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줄에 걸린 소녀> 2018년
총 10부작으로 기획됐던 ‘밀레니엄’ 시리즈 완성 전 작가 스티그 라르손은 시리즈의 3부 원고를 넘긴 후 출간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밀레니엄’ 시리즈는 출간 후 전 세계를 사로잡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그 후 4권이 출간됐다. 작가는 사망했지만 스티그 라르손을 잇는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배턴을 이어받아 제 4권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내놓은 것이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2009년 유럽에서 영화화됐고, 2012년 할리우드에서도 데이빗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로 개봉한 바 있다(핀처는 <거미줄에 걸린 소녀>에서 제작을 맡았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지만, 처음 보는 관객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프란스 발데르는 늘 스스로를 형편없는 아버지로 여겨왔다.
아들 아우구스트가 어느새 여덟 살이 되었는데 프란스는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아버지 구실을 하려고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의무들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자신의 의무라고는 생각했다. 어린 아들은 전처와 그녀의 애인이자 기분 나쁜 인간 라세 베스트만의 집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프란스는 실리콘밸리의 직장을 그만두고 고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 그는 좀 막막한 심정으로 스톡홀름 아를란다 공항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날씨는 고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폭풍우가 사납게 얼굴을 때리는 가운데 그는 과연 자신이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 수백 번도 더 생각해보았다. (P13)
미카엘 같은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생각이었다. <밀레니엄>은 그가 오랜 세월 변함없이 열정을 바쳐온 대상이었고, 그의 삶에서 가장 드라마틱했거나 행복했던 사건들 역시 대부분 <밀레니엄>과 관계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심지어는 <밀레니엄>을 향한 그의 애정마저도 그랬다. 게다가 요즘은 탐사 보도기자들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시절이 아니다.
야심 차게 기획해 출간한 책들은 하나같이 출혈이 너무 컸고, <밀레니엄>과 저널리즘에 대한 자신의 비전이 고차원적인 관점에서는 멋있고 진지해 보일지 몰라도, 잡지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거실로 가 창밖으로 리다르피에르덴만을 바라보았다. 바깥에는 한창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P23)
지난 금요일 오후, 오베가 컨설턴트를 고용해 시장조사를 의뢰한 후 그 내용을 월요일에 발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미카엘은 아무 말 없이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서 왜 <밀레니엄>이 기존의 노선을 고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격정적인 연설 문안을 다양하게 생각해보았다. 지금 외곽 지역에서는 소요가 일어나고 있다! 외국인 혐오를 공공연히 표방하는 정당이 의회에 있다! 이 나라에 불관용의 경향이 커져가고 있다! 파시즘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고 있으며, 사방에 노숙자와 걸인이 널려 있다! 여러 면에서 지금 스웨덴은 부끄러운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그는 웅변적인 표현들을 만들어보면서,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말들로 <밀레니엄> 편집부뿐만 아니라 세르네르 미디어 그룹 사람들까지 미망에서 깨어나 일제히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설득력이 없다면 이런 말들은 아무런 무게도 지닐 수 없음을 그도 잘 알았다. Money talks, bullshit walks! 잡지는 먼저 돈을 벌어야 했다. 그다음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세상의 이치가 그랬다. 그러니 격정적인 연설문을 작성하려고 애쓰기 전에 좋은 기삿거리를 찾아야 했다. 직원들에게 다시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중대한 폭로기사, 그러면 시장조사 결과가 어떻다느니, 잡지가 낡아빠졌다느니 하면서 오베가 지껄일 잡소리에 더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겠지. (P26-27)
“솔리폰? 그가 일했던 곳인가요?”
“네, 이상한 일이었죠. 말씀드렸다시피 프란스는 IT 대기업들에게 구속당하는 걸 항상 거부해왔거든요. 아웃사이더로 머물러야 한다.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 상업적 세력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같은 말을 그처럼 많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기술을 몽땅 도둑맞고 모두가 진창에 빠진 상황에서 난데없이 솔리폰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예요.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죠. 물론 고액 연봉에 전적인 자율권을 약속하면서, 자신들을 위해 일해주기만 한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했겠죠. 엄청 솔깃했을 거예요. 그런 제안이라면 누구도 거부하기 힘들죠. 단, 프란스만 빼고요. 그는 이미 구글이나 애플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제안을 여러 번 받고도 거절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솔리폰에 관심이 생긴 걸까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짐을 싸서 떠나버렸죠. 내가 듣기로 처음에는 모든 게 순조로웠나봐요. 프란스는 그곳에서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켰고, 회장인 니콜라스 그랜트는 이제 그 기술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일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들 모두가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죠. 그런데 뭔가가 일어난 거예요.”
“거기에 대해 당신은 별로 아는 게 없고요.”
“그렇죠. 그와 연락이 끊겼어요. 사실 프란스가 세상과 연락을 끊은 거죠. 하지만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난 건 확실합니다. 그는 항상 솔직함을 강조했어요. ‘대중의 지혜’나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일의 중요성, 혹은 리눅스의 사고방식 따위를 열정적으로 얘기하고 다녔어요. 하지만 솔리폰에 가서는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고수하면서 가장 가까운 동료들에게도 그랬던 모양이에요. 그러다 쾅, 사표를 내버린 겁니다. 다시 스웨덴에 돌아온 후로는 살트셰바덴에 있는 자기집에만 처박혀 있어요. 정원에도 나가지 않고, 외모 역시 전혀 신경쓰지 않고요.” (P54-55)
물론 그날 리누스의 집에 왔다는 여자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가능한 일이지만 개연성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아니라면 누가 그렇게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남의 집에 불쑥 들어갈 수 있을까? 과연 집주인을 다짜고짜 쫓아내고 남의 컴퓨터 속 비밀을 샅샅이 뒤질 수 있을까? 대체 누가 “너랑은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 눈곱만큼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리스베트뿐이었다. 그리고 그 별명 ‘삐삐’.... 그건 바로 리스베트 자체였다.
피스카르가탄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 문패에는 ‘V. 쿨라’라고 적혀 있었다. 미카엘은 그녀가 본명을 쓰지 않으려는 이유를 잘 알았다. 이 나라에서 벌어진 가장 끔찍한 사건들과 결부된 그 이름은 너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물론 그녀가 연기처럼 증발해버린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룬다가탄에 있었던 그녀의 집에 찾아가 자신을 샅샅이 뒷조사한 그녀에게 한바탕 화를 냈던 그 시절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본 적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조금 이상했다. 어쨌든 리스베트는 미카엘 자신에게..... 그래, 그 자신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P62)
자폐아의 아버지로서 그는 일찍부터 서번트 증후군에 관심이 있었다. 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심각한 인지적 결함을 지녔지만, 특정 영역에서는 놀라운 기억력이나 극도로 세밀한 관찰력 같은 예외적 능력을 보인다고 알려졌다. 프란스는 일종의 보상으로 아이에게 그런 진단이 내려지기를 많은 부모가 바랄 거라고 짐작했지만, 실제 현실을 보면 그럴 공산이 크지 않다.
일반적인 추산에 따르면, 자폐아 열 명 중 한 명만이 서번트 증후군에 속한다. 그리고 영화 <레인 맨>의 주인공처럼 굉장한 재능을 보이는 건 극히 일부다. 그중에는 수백 년 --극단적인 경우에는 4만 년-- 가운데 특정한 날의 요일을 알아맞히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버스 시간표나 전화번호부 같은 한정된 영역에서 백과사전식 지식을 보유한 사람들도 있었다. 아주 큰 수를 암산하거나, 자신들이 살아온 과거의 날씨를 전부 기억하거나, 시계를 보지 않고도 현재 시간을 초 단위까지 정확히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듯 다양하고 기이한 재능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프란스가 알기로 이런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보통 서번트라고 불렀다. 즉 특정 영역에서 보이는 뛰어난 능력이 전반적으로 지닌 장애와 큰 대조를 이루는 사람들이었다.
이보다 희귀한 범주도 있었는데, 프란스는 바로 자신의 아들이 거기 속한다고 믿고 싶었다. 이른바 ‘천재 서번트’라 불리는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보나 경이롭다고 할 재능을 지녔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킴 피크가 그러했다. 그는 혼자 옷을 입지도 못하는 중증 발달장애인이었다. 하지만 1만 2천 권에 달하는 책의 내용을 정확히 기억했으며, 그 어떤 질문에도 즉각 답변했다.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데이터베이스라 할 수 있었던 그의 별명은 ‘컴퓨터’였다. (P80-81)
그들이 막강한 기관들을 엿 먹인 게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그들이 속한 폐쇄적 조직인 ‘해커 공화국’에서도 많은 멤버들이 이 일에 반대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크게 반대한 사람은 바로 와스프였다. 그녀는 그 어떤 기관이나 개인을 충분히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저 재미를 위해 피해를 주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유치한 해킹을 싫어했다. 폼 좀 잡아보려고 슈퍼컴퓨터를 해킹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항상 뚜렷한 목표를 원했고, 그 빌어먹을 ‘결과 분석’이라는 걸 체계적으로 해왔다. 단기적 욕구 충족을 장기적 위험과 비교해보았고, 그렇다면 NSA를 해킹하는 게 분별 있는 짓이라고는 누구도 주장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아마 자극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혹은 요즘 사는 게 지루해 권태에 짓눌려 죽지 않으려고 작은 혼란을 일으키고 싶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해커 공화국의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듯 NSA와 싸움을 시작한 그녀가 개인적 복수를 위해 이번 해킹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이 가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의 아버지 살라첸코가 예테보리 살그렌스카 병원에서 살해당한 이후 개인적으로 그 일을 조사하는 중이라고. (P103)
물론 해커 공화국의 그 누구도 이 문제에서는 그렇게 모범적인 존재라고 자부할 수 없었다. 그들 모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영역들에 거리낌없이 침입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게임의 룰이라 할 수 있다. 해커는 의도가 좋든 나쁘든 경계선을 뛰어넘는 존재, 공과 사의 경계 따위 신경쓰지 않고 오직 해킹 활동 그 자체만을 위해 규칙을 파괴하고 지식의 한계를 넓히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도 윤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권력, 특히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어디까지 부패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반항아나 무법자라 할 만한 개인들이 아닌, 시민을 통제하고자 하는 거대 국가기관들이 가장 심각하고도 파렴치한 수준의 해킹 활동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플레이그, 트리니티, 밥 더 도그, 플리퍼, 조드, 캣을 비롯한 해커 공화국의 멤버들은 NSA를 해킹해 한바탕 휘저어놓기로 뜻을 모았다. (P104)
한편으로 리스베트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잠시 망설여졌다. 하지만 공격을 시작하면 바라던 대로 그곳에 대소동이 벌어질게 분명했다. 그녀는 지금이 몇 시인지, 며칠인지, 심지어는 봄인지 가을인지도 잘 몰랐다. 다만 마치 오늘의 이 공격에 보조를 맞추듯 바깥에서 폭풍우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사실만을 깊은 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저멀리 메릴랜드 --볼티모어 파크웨이와 메릴랜드 32번 도로가 만나는 그 유명한 교차로 부근--에서 에드 더 네드가 메일을 한 통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다음 순간 그녀가 통제권을 빼앗아 글을 써나갔기 때문이다.
......... 국민을 감시하는 자는 결국 국민에게 감시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 논리 아닐까요?
아주 짧은 순간, 그녀는 자신의 문장이 정곡을 찔렀다는 생각을 했다. 강렬한 복수의 쾌감을 느꼈고, 뒤이어 NSA 시스템 전체를 돌아보는 여행에 에드 더 네드를 초대했다. 그들은 함께 춤추고 또 날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기밀로 남아야 하는 데이터들이 꽉 찬, 푸른빛이 명멸하는 그 세계 전체를 통과했다. (P112-113)
이 특이점, 지점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지금까지 알려진 물리법칙들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이 특이점은 이른바 ‘사건의 지평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이른바 ‘블랙홀’을 이룬다. 리스베트는 블랙홀을 좋아했다. 그것들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줄리 태멋처럼 리스베트 역시 블랙홀 그 자체보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밝혀진 우주의 거대한 영역에서 시작된 별들의 붕괴가, 양자역학 법칙이 지배하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끝을 맺는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이 과정을 묘사할 수만 있다면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라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두 이론을 통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빌어먹을 암호화된 파일처럼 그녀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므로 결국 꿈에 나왔던 아버지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P149)
본명이 리스베트 살란데르인 그녀도 떠올랐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녀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새로운 뭔가가, 익숙하면서도 기이한 뭔가가 느껴졌다. 그러다 불현 듯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 그녀는 아우구스트를 생각나게 했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얘기였다. 아우구스트는 자폐증이 있는 어린 남자아이였다. 그렇게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없고 소년 같은 면도 있었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정색 옷을 입고서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펑크족 리스베트는 자신의 아들과 전혀 연결점이 없는 인물이었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눈빛이랄까? 호른스가탄 거리에서 신호등을 응시하던 아우구스트의 눈에서 내뿜던 그 기이한 광채 말이다.
프란스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왕립공과대학에서였다. 그는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지는 가상적 단계인 ‘기술적 특이점’에 대해 강의하러 갔었다. 수학적, 물리학적 관점에서 특이점의 개념을 설명하며 강의를 시작했는데, 문이 덜컹 열리더니 온통 시커먼 옷을 입은 삐쩍 마른 여자가 강의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P172-173)
무기도 보았다. 남자는 권총을 겨눴고, 프란스는 방어를 한답시고 두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리고 공포에 질려 온몸이 굳은 상태에서도 그는 오직 아우구스트만을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자신은 죽더라도 아들만은 살아야 했다. 그는 소리쳤다.
“아이는 죽이지 마요! 이애는 바보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라고요!”
하지만 프란스는 자신이 말을 제대로 끝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대로 온 세상이 얼어붙었다. 바깥의 밤과 폭풍우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듯하더니 모든 게 캄캄해졌다.
얀 홀체르는 방아쇠를 당겼다. 예상대로 한 치의 착오 없이 명중했다. 총알 두 발이 프란스 발데르의 머리에 박혔고 그는 허수아비처럼 두 손을 휘저으며 쓰러졌다. 프란스가 즉사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그는 뭔가가 석연치 않았다. 호수 쪽에서 갑자기 불어온 한줄기 바람이 어떤 차디찬 생명체처럼 목덜미를 휘감아오는 걸 느끼며 일이 초쯤 이게 무슨 영문인지 생각해보았다.
모든 게 계획대로 이뤄졌다. 프란스의 컴퓨터는 그들이 말한 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 그걸 집어들고 신속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서 있던 그는 기이하게도 얼마 지나고 나서야 석연치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커다란 침대 위에 더벅머리 사내아이 하나가 누워 있었다. 이불로 온몸이 다 덮인 아이가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시선이 그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람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니, 그것 말고도 뭔가가 더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는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그 무엇도 이 작전을 위태롭게 할 수 없었고,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위험에 노출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는 목격자가 있다. 이 일에는 절대로 목격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특히 얼굴을 노출한 채 작전을 수행할 때는 더욱 그랬다. 결국 그는 아이에게로 총구를 돌렸다. 기이한 빛을 반짝이는 아이의 두 눈을 응시하며 세 번째로 읊조렸다.
“당신이 뜻이 이루어지기를, 아멘.” (P178-179)
미카엘은 의자에 앉아 바깥의 어둠을 내다보았다. 앞에 있는 식탁 위에는 성냥갑, 잡지 <뉴 사이언티스트>, 이해할 수 없는 수식들이 적힌 수첩이 있었고, 그 옆에는 기이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건널목 그림이 한 장 있었다. 신호등 옆에는 남자가 하나 서 있었다. 가늘게 뜬 눈에 시선은 흐릿했으며 입술은 얄포름했다. 남자는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고 얼굴의 주름살부터 셔츠와 바지의 주름들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렇게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닌 그의 턱 위에 하트 모양 점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건 강렬하고도 불안해 보이는 빛을 내뿜는 신호등이었다. 일종의 수학적 기법으로 엄밀하게 구성된 그림은 마치 기하학적 선들이 뒤에서 지탱해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프란스가 여가 시간에 그린 걸까. 하지만 미카엘은 왜 그가 신호등을 소재로 삼았는지 궁금했다.
하기야 프란스 같은 사람에게 석양이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라고 해서 특별히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에게는 신호등과 다른 것들이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미카엘은 사진 같은 이 그림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신호등 옆 남자의 생생한 움직임은 어떻게 포착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신호등이야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지만, 사람은 건널목을 수십 번 건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상상 속 인물이거나, 아니면 프란스에게 사진기억력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녀처럼....... 미카엘은 잠시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휴대전화를 꺼내 에리카에게 세 번째 전화를 걸었다.
“지금 돌아오고 있어?” (P193-194)
얀 부블란스키는 비번인 날이 오기를 기다려왔다. 오늘 그는 쇠테르 유대인 공동체의 랍비 골드만을 만나 최근 괴롭게 골몰해오던 신의 존재에 관한 몇 가지 문제를 놓고 긴 대화를 나눌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사이 무신론자가 된 건 아니었다. 단지 신의 개념과 관련해 궁금한 문제들이 늘 있어왔고, 요즘 들어 불쑥불쑥 느껴지는 삶의 무의미함과 경찰 일을 그만두고 싶은 심정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눠볼 참이었다.
얀은 스스로 괜찮은 강력반 형사라고 생각했다. 사고 해결률은 꽤 높았고, 전반적으로 일에 대한 의욕도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인 사건 수사를 하며 살고 싶은 건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뭐라도 배워두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성장해 저마다 길을 찾고 자신감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어쩌면 그 자신이 이따금 깊은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얼 가르쳐야 할지 몰랐다. 특별히 공부한 전문 영역이 없기도 했고, 어쩌다보니 살면서 숱하게 경험한 것이라고는 갑작스럽고 불행한 죽음들과 병적이고 사악한 인간들의 행위뿐이었다. 당연히 이런 것들을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P205-206)
“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된다는 뜻이에요. 기계들이 24시간 내내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AGI에 도달하면 불과 며칠 후에 우리는 ASI와 대면하게 될 거예요.”
“그건 또 뭐죠?”
“인공초지능, 즉 인간보다 우월한 지능이에요. 진화 속도 역시 점점 빨라지고요. 컴퓨터들이 점점 가속화해 한 번에 열 배씩 증가한다고 하면 인간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는 더 똑똑해질 수 있어요. 그럼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전혀 감이 안 잡히네요.”
“맞아요. 지능이란 개념은 예측하기가 불가능해요. 인공지능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알 수 없어요. 초지능이 도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더욱 알 수 없죠.”
“최악의 경우라면 컴퓨터가 보기에 우리는 실험실 생쥐만큼도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겠죠.”
미카엘은 리스베트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생각하며 덧붙였다.
“최악의 경우라고요? 인간의 DNA는 생쥐와 90퍼센트 일치하고, 지능은 백 배 정도 높다고 알려져 있어요. 겨우 백 배예요. 하지만 초지능 시대에는 그런 한계들을 초월하는 새로운 차원과 만나게 돼요. 인간의 지능보다 수백만 배는 우월한 지능 말이에요. 상상이 되나요?” (P235-236)
하지만 그때 갑자기 아이의 등이 활처럼 둥글게 움츠러드는 걸 보았고, 그러자 다시금 자신이 없어졌다. 결국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소스라칠 듯 놀라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지금 자신이 본 그림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두 거울에 비쳐 끝없이 뻗어나가는 흑백 네모 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네모 칸들에서 솟아나온 그림자 같은 것이 악마, 혹은 섬뜩한 유령처럼 보였다. 그녀의 머릿속엔 아이들이 사악한 영혼에게 사로잡히는 공포영화가 떠올랐고, 왜 그랬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이의 손에서 그림을 홱 낚아채 거칠게 구겨버렸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고 너무나도 익숙한 비명이 터져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명이 아닌 마치 말소리 같은 웅얼거림이 들렸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우구스트는 전혀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니까. 한나는 아이가 발작을 일으키는지 지켜보았다. 거실 바닥에 온몸을 내던지면서 몸부림을 칠 거라 예상했지만 그런 일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차분하고도 결연한 모습으로 다시 종이 한 장을 펼치더니 똑같은 흑백 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나는 아이를 멈추게 하고 방으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이 장면을 더없는 공포의 순간으로 기억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때 갑자기 아우구스트가 맹렬히 발버둥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사방으로 내지르기 시작했다. (P252)
그는 살트셰바덴 저택의 마룻바닥에 앉아 카펫 위로 손을 뻗고 있던 프란스 발데르의 아들 생각뿐이었다. 볼펜과 파스텔 얼룩들이 묻어 있던 하얀 손등과 손가락, 그리고 공중에 대고 무언가 복잡한 형상을 그리는 듯했던 움직임...... 문득 미카엘은 그 장면이 다르게 보이면서 아까 파라 샤리프의 집에서 들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어쩌면 신호등을 그린 사람이 프란스가 아니었던 걸까?’
혹시 아우구스트에게 숨겨진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미카엘은 이상하게도 놀랍지 않았다. 체스판 무늬 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아빠의 시신 옆에서 벽으로 몸을 내던지는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아이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리아 광장을 가로지르는 도중, 어쩌면 엉뚱할 수 있는 생각이 떠오르더니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미카엘은 예트갓스바켄에 이르러 걸음을 멈췄다. (P261)
“아이가 뭘 그렸죠?”
“특별한 건 아니에요. 매일 하는 퍼즐에서 영감을 받은 것도 같고, 어쨌든 음영이니 원근법이니 하는 걸 기가 막히게 표현한 건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뭐였죠?”
“네모 칸들을 그렸어요.”
“어떻게 생겼나요?”
“체스판 무늬 같았어요.”
한나는 자신이 상상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 순간 미카엘의 눈이 반짝하는 듯했다.
“네모 칸만 그렸나요? 다른 건 없었고요?”
“거울도 있었어요. 거울에 비친 칸들이 계속 뻗어나갔죠.”
“부인께서는 프란스의 집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미카엘이 약간 다급하게 물었다.
“그건 왜 물으시죠?”
“프란스의 침실 바닥, 그러니까 그가 살해된 방 바닥에 체스판 무늬 타일이 깔려 있었어요. 그 타일들은 붙박이장 거울에 비치고 있었고요.”
“이런, 맙소사!”
“왜 그러시죠?”
“그러니까....” 한나는 물밀 듯 후회가 밀려들었다. “내가 아이한테서 종이를 빼앗기 전에 그 그림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네모 칸들에서 솟아나오는 위협적인 그림자였어요.”
“그림을 가지고 계신가요?”
“네........ 아, 아니요.”
“아니라고요?”
“버린 것 같아요.”
“이런.”
“어쩌면......”
“네?”
“어쩌면 아직 휴지통에 있을지도 몰라요.” (P265-266)
“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빨리 끝내도록 하지.”
“그럼 내 이름은 빼주는 거지?”
“난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어, 아르비드, 대신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으면 그 한심한 삶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고 볼 수 있지.”
“좋아. ‘다크넷’이라고 알아?”
“알아.”
지나치게 겸손한 대답이었다. 세상에서 그녀만큼 다크넷을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다크넷은 인터넷 속 무법 정글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암호화된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고 사용자의 익명성은 철저하게 보장된다. 구글이나 그 어떤 사이트에서도 이곳 사용자들의 정보를 검색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이들의 활동을 추적할 수 없다. 그렇다보니 마약 딜러, 테러리스트, 사기꾼, 갱, 무기 밀매업자, 폭약 제조자, 포주, 그리고 해커가 들끓는 공간이었다. 디지털 세계에서 여기보다 더러운 존재들이 우글대는 곳은 없다. 만일 인터넷에 지옥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이었다.
다크넷 그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리스베트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첩보기관과 IT 대기업들이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족족 감시하는 이 시대에는 심지어 정직한 사람들조차 숨을 장소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다크넷은 반체제 인사, 내부고발자, 그리고 정보제공자들의 피신처이기도 했다. 최악의 정치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정부에 붙잡힐 염려 없이 마음껏 의견을 표명하고 저항할 수 있었다. 리스베트는 은밀하게 벌이는 조사와 공격을 위해 이 공간을 사용해왔다. (P279-280)
“당신이 고상하게 살려준 그 꼬마.”
“뭐가 문젠데? 그애는 정신지체아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애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뭐? 그림?”
“그 애는 서번트야.”
“뭐?”
“빌어먹을 총기 잡지들 말고 다른 것도 좀 읽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자폐증이 있으면서 동시에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을 서번트라고 한다고. 그 꼬마가 말도 못하고 생각도 제대로 못할지 몰라도 사진기억력이 있는 모양이야. 짭새들은 그애가 당신 얼굴을 자세히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림을 다 그리면 안면인식 프로그램에 넣겠지. 그럼 망하는 거야. 안 그래? 인터폴 기록 같은 데 당신 얼굴이 남아 있지 않겠어?”
“하지만 키라가 과연 그렇게.......”
“아니, 그게 바로 키라가 원하는 거야. 꼬마를 처리하는 거.”
그의 얼굴에 동요하는 기색이 물결처럼 어른댔다. 너무도 불편하게 느껴졌던 아이의 초점 없는 시선이 떠올랐다.
“난 아니야.”
말은 했지만 그는 그렇게 믿지는 않았다.
“당신이 애들한테 약한 거 잘 알아. 나도 이렇게 하는 거 싫다고 하지만 선택지가 없어. 이 정도로 끝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키라가 당신 목숨을 내놓으랄 수도 있어.”
“알았어.” (P302-303)
즉, 교수가 쓴 메일은 가짜였다. 얀과 소니아에게 함께 전송된 메일 역시 위장막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전달될 수 없도록 중간에 차단당했을 게 분명했다. 리스베트는 더 이상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변경된 계획에 동의하는 그들의 답신도 가짜라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즉각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찰스 교수 행세를 하고 있다면 기밀이 유출됐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 누군가가 아이를 센터에서 끄집어내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아이를 보호할 수 없는 길거리로 끌어내..... 납치? 아니면 제거? 리스베트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침 8시 55분이었다. 이십 분 후에는 원장과 아우구스트가 센터를 나와 찰스 에델만이 아닌,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볼 수 없을 누군가를 기다릴 터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경찰?’ 리스베트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정보가 유출될 위험도 있기에 더욱 꺼려졌다. 일단 오덴 아동치료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토르겔 린덴의 전화번호를 찾아내 통화를 시도했다. 접수데스크 직원이 전화를 받았으나 그가 지금 회의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 다시 걸었다. 이번엔 자동응답 멘트가 흘러나왔다. 리스베트는 욕을 내뱉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거리에 나가지 말라는 문자와 메일을 한 통씩 보냈다. 더 나은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와스프’라고 서명했다. (P310-311)
리스베트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붙잡은 채 보도 위로 거세게 넘어지면서 부상을 당했다. 적어도 그녀가 느끼기엔 그랬다. 어깨와 가슴 부근이 타는 듯 아파왔지만 꾸물댈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아이를 안아들고 어느 자동차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누군가 그들을 향해 총격을 멈추지 않는 동안 헐떡이며 거기 앉아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불안한 정적이 감돌았다. 차체 아래로 살며시 거리를 살피던 그녀의 눈에 킬러의 두 다리가 보였다. 그의 건장한 다리가 전속력으로 길을 건너고 있었다. 가방에 든 베레타를 꺼내 응사해볼까 잠시 생각해봤지만 이내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바로 근처에서 커다란 볼보 한 대가 느릿느릿 차도를 따라 굴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리스베트는 아이의 손목을 낚아채 자동차를 향해 돌진했다. 그런 다음 뒷문을 열고 아이와 함께 안으로 몸을 던졌다.
“빨리 달려요!”
그리고 그녀는 뒷좌석이 자신과 아이의 피로 홍건히 젖는 광경을 보았다. (P320)
“미카엘, 이건 너무 책임이 큰 일이야. 아주 위험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 책임이 우리한테 돌아올 거라고. 그럼 그날로 <밀레니엄>은 끝장이야. 증인들을 보호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잖아. 이건 범죄 사건이고 경찰 소관이야. 한번 생각해봐. 수사를 진척시키고 아이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들이 그 그림 안에 과연 얼마나 들어 있을지 말이야. 미카엘, 분명 다른 해결책이 있을 거야.”
“리스베트가 엮인 일이 아니라면 다른 해결책이 있겠지.”
“그녀 일이라면 무조건 감싸고 도는 거 난 가끔 지겹다고.”
“단지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려는 것뿐이야. 경찰은 심각한 실수를 저질러서 결국 아이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어. 그래서 리스베트가 격분하는 거라고.”
“그래서 그녀 편에 서겠다, 이 말이야?” (P333)
리스베트가 암호화 링크를 통해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미카엘, 유리 보그다노프예요. 조사해봐요. 그가 프란스의 기술을 솔리폰의 지그문트 에커발트에게 팔았어요.
미카엘은 인터넷에서 유리의 사진을 몇 장 찾아냈다. 그중 핀스트 라이프 정장을 입은 모습이 있었다. 꽤나 옷을 빼입었지만 마치 사진을 찍기 전에 어디서 옷을 훔쳐 입고 나온 양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뻣뻣한 머리는 길게 자라 있었고 얼굴 피부에는 얽은 자국이 보였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뚜렷했으며, 소매 밑으로 조악하게 새긴 문신들이 보였다. 검은 두 눈은 상대를 꿰뚫어보는 듯이 강렬했다. 키는 장대처럼 컸지만 체중은 60킬로그램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감옥을 다녀온 전과자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모습에서 프란스의 감시카메라에 찍힌 장면들이 연상됐다. 영상 속 그 남자처럼 유리에게서도 거칠고 망가진 느낌이 들었다. 베를린에서 사업가로 성공을 거둔 후 했던 인터뷰들에서 그는 자신이 거리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난 팔뚝에 주삿바늘이 꽂힌 채 어느 으슥한 골목에서 죽어갈 운명이었어요. 하지만 거기서 빠져나왔죠. 난 꽤 똑똑하고 대단한 쌈닭이거든요”라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P367-368)
“우선 오스프(Wasp)란 단어가 무얼 뜻하는지 한번 생각해봤지.”
“‘말벌’ 말고 다른 뜻?”
“물론이지, 심지어는 나조차 이 방법으로 뭘 찾을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어. 하지만 대로로 갈 수 없다면 곁길로 나가야 하는 법. 거기서 뭐가 나올지 모를 일이잖아? 어쨌든 와스프에는 여러 의미가 있어. 2차대전 때 영국군 전투기 이름이었고,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의 영국판 제목이기도 하고, 1915년에는 어느 단편영화의 제목, 19세기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풍자 잡지 이름이었어. 무엇보다 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도(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약자이기도 하지. 하지만 전부 천재 해커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야. 이 바닥 문화하고는 잘 맞지 않거든. 그런데 어울리는 게 딱 하나 있었어.”
“뭔데?”
“인터넷에서 제일 많이 검색되는 와스프. 그러니까 ‘어벤져스’ 창립 멤버이자 마블코믹스의 슈퍼 히로인 와스프!”
“아, 영화로도 나왔지.”
“맞아, 토르,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와 함께, 원작 만화에서 와스프는 한때 그들의 리더였어.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지. 로큰롤적이고도 반항아 같은 외모, 검은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곤충 날개 복장, 갈색 단발머리, 거기에 거만한 표정까지, 기습적으로 허를 찌르고 몸 크기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우리가 접촉한 사람들은 모두 ‘와스프’가 자신의 별명을 이 캐릭터에서 따온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다고 해서 이 별명 뒤에 마블코믹스 광팬이 숨어 있다고 단정할순 없겠지. 와스프라는 별명은 마블코믹스 이전부터 있었으니까. 그저 어린 시절의 흔적일 수도 있고, 오히려 반의적인 상징일 수도 있어. 나도 ‘피터 팬’이란 별명을 쓴 적이 있어,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 거만한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와스프가 추적하던 그 범죄조직도 마블코믹스에서 따온 이름들을 암호명으로 쓰고 있다는 걸 알아냈어. 자기네들을 ‘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The Spider Society)'라고도 한다며?”
“응,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말장난 같은데? 자신들을 감시하는 자들을 조롱하려고 만든.”
“물론이지, 하지만 이런 말장난이 단서들을 감추고 있거나 중요한 의미를 드러낼 수도 있어. 마블코믹스의 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가 뭘 하는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
“와스프 자매단과 전쟁을 벌이지.”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지만 흥미로운 건 사실인데, 이게 무슨 단서가 될 수 있어?”
“잠깐, 괜찮으면 내 차 있는 데까지 함께 내려가지 않겠어? 난 지금 공항으로 출발해야 해.” (P388-389)
“지금 타노스라고 했나요?” 미카엘이 놀라 되물었다.
“그 이름이 맞을 걸세. 죽음과 사랑에 빠졌다는 그 파괴적인 인물 말이네.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죽음에게 자신이 걸맞은 존재라는 걸 증명하려고 했다지. 카밀라는 리스베트를 도발하려고 이 인물을 선택했어. 와스프 자매단의 숙적인 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을 자기 무리에 붙이기도 했고.”
“정말입니까?”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뒤얽힌 채 미카엘이 물었다.
“물론 유치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애들한테는 그렇게 천진난만한 일은 아니었어. 그때부터 아주 강했던 자매의 적대감이 이 이름들을 통해 구체화됐다고 할 수 있지. 마치 전쟁과 다름없었네. 무서운 메시지를 드러내는 상징들이 거세게 쏟아졌지.”
“그게 아직도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 이름들을 말하는 건가?”
“네, 예를 들면요.”
미카엘 스스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무언가를 찾았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글쎄, 잘 모르겠네. 그애들은 이제 성인이 됐지만 그때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는 걸 잊어선 안 되겠지. 아주 작은 것도 치명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때였으니까. 엄마를 잃고 정신병원에 갇힌 리스베트만 고통을 받은 건 아니라네. 카밀라의 삶도 함께 산산이 부서져버렸지. 가정을 잃었고 자신이 숭배하던 아버지도 심각한 화상을 입었으니까. 리스베트에게 화염병으로 공격당한 살라첸코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고, 카밀라는 자신이 중심이었던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어느 위탁가정에 들어가게 됐지. 그애한테는 무척이나 쓰라린 고통이었을 거야. 난 그애가 리스베트를 뼛속까지 증오하리라는 걸 단 일 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네.”
“물론 그랬을 겁니다.” 미카엘이 대답했다. (P424-425)
리스베트는 언제 자신이 괴한에게 돌진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굉장한 힘으로 괴한과 부딪쳐 좀전에 아우구스트가 앉아 있던 식탁 아래로 함께 나뒹굴었다는 것만 의식했을 뿐이다. 그리고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괴한의 얼굴에 거센 박치기를 날렸다.
강한 충격으로 눈앞에 불똥이 튀었고 다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었다. 비틀거리는 그녀의 눈에 방이 빙글빙글 돌았다. 옷은 피투성이였다. 또 총에 맞은 건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살펴볼 일이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트가 보이지 않았다. 식탁에는 색연필, 파스텔, 그림들, 소인수분해를 적어놓는 종이들뿐이었다. ‘빌어먹을, 애가 어디로 갔지?’ 이때 냉장고 근처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아우구스트가 무릎을 바짝 끌어안고 바닥에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까 일이 터졌을 때 그쪽으로 몸을 던진 모양이었다.
리스베트가 아이에게 달려가려는데 다시 저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숨죽인 목소리들과 잔가지 꺾이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리스베트는 당장 피신해야 한다고 직감했다. 만일 그게 자신의 동생이라면 그녀 한 사람이 아닐 터였다. 항상 그랬다. 카밀라는 늘 무리를 이끌고 다녔고 리스베트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러니 지금도 그때처럼 더 약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바깥의 지형을 머릿속에 그려본 다음 아우구스트에게 달려갔다.
“자, 가자!” (P470-471)
그는 미카엘의 전화기들을 받아 차 뒤쪽에 있는 스피커 바로 옆에 두었다. 뭔가 민감한 이야기를 할 분위기였고, 미카엘이 여기에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기사를 써야 했고 그러려면 최대한 정확한 사실이 필요했다. 하지만 탐사기자라면 언제나 특정한 이해관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개인적 동기 없이 정보를 내놓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 동기가 전적으로 고귀한 것일 때도 있다. 즉 정의 실현이나 부패와 악습을 고발하고자 하는 의지가 동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파워게임에서 상대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욕망 때문일 때가 대부분이다. 기자는 ‘왜 이 사람이 내게 이 정보를 제공하는가?’라는 질문을 항상 던져야 한다.
이런 게임에서 기자가 체스 말로 이용되는 게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모든 폭로는 어느 한쪽을 약화시키는 한편 나머지 다른 쪽들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누군가 물러나면 금방 다른 인물로 대체된다. 반드시 그전보다 나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려는 기자는 모든 전제조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싸움의 승자가 하나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싸움을 통해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역시 이익을 얻어야 한다. 정보 유출은, 심지어 그것이 탐욕이나 권력욕 때문에 행해졌다 해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부정행위들을 세상에 드러내고 처벌받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자는 이러한 게임 저변에 숨어 있는 메커니즘을 반드시 파악해야 하고, 문장 하나, 질문 하나, 사실 하나 앞에서도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한다. 미카엘은 조금 거친 듯한 매력을 지닌 에드 니덤에게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단 한순간도 그를 맹신하지는 않았다.
“자, 얘기해보세요.” (P500)
“양자 컴퓨터의 가장 큰 장점은 정보처리의 기본 단위가 상대중첩할 수 있는 큐비트라는 점이에요.”
“상대.... 뭐라고요?”
“전통적인 컴퓨터의 정보처리 단위가 0 아니면 1로만 존재한다면, 큐비트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요. 문제는 여기에 특별한 계산법과 복잡한 물리 이론들이 필요한데, 특히 그걸 ‘결 어긋남’이라고 부르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어요. 어쨌든 현재 양자 컴퓨터들은 너무 전문화되어 있고 다루기도 어려워요.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여러 정황을 보면 프란스가 보다 간편하고 유연하고 자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후에 그 결과를 테스트하고 확인해줄 몇몇 연구자들을 접촉했던 것 같아요. 적어도 잠재적으로 보자면 환상적인 진전을 이룬 거죠. 하지만 프란스는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깊은 불안에 사로잡혔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스티븐 교수에게 전화를 했고요.”
“왜죠?”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창조물이 인류에게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겠죠. 직접적으로는 NSA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고요.” (P529)
“인간 존재를 특징짓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모순들이라고요.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기를 꿈꾸죠. 프란스 교수를 만난 적도 없고 아마 만났다면 날 늙은 멍청이로 여겼겠지만 적어도 난 한 가지는 알아요. 우리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할 수 있다는 걸요. 그가 아이를 버리고 도망갔으면서도 사랑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교수님, 살아 있다는 건 늘 한결같을 수 없다는 뜻이고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죠. 난 당신의 친구가 어떤 전환점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정말 평생의 작품을 파괴해버렸을지도 몰라요.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 자신의 모든 모순들을 드러냄으로써, 가장 좋은 의미에서 진정한 인간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는 변했어요, 그렇지 않나요? 스스로 아이를 보살피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마지막엔 아이를 돌보며 시간을 보냈죠. 심지어 아이가 재능을 드러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했어요.”
“반장님 말씀이 맞아요.”
“얀이라고 부르세요.”
“그럴게요.”
“사람들은 가끔 절 부블라라고 부릅니다.”
“거품처럼 가볍고 쾌활한 성격이라서 그런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확실히 알겠네요.”
“뭐죠?”
“당신은.....”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파라 샤리프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순수한 미소가 얀에게 삶과 신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주었다. (P532-533)
리스베트는 피스카르가탄 거리 아파트의 빨간 소파에 앉아 감라스탄 거리와 리다르파에르덴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쌍둥이 동생과 아버지가 남긴 범죄적 유산을 겨냥해 사냥을 시작한 지 일 년이 조금 지난 지금, 그녀가 여러 면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우선 카밀라를 추적해 찾아냈고 스파이더스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솔리폰과 NSA 사이의 커넥션을 폭로하고 해체시켰다. 러시아 국회의원 이반 그리바노프는 현재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었다. 카밀라의 킬러는 사망했고 가장 가까운 조력자 유리 보그다노프와 다른 컴퓨터 전문가들은 지명수배되어 지하에 처박혀 꼼작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카밀라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도 스웨덴을 떠나 새로운 제국을 세울 곳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리스베트는 사냥감에 상처를 입혔을 뿐이었다.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앞에 있는 테이블 위를 쳐다보았다. 담뱃갑 하나와 아직 읽지 않은 <밀레니엄>이 있었다. 그녀는 잡지를 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집어들어 미카엘이 쓴 장문의 탐사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문장에 이른 그녀는 그의 이름 옆에 있는 새로 찍은 사진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가서는 화장을 했다. 몸에 달라붙는 검정 티셔츠와 가죽재킷을 걸친 그녀는 12월의 밤거리로 성큼 걸어나갔다. (P568-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