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2008년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은 2008년에 공개된 영국의 드라마 영화이다. 사이몬 뷰포이가 각본을 쓰고 크리스티안 콜슨이 제작, 대니 보일 감독을 맡은 일부 장면은 인도의 러브린 탠댄이 공동 연출을 했다. 이 작품은 인도의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의 소설 <Q & A>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의 배경은 인도로,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에 사는 18세 문맹 고아 소년이 헤어진 여자 친구를 찾기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는가?'에 출연한 뒤 2천만 루피의 상금을 거머쥐기 바로 전, 한 문제만 남겨둔 상태에서 사기죄로 체포되면서 벌어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이 영화는 텔류라이드 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고, 2008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와 런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2008년 8월 30일 영국에 이어 2009년 1월 9일 미국에서 개봉되었다.[7] 2009년 1월 22일, 인도 뭄바이에서도 상영되었다. 영화는 전 세계의 다양한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찬사를 받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각색상 등 8관왕을 차지했다. 영국 아카데미상(BAFTA)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7관왕과 크리틱스 초이스 영화상(미국 방송 영화 비평가 협회)에서 4관왕, 골든 글로브상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나는 구속되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그들은 어젯밤 늦게 나를 찾아왔다. 길 잃은 개들도 잠든 시간이었다. 그들은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와 내게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붉은 경광등을 번쩍이며 대기하고 있던 경찰차에 나를 밀어넣었다.
소동은 없었다. 창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사람 하나 없었다. 타마린드나무에 앉아 있던 늙은 올빼미만이 끌려가는 나를 굽어보며 부엉부엉 울어댔다.
다라비에서는 지방 열차의 소매치기만큼이나 체포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단 하루도 불쌍한 시민이 경찰서에 끌려가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 경찰에게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해대며 끌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히 끌려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붉은 경광등이 번쩍이는 경찰차를 구세주처럼 반긴다.
돌이켜보면 나는 발길질을 하고 소리를 질러댔어야 했다. 이웃들에게 결백을 주장하며 한바탕 소동을 피웠어야 했다. 그렇게 한다고 도움이 되기 때문은 아니다. 내가 그렇게 소동을 피워서 몇몇 이웃을 깨웠더라도 그들은 나를 지켜부려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졸린 눈을 비비면서 내가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며 “저기 또 한 놈이 끌려가는군”하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그러고는 하품을 하며 서둘러 잠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빈민굴에서 내가 없어진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여전히 아침이면 길게 줄을 서서 물을 받을 것이고, 일곱시 삼십분 기차에 몸을 싣고 힘겨운 하루를 시작할 테니까. (P9-10)
“국장님,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W3B 같은 퀴즈 프로그램은 주사위 놀이가 아닙니다. 각본대로 진행돼야 합니다. 각본에 따르면 적어도 팔 개월이 지나서 당첨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광고 수입으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으니까요. 한데 저 토머스란 청년 때문에 우리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소. 그래서 뭘 도와달라는 겁니까?”
“토머스가 속임수를 썼다는 걸 증명해주십시오. 공범자가 없었다면 열두 문제를 모두 맞힐 수 없었을 겁니다. 그는 학교에 다닌 적도 없고, 신문도 읽지 않습니다. 그런 자가 일등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경찰국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글쎄요..... 그렇게 단정 지을 일은 아닌 것 같군요. 가난한 집 아이가 나중에 천재로 밝혀지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요. 아인슈타인도 고등학교 때 낙제했다고 하잖습니까?”
“국장님, 하지만 이 친구가 아인슈타인이 아니라는 건 지금이라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존슨은 이렇게 말하며 난다에게 손짓했다. (P18)
고드볼은 한 시간 이상 나를 고문했지만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거의 삼십 분마다 새로운 고문기술을 동원했다. 처음에는 칠리 가루를 뿌린 나무 막대기를 항문에 밀어넣었다. 불에 달군 대못이 엉덩이를 파고드는 듯했다. 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숨을 헐떡이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자 고드볼은 내 머리를 물통에 처넣었다. 숨을 쉴 수 없어 허파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나는 몸을 바둥거렸고 거의 익사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제 고드볼은 디왈리 축제에서 사용하는 폭죽처럼 전기가 튀는 전선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술 취한 권투선수처럼 내 주변을 빙빙 돌더니 갑자기 전선으로 나를 푹 찔렀다. 껍질을 벗긴 전선으로 왼발바닥을 찔렀다. 전류가 내 몸을 파고들었다. 나는 독약이라도 마신 듯 온몸을 퍼득거렸다. 몸이 비틀리면서 경련이 일어났다.
“개새끼, 이래도 퀴즈쇼에서 어떤 속임수를 썼는지 털어놓지 않을 테냐? 누가 너한테 답을 가르쳐줬지? 털어놔, 그럼 고문을 끝낼 테니까. 뜨뜻한 밥도 주겠다. 그래, 집에도 보내주지.” (P25)
스미타가 황급히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람,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하지만 이해해주세요. 당신을 도우려면 당신이 어떻게 십억 루피의 상금을 받게 됐는지 알아야 해요. 솔직히 말해서, 당신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워요. 나라도 절반밖에 못 맞혔을 거예요.”
“변호사님, 우리 같은 가난뱅이도 질문을 하고 대답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가난뱅이가 퀴즈를 내면 부자는 한 문제도 답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나는 프랑스 화폐가 뭔지는 몰라도 샤릴니타이가 고리대금업자에게 얼마를 빌렸는지는 압니다.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다라비에서 불법 DVD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압니다. 당신은 누군지 아십니까?”
“람, 화내지 마세요. 당신을 모욕할 뜻은 조금도 없었어요. 나는 정말 당신을 돕고 싶을 뿐이에요. 다만 당신이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면 답을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알아야 해요.”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요.”
“왜요?” (P33)
“카메라 준비하시고! 스리, 투, 원, 큐!”
신호가 떨어지자, 프렘 쿠마르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안녕하십니까? 역사상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오늘은 어떤 분이 역사를 만들지 지켜보려고 우리는 여기에 다시 모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 것인지 지켜보려고 다시 모였습니다.”
이때 스튜디오 표시등이 ‘박수’로 바뀌었고,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박수 소리가 사그라들자, 프렘 쿠마르가 다시 말했습니다.
“오늘밤에는 저희가 컴퓨터로 무작위 선발한 세 분의 행운아가 도전할 겁니다. 3번 도전자는 카필 초다리 씨입니다. 서벵골의 말다에서 오셨습니다. 2번 도전자는 아메다바드에서 오신 하리 파리크 교수님이십니다. 1번 도전자는 이제 열여덟 살인 람 모하마드 토머스 군입니다. 여기 뭄바이 출신입니다. 이 젊은이를 큰 박수로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박수를 쳤습니다. 박수 소리가 줄어들자, 프렘 쿠마르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 군, 이름이 아주 재밌군요. 인도의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십니까, 토머스 군?”
“콜바나에 있는 ‘지니스 바’라는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합니다.” (P54)
“자. 첫 번째 문제입니다. 영화에 대한 아주 쉬운 문제입니다. 방청객께서도 쉽게 대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르만 알리와 프리야 카푸르가 근래 들어 영화에서 가장 성공한 연인 역에 출연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아르만 알리와 프리야 카푸르가 처음으로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는 무엇입니까? 1) <불> 2) <영웅> 3) <굶주림> 4) <배신>.”
배경음악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곡으로 바뀌었습니다.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까지 더해졌습니다.
내가 대답했습니다.
“4번 <배신>.”
“영화를 즐겨 보십니까?”
“예.”
“답이 맞다고 확신하십니까?”
“예.”
북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화면에 ‘정답’이란 글자가 번쩍거렸습니다. (P56)
“예. 이 지역은 기독교 배척 운동이 무척 거세다는 걸 모르십니까? 성난 폭도들이 벌써 성당 서너 개를 불질렀습니다. 성당을 중심으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 폭도들이 저지른 짓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를 개종시킨 것은 아닙니다.”
“압니다. 신부님. 신부님에게 조금도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신부님이 힌두교 소년을 개종시켰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힌두교도의 자식이란 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내일 신부님 성당을 약탈하려는 부랑자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부님을 도우려 왔습니다. 사태를 진정시키려고요.”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끼?”
“아이 이름을 바꾸십시오.”
“뭘로 바꾸라는 겁니까?”
샤르마가 말했다.
“글쎄요...... 힌두교식 이름을 지어주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신의 이름을 따서 람이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히다야툴라가 점잖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샤르마 씨,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내 말은, 그 아이가 힌두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증거는 또 뭐냐는 겁니다. 이슬람교도로 태어났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럼 모하마드라고 짓지 못할 이유도 없겠죠.“
샤르마와 히다야툴라는 람과 모하마드를 두고, 어떤 이름이 낫다고 거의 삼십 분 동안 입씨름을 벌였다. 결국 티모시 신부는 손을 들고 말았다.
“이름을 바꿔야 폭도들에게 곤욕을 면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예 두 분의 제안을 다 받아들여 아이 이름을 람 모하마드 토머스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싱 씨가 그날 오지 않은 것이 나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P63-64)
나는 티모시 신부를 뒤에서 껴안고 통곡했다.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여덟 살짜리 소년처럼 울부짖었다. 이언이 내게 다가와 옆에 앉았다. 생명의 기운이 떠난 티모시 신부의 몸을 보더니 그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거의 세 시간 동안 울었다. 경찰차가 붉은 경광등을 번쩍이며 도착하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구급차를 타고 와서 시신을 싣고 간 후에도 우리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조지프와 곤잘베스 부인이 우리를 위로해주었지만 우리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한참 후 이언이 내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울었니, 토머스?”
“오늘 내가 정말로 고아가 됐으니까요. 티모시 신부님은 내게 아버지였어요. 이 성당에 다니는 모든 사람에게 ‘파더’였듯이 내게는 아버지였어요. 그런데 형은 왜 울었어요? 형이 존 신부랑 한 짓 때문이었나요?”
“아니, 나도 모든 걸 잃었기 때문이야. 나도 너처럼 고아가 됐거든.”
“형 아버지는 살아 있잖아요. 데라둔에요!”
“아니, 거짓말이었어.”
이언은 다시 흐느끼며 이렇게 덧붙였다.
“너한테는 진실을 말해줄게. 티모시 프랜시스 신부가 바로 내 아버지야.” (P79-80)
프렘 쿠마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 군, 종교가 뭔지 궁금하군요. 이름에 모든 종교가 망라된 것 같군요. 기도는 어디에서 하나요?”
“기도를 하려면 신전이나 성당이나 모스크에 꼭 가야만 하나요? 나는 카비르의 말을 믿습니다. ‘하리는 동쪽에 있고, 알라는 서쪽에 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라. 그럼 거기에서 람과 카림을 동시에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라고 말했지요.”
“아주 멋진 말이군요. 토머스 군. 그러니까 토머스 군이 모든 종교에 통달한 사람처럼 보이는군요. 정말로 그렇다면 두 번째 문제는 토머스 군에게 상당히 쉬울 것 같습니다. 자, 문제를 드리지요. 이천 루피가 걸린 문제입니다. 십자가에는 어떤 글자가 새겨져 있을까요? 1) IRNI 2) INRI 3)RINI 4)NIRI.”
“쉽네요”
“그럼. 답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답은 2번 INRI입니다.” (P82)
집단주택 단지에 살면서는 영화배우 닐리마 쿠마리의 아파트에서 살던 때를 거의 잊고 지냈다. 중하층 사람들이 단칸방에 모여 사는 집단주택 단지는 뭄바이에서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겨드랑이 같은 곳이다. 그래도 집단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은 다라비 같은 빈민굴에 사는 사람보다는 조금 낫다. 바르브 씨가 언젠가 말해준 것처럼,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꾸민 넓은 아파트에 사는 부자들은 삶을 즐기지만 지저분하고 더러운 오두막집에 사는 빈민굴 사람들은 고생스럽게 산다. 반면에 집들이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단주택 단지에서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집단주택 단지에서 사는 삶도 그런대로 이점이 있었다. 닐리마 쿠마리에게 일어난 일은 여기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집단주택 단지에서는 모두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시콜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주민이 한 지붕 아래 살았고, 공동화장실과 공동욕실을 사용했다. 집단주택 단지 주민들은 따로 사교적인 만남을 갖지 않았다. 대신 공동세면장 밖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고할레 부부도 화장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사랑에 빠져 한 달 만에 결혼했다고 한다. (P86-87)
“세번째 문제입니다.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작은 행성은 무엇입니까? 1) 명왕성 2) 화성 3) 해왕성 4) 수성.”
음악이 시작되기도 전에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야옹!”
프렘 쿠마르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뭐라고요?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들렸는데요.”
“1번이라고 말했습니다.”
“1번이요?”
“예. 답은 1번 명왕성입니다.”
“정답 1번이라고 확신하십니까?”
“예!”
북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화면에 ‘정답’이란 글자가 번쩍거렸습니다.
“맞습니다. 정확힌 맞혔습니다! 명왕성이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작은 행성입니다. 토머스 군. 이제 오천 루피를 버셨습니다!”
내가 상식이 풍부한 데 놀랐는지 벌떡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방청객도 있었습니다. (P109-110)
내가 좀더 어렸다면 그들은 나를 입양 기관에 보내서 신속하게 팔아치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여덟 살이어서 투르크만 게이트에 있는 델리 소년원에 보내졌다.
델리 소년원은 수용 인원이 일흔다섯 명이었다. 그런데 백오십 명의 아이가 우글거려 비좁고 시끄러웠다. 더럽기도 했다. 화장실은 둘뿐이었는데 악취가 진동했고 세면대는 줄줄 샜다. 그리고 쥐들이 복도와 부엌을 마구 돌아다녔다. 하나뿐인 교실도 변변치 않았다. 책상은 하나같이 흔들거렸고 칠판도 온전치 않았다. 선생이 있기는 했지만 가르치는 법이 없었다. 운동장에는 풀이 무릎 높이까지 무성하게 자라,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축구공만 한 돌덩이에 부딪혀 살갗이 벗겨지기 일쑤였다. 체육 선생은 하얀 면셔츠와 칼날처럼 달린 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는 크리켓과 배드민턴 기구를 멋진 유리 상자에 보관해두고 우리는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싸구려 마룻바닥을 깐 식당에는 길쭉한 나무 책상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심보가 고약한 주방장은 우리에게 할당된 고기와 닭고기를 식당에 팔아넘기고, 우리에게는 야채죽과 검게 탄 차파티만 주었다. 그는 코를 후비면서 음식을 조금만 더 달라고 사정하는 아이들에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P112-113)
“엉터리! 내 미래를 지어내서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누군지 알았어야죠! 우리는 부잣집 아이가 아니라고요. 우리는 투르크만 게이트에 있는 델리 소년원에 사는 고아고, 저 버스는 우리게 아니에요. 어쨌든 우리를 속여서 이십 루피를 버셨네요.”
나는 살림을 잡아끌며 말했다.
“살림, 가자! 쓸데없이 시간만 버렸어.”
우리가 가려고 하자, 노인이 다시 나를 불렀다.
“잠깐만! 너한테 뭘 주고 싶구나.”
나는 노인을 돌아보았다. 노인이 내게 일 루피짜리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행운의 동전이다. 항상 품에 갖고 다녀라. 너한테 필요할 테니까.”
나는 동전을 꼭 쥐었다.
살림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했지만 우리에겐 일 루피밖에 없어서 아무것도 사먹을 수 없었다. 우리는 다른 아이들이 놀이 기구 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심코 손가락으로 동전을 튕겼다. 동전이 손가락에서 빠져나와 벤치 아래로 굴러갔다. 나는 동전을 집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앞면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 십 루피짜리 지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마법처럼! 살림과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나는 조심스레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정말로 행운의 부적이었다. (P123-124)
프렘 쿠마르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만 루피가 걸린 네 번째 문제까지 왔습니다. 이번 문제도 쉬운 편입니다. 성가를 부르는 가수를 안다면요, 토머스 군은 우리에게 모든 종교를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성가도 잘 알기를 기대해봅시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준비됐습니까?”
“예!”
“좋습니다. 네 번째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맹인 시인 수르다스는 어떤 신을 찬송했습니까? 1) 람 2) 크리슈나 3) 시바 4) 브라마.”
그리고 배경음악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2번 크리슈나입니다.”
“정말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자신 있습니까?”
“예!”
북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화면에 ‘정답’이란 글자가 번쩍거렸습니다.
“맞습니다. 정확히 맞혔습니다! 토머스 군이 만 루피를 벌었습니다.”
방청객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프렘 쿠마르가 빙긋 웃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웃지 않았습니다. (P151-152)
프렘 쿠마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자, 이번 문제는 오만 루피가 걸린 문제입니다. 외교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정부는 다른 나라의 외교관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1) 훈장을 줘야 할 외교관 2) 근무를 연장해야 할 외교관 3)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 외교관 4) 용납할 수 없는 외교관. 질문의 뜻을 이해하겠습니까. 토머스 군?”
“예.”
“좋습니다. 그럼 답을 말씀해주십시오. 아직 당신에게는 두 번의 부활 기회가 남았습니다. ‘우정의 힌트’를 사용할 수도 있고, 네게 ‘반반씩’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내가 틀린 답 두 개를 알려주고, 당신은 나머지 두 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답은 4번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4번이라고 말했습니다. 용납할 수 없는 외교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추측한 겁니까? 답이 틀리면, 이미 확보한 만 루피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원하면 여기서 그만두셔도 됩니다.”
“아니요. 답을 압니다. 답은 4번입니다.”
방청석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십니까?”
“예.”
북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화면에 ‘정답’이란 글자가 번쩍거렸습니다.
“맞습니다. 정확히 맞혔습니다! 토머스 군, 오만 루피를 벌었습니다.” (P188-189)
지미스 바 핸드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나는 손님의 주량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술꾼을 분류하는 요령을 익혀갔다. 내 분류표에서 가장 윗자리는 말이 차지했다. 그런대로 말을 또렷하게 하면서 여덟 잔까지 마시는 사람이다. 그 아래는 당나귀였다. 기껏해야 두세 잔을 마신 후에 벌써 시끄러워지고 종잡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하는 사람이다. 감상적으로 변해서 눈물을 찔금찔금 흘리는 사람도 여기에 속했다. 그다음은 개였다. 무지막지하게 마셔대면서 걸핏하면 말다툼을 벌이고 주먹까지 휘둘렀다. 로지하고 히히덕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 아래는 곰이었다. 그냥 곰처럼 술을 들이켜다가 잠들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내 분류표에서 가장 밑바닥을 차지한 주인공은 돼지였다. 마지막 잔을 마신 후 토해내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런 분류는 완벽하지 않았다. 말처럼 마시다가 돼지처럼 끝내는 손님도 있었고, 곰으로 변해가는 개도 있었다. 이 손님이 돼지가 아니라 곰으로 끝난 것만도 내게는 천만다행이었다. (P192-193)
“안타깝군요. 부활 기회를 사용하지 않고 다음 문제에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십만 루피가 걸린 여섯 번째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파푸아뉴기니의 수도는 어디입니까? 1) 포트루이스 2) 포르토프랭스 3) 포트모레스비 4) 포트애들레이드.”
긴장감이 감도는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토머스 군. 혹시 답을 아시겠습니까?”
“예, 적어도 틀린 답이 뭔지는 압니다.”
프렘 쿠마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래요?”
방청객들이 자기들끼리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 포르토프랭스는 아닙니다. 거기는 아이티의 수도니까요. 포트루이스도 아닙니다. 거긴 모리셔스의 수도니까요. 포트애들레이드도 아닙니다. 애들레이드는 호주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답은 3번 포트모레스비입니다.”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북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화면에 ‘정답’이란 글자가 번쩍거렸습니다.
“맞습니다. 정확히 맞혔습니다! 포트모레스비가 정답입니다. 토머스 군, 십만 루피를 벌었습니다.”
방청객들이 벌떡 일어서서 박수를 쳤습니다. 프렘 쿠마르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마치 마법을 보는 기분입니다.”
스미타가 빙긋 웃으며 화면 속의 프렘 쿠마르에게 말했다.
“멍청이, 마법이 아니야. 부두교라고!”
스미타의 눈동자가 침실 바닥에 떨어진 뭔가로 향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웠다. 구멍이 네 개인 작은 셔트 단추였다. 스미타는 내 셔츠를 찬찬히 살폈다. 세 번째 단추가 보이지 않았다. 스미타는 그 단추를 내게 건넸다.
“단추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요!” (P214-215)
스미타는 깜짝 놀란 듯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맙소사! 그럼. 사람을 죽인 죗값도 치르지 않고 지금껏 살았단 말인가요?”
“두 사람입니다. 내가 샨타람을 어떻게 징벌했는지 잊지 않았겠죠?”
“그래도 기차에서 일어난 일은 사고였어요.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쨌든 그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지 확인해보겠어요. 다른 승객들이 당신에 대해 함구했을지도 모르지만요. 당신이 그들을 구했잖아요. 그런데 미나크시는 어떻게 됐나요? 그후에 그 여자를 다시 만났나요?”
“아니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여하튼 퀴즈쇼를 보시죠.”
스튜디오의 조명이 다시 어두워졌습니다.
프렘 쿠마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이십만 루피가 걸린 일곱 번째 문제까지 왔습니다. 준비됐습니까?”
“예. 준비됐습니다.”
“좋습니다. 일곱 번째 문제입니다. 회전식 연발 권총 리볼버는 누가 발명했습니까? 1) 새뮤얼 콜트 2) 브루스 브라우닝 3) 댄 웨슨 4) 제임스 리볼버.”
배경음악이 시작됐고 나는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프렘이 다시 물었습니다.
“이 이름들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만 귀에 익은 이름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포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하시겠습니까?”
“운에 맡겨볼 생각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죠. 자칫하면 지금까지 번 십만 루피를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난 잃을 게 없습니다. 답을 말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답이 뭡니까?”
“1번 콜트입니다.”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북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화면에 ‘정답’이란 글자가 번쩍거렸습니다.
“맞습니다. 정확히 맞혔습니다! 1835년에 리볼버를 발명한 사람은 새뮤얼 콜트입니다. 이제 상금이 두 배가 되어 이십만 루피를 벌었습니다!” (P238-239)
“땅에 묻히는 걸 무서워했습니다. 파키스탄 놈들이 인도 군인의 시체를 발견하면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고 이슬람교 전통에 따라 땅에 묻는다는 소문이 있었거든요. 인도 군인이 힌두교도라도 말입니다. 카르나일은 신을 경외하는 독실한 힌두교도였습니다. 그래서 전투중에 죽으면 화장하지 않고 2미터 땅속에 묻힐까 무서워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인가 카르나일이 내게 말했습니다. ‘분대장님, 내가 죽으면 꼭 화장해주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안 그러면 내 영혼은 결코 평화를 찾지 못할 거고, 삼만 육천 년 동안 깊고깊은 저승에서 헤매고 다녀야 할 겁니다.’ 나는 카르나일에게 절대 죽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려 했지만 카르나일은 완강했습니다. 결국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카르나일, 네가 죽으면 힌두 의식에 따라 화장시켜주겠다고 약속하마!’”
발완트는 한숨을 내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12월 3일에도 우리는 최전방의 초소에 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카르나일과 수크빈더, 라제슈와르 그리고 나는 최전방의 초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P250)
프렘 쿠마르는 의자를 빙 돌려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토머스 군. 일곱 문제를 정확히 맞혀서 이십만 루피를 벌었습니다. 이제 여덟 번째 문제에 도전할 차례입니다. 이번 문제에는 오십만 루피가 걸려 있습니다. 준비됐습니까?”
“예. 준비됐습니다.”
“좋습니다. 여덟 번째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인도 육군에게 수여되는 무공훈장 중 가장 명예로운 훈장은 무엇입니까? 1) 마하비르 차크라 2) 파람 비르 차크라 3) 사우리아 차크라 4) 아쇼크 차크라.”
긴장감이 감도는 배경음악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방청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들은 그새 정이 든 정다운 웨이터와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동정 어린 얼굴로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2번 파람 비르 차크라입니다.”
프렘 쿠마르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습니다.
“답을 아신 겁니까, 아니면 추측해서 대답하신 겁니까?”
“답을 알고 대답한 겁니다.”
“그럼 그 대답이 맞다고 확신하십니까?”
“물론입니다.” (P275)
하지만 그가 이런 정보를 기록한 이유가 따로 있더라고. 크리켓 경기에 돈을 걸려는 거였어.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인도와 영국이 연속 경기를 벌일 때였을 거야. 아흐메드가 텔레비전 중계를 보면서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라고. 그래서 내가 물었지.
‘아흐메드 님, 뭐 하시는 거예요?’
‘사타를 하려는 거다.’
‘사타요? 사타가 뭔데요?’
‘불법 도박을 그렇게 부른다. 사타는 뭄바이의 비밀 지하조직이 만든 도박으로 하루에만 수백만 루피가 회전된다. 크리켓 한 경기에 수백만 루피가 걸리고,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수천 루피가 왔다갔다하지. 나는 사타에서 꽤 큰손에 속한다. 이 집과 값비싼 텔레비전, 부엌에 있는 전자레인지, 침실의 에어컨 등 모든 게 사타에서 번 돈으로 산 거다. 삼 년 전에 인도와 호주의 경기에서 한 밑천 잡았지. 너도 기억하겠지. 에덴 가든스에서 열린 그 유명한 경기를? 인도가 232대 4로 이긴 경기에서 확률은 1000대 1로 인도가 불리했지. 그런데 난 락스만과 인도에 돈을 거어 백만 루피를 땄다!’
‘백만 루피나요!’ (P288)
“아홉 번째 문제입니다. 이번 문제는 스포츠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토머스 군.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다고요?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건강해 보이십니까? 나는 매일 아침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는데도 이렇게 뚱뚱한데요.”
“웨이터로 일하면서 매일 삼십 킬로미터를 출퇴근하면 당신도 나처럼 날씬해질 겁니다.”
방청객들이 킥킥대고 웃더군요. 물론 프렘 쿠마르는 얼굴을 찌푸렸고요.
“좋습니다. 아홉 번째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크리켓에 관한 질문입니다. 인도 최고의 타자 사친 말반카르는 100점대를 몇 번이나 기록했습니까? 1) 서른네 번 2) 서른다섯 번 3) 서른여섯 번 4) 서른일곱 번.”
베경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좋습니다.”
“인도가 최근 시리즈에서 호주와 경기한 후에 다른 나라와 경기를 했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아닙니다.”
“그럼 답은 3번 서른여섯 번입니다.”
“확실합니까? 답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그 답에 백만 루피가 걸렸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P299-300)
“그럼 이쯤에서 그만두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지만 운이란 건 언제라도 끝날 수 있잖습니까.”
“토머스 군. 정말 유감이네. 자네가 계속 도전해서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걸세. 그래서 우리는 자네가 쉽게 맞힐 수 있는 문제를 내기로 했네. 내가 두 번째 문제에서 자네를 어떻게 도왔는지 기억하겠지? 그때 내가 문제를 바꾸지 않았다면 자네는 한 푼도 건지지 못했을 거야. 다음 세 문제에서도 자네를 돕고 싶네. 분명히 약속하지. 자네가 계속 도전한다면 우리는 자네가 이길 수 있도록 도울 거야. 자네가 이기기를 바라니까. 그럼 우리 쇼에서 최고의 화젯거리가 될 거야.”
“어떤 문제를 낼 건데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몰래 자네한테 미리 답을 가르쳐줄 테니까. 두 번째 문제에서 나를 믿었다면 열 번째, 열한번 째. 마지막 열두번째 문제에서도 나를 믿을 수 있지 않겠나? 어떻게 하겠나?”
“내가 이기도록 해주기만 한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좋습니다. 다음 문제가 뭡니까?”
“잘 생각했네.”
그리고 프렘 쿠마르는 손뼉을 치고 나서 프로듀서에게 말했습니다.
“빌리, 토머스 군이 계속 도전하기로 했어!”
프렘 쿠마르가 나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다음 문제를 가르쳐주겠네. 자네에게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에 있는 폴크 해협의 길이는 몇 킬로미터입니까? 1) 64킬로미터 2) 94킬로미터 3) 137킬로미터 4) 209킬로미터’라고 물을 거야. 정답은 3번 137킬로미터네. 기억하겠나?”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정답이라고 어떻게 보장하죠?”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토머스? 자넬 비난할 생각은 없네. 어차피 우리는 십억 루피를 두고 얘기하는 거니까. 내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수밖에. 이 책을 보게. 수를 읽을 줄은 알겠지?”
프렘 쿠마르가 퀴즈책처럼 문제와 답이 잔뜩 적힌 수첩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내게 물었던 문제를 찾아서 답을 보여줬습니다. 답은 정확했습니다. 137킬로미터.
“이제 내 말을 믿겠나?” (P333-334)
프렘 쿠마르가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토머스 군. 내가 문제를 낼 때는 방해하지 마십시오. 마저 문제를 내겠습니다. 비극의 여왕 닐리마 쿠마리는 여우주연상을 언제 받았습니까? 1) 1984년 2) 1988년 3) 1986년 4) 1985년.”
나는 프렘 쿠마르를 무섭게 쏘아보았습니다. 그가 능글맞게 웃더군요. 그제야 나는 눈치를 챘습니다. 그가 휴식시간에 내게 말한 것은 나를 이 단계에 끌어들이려는 미끼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내 행운의 여신을 간과했습니다. 행운의 여신은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답을 압니다. 답은 4번 1985년입니다.”
“뭐라고요?”
프렘 쿠마르가 벼락이라고 맞은 듯이 놀라더군요. 얼마나 놀랐는지 내게 정답이라고 확신하냐고 묻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기계적으로 버튼을 눌렀고 정답이 화면에 번쩍거렸습니다. 4번이라고!
프렘 쿠마르는 유령이라도 본 듯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토머스 군. 천만 루피를 벌었습니다.” (P337)
“......... 타지마할은 영원한 사랑을 위한 기념물이지만, 아름다움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상징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타지마할의 직사각형 바닥은 외모만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여인의 아름다움을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상징합니다. 주 출입문은 여인의 얼굴을 가린 베일을 뜻합니다. 결혼식날 밤에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벗겨야 할 베일 말입니다.
또 타지마할은 보석처럼 달빛에 반짝거립니다. 중심이 되는 영묘에 덧씌워진 흰 대리석에 준보석이 상감되어 있어서 달빛을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지마할은 아침엔 분홍빛을 띠고, 저녁에 우윳빛을 띠며, 달이 빛날 때면 황금빛을 띱니다. 이것이 여인의 변덕을 뜻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제 영묘 안으로 들어가보실까요? 신발을 벗어 여기에 놓아주십시오.”
관광객들은 신발을 벗고 영묘에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둥근 지붕의 색이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닐리마 쿠마리의 변덕스러운 마음과 비교해보았다. (P346-347)
“니타는 어디에도 못 가. 회복하려면 사 개월이나 걸린대. 니타가 이렇게 된 데는 네 책임도 있으니까 너도 치료비를 좀 내야 해. 성형수술도 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무지하게 비싸더군. 거의 이십만 루피래. 그러니까 니타를 정말로 원하면 육십만 루피를 가져와.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여기 있는 내 친구가 너를 손봐줄 거야.”
샴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더니 손님의 수염을 깎는 이발사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빙빙 돌렸다. 그는 판으로 누렇게 물든 이를 드러내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제야 니타가 결코 내 여자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샴이 결코 니타를 놓아주지 않을 거란 것도 깨달았다. 내가 육십만 루피를 갖고 오면 샴은 요구액을 백만 루피로 올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구역질이 밀려왔다. 겨우 정신을 차리자 바닥에 떨어진 축축한 신문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 남자가 빙긋이 웃으면서 수천 루피의 돈을 들고 있는 광고였다. 사진 아래에 “최고의 텔레비전 퀴즈쇼, <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 것인가?>에 참여하십시오. 전화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지금 전화하십시오. 편지로 신청해도 됩니다. 지상 최대의 상금을 차지하는 행운에 도전하십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광고에 쓰인 주소를 보았다. 뭄바이에 있는 카르프렘 스튜디오였다. 그걸 보고 나는 뭄바이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응급실을 나왔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도 이제는 짜증스럽지 않았다. 안경 낀 남자가 여전히 복도에 서 있었다. 그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듯했다. 나는 여전히 손에 갈색 봉투를 쥐고 있었다.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가 뼈다귀를 기대하는 개처럼 쏜살같이 달려왔다. 나는 그에게 갈색 봉투를 건네주며 말했다.
“받으세요. 안에 사십만 루피가 있습니다. 아들을 살리세요.”
남자는 봉투를 받아들고는 털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자네는 인간이 아닐세. 자네는 신이야!” (P412-413)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걸 말합니다. 어쨌건 개의치 마십시오. 하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해선 들어봤겠죠?”
“셰이크 뭐요?”
“에이번의 음유시인이자 영어권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인데, 아십니까? 아, 대학 시절로 돌아가고 싶군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공연하면서 보내던 때니까요. <햄릿>에서 기억나는 대사가 있습니까?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 꽂힌 고통을 죽은 듯 참는 것이 과연 장한 일인가, 아니면 두 손으로 거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지만 다음 문제를 답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토머스 군입니다. 자,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일억 루피라는 천문학적 상금이 걸린 문제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코스터드라는 인물은 어디에 나옵니까? 1) 리어 왕 2) 베니스의 상인 3) 사랑의 헛수고 4) 오셀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멍하니 프렘 쿠마르를 쳐다보았습니다.
“토머스 군, 무슨 문제인지 아시겠습니까?”
“아니요.”
“아니라니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행운의 동전을 던져서라도 답을 말해야 합니다. 혹시 압니까? 행운이 토머스 군의 편이라면 정확한 답을 맞혀서 일억 루피를 벌 수 있을지요. 자, 답을 말씀하십시오.”
나는 머릿속이 하얘진 기분이었습니다. 마침내 막다른 길에 몰린 걸 알았습니다. 삼십 초 정도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부활 기회를 사용하겠습니다.”
프렘 쿠마르가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퀴즈쇼에 부활 기회라는 게 있다는 걸 잊은 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물었습니다.
“부활 기회요? 맞습니다. 토머스 군에게는 부활 기회를 두 번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느 것을 사용할 겁니까? ‘우정의 힌트’를 사용할 수도 있고, ‘반반씩’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문제의 답을 구하는 데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살림은 나만큼이나 무식해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미스 바 주인이 셰익스피어를 알 리도 없었습니다. 경찰에게 정직을 기대할 수 없듯이 다라비에 사는 사람들에게 문학을 기대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티모시 신부라면 도움을 줄 수 있었겠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반반씩’에 운명을 걸어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행운의 동전을 꺼내려고 셔츠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명함이 손에 잡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명함을 꺼냈습니다. ‘우트팔 차테르지. 영어 교사, 세인트 존스 고등학교. 아그라’라고 쓰여 있더군요. 전화번호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우트팔 차테르지라는 이름도 기억할 수 없었고, 그 명함이 내 셔츠 주머니에 있는 이유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그라의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안경을 쓰고 머리도 빗지 않은 남자, 광견병에 걸린 열여섯 살짜리 아들 때문에 내게 애걸하던 남자가 기억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던 모양입니다.
프렘 쿠마르가 그 소리를 듣고 나를 매섭게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뭐라고 말했죠?”
나는 명함을 프렘 쿠마르에게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이분에게 전화를 걸어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우정의 힌트’를 사용하겠습니다.” (P418-420)
“여러분. 열두번째 문제, 즉 마지막 문제에 도전할 순간이 왔습니다. 십억 루피,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린 문제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도전이냐 포기냐’ 단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모든 걸 잃게 됩니다. 자, 토머스 군. 마지막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이 문제는....... 역사 문제입니다. 뭄타즈 마할이 샤자한 황제의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또 샤자한 황제가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서 타지마할을 세웠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럼 뭄타즈 마할의 아버지 이름은 무엇일까요? 십억 루피가 걸린 문제입니다. 1) 미르자 알리 쿨리 베그 2) 시라주다울라 3) 아사프 자 4) 압두르 라힘 칸 카난. 토머스 군,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지금 역사의 갈림길에 있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방청객 여러분도 자리를 뜨지 마시고 조용히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
스튜디오의 신호가 ‘박수’로 바뀌고 다시 배경음악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렘 쿠마르가 빙긋이 웃으며 내게 말했습니다.
“내 말이 맞지? 대학원에서 중세사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맞힐 수 없는 문제야. 이제 자네가 벌어놓은 일억 루피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웨이터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혹시 아나, 내가 내일이라도 지미스 바에 들르게 될지 말이야. 그럼 나한테 뭘 주겠나? 버터를 발라 구운 치킨? 양 빈달루?” (P428-429)
“프렘 쿠마르 씨. 내가 돈을 벌려고 퀴즈쇼에 출연한 게 아니란 뜻이에요. 절대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크게 저으면서 다시 덧붙였습니다.
“복수를 하러 퀴즈쇼에 출연한 거라고요!”
프렘 쿠마르의 오줌이 갑자기 끊기더군요. 그는 허겁지겁 바지 지퍼를 올리며 나를 노려보았습니다.
“복수? 무슨 뜻인가? 누구한테 복수를 한다는 거지?”
나는 시비조로 대답했습니다.
“당신한테.”
나는 뒤로 물러서서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습니다. 총신이 짧은 리볼버였습니다. 내 주먹만 한 총이었죠. 나는 권총을 꼭 쥐고 그를 겨누었습니다.
프렘 쿠마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말조차 더듬거렸습니다.
“자네...... 잘못 안 거야. 토머스. 우린 전에 만난 적도 없어.”
“천만에. 당신이 잘못 안 거야. 우리는 딱 한 번 만났지. 닐리마 쿠마리의 아파트 밖에서 아주 이른 아침이었지. 넌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거들먹대며 아파트를 나왔어.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머리도 빗지 않은 채. 닐리마에게 뜯어낸 돈다발을 들고, 자동차 열쇠를 손가락에 끼고 빙빙 돌리더군. 당신이 닐리마를 파멸시킨 거야.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았는지 당신은 니타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어. 내가 사랑하는 니타에게도!”
프렘 쿠마르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습니다.
“니타? 난 전혀 모르는 이름인데.”
“당신 덕분에 아그라에서 거의 죽을 뻔한 여자라면 알겠어?”
나는 권총을 더 세게 움켜잡고 소리쳤습니다.
“이젠 네 차례야!”
프렘 쿠마르가 내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교묘하게 시간을 끌었습니다. (P432-433)
“내가 구디야예요. 당신이 집단주택 단지에서 도와줬던 여자라고요. 내 아버지를 난간에서 떨어뜨려 죽였다고 가책을 느끼지는 마세요. 아버지는 다리 하나가 부러졌을 뿐이에요. 그 바람에 정신을 차렸지요. 그후로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니까. 당신에게 큰 빚을 진 기분이에요. 그래서 오랫동안 당신을 찾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더군요. 그런데 어제 신문에서 당신 이름을 봤어요. 람 모하마드 토머스란 청년이 경찰에 구속됐다고요. 세상에 람 모하마드 토머스는 한 사람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경찰서로 달려간 거예요. 이것으로 당신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았으면 좋겠군요.”
나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스미타의 손을 꼭 잡고 그녀의 체온을 느껴보았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스미타를 부둥켜안았다.
“당신이 날 찾아내서 너무 기뻐요. 한 번에 변호사와 친구와 누이를 동시에 얻은 기분이에요.”
“당신 문제는 이제 내 문제예요. 람 모하마드 토머스.”
그리고 스미타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덧붙였다.
“당신을 위해 싸울 거예요. 당신이 날 위해 싸웠듯이.” (P443-444)
“당신은 그 정도로 운을 믿나요?”
“동전이 운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이 동전을 보십시오.”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일 루피짜리 동전을 꺼내 스미타에게 건네줬다.
스미타는 동전을 받아들고 살짝 위로 튕겼다가 다시 한번 튕겼다.
“아니...... 양쪽 모두 앞면이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내 행운의 동전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했듯이 운은 그 동전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나는 스미타에게 동전을 받아 하늘 높이 던졌다. 동전이 위로, 위로 올라가 푸른 하늘에서 반짝거렸다. 그리고 바다에 떨어져 깊이, 깊이 가라앉았다.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P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