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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

영화 <순수 박물관 -오르한 파묵의 박물관과 이스탄불> 2016년

by 노용헌

2008년, 튀르키예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한 여인에 관한 기억의 물건을 모아 박물관을 세우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순수 박물관』을 발표한다. 이후 2012년, 오르한 파묵은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실제 “순수 박물관”을 세운다. 그랜트 기 감독은 이스탄불에 위치한 박물관과 소설의 문장을 오가며 사랑과 기억과 그 물질적 흔적을 사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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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30일 수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멜하메트 아파트에서 퓌순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약간 실망했고 혼란을 느꼈다. 사무실로 돌아갈 때 깊은 불안을 느꼈다. 다음 날,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나는 다시 그 집으로 갔다. 하지만 퓌순은 또 오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방들에 어머니가 여기저기 놓아두고 잊어버린 오래된 꽃병, 옷, 먼지 구덩이 속에 놓여 있는 옛 물건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서툴게 찍은 오래된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며 잊었다는 것조차 몰랐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많은 추억을 떠올렸고, 물건들의 힘이 나의 불안을 진정시켜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P43)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삶은 나를 내가 경험했던 것에 관한 인류학자로 만들 것이었기 때문에, 먼 나라에서 가지고 온 그릇, 물건, 도구 들을 전시하며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이 열정적인 사람들을 절대 경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첫 경험’의 흔적과 물건에 보이는 지나친 관심은, 퓌순과 나 사이에 생긴 깊은 온정과 더없는 기쁨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침대에서 서로 말없이 껴안고 누워 있을 때, 열여덟 살의 연인이 서른 살의 내 피부를 사랑으로 어루만졌던 정성을 보여 주기 위해, 그날 퓌순의 가방에서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접어 놓은 그녀의 꽃무늬 손수건을 여기에 전시한다. 이후 퓌순이 담배를 피우면서 책상 위에서 찾아 만지작거렸던 어머니의 크리스털 잉크병과 필기도구 세트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연약한 온정의 징표가 되었으면 한다. 남자다운 자긍심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게 했던, 당시 유행한 두꺼운 남성용 벨트도, 천국에서 방금 나온 듯한 우리의 벌거벗은 몸에 옷을 걸치는 것, 더럽고 낡은 세계를 훑어보는 것조차 우리 둘에게 아주 힘들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P58)


“체틴 씨, 이 아이에게 왜 양을 희생시키는지 말 좀 해 주세요. 저는 설명을 잘 못 하겠네요.”

“아이고 무슨 겸손한 말씀이세요, 케말 씨.”

하지만 우리보다 종교를 더 잘 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즐거움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도 선지자 아브라함만큼 신을 믿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양을 희생시킨답니다. 희생양은 우리의 가장 귀중한 것을 신을 위해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꼬마 아가씨, 그를 위해 가장 사랑하는 것마저 내주지요. 게다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요.”

“마지막엔 천국에 가지 않나요?”

나는 교활하게 말했다.

“신의 뜻이라면....... 그것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 확실해지지요. 하지만 희생양을 천국에 가기 위해 죽이는 건 아닙니다. 그 어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그저 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시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가 그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면 그의 마음은 불안할 텐데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한다고 생각할걸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

“신은 위대하시지요. 신은 모든 것을 보고 아십니다. 우리가 그를 대가 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아무도 신을 속일 수는 없어요.” (P70-71)


하지만 이 장면들은 내가 느꼈던 희열과 행복의 원인이 아니라 단지 도발적인 그림들 하나하나일 뿐임을 곧 깨달았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그녀를 왜 그렇게 사랑했는지를 이해하려고 했을 때, 단지 우리가 사랑을 나누던 장면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을 나누던 방, 주위, 평범한 것들도 모두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P92)


'소유한다'라는 표현을 언급하면서, 내 이야기의 바탕이 되고 독자들과 관람객들이 어차피 아주 잘 아는 주제로 돌아가고자 한다. 특히 아주 미래의 세대들, 예를 들면 2100년 이후 박물관에 온 관람객들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인류학’이라는 불쾌한 --옛날 사람들은 ‘언짢다’라고 했다-- 지식들을 지금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기원후 양력으로 197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발칸, 중동 그리고 남서 지중해 지역에서 젊은 여성들의 ‘순결’은 여전히 결혼 때까지 지켜야 할 귀중한 보물이었다. 서구화, 현대화라는 과정과 도시화의 결과로 여성들이 갈수록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자, 이 보물의 실제적인 가치가 이스탄불의 어떤 지역에서는 약간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구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문명화와 동일하게 보았던 현대화의 결과, 이 도덕률 그리고 이 문제가 잊힐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이스탄불의 가장 서구화되고 부유한 사람들에게조차, 여성이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와 ‘끝까지’ 가는 섹스를 한다는 것에는 진지한 의미와 결론이 있었다. (P103)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박물관의 이 지점에 전시될 수 있도록 화가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며 주문했던 이 그림은, 퓌순의 집 안에 켜져 있는 전등으로 인해 오렌지 빛이 나는 창문, 달빛이 비쳐 가지가 반짝이는 밤나무, 굴뚝과 지붕이 수놓인 니샨타쉬 하늘 너머 군청색 밤의 깊이를 무척 잘 반영하고 있지만, 그 풍경을 보고 있을 때 느꼈던 나의 질투심까지 박물관 관람객들에게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이런 풍경은, 사실 내가 달이 뜬 밤에 퓌순을 한번 보고, 입맞춤을 하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만이 아니라, 그날 밤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그곳에 찾아왔다는 것을, 술 취한 나의 이성이 지금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제 어쨌든 한번 ‘끝까지’ 갔으니, 그날 내게 일일이 설명했던 숭배자들 중 한 명과 사랑을 나눈다면 어떨까 하고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P111)


사실 그 누구도,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열정적인 순간에, 삶의 그 황금의 순간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그리고 자주)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 한구석에서는 앞으로 이 순간보다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도 믿는다. 왜냐하면 특히 젊은 시절에는 그 누구도 상황이 나빠질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을뿐더러, 만약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다면, 미래도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낙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이 마치 소설처럼 이제 마지막 형태를 갖추었다고 느끼는 시기에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지금의 나처럼 느끼고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했던 많은 순간들 중에서 왜 이 순간을 선택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물론 우리 이야기를 소설처럼 다시 한번 설명해야만 한다. (P118-119)


가난과 아둔함 때문에, 그리고 사회에서 버림받고 평생 고통받으며 불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마치 영구차처럼 내 머릿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사라져 갔다. 스무 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온갖 재앙이나 불행에서 나를 보호해 주는 보이지 않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나도 불행해질 수 있고, 나아가 그로 인해 나의 갑옷이 뚫릴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134)


“알았어, 안 갈게. 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있어. 먼저 당신이 지금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

한순간 머리가 복잡해졌고, 시벨이라고도 퓌순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남자는 누구야.”

“아버지.”

“좋아, 나의 첫 번째 조건은 이거야. 다시는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의 목숨을 걸고 맹세해.”

“맹세해.”

“그렇게 말고, 문장 전체를 다 말해.”

“다시는 너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어. 아버지의 목숨을 걸고 맹세해.”

“지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어. 당신은.”

“두 번째 조건은 뭐야?”

하지만 이 조건을 말하기도 전에 키스를 했고, 행복하게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에 취한 채 존재하지 않는 어떤 나라에 다다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듯한 느낌이 드는 상상 속의 이 장소는 이상한 행성의 표면, 바위로 뒤덮인 한적하고 로맨틱한 섬, 달 표면에서 찍은 사진과 비슷했다. 기이하고 색다른 나라에 간 것 같다고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퓌순은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반쯤은 어두운 정원, 그리고 이 정원과 뒤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창문, 그리고 해바라기가 바람에 일렁거리는 샛노란 언덕이 눈앞에 떠올랐다고 했다. 이 풍경은, 우리가 사랑을 나누던 순간에, 서로에게 가장 가까이 있던 순간에, 예를 들면 퓌순의 가슴과 딱딱한 유두 끝에 입 안에 넣을 때나 퓌순이 코를 내 목과 어깨가 만나는 곳에 묻고 온 힘을 다해 나를 안을 때, 우리 눈앞에 떠올랐다. 우리 사이의 아찔한 친근감이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끼게 해 주었다는 것은 서로의 눈 속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P137-138)


“결국 어느 날 정오 무렵, 그녀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그녀의 어머니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지만 내 목소리는 알지 못했어. 나는 그녀의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의 남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아파서 병원에 있는 아내가 좀 찾아와 달라고 한다며 그녀를 바꿔 달라고 할 참이었지. 그녀의 어머니는 ‘내 딸은 죽었어요.’라며 울기 시작했어. 암으로 죽었다고 하더라! 나도 울지 않기 위해 즉시 전화를 끊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알게 되었어. 기술자라는 남자와 결혼한 적도 없다고 했어. 인생은 얼마나 끔찍하고, 모든 것이 얼마나 공허하니!”

아버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는 순간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화가 났다.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할수록, 인류학자들 표현대로 ‘터부를 생각하지 못하는 원시인들’처럼 머리가 복잡해졌고, 고통스러웠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아버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오늘 내 고통을 털어놓아 널 속상하게 하려고 부른 것은 아니야. 넌 곧 약혼하고 결혼도 하겠지. 네가 나의 이 아픈 이야기를 알고, 또 네 아비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았으면 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도 하고 싶구나, 알겠니?” (P147-148)


한번은 사무실의 빈 방에서, 라흐미 씨가 기도용 깔개를 깔고 의수를 한쪽에 놓고 기도를 올리는 것을 형과 함께 구경한 적도 있었다.

라흐미 씨에게는 자신처럼 사랑스럽고 몸집도 우람한 아들이 둘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통통한 피부가 분홍빛이던, 그러나 지쳐 보이던 그의 아내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스카프 옆으로 눈물을 훔치며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형이나 내가 표현할 수 없는 진심을 다해 여인을 위로하고, 그녀의 아들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집에 와 있는 손님들과도 금세 어울렸다. 형과 나는 우리만의 죄책감에 휩싸였다. 형은 강의를 하듯이 무언가 이야기를 했고, 나도 그와의 추억에 대해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 아니라, 태도와 슬픔의 진정성이나 힘이 아니라, 주위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재능이 중요하다. 담배가 그렇게 사랑받는 것은 니코틴의 힘 때문이 아니라, 이 공허하고 무의미한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버지와 형과 나는 고인의 큰아들이 건넨 말테페 갑에서 담배를 한 개비씩 집고는 그가 들고 있던 성냥불로 노련하게 불을 붙였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이상하게도 우리 셋 다 동시에 다리를 꼬고 앉아 피우기 시작했다. (P154-155)


이 이스탄불 힐튼 호텔 엽서는, 내가 지금 서술하고 있는 시절에서 이십 년 정도 지난 후, 순수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이스탄불의 유명한 수집가들을 찾아다니고, 이스탄불과 유럽의 벼룩시장(그리고 작은 박물관들)을 돌아다닐 때 손에 넣었다. 유명한 수집가인 ‘환자’ 할리트 씨가 오랜 흥정 끝에 이 엽서들 중 하나를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는 것을 허락했는데, 내가 익히 알고 있는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스타일의 호텔 외관은 약혼식 날 밤뿐만이 아니라, 내 모든 어린 시절을 순식간에 기억나게 해 주었다. (P163)


한때 부유했다가 어설프게 사업을 하는 바람에 재산을 잃어버린 가문들답게 파묵 가족은 신흥 부자들 앞에서 불안하고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그의 어머니, 아버지, 형, 삼촌, 사촌들 옆에 앉아 쉬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스물다섯 살의 오르한에게서는 신경질적이며 초조한 모습, 조롱기 어린 미소를 지으려 한다는 것 외에 다른 기억할 만한 것을 보지 못했다.

지루한 파묵 가문의 테이블에서 일어나 곧장 퓌순을 향해 걸어갔다. 사랑에 가득 차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다가가는 나를 본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녀는 순간 새빨개졌고, 짙은 분홍빛 피부도 싱그러운 생동감이 번져 나갔다. 네시베 고모의 시선에서 퓌순이 그녀에게 전부 말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그녀 어머니의 메마른 손에, 나중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그녀 아버지의 여자처럼 팔목이 가늘고 손가락이 긴 아름다운 손에 악수를 했다. 나의 아름다운 여인 차례가 되자, 그녀의 손을 잡은 후 몸을 숙여 두 뺨에 입을 맞추었다. 목과 귀 밑의 예민한 부분에 느껴지던 행복감과 희열이 내 마음속에서 간절하게 되살아났다. 내 마음속에서 반복되던 ‘왜 왔어?’라는 질문은 금세 “정말 잘 왔어!”로 변해 버렸다. 눈 주위는 펜슬로 아주 가늘게 그리고,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뿌린 향수처럼 그녀를 낯설고 더욱 여성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충혈된 눈과 눈 아래가 아이처럼 부푼 것을 보니 나와 헤어진 후 집에 가서 울었구나하고 생각하던 차에, 자신감 넘치는 단호한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면서 퓌순이 용감하게 말했다.

“케말 씨, 저는 시벨 씨를 알아요. 정말 결정 잘하셨어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동시에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케말 씨, 그 많은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 시간을 내서 제 딸의 수학 공부를 봐 주셨다고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P182-184)



이렇듯 고통은 실체가 있었음에도 나는 이것이 나의 이성 그리고 영혼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릿속을 깨끗이 정화하려고는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이런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급습을 당한 고고한 사령관마냥 정신적 혼란에 휩싸였던 것이다. 게다가 내 머릿속에는 고통을 견뎌 내게 만들고, 희망을 연장하고, 퓌순이 언제고 다시 멜하메트 아파트에 나타날 것만 같은 이유와 환상이 들어 있었다.

이따금 냉정해진 순간에는, 퓌순이 나에게 삐쳐서 벌을 주는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즉, 내가 약혼한 것 말고도, 시벨과 사무실에서 만나는 것을 그녀에게 숨긴 것, 약혼식장에서 질투에 사로잡혀 그녀를 케난에게서 떼어 놓는 술수를 쓴 것, 무엇보다 귀고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 같은 나의 잘못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사랑을 나누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나뿐 아니라 퓌순 자신에게도 벌일 것이며, 그래서 그녀도 나처럼 견디기 힘들 거라고 확신했다.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녀가 내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지금은 고통을 견뎌 내야 하고, 내 몸에 퍼지는 고통을 참고 받아들여야 하며, 이를 악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후회가 밀려들었다.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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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견딜 수 없는 질투심이 마음속의 분노와 뒤섞여 치솟아 올랐다. 퓌순이 금세 새 애인을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의 고통은 내 의식에서 시작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배에서 느끼는 사랑의 고통을 겨냥했고, 나를 파멸로 이끌고 갔다.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이 수치스러운 상상은 다른 때에도 떠오른 적이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P232)


“아주 낙심했어요. 시험 도중에 울면서 나왔거든요, 우린 시험 결과도 궁금하지 않아요.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가련하게도 이제 대학에 갈 수 없어요. 당신과 수학 공부를 하면서 많이 힘들었나 봐요. 당신 때문에 제 딸이 상처를 많이 받았나 봐요. 역혼식이 있던 날 밤도 상처를 많이 입었어요. 이런 것들을 알고 있을 테지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닥쳤어요. 물론 모든 게 당신 책임은 아니에요. 하지만 걔는 아직 어리고 약해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되었잖아요. 아주 상처를 많이 입었지요. 걔 아버지가 아주 먼 곳으로 데려갔어요. 아주, 아주 먼 곳으로, 이제 당신도 그 아이를 잊어요. 걔도 당신을 잊을 겁니다.”

이십 문 후 멜하메트 아파트에 있는 우리의 침대에 누워, 한 방울 두 방울 천천히 흘러내리는 눈물이 내 뺨에 그리는 곡선을 느끼면서 천장을 바라볼 때, 문득 자가 떠올랐다. 그렇다. 나도 비슷한 것을 어렸을 때 사용했고, 어쩌면 그래서 퓌순에게 선물했던 학생용 자는 우리 박물관의 첫 번째 진짜 물건이다. 그녀를 생각나게 하고, 그녀의 삶에서 고통으로 얻게 된 물건. 30센티미터가 표시된 끝을 천천히 입 안에 넣었다. 씁쓸한 맛이 났지만 오랫동안 물고 있었다. 그녀가 자를 사용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기 위해, 침대에서 자를 가지고 놀면서 두 시간 정도 누워 있었다. 이것은 나를 너무나 편하게 해 주었고, 나는 마치 퓌순을 본 것처럼 행복했다. (P251)


퓌순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은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고통이 잦아든 후에는 다시 나의 병을 떠올리게 하여 이 물건들과 그 집에서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의 고통이 가벼워졌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낙관성은 나에게 용기를 주어, 나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고, 곧 시벨과도 사랑을 나누기 시작할 것이며, 이후 그녀와 결혼할 것이고, 평범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할 거라고 기쁨과 고통을 느끼며 상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첫 번째 낙관의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그리움은 깊은 아픔으로, 이틀째에는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변했다. 그럴 때면 다시 멜하메트 아파트로 가야만 했다. 아파트에 들어가서는 찻잔, 잊어버리고 간 머리핀, 자, 빗, 지우개, 볼펜 같은,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물건을 만지거나, 어머니가 오래되고 쓸모없다고 갖다 놓은 물건 사이에서 퓌순이 만지거나 가지고 놀아서 그녀 손의 향기가 배어 있는 무언가를 찾아냈으며, 그것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나의 수집품을 늘려 나갔다. (P272-273)


여기에 전시한 편지는 나의 수집품을 처음 모으기 시작했던 그 중요한 시절에 쓴 것이다. 편지를 봉투 속에 넣어 두는 것은 내 이야기를 연장하지 않고 싶은 마음과 이십 년 후에 순수 박물관을 세울 때조차 여전히 느꼈던 부끄러움 때문이다. 이 책의 독자들이나 박물관 관람객들이 편지를 읽을 수 있다면, 내가 퓌순에게 대놓고 애걸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녀에게 잘못했으며, 아주 후회하고 있고, 고통을 겪고 있으며, 사랑이란 아주 신성한 감정이며, 나에게 돌아오기만 하면 시벨과 헤어질 거라고 썼다. 마지막 말을 쓴 후에 후회를 했다. 시벨과 영원히 헤어졌다고 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날 밤도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고 시벨에게서 위안을 구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으므로, 내 손은 그 정도까지 쓸 염치는 없었다. 십 년 후 퓌순의 서랍에서 내용보다는 존재 자체가 중요한 이 편지를 발견하자, 내가 그것을 쓸 무렵 스스로를 얼마나 기만하고 있었는지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퓌순을 향한 나의 사랑의 격렬함과 무력감을 스스로에게 감추려고 했고, 곧 그녀와 다시 만날 거라는 엉뚱한 실마리를 만들어 자신을 속이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벨과 장차 꾸릴 행복한 가정에 대한 상상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시벨과 약혼을 파기하고, 이 편지에서 퓌순에게 청혼을 해야 했을까? 내 뇌리 한구석에서조차 떠오르지 않았다고 여겼던 이 생각은, 퓌순과 미인 대회에 함께 출전했던 친구 제이다를 만나고 그녀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할 때에야 떠올랐다. (P274-275)


어두운 아름다움이 드리워져 있던 그 슬픈 9월의 날들을 견딜수 있게 해 줄 만한 것을 발견했다. 배영으로 헤엄치면 배의 통증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배영으로 헤엄을 치면서, 머리를 보스포루스 물속에 푹 담근 채 바다 바닥을 거꾸로 보며, 한동안 숨을 참고 팔다리를 놀렸다. 해류와 파도 속에서 헤엄쳐 나가면서 눈을 뜨면, 거꾸로 보이는 보스포루스 바다가 색을 바꾸며 짙어졌고, 그 어둠이 내 사랑의 고통과는 완전히 다른 무한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보스포루스는 해안가가 갑자기 깊어지기 때문에, 어느 때는 바닥을 보았고 어느 때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거꾸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이 세계가 어떤 거대하고 신비로운 총체인 것 같아서, 삶에 대한 기쁨과 그 거대함에 속해 있다는 겸손함이 내 마음을 채웠다. 때로는 녹슨 깡통, 사이다 뚜껑, 입을 열고 있는 검은 홍합, 아주 오래된 배의 환영을 보고 역사와 시간의 광활함과 나 자신의 하찮음을 떠올렸다. 사랑을 할 때 내가 과시하려 했고 나만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런 것들도 내가 사랑이라고 했던 고통을 깊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렇게 정화되어 가는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겪는 고통이 아니라 내 밑에서 꿈틀거리는 무한한 신비의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었다. 입과 코와 귀를 전부 보스포루스의 물에 담그면 내 마음속에 있는 균형과 행복의 진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다에 취한 채 헤엄쳐 갈 때면 배의 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그러면 나는 퓌순에게 깊은 연민 또한 느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사랑의 고통에는 그녀에게 느끼는 분노와 아픔고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29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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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어느 날 형 오스만이 사무실로 찾아와 나를 꾸짖으며 자신이 중재해서 시벨을 달래 보겠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소문들 --내가 미쳤고, 스스로를 밤의 유흥에 내던졌으며, 파티흐에 있는 비밀 종단의 일원이며, 더 나아가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투사들처럼 무허가촌에서 산다-- 이 들려왔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도리어 퓌순이 내가 파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해서, 숨어 있던 곳에서 소식을 보내올 거라고 생각했다. 병이 나을 거라는 희망도 버렸다. 회복하기보다는 고통을 만끽하고, 이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니샨타쉬의 주황색 거리를 돌아다녔으며, 일주일에 네다섯 번 멜하메트 아파트에 가서 물건들과 퓌순에 대한 추억 속에서 평온을 찾았다. 시벨과 약혼하기 이전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니샨타쉬에 있는 집에서, 그곳의 내 방에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파혼한 것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나쁜 소식을 “아주 무기력하고 말랐다.”라고 했던 아버지에게는 감춘 채, 거의 금기처럼 된 이 문제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만나 점심을 먹으며 자주 찾아갔고, 조용히 식탁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살지는 않았다. 니샨타쉬 집의 어떤 부분이 배의 통증을 커지게 했기 때문에 밤에는 거기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3월 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P339-340)


그날 괴로워한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퓌순이 장례식에 오지 않아서였는지를 묻는다면, 사랑의 고통은 총체적인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진정한 사랑의 고통은, 우리 존재의 가장 중요한 지점에 자리 잡고, 우리의 가장 약한 지점을 부여잡아, 다른 고통과 깊게 연결되어 절대 저지할 수 없는 형태로 몸과 삶에 퍼져 나간다. 만약 절망적인 사랑에 빠졌다면, 아버지를 여의는 것부터 가장 평범한 불운까지, 예를 들면 열쇠를 잃어버리는 것까지, 모든 것-다른 고통, 고민, 불안-이 언제 어느 때고 다시 부풀어 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진짜 고통의 기폭제가 된다. 나처럼 사랑 때문에 삶이 모두 뒤죽박죽되어 버린 사람은 사랑의 고통이 끝나야 다른 고민도 해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자기도 모르게 더 깊게 만들어 버린다.

아버지를 묻고 난 후 택시를 타고 가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사랑이 가져다준 고통은 내 영혼을 단련하여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정신을 완전히 장악한 채 성숙한 이성이 활약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처럼 오랫동안, 그것도 파멸을 가져올 정도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논리를 고집하고, 결국 좌절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어떤 행동을 고수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더욱더 분명히 느끼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성은 최악의 날에도 절대 침묵하지 않으며, 열정의 힘에는 대항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행동이 사실 대부분은 사랑과 고통을 커지게 할 뿐이라고 정직하고 매정하게 속삭인다. 퓌순을 잃은 후 아홉 달 동안, 내 이성의 속삭임은 점점 더 강해지고 커졌고, 언젠가는 내 이성을 장악하여 나를 고통에서 구해줄 거라는 희망까지 안겨 주었다. 하지만 희망(언젠가는 병에서 구원될 거라는 희망일지라도)과 뒤섞인 사랑은 고통을 연장시키면서도, 그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 힘을 주었다. (P346-347)


“어서 와요. 케말 씨.”

그의 아버지가 층계참에서 이렇게 말하며 나를 맞았다. 일 년 전 약혼식에서 타륵 씨를 만났다는 걸 잊어버리고는, 옛날 희생절 식사 이후로 그를 한 번도 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추해졌다기보다는, 여느 노인들처럼 희미한 존재가 돼 버린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퓌순의 언니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버지 뒤에 퓌순을 닮은, 하지만 머리칼이 검은 어떤 아름다운 여자가 문턱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검은 머리의 여자가 퓌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퓌순의 머리가 검은색이었던 것이다. 나는 침착해지려고 애를 쓰며 ‘그래, 진짜 머리색이지.’라고 속으로 말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계획한 대로 그녀의 부모님은 신경 쓰지 않고 장미를 건네며 그녀를 껴안으려 했는데,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과 주저하는 몸짓을 보고는 퓌순이 나와 껴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악수를 했다.

“어머, 정말 예쁜 장미꽃이네!”

하지만 내 손에서 장미꽃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그렇다. 물론, 그녀는 아주 아름다웠고 성숙한 모습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재회의 장면과는 반대의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불안해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그녀는 내 품에 있는 장미를 방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녀가 가리킨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뚱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이 청년을 다른 날에 초대하면 안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이미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케말 오빠, 소개할게, 내 남편 페리둔이야.” (P357-358)


사랑의 고통이 약간 가벼워질 때면 그 자리를 다른 것, 즉 모욕의 고통이 차지했다. 내가 고통을 겪지 않도록 퓌순이 조심하고,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만한 주제와 상황은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던진 잔인한 그 마지막 말을 듣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처음에는 내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반복되는 그 말(“정말로 오빠가 돈을 대서.... 우린 이제 지쳤어.”)을 퓌순이 내뱉은 적이 없는 것처럼(마치 내가 귀머거리인 양)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중얼거렸던 말(“정말이야?”)은 내가 그녀의 말을 들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불쾌한 일은 전혀 없다는 듯 행동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내가 기분이 상했다는 것 --그러니까 모욕을 당한 걸 내가 안다는 것-- 은 부루퉁한 내 얼굴에서 즉시 읽어 낼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이다병을 들고 돌아와서 내 자리에 앉았지만, 머릿속에서는 그 모욕적인 문장이 계속 되풀이되었다. 너무 괴로워서 겨우 움직였다. 모욕적인 것은 그런 말 자체가 아니라, 내가 수치스러워하고 그래서 화가 났다는 것을 퓌순이 분명히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P408-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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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케스킨 씨네 집에 간 것은 단지 퓌순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공기를 호흡하며 살고 있는 세계에서 잠시나마 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나는 팔 년 동안 서서히 깨달았다. 이 세계의 기본적인 특징은 ‘시간 밖’에 있다는 것이었다. 타륵 씨가 아내에게 “시간을 잊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였던 것이다.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케스킨 씨 가족의 오래된 물건들, 특히 고장 나고 녹슬고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은 자명종과 손목시계를 보면서, 어떻게 자기들끼리 그들만의 시간을 만들었는지 봐 주었으면 한다. 이 ‘시간 밖’의 세계에서, 나는 퓌순과 그녀의 가족과 함께 그곳의 공기로 숨을 쉬었다.

이 ‘시간 밖’의 공간 외에,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에진을 통해 깨닫는 ‘공식적인’ 시간이 있었다. 지금이 몇 시인지 깨닫는 것은 바깥 세계와 우리의 관계를 조정하는 의미인 듯 느껴졌다.

퓌순은 시간을 꼭 지키며 살거나 직장이나 약속에 맞춰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치 은퇴한 공무원인 자신의 아버지처럼, 앙카라에서, 국가가 자신에게 보내는 특별한 신호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시계를 맞추는 것 같았다. 화면에 나타난 시계를 보는 시선은, 텔레비전 방송이 끝나는 시간에 화면에서 애국가와 함께 나타나는 국기를 보는 시선과 비슷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막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을 때 혹은 텔레비전을 막 끄고 저녁을 마감하려고 할 때, 우리와 똑같이 하고 있는 수많은 가족들의 존재, 민족이라는 집단, 국가라는 권력의 힘, 자신의 왜소함을 느꼈다. 이 공식적인 시계(가끔 라디오에서는 ‘나라 시간 맞추기’라고 했다.) 국기, 아타튀르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볼 때도 무질서하고 규율 없는 집 안에서의 삶은 국가의 공식성 바깥에 있다고 느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지금’이라는 하나하나의 순간들과 ‘시간’을 구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자처럼, 이 하나하나의 순간은 나뉘고 쪼개질 수 없다. 시간은 이런 나뉠 수 없는 순간들을 합친 선이다. 시간은, 즉 지금을 결합시킨 선은, 타륵 씨가 아무리 ‘잊어라’라고 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바보나 기억이 없는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완전히 잊을 수 없다. 우리 모두 그저 행복하기 위해 시간을 잊으려고 애를 써 볼 뿐이다. 퓌순에 대한 사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추쿠르주마에 있는 집에서 보낸 팔 년의 시간에 의거한 나의 생각이 우습게 보이더라도, 독자들은 ‘시간’을 잊는 것과 시계나 달력을 잊는 것을 혼동하지 않기 바란다. 시계와 달력은 잊어버린 시간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회를 정돈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또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매일 밤 뉴스 시작 전에 화면에서 흑백 시계를 보면서, 다른 가족들, 다른 사람들, 그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런 일들을 조정해 주는 시간을 상기한다. ‘시계’가 아니라, 퓌순은 텔레비전에 나타난 시간을 보면서, 손목시계가 초까지 딱 맞았기 때문에, 혹은 시계를 조절해서 ‘정확히 맞게’ 맞추었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시간’을 기억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았던 삶은 ‘시간’,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금이라는 순간들이 결합한 선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 일이 무척 고통스럽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P429-431)


1980년 9월 12일 군사 쿠테타 이후, 저녁 10시로 통행금지가 선포되었기 때문에,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고민에도 한계가 생겼다. 하지만 그 고민이 계엄령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아주 짧은 시간의 조각 속에 꽉 끼어서 응축되었을 뿐이었다. 통행금지가 내려지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위기감은 9시 30분부터 심해졌고, 매 순간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지금 일어날 거야!’라고 격렬하게 말했음에도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가까워져 숨 돌릴 순간조차 남지 않았고, 10시 20분 전쯤이면 다급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드디어 거리로 나가 시보레에 몸을 던지면, 채틴과 함께 통행금지 시간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지 마음이 급해졌다. 우리는 매번 사오 분 늦었다. 군인들이 10시(나중에는 11시로 연기되었다.) 직후에는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세우지 않았다. 탁심 광장, 하르비예, 돌마바흐체에서 통행금지 시간 직전에 미친 듯이 속력을 내다 사고가 난 차들이 보였고, 자동차에서 나와서 치고 받고 싸우는 운전자들도 있었다. 한번은 돌마바흐체 궁전 뒤에서, 푸른 연기가 나는 플리머스 자동차에서 개를 데리고 나오는 술 취한 신사도 봤다. 탁심에서 정면으로 들이박는 사고가 난 후 라디에이터가 터져 버린 택시가 자알로울루 목욕탕처럼 김과 연기 속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어둡고 텅 비어 어슴푸레한 거리가 두렵게 보였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잔 마시면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를 신에게 애원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진정 그 사랑에서, 퓌순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다. (P469-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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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들의 힘은 그 안에 쌓인 기억만큼이나 우리의 상상과 기억력의 추이(推移)와도 연관되어 있다. 다른 때라면 전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저 평범하다고 여겼을 바구니 속에 든 이런 에디르네 비누나 비누로 만든 포도, 모과, 살구, 딸기는 톰발라 선물이었기 때문에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에 마음속 깊이 느꼈던 평안함과 행복감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케스킨 씨네 집의 식탁에서 보냈던 마법적인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우리 삶의 겸손한 음악을 연상시켰던 것도 기억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내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 물건들과 마주하는 관람객들도 그렇게 느끼리라고 진심으로 순수하게 믿는다.

나의 이런 믿음에 대한 또 다른 예로, 그 시절의 새해 복권을 전시한다. 네시베 고모도 우리 어머니처럼 12월 31일 밤에 추첨하는 복권을 사서 톰발라 선물 사이에 넣곤 했다. 누군가 톰발라 상품으로 복권을 따면,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은 우리 집뿐만 아니라 케스킨 씨네 집에서도 모두 함께 똑같은 말을 해 주었다.

“야, 오늘 밤 아주 운이 좋네요..... 복권 추첨에서도 당첨될 테니 두고 봐요.” (P482-483)


하지만 ‘행복’은 충분한 단어가 아니다. 그 뒷방에서 경험한 시(詩)를, 그 사오 분이 내게 부여한 깊은 충족감을 다르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시간이 멈추어, 모든 것이 영원히 그대로 있을 거라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 바로 옆에는 안도감, 지속성, 그리고 집에 온 듯한 기쁨이 있었다. 또 다른 쪽에는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마냥 단순하고 좋은 곳이라는 믿음, 더 수사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세계관이 있었다. 물론 이런 평온함에는 퓌순의 얼굴, 그녀의 우아한 아름다움,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사랑이 자양분이 되었다. 뒷방에서 그녀와 사오 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행복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있던 공간, 그 방 덕분에 이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푸아예에서 그녀와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역시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종류의 행복일 것이다.) 장소와 공간 그리고 정신 상태와 관련된 이런 안정감은, 내가 주위에서 보았던 것들 --천천히 완성되어 가는 퓌순의 새 그림, 바닥에 깔린 벽돌색 우샤크산(産) 카펫, 천 조각, 단추, 날짜가 지난 신문, 타륵 씨의 독서용 안경, 재떨이, 네시베 고모의 뜨개질 도구-- 과 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나는 방의 냄새를 들이마셨고, 방에서 나가기 전에 골무나 단추나 실패를 주머니에 넣었는데, 이후 이것들은 멜하메트 아파트에 있는 방에서 내게 기억을 상기시키며 행복을 연장해 주곤 했다. (P526-527)


그렇다. 기사에 나온 많은 부분이 독자들도 아는 바대로 사실과 달랐다. 나는 퓌순을 유명한 영화배우로 만들기 위해 시벨과 파혼한 것이 아니다....... 페리둔에게 시나리오를 쓰라고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아주 세부적인 것들이다. 신문을 읽은 사람들과 입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아주 단순한 사실이었다. 나는 사랑에 빠졌고, 퓌순을 위해 했던 일들 때문에 파렴치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모두들 내게 손가락질을 하고 나의 모습을 비웃었으며, 선의를 지닌 사람들은 나를 동정했다. 이스탄불 상류 사회가 좁다는 것, 모두들 서로 알고 지낸다는 것, 그들이 아주 대단한 재산가도 아니며 회사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과 꼭 지키고 있는 원칙이나 이상도 전혀 없다는 것이 나의 수치스러움을 경감해 주지는 않았고, 반대로 나의 무능함과 멍청함을 확대하고 있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집안의 자녀로 태어난 것과 같은 행운을, 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드물게 선사하는 그 행운을, 젊잖게 그리고 행복하게 제대로 삶을 살아갈 기회를, 멍청함 때문에 놓쳐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퓌순과 결혼을 하고, 사업을 잘 이끌어 나가고, 많은 돈을 벌어서, 승리자처럼 상류 사회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와 같은 행복의 계획을 실현할 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나는 ‘상류 사회’라는 그 집단을 혐오했다. 게다가 신문에 나온 기사 이후에는 케스킨 씨네 집의 분위기도 나의 상상과는 전혀 다를 거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P544-545)


1979년 말, 최악의 시간을 보낸 그 우울한 몇 달 동안, 나는 케스킨 씨의 집에서 물건을 가장 많이 훔쳤다. 이제 이 물건들은 내가 살았던 순간의 표시, 그 아름다운 순간을 연상시키는 물건을 넘어, 그 순간의 일부가 되었다. 예를 들면, 순수 박물관에 전시한 성냥갑들..... 이 성냥갑들 하나하나에 퓌순의 손이 닿았고, 그녀 손의 향기, 희미한 장미수 향기가 배어 있었다. 박물관에 전시한 다른 모든 물건들처럼, 나중에 멜하메트 아파트에서 이 성냥갑 하나하나를 만져 보면, 퓌순과 같이 식탁에 앉아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의 희열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냥을 식탁에서 집어 모르는 척하며 주머니에 넣을 때 느꼈던 행복에는 또 다른 면도 있었다. 집착적으로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서, 작지만 어떤 일부를 떼어 내는 행복이었다.

물론 무언가를 ‘떼어 내가’라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의 숭배할 만한 몸의 일부를 떼어 낸다는 의미이다. (P55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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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스킨 씨네 집 식탁에 앉아 있던 팔 년 동안, 나는 퓌순이 피운 4213개의 담배꽁초를 가져와서 모았다. 한쪽 끝이 퓌순의 장미꽃 같은 입술에 닿고, 입속으로 들어가고, 입술에 닿아 젖고(가끔 필터를 만져 보았다.) 입술에 바른 립스틱 때문에 붉은색으로 멋지게 물들어 있는 이 담배꽁초 하나하나는, 깊은 슬픔과 행복한 순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특별하고 은밀한 물건들이다. 퓌순은 구 년 동안 언제나 삼순 담배를 피웠다. 케스킨 씨네 집으로 저녁을 먹으로 가기 시작한 직후 나도 말보로 대신 퓌순처럼 삼순 담배를 피웠다. 나는 말보로 라이트를 골목 사이에 있는 밀수 담배 장수나 복권 장수에게서 사곤 했다. 어느 날 밤 말보로 라이트와 삼순이 포만감을 주는 담배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퓌순은 삼순이 기침을 많이 나게 한다고 했고, 나는 미국인들이 연초 안에 알 수 없는 독성과 화학 물질을 넣어 말보로를 아주 해롭게 만들었다고 했다. 타륵 씨는 아직 식탁에 와 앉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각자의 담뱃갑에서 서로에게 담배를 권했다. (P585)


이렇게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던 느낌을 순수 박물관에서 보여 주려고 나는 무척 애를 썼다. 여기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다. a) 어떤 정신 상태. b) 세상에 대한 환상.

a) 꿈속에 있는 듯 느끼는 정신 상태는 술을 마시거나 대마초를 피울 때의 느낌과 약간 비슷하다. 하지만 차이도 있다. 마치 지금이 순간을, 현재를 완전히 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퓌순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마치 그 순간을 과거에 경험한 적이 있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그레이스 켈리의 영화나 다른 프로그램도 전에 본 것처럼 느껴졌다. 식탁에서의 대화는 항상 비슷했다. 하지만 그래서 생겨나는 느낌은 아니었다. 내가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 먼 곳에서 그 순간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나의 몸이 다른 사람의 몸이 되어 연극 무대에 올라 현재를 살고 있으면, 나는 약간 떨어져서 나 자신과 퓌순을 바라보았다. 내 몸은 오늘 이 순간에 있었지만, 내 정신은 먼 곳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그 순간은 내가 기억하는 순간이었다. 순수 박물관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내가 전시한 단추, 컵, 퓌순의 빗, 옛날 사진 같은 물건들을 볼 때, 지금 앞에 놓인 물건이 아니라 나의 추억인 듯 봐야만 한다.

b) 지금 이 순간을 기억처럼 사는 것은, 시간과 관련된 착각이다. 그리고 나는 공간과 관련된 착각도 느꼈다. 어렸을 때 어린이 잡지에 실렸던 ‘두 그림 사이에서 다른 점을 일곱 가지 찾으시오.’ 혹은 ‘둘 중 작은 것을 찾으시오.’ 같은 놀이(여기에 한두 가지를 전시했다.)에서 느꼈던 불안감이 이것과 가장 가까운 느낌일 것이다. 어렸을 때, ‘왕이 숨은 미로에서 출구를 찾으시오.’, ‘토끼가 숲에서 빠져나가려면 어떤 구멍을 통해야 할까요.’ 같은 게임들은 나를 불안하게도 했지만 즐겁게도 했다. 하지만 케스킨 씨네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간 지 칠 년 째로 접어들자, 퓌순네 식탁은 점점 재미가 줄어들어, 숨이 막히는 장소가 되었다. 그날 저녁 퓌순도 이것을 느낀 것 같았다. (P624-625)


“퓌순,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좀 봐. 화를 내고 싸우면서 삶을 망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이야.”

“당신은 이해 못 해.”

“뭘?”

“당신 때문이야. 난 내 인생을 살지 못했어. 케말. 난 배우가 되고 싶었어.”

“미안해.”

“미안하다는 게 무슨 말이야?”

그녀는 분노하며 물었다.

자동차와 그녀의 속도가 맞지 않아,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미안해.”

나는 그녀가 내 말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며 다시 소리쳤다.

“당신과 페리둔은 내가 영화에 출연하는 걸 일부러 방해했어.

그것 때문에 용서를 비는 거야?”

“파파트야처럼, 펠뤼르에 있는 주정뱅이 여자들처럼 되고 싶었던 거야, 정말로?”

“어차피 우리는 항상 술에 취해 있어. 게다가 난 절대 그들처럼 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너희들은 내가 유명해져서 너희들을 떠날까 봐, 질투심 때문에 날 집에 붙들어 두었어.” (P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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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우리가 경험한 행복의 끝에 왔다는 것을, 이것이 이 아름다운 세상과 이별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느꼈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플라타너스 나무를 향해 가고 있었다. 퓌순은 그것을 목표 삼아 달려갔던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나의 미래는 그녀와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를 가든 이제는 그녀와 함께일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다시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조심해!”라고 소리쳤다. 퓌순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듯, 사실 나는 지금 이 악몽에서 평범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다시 넘어가기 위해, 깨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소리쳤던 것이다. 퓌순은 조금 취해 있는 것 같았고, 나의 경고는 전혀 소용없었다. 시속 105킬로미터로 차를 달려 105년 된 플라타너스로 돌진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십오 년 된 아버지의 56년형 시보레는 전속력으로 길 왼편에 있는 플라타너스에 부딪혔다.

플라타너스 나무 뒤에는 해바라기밭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 있는 건물은 케스킨 씨네 식탁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사용했던 바타나이 해바리기유를 생산하는 작은 공장이었다. 사고 직전,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달릴 때, 퓌순과 나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몇 달 후, 고물이 돼 버린 시보레를 찾았을 때, 부품 하나하나를 만져 보면서, 내가 꿈속에서 보았던 것들을 기억했다. 사고 직후, 퓌순과 나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퓌순은 자신이 죽어 간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이 초, 삼 초 동안, 죽고 싶지 않다고, 매 순간 삶에 애착을 가졌다고, 자신을 구해 달라고 애원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도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 생기 있는 나의 아름다운 약혼녀에게, 내 인생의 연인에게, 다른 세계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쁨을 담아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병원에 누운 채 많은 시간을 보낸 후에도 기억나지 않았고, 그저 다른 사람들의 말, 보고서, 몇 달이 지난 후 사고 현장에 찾아가서 만난 목격자들로부터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퓌순은 충돌하고 육칠 초 후에, 가슴을 뚫고 들어온 운전대와 깡통처럼 찌그러진 자동차에 끼어 죽었다. (P717~718)


파리에서 박물관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멜하메트 아파트에 있는 나의 수집품을 부끄러워하던 마음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더 이상 자신이 모은 물건들을 부그러워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자부심을 가진 수집가로 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영혼에 나타난 변화를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박물관에 들어가면 행복하다고 느꼈으며, 나의 이야기를 물건들을 통해 설명하는 상상만 해 보았다. 어느 날 밤 오텔 드 노르의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주위에 있는 외국인들을 보다가, 외국에 나간 (그리고 약간 교육을 받고, 약간 돈이 있는) 많은 튀르키예인들처럼, 이 유럽인들이 나에 대해, 나아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스탄불, 나샨타쉬, 추쿠르주마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퓌순에게 느꼈던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먼 나라에 가서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보낸 사람처럼 나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마치 내가 뉴질랜드에서 원주민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들의 일, 휴식, 놀이(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누는 이야기), 습관, 관습을 관찰하다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나의 관찰과 내가 경험한 사랑이 서로 뒤얽혔다.

마치 인류학자처럼 내가 모은 식기, 자질구레한 장신구, 옷, 그림 같은 물건들을 전시한다면, 내가 살았던 세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729)


마드라스의 포트 세인트 조지 박물관은 영국인들이 인도에 처음 만든 요새에 자리 잡고 있다. 지독하게 덥고 습한 날, 머리 위로 커다란 선풍기가 돌아가고, 편지와 유화, 동전 등 일상 용품들이 전시된 그곳에서도 나는 그런 행복을 느꼈다. 베로나에 있는 카스텔베키오 박물관 안을 돌아다니고, 계단을 올라가고,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의 조각상 위에 비단처럼 떨어지는 빛을 보면서, 박물관에 전시된 수집품들만이 아니라, 그림이나 물건이 조화롭게 전시되어 있는 것 자체가 순수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처음으로 분명히 깨달았다. 하지만 베를린에 있는 물건 박물관(마르틴 그로피우스 빌딩에 자리 잡았지만 나중에는 갈 곳이 없어진)은 나에게 다른 방식으로 이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즉, 정반대의 것도 옳을 수 있다는 것, 감각과 위트가 있으면 무엇이든 모을 가치가 있다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모아야 한다는 것, 제대로 된 건물이나 박물관이 없더라도 우리가 모은 수집품들의 시(詩)가 바로 그 물건들의 집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았던 카라바조의 <이삭의 희생>이라는 그림을 대하자, 이 그림을 퓌순과 함께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다음에는 아브라함의 희생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가장 사랑했던 것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모아 온 퓌순의 물건에 내가 이렇게 애착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런던에 갈 때마다 존 손 경 박물관에 찾아가서, 몇 시간이고 혼자 어느 구석에 앉아 도시의 울림을 들었으며, 언젠가 퓌순의 물건도 이렇게 전시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나의 사랑하는 연인이 천사들의 왕국에서 내게 미소 지을 거라고 생각하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퓌순이 남긴 물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장 잘 가르쳐 준 곳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프레데릭 바레스 박물관의 맨 위층에 있는 감상적인 컬렉션으로, 머리핀과 귀고리, 트럼프, 열쇠, 부채, 향수병, 손수건, 브로치, 목걸이, 가방, 파지 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P73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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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세계 여행을 하고 이스탄불에서 경험한 것을 통해 두 종류의 수집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수집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며 그것을 전시하고 싶다는 자부심을 지닌 사람들.(보통 서구 문명에서 발견된다.)

2. 물건들을 모아서 한구석에 쌓아 두고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사람들.(현대성과는 괴리가 있는 상황이다.)

자부심을 지닌 사람들은 수집한 물건들의 자연적인 결과가 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수집이란, 처음 시작한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결국은 자랑스럽게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작지만 특별했던 미국 박물관들의 공식적인 역사에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다. 예를 들면 음료 용기와 광고 박물관 팸플릿에는, 어린 시절 어느 날 톰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땅에서 첫 사이다 깡통을 주웠고, 그다음에는 다른 것을, 그리고 또 그다음에는 세 번째로 다른 것을 주웠고, 그것들을 모두 모았으며, 시간이 지난 후에 사이다 강통들을 ‘모두 모아’ 박물관에서 전시하게 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P739)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오면, 먼저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내가 본 박물관에 대해 설명한 다음, 소설이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지 물었다.

“일인칭 시점으로 쓰고 있습니다.”

오르한 씨가 말했다.

“무슨 말이죠?”

“당신 자신이 당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지요, 케말 씨. 요즈음 저를 당신 위치에 놓고, 당신이 되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런 사랑을 해 보았습니까, 오르한 씨?”

“흠……. 우리의 주제는 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한동안 작업을 한 후, 박물관의 지붕 층에서 라크를 마셨다. 퓌순과 내가 겪은 일들을 설명하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그가 돌아간 후, 예전에 퓌순과 사랑을 나누었던(이미 이십오 년 전에) 침대에 누워, 내 입으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이상하게 여겨지던 부분을 생각해 보았다.

그 책은 나의 이야기로 남을 것이고, 그가 그 이야기를 정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가 나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 나간다는 점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일종의 무력감이나 나약함과 같은 느낌이었다. 관람객들에게 물건들을 보여주며 내가 나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졌고, 게다가 내 박물관이 완성되어 오픈될 것이며, 이미 그렇게 했다고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르한 씨가 자신을 내 위치에 놓는 것, 나의 소리 대신 그의 소리가 들리는 것에 짜증이 났다. (P755)


“나의 박물관에서는, 전시실 어디에서도 모든 수집품들과 진열장들, 그 모든 것이 보인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오르한 씨, 모든 곳에서 동시에 모든 물건들, 그러니까 내 모든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잊을 겁니다. 삶에서 가장 커다란 위안은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본능으로 만들어지고 정렬된 시적인 박물관에서 사랑하는 옛날 물건들을 만나서가 아니라,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에 위안을 얻는 겁니다. 이것도 책에 써 넣으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당신에게 이 책을 쓰게 했고, 당신도 그것을 어떻게 썼는지를 숨기지 맙시다...... 우리 책의 초고와 공책도 일이 끝나면 내게 주세요. 전시하겠습니다. 얼마나 더 걸릴까요? 책을 읽은 사람들은 퓌순의 머리카락과 옷, 모든 것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당신처럼-- 오고 싶어 할 겁니다. 소설 끝에 지도를 그려 넣어, 궁금한 사람들이 이스탄불 거리를 걸어 우리 박물관으로 찾아올 수 있게 해 주세요. 퓌순과 우리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거리를 걸으며 이스탄불 풍경을 볼 때마다, 내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기억할 겁니다. 우리 책을 읽은 사람들은 무료로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책에 입장표를 넣는 것이 좋겠습니다. 문 앞에 있는 안내인은 책을 들고 오는 사람들의 표에 순수 박물관의 특별한 도장을 찍고 안으로 들여보낼 겁니다.” (P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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