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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르칼의 <아더왕 이야기>

영화 <킹 아서: 제왕의 검> 2017년

by 노용헌

원탁의 기사들과 성배의 전설을 연대순으로 완벽하게 복원한 '장 마르칼'의 『아더왕 이야기』 는 제1권 <엑스칼리버>, 제2권 <원탁의 기사들>, 제3권 <호수의 기사 란슬롯>, 제4권 <요정 모르간>, 제5권 <가웨인과 아발론의 길>, 제6권 <웨일즈인 퍼시발>, 제7권 <갈라하드와 어부왕>, 제8권 <아더 왕의 죽음>이다.


애니메이션 아더왕의 검(1963), 킹 아더(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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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어떤 이들은 천지 창조 이후 사천 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라고 한다). 아주 강력한 왕이 한 사람 살았다. 왕은 지혜와 용기와 불굴의 의지로 오늘날 그리스를 구성하는 모든 나라에 지배력을 행사했다. 잘 짜여진 왕의 군대는 많은 무기와 말을 보유하고 있었고, 장수들의 명령 체계 또한 분명하게 서 있었다. 출중한 능력을 갖춘 충성스러운 장수들이었다. 많은 배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었고, 세계 이곳저곳에서 온 물건들이 가득 쟁여져 있었다.

자유농민들은 땅을 잘 경작해 많은 밀과 올리브를 거두었다. 평야와 골짜기, 산비탈에서 가축도 많이 길렀다. 신하들은 불평할 일이 별로 없었다. 왕은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리면서 법을 어기는 일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고, 사회 여러 계층이 서로 화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P7-8)


이윽고 태풍이 가라앉고 하늘이 맑아졌다. 태양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가벼운 바람이 배를 서쪽으로 끌고 갔다. 배는 나지막한 해안가로 떠밀려 갔다. 그 땅은 오늘날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공주들은 생각했다.

‘신들께서 우리를 폭퐁우에서 보호하셔서 이 땅으로 데려다 주셨다. 이제 이 땅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거야.’

그들은 뭍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다른 공주들보다 먼저 배에서 뛰어내린 공주는 알비네였다. 공주는 발밑에 단단한 땅을 느끼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맏언니로서 나는 이 땅을 소유한다. 나를 이 땅의 여주인이자 지배자로 선포한다. 신들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이 땅과 이 땅에 속한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삼는 이 신성한 행동의 증인이 되어 주시기를!”

다른 스물여덟 명의 공주도 배에서 내렸다. 그들은 비척거리며 겨우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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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온 땅은 오랫동안 거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거인들은 악마에 의해 잉태되었기 때문에 그 사악한 힘을 물려받았다. 성숙한 나이에 이르자 소년들 역시 자연이 불러일으킨 욕망의 포로가 되었고, 다른 여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들과 결합했다. 아들과 딸이 많이 태어났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짝을 맺었다. 그들의 몸은 계속 자랐다. 그들은 강했고 덩치와 키가 놀라울 정도로 커졌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인 바, 이 나라의 땅 거의 어디에나 거대한 선돌 유적 아래를 파 보면, 저주 받은 거인족의 뼈라고밖에 할 수 없는 거대하고 괴물 같은 뼈들이 출토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마에서 유래한 종족의 수는 불어났으며 평야와 골짜기, 특히 산을 침범했다. 그들의 흔적은 산 위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 거인들은 신체적 조건 하나만으로도 강한 종족이었지만 바위와 금속의 비밀도 알고 있었으며, 대규모의 건축물을 지을 줄 알았다. 거인들은 땅속에 지하실을 파고 지하실 둘레를 돌담으로 에워싼 뒤, 문 앞에는 건널 수 없는 구덩이들을 팠다. 거인들은 적의 공격을 두려워했고, 서로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모든 주의를 기울였다. 그만큼 그들은 사악했고 오만은 절도를 몰랐다. (P18-19)


어느 날, 브루투스가 토트네이스에서 큰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거인들이 쳐들어와 브리튼인을 공격했다. 전투는 대규모였고 참혹했다. 브리튼인은 거인들보다 숫자도 많고, 더 훌륭한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인들은 강하고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게으르게 지냈기 때문에 지구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거인들은 금방 지쳤다. 결국 스물세 명의 거인이 목숨을 잃었다. 브루투스는 마지막 스물네 번째 거인의 목숨은 살려 주라고 명령했다. 고에마고그라는 이름을 가진 거인의 키는 무려 12쿠테(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1쿠테는 약 50센티미터)에 달했다. 브루투스는 거인의 덩치에 놀랐다. 그는 이 종족이 어떻게 섬에 살게 되었는지, 또 그들이 어디에 뿌리를 두었는지 알고 싶었다. 브루투스는 고에마고그를 사슬에 묶어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는 참을성 있게 거인에게 물었다. 거인은 자신의 조상이 어떻게 태어났고 지금까지 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조상에게 들은 대로 이야기했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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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아디케의 운명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브리튼인은 하나둘씩 차례차례 그녀의 눈앞에서 학살당했다. 로마인은 여자도 말도 살려 두지 않았다. 보아디케는 죽음의 손길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독을 마시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자신을 생포할 기회를 적에게서 박탈했다. 브리튼의 저항은 끝났다. 드루이드들은 학살당하거나 추방되었다. 브리튼의 왕들은 전쟁에서 패하거나 배반 때문에 몰락했다. 로마가 승리했다.

동방에서 어떤 남자에 대한 이상한 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왔다.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 칭했던 그 남자는 가장 수치스럽게 죽었다고 했다. 남자는 도둑놈이나 폭도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으나, 죽은 지 사흘 만에 자기 제자들에게 나타나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러 세상 구석구석으로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드루이드와 왕의 시대는 끝났다. 브리튼 섬은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안개에 싸여 무기력하게 잠들어 있었다. (P33)


어느 날 밤, 요셉은 어둠 속에서 그에게 말을 거는 신비한 음성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목소리가 말했다.

“이제 이곳을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되었다. 너와 브론, 브론의 열두 아이, 네 두 아들 요세페와 일렌, 또 성배의 식탁이 허락한 사람들을 실어갈 배를 한 척 만들도록 하라. 모두 이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되 성배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 것이며, 해가 지는 쪽의 나라를 향해 가라. 그곳에 가서 복음을 알리고 성배를 보관하기에 합당한 성을 지으라. 너희는 너희를 적대하는 나라에서 오래 헤맬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위해 예비한 장소에 이를 때까지, 고통과 가난에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곳은 세계의 끝에 있는 아발론 골짜기이니, 그곳에서 태양은 물결 속으로 사라지되, 다음날 더욱 빛나고 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폭풍우 속에서 몇 주 동안 항해하고 난 어느 날 저녁, 그들은 사라스의 항구에 도착했다. 어떤 이들은 이 항구의 이름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서 유래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사라센이라고 부르는 민족이 사실 사라스에서 온 종족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 도성은 에발라흐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세라페라는 동생이 있었다. 그 섬은 외국인을 환대하는 섬이 아니었다. 요셉은 즉시 체포되어 왕 앞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을 향한 모든 질문에 당당하게 답했다. 요셉은 에발라흐 왕과 독대하여 따로 말할 것을 요청했다. 왕이 허락했다. (P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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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정신을 되찾았을 때 주위에는 하늘과 물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물질 위에서는 풀도 나무도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동쪽으로 조아려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끝내고 몸을 일으켜 보니, 화려하게 장식한 높은 배 한 척이 섬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배가 섬에 닿았다. 나스키엔은 성호를 긋고 안으로 들어갔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호사스러운 침대 하나가 보였다. 베개 위에는 매우 아름답고 귀한 검이 칼집에서 반쯤 빠져나온 상태로 놓여 있었다. 그런데 검에 달린 끈은 이상하게도, 다른 부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주 초라한 것이었다. 삼베 조각으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너무 약해서 검과 칼집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다. 칼날에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기사만이 검을 칼집에서 뽑을 수 있으며, 솔로몬 지파(支派)에 속한 젊은 여자만이 어느 날 끈을 교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침대 주위에는 나무로 만든 방추(紡錘) 세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눈처럼 희고, 다른 하나는 피처럼 붉고, 다른 하나는 에메랄드처럼 초록색이었다. (P54-55)


요세페가 죽은 뒤, 알렌은 일행과 함께 나라를 떠났다. 알렌 일행은 곧 어떤 왕국에 도착했다. 그 나라의 백성들은 가축을 몰고 밭을 경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왕국의 이름은 ‘이상한 나라’였는데, 칼라페라는 이름을 가진 문둥이 왕이 다스렸다. 알렌이 왕의 병을 고쳐 주고 알파셈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알파셈은 아발론 골짜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알렌은 일행과 함께 그 장소로 갔다. 늪 한가운데 있는 고적한 섬이었다. 그는 그곳에 큰 성을 짓고 코르베닉이라 이름 붙였다. 알렌은 비밀의 방을 하나 만들어 그 안에 성배를 모셨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르베닉 성을 가까이 지나는 사람들도 그 성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성은 언제나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곳을 ‘유리의 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수세기 동안 그 모험의 성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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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체스를 두고 있는 두 명의 젊은이, 곧 에우다브의 아들 코난과 아데온을, 그리고 금으로 덮인 의자에 앉아 있는 형제의 아버지, 백발 머리의 남자를 보았다. 백발 남자 앞에는 에우다브의 딸 엘렌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꿈에서 본 모습보다 더 아름다웠다. 남자는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했다. 그러자 엘렌이 일어나더니 막센을 향해 다가와 목에 두 팔을 둘렀다. 이렇게 해서 막센 황제는 에우다브의 딸 엘렌 루이다우크와 결혼했다. 에우다브는 브리튼 고대 왕가의 카라독의 아들이었다.

엘렌의 오라비 코난은 이 결혼을 마땅찮아 했다. 코난은 메리아도 그의 영주이며, 아버지가 다스리는 왕국의 계승자였다. 코난은 자신의 처남을 경쟁 상대로 여겼다. 코난은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데리고 북쪽 지방으로 되돌아갔다가 막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은 참혹했지만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없었다. 결국 엘렌의 간청에 못 이겨 두 사람은 엄숙하게 화해했다. 왕국은 두 사람이 함께 다스리기로 합의했다. 막센은 브리튼 섬에 칠 년간 머물렀다. 그동안 로마에서는 다른 황제가 선출되었다. (P69)


한편 브리튼 섬은 픽트족과 게일족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었다. 두 민족은 브리튼의 성채와 마을에 자주 침입하여 약탈 행위를 일삼았다. 더군다나 세계의 끝에 있는 이 나라의 방어를 보장해 줄 로마인도 더 이상 없었다. 엘렌과 막센의 아들은 적과 싸우기 위해서 브리튼의 우두머리들을 모으려고 애썼지만, 민족 내부의 경쟁의식과 싸움 때문에 적을 물리치는 일은 여의치 않았다. 막센의 증손자 콘스탄틴이 로마인이 타인 강 북쪽에 세워 놓은 큰 성벽 너머로 픽트족을 밀어낼 때까지는 그런 형편이었다. 콘스탄틴의 시대는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자 다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콘스탄틴은 세 명의 아들을 남겼다. 엠리스, 우터, 그리고 콘스탄트이다. 권력에 아무 관심이 없던 콘스탄트는 수도사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콘스탄틴의 조카 보티건이 권력 경쟁에 끼어들었다. 보티건은 콘스탄트를 구워삶아 왕위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맏이인 콘스탄트가 왕위를 요구했기 때문에 족장들은 콘스탄트를 왕으로 선출했다. 콘스탄트는 유약하고 야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왕이 되고 난 뒤에도 정치보다 침묵과 명상에 더 관심이 많았다. 콘스탄트는 보티건을 왕궁 집사로 임명하고 제멋대로 통치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보티건은 교활하고 뻔뻔한 사람이었다. 픽트족과 조약을 맺어 자기가 브리튼 왕국을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땅을 떼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보티건은 부자였기 때문에 족장을 매수하여 마음대로 조종했다. 보티건은 콘스탄트 황제의 위병들을 몽땅 픽트족으로 배치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왕에 대한 모든 것, 또 왕이 왕국의 관리들과 나누는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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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이 물었다.

“사제께서는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 여자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블레이즈가 대답했다.

“지금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아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처형하지 말 것을 청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탯속의 아이는 죽음을 당해야 할 아무 잘못도 저지른 바 없으며, 제 어미의 죄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이를 처형한다면 여러분은 죄 없는 목숨 하나를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재판관들은 그 충고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아기가 태어나서 젖을 땔 때까지 여자의 목숨을 살려두라는 판결을 내렸다. 여인은 자신을 감시하는 여자들과 함께 탑 안에 있는 감옥에 갇혔다.

여자들은 태어난 아이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아이는 매우 튼튼하고 사랑스러웠지만, 세상에서 보았던 어떤 갓난아기보다 더 털복숭이였기 때문이다. 어딘가 불길한 모습이었다. 아기의 어머니는 자기 아버지 이름인 멀린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했다. 아기는 아홉 달 동안 젖만 먹고 자랐다. 그래도 벌써 한 돌이 지난 아기 같았다. 열여덟 달이 되었을 때는 세 살배기쯤 되어 보였다. 여자들이 아기 어머니에게 말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게요. 저희 임무는 끝났거든요.”

젊은 아기 엄마는 이제 자신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기가 젖을 떼었으니 사람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이다. 그리고 화형대로 끌고 가겠지. 여인은 아기를 꼭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여인은 창가에 서서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엄마는 죽어야 한단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너를 어떻게 잉태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나는 진실을 말했지만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구나. 그러니 엄마가 불에 타 죽어야 한단다.”

아기가 제 어미를 빤히 쳐다보더니, 아주 또렷하게 말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엄마가 나 때문에 죽는 일은 없어요.”

여인은 갓난아기가 말하는 것을 듣고 기겁하며 놀랐다. (P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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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은 충격과 경악으로 벌린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 뒤에 정신을 추스르고 멀린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만일 내가 내 어머니를 벌하지 않는다면, 네 어머니에게 벌을 주는 일은 부당한 일이 되겠구나. 그렇다면 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내가 사람들 앞에서 네 모자를 무죄 판결하기 위해 다시 한번 더 묻겠다. 누가 네 아버지이냐?”

“말씀드리지요. 그러나 당신이 대표하고 있는 권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우정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악마의 아들입니다. 그자는 어머니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 어머니를 범했고 어머니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아기를 가지게 한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악마를 몽마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공기 중을 떠돌며 삽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거나 지옥에서 온 명령을 따를 때는 언제나 여자와 결합할 준비를 하고 있지요. 몽마가 내 진짜 아버지입니다. 그가 나에게 사람들이 과거에 말했거나 행했던 일을 아는 능력을 주었지요. 신께서 그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당신 어머니의 삶을 알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신께서는 진실로 참회하며 계율에 복종하는 내 어머니의 덕성에 대한 보답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부분적으로 알 수 있는 능력 또한 내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재판장의 얼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사실 재판장의 표정은 좀더 복잡했다. 공포와 경이의 감정도 뒤섞여 있었다. 이제 그는 아이의 말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렇게 놀라운 아이라면 분명히 사람의 아이는 아니다.’ 재판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신이 그려 놓으신 운명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운명 안에 자리 잡는 방식도 불가사의하다. 순결한 영혼을 가진 인간은 저주조차 축복으로 바꾸어 놓는구나. 재판장은 새삼 경탄하는 눈으로 아이와 아이의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집에서 나왔다. (P10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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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아, 너는 네가 악마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난 네 말을 믿는다. 하지만 내 망설임을 용서해 다오. 때로는 네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두렵구나.”

멀린은 블레이즈를 놀리는 것처럼 웃었다. 아이는 장난기가 가득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블레이즈는 아이의 시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자, 보세요! 악인의 습관은 자기 안에 있는 결점을 어디에서나 찾는다는 것이지요. 악인은 선(善)이 마법의 숲속에 숨어 있을 때는 찾아내지 못해요. 달리 말하면, 악인은 어디에서나 악을 본다는 겁니다. 나는 신부님이 악인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악(惡)을 생각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 곁에 오래 계시다 보니, 신부님도 의심과 실수의 화살에 맞으신 거라는 걸 말씀드리는 거예요. 신부님은 내가 악마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셨어요. 그러면 그걸 의심하셔야 할 아무 이유도 없는 겁니다. 하지만 악마의 아들이 악마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신부님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멍청한 생각의 노예가 되신 거예요. 그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건 신성 모독이에요.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행동뿐 아니라 사소한 생각에 대해서까지 신 앞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니까요. 아버지가 죄인이라고 해서 그 아들까지 똑같이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나요?”

“하지만 죄인은 참회할 수도 있고, 또 그럴 자격이 있다면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악마는 다르다. 그가 어떤 존재이든 그는 인간이 아니며 따라서 용서 받을 수도, 구원 받을 수도 없지. 악마의 아들 또한 악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무척 두렵구나.”

멀린은 또 웃었다.

“신부님은 분명히 훌륭한 추론가세요. 나도 같은 추론을 사용해 볼까요? 신부님은 내가 악마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으셨지요. 하지만 신께서 미래의 일을 아는 능력을 주셨다는 말도 들으셨어요. 신께서 왜 내게 그런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하세요? 신께서는 결코 우연히 행하시지 않습니다. 비록 신의 의지를 당장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해도 말이에요. 신께서 나에게 그런 능력을 주신 것은, 악마들이 땅 위에서 자기들의 전령 역할을 할 사람을 가지고 싶어할 때, 악마들의 그 사악한 계획을 내가 파괴해야만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걸 이해하셔야 해요. 신께서는 큰 지혜 안에서 내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모든 재능을 지니도록 허락하셨지요. 그리고 그는 나의 재능과 힘이, 인간의 행복과 세계가 창조된 이래로 모습을 드러냈던 신의 계획을 완성하는 데 기여하게 하셨어요. 거기에 덧붙여, 미래라는 커다란 책을 단 몇 페이지라도 읽을 수 있는 능력 또한 주셨지요. 왜냐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부 아는 것은 신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니까요. 어떤 피조물도 그를 대신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니까요.”

블레이즈 사제는 감탄하며 아이가 하는 말을 들었다. (P1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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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건은 마음이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지만 알고 싶다고 말했다. 멀린이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강하고 공격적이었던 붉은 용은, 오만하고 사악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며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당신 자신입니다. 흰 용은 당신 때문에 피난을 가야했던 콘스탄틴 왕의 두 아들이지요. 어느 날 그들이 와서 자신의 유산을 요구하고 폭군인 당신을 내쫓을 겁니다. 흰 용이 붉은 용을 태워 죽인 것은, 콘스탄틴의 형제인 엠리스와 우터가 당신을 추격하여 당신이 불에 타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탑 덕택으로 정해진 운명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리세요. 모든 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영원히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멀린이 말을 할수록 보티건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멀린의 말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멀린은 이미 여러 차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왕의 대신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대신들 역시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신들은 단순한 증인이 아니라 사건을 저지른 장본인이기도 했다. 보티건이 다시 물었다.

“멀린, 콘스탄트의 두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

멀린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아이가 아니라 어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완벽하게 의식하고 있어요. 또한 당신이 그들에게, 그리고 브리튼 왕국 전체에 저지른 잘못도 완벽하게 알고 있지요. 두 왕자는 당신이 왕위 찬탈자이며 조국의 배반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건 정당한 평가지요. 왜냐하면 브리튼 섬에 처음으로 색슨족을 끌어들이고, 그들과 동맹을 맺은 사람이 당신이니까요. 왕이 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당신이 콘스탄트 왕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가는 곳마다 되풀이해 말하고 있지요. 왕국의 위엄과 정의를 되찾기 위해서 그들은 당신에 대항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겁니다.”

보티건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왕이 애원하듯이 물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P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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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태운 배를 아일랜드로 보내십시오. 그곳에 거대한 암석들이 있을 겁니다. 그것들을 가져오게 하십시오. 암석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드리지요. 선인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킬라라 산의 정상에 있습니다. 그곳에, 옛날에는 초자연적인 힘의 도움 없이는 쌓을 수도 없고 옮길 수도 없었던 거대한 바위들이 있지요. 그 바위들은 크기도 하거니와 힘과 효능에 있어 다른 돌들과 견줄 수 없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형 엠리스 왕과 왕을 도와 왕국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모든 사람들을 영예롭게 하시려면, 솔즈베리 평원의 전장에 그 암석들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암석들을 아일랜드에서 실어다 형의 무덤 주위에 둥글게 세워 놓으십시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렇게 멀리까지 바위를 찾으러 가야 하오? 바위라면 브리튼 섬 안에도 차고 넘치지 않소?”

“그 바위들은 여러 가지 힘을 가지고 있는 신비한 바위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거인들이 바위를 아프리카 오지에서 가져왔습니다. 아일랜드에 신전을 지을 때 바위를 그곳에 놓아두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바위를 놓을 때마다 공경할 만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신성한 제례를 올렸습니다. 그 바위는 땅과 하늘, 신과의 관계를 증언하는 신성한 존재들입니다. 암석들은 영혼을 찾아 지구 표면 여기저기에 흩어진 존재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전능한 신과 우주의 관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엠리스 왕과 브리튼 왕국을 살리기 위해 죽어간 모든 이들의 이름으로 제가 폐하에게 요구하는 기념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바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게다가 이 바위에는 뛰어난 치유 능력도 있습니다. 거인들은 목욕할 때 바위 조각을 물에 집어넣어서 모든 병을 고쳤습니다. 또한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 연고나 식물 고약에 섞어 상처에 발라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P164-165)


“물론 아닙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유능한 멀린을 찾아 이 땅을 주유하고 있는 중입니다.”

야만인은 낄낄대고 웃었습니다.

“이곳에서 현명하고 유능한 젊은이는 절대 찾을 수 없어. 네놈이 멀린이라고 부르는 자에 대해서는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네놈에게 멀린에 대해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충고는 한마디 해 주지. 이 빈터 끝에 보이는 저 길을 따라가거라. 그리고 저기 보이는 바위투성이 언덕빼기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아라. 흥미를 끌 만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든 언덕 발치에 있는 계곡으로 가 보아라. 계곡 한가운데에 큰 나무가 서 있을 것이다. 그 나뭇가지 끝은 가장 푸른 전나무보다 더 푸르다. 나무 아래에는 샘물이 하나 있는데, 대리석보다 더 차가운 물인데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샘물 위에는 커다란 널돌이 있다. 그 위에 은 대접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 대접은 사람들이 떼어가지 못하도록 은 사슬에 묶여 있다. 그 대접으로 샘물을 떠서 널돌에 부어라. 더 이상은 말하지 않으련다. 내 말을 믿는다면 더 이상 가지 말고 여기에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 모험에서 네게 좋은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야만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그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접어들었습니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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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대 안에 물고기 백 파운드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값나가는 물건이 들었을지도 모르지. 부대를 가져오너라!”

사람들은 가죽 부대를 건져서 왕자에게 가져다주었다. 왕자가 부대를 열자 눈을 크게 뜨고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기가 나왔다. 아이의 이마에 이상한 빛이 한 줄기 어려 있었다. 왕자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쿠! 이게 뭐람! 참으로 빛나는 이마로구나. 이 아기에게 탈리에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리라!”

엘핀은 아기를 품에 안고 여전히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면서 아이를 조심스럽게 말에 태웠다. 그는 평소처럼 달리지 않고 천천히 말을 몰았다. 아기도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곳에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아기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엘핀은 기절초풍하기 직전이었다.

“오, 엘핀 왕자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제까지나 운명 때문에 울고 있을 수는 없어요. 절망은 아무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아요.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지도 알지 못해요. 그러나 우리는 늘 행복을 찾아다니지요. 행복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해요. 왕자님의 기도는 헛되지 않았어요. 저를 따스하게 거두어 주셨으니 신께서 기쁨과 위안만을 주실 거예요. 그위드노 왕의 그물은 오늘 가장 값나가는 것을 건져 올린 거예요. 그러니 미남 왕자님, 눈물을 거두세요....... 내가 비록 몸은 약하고, 파도에 실려 오느라 지치기는 했지만, 왕자님께 훌륭한 보상을 해 드릴 수 있어요. 내 혀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왕자님 곁에 머무는 한, 왕자님은 누구 못지않게 부유하고 세상 사람들의 존경도 받으실 거예요.”

엘핀은 놀란 가슴을 채 진정시키지 못하고 아기에게 물었다.

“헌데, 내가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이 종알대는 조그만 존재는 누구인고? 너는 사람의 자식이냐, 아니면 강가를 어슬렁대는 귀신의 자식이냐? 혹시 악마가 내 불운을 더욱 무겁게 하기 위해 너를 보낸 건 아닌지 겁이 나는구나!” (P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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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대답했다.

“할 수 없네, 탈리에신. 나는 고통과 죽음에 대항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네. 악이 세상을 침범한다고 느낄 때 악과 맞서는 것, 그게 전부일세. 게다가 악은 무엇이고 선은 무엇인가? 우리는 때로 선을 위해 행동하지만 결과는 악이 되기도 하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선이라고 부르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악한 것처럼 여겨지는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지.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왜냐하면 나는 악령에 의해 잉태되었으니까. 만일 신께서 나를 근원에서 뽑아내지 않으셨다면, 나는 땅 전체에 죽음과 한탄을 뿌리고 돌아다녔을 것이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저 끊임없는 전쟁에 뛰어들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한 가지 싸움이 가라앉으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될 텐데. 탈리에신,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네. 신만이 미래를 알고 계시지. 내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한 선견에 불과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죽을 것이네. 나는 내가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모른다네. 왕국의 운명도 마찬가지야. 나는 왕국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네. 그러나 아무것도 막을 수 없어. 탈리에신. 우리는 죽음에 대항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죽음이란 생명이라는 긴 여행에서 잠깐 들르는 곳에 불과하기 때문일세.”

탈리에신은 멀린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P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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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터 펜드라곤은 가장 자주 머무는 성으로 돌아왔다. 멀린이 그에게 나아가 조용히 뵙기를 청했다.

“우터 왕이여.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이제 비밀의 장막을 벗길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터는 멀린을 자리에 앉게 한 다음 말했다.

“말씀하시오. 멀린. 명심해서 듣겠소.”

멀린은 성배로 불리는 에메랄드 잔에 관한 이야기와 원탁이 설치된 이야기, 그리고 원탁에는 순결한 마음을 가진 흠 없는 사람만이 앉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부왕이라 불리는 뚱보 알렌이 아발론 골짜기에 코르베닉 성을 짓고, 그곳에 귀한 성배를 보관하고 있으며, 이제 곧 솔로몬 가문에서 태어난 기사가 나타나 그들의 모험을 끝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터 펜드라곤은 성배 이야기를 듣고 매우 감동했다. 우터는 자기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멀린에게 물었다.

멀린이 대답했다.

“말씀드리지요. 지금까지 전통을 유지해 온 두 개의 식탁이 있습니다. 하나는 최후의 만찬의 식탁이며, 다른 하나는 성배의 식탁입니다. 이 두 개의 식탁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고, 각각 한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제 조언을 원하신다면, 삼위일체를 따라 세 번재 식탁을 설치하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의 인물이 세 개의 식탁을 통해 의미를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탁자를 설치하는 것은 폐하의 육체와 영혼에 모두 이로울 것입니다. 그것은 폐하 생전에 놀라운 기적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 찬성하신다면 제가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확신하건대, 그 탁자는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탁자를 설치하고 ‘원탁’이라 이름 붙이십시오. 폐하께서 그 앞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다른 동지들과 완전히 평등한 관계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지들은 신과 브리튼 왕국의 영광을 위하여 세계를 주유하며 세상에 정의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P25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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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명령을 내렸다. 밤이 내리자 그들은 바닷가를 따라 틴타겔 방향으로 말을 달렸다. 곧 성채 근처에 도착했다. 멀린은 우터에게 뒤로 조금 처져 있으라고 말한 뒤, 우르핀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길을 가면서 멀린은 모습을 바꿨다. 우르핀의 모습도 변했다. 그들은 불안해하면서 기다리는 우터에게 돌아갔다. 멀린은 우터에게 풀 한 뿌리를 내밀며 그것으로 얼굴을 문지르라고 했다. 우터가 멀린의 지시대로 하자, 그의 모습이 골레이스와 똑같이 변했다.

적당한 시간이라고 판단했을 때 세 사람은 틴타겔 성문 앞으로 갔다. 멀린이 문지기를 불렀다. 문지기는 브레텔과 조단, 골레이스 공을 알아보고 서둘러 문을 열었다. 우터 일행은 공작의 처소로 향했다. 멀린은 우터를 불러, 골레이스 공작처럼 즐겁고 명랑하게 행동하라고 일렀다. 우터는 이그레인의 침실로 갔다. 그렇게 해서 우터 펜드라곤은 이그레인과 함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훗날 아더라 불리는 왕이 잉태되었다.

이그레인은 우터를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뜨겁게 맞아들였다. 그들은 새벽까지 함께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 골레이스 공작이 간밤에 우터 왕의 군대를 기습하다가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위병들 사이에 떠돌아다녔다. 멀린과 우르핀은 소문을 듣자마자 우터를 깨우러 달려갔다. 둘은 브레텔과 조단인 척하며 공작으로 변신한 우터에게 말했다.

“공작님. 빨리 일어나셔서 병영으로 가 보십시오. 병사들이 공작님께서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답니다.” (P272-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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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레인에게는 골레이스와의 사이에 모르간이라는 딸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특히 학문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모르간은 일곱 가지 예술을 배웠으며, 점성술과 마술 같은 자연의 학문에 놀라운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필요하면 비술과 마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녀는 의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연고나, 사람들을 고칠 수 있고 미치게도 만들 수 있는 탕약을 제조할 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훗날 그녀를 요정 모르간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모르간에 대해서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P279)

리더흐 왕의 영토는 캄브리에 있었다. 리더흐 왕은 모든 약탈자들에게서 백성과 신하를 잘 보호하고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 때문에 왕은 리더흐하일, 즉 ‘관대한 리더흐’라고 불렸다. 사람들은 왕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가 그가 소유한 검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브리튼 섬의 열세 가지 보물 중 하나로 꼽히는 아주 훌륭한 보검을 가지고 있었다. 리더흐에게 검을 잡아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는 했다. 그러나 다들 무서운 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리더흐는 전장에서 그 검을 휘둘러 적들을 죽이거나 쫓아냈다. 리더흐는 멀린의 누이동생 그웬디드와 결혼했다. 왕은 아내를 무척 사랑했다. 그웬디드는 매우 아름다웠고, 어린 나이인데도 대단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웬디드는 오라버니 멀린을 리더흐 왕의 성 알클뤼드로 오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오라버니를 매우 좋아했고 오라버니의 높은 학문과 지혜 때문에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P28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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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다시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 들었다. 멀린이 고함을 질렀다.

“빛과 어둠을 구별할 줄도 모르고 내 예언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이 백성에게 불행이 있기를! 내 친구인 야생 동물에게 돌아가고 싶다! 날 떠나게 해 줘!”

멀린은 호위하는 사람들을 떠밀더니, 숲으로 난 길로 달려갔다. 리더흐가 멀린을 붙잡아 오라고 큰 소리로 명령했다. 시종들이 달려가 멀린을 붙잡았다.

리더흐는 멀린을 방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리더흐는 매일 찾아가 안부를 물었다. 매번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림자는 빛과 같은 본성으로 되어 있지. 신이 원소들을 선과 악으로 갈라놓았다고 믿는 놈은 미친놈일세. 리더흐 왕. 나를 보게.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나는 흰가, 아니면 검은가? 그걸 알게 되면 내게 와서 알려 주시게. 그러면 내가 그대의 정직함에 상을 주겠네.”

리더흐는 어떻게 하면 멀린의 정신을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멀린은 이미 지속적인 광기의 상태에 들어가 통제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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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기다려 왔던 왕이 출현할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다. 최선과 최악,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는 영원히 그러할 것이므로. 따스한 태양빛을 받은 곰이 동굴 깊은 곳에서 잠에서 깨어 일어날 것이다. 바위 아래로 숨어 들어가는 뱀이 보이는구나. 뱀은 어둠 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이다. 아, 슬픈 일이로다! 뱀은 곰을 물어뜯고, 곰은 뱀을 짓밟아 죽일 것이다! 이 죽음의 전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멀린이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얘야, 진정하렴. 네 예언은 옮다. 네게도 이제 나처럼 미래의 일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래, 곰이 이제 자신의 동굴에서 나와 세계를 이상한 모험 속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뱀이 어둠 속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뱀은 곰을 해치지 못한다.”

멀린은 그웬디드와 탈리에신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러고는 은자 블레이즈가 곧 그들을 만나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멀린은 혼자 콘월로 가는 길을 따라 떠났다.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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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 콘월의 켈리윅이라는 곳에 안토르라는 이름을 가진 가신(家臣)이 살고 있었다. 안토르는 착하고 용감하며,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 케이, 아더와 함께 타인의 귀감이 되는 훌륭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케이가 맏이였다. 케이는 키가 크고 울퉁불퉁한 외모를 가졌는데, 혈기왕성한 나머지 언제나 옆에서 진정시켜 주어야만 했다. 동생 아더는 보통 키에 예쁘장한 얼굴. 섬세하고 단아한 모습에 고수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체격은 건장했다. 아더는 신중하고 차분했다. 형의 울뚝불뚝하는 혈기를 가장 잘 제어하는 것은 동생 아더였다. 안토르는 두 명의 아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사랑했다.

아더는 친아들이 아니었다. 어느 날 밤 낯선 사람이 찾아와 갓난아기를 맡기면서 사랑으로 잘 길러 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람은 아이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안토르는 약속을 지켰다. 두 아들에게 힘이 닿는 대로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해 주려고 애썼다. 어느 날 두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 것도 교육을 위해서였다. 또래의 젊은이들이 기사도를 배울 때 어떻게 하는지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P31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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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도 케이와 베디비어가 따라간 길을 따라가 못생긴 여자를 만났다. 아더가 상냥하게 물었다.

“물을 나눠 줄 수 있습니까?”

“기꺼이. 하지만 조건이 한 가지 있어. 내 뺨에 먼저 입을 맞춰야 해.”

“소원이시라면 못해 드릴 것도 없지요.”

아더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아더는 못생기고 늙은 여자에게 다가가 꼭 끌어안고 아예 여자의 입에다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더가 품에 안은 못생기고 끔찍한 여자 괴물이, 태어나서 한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여자의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산골짜기에 쌓인 눈처럼 희었다. 팔은 왕비 마마의 팔처럼 가늘면서도 적당히 통통하고, 손가락은 길고 가늘었으며, 다리는 날씬했다. 부드럽고 갸름한 발에 흰색 청동 신발을 신고 있었고, 빛나는 은 장신구로 여민 화려한 자주색 망토가 몸을 휘감고 있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진주 같은 이빨, 고결하고 커다란 눈, 산딸기처럼 붉은 입술. 아더는 너무나 놀라 큰 소리로 외쳤다.

“아, 당신은 여러 모습을 가진 분이군요!”

그녀가 대답했다.

“맞아요.”

아더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신가요?”

“나는 ‘왕의 권리’랍니다. 왕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지금의 모습으로 나타난답니다.”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이제 친구들에게 가세요. 가는 길에 강가의 바위 밑에 숨겨진 말도 찾아가세요. 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다 친구들에게 주세요. 하지만 복종과 존경이라는 선물을 받기 전에 물을 주어서는 안 돼요.”

말을 마친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더는 여자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더는 여자가 한 말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물을 길었다. 그러나 생각에 오래 빠져 있지는 않았따. 어쨌든 물을 얻었으니까 그걸로 대만족이었다. 그는 가는 길에 말을 찾아내서 케이와 베디비어에게 가져갔다. 그들이 복종과 존경을 맹세한 다음에 물을 주었다.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린 아더 일행은 다시 로트 왕의 궁전으로 난 길을 향해 떠났다. (P32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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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알고 싶으십니까?”

우터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 적당한 단어를 찾는 사람처럼 망설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결심했다는 말투로 물었다.

“멀린...... 그 아이 말일세........ 어찌 되었나?”

“그는 아직 어찌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아이의 환영이 악몽이나 쓰라린 회한처럼 폐하를 따라다녔겠지요. 제 말씀은 그 아이가 왕국의 왕관을 쓸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터의 얼굴에 환희에 가득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폐하의 아들은 왕이 되어 위대한 무훈을 세울 것입니다. 그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목적으로 아기를 맡겨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신의 계획에 따른 것뿐입니다. 제가 지키려 했던 것은 폐하의 이익이나 명예가 아니라, 왕의 가문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번개를 연상하게 하고, 왕권을 상징하는 신성한 검을 위임 받을 사람이 등장해야 합니다. 폐하의 아드님이 바로 그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는 그 검과 함께 성배의 모험을 완수하고, 폐하가 세운 원탁을 오래 보존하면서 그 명성을 세계 만방에 떨칠 것입니다. 우터 펜드라곤, 신과 함께 평화를 누리기 전에 스스로 화평하소서!” (P33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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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주 잘 알고 있소. 그대는 모르간, 그래서 이처럼 다정하게 대하는 거요. 내가 멀린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소?”

“나는 오래전부터 그대를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태어났을 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곳에 있었지요. 그대의 어머니가 그대를 뱃속에서 꺼내어 빛 속에 내놓았을 때, 그대가 세상을 향해 두 눈을 뜰 때, 나는 그대의 눈 속에 있었답니다. 멀린, 나도 그대처럼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나는 중간계에서 오래 살았어요. 우리 같은 사람이나 그곳에서 진화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지요. 사실 나는 그대보다 나이가 더 많답니다. 하지만 악마의 딸은 아니에요. 나는 우주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나를 이슈타르나 이시스라 부르기도 하고, 아프로디테라 부르기도 하지요. 다른 이들은 나에게 다나 또는 돈이라는 이름을 주었어요. 아무렴 어때요. 나는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번개에 물어뜯겨 찢어졌을 때도 존재했어요. 오늘 나는 탄티겔의 이그레인과 골레이스의 딸 모르간이에요. 나는 그대가 내 어머니가 잠들어 계신 방문으로 통하는 복도 문을 여는 것을 보았어요. 나는 우터 펜드라곤이 아버지의 침대로 미끄러져 들어가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보았어요. 멀린, 그 일을 저지른 건 그대였지요. 세상을 좀더 잘 속이기 위해 비루한 파계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대, 난 언젠가 그대와 맞닥뜨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P33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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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입을 열었다.

“보여 줄 게 있소.”

“그게 뭐죠?”

멀린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모르간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멀린은 숲이 끝나는 곳에 있는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카두엘 성채 맞은편이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북쪽에서 찬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멀린은 천천히 언덕을 걸어 올라가 꼭대기에서 멈췄다. 모르간이 뒤따라왔다. 멀린이 언덕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의 사각형 모양을 한 거대한 바위가 있었는데, 그 위에 대리석으로 만든 듯한 낮은 층계가 있고 층계 위에는 높이가 반 피트가량 됨직한 모루가 있었다. 모루에는 손잡이 부분까지 검이 하나 박혀 있었다. 손잡이에는 아롱거리는 색깔로 찬란하게 빛나는 순금 상감 장식이 되어 있었다. 이 신비한 광경을 보고 모르간은 탄성을 지르며 물었다.

“이게 뭐죠?”

멀린이 모르간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모르간은 꿰뚫어 보는 멀린의 눈빛이 두렵기라도 한 양 시선을 멈추지 못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멀린이 입을 열었다.

“왕권의 검이오. 세계의 북쪽에 있는 섬에서 온 것이오. 엑스칼리버, 즉 ‘격렬한 번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소. 신이 이 왕국의 왕으로 선택한 자가 사용할 검이라오. 선택된 자만이 이 검을 바위에서 뽑을 수 있소. 그만이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손을 데지 않고, 검을 들고 혈투에 임할 수 있다오. 모르간, 더 궁금한 게 있소?”

“신이 선택한 자가 누구인데요?”

멀린이 빙그레 웃었다.

“내일이면 알게 될 거요......” (P34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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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하시오!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그는 성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대주교가 축사의 주문을 외우면서 바위와 검에 성수를 뿌리자, 돌층계 위에 황금으로 씌어진 글씨가 서서히 나타났다. 아! 하는 탄성의 소리가 앞쪽에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위로 다가가 그 글씨를 읽어 보았다.

“이 검을 바위에서 뽑는 자가 신이 선택한 왕이 될 것이다.”

바위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대주교는 그곳에 모여든 사람 모두가 층계에 씌어진 기록을 알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읽어 주었다. 군중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대주교는 조심하지 않으면 사람이 다치거나 죽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헤치며 돌층계를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지시하고, 귀족 중에서 열 사람, 성직자 중에서 다섯 사람. 평민 중에서 다섯 사람을 골라 바위를 지키게 했다. 그런 뒤 교회로 돌아가 테 데움(Te Deum, 사은 찬미가)을 부르면서 신께 감사를 드렸다.

대주교는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했다.

“여러분은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현명하지도 이성적이지도 못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신께서 우리의 왕이 될 자를 미리 선택해 놓으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검을 뽑아 보려고 달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 검은 힘과 오만으로는 뽑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의지만이 중요합니다. 힘도, 높은 지위도, 용기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검을 뽑을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선택 받은 자가 아니면 누구도 시험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P34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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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의 지시에 따라 젊은 아더가 앞으로 나섰다. 아더는 두 손으로 칼자루를 잡더니 힘들이지 않고 돌층계에서 검을 쑥 뽑아 위로 치켜들었다. 검은 넘어가고 있는 태양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검을 들고 서 있는 젊은이의 얼굴은 어린데다 소박하게 차려입었는데도 위엄이 흘러넘쳤다. 아더는 검의 힘 때문에 안에 숨겨져 있던 군왕의 위엄을 단번에 회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군중 사이에서 일제히 와! 하고 기쁨에 찬 탄성이 솟아올랐다. 왕이다! 신께서 선택한 왕이다!

소왕들과 대제후들의 얼굴은 일제히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아직 기사 서임도 받지 못한 열일곱 살짜리 젊은이가 오랜 세월 전장에서 싸우며 사람들을 지배해 온 자신들을 복속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쓰렸다. 그러나 그들은 아더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출생이 불분명한 미지의 젊은이 아더는 분명히 아무도 뽑지 못한 검을 뽑은 것이다. 그는 신이 선택한 자이다. 이제 브리튼 왕국은 왕을 얻었다. (P35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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