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룸> 2015년
엠마 도노휴의 <룸>은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났던 충격적인 밀실 감금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영화 <룸(Room)> 감독은 레니 에이브라함슨이 제작하였고, 브리 라슨, 제이콥 트렘블레이, 조안 알렌등이 출연했다. 브리 라슨은 제88회 아카데미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오늘 나는 다섯 살이 되었다. 어젯밤 옷장에 자러 들어가기 전에는 네 살이었는데, 오늘 어둠 속에서 눈을 떠보니 짠. 다섯 살이었다. 그전에는 세 살, 그전에는 두 살, 그전에는 한 살, 그전에는 영 살이었다.
“그럼 마이너스인 적도 있었어?”
“응?”
엄마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하늘나라에 있을 때 말이야. 마이너스 한 살, 마이너스 두 살, 마이너스 세 살 이런 식으로....”
“아니, 땅에 내려오기 전에는 나이를 세지 않아.”
“난 채광창을 통해서 내려왔다고 했잖아. 내가 엄마 배 속에 생기기 전까지 엄마는 정말 슬펐다면서.”
“그럼.” (P9)
“열 살이 되면 훨씬 클 거야.”
“그래?”
“자라고 계속 자라서 사람으로 변할 거야.”
“음, 넌 지금도 사람인걸. 우리 둘 다 사람이야.”
우리를 가리키는 단어는 ‘진짜’일 텐데. 텔레비전 안 사람들은 그냥 색깔로 만들어진 거고.
“응, 내가 소년을 또 낳으면, 그 애도 진짜 사람이 될 거야. 아니면, 거인이 될 거야. 착한 거인. 여기까지 자라야지.”
나는 풀쩍 뛰어서 침대 벽 높은 곳, 거의 지붕이 비스듬히 시작되는 곳 가까이 손을 짚었다.
“근사한데.”
엄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안 좋은 말을 했다는 뜻이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난 채광창을 뚫고 바깥 세계로 나가서 행성 사이로 슉슉 자랄 거야. 도라랑 스폰지밥이랑 내 친구들을 찾아가야지. 강아지 러키랑 같이.” (P26)
벌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늘 벌레와 이야기하고 숫자를 세기도 한다. 지난번에는 347까지 세었다. 스위치 끄는 소리가 들렸고, 거의 동시에 전등불이 꺼졌다. 엄마가 담요 밑에 들어가는 소리.
어느 날 밤에 문틈으로 올드 닉을 본 적은 있었지만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다. 머리에는 흰 머리가 섞여 있었고, 머리카락이 귀보다 짧았다. 눈을 마주치면 돌로 변할지도 모른다. 좀비는 아이들을 물어서 죽지 않는 시체로 만들고, 흡혈귀는 흐늘흐늘해질 때까지 피를 빨아먹고, 괴물은 다리를 붙들고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거인들도 못지않다. 산 놈이든 죽은 놈이든 뼈를 갈라서 빵 반죽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잭은 금빛 암탉과 함께 도망쳐서 콩나무를 타고 얼른 내려갔다. 거인도 뒤따라 내려갔지만, 잭은 엄마에게 도끼를 가져다달라고 외쳤다. 도끼는 칼과 비슷하지만 더 큰 거다. 잭의 엄마는 무서워서 직접 콩나무를 자르지는 못했지만, 잭이 땅에 내려오자 힘을 합쳐서 찍어 넘겼다. 거인은 내장을 토해내고 납작해졌다. 하하, 그렇게 잭은 거인을 죽였다.
엄마가 벌써 잠들었는지 궁금했다. (P46-47)
옷장 안에 들어가면 자야 하지만, 나는 몇 번 싸웠는지 세어보았다. 사흘 동안 세 번이었다. 한 번은 초 때문에, 한 번은 쥐 때문에, 한 번은 러키 때문에. 다섯 살이 된다는 게 하루 종일 싸워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다시 네 살이 되고 싶었다.
“잘 자, 방아.”
나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잘 자, 전등아, 풍선아.”
“잘 자, 화덕아. 잘 자, 식탁아.”
엄마가 말했다. 나는 씩 웃었다.
“잘 자, 글씨 공아. 잘 자, 요새야. 잘 자, 깔개야.”
“잘 자, 공기야.”
“잘 자, 온갖 소음아.”
“잘 자, 잭.”
“잘 자, 엄마. 참, 벌레들도. 벌레들 잊지 마.”
“잘 자라. 잘 자라. 벌레야, 물지 마.” (P72-73)
엄마가 없어지는 날은 정말 싫지만,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는 건 좋다. 나는 아주 조용히 틀었다가 한 번 조금 소리를 높였다.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면 좀비가 될 수도 있지만, 엄마는 오늘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데 좀비 같다. <건축가 밥>과 <출동! 원더펫>, <바니>가 나왔다. 나는 일일이 만지면서 인사를 했다. 바니와 친구들은 자주 껴안았는데 나도 그 속으로 달려갔지만 가끔은 너무 늦었다. 오늘은 밤에 몰래 나타나서 오래된 이빨을 돈으로 바꾸어주는 요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도라를 보고 싶었지만, 도라는 나오지 않았다.
목요일은 세탁을 하는 날이었지만, 나 혼자 할 수는 없었고 엄마는 계속 담요 속에 누워 있었다. 다시 배가 고파져서 시계를 보았더니 9시 47분밖에 되지 않았다. 만화가 끝났기 때문에, 나는 풋볼과 사람들이 상을 타는 세계를 보았다. 부풀린 머리를 한 여자가 빨간색 소파에 앉아서 골프 스타였던 남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목걸이를 들어올리면서 얼마나 섬세한지 말하는 세계도 있었다. “바보들.” 엄마는 이 세계를 보면 늘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계속 보고 있다는 것도, 내 뇌가 썩기 시작하는 것도 몰랐다.
텔레비전이 어떻게 진짜 물건들을 그린 걸까? (P98-99)
“엄마도 그 엄마 배 속에서 자랐어?”
“응, 그렇지는 않아. 난 입양됐어. 우리 엄마랑 아빠. 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해. 그리고 폴이라는 오빠도 있었단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폴은 성자야.”
“아니, 다른 폴이야.”
어떻게 폴이 두 명 있을 수 있을까?
“넌 폴 삼촌이라고 불러야 해.”
이름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꽉 찼다. 사과를 다 먹었는데도 배속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점심은 뭘 먹어?”
엄마는 웃지 않았다.
“이건 네 가족에 대한 이야기야.” (P134)
“왜 엄마는 여기서 사는 게 싫어?”
엄마는 일어나 앉아 티셔츠를 내렸다.
“난 안 끝났어.”
“끝났어. 네가 이야기를 시작했잖아.”
나도 앉았다.
“왜 나랑 같이 방에서 사는 게 싫어?”
엄마는 나를 단단히 잡았다.
“엄마는 언제든지 너랑 같이 있는 게 좋아.”
“하지만 방이 작고 구리다고 했잖아.”
“아, 잭.”
엄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난 바깥에서 사는 게 더 좋아. 하지만 너랑 같이.”
“난 엄마랑 같이 여기 있는 게 좋아.” (P138)
나는 속삭였다. 어쩌면 바다에서 다시 붙어서 천국에서 자랄지도 모른다. 바다는 진짜다! 기억이 났다. 바깥세상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진짜였다.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내가 보았으니까. 엄마와 나는 비밀번호를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갈 수가 없지만, 그래도 진짜였다. 문을 열 수 없다는 데 화가 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일단 바깥세상을 다 담으려니 내 머리가 너무 작았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생각했지만, 이제 다섯 살이 되었으니 나도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곧바로 목욕을 했다. 물에서 김이 뭉게뭉게 올랐다. 이야! 우리는 욕조가 넘칠 정도로 물을 가득 채웠다. 엄마는 뒤로 누워 거의 잠들 뻔했다. 나는 머리를 감으라고 엄마를 깨웠고, 엄마는 내 머리를 감겨주었다. 세탁도 했지만 수건에 건 머리카락이 있어서 떼어내어야 했다. 우리는 더 빨리 떼어내기 내기를 했다. (P160-161)
“지금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해요. 알잖아요.”
올드 닉은 무슨 소리를 냈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마치 우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데려가지 않으면 아이는.....”
“히스테리 그만 부려.”
“제발 이렇게 빌게요.”
“안 돼.”
나는 없는 사람처럼 그냥 가만히 축 늘어져 있었다.
“불법체류자라서 서류가 없다고 해요. 지금 말도 못하는 상태니까 수액만 좀 놓고 바로 다시 데려오면 되잖아요.”
엄마의 목소리가 그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제발, 뭐든지 할게요.”
“너하고는 말이 안 통해.”
그는 문 옆에서 용건 끝났다는 투로 말했다.
“가지 마세요, 제발.”
뭔가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겁이 나서 눈도 뜰 수가 없었다.
엄마는 울부짖고 있었다. 삑삑, 쾅! 문이 닫혔고, 우리는 둘 만 남았다. (P191)
“엄마한테 말하듯이 그 사람들에게 말해봐. 내가 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뭐라고 말할래?”
“우리가 납치당했어요.”
“아니, 내가 그 집이나 차, 도로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너랑 엄마가…….”
나는 다시 말했다.
“너랑 엄마가…….”
“아니, 넌 ‘우리 엄마랑 내가’라고 해야지.”
“너랑 내가…….”
엄마는 숨을 내쉬었다.
“좋아, 됐어. 그냥 쪽지를 주면 되겠다. 쪽지는 아직 안전하지?”
나는 속옷 안을 보았다.
“없어졌어!”
엉덩이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나는 쪽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앞쪽에다 보관해. 혹시라도 떨어뜨렸으면 이렇게 말해. ‘나는 납치당했어요!’ 말해봐. 그냥 그 말만.”
“나는 납치당했어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또렷하고 크게.”
“나는 납치당했어요.”
나는 소리쳤다.
“아주 잘했어. 그러면 그들이 경찰에 연락할 거야. 경찰은 방 을 찾을 때까지 집집마다 뒷마당을 수색할 거고.”
그리 확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내가 상기시켜주었다.
“토치로.”
우리는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죽은 척하기, 트럭, 빠져나오기, 뛰어내리기, 달리기, 사람, 쪽지, 경찰, 토치. 아홉 가지였다. 머릿속에 한꺼번에 다 넣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당연히 할 수 있지, 넌 엄마의 영웅이니까, 다섯 살이니까, 라고 했 다. 아직 네 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P209~210)
공기가 달랐다. 깔개 안은 아직 먼지 냄새가 났지만 코를 약간 들어보니 공기가..... 바깥 공기였다. 이게 현실일까? 움직이지 않았다. 올드 닉은 그냥 서 있었다. 왜 뒷마당에 그냥 서 있는 거지, 뭘 하려고?
다시 움직였다. 뻣뻣하게 뻣뻣하게, 아야! 뭔가 딱딱한 것이 밑에 닿았다. 소리는 내지 않은 것 같았다. 내 귀에는 안 들렸다. 입술을 깨문 것 같았다. 피 맛이 났다.
다시 삑 소리가 들렸지만 조금 달랐다. 금속처럼 쨍그랑거리는 소리, 다시 위로 올라갔다가 얼굴을 아래로 하고 떨어졌다. 이야. 아야. 쿵. 그때 내 얼굴 아래에서 모든 것이 흔들렸고 고동치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지진이다.
아니, 트럭이야. 틀림없어. 엄마가 입으로 부 했던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수백만 배나 더 강했다. 엄마! 나는 머릿속에서 외쳤다. 죽은 척하기, 트럭, 아홉 개중에서 두 개다. 나는 엄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갈색 트럭 뒤에 있었다. 난 방 안에 있지 않아. 아직 나는 나일까?
이제 움직였다. 나는 트럭을 타고 진짜, 진짜로 휭 달리고 있었다. 아, 이제 빠져나오기를 해야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뱀처럼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지만, 깔개가 왠지 모르게 더 단단하게 조여져 있었다. 끼었어. 엄마, 엄마. 연습을 그렇게 하고 또 했지만 연습했던 대로 나올 수가 없었다. 전부 다 틀렸어. 미안해. 올드 닉이 나를 데려가서 땅에 묻고 벌레들이 몸속을 들락날락 하겠지. 나는 다시 울고 있었다. 콧물이 흘렀고 팔은 가슴 밑에서 꼬여 있었다. 깔개는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깔개와 싸웠다. 가라테 선수처럼 발로 찼지만 깔개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깔개는 바다에 던져지는 시체의 옷이었다. (P220-221)
트럭은 다시 멈췄다. 뛰어내릴 수가 없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겨우 일어서서 저쪽을 바라보았지만..... 나는 미끄러져서 트럭에 부딪혔다. 머리가 단단한 데 부딪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 멈췄다. 쇳소리. 올드 닉의 얼굴. 그는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화난 얼굴을 하고 트럭에서 나왔다. 뛰어내리자, 땅에 부딪히자 발이 꺾이고 무릎이 부딪히고 얼굴이 까졌지만 나는 달리고 달렸다. 누군가를 찾아, 엄마가 사람이나 자동차나 불 켜진 집에 고함을 지르라고 했어. 자동차 한 대가 보였지만 안이 캄캄했고, 내 입도 머리카락으로 가득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계속 달렸다. 진저잭, 날쌔게, 재빠르게. 엄마는 같이 없지만 내 머릿속에 있다고 약속했다. 달려라. 달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는 올드 닉이었다. 그는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기세로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아서 도와달라고 외쳐야 하는데 누군가가 없어. 사람이 없었다. 영원히 이렇게 달려야 할 것 같았지만 숨이 차고 앞도 보이지 않았다. (P223-224)
경찰은 숨을 내쉬었다. 내 대답이 도움이 된 것 같지 않았다. 다른 경찰은 남자 같았다. 그런 머리카락은 진짜로 본 적이 없었다. 거의 속이 비쳐 보일 것 같은 색이었다. 그가 말했다.
“여기는 나바호 가와 앨콧 가 근처. 정신상태가 불안한 아동 발견. 가정폭력으로 추정된다.”
전화기에 대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앵무새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단어였지만 뜻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오. 경관에게 다가갔다.
“뭐 좀 나왔어?”
“그다지.”
“목격자도 마찬가지야. 용의자는 백인 남성. 키는 5피트 10인치 정도. 40대에서 50대 사이. 황갈색 혹은 진갈색 트럭으로 현장에서 도주. 포드 F-150 혹은 램 차량일 가능성이 있음. 차량번호는 K93, B 혹은 P. 주 이름은 없음.”
“너랑 같이 있던 남자는 네 아빠야?”
오 경관이 다시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난 아빠가 없어.” (P233-234)
오 경관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가득 찼다.
“워싱턴 가 349번지. 뒷마당에 헛간. 채광창에 불이 켜져 있군. 이 집이야.”
“워싱턴 가 349번지.”
남자 경찰이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계속해.”
그는 거울을 통해 뒤쪽을 보았다.
“소유주의 이름은 일치하지 않지만 백인 남성. 생년월일은 61년 10월 12일.”
“차량은?”
“계속해.”
그는 전화기에 대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2001 실버라도. 갈색. K93P742.”
“좋았어.”
오 경관이 말했다.
“지금 가는 중이다. 워싱턴 가 349번지로 지원 바람.”
차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런 뒤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있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우리는 멈췄다. 오 경관은 어느 집 창문을 살폈다.
“불이 모두 꺼져 있어.”
“그가 방 안에 있어. 엄마를 죽일 거야.”
하지만 울음 때문에 말이 녹아 내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 뒤에 이 차와 똑같이 생긴 다른 차가 왔다. 더 많은 경찰들이 내리고 있었다.
“여기 꼼짝 말고 있어야 돼, 잭.” (P244-245)
닫혀 있던 문 하나가 열리고 있었다. 차고 같은 커다랗고 검은 사각형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쳐다보았더니 눈이 따끔거렸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왔지만, 처음 보는 다른 경찰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오 경관이 나왔고 그 옆에.....
나는 자동차 문을 주먹으로 마구 두드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유리창을 부수고 싶었지만 안 됐다. 엄마!
엄마가 문을 열었고 나는 밖으로 떨어질 뻔했다. 엄마는 나를 붙잡고 안아들었다. 정말 엄마였다. 100퍼센트 살아 있는 엄마였다.
“우리가 해냈어.”
같이 차 뒷자리에 앉은 뒤, 엄마는 말했다.
“아니, 사실은 네가 해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계속 계획을 망쳤어.”
“네가 엄마를 구했어.”
엄마는 내 눈에 키스하고 나를 꼭 안았다.
“올드 닉이 거기 갔어?” (P247)
“소송 말인가요? 난 그런 건 별로 안중에 없어요.”
엄마는 그에게 말했다. 코를 푼 휴지를 보여주었더니 엄마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모리스는 고개를 많이 끄덕였다.
“미래를 생각하셔야 한다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당신과 아이 둘 다요.”
나다, 아이는.
“네. 당장은 컴벌랜드가 진료비 청구를 연기하고 있고 제가 당신 팬들을 상대로 후원금 계좌도 만들어놨지만, 조만간 상상조차 못할 청구서가 날아올 겁니다. 재활, 값비싼 치료, 주택, 두 분의 교육비.”
엄마는 눈을 비볐다.
“재촉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까 제 팬이라고 했나요?”
“그럼요. 후원 물품이 하루 한 자루 꼴로 답지하고 있습니다.”
“뭐가 오는데요?”
“온갖 게 다 와요. 집히는 대로 들고 왔는데.”
그는 커다란 비닐 가방을 의자 뒤에서 들어 올리고 꾸러미들을 꺼냈다.
“열어보셨군요.”
엄마는 꾸러미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걸러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배설물도 있고..... 그건 약과예요.”
“왜 누가 우리한테 똥을 보내?”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모리스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엄마는 그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어려운 단어도 알아요.”
“아, 왜 보내느냐고. 잭? 바깥에는 미친 사람들이 많거든.”
미친 사람들은 모두 이 클리닉 안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대부분 진심에서 우러난 선물입니다. 초콜릿, 장난감 같은 거요.” (P317-318)
“1월쯤? 재판은 빠르면 10월에 있을 겁니다.”
모리스가 말하고 있었다. 타르트 재판에서 도마뱀 빌은 손가락으로 글을 써야 했지. 배심원석을 무너뜨렸을 때 앨리스는 실수로 빌을 거꾸로 앉히지. 하하.
“아뇨. 그게 아니라, 그는 얼마나 오래 감옥에 갇혀 있을까요?”
올드 닉을 말하는 것이다.
“음, 검사는 25년에서 종신형을 예상하고 있고, 연방법상 가석방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성폭행을 이유로 한 납치, 불법감금, 수차례에 이르는 강간, 폭행.”
그는 머릿속으로 세지 않고 손가락으로 세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는요?”
“잭이요?”
“첫 아기요. 그건 살인에 해당하지 않나요?”
이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모리스는 입을 비틀었다.
“그건 살아 있는 상태로 태어나지 않았으니까요.”
“물건이 아니라 여자아이였어요.”
누가 여자아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과실치상인데요.”
그들은 앨리스의 키가 1마일 이상이라는 이유로 법정에서 퇴장시키려고 했다. (P323-324)
“자, 그 지옥에서 2년이라는 소중한 젊음을 보낸 뒤에 두 번째로 임신하신 걸 아셨는데요. 혹시 그런 기분이 든 적이 있으셨나요? 억지로 그 남자의…….”
엄마가 끼어들었다.
“난 구원받은 기분이었어요.”
“구원받았다, 아름답군요.”
엄마는 입술을 비틀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어요. 난 열여덟 살에 낙태를 했지만 그건 후회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부풀린 머리를 한 여자는 입을 약간 벌렸다. 그러다 그녀는 종이를 내려다보고 다시 엄마를 보았다.
“5년 전 그 추운 3월의 어느 날 당신은 원시적인 조건에서 혼자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셨습니다. 그것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나요?”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최고의 일이었죠.”
“아, 물론 그러셨겠지요.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니까요.”
“네. 하지만 제게, 잭은 모든 것이었어요. 난 다시 살게 됐답니다. 중요한 것이 생긴 거죠. 그래서 그 뒤에는 얌전하게 굴었어요.”
“얌전하게? 아, 그러니까.”
“잭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생각뿐이었어요.” (P374~375)
엄마는 깨지 않았다. 신음소리를 내지도, 돌아눕지도 않았다. 내가 잡아당겨도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완전히 없어져 있었다.
“엄마, 엄마.”
좀비 같았다.
“노린?”
나는 외치면서 문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안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린!”
그녀는 복도 끝에 있다가 돌아섰다.
“엄마가 토를 했어.”
“괜찮아. 우리가 얼른 치울게. 카트를 가져오마.”
“아냐, 빨리 와봐!”
“알았어, 알았어.”
노린은 불을 켜고 엄마를 보더니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전화를 들었다.
“긴급, 긴급, 7번 병실. 긴급.”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엄마의 약병이 식탁 위에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병은 비어 있었다. 두 알 이상은 금지, 그게 규칙이었다. 어떻게 비어 있을 수가 있지? 약은 어디로 갔을까? 노린은 엄마의 목 옆을 누르고 엄마의 다른 이름을 부르며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내 말 들려요? 내 말 들려요?”
엄마는 들리는 것 같지 않았다. 보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소리쳤다.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많은 사람들이 달려 들어왔다. 그중 한 사람이 나를 복도로 끌고 나갔다. 있는 힘껏 ‘엄마’라고 외쳤지만 그 소리에도 엄마는 깨어나지 않았다. (P401-402)
엄마와 나는 바다에 있었다. 나는 엄마의 머리카락에 치렁치렁 얽혀서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냥 악몽을 꾼 거야. 엄마가 여기 있다면 이렇게 말해줄 텐데. 엄마는 없었다.
나는 누워서 다섯 손가락, 다섯 손가락, 다섯 발가락, 다섯 발가락을 세고 하나씩 흔들었다. 머릿속으로 말을 해보려고 했다. 엄마? 엄마의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날이 점점 밝아지자, 나는 담요를 얼굴에 덮고 어둡게 했다. 없어진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 것이다. 사람들이 속삭이면서 돌아다녔다.
“잭?”
할머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여서 나는 몸을 웅크렸다.
“기분이 어떠니?”
나는 예의를 기억했다.
“오늘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P410-411)
나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사 사이로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뚫을 수 없었던 벽과 바닥의 비밀 벽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이제 우린 나왔는데, 내가 엄마를 구했는데, 엄마는 더 이상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큰 소녀가 그네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아래 위로 움직이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기구 위에 두 소년이 올라타고 쿵쿵거리면서 웃다가 일부러 떨어졌다. 나는 이빨을 스무개까지 세고 한 번 더 세었다. 울타리를 붙잡고 있으니 내 손가락에 흰 줄이 생겼다. 나는 한 여자가 아기를 데리고 미끄럼틀에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기는 터널로 기어들어갔는데 아기 엄마는 옆에 난 구멍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아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척했다. 큰 소녀는 그네만 탔다. 어떨 때는 머리카락이 진흙 속에 파묻힐 뻔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얼굴이 위를 보기도 했다. 두 소년이 서로 쫓으며 손을 총처럼 만들어서 쏘아댔는데 한 소년이 넘어져서 울었다. 그는 문으로 달려가서 어느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할머니는 소년이 저기 사는 모양이라고 했다. 어떻게 알지? 할머니는 속삭였다. (P416)
세상에는 거의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고 시간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할머니도 종종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직업이 없다.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일도 하면서 살기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방 안에 있을 때 나랑 엄마한테는 모든 것을 할 시간이 있었다. 시간은 버터처럼 길과 집, 놀이터, 가게, 온 세상에 아주 얇게 퍼져 있어서 한곳에 아주 조금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서둘러 다음 장소로 옮겨가야 하는 것이다.
가는 모든 곳마다 아이들이 있었다. 어른들은 대부분, 부모들조차도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귀엽다, 예쁘다고 하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똑같은 일을 계속시켰지만, 같이 놀아주려고 하지는 않고 다른 어른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가끔 작은 아이가 울고 있어도 그 아이 엄마는 듣지 못했다. (P458-459)
밤에 나는 속삭였다.
“아직 잠이 안 와.”
“알고 있어. 나도 그래.”
우리 침실은 ‘엄마의 방’이고, 엄마의 방은 독립생활공간에 있고, 독립생활공간은 미국에 있고, 미국은 폭이 수백만 마일이나 되고 계속 빙글빙글 도는 파란색과 녹색 공이라는 세상에 박혀 있다. 세상 바깥은 바깥 우주다. 우리가 왜 떨어지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중력 때문이라고 했다. 중력은 우리를 땅에 붙어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지만 느낄 수는 없다.
하느님의 노란 얼굴이 떴다. 우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매일 아침 조금씩 더 빨라지는 거 알아차렸니?”
우리 독립생활공간에는 창문이 여섯 개 있었고, 모두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지만 어떤 것들은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창문은 욕실 창문이었다. 건물 공사장이 있어서 크레인과 굴착기가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딜런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들도 좋아했다. (P492-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