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2022년

by 노용헌

爲人民服務 [wèi rénmin fǘwù, 웨이 런민 푸우]

1.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2. 1944년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이 발표한 유명한 정치 슬로건

3. 개인의 행복보다 혁명의 대의와 사회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중국군의 책무를 담은 국민적 구호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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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중국의 특수한 시대와 배경에서 일어났던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혼의 감옥이었지만 이런 감옥이 단지 중국인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렇겠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한 권력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정치와 국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의 감옥은 필연적으로 견고한 담장을 갖추게 됩니다. 이 보이지 않는 감옥의 담장 안이 바로 인간 정신과 문화의 또 다른 아우슈비츠가 되는 것이지요. 소설속에서 주인공들이 연역해내는 진실하면서도 황당한 이야기는 사실 갇힌 사랑이 하늘을 향해 외치는 절규이자 십자가에 매달린 인간의 존엄이 모든 사람을 향해 호소하는 구원일 것입니다. 소설에 담긴 모든 망설임과 타협과 배반도 자신이 처한 사회 환경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어쩔 수 없는 흐느낌이자 반성일 것입니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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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삶의 많은 진실을 유일하게 대변한다. 그렇다면 소설의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기로 하자. 어떤 진실한 삶의 모습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면 이는 소설 속 사건이기도 하고 삶 속 사건이기도 하다. 혹자는 삶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소설 속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단장 집에서 취사를 담당하는 고참 공무분대장 우다왕(吳大旺)이 채소 바구니를 들고 사단장 집 부엌 입구에 서 있을 때, 사건은 또르르 굴러와 마치 수소 폭탄이 터지듯이 요란하게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원래 식당의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붉고 큰 글씨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이번에는 타일이 입혀진 부엌 부뚜막 위에 놓여 있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글씨 왼쪽에는 다섯 개의 붉은 별이 빛을 발하고 오른쪽에는 물병 달린 장총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풍성하게 수확한 보리이삭이 새겨져 있었다. 사단 전체가 본받아야 할 모범 인물이요, 전형적인 조직형 인물인 고참 공무분대장은 이 나무팻말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남달리 알고 있었다. 다섯 개의 별은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고 물병과 장총은 전투와 역사, 그리고 길고 험난한 혁명의 역정을 의미했다. 또한 보리이삭은 풍성한 수확과 아름다운 미래, 공산주의자가 실현된 이후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세월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P15-16)


“훌륭하군, 아주 훌륭해. 우리 집 공무원 겸 취사원이 그들보다 깨달음의 수준이 훨씬 높군.”

우다왕은 사단장이 말하는 그들이 누군지 알지 못했지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고, 묻지 말아야 할 말은 묻지 않으며,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는 군대의 규칙에 따라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사단장과 그의 부인에게 줄 국을 끓이기 위해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나무팻말은 식초병과 고춧가루 병, 참기름 병과 나란히 식탁 위를 차지하며 ‘식탁 가족’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빛나는 일원이 되었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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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과장이 물었다.

“사단장님 댁에서 일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엇인가?”

그가 대답했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관리과장이 되물었다.

“그게 전부인가?”

“사단장님의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관리과장이 말을 받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일세. 모든 말을 실행에 옮기고 구호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단 말일세.”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언행이 일치하고 표리(表裏)가 동일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상과 전문지식을 두로 갖춘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럼 됐네. 그만 가보게. 자네가 우리 중대와 고향에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를 기다리고 있겠네.”

우다왕은 경비중대를 떠나 사단장 집에 배치되었다. (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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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왕이 혼돈에 사로잡혀 있던 바로 그때, 류롄은 애정의 도화선을 조용히 점화하고 있었다. 우다왕은 조금 전 자신이 제자리에 갖다놓은 나무팻말이 응접실 중앙 계단 아래 있는 사각형 나무기둥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붉게 칠해진 계단에는 세월에 부식되어 상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은밀하게 속살을 드러낸 채 영화 속 자산계급 여인의 그린 눈썹처럼 숨어 반짝거리며 이 집 안 모든 것을 관찰하고, 혁명가의 일기처럼 혁명가의 역사와 행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우다왕은 나무팻말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는 지금 그녀가 자신에게 명령한 것이고, 자신을 부른 곳에는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엄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물통을 내려놓고 긴급명령을 받은 사람처럼 서둘러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반 년 전 처음 사단장 사택에 오던 날을 떠올렸다. 사단장은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위층의 일은 아무것도 신경 쓸 게 없네. 내 아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는 한, 위층에는 한 발짝도 올라가지 말게.” (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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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우, 자네가 사단장 사택에서 일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녀가 되물었다.

“사단장님과 사단장님의 가정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아주 똑똑하군.”

그녀는 불쾌감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을 다시 폈다. 바람에 날린 실크드레스 자락이 들려 올라갔다가 다시 주저 앉았다. 정말 큰누나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우다왕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보다 몇 살이나 많지?”

“모릅니다.”

“겨우 네 살이야. 그러니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게 맞겠어, 아니면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어?”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침대 머리맡에 있던 수건을 집어 우다왕에게 건네며 말했다.

“땀이나 닦아. 내가 자네를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그래? 기왕 나를 사단장의 부인으로 모신다면 사단장의 질문에 대답하듯이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봐.”

우다왕이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P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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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뜻은 매일 씻느냐는 거야.”

“매일 씻습니다.”

“그럼 가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 팻말이 식탁 위에 없으면 내가 시킬 일이 있으니 위층으로 올라오라는 뜻이라는 걸 잊지 마.”

우다왕은 도망치듯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주방의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푸푸 소리를 내면서 얼굴 가득한 땀을 씻어냈다. (P47)


우다왕은 중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마시던 고참병들을 에돌아 아무도 없는 연병장 남쪽 구석으로 걸어가 땅바닥에 혼자 쭈그리고 앉았다. 달빛에 비춰진 그는 아주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랑과 성욕, 혁명과 생존의 정의, 그리고 성장의 도덕과 이익의 원칙을 탐구하고 있었다. 등급과 직책, 인성과 본능의 심오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놓고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문제들은 모두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은, 더럽고 오염된 구름이 되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먹구름이 사라지듯 그의 머릿속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류롄의 하얗고 뽀얀 피부와 유혹적인 몸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정말로 그녀와 그런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사단장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하는 문제였다. 머릿속에서 모든 복잡한 문제가 단순하고 거칠게 잔가지 치고 나니, 물이 다 빠진 뒤에 바위가 드러나듯이 마지막에 중요한 문제들이 오롯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다왕은 정확하게 모순을 파악하고 있었다. 모순의 한쪽은 달콤하고 상리를 초월한 현묘함에 빠지게 하며 현실의 모든 이유를 잊게 해주는 반면, 다른 한쪽은 자신을 두려움과 공포로 몰고 가 마치 형장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를 떠올리게 했다.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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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원은 점점 더 목소리를 높였다.

“우다왕 자네는 사단장이 집에 없다고 류롄을 제대로 모시지 않은 모양이군. 류롄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 사단장께서는 베이징에서 회의와 학습을 진행하시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이고, 사단장께서 마음을 놓지 못하시면 사단 전체의 업무와 학습, 전투준비와 훈련에 영향을 미치게 될걸세. 사단의 전투준비와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군단의 작전능력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군단의 작전능력이 약해지면 전군의 전략과 배치에 영향을 미치게 되겠지. 그러다가 정말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우다왕 자네는 자네 한 사람의 작은 일이 얼마나 거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깨닫게 될걸세. 그때는 우다왕 자네를 100번 총살시킨다 해도 충분치 못할 것이고 지도원인 내가 총살당하는 것으로도 부족할 것이며 중대장이 총살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랄 거야.”

지도원의 장황한 연설은 계속되었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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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지도원은 우다왕을 불러 그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아나?”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사업 가운데 매일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빛과 열정을 봉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지요. 자신의 효심을 모두 부모님께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좋아, 아주 훌륭하군.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야. 게다가 깊은 깨달음과 이상까지 담겨 있어.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결합한 점이 가장 훌륭하네. 단지 어휘 선택에서 남을 섬기는 것과 효도하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

그 뒤로도 지도장은 심사숙고하여 우다왕을 정식으로 취사분대 부분대장으로 임명했다. (P96-97)


인생이 원래 유희인지 아니면 유희가 인생을 대신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유희와 인생이 서로 구별할 수 없이 한데 뒤섞여 하나로 합쳐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부여해준 배역이 인간인지 아니면 사회가 인간의 무대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사회가 바로 무대이기 때문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배우가 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사랑의 아름다움 때문에 필연적으로 광기가 도출되는 것인지 아니면 성적 본질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강물이 흐르며 그 수원이 어디인지 알 필요가 없고 물이 흐르며 어떻게 강이 되는지 알 필요가 없다. 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강은 비로소 무에서 유로 완성될 수 있을 뿐이다. 전후의 인과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는 일이 있다. 발생했으면 그냥 발생한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이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이 가는 것이다. 우다왕과 류롄의 정욕도 항상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P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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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식당 입구에서 식탁 위에 놓인 나무팻말을 힐끗 쳐다보며 우다왕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우다왕이 입고 있던 땀투성이 군복을 그녀에게 벗어 건네며 말했다.

“이봐요. 이 옷 좀 빨아줘요.”

그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한참 미동도 하지 않다가 물었다.

“뭐라고?”

그가 다시 말했다.

“더워 죽겠어요. 가서 내 옷 좀 빨아달라고요.”

우다왕은 휴가 때 집에 돌아가 보리를 베고 난 뒤 수레 가득 보리를 싣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옷을 벗어 주면서 옷을 빨고 밥을 차리라고 말할 때와 똑같이 행동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사단장의 부인이었다. 류롄은 잠시 멍하니 낯선 사람 바라보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구름과 안개가 일었다가 금세 걷혔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가 건네주는 땀투성이 군복도 받지 않았다. 대신 반쯤 조롱 섞인 미소를 짓더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팻말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물건들을 품에 안고 욕실로 가버렸다. (P16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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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사단장이던 현임 사단장이 진급하면서 어느 날 식사를 마치고 다른 몇몇 수장과 함께 이곳에 잠시 서 있다가 이리저리 지형을 살피고 정황을 물어본 다음 이렇게 말했다.

“마오 주석께서 말씀하시길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 마치 커다란 짐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과 같아서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더할 수도 있고 덜할 수도 있다고 하셨소. 어떤 사람은 무거운 것을 두려워하여 짐을 살짝 들어보고는 무거운 것은 남에게 맡기고 자신은 가벼운 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는데, 이는 절대로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하셨소. 한편, 누릴 만한 것은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자신은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는 동지도 있소. 이들은 항상 고통에는 앞장서고 누리는 데는 맨 뒷전에 서는 사람들이오. 이런 동지야말로 훌륭한 동지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공산주의 정신이오.”

사단장은 마오 주석의 어록을 외우고 난 뒤 신혼의 아내 류롄이 타주는 오후차를 마시러 1호 원자로 돌아갔다. (P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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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래층 응접실과 방, 벽, 모든 대야와 항아리, 상자와 의자, 마오 주석이나 혁명 위인들과 연관 있는 모든 것이 불타거나 파괴되었다. 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본 류롄은 마오 주석의 초상이나 어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부엌으로 달려가 마오 주석의 어록이 새겨진 그릇마저 남김없이 깨버렸다. 마오 주석의 어록이 박힌 새 알루미늄 냄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또 트렁크와 옷장을 전부 뒤져 신성하고 장엄한 기물들을 찾았다. 그러다가 정말로 더는 찾을 것이 없자 식당으로 달려가 식탁 위에서 방금 전까지 자신들의 성애의 물증이 되었던 나무팻말을 집어 들어 땅바닥에 내던지려 했다. 바로 그때 그가 한 걸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손에 든 나무팻말을 빼앗아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말했다.

“샤오우, 이걸 내가 산산조각 내면 안 된다는 거야?”

그가 말했다.

“네, 그건 남겨두고 싶어요.”

“그걸 남겨둬서 뭐하게?”

“뭘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남겨두려는 거예요.” (P202)


“류롄 누님,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언제 갈 생각인데?”

“내일, 사단장님이 돌아오시기 전에요.”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그를 품에 안고는 머리를 틀어 그의 어깨 위에 얹으면서 말했다.

“두려워? 내가 있잖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걸 다 제대로 처리해놓을 테니까 말이야.”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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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아직 경비중대의 존망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조직개편으로 사단 내 인원이 조정되었고 간부 요원 충원은 전부 취소되었다. 간부 선발을 위한 모든 방법과 절차도 이미 동결된 상태였다. 결국 우다왕에게 주기로 했던 간부 자리도 물거품된 것이다. 대신 사단장의 묵인과 류롄의 적극적인 추천 덕분에 모범 공무원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사단장은 이미 관련 부서에 지시하여 우다왕의 직장을 고향 소재지인 옛 도시로 배치하고 그의 아내와 아이들의 호구를 시내로 편입시켰다. 이로써 우다왕의 가족은 농민 신분에서 벗어나 적당한 일자리를 배정받게 되었다.

네 번째로 군 정예화 작업은 이미 시작되어 올해 고참 병사 퇴역도 앞당겨졌다. 사단장 사택의 공무원도 잇달아 교체되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업무에 서툴고 지나치게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을 쓰다보니 오히려 사단장의 화를 돋우는 일이 잦았다. 류롄이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면 공무원이 서너 번은 바뀌었을 것이다.

지도원은 우다왕에게 이런 사실들을 전하며 더 이상 사단장의 집에서 일할 필요가 없으며, 중요한 일이 아니면 사단장의 사택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타일렀다. (P2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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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 지난 날 오후, 우다왕은 정식으로 부대를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도원과 중대장이 그를 찾아왔다. 지도원이 그에게 말했다.

“우다왕, 한턱 내게. 조직에서 자네의 직장과 자네 가족의 호구를 모두 도시로 옮기는 수속을 마쳤네. 어디로 배정됐는지 아나? 자네 가족은 그 도시에서 가장 큰 동방홍(東方紅) 트랙터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네. 자네가 얻을 공장장의 직위는 성장이나 군단장보다 높다네.”

중대장이 이어 말했다.

“한턱 내는 건 안 해도 되네. 가면 돈 쓸 일이 많을 테니 부대에서 아낄 수 있는 건 최대한 아끼도록 하게. 어서 짐을 챙기게. 그곳에서 자네에게 모레까지 도착하여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네. 오늘 중으로 기차를 타야 내일 겨우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 걸세.”

이들의 대화는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했다. 지도원과 중대장은 이렇게 몇 마디 나눈 뒤 우다왕이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P27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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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우다왕의 머리와 외투 위로 부드럽고 가벼운 눈이 하얗게 쌓였다. 그는 좀 춥다고 느껴질 때까지 문 앞에 조용히 서서 기다렸다. 발을 굴러 추위를 좀 달래보려는 차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초병이 나와 제본용 핀 두 개로 입구를 봉한 편지 한 통을 건네며 말했다.

“류롄 사모님은 지금 안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중이라 나오실 수 없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게 하는 것도 곤란하다면서 편지를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시면 편지에 적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꼭 처리해드리겠다고 하시면서요.”

우다왕은 편지를 받아 들고 한참을 주저하다가 열어보았다. 편지에는 아주 간단한 한마디가 쓰여 있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편지에 써서 전해줘. 돈이 필요한 거면 정확한 액수와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어줘.

눈꽃이 휘날리는 대문 앞에 서서 우다왕은 문 안쪽을 바라며 꼼짝 않고 있었다. 얼굴에는 어찌 할 수 없는 창백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잠시 뒤, 그는 편지를 접어 다시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외투 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싼 팻말을 꺼내들었다. 두께가 반 치쯤 되고 너비는 세 치, 길이는 한 자 두 치쯤 되는 것이 마치 특별히 제작한 선물용 담배상자 같았다. 그는 그 팻말을 초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류롄 누님에게 좀 전해주게.” (P298-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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