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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브룩스의 <세계 대전 Z>

영화 <월드워World War Z> 2013년

by 노용헌

맥스 브룩스 장편소설 『세계 대전 Z』.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묘사한 논픽션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의 작가 맥스 브룩스가 가상의 전염병이 불러온 대재난을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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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는 이름이 여러 개 있다. ‘위기’, ‘암흑시대’, ‘걸어 다니는 역병’ 여기에 좀 더 새롭고 ‘근사한’ 이름으로 ‘세계 대전 Z' 또는 ’1차 Z 전쟁‘이란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마지막 이름이 필연적으로 ’2차 Z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 이 일은 항상 ’좀비 전쟁‘이고, ’좀비‘라는 단어의 과학적 정확성에 많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지만, 거의 인류를 멸종시킬 뻔했던 그 생물체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더 공감할 수 있는 단어를 찾으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도 난감할 것이다. 좀비란 말은 여전히 파괴적인 단어로 수많은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바로 이 기억과 감정이 이 책의 주제이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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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방, 대충칭

전쟁 전 한창 잘나갈 때 이 지역은 인구가 3500만이 넘는 것이 자랑거리였다. 지금은 고작해야 5만 명 남짓이 산다. 정부가 재건 기금을 집중 투입할 곳으로 인구가 밀집된 연안 지역을 택하면서 이곳은 제때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앙 전력망도 없고 양쯔 강 말고는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잔해들을 치운 거리는 깨끗했고, 지역 ‘안보평의회’가 모든 종류의 전후 소요를 미연에 방지했다. 평의회 의장은 전쟁 당시 부상을 입고 연로한 몸으로 용케 환자들을 왕진하며 다니는 의사 광진슈이다. (P11)

첫 번째 환자를 보기 위해 무릎을 꿇었을 때 난 아직도 이런 거창한 문화적 비판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죠. 그녀는 열이 40도로 펄펄 끓었고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고 있었어요. 횡성수설하던 그녀는 내가 팔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하니까 가늘게 신음을 내더군요. 그녀의 오른쪽 팔뚝에는 물린 상처가 있었습니다. 상처를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나서 짐승이 문 게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상처의 반지름과 잇자국으로 봐서 체격이 작은 어른이나 어린아이가 문 것이 틀림없었죠. 이렇게 감염 원인을 추측하긴 했지만 실제 부상 부위는 놀랄 정도로 깨끗했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마을 사람들에게 누가 이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없었다고 거듭 대답하더군요. 난 그 말이 사실일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입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개보다도 더 많은 박테리아가 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여자의 상처를 닦아 준 사람이 없었다면, 어떻게 상처가 감염돼서 욱신거리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나는 다른 여섯 명의 환자들을 진찰했습니다. 모두 비슷한 증상을 보였고,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 비슷한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P14-15)


내가 쏜 총알은 위를 겨냥해서 놈의 턱과 얼굴을 이어 주는 부분을 명중시켜 뇌가 천장에 점점이 뿌려졌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 굴에 있던 사람은 나뿐이었소. 내가 유일한 목격자였지.

“당신은 정체불명의 화학 약품에 노출된 거요.”

에드먼튼으로 돌아간 뒤 나는 이런 진단을 받았소. 그게 아니면 백신을 맞고 나서 일어난 부작용이라고 설명하더군. 그리고 우리에게 PTSD 치료제를 듬뿍 안겨 주었소. 나는 푹 쉬면서 장기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평가’란 아군일 때 쓰는 말이고, 적군일 땐 평가가 아니라 ‘심문’을 받는 거요. 군대에선 적에게 저항하는 법과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지키는 법을 가르치지만, 아군에게 저항하는 법, 특히 당신이 ‘진실’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거역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소. 결국 그 사람들이 날 설득시킨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합리화했지. 나는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고 싶었고, 그 사람들이 날 도와주게 놔두고 싶었소. 나는 노련한 베테랑이었소. 훈련도 완벽하게 받았고 죽으라 노력했지. 내가 인류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인류가 내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소. 난 매사에 대비가 돼 있다고 생각했지. (그는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으로 계곡을 내다봤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일에 대비를 할 수 있겠소?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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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인간은 뇌 빼면 시체잖아요? 신체라고 하는 복잡하고 허약하기 짝이 없는 기계가 뇌를 살리고 있는 거잖아요. 뇌는 조금만 손상되거나 음식이나 산소 같은 필수품이 없어도 살 수 없어요. 그것이 바로 우리와 ‘언데드’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차이점이죠. 그들의 뇌는 살아남기 위한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뇌라는 장기 자체를 공격해야 하는 거죠. (그는 오른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서 관자놀이에 댔다.) 간단한 해결책이긴 한데 우리가 그 문제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 재앙이 얼마나 빨리 확산됐는지 고려해 보고 나는 외국 정보계에서 정보를 구하는 것이 신중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P59-60)


나는 식구들과 함께 이스라엘 전차 뒤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그때 그 아무런 특징이 없는 트럭 한 대가 모퉁이를 돌아오더군요. 로켓 추진 유탄이 그 엔진에 명중됐어요. 그 트럭은 공기중으로 튀어오르면서 땅바닥에 거꾸로 처박혀서 빛나는 오렌지색 불덩이로 폭발했죠. 탱크 문 앞까지 도착하려면 몇 발짝 남아서 그 사건이 일어나는 걸 볼 수 있었죠. 불타오르는 트럭 잔해에서 형체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는데 옷과 피부가 불타오르는 가솔린에 뒤범벅인 된, 그야말로 천천히 걸어 다니는 불덩어리들이었죠. 우리 주위에 있던 군인들이 그 형체에 대고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총알들이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한 채 그 형체의 가슴을 펑펑 소리를 내면서 뚫고 지나가는 걸 봤죠. 내 옆에 있던 분대장이 소리쳤죠.

“브로쉬(B'rosh)! 요레 브로쉬(Yoreh B'rosh)!"

그러자 군인들이 무기를 다시 겨냥했어요. 그 형체들...... 놈들의 머리가 날아가 버렸죠. 그것들이 땅에 쓰러지면서 가솔린이 머리 없는 시체들을 태워서 숯 검댕으로 만들어 버렸죠. 갑자기 난 아버지가 내게 그동안 경고하려고 했던 것, 이스라엘인들이 전세계인들에게 경고하려고 했던 것을 이해하게 됐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건 왜 세상 사람들이 그 말을 듣지 않았냐는 거죠.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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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냥철’인 봄이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얼어붙은 좀비들이 소생하기 시작하면서 매년 실시하는 일제 소탕 및 청소 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유엔 북군이 도착했다. 매년 좀비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현 추세로 보면 이 지역은 10년 내에 완전히 ‘안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토군 총사령관 트라비스 담브로시아는 이 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직접 왔다. 장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일말의 슬픔이 서려 있었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는 내 눈을 피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P82-83)

공산주의, 파시즘, 종교적 근본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정권에서는 대중의 지지란 기정사실이오. 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고, 질질 끌 수도 있고, 정치적 역풍에 대해선 눈곱만큼도 걱정할 필요 없이 누구든 언제까지고 군대에 처넣을 수 있으니까.

민주주의에서는 그와는 극과 극을 달리지. 대중의 지지란 한정된 국가 자원처럼 반드시 아껴 가면서 관리해야 하오. 현명하게, 절약해 가면서 투자한 것에 대해 최대 수익을 뽑아낼 수 있도록 써야 하는 거요. 미국이란 나라는 특히 전쟁 피로에 예민하고, 패배할 것 같은 느낌보다 더 거세게 반발을 불러오는 것도 없소. 내가 ‘느낌’이라고 말한 이유는 미국이란 나라가 근본적으로 도 아니면 모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회이기 때문이오.

우리는 이겨도 압승을 거두고, 터치다운을 하고 일회전에서 케이오를 시켜야 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지.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승리가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실하며 전적으로 압도적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성이 차거든. 그러지 않으면..... 대공포 전에 우리가 어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오. 우리는 그 최후의 소규모 전투에서 결코 패배한 게 아니오. 사실 아주 까다로운 임무를 가진 것도 없이 극히 불리한 상황에서 해냈지. 우리는 승리했지만 대중의 생각은 달랐소. 그건 우리 민족성이 요구하는 대대적인 압승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너무 오랜 시간을 끌었고, 돈도 무지하게 쏟아 부은 데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치명적인 불구가 됐던 거요.

우리는 대중적인 지지를 다 소모해 버렸을 뿐 아니라 사실상 적자 상태에 있었소. (P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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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그러셨소.

“뭐가 보이나? 사람들이 자기 물건을 팔아먹는 거? 아니야. 사람들은 제군들에게 자신의 상품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두려움을 팔아먹고 있는 거야.”

우리에게 정곡을 찌른 말씀이었소. 늙는 게 두렵고, 외로울까봐 두렵고, 가난해질까 두렵고, 실패할까 봐 두려운 것. 두려움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이지. 두려움이 바로 핵심이라는 거요. 인간의 두려움만 건드리면 뭐든 팔아먹을 수 있다. 그게 내 영혼의 진언이었소.

“두려움을 자극하면 팔린다.”

내가 처음 그 질병에 대해 들었을 때 당시는 아직도 아프리카 광견병이라고 사람들이 그랬는데, 그때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구나 하는 감이 들었소. 나는 그 케이프타운 질병 발병에 대한 첫 보도를 잊을 수 없소. 처음 10분은 실제 사건을 보도하더니 나머지 한 시간 내내 지루하게 그 바이러스가 미국까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추측하던 보도 말이오. 신이 그 뉴스에 축복을 내리신거요. 나는 30초 후에 단축 다이얼을 눌렀소.

나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 몇 명과 만났소. 모두 같은 보도를 봤더군. 내가 제일 먼저 그럴듯한 선전문구를 생각해 냈소. 백신, 광견병에 접종하는 진짜 백신. 하느님이 보우하사 광견병에 치료제란 없소. 치료제란 사람들이 자신이 감염됐다고 생각했을 때만 사는 거요. 하지만 백신이란 말이지! 예방책이잖소! 그런 질병이 있다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한 그 백신을 계속 맞을 거란 말이오!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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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게 나았다는 말을 하려는 거요? 그게 신종 광견병이 아니라 시체를 소생시키는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역병이라는 말? 어떤 무서운 상황이 발생했을지 당신이 짐작이나 하시오? 시위와 폭동으로 사유재산이 파괴되면서 수십억 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지는데? 바지에 오줌이나 질금거리는 의원들이 정부를 마비시키고 결국엔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면서 겉보기만 번지르르해 보이는 좀비 보호법 같은 걸 의회에서 급행으로 통과시키는 꼴을 상상이나 해 봤소? 그게 이 정부의 정치적 자산에 어떤 손해를 입힐지 상상할 수 있겠소? 그때 우리는 대선을 치러야 했는데 고전을 면치 못할 싸움이었소. 우리는 ‘청소반’이었는데 그게 뭐냐면 이전 정부가 남긴 모든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복도 지지리도 없는 작자들을 칭하는 말이오. 이 정부는 지난 8년간 쌓아 놓은 쓰레기로 동산을 하나 만들었더군! 우리가 그나마 정권을 계속 지킬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새로 내세운 꼭두각시가 계속 약속을 남발했기 때문이오. ‘평화와 번영으로 돌아가겠다.’라는 약속이지. 미국인들은 그 이하로는 절대 수용하지 않을 태세였으니까. 국민들은 이미 힘든 시절을 겪을만큼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악재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는 건 그야말로 자폭이오.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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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부들과 소형 보트 주인들이 식구들하고 홀가분하게 도망칠 수 있었는데 계속 목숨을 걸고 해변으로 돌아와 줬어요.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모험을 했는지 한번 생각해봐요. 그 보트 때문에 살해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해변에서 고립될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물 밑에 있는 수많은 수중 구울(ghoul, 이슬람교 국가에서 무덤을 파헤치고 송장을 먹는다고 전해지는 귀신으로 여기서는 좀비의 별칭으로 쓰임)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어요.

그 구울들은 꽤 많았어요. 감염된 피난민들이 배로 가려고 헤엄치다 익사한 후에 다시 소생했죠. 그때는 썰물 때라 사람이 빠져 죽을 만했지만 먹잇감을 찾는 구울이 서 있을 수 있는 높이였거든요. 헤엄을 치던 사람들이 갑자기 물 밑으로 사라지거나, 보트가 승객들을 태운 채 뒤집혀서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걸 많이 볼 수 있었죠. 그런데도 그 어부들과 보트 주인들은 계속 해변으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오거나, 심지어 물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보트에서 뛰어내리더군요.

저도 그렇게 해서 목숨을 구했어요. (P116)


불길은 사그라져 가고 있는데, 좀비들은 계속 몰려들고, 그 공포는..... 모두 느끼고 있었죠. 분대장에서부터 내 주변에 있는 전우들의 행동에서, 마음속의 그 작은 목소리가 계속 속삭이고 있었죠.

“아, 우리는 죽었다. 완전 죽음이야.”

우리는 마지막 방어선으로 화력에 있어 뒤처리반이나 다름없었죠. 중화기들의 따끔한 맛을 용케 피해간 운 좋은 좀비들을 닥치는 대로 골라내 끝장내기로 되어 있었는데, 계획상으론 우리 세 명당 한 명이 무기를 발사하고, 열 명 중 하나가 좀비 하나를 끝장내야 하는 걸로 돼 있었는데.

좀비들 수천 명이 고속도로 가드레일 위로, 옆길로, 주택가 주변을 돌아오거나 통해서 몰려오고 있었는데, 얼마나 많은 놈들이 몰려오는지 우리가 쓰고 있던 두건 속으로 신음이 윙윙 울릴 정도였죠. (P16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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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문적인’ 역사가들이 용커스 전투가 어떻게 현대 군사 장비의 처참한 실패를 대변해 주고 있는지, 군대는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야 비로소 그 전쟁에 맞는 전술을 익혀서 다음번 전쟁을 대비한다는 격언을 증명했다고 떠들기 좋아한다는 말을 알고 있어요. 내 개인적인 견해로 그 말은 다 소똥 같은 소리예요. 물론 우리는 대비도 제대로 못했고, 우리의 장비, 훈련, 내가 방금 말했던 모든 것이 모두 일류뿐이었지만 정작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무기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뽑아 올 수 있는 그런 무기가 아니었어요. 그건 아주 오래된, 나도 잘은 모르지만, 전쟁만큼이나 오래된 무기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거죠. 그 무기란 바로 공포예요. 진정한 전투란 상대의 목숨을 빼앗거나 심지어 다치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겁줘서 도망가게 하는 것이 전투라는 걸, 꼭 손자병법을 읽어야 아는 게 아니잖아요. 적의 기세를 꺾어라. 그게 바로 모든 승리한 군대들이 지향하는 바죠. 그래서 모두 얼굴에 전쟁 분장을 하고 ‘전격전’을 벌이고..... 이라크 전쟁의 첫 전투를 우리가 뭐라고 했죠. ‘충격과 외경심’이라고 했나요? 그거야 말로 완벽한 이름이죠. ‘충격과 외경심’이라! 하지만 적이 충격 받지도 않고 외경심도 갖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죠?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그게 안 된다니까요! 그날 뉴욕시내 외곽에서 그 일이 벌어진 거죠. 그 실패 때문에 우리는 그 망할 놈의 전쟁에서 패배한 겁니다. 우리가 좀비에게 충격을 주고 외경심을 실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부메랑처럼 우리 면전에 돌아왔고, 현실에서는 오히려 좀비가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외경심을 심어 주었죠!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어떤 짓을 하건, 얼마나 많은 좀비를 죽이건, 그들은 결코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P168-169)

좀비들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광경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면서 내 무전기에서 들리는 다른 부대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죠.

“비카스나가르(Vikasnager): 안전함.”

“빌라스푸르: 안전함.”

“자왈라 무키(Jawala Mukhi): 안전함.”

“모든 도로 안전함: 상황 끝!”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나는 생각했죠. 내가 미친 건가?

그 원숭이도 상황 파악에 도움이 안 되더군요. 그놈은 버스 지붕에 앉아서 좀비들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놈의 얼굴이 어찌나 고요하고 총명해 보이는지, 정말로 그 상황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난 그놈이 내게 얼굴을 돌려 이렇게 말해 주길 바랄 뻔했다니까요.

“지금이 바로 이 전투의 전환기야! 우리가 결국 놈들을 막아낸 거야! 마침내 안전해졌어!”

그놈은 그런 말은 안 하고, 갑자기 조그만 고추가 툭 튀어나오더니 내 얼굴에 대고 오줌을 갈기더군요.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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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싱클레어 씨는 미국 정부가 신설한 디스트레스(DeStRes), 전략적 자원부(Department of Strategic Resources)의 장관이었다.

나는 누가 처음에 ‘DeStRes'란 약자를 생각해 냈는지, 그게 얼마나 ’distress(고민거리)‘라는 단어와 발음이 똑같은지 의도적으로 알면서 그렇게 고안해 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작명 하나는 끝내 주게 했지. 로키 산맥에 방어선을 정해서 이론상의 ’안전지대‘를 만들어 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지역에는 파편들과 난민들뿐이었소. 사람들은 굶어 죽어 가고, 질병이 만연했고, 노숙자들이 수백만 명이었지. 산업은 초토화됐고, 교통과 상업은 증발해 버린 데다 이 모든 상황이 로키 산맥의 방어선을 공격하는 좀비들과 우리 안전지대 내에 들끓고 있는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들로 인해 한층 더 악화됐지. 우리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야 했소. 옷과 식량과 주택과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 했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전지대로 설정된 이곳은 단지 닥쳐올 위기를 앞당기는 꼴밖에 안 됐으니까. 그래서 디스트레스가 창설됐고, 선생도 상상할 수 있듯이 난 많은 실습을 받아야 했소. (P223-224)


우리 강사들 중 절대 다수가 이민 1세대들이지, 이 사람들은 자기 한 몸 돌보는 방법도 알고 있었고, 최소한의 물자를 가지고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법을 익힌 사람들이오. 뒷마당에 텃밭을 가꾸고, 자기 집을 직접 수리하고, 기계적으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최대한 오래 가전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지. 이런 사람들이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우리의 편안한, 일회용 위주의 소비 생활 방식과 결별하도록 가르치는 게 아주 중요했소. 비록 이들의 노동력 덕분에 애초에 우리가 그런 생활양식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렇소. 여기엔 인종 차별주의도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계층 차별주의도 존재했소. 당신이 예전에 끗발 있던 기업 변호사라고 치지.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계약서를 검토하고, 거래를 중개하고, 전화기에 대고 수다를 떠는 게 당신의 일이었소. 당신은 그런 일에 재주가 있었고, 그래서 부자가 됐고, 덕분에 배관공을 불러서 화장실 변기를 고치게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계속해서 전화기에 대고 수다를 떨 수 있었지. 일을 더 많이 할수록, 돈이 더 많이 들어왔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잡다한 일을 떠맡길 수 있는 하인들을 더 많이 고용하게 됐지. 세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갔단 말이오. 그러나 이젠 그게 통하지를 않소. 계약서를 검토하거나 거래를 중개할 필요 자체가 없어진 거요. 이제 필요한 건 변기를 고치는 거지. 그래서 갑자기 당신의 편의를 봐주던 사람이 당신의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상사가 될 수도 있소. 어떤 사람들에겐 이런 상황이 좀비보다 더 무서웠지. (P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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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보시오. 그런 일에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은 우리 측 머릿수가 많거나 통솔력이 탁월해서라고 대답하겠지. 그야말로 일자무식한 사람들은 레이더나 원자폭탄 같은 과학 기술의 경이 덕분이라고 그럴 것이고.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 가지의 진정한 이유를 댈 거요. 먼저 더 많은 물자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 적군보다 더 많은 탄환, 콩, 붕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 말이지. 두 번째로 그런 물자를 제조할 수 있는 천연자원을 구할 수 있는가의 여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자원을 공장으로 수송할 뿐 아니라 완제품을 최전방으로 수송할 수 있는 물류 수단을 갖추고 있는가가 관건인 거요. 연합군에게는 자원도 있었고, 산업도 탄탄했고, 전 지구를 누빌 수 있는 수송력을 갖추고 있었지. 반대로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국경 내에서 박박 긁어모은 빈약한 자신에 의존해야 했소. 이번엔 우리가 추축국이오. 좀비들이 전 세계의 광대한 대륙 대부분을 지배하는 반면 미국 전쟁 생산력은 주로 서부에 있는 주들 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것에 의존했소. 해외에 있는 안전지대에서 원자재를 공수해 온다는 꿈은 깨시지. 우리의 상선 선단은 갑판까지 피난민들로 꽉 찬 데다, 연료 부족 때문에 우리 해군의 대부분이 건선거에 들어가 있소. (P231-232)


한번은 내가 당할 뻔했죠. 우리는 이층집을 확인하고 있었어요. 침실 네 개 욕실 네 개에 누군가 거실 유리창으로 지프 리버티를 몰고 들어와서 일부가 내려앉은 집이었죠. 내 파트너가 나보고 잠깐 볼일 좀 봐도 되겠냐고 물어보더군요. 난 그녀에게 덤불 숲 뒤로 가서 보라고 했죠. 내가 천치였지. 나는 딴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집 안에만 신경 쓰고 있었죠. 그러느라 내 뒤에 뭐가 있는지 눈치 채지 못한 거죠. 갑자기 뭔가가 내 휠체어를 홱 끌어당기더군요. 나는 휠체어를 돌리려고 했지만 뭔가가 오른쪽 바퀴를 꽉 잡고 있었어요. 나는 몸을 돌려서 전등을 주위로 휙휙 비췄죠. 그건 ‘드래거’라고 다리가 없는 좀비였죠. 그것이 아스팔트에서 날 보고 으르렁거리면서 바퀴를 잡고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더군요. 휠체어가 내 생명을 구했어요. 그 의자 때문에 내 소총을 돌리는 데 필요한 2.5초를 벌 수 있었죠. 내가 만약 서 있었다면 놈이 내 발목을 잡거나 아니면 이미 내 살맛을 실컷 봤겠죠. 그때 이후론 절대 근무 중에 한눈을 팔지 않게 됐어요.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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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디에스(ADS), 그게 나의 적이었지. 자각 증상 없는 사망증후군(Asymptomatic Demise Syndrome) 또는 종말론적인 절망 증후군(Apocalyptic Despair Syndrome)이라고 할까. 말하는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 이름이 뭐든 간에 그것이 전쟁 초기 막다른 상황에 몰린 몇 달 동안 기아, 질병, 인간 간의 폭력, 혹은 좀비가 죽인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 아무도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 우리는 로키 산맥 방어선을 안정시켰고, 안전지대를 위생 처리했는데도 하루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 나갔어. 자살은 아니었어, 물론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아냐, 이건 경우가 달랐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상처를 입었거나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을 앓고 있었고, 건강 상태가 완벽한 사람들도 있었지. 이 사람들은 그냥 밤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다음 날 영영 저세상으로 가 버린 거야. 문제는 심리적인 거였지. 포기해 버리고 내일을 맞고 싶지 않았던 거야. 내일은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거라는 걸 아니까. 믿음, 버텨내고자 하는 의지를 상실하는 일은 모든 전쟁에서 발생하기 마련이지. 평상시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긴 하지만 이렇게 대대적인 규모로 발생하는 건 아니지. 이건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무력감, 혹은 무력하다고 인식하는 거야. 나도 그런 기분을 이해할 수 있어. (P258-259)


거짓말이 아니냐고? 괜찮아. 그렇게 말해도 돼. 그래, 그건 거짓말이고 때로는 거짓말이 나쁜 게 아냐. 거짓말은 사실상 좋은 거도 나쁜 것도 아냐. 거짓말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불처럼 사람들을 따뜻하게 데워 줄 수도 있고, 태워 죽일 수도 있지. 정부가 전쟁 전에 우리에게 한 거짓말들, 우리를 계속 아무것도 모르는 행복한 바보들로 만들려고 했던 거짓말들은 우리를 태워 버린 거짓말들이지. 그것 때문에 우리는 했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했어. 하지만 내가 아발론을 만들었을 때는 이미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었어. 과거의 거짓말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고 이젠 사방에 진실이 넘쳐나서 거리를 휘청휘청 걸어 다니고, 문을 와지끈 부숴 버리고, 숨통을 할퀴어 대고 있잖아. 진실은 이런 거야. 우리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결코 미래를 보지 못했을 거야. 진실은 우리가 인류라는 종족의 황혼기에 서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고, 그 진실이 매일 밤 수백 명을 얼려 죽이고 있어. 그 사람들은 밤새 그들을 지켜 줄 따뜻한 뭔가가 필요했던 거야.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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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기가 자신들이 살던 영국 지방을 꿀꺽 삼키기 전에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몇 달뿐이었어요. 더 극적인 이야기는 마을 전체를 보호했던 성이자 중세 성벽이었던 코니 이야기죠. 그 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 막막하던 몇 년 동안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바다에 접해 있어서 우리가 국토를 다시 회복하기 시작했을 때 코니가 우리 군대의 출발점이 됐죠. <캐밀롯 광산>이란 책을 읽어 본 적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꼭 읽어 봐요. 작가가 케어필리의 방어자로서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토대로 쓴 훌륭한 책이에요. 작가가 웨일스의 러들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이층에 있을 때 위기가 시작됐어요. 집에 있던 모든 비축 물자가 떨어지고 첫눈이 내렸을 때, 그는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아 여행을 시작했죠. 그러다 버려진 옛 성터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곳은 주민들이 열의 없이 좀비 공격을 막아내려다 결국 결실을 거두지 못했던 과거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시체를 묻어 주고, 꽁꽁 언 좀비들을 빠개 버리고, 자신만의 성을 복구하기 시작했지요.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겨울 내내 그는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5월이 왔을 때 케어필리는 여름의 포위 공격에 완전하게 대비가 됐고, 다음 해 겨울에는 살아남은 다른 수백 명 생존자들의 피난처가 됐지요.

(그는 자신의 스케치 몇 장을 보여 줬다.)

걸작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영국 섬 중에서 두 번째로 큰 겁니다. (P306)


무지가 우리의 적이었어요. 거짓말과 미신, 오보, 허위 정보가 적이었죠. 가끔은 정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무지가 수십억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무지가 좀비 전쟁을 일으켰어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만약 지금 우리가 결핵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그때 좀비 바이러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세계 시민들이, 아니면 적어도 이 시민들을 보호할 책임을 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맞선 상대에 대해 정확히 알고만 있었더라도. 무지가 우리의 진정한 적군이었고 냉엄하고 확실한 정보가 무기였어요.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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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아무도 모르죠. 그 전염병을 격퇴하는데 북한보다 대비가 더 잘된 나라는 없었어요. 압록강의 북쪽, 동해와 서해와 남쪽(그는 비무장지대를 가리켰다.) 국경을 지상에서 가장 철통같은 요새로 만들었으니까. 이곳이 산악 지대라 방어하기도 쉽다는 건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산이 수많은 군사 구조물들로 벌집같이 됐다는 건 선생도 모르시겠죠. 북한 정부는 1950년대 미군의 폭격 작전에서 혹독한 교훈을 배웠고, 그 이후로 국민들이 안전한 곳에서 다시 전쟁할 수 있는 지하 시스템을 만드느라 무지 고생했어요.

북한 사람들은 모두 중무장을 했고, 전투 능력으로 치면 이스라엘 군대가 울고 갈 수준이었죠. 현역 군인이 남녀 합쳐 100만명이 넘었고, 거기에 예비군이 500만이었어요.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너끈히 넘기는 병력에다, 전 국민이 태어나서 한 번씩은 기초 군사 훈련을 받죠. 그리고 군사훈련보다 더 중요하고 이런 전쟁에 가장 필수적인 것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초인적인 수준의 국가 기강이었죠. 북한 사람들은 성장하는 내내 자신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국가, 혁명, 위대한 수령 동지의 뜻에 봉사하기 위해서이며 그 밖에는 무의미하다는 세뇌를 받았어요.

남한 사람들이 살던 세계와는 극과 극인 셈이죠. 남한은 개방된 사회였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죠. 국제 무역만이 우리의 살길이었으니까. 우리는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개인주의 사회였고 시위와 대중적인 소요도 겪을 만큼 겪었어요. 아주 자유롭고 동시에 분열된 사회였기 때문에 대공포 시절에는 창 독트린도 간신히 실행했죠. 이런 내부적인 위기는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북한 사람들은 정부가 집단 학살 수준의 기아를 야기했을 때조차 반항하는 시늉을 하느니 차라리 아이들을 잡아먹는 쪽을 택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아돌프 히틀러가 부러워할 만한 수준의 복종이라고 할까요. 이 사람들에게 총이나 돌을 쥐여 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맨손으로 다가오는 좀비들을 가리키면서 “싸워!”라고 명령하면 꼬부랑 할머니에서 꼬맹이들까지 모두 그렇게 했을 겁니다. 북한 사람들은 한국 전쟁이 끝난 후로 전쟁을 대비해 계획하고, 준비하고, 전투태세를 취하도록 길러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처한 대참사에서 살아날 뿐 아니라, 승리하기까지 하는 나라를 꼽는다면 그 나라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되겠죠.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위기가 시작되기 약 한 달 전, 부산에서 첫 번째 발병 사례가 보고되기 전에, 북한이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모든 외교적인 관계를 끊어 버렸어요. (P318-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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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북한 사람들은 지하 단지로 대피한게 틀림없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지하 단지의 크기와 깊이를 우리가 크게 오판한 거죠. 아마 그들의 ‘위대한 수령 동지’가 서양에서 들여온 독주와 미국 포르노 테이프를 보면서 헤롱거리고 있는 동안 북한 주민 전체가 지하에서 끊임없이 전쟁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여념이 없는 건지도 모르죠. 전쟁이 끝났다는 걸 그 사람들이 알고는 있을까요? 그 지도자가 그들이 알고 있는 과거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또다시 거짓말을 한 걸까요? 북한 지도부로서는 좀비 출현이 ‘호재’였을 겁니다. 맹목적인 복종을 토대로 세운 사회에서 고삐를 바짝 조이기 위한 구실이 됐을 테니까요. 북한의 위대한 수령 동지는 항상 살아 있는 신이 되고 싶어 했는데 이제 국민들이 먹는 식량뿐 아니라 그들이 마시는 공기까지 지배하고 거기다 지하의 인공 태양 빛까지 지배하면서 그의 비틀린 환상이 마침내 실현된 건지도 모릅니다. 아마 원래 계획은 그랬는데 뭔가 끔찍하게 어긋난 건지도 모르죠. 파리 지하에 있었던 ‘두더지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번 생각해봐요. 거기서 일어난 일이 북한에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났다고 하면 어떨까요? 아마 이 땅굴 속에는 2300만 명의 좀비들, 어둠 속에서 으르렁거리면서 풀려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수척해진 시체 로봇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P32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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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타쿠’였어요. 이 오타쿠라는 말을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내게 있어서 오타쿠란 그냥 ‘아웃사이더’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미국인, 특히 젊은 미국인들이 사회적 압력에 답답해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죠. 인간이라면 다 그렇잖아요. 하지만 내가 정확히 이해했다면 미국 문화는 개인주의를 장려하더군요. 미국인들은 ‘반항아’, 대중과 자랑스럽게 거리를 두고 있는 ‘악당’을 숭배하죠.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주의란 영광의 배지죠. 일본인에게 개인주의는 수치의 훈장일 뿐입니다. 특히 전쟁 전 일본 사람들은 복잡하고, 끝이 없는 외부의 평가라는 미로 속에 살았죠. 외모, 하는 말, 다니는 직장에서부터 재채기를 하는 방식까지 경직된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정해져 있었죠. 어떤 이들은 힘이 넘쳐서, 어떤 이들은 나약해서 이 가르침에 순응하지 못했어요. 나 같은 부류는 더 근사한 세계로 피해 버렸죠. 그 세계는 사이버 공간이었는데 일본 오타쿠에게 딱 맞는 세상이었어요. (P325)


나는 ‘히바큐샤’입니다. 나는 양력으로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나는 곤피라 산(金比羅山)에 서서 같은 반 친구 몇 명과 공습 경계 기지에 배치돼 있었습니다. 그날은 흐려서 B29 폭격기가 머리 위로 가까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보지는 않고 소리로 들었죠. 비행기는 그것 딱 한 대였는데 정찰기였던 것 같고 보고할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참호로 냅다 뛰어 들어갔을 때 웃음을 터뜨릴 뻔했죠. 나는 그 미 전투기를 보려고 계속 우라카미 계곡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대신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섬광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히바큐샤’란 ‘피폭자’를 뜻하는 말로. 우리 국가의 사회적 계급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정과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희생자이자 영웅이며 모든 정치적 의제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사회적 부랑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둔 부모 중에 우리를 사위나 며느리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히바큐샤는 일본의 순수한 유전적 온센에 흐르는 불결한 피였습니다. 나는 이런 치욕을 개인적으로 처절하게 느꼈습니다. 나는 히바큐샤였을 뿐 아니라 장님이라서 짐밖에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P344)


갑자기 우리는 ‘승리의 무기고’가 됐습니다. 우리는 곡창지대이자, 제조 센터이자, 군사 훈련지이자 도약대가 됐죠. 우리는 북미와 남미 양쪽의 공군기지의 중추이자 선박 1만 척의 거대한 건선거가 됐습니다. 우리는 모두 돈을 아주 많이 벌었고, 그 돈으로 하룻밤 사이에 중산층과 노르테쿠바노의 숙련 기술과 실질적인 경험을 필요로 하는, 번영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내가 보기에 결코 깨지지 않을 유대 관계를 맺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나라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고, 그들은 우리가 우리 나라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의미, 자유, 막연히 애매하고 추상적인 용어가 아니라 아주 현실적이고 개별적으로 인간적인 수준에서 자유의 의미를 보여 줬습니다. 자유란 그냥 단순히 가지고 있는 뭔가가 아니라, 먼저 뭔가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노르테쿠바노에게서 배운 교훈입니다. 이들은 모두 아주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자유를 얻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왜 엘 제페(가끔 피델 카스트로의 별명으로 쓰이며, ‘우두머리’ ‘보스’라는 뜻이다.)가 그렇게 그들을 두려워했겠습니까?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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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최초로 좀비 구멍을 발견했네. 굴을 파는 동물들을 쫓아가느라고 좀비들이 파는 구덩이 말이야. 처음에 봤을 때는 그냥 한두 번 있는 일이겠거니 했는데 나중에 전 세계적으로 그 구덩이들이 퍼져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 가끔은 바로 옆에 있는 구덩이 옆에 또 구멍이 한두 개씩 생기더군. 영국 남부에 들판이 하나 있는데(거기 토끼가 아주 많았나 보네.) 거기는 크기와 깊이가 제각각인 구덩이로 벌집이 됐더군. 많은 구덩이 주위에 크고 거무스름한 얼룩이 져 있었네. 영상을 크게 확대할 수 없었지만 그게 피라는 건 꽤 확실했지. 나로서는 그게 우리의 적의 추진력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는 끔찍한 예였네. 좀비에게는 의식적인 사고란 전혀 없고 순전히 생물학적인 본능만 있어. 한번은 한 좀비 놈이 뭔가 쫓아가는 걸 봤어. 나미브 사막에 있는 황금 두더지였을 걸세. 그 두더지는 모래 언덕 비탈에 깊게 구멍을 파고 숨어 버렸지. 좀비가 그 두더지를 쫓아가려고 하니까 모래가 계속 흘러내려 그 구덩이를 채워 버리는 거였네. 그 좀비는 멈추지도 않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냥 무식하게 계속 파더군. 그 광경을 5일 동안 지켜봤어. 이 좀비 놈이 땅을 파는 희미한 화면을 봤지. 이놈은 파고, 또 파고, 또 파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서더니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발을 질질 끌면서 가 버리더군. 두더지 냄새를 잃어버린 게 틀림없었네. 운이 억세게 좋은 두더지였지. (P408-409)


“우리는 좀비와 싸워서 놈들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결국 우리 후세가 이 지구상에서 육체적인 위험이 거의, 혹은 전무한 상태에서 다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의 방어 전략은 인류를 구했지만 인류의 정신은 어떠한가? 좀비는 우리에게서 땅과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더한 것을 빼앗아 갔다. 좀비는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의 자신감을 약탈해갔다. 우리는 혼란스러워하고 시들시들한 종으로 멸종 직전가지 몰리면서, 내일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서 오늘보다는 고통이 줄어들길 바라고 있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인가? 우리 유인원 조상들이 키가 큰 나무에서 웅크리고 있던 시대 이후로 유례없이 높은 불안과 신념 상실이라는 이런 유산을? 아이들은 어떤 종류의 세상을 다시 세우게 될까? 아이들이 세상을 다시 세우기는 할까? 과거에 미래를 되찾을 수 없이 무력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아이들이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미래에 좀비들이 또 일어선다면? 우리 후손들이 좀비를 전장에서 맞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패기 없이 항복해서 무너지면서 그것이 인류의 어쩔수 없는 멸종이라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행성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입증해야 하고, 그 증거를 이 전쟁의 가장 위대한 금자탑으로 남겨야 한다. 인류로 돌아가는 길고 힘든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구 상에서 한때 자부심에 넘쳤던 영장류의 퇴행성 권태를 택할 것인가? 그게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선택이다.”

정말 전형적인 백인들의 헛소리였죠. (P41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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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자신이 겪은 일과 우리가 참아낸 일을 비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 암흑과 그 악취, 우리에겐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고글도 거의 없다시피 했죠. 소대당 하나 정도밖에 없었고 그것도 운이 좋아야 있었죠. 손전등에 넣을 여분의 배터리도 마찬가지로 별로 없었어요. 가끔은 분대 전체에 손전등이 작동하는 게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걸 수색대의 선봉에 선 병사에게 줘서 빨갛게 코팅한 빔으로 어둠을 가르곤 했죠.

공기는 하수 오물, 화학 약품, 살이 부패하는 냄새로 독성을 띠고 있었죠. 가스 마스크의 필터는 이미 오래전에 유효기간이 지난 거라 허울뿐이었죠. 우리는 찾을 수 있는 건 뭐든 썼어요. 낡은 군용 모델이나 머리 전체를 덮는 소방용 두건을 썼는데, 그걸 쓰면 돼지처럼 땀을 흘리면서 눈도 멀고 귀도 먹게 되죠.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김 서린 마스크를 통해 보고, 부대원들의 멍멍한 목소리를 듣고, 무전기병의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들었죠. (P483)


미래 세대는 우리에 대해 뭐라고 할지 궁금하군요. 우리 할아버지들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버티고 미국으로 오셔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산층을 만드셨죠. 그분들이 완벽하지 않으셨다는 건 하느님도 아시지만 이분들은 아메리칸드림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셨어요. 그러다 내 부모님 세대가 와서 이 모든 것을 망쳐 놨죠. 베이비 붐 세대, ‘나만 아는’ 세대. 그다음에 우리 세대가 등장했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좀비의 저주를 막긴 했지만 애초에 그것이 저주가 되도록 방치해 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어질러 놓은 것은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고, 그게 바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묘비명인지도 모르겠어요.

“Z 세대, 자신들이 망친 것은 치워 놓고 간 사람들.” (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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