게 생각했다)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이런 상반된 감정에 시달리며 저녁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보다 훨씬 훌륭한 곳에 와 있는 사람의 불안과 아무 죄 없이 산적의 함정에 빠진 사람의 공포를 동시에 느낀 것이다. (P214-215)
“잠입니다. 친애하는 슈발레, 시칠리아인이 원하는 것은 잠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깨우는 사람들을 항상 증오할 겁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가져다준다 해도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새 왕국이 우리에게 줄 선물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듭니다. 시칠리아에서 본질은 꿈속에서 표현되며 가장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관능은 망각에 대한 갈망에서 탄생하며,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행위는 죽음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게으름, 향신료가 들어간 우리의 셔벗은 관능이 뒤섞인 부동의 상태에 대한 갈망, 한 번 더 말하지만 죽음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명상은 허무를 향해 있어서, 열반의 수수께끼를 탐색하고자 합니다. 특정 시칠리아 사람들, 반쯤 잠에서 깬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강한 권력을 갖게 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시칠리아는 예술이나 지적인 면에서 한 세기 늦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런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들이 죽었다고 느낄 때만, 삶의 흐름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만 매료됩니다. 여기서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동시대의 신화들이 만들어지는 믿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진정으로 오래된 것이라면 숭배할 만하지만, 그런 신화를 만드는 행위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음울한 시도일 뿐입니다. 죽었기 때문에 우리를 매료시키는 과거로 말입니다.” (P226-227)
저를 상원의원으로 생각해 주신 정부에 크게 감사드리며, 책임자께도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고 전해 주십시오. 하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부르봉 체제와 불가피하게 타협했고, 체면 때문에 애정 없이 거기에 묶여 있는 구계급의 대표자입니다. 저는 구시대와 신시대라는 두 마리 말 위에 걸터앉아 어느 쪽도 편치 않은 불행한 세대에 속합니다. 더군다나 당신이 분명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환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일 능력이 필요한데, 이렇게 미숙한 저를 상원이 어떻게 입법자로 받아들이겠습니까? (P229-230)
영주는 우울했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을 이렇게 지속되게 놔두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늘 지속되겠지. 물론 인간사라는 시각으로 볼 때의 ‘늘’이다. 100년, 200년…… 그후에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더 나빠질 게 분명해.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들 모두, 그러니까 표범, 자칼, 양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믿을 것이다.’ (P235-236)
그들은 소멸시키기 어려운 계급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고쳐 새롭게 하고 필요할 때는 잘 죽는 법, 다시 말해 마지막에 씨앗을 뿌리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프랑스를 보세요. 그들은 우아하게 학살당했지만, 지금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존속합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라고 말한 까닭은,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광대한 토지와 봉건적 권리가 아니라 차이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저에게 말해 줬는데, 파리에는 반란과 전제주의 때문에 망명을 떠나 비참한 신세가 된 폴란드 백작들이 있다고 해요. 이들은 마차꾼 일을 하지만 부르주아 고객을 찌푸린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이 불쌍한 고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마차에 오르고 교회에 들어간 개처럼 기를 못 펴는 분위기에 휩싸이는 거지요.
그리고 또, 돈 피에트리노,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데, 예전에 여러 차례 일어났듯이 이 계급이 사라진다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계급이 똑같은 장점과 똑같은 ‘결점’을 가진 채 즉시 형성될 겁니다. 이 계급은 더 이상 혈연에 기초하지 않을 겁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식에 기초하겠지요. 한 지역에 오래 존속해 온 역사나 어떤 성스러운 책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할 때 들먹이는 지식 말입니다. (P252-253)
폰텔레오네 팔라초의 무도회는 그 짧은 시즌에 열리는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가문과 팔라초의 화려함과 하객의 수 때문에 모두에게 중요했는데, 조카의 아름다운 악혼녀 안젤리카를 ‘사교계’에 소개해야 하는 살리나 가족에게는 더욱 중요한 행사였다.
10시 30분밖에 안 됐다. 언제나 파티가 모든 열기를 발산했을 때 도착하는 살리나 영주가 무도회에 나타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이번에는 세다라 가족이 입장할 때 그 자리에 있어야 했기에 달리할 수 없었다. 세다라 가족은 반짝이는 초대장에 적힌 시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아직 잘 모르지, 불쌍하게도.”) 초대장을 그들에게 마련해 주는 데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다. 아무도 그들을 알지 못해서 마리아 스텔라 영주 부인은 열흘 전에 마르게리타 폰텔레오네를 방문해야 했다. 물론 만사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탄크레디의 약혼 때문에 표범의 예민한 발에 박힌 가시 중 하나였다. (P271)
두 젊은이는 멀어져 갔다. 그들보다 덜 아름답지만 똑같이 감동적인 다른 쌍들도 지나갔는데, 제각기 맹목적인 순간에 몰두했다. 돈 파브리초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의 혐오는 두 어둠, 즉 태어나기 전의 어둠과 죽은 후의 어둠 사이에서 비치는 미약한 빛 한 줄기를 즐기려는 덧없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었다. 죽어야만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분노할 수 있을까? 그것은 비열한 짓이었다. 60년 전 시장 광장에서 사형수들을 모욕했던 생선 장수 여자들이 했던 짓처럼 말이다. 쿠션 의자에 앉은 작은 원숭이들과 멍청한 늙은이인 그의 친구들조차 도시의 밤거리에서 도살장에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들처럼 불쌍하고 죽음에서 구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느 날, 그가 세 시간 전에 산 도메니코 성당 뒤편에서 들었던 종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을 제외하고는 무엇도 증오할 수 없다.
그리고 살롱을 가득 메운 모든 사람들, 이 추한 여자들, 이 어리석은 남자들, 이 자만하는 두 남녀의 혈관에는 모두 같은 피가 흘렀고, 그들은 돈 파브리초 자신이었다. 그들을 통해서만 그는 자신이 이해되었고 그들을 통해서만 편안했다. ‘나는 아마도 저들보다 더 똑똑하고 확실히 더 교양 있을 테지만, 나는 저들과 같은 종족이며 저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P285-286)
때때로 그는 생명이라는 저수지가 수십 년간 내용물을 유출했음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피라미드만큼 큰 것이 아니라도 말이다.’ 더 자주 있는 일이지만, 어떤 때는 주변에서는 아무도 이런 느낌을 받지 않는데 거의 자신만이 이 지속적인 누출을 느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자기 주변에서 윙윙거리는 총알을 무해한 파리라고 착각하는 징집병을 노병이 경멸하듯 그는 다른 사람을 경멸할 이유를 거기서 찾기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이를 고백하지 않고 직감하지도 못하며 그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중 이를 직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세와 동일한 내세를 꿈꾸던 딸들 중 누구도 그토록 많은 법관, 요리사, 수도자, 시계공을 곁에 두고도 그러지 않았다. 스텔라마저도 당뇨병으로 인한 괴저로 잠식당하고 있어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생존에 비참하게 매달렸다. 탄크레디만이 겸연쩍게 “외삼촌, 죽음 양에게 구애하시는 건가요?”라고 농담했을 때 그것을 잠시나마 이해한 듯했다. 이제 구애는 끝났다. 아름다운 여인은 승낙을 했고, 마지막 탈출에 해당하는 기차 좌석 한 칸이 예약된 것이다. (P304-305)
돈 파브리초는 옷장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자기 자신보다는 자기가 입은 옷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었다. 큰 키가 더 껑충해 보였고 뺨은 푹 꺼졌으며 사흘이나 깎지 못한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라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파브리치에토에게 선물한 쥘 베른의 책 삽화에 나오는 광기 어린 영국인처럼 보였다. 꼴이 아주 엉망이 된 표범이었다. 하느님은 왜 아무도 제 얼굴로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까? 모두가 이렇게 된다. 사람은 죽을 때 얼굴에 가면을 쓴다. 심지어 젊은이조차도, 얼굴이 피범벅이 된 군인조차도 그렇다. 놀라서 도망친 말에서 떨어져서 사람들이 길바닥에서 일으켜 세웠을 때 얼굴이 일그러지고 짓이겨져 있었던 바울도 그랬다. 노인이 된 그에게서 도망치는 생명의 포효가 그렇게 우렁차다면, 젊은 몸에서 순식간에 비워지는, 속이 가득 찬 저장고가 내는 소리는 얼마나 요란할까? 그는 제 모습을 잃도록 변장을 강요하는 이 불합리한 규칙을 힘닿는 데까지 어기고 싶었다. (P309)
하지만 이것이 진실이었을까? 시칠리아만큼 진실의 수명이 짧은 곳은 없다. 사건이 오 분 전에 일어났는데 진정한 핵심은 이미 사리지고, 위장되고, 미화되고, 변형되고, 억압되고, 파괴된다. 환상과 이익에 의해서 말이다. 수치심, 두려움, 관대함, 악의, 기회주의, 자선, 선한만큼 사악하기도 한 모든 열정이 뛰어들어 진실을 산산조각 낸다. 요컨대 사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행한 콘체타는 반백 년 전에 표현되지 않았던, 그저 짐작에 불과한 감정의 진실을 찾고자 한 것이다! 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것의 불안정한 자리는 부인하기 어려운 고통이 차지해 버렸다. (P344)
이 소설의 이탈리아어 제목 ‘일 가토파르도(ll gattopardo)'는 원래 북아프리카 북단에 서식하는 고양잇과 맹수인 서벌(serval)을 뜻한다. 다소 낯선 이 제목은 이탈리아 이외의 나라에서는 주로 생김새가 비슷하고 잘 알려진 ’표범‘으로 대체되었다. 1963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에 의해 각색되어 영화화됐고 영어권에서는 이 소설이 <레오파드(The Leopard)>로 소개되었는데, 영화의 큰 성공이 소설 제목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다. 가토파르도(서벌)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작가의 이름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람페두사섬은 작가의 출신 집안의 근거지였고, 이 가문의 문장에 가토파르도가 새겨져 있었다. 바로 이 가토파르도 문장이 소설에서 살리나 가문의 문장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표범>은 람페두사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만큼 작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작가는 천문학자였던 증조부 줄리오 파브리초 디 람페두사를 모델로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20여 년 동안 했고 그 결과 자신의 집안 이야기들을 허구로 재구성한 <표범>을 완성한 것이다. (P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