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 2016년
클레이튼 부부는 블랙 마이클의 지시대로 했다. 따라서 그들은 선원들을 거의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간혹 폭도들끼리 말다툼을 하거나 격렬히 싸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곤 했다. 그리고 잔잔한 허공을 가르는 두 번의 총성을 들었다. 그런 블랙 마이클은 이 폭도 집단에 어울리는 지휘자였다. 그는 폭도들을 훌륭하게 다스렸다. 모두가 그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랐다.
폭동이 일어난 지 닷새째 되던 날, 멀리 육지가 보였다. 섬인지 육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블랙 마이클은 그곳을 가리키며 냉정한 목소리로 클레이튼에게 말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면 저기에 당신 부부를 내려놓겠소. 물론 짐도 함께 내려주겠소. 몇 달 동안은 문제없이 살 수 있을 거요. 우리가 어딘가 해변에 도착해 도망갈 길을 마련하면, 내가 영국 정부에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리겠소. 그럼 당신도 구출될 수 있을 거요. 당신들을 큰 항구에 내려주지 않는 것을 야속해하지 마시오. 우리도 우리 살 길을 마련해야 되지 않겠소.”
클레이튼은 블랙 마이클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기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 땅이 어떤 땅인지 누가 장담한단 말인가? 맹수가 있을지도 모르고, 폭도보다 더 잔인한 인간이 사는 땅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클레이튼의 강렬한 항의에도 블랙 마이클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단지 짜증스런 얼굴로 쏘아보았을 뿐이다. 결국 클레이튼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가혹한 상황이라도 이겨낼 수밖에 없다는 결의를 다져야 했다. (P27)
아침이 밝았다. 클레이튼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새 아침을 맞았다.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와 빵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끝내고, 클레이튼은 집을 더 튼튼히 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사방 벽을 더욱 단단히 막아서 밀림의 생명체들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면 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방 한 칸 만드는 것뿐인데도 작업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족히 한 달은 걸렸다. 클레이튼은 직경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나무토막을 쌓아 벽을 세웠고, 지하 1미터쯤 되는 곳에서 퍼온 진흙으로 그 틈새를 메웠다. 벽 한쪽에는 해변에서 가져온 작은 돌로 벽난로도 만들었다. 오두막을 완성한 다음에도, 벽 전체에 10센티미터 정도의 두께로 진흙을 한번 더 발랐다.
창문도 만들었다. 거기에다 직경 2센티미터 정도 굵기의 잔가지로 창살을 만들었다. 웬만한 동물의 완력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P37)
때때로 클레이튼은 일기를 썼다. 밀림에서 겪은 이상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프랑스어로 썼다. 그리고 그 일기장을 작은 금속상자에 넣어 보관했다.
아들이 태어난 지 꼭 일 년이 되던 날 밤, 앨리스는 조용히 숨을 거뒀다. 너무도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클레이튼조차도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어나서야 그녀가 죽은 것을 깨달았을 정도였다.
아무도 없는 세계에 그와 어린 아들만이 남겨졌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가 제대로 인식이나 했을까? 아니 그 어린 생명체,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아기를 홀로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나마 정확히 인식했을까?
그가 일기장에 남긴 마지막 기록은 그녀가 죽은 다음 날 아침에 쓴 것이었다. 그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사실 그대로 기록했다. 그 때문에 일기는 읽는 사람에게서 슬픔을 더해주었다. 긴 슬픔과 절망에 허덕이다 지친 무감각마저 묻어나는 일기였다. 너무도 잔인한 충격을 받은 탓인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P44-45)
원숭이 왕 커착은 150킬로그램은 족히 나갈 것 같은 거대한 몸집의 소유자였다. 이마는 무척 좁은데다 움푹 들어가 있었다. 핏발이 선 작은 눈은 납작한 코에 거의 붙어 있는 듯 보였다. 귀는 큼직한 편이었지만 무리들의 귀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었다. 커착은 잔인한 성격과 막강한 완력으로 작은 무리에서 왕처럼 군림했다. 태어난 지 스무 해가 된 탓에 한창 힘을 쓸때였다. 그가 휘젓고 다니는 넓은 숲에서 감히 그에게 대항하려는 원숭이는 없었다. 몸집이 더 큰 다른 동물들도 그를 괴롭히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코끼리, 탄토르만은 예외였다. 탄토르가 두려워하는 동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커착도 탄토르만 보면 조심스레 피했다. 탄토르가 날카로운 괴성을 질러대면, 커착도 무리들과 함께 높은 나무를 찾아 허둥대며 도망치기 바빴다.
커착은 무쇠 같은 손과 쇠창살 같은 송곳니로 원숭이 가족을 다스리고 있었다. 여섯 가족, 혹은 여덟 가족이 커착의 수하에 있었다. 원숭이 한 가족은 어른 수컷 한 마리와 암컷 여러 마리 그리고 새끼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무리 전체는 대략 예순 마리에서 일흔 마리 정도로 채워져 있다.
칼라는 투블랏이라 불리는 수컷 원숭이의 가장 어린 짝이었다. 투블랏은 ‘부러진 코’라는 뜻이었다. 칼라는 이제 겨우 아홉 살이었다. 어린 새끼를 잃은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칼라는 어리지만 몸집이 크고 강했다. 균형 잡힌 다리와 둥글고 높은 이마는 칼라가 무리 중에서 가장 지능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그것은 어머니답게 사랑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칼라도 거칠고 잔인한 야수의 한 마리일 뿐이었다. 고릴라와 동족이긴 하지만 칼라의 무리가 더 똑똑한 편이었다. 높은 지능과 고릴라처럼 강한 힘 덕분에 그들 무리는 인간의 조상인 원숭이 중에 가장 무서운 원숭이로 군림할 수 있었다. (P47-48)
커착이 살금살금 문 앞까지 다가가 오두막 안을 살폈다. 수컷 두 마리와 새끼의 시체를 가슴에 안은 칼라가 그 뒤를 바싹 따랐다. 하얀 원숭이는 책상을 반쯤 가로지르며 엎어져 있었다. 침대에는 돛으로 덮인 어떤 형체가 누워 있었고, 원목으로 만들어진 작은 요람에서는 젖먹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커착은 발소리를 죽이고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클레이튼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클레이튼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두막 입구에 커다란 수컷 원숭이 세 마리가 서 있었고, 그 뒤로도 엄청나게 많은 원숭이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는 무방비 상태였다. 권총은 벽에 걸려 있었다. 그가 벽으로 몸을 피할 틈도 없이 커착이 공격해왔다.
원숭이 왕은 곧바로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 몸뚱이는 존 클리에튼, 그레이스톡 경이었다. 이제 커착은 작은 요람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칼라가 와 있었다. 커착이 아기를 움켜잡으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낚아챘다. 그리고 커착이 막아서기 전에 재빨리 문을 빠져나가 높은 나무로 피했다. 엘리스 클레이튼의 아기 대신, 요람에는 칼라의 죽은 새끼가 놓였다. 살아 있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야수의 가슴 안에도 존재하는 모성애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죽은 생명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이 칼라를 뒤흔들었다.
커다란 나무의 굵은 가지들을 헤치고 높이 올라간 칼라는 마냥 울어대는 젖먹이를 더 깊이 끌어안았다. 이 아기를 낳은 자애롭고 아름다웠던 어머니에게 있었던 본능이 이 거친 암첫에게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성애의 본능이었다. 이 아기도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을 그 야수에게서 느꼈던 것일까? 아기는 곧 울음을 그치며 조용해졌다.
굶주림은 그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영국 귀족의 아들은 거대한 원숭이 칼라의 가슴에서 젖을 빨았다. 그 동안 원숭이 무리는 조심스레 오두막을 살폈다. 클레이튼이 죽은 것을 확인한 커착은 돛으로 덮인 채 침대에 놓여 있는 것에 주의를 돌렸다. 신중하게 돛의 한쪽 구석을 들어올렸다. 여자의 몸이 살짝 드러나자 커착은 돛을 거칠게 찢어버리고, 털이 덥수룩한 커다란 손으로 움직이지 않는 하얀 목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손톱을 차갑게 굳어버린 살 속에 밀어넣는 순간 커착은 그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화가 난 듯이 뒤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방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앨리스와 존 클레이튼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P50-51)
“저 거대한 용감한 원숭이가 될 수 없을 거야! 항상 당신이 데리고 다니면서 지켜줘야 할 거라고. 우리 무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 거추장스런 짐일 뿐이야. 저 녀석을 그만 포기하도록 해. 늙기 전에 우리를 지켜줄 건강한 원숭이를 낳아야 되지 않겠냐고!”
투블랏이 투덜댈 때마다 칼라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절대 이 아기를 버리지 않을 거야. 부러진 코! 영원히 데리고 다녀야 한다면 그렇게라도 할 거라고.”
투블랏은 커착을 통해 칼라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칼라에게 타잔을 포기하라고 명령해줄 것을 재촉했다. ‘타잔’ 이라는 이름은 어린 그레이스톡 경에서 ‘하얀 피부’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었다.
커착은 투블랏의 청대로 칼라에게 타잔을 버리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칼라는 그들이 타잔을 건드리면 그들 무리를 영원히 떠날 것이고, 죽어서까지 보복하겠다고 위협했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에서는 무리들과 틈이 갈라질 때 언제라도 무리를 떠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칼라는 암컷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들은 칼라를 잃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았다.
타잔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갔다. (P56)
저 문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을 쉽게 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타잔은 손잡이를 돌려보고 경첩을 두드려보며 몇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문을 여는 방법을 찾아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타잔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잠시 동안 타잔은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러나 오두막 안의 희미한 빛에 익숙해지자 조심스레 한발짝씩 안으로 밀어넣었다.
바닥에 해골이 있었다. 살이 붙어 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입고 있던 옷은 썩고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침대 위에도 해골이 누워 있었다. 바닥의 해골보다는 약간 작아 보였다. 침대 옆의 작은 요람에도 어린아이의 것으로 짐작되는 해골이 있었다.
이미 오래 전 잊혀진 날에 있었던 비극의 흔적들을 타잔은 무심한 눈길로 훑어보았다. 거친 밀림에서 살아오면서 타잔은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아마 타잔은 그 해골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것임을 알았더라도 그다지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다.
타잔은 오두막 안의 가구들과 물건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상하게 생긴 연장들과 무기들, 책과 종이, 옷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하지만 해변의 습기 찬 날씨 탓인지 물건들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타잔은 나무상자와 책장을 열어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열 수 있었다. 상자와 책장 안의 물건들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괜찮았다. 날카로운 사냥칼도 눈에 띄었다. 칼날이 예리했다. 타잔은 엉겁결에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그러나 타잔은 겁내지 않았다. 예리한 칼로 이것저것 잘라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장난감으로 나무를 베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P66-67)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타잔은 간단한 아동용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작은 벌레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타잔은 털 없는 몸이나 인간만이 갖는 특징을 더 이상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책을 통한 깨달음으로, 그가 털로 뒤덮인 야만스런 무리들과는 다른 종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타잔은 ‘인간’이었고, 그들은 ‘원숭이’ 였다. 그리고 나무 꼭대기를 휘젓고 다니는 원숭이들의 명칭은 ‘긴꼬리원숭이’였다. 또한 늙은 세이버는 ‘암사자’이고 히스타는 ‘뱀’이며, 탄토르는 ‘코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그는 읽는 법을 배웠다. 이때부터 그의 학습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평균 이상의 추리력에서 비롯된 이해력과 사전의 도움으로 그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까지 예리하게 추측해냈고, 그의 추측은 대개 들어맞았다. (P78-79)
원형극장의 한가운데에는 원숭이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의식을 행하기 위해 흙으로 빚어놓은 이상한 북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커다란 원숭이들이 만들어놓은 북을 본 적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북소리와 함께 밀림의 원숭이 대장들이 흥얼대는 거칠고 괴기스런 소리를 들어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의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레이스톡 경, 타잔만이 이 격렬하고 광적인 잔치인 덤-덤(Dum-Dum)에 참가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이 원시적인 행사에서 근대 교회와 국가의 모든 의식이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인류가 출현한 이후 무수한 시간에 걸쳐 우리의 사나운 털복숭이 조상들은 밀림 깊은 곳에서 흙으로 만든 북소리에 맞춰 열대의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며 덤-덤의 의식을 행했다. 오늘날에도 밀림은 오래 전에 잊혀진 최초의 털복숭이 조상들이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타고 최초의 회합 장소에 가볍게 내려왔을 그날 밤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마득하고 희미한 과거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P80-81)
그러던 어느 날, 타잔이 아버지의 오두막에 앉아 새로운 책의 신비에 푹 빠져 있을 때, 먼 옛날부터 지켜온 밀림의 안전을 영원히 깨뜨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득히 먼 동쪽 끝에서, 정확히 말하면 낮은 산 언저리에서 이상한 행렬이 한 줄로 전진해오고 있었다. 행렬의 맨 앞에는 약한 불에 끝을 단단하게 벼린 가느다란 나무창과 긴 활, 독화살로 무장한 쉰 명의 흑인 전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등에는 타원형의 방패가 매달려 있었고, 코에서는 커다란 고리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곱슬진 머리카락에는 화려한 깃털장식이 꽂혀 있었다. 이마에는 세 가지 색의 평행선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고, 가슴에도 세 개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었다. 송곳처럼 날카롭게 다듬어진 누런 이빨들, 그리고 툭 튀어나온 커다란 입술 때문에 그들은 더욱 비열하고 흉폭한 야만인처럼 보였다. 그 뒤를 수백 명의 아이와 여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여자들은 머리 위에 냄비와 살림살이, 상아 등의 커다란 짐을 이고 있었다. 맨 뒤에는 앞장선 전사들과 비슷한 모습의 검은 전사들이 앞의 행렬을 호위하듯 뒤따르고 있었다. 이런 형태의 대열은 흔히, 그들이 앞에서 적과 부딪치는 것보다 뒤에서 습격받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들은 백인 군대에 쫓겨 도망치는 중이었다. (P97-98)
타잔은 흥미롭게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를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타잔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인간의 행동을 배웠다. 이 흑인을 계속 추적한다면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중에라도, 그가 활과 독화살을 내려놓고 틈을 보이면 언제든 죽일 수 있을 것이었다.
쿨롱가가 식사를 마치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후에야, 타잔은 조용히 땅으로 내려왔다. 칼을 꺼내 호르타의 시체에서 고깃덩어리를 베어냈다. 하지만 쿨롱가처럼 불에 굽지는 않았다. 타잔이 불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번개 아라가 만들어낸 불은 숲의 커다란 나무들을 파괴할 뿐이었다. 밀림의 동물이, 나무를 집어삼켜 먼지만을 남기는 붉고 노란 어금니들, 즉 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타잔은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왜 검은 전사가 식물을 말려 죽이는 불에 고깃덩이를 던져서 맛있는 고기를 망치는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아라가 궁수와 음식을 나눠 먹는 친구라도 되는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타잔은 맛있는 고기를 바보처럼 망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타잔은 날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돌아오는 길에 찾을 수 있도록 남은 멧돼지 고기를 길섶에 묻어두었다. 타잔은 기름진 손가락을 벌거벗은 허벅지에 문지르고 다시 음봉가왕의 아들, 쿨롱가의 자취를 쫓기 시작했다. (P105)
그렇지만 타잔에게 증오나 악의는 없었다. 이 밀림에서 그는, 죽이는 것이 자연 세계의 법칙이라는 걸 배웠을 뿐이다. 그는 인간의 본능적인 쾌락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사냥하고 죽이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자신도 사냥감이 될 수 있었다. 모든 동물에게 그런 욕망을 가질 권리가 허용된 곳이 밀림이었다.
물론 타잔은 잔혹하거나 피에 굶주린 사람이 아니었다. 죽이는 것을 즐기고, 멋진 입술에 유쾌한 웃음을 띠며 다른 동물들을 죽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타잔의 타고난 잔혹성을 말해주는 증거는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먹기 위해 죽였다.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본능적 즐거움을 충족시키기 위해 죽이기도 했다. 다른 동물들은 결코 즐거움을 얻기 위해 죽이지 않는다. 동물들 중에서 다른 생명체에게 고통과 죽음을 가하는 즐거움 때문에 무분별하게 살상을 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무리의 복수를 위해,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죽일 때도, 타잔은 흥분하지 않았다. 밀림에선 경솔함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를 죽이는 것 역시 극도로 사무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P110-111)
그러던 어느 날, 타잔은 오두막 벽장 뒤에서 자그마한 금속상자를 찾아냈다. 열쇠가 자물쇠에 꽂혀 있었다. 타잔은 열쇠와 자물쇠의 원리를 몰랐지만, 이리저리 살펴보고 만져본 끝에 그 상자를 열 수 있었다.
상자 안에는 수염 없는 남자의 빛바랜 사진과 다이아몬드 로켓(사진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든 틀)이 달린 금목걸이, 그리고 몇 통의 편지와 작은 책이 있었다. 타잔은 이 모든 것들을 조심스레 다루었다. 무엇보다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진 속의 눈은 웃고 있었고, 얼굴은 정직하고 관대해 보였다. 아버지의 사진이었다.
금목걸이도 마음에 들었다. 타잔은 장신구를 걸치고 있던 흑인들을 흉내내어 금목걸이를 목에 걸어보았다. 다이아몬드가 그의 검게 그을린 피부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기이한 빛을 뿜어냈다. (P118)
노신사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며 말했다.
“아, 그렇지, 그래. 정말 미안하오. 내가 너무 생각이 없었군. 그래, 정말 생각이 없었어. 정말 놀라운 일이라오. 놀라운 일이야.”
노신사는 다시 오두막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노신사는 혼자 뭔가 중얼대고는 굳은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옆에 서 있던 선원이 그의 옷깃을 붙잡으며 다그쳤다.
“소리를 내 읽으란 말이야, 이 얼간이 영감탱이야!”
“아, 그렇지, 그래.”
노신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마침내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여기는 야수와 검은 인간의 사냥꾼 타잔의 집이다.
타잔의 것을 건드리지 마라.
타잔은 지켜보고 있다.
-원숭이들의 왕 타잔.
한 선원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놈의 타잔이 누구야?”
말쑥한 차림의 청년이 말했다. (P150)
사무엘 필랜더는 무엇보다도 오두막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포터 교수가 모질게 빈정대는 것도 전혀 불쾌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필랜더는 교수의 팔을 잡고 서둘러 오두막으로 내려갔다.
밀림에 버려졌던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다시 모이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먼동이 틀 때까지 그들은 짧은 시간 동안 겪은 모험담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밀림에서 그들을 구해준 이상한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스메랄다는 그 존재가, 자기들을 지켜주라고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보낸 천사라고 주장했고, 그 말에 대해 클레이튼은 껄껄대며 대꾸했다.
“에스메랄다, 천사가 사자 생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것을 본 적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았더라면 아주 세속적인 천사라고 생각했겠죠?”
제인 포터 역시, 타잔이 암사자를 죽인 후 내지른 고함소리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맞아요, 천사라면 그렇게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지 않았을 거예요.”
포터 교수도 거들고 나섰다.
“그를 신사라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하여간 그 신사가, 존경받아 마땅한 두 학자의 목을 밧줄로 묶어서는, 마치 소를 끌 듯 밀림에서 데리고 나온 것을 보면,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천사의 위풍당당한 모습과는 많이 다르긴 달랐어.” (P187)
오두막에 버려진 다섯 사람은 남자의 유골을 매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클레이튼은, 죽은 남자가 손가락에 끼고 있었던 게 분명한 커다란 반지를 발견했다. 반지는 가느다란 손가락뼈에 끼여 있었다. 클레이튼은 반지를 주워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레이스톡 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지 않은가!
제인은 책장에서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책 한권을 꺼내 펼치자 “존 클레이튼, 런던”이라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제인은 서둘러 다른 책을 열어보았다. 그 책에도 ‘그레이스톡’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클레이튼 씨, 이게 뭐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여기 이 책들에 당신 가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클레이튼이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그레이스톡 가문의 반지를 찾았소. 이 반지는 존 클레이튼이 사라지면서 잃어버렸던 반지랍니다. 그분은 내 큰아버지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바다에서 실종된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이런 흔적들이 남아 있을까요? 이런 아프리카 밀림 깊숙한 곳에 말이에요!”
“어쩌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레이스톡 경은 바다에서 실종된 게 아니라 이 오두막에서 죽은 거예요. 바닥에 있는 이 초라한 물건들 모두가 그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해주는 듯합니다.” (P188-189)
“제인 아가씨는 어디 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제인 아가씨가 여기 없어요? 아, 이제 생각나요. 그게 제인을 데려갔어요.”
포터 교수가 물었다.
“뭐가 제인을 데려갔는데?”
“온몸이 털로 덮인 괴물이었어요.”
필랜더가 물었다.
“고릴라였나요?”
세 남자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악마였어요. 코끼리만한 고릴라였을 거예요. 불쌍한 아가씨, 불쌍한 아가씨.”
에스메랄다는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클레이튼은 즉시 흔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근처에 짓이겨진 풀들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방향을 짐작할 수 없었다. (P213)
터코즈가 타잔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으로 제인을 거칠게 옆으로 밀어냈다. 원숭이의 거대한 몸뚱이와 울룩불룩한 근육과 날카로운 이빨에 제인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이렇게 강한 적을 어떻게 물리친단 말인가?
둘은 황소처럼 맞붙어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늑대처럼 서로의 목을 노렸다. 원숭이의 긴 송곳니와 인간의 예리한 칼이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제인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두 손을 꼭 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섭고 겁났다. 놀랍고 경이로웠다. 제인은 가슴을 두근대며,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원숭이와 인간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내의 등과 어깨 근육이 불끈거렸다. 동시에 그의 강인한 팔뚝이 억센 송곳니의 주인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볼티모어에서 온 여자의 눈앞에서 수백 년간 지속되었던 문명과 문화의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터코즈의 가슴에 칼이 꽂히고 피가 솟구쳤다. 생명의 기운이 다한 거대한 몸뚱이가 쓰러져내렸다. 그 순간, 제인은 원시의 여인이 되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원시의 사내에게로 달려갔다.
타잔은?
붉은 피가 흐르는 남자답게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타잔은 제인을 끌어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제인은 눈을 반쯤 감고 안겨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삶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되었다. (P221)
제인은 목걸이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솜씨 좋은 장인의 작품이었다.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예술적으로 배열되어 있었지만, 세공 방법은 아주 옛날에 유행하던 것이었다. 아주 유서 깊은 목걸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감춰진 걸쇠를 눌러 로켓을 열었다. 로켓 양쪽에는 상아로 세밀하게 조각한 초상(肖像)이 있었다.
하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를 제외하면 로켓 속의 남자는 타잔과 너무도 빼닮은 얼굴이었다. 제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인은 타잔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타잔도 로켓에 눈길을 두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로켓을 가져갔다. 자신이 로켓 속의 남자와 너무도 닮은 것에 놀라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결국 타잔은 그 부부를 한번도 본 적이 없고, 목걸이의 로켓이 열린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뜻이다. (P235)
오두막 바깥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르노는 재빨리 바다 쪽을 보았다. 프랑스 순찰선과 애로우 호 모두 만에 정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는 당황했다. 적막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두 사람이 오두막을 향해 걸어갈 때, 두 사람 모두를 엄습해왔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닫혀 있는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감하고 있었다.
타잔은 빗장을 들어올리고 나무로 만든 경첩에 달려 있는 문을 밀었다. 그들이 두려워하던 대로였다. 오두막은 텅 비어 있었다. 둘은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르노는 그의 동료들이 자신을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러나 타잔은 자신에게 사랑의 키스를 해준 여인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가 그녀의 동료 중 한 명을 돌보는 사이 그로부터 달아나버린 것이다.
타잔의 가슴 속으로 커다란 고통이 밀려왔다. 이제 그는 멀리 밀림 속으로 사라져 그의 종족 속에 합류할 것이다. 다시는 인간을 만나지도 않을 것이며, 오두막에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종족인 인간을 만나,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던 커다란 희망을 영영 저버리고 떠날 것이다. (P274-275)
“타잔, 이젠 익힌 음식을 먹는 법도 배워야 해. 문명인은 날고기를 그냥 먹지 않는단 말이야.”
“문명 세계에 도착하고 나서 배우면 되지 뭐. 난 이런 게 싫다. 좋은 고기 맛을 망쳐버린단 말이야.”
그들은 거의 한 달 동안 북쪽을 향해 걸었다. 때로는 배불리 먹기도 했지만, 며칠씩 굶기도 했다. 원주민을 만나지도 않았고 야생동물에게 공격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여행은 기적처럼 순조로웠다. 타잔은 문명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르노는 타잔에게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식사 예법을 비롯해 문명 세계의 생활 습관을 가르쳤다. 하지만 타잔은 자꾸 포크와 나이프를 던져버리고 검게 그을린 큼직한 손으로 음식을 집어들고는 야수처럼 고기를 뜯어먹었다. 그때마다 다르노는 타이르며 말했다.
“나는 너를 신사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렇게 야만스럽게 먹으면 되겠니? 신사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타잔은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슬그머니 포크와 나이프를 다시 집어들고 음식을 먹었지만, 내심으로는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여행중 타잔은 애로우 호의 폭도들이 파묻은 커다란 궤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르노에게 들려주었다. 그들이 나무 아래 파묻은 보물궤짝을 꺼내서 원숭이들의 원형극장에 몰래 묻어두었다는 이야기였다. (P296)
다르노가 경찰 간부에게 물었다. “그럼, 개인적인 차이를 구별하는 게 어려운 작업인가? 시간은 얼마나 걸려?”
“보통은 몇 분이면 돼. 지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기만 하다면 말이야.”
다르노는 주머니에서 검은 책을 꺼내 들춰보기 시작했다. 오두막에서 가져온 일기장이었다. 타잔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르노가 어떻게 자기 책을 챙겨 왔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다르노는 다섯 개의 손가락 지문이 찍힌 쪽을 펼쳐 경찰 간부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여기 있는 이 지문들은 내 지문하고 비슷한가? 아니면 여기 있는 타잔 선생과 비슷한가? 둘 중 누구의 지문인지 알아낼 수 있겠나?”
경찰 간부는 책상에서 돋보기를 꺼내 들고 세 개의 지문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리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타잔은 비로소 다르노가 파리에 들르자고 한 이유를 알아챘다. 출생의 비밀을 밝혀줄 답이 저 검은 책 속의 작은 손가락 자국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타잔은 긴장감이 들어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그러다가 금세 긴장을 풀고는 웃으며 다시 의자에 편안히 기대앉았다. 다르노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타잔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르노, 지문의 주인공인 어린아이의 시체가 20년 동안 그의 아버지 오두막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군. 내가 그 오두막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그 어린아이의 뼈가 있었어.”
타잔의 말을 들은 경찰 간부가 놀라서 쳐다보았다. 다르노가 경찰 간부에게 말했다.
“검사를 계속해주게, 반장.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 테니. 물론 타잔이 허락해야겠지만.” (P316-317)
바로 이 사람이 지난날 그녀를 안고 민첩하게 무성한 초록빛 사이를 날아다니던 그 사람이라면! 하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 말고 누가 이렇듯 강인하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제인은 남자의 얼굴을 흘끗 쳐다보고는 놀라움에 숨이 막혔다.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밀림에서 만난 바로 그 사람이군요. 아니면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요?”
“제인 포터. 맞아요. 바로 나요. 당신이 밀림에서 만난 그 야만인, 그 미개인이 자기 짝을 찾기 위해 밀림에서 나왔어요. 내게서 도망친 여인을 찾아 나왔지요.”
그는 자신으 감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은 불길을 피해 안전한 숲 속 평지에 도착했다. 바람이 다시 다른 방향으로 불기 시작했고, 불길은 더 이상 번지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면 사그라들 듯했다.
제인이 남자에게 물었다.
“그때 왜 당신은 제게 돌아오지 않았죠?”
“난 다르노를 돌보고 있었소. 그가 아주 심한 부상을 당했거든요.”
“아, 그랬군요. 하지만 사람들은 내게 당신이 흑인들에게 돌아갔다고 말했어요. 당신이 흑인들의 동족이라면서요.”
남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그래 그 말을 믿었나요, 제인?”
“아니오. 그런데 당신 이름은 뭐죠?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이름은 타잔이었소.”
“타잔이요? 그렇다면 내게 편지를 보낸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군요.”
“그렇소. 그럼 누구라고 생각했나요?”
“난 몰랐어요. 타잔은 영어로 편지를 보냈지요. 난 당신이 영어로 글을 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웃었다. (P332-333)
순간, 누군가가 타잔의 꿈같은 상념을 깨뜨렸다. “타잔이라는 신사 분을 찾습니다.”라고 말하는 역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타잔이오.”
“볼티모어에서 재전송되어온 전보입니다. 파리에서 보내셨군요.”
타잔은 봉투를 뜯어 다르노에게서 온 전보 내용을 읽었다.
“지문검사 결과 자네가 클레이튼 경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네. 축하하네.” --다르노.
타잔이 전보를 읽고 났을 때, 클레이튼이 대합실로 들어왔고, 타잔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바로 이 사람이 그의 작위와 유산을 차지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가 사랑했던 여인, 그를 사랑했던 여인과 곧 결혼할 사람이었다. 타잔이 지금 진실을 밝히는 말 한마디만 하면 이 사람의 일생은 완전히 뒤집힐 수 있었다. 작위도, 땅도, 성도 모두 빼앗기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 모든 것들을 제인에게서 빼앗는 셈이 된다.
“선생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일들에 대해 감사드릴 기회가 없었네요. 당신은 아프리카에서나 여기에서나 마치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신 분 같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좀더 친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난 가끔 당신 생각을 해요. 당신이 처한 그 기막힌 상황에 대해서도요. 물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닙니다만, 어떻게 해서 그 밀림 깊숙한 곳에 살게 되었나요?”
타잔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내 어머니는 원숭이랍니다. 물론 내가 어떻게 밀림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어머니도 알지 못해요.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난 알지 못합니다.” (P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