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 파트1> 2021년
프랭크 허버트가 집필한 1965년작 소설로 듄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그는 개간 중인 오리건주 해안가의 사막지역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린 작품으로 몇 년간의 조사 끝에 집필했다. 출판되고 난 뒤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듄>, <듄의 메시아>, <듄의 아이들>, <듄의 신황제>, <듄의 이단자들>, <듄의 신전> 6부작이다.
<듄: 파트2>(2024)
처음이란 균형을 맞추는 데 가장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시간이다. 베네 게세리트의 자매들은 모두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앗딥의 생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무앗딥은 패디샤 황제 샤담 4세의 재위 57년에 태어났다. 그다음에는 무앗딥이 속했던 곳이 바로 아라키스 행성이라는 사실에 가장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가 칼라단에서 태어나 열 다섯 살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는 사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행성 아라키스가 영원히 그가 속한 곳이다.
-이룰란 공주의 <무압딥에 대한 안내서> (P7)
‘곰 자바라는 게 아라키스로 가기 전에 내가 알아두어야 하는 그곳의 어떤 물건인가?’
폴은 그녀가 했던 이상한 말들을 소리 없이 되뇌어보았다. ‘곰 자바..... 퀴사츠 해더락.’
지금까지도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라키스는 칼라단과 아주 다른 곳이기 때문에 폴의 머릿속에는 아라키스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소용돌이처럼 엉켜 있었다. 아라키스, 듄, 사막의 행성.
아버지의 암살단 단장인 투피르 하와트는 이렇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불구대천 원수인 하코넨 가문은 80년 동안 아라키스에 머물면서 초임 사와의 계약에 따라 노화를 막는 스파이스 인 멜란지를 채취하기 위해 그곳을 준(準) 영지로 삼았다. 그런데 이제 하코넨 가문은 떠나고 그 자리에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들어서서 그곳을 완전한 영지로 삼을 작정이었다. 보기엔 레토 아트레이데스 공작의 승리였다. 하지만 하와트는 이런 겉모습 속에 지극히 치명적인 위험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레토 공작이 랜드스라드의 대가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기가 좋은 사람은 권력자들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죠.”
하와트는 그렇게 말했다.
아라키스, 듄, 사막의 행성. (P9)
그는 ‘공포에 맞서는 기도문’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베네 게세리트의 기도문이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
그는 마음이 다시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말했다. “빨리 해버리세요, 할머니.”
“할머니라고!” 그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네가 용감한 아이라는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구나. 뭐, 두고 보면 알겠지. 이 녀석.” 그녀는 몸을 수그려 폴에게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거의 속삭이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상자 안에 있는 손에 고통을 느끼게 될 거다. 고통 말이다. 하지만! 손을 빼면 내가 곰 자바로 네 목을 찌르지. 사형 집행인이 도끼를 내리칠 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을 맞을 거다. 손을 빼면 곰 자바가 널 찌른다. 알겠느냐?”
“상자 안에는 뭐가 있죠?”
“고통.” (P17)
“왜 인간을 가려내기 위한 시험을 하는 거죠?” 그가 물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려고.”
“자유라고요?”
“옛날에 사람들은 생각하는 기능을 기계에게 넘겼다. 그러면 자기들이 자유로워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기계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노예로 삼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인간의 정신을 본뜬 기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폴이 경전의 말을 인용했다.
“버틀레리안 지하드와 <오렌지 가톨릭 성경>에서 나온 말이구나.” 대모가 말했다. “하지만 사실 <오렌지 가톨릭 성경>에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인간적인 정신을 위조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희 집에서 일하는 맨타트를 연구해 본 적이 있느냐?”
“전 투피르 하와트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와 함께 공부해요.”
“대반란은 우리가 기댈 언덕을 없애버렸지.” 대모가 말했다. “그 때문에 인간적인 정신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적인 재능을 훈련시키기 위한 학교도 만들어졌고.”
“베네 게세리트 학교 말인가요?” (P22-23)
“난 아라키스의 폭풍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어요.”
“아, 폭풍요.”
“아주 심한 것 같아요.”
“심하다는 말은 너무 점잖은 표현인데요. 아라키스의 폭풍은 6,7000킬로미터의 평지에 걸쳐 생성되어서 자신을 앞으로 밀어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이용합니다. 전향력, 다른 폭풍들, 그밖에도 에너지를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지요. 폭풍은 최고 시속 700킬로미터로 불어닥치면서 길목에 널린 것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들입니다. 모래, 흙먼지, 그밖에 여러 가지 것들이죠. 심지어는 뼈에서 살점을 발라내고 뼈를 가느다란 조각으로 쪼개버리기도 합니다.”
“기후 조절 시스템을 사용하면 되잖아요.”
“아라키스에는 특별한 문제가 있습니다. 비용도 더 많이 들고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문제죠. 우주 조합은 기후 조절 위성에 엄청난 가격을 매겨놓았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의 가문은 아주 부유한 편이 아니에요. 도련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프레멘을 본 적 있어요?”
‘오늘 이 아이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군.’ 하와트가 생각했다.
“물론 본 적이 있죠. 열곡(裂谷)이나 저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흘러내릴 듯한 커다란 로브를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폐쇄된 공간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악취를 풍기죠. 그건 그들이 입고 있는 옷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막복이라고 부르는 그 옷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수분을 재활용하거든요.” (P54-55)
“그러면 우리는 왜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죠?”
“폴!” 공작은 아들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함정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함정을 피하는 첫걸음이다. 이건 일 대 일 전투와 같아. 다만 규모가 클 뿐이지. 속임수 안에 속임수가 있고, 그 안에 또 속임수가 있고..... 도대체 속임수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 우리 임무는 그걸 밝혀내는 거다. 하코넨이 멜란지를 대량으로 비축해 놓았다는 걸 알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어. 그 밖에 또 누가 사재기를 하고 있을까? 그렇게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적이다.”
“그게 누군데요?”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알고 있던 가문들과, 우리에게 호의적이라고 생각했던 가문들 중 일부,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훨씬 더 중요한 적이 있으니까. 우리의 친애하는 패디샤 황제 말이다.” (P81-82)
“공작이 이곳으로 데려올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려진 후에 물을 둘러싼 폭동이 여러 번 일어났어요. 우리가 새로 늘어나는 사람들이 쓸 물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 바람덫과 응집기를 설치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다음에야 폭동이 멈췄죠.”
“이곳에 있는 물의 양은 제한적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와서 제한된 양의 물을 마셔버린다면 물값이 오르고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버리라라는 것을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작님은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폭동이 일어났다고 해서 여기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공작님께 적의를 보일 거라고 볼 수는 없어요.” 그가 말했다.
“그럼 경비병들은요? 어딜 봐도 경비병들이 있어요. 방어막도 설치돼 있고요. 어딜 봐도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방어막을 볼 수 있어요. 칼라단에서는 이렇지 않았어요.”
“이 행성에 기회를 줘봅시다.” 그가 말했다.
그러나 제시카는 매서운 눈으로 계속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곳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나요. 하와트는 이곳으로 미리 수많은 부하들을 보냈죠. 밖에 있는 경비병들도 그의 부하예요. 짐꾼들도 그렇고, 우리 금고에서 커다란 액수의 돈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빠져나갔어요. 그게 뜻하는 것은 한 가지뿐이에요. 고위층에 뇌물을 뿌렸다는 거죠.”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투피르 하와트가 가는 곳에는 죽음과 기만이 뒤따른다.”
“그 사람을 헐뜯지 마세요.”
“헐뜯는다고요? 칭찬하는 거예요. 이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죽음과 기만뿐이에요. 난 단지 투피르가 쓰는 방법들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는 것뿐이에요.” (P116-117)
‘뭐, 거니가 여기서는 떨어져 내리는 모래를 수없이 보게 되겠군.’
달빛이 내려앉은 절벽 너머는 사막이었다. 불모의 바위와 모래언덕,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 아무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메마른 황무지, 그리고 그 사막의 가장자리를 따라 프레멘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살고 있었다. 어쩌면 그 전체에 흩어져 있을지도 몰랐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아마 프레멘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하코넨이 그 사악한 음모로 프레멘에게까지 물들이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의 얘기였다.
‘그놈들이 내 아들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어!’
금속이 긁히는 듯한 소리가 관제탑 전체에 울리면서 팔 밑의 난간이 진동했다. 그의 눈앞으로 방폭 셔터가 내려오면서 시야를 가렸다.
‘왕복선이 들어오고 있는 모양이군. 내려가서 일할 시간이야.’ 그는 위쪽 계단으로 돌아서서 아래층의 커다란 회의실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람들을 맞이하기에 적합한 표정을 하려고 애썼다.
‘그놈들이 내 아들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어!’ (P146-147)
“칼라단에서 우리는 해군과 공군을 이용해서 지배했다. 이곳에서는 사막에서 활동할 수 있는 군사력을 긁어모아야 해. 그게 네가 받을 유산이다. 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가 어떻게 될지. 그렇게 되면 넌 변절자가 아니라 게릴라가 될 거다. 언제나 쫓기면서 도망치는 게릴라 말이야.”
폴은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가 이렇게 의기소침해 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라키스를 내 것으로 유지하려면 때로 자신이 경멸스러워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는 착륙장 가장자리의 깃대에 힘없이 매달려 있는 초록색과 검은색의 아트레이데스 깃발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명예로운 깃발이 수많은 사악한 것들의 상징이 될 수도 있어.”
폴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버지의 말 속에는 공허와 체념이 배어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가슴마저 공허해지는 것을 느꼈다.
공작은 주머니에서 피로 회복제를 꺼내 물도 없이 그냥 삼켰다. “힘과 공포, 이것이 통치의 수단이지. 네 훈련에서 게릴라 훈련에 새로이 중점을 두라고 지시해야겠다. 거기 있는 그 필름..... 사람들이 널 ‘마디’니 ‘리산 알 가입’이니 하고 부른 그 필름을 어쩌면 네 마지막 수단으로 이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폴은 아버지가 삼킨 알약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아버지의 어깨가 다시 똑바로 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여전히 공포와 의심에 대한 아버지의 말들이 남아 있었다. (P194-195)
“방어막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방어막이라고요?” 카인즈가 코웃음을 쳤다. “모래벌레가 사는 지역에서 방어막을 작동시키는 건 자살 행위입니다. 아주 먼 곳에 사는 놈들도 다른 벌레의 영역마저 무시하고 빌어막을 공격하려고 몰려드니까요. 방어막을 작동시킨 사람이 그런 공격을 이기고 살아남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그놈들을 무슨 방법으로 잡아들이는 거요?”
“모래벌레의 몸을 훼손시키지 않고 죽이려면 그놈들의 체절에 따로따로 고압의 전기 충격을 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놈들을 기절시킨 다음 폭발물을 이용해서 산산조각을 내버리는 방법도 있지만, 체절 하나하나가 자체적으로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자탄을 제외하면, 그렇게 커다란 벌레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폭발물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그놈들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지금까지 그놈들을 아예 쓸어버리려고 시도하지 않은 이유가 뭐죠?”
폴이 물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지역도 너무 넓고요.” 카인즈가 말했다.
폴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사람들의 음색을 통해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그의 초인식은 카인즈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만약 스파이스와 모래벌레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면, 모래벌레를 멸종시키는 순간 스파이스도 사라질 거야.’ (P215)
제시카는 자리에 앉아 베네 게세리트 학교에서 받았던 강의를 떠올리고 있었다. 강의 주제는 첩보 활동과 역(逆)첩보 활동이었고, 강사는 당시만 해도 통통한 몸집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대모였다. 대모의 쾌활한 목소리가 강의 주제와 이상한 대조를 이루던 기억이 났다.
‘첩보 활동 및 역첩보 활동을 가르치는 학교에 대해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어떤 학교든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서는 기본적인 반응 패턴이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담으로 둘러싸인 학교 안에서 시행되는 교육은 항상 학생들에게 특유의 패턴을 도장처럼 찍어놓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그 패턴을 쉽게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우선 동기 유발 패턴은 모든 첩보원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학교를 졸업하거나, 정반대의 목적을 갖고 있는 첩보원들에게서도 특정한 형태의 동기 유발 요인이 발견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분석을 위해 이 요소를 따로 식별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먼저 신문 패턴을 통해 신문자의 속마음을 알아냅니다. 그다음에는 분석 대상이 된 첩보원의 언어-사고 방향을 면밀히 관찰합니다. 억양의 변화와 대화 패턴을 통해 분석대상이 사용하는 언어의 뿌리를 당연히 아주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제시카는 아들과 공작과 손님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조합 은행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오싹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저 조합 은행의 대표는 하코넨의 첩자였다. (P252)
카인즈가 제시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라키스에 처음 온 사람들은 여기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겠지만, 여러분은 지금 ‘최소의 법칙’을 경험하고 계신 겁니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에서 상대를 시험하려는 의도를 읽었다. “여러 필수 요소 중 가장 적은 양으로 존재하는 것이 성장을 제한한다. 그리고 가장 나쁜 환경 조건이 성장률을 통제한다는 법칙 말이죠?”
“대가문에 속한 분들 중에 행성학의 법칙을 알고 계신 분은 아주 드뭅니다. 아라키스에서는 물이 없다는 게 생명체에게 가장 나쁜 환경 조건입니다. 아, 그리고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성장 그 자체가 나쁜 환경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셔야 합니다.” 카인즈가 말했다.
제시카는 카인즈의 말 속에 어떤 메시지가 숨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성장이라. 생명체에게 좀더 이로운 환경이 되면 아라키스에서도 규칙적인 물의 순환이 가능하다는 뜻인가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뷰트가 소리쳤다.
제시카는 뷰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불가능하다고요?”
“아라키스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이 몽상가의 말은 듣지 마세요. 지금까지의 실험에서 모두 그의 주장에 반대되는 결과만 나왔어요.” (P258-259)
폴은 오늘 밤 이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모든 것, 모든 과거가 모래시계 속에서 쏟아져 내리는 모래로 변해 버렸음을 느꼈다. 그는 천과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사막 텐트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지금 입고 있는 프레멘의 옷과 사막 텐트는 모두 오니솝터 안에 있던 꾸러미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행낭을 오니솝터 안에 넣어두고, 경비병들에게 오니솝터를 어디로 몰고 갈 것인지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유에.’
이제는 반역자가 된 유에는 폴과 제시카를 던컨 아이다호가 있는 곳으로 곧장 보내주었다.
폴은 사막 텐트의 투명한 부분을 통해 보이는 바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달빛에 그림자가 진 그 바위들은 폴과 제시카가 있는 곳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은 아이다호가 두 사람을 위해 마련해 준 은신처였다. (P349-350)
폴이 행낭의 뚜껑을 열고 소형 안내서를 꺼냈다. 책의 크기가 아주 작았기 때문에 작은 발광색인과 확대기가 딸려 있었다. 그의 눈앞에 초록색과 오렌지색 글자들이 나타났다. “리터존, 사막 텐트, 에너지 모자, 리캐스, 모래스노크, 쌍안경, 사막복 수리 행낭, 바라디 권총, 저지대 지도, 코마개, 파라컴퍼스, 창조자 작살, 모래 막대기, 프렘 행낭, 불기둥.......”
사막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이 너무 많았다.
이윽고 그는 안내서를 텐트 바닥 한쪽으로 치웠다.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제시카가 물었다.
“아버지는 사막 작전 능력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그 능력이 없으면 하코넨은 이 행성을 지배할 수 없어요. 하코넨은 전에도 이 행성을 지배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지배하지 못할 거예요. 사다우카가 1만 개 군단쯤 몰려와서 도와준다 해도 말이에요.”
“폴, 너 설마......”
“우린 이미 모든 증거를 갖고 있어요. 바로 이 텐트 안에, 이 텐트와 프렘 행낭, 행낭 안의 물건들, 그리고 이 사막복이 모두 증거예요. 조합이 기후 위성에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매겨놓았다는 건 우리도 이미 알고 있죠. 그리고.......”
“도대체 기후 위성이 지금 이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아무리.......” 제시카는 말을 멈췄다.
폴은 초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자신의 머리가 어머니의 반응을 살피면서 세세한 점까지 계산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어머니도 아시겠죠? 위성은 아래의 지상을 감시해요. 그런데 사막 깊숙한 곳에 절대로 감시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뭔가가 있는 거예요.”
“그럼 조합이 직접 이 행성을 통제하고 있다는 거니?”
아, 어머니의 머리 회전이 너무 느렸다.
“아니에요! 프레멘이에요! 프레멘이 자기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조합에 돈을 지불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 돈은 물론 사막 작전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물건, 즉 스파이스고요. 이건 추측만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아주 간단한 계산만 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라고요. 틀림없어요.” (P357-358)
“....폴이 행낭에서 파라컴퍼스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특수 용도로 만들어진 이 프레멘의 기계들을 보세요. 어디서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에요. 이제 인정해야 해요. 이런 물건을 만든 문명이라면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깊이를 갖추고 있을 거예요.”
제시카는 냉혹한 아들의 목소리를 여전히 걱정하면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려 아라킨 하늘에서 보이는 별자리 하나를 그려놓은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 별자리의 이름은 ‘무앗딥: 생쥐’였다. 별자리의 꼬리 부분이 북쪽으로 뾰족하게 나와 있었다.
폴은 어두운 텐트 속에서 안내서의 발광색인에서 나오는 불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어머니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어드릴 때가 됐어. 어머니가 슬픔에 잠길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지금 아버지의 말을 전해 드려야 해. 나중에는 슬픔에 잠길 여유가 없을 테니까.’ 자신이 이런 상황에서도 논리 정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P359)
두 사람은 달리기 시작했다.
‘계획 안에 또 계획이 있고, 그 안에 또 계획이 있고, 그 안에 또 계획이 있어. 이제 우리도 누군가가 마련한 계획의 일부가 된 걸까?’ 제시카는 속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은 화살표를 따라 요리조리 모퉁이를 돌고 측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갈림길들을 지나쳤다. 길은 한동안 내리막길이다가 곧 오르막길이 되었다. 그다음부터는 내내 오르막길이었다. 마침내 계단이 나타났다. 그 계단을 지나 모퉁이를 돌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벽이 나왔다. 벽 중앙에 달린 검은 손잡이가 보였다.
폴이 손잡이를 밀었다.
벽이 바깥쪽으로 회전하면서 열렸다. 갑자기 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바위를 쪼개 만든 동굴이 나타났다. 동굴 중앙에 오니솝터 한 대가 웅크리고 있었다. 오니솝터 뒤로 솟아 있는 평평한 회색 벽에 문의 표식이 붙어 있었다.
“카인즈는 어디로 갔을까?” 제시카가 물었다.
“그 사람은 훌륭한 게릴라 지도자다운 행동을 한 거예요. 일단 두 팀으로 갈라진 다음, 자기가 잡히더라도 우리가 있는 곳을 밝힐 수 없도록 한 것 말이에요. 그 사람도 우리 위치를 정확하게 모를 거예요.”
폴은 어머니를 이끌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서 먼지가 일었다. (P418)
'어머니는 모래 사태에 걸려서 그 안에 묻혀버린 거야.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해. 어머니가 바로 질식하지는 않을 거야. 산소 필요량을 줄이기 위해 빈두 가사 상태에 빠져 계실 테니까. 내가 어머니를 찾으려고 모래를 파헤치리라는 걸 알고 계실 거야.‘
폴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베네 게세리트 방법을 이용해서 정신없이 뛰고 있는 심장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마음을 비웠다. 지난 몇 분 동안 일어난 일을 차분하게 되새겨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기억 속에서 모래의 움직임이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그대로 재생되었다. 기억을 모두 떠올리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그의 마음은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상태를 유지했다.
이윽고 폴은 비탈을 따라 올라가면서 조심스럽게 모래 속을 더듬었다. 마침내 밖으로 휘어 있는 바위벽이 손에 잡혔다. 그는 또다시 모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모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천 조각 하나가 손에 들어왔다. 그 천 조각을 계속 따라가자 사람의 팔이 나왔다. 그가 팔의 윤곽을 따라 부드럽게 모래를 파헤치자 어머니의 얼굴이 밖으로 드러났다.
“제 말 들리세요?” 그가 속삭였다.
대답이 없었다.
그는 모래를 더 빨리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깨가 밖으로 나왔다. 그의 손 아래에서 그녀의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심장이 느리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빈두 가사 상태야.’ (P460)
폴이 여전히 등을 돌린 자세로 말했다. “이곳이 조용한 게 마음에 들어요.”
‘사람의 정신이 주변 환경에 스스로 어찌나 잘 적응하는지.’ 그녀의 머릿속에 베네 게세리트의 교훈 하나가 떠올랐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정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이다. 긍정적인 방향과 부정적인 방향. 인간의 정신이 하나의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해 보자. 부정적인 방향의 맨 끝에는 무의식이 있고, 긍정적인 방향의 맨 끝에는 초(超)의식이 있다. 훈련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정신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질지 결정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사는 것도 괜찮겠어요.’ 폴이 말했다.
제시카는 폴의 눈으로 사막을 바라보려고 애쓰며, 이 행성이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인 가혹한 환경을 포용할 방법을 찾았다. 폴이 본 미래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여기서는 뒤에서 누군가 내 목숨을 노리며 다가오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이 혼자 있을 수 있겠어.’
제시카는 폴을 지나 걸어가서 쌍안경의 오일 렌즈를 조정한 다음 사막 건너편의 절벽을 살펴보았다. 물이 없는 마른 골짜기에서 기둥선인장 등 가시 있는 식물들이 분명히 자라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연두색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풀들이 엉켜 있는 것도 보였다. (P484)
'분명히 근처에 내 프레멘들이 몇 명 있을 거야. 그들이 내 머리 위의 새들을 못 볼 리가 없어. 그러면 여기 혹시 수분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살펴보러 올 거야.‘
“아라키스의 대중은 우리가 이 땅을 물이 흐르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우리가 이 작업을 수행해내는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반쯤 신비주의적인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데 그칠 것이다. 또한 그 엄청난 질량비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서 우리가 물이 풍부한 다른 행성에서 물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믿어주는 한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 없다.”
‘조금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줘야겠어. 나를 도와줘야 하는 때에 거기 서서 강의만 하고 있다니.’
새가 카인즈의 손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왔다. 다른 매 두 마리가 첫 번째 놈의 뒤에 내려앉았다.
“우리 대중들 사이에서 종교와 법은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법에 불복종하는 행위는 종교적인 죄악이 되어 처벌받아야 해. 그러면 사람들을 더욱 순종적이면서 동시에 더욱 용감하게 만드는 두 가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개개인보다는 사람들 전체의 용맹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 사람들은 어디 있는 거야? 이렇게 필요한 때에.’ 카인즈는 몸에 남아 있는 힘을 다 동원해서 가장 가까이 있는 매를 향해 손을 손가락 하나 너비만큼 움직였다. 매가 펄쩍 뛰어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물러났고, 세 마리가 모두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몸을 곧추세웠다.
“우리가 짠 시간표에 따라 우리는 자연 현상과 비슷한 업적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행성의 생명은 단단하게 짜인 엄청난 크기의 천과 같다. 처음에는 우리가 조작하는 가공되지 않은 물리적 힘에 의해 식물과 동물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를 정립해 나가기 시작하면, 우리가 일으키는 변화 자체가 스스로의 상황을 통제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들에 대해서도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에너지 표면의 3퍼센트만 통제하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퍼센트뿐이다. 이 행성의 구조 전체를 자급 자족적인 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3퍼센트뿐이다.” (P507-509)
“당신이 사이야디나가 되는 거지. 우리 대모는 이미 늙었소.”
‘이들의 대모가 된다고!’
그녀가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전에 스틸가가 말했다. “내가 꼭 당신의 짝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오. 이건 개인적인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소. 당신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이오. 하지만 당신이 나의 여자들 중 하나가 된다면, 우리 젊은이들 중에 내가 육체의 쾌락에만 너무 신경을 쓰고 부족의 복지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날지도 모르오. 지금도 그들은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소.”
‘이 사람은 자신의 결정을 이리저리 재보고 그 결과를 생각할 줄 알아.’ 제시카는 생각했다.
“우리 젊은이들 중에 정신이 무모해지는 나이에 도달한 녀석들이 있소. 우리는 그들이 이 시기를 차분하게 통과할 수 있게 해줘야 하오. 그들이 내게 도전할 그럴듯한 이유들을 내 주위에 남겨놓지 말아야 하지. 그들이 도전해 오면 난 그들을 불구로 만들거나 죽여야 할 테니까. 이건 지도자로서 적절한 행동이 아니오. 그건 도전을 명예롭게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말이오. 당신도 알겠지만, 부족을 어중이떠중이들의 무리와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지도자요. 지도자는 집단에 속한 개인들의 숫자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지. 개인들의 숫자가 너무 적으면, 부족은 어중이떠중이들의 무리가 되오.”
이 말과 그 속에 담긴 사고의 깊이, 그리고 이 말이 그녀뿐만 아니라 몰래 두 사람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그를 다시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에게는 위엄이 있어. 이렇게 내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도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우리가 지도자를 고르는 방법을 규정하고 있는 법은 그냥 법일 뿐이오. 하지만 부족이 항상 정의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성장하고 번성할 시간. 우리의 힘을 더 많은 땅에 퍼뜨릴 시간이오.”
‘이 사람의 조상은 누구일까? 이런 혈통이 어디서 온 걸까?’ 제시카는 생각했다. “스틸가, 내가 당신을 과소평가했군요.” (P539-540)
‘끔찍한 목적!’
도망치려야 도망칠 수 없는 종족 의식, 그 끔찍한 목적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날카로울 정도로 분명해지고 자료가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오고 그의 의식은 냉혹할 정도로 정확해졌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바위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그 의식에 몸을 맡겨버렸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의식이 흘러들어 갔다. 그곳에서 그는 시간의 환영을 보고, 선택할 수 있는 길들을 느끼고, 미래의 굴곡들과..... 과거의 굴곡들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눈으로 보는 과거의 환영, 한 눈으로 보는 현재의 환영, 한 눈으로 보는 미래의 환영, 이 모든 것들이 세 개의 눈으로 보는 하나의 환영으로 결합되어 그로 하여금 공간으로 변한 시간을 볼 수 있게 했다.
이러다 스스로 지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느껴졌다.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경험의 뒤틀림, 흘러가는 순간들, 현재가 영원히 바꿀 수 없는 과거로 계속해서 굳어지는 것 등을 느끼면서 그는 현재의 의식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했다.
그러면서 생전 처음으로 도처에서 당당하고 꾸준한 시간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바위투성이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흐름들, 파도,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큰 파도, 거기에 대항하는 파도 등이 시간의 움직임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예지력을 새롭게 이해했다. 그리고 사각의 시간이 생기는 원인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실수의 원천을 보며 생생한 공포를 느겼다.
예지력은 예지에 의해 드러나는 것들의 한계를 명료하게 만드는 빛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예지력은 정확성의 원천이자 의미심장한 실수의 원인이기도 했다. 하이젠베르크으 불확정성 원리와 같은 어떤 것이 개입했다. 그가 환영을 보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했고, 그 에너지가 소비되면서 그의 눈에 보이는 환영들을 변화시켰다. (P544-545)
“자, 우리가 공개적으로 부를 수 있는 너의 성인 이름으로 무엇을 택하겠느냐?” 스틸가가 물었다.
폴은 어머니를 한 번 쳐다본 다음 다시 스틸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예지의 기억 속에는 지금 이 순간의 일부가 이미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예지의 기억과 달리 지금 이 순간은 현실이었다. 현재의 좁은 문을 통해 그를 억지로 밀어내는 물리적인 압박 같았다.
“작은 생쥐를 당신들은 뭐라고 부르지?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생쥐 말이오.” 폴은 투오노 분지에서 깡충깡충 뛰어다니던 생쥐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가 한 손으로 생쥐의 움직임을 흉내 내어 보여주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우린 그 생쥐를 무앗딥이라고 부른다.” 스틸가가 말했다.
제시카는 놀라서 숨이 막혔다. 그녀는 이미 폴에게서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폴은 프레멘이 자신들을 받아들일 것이며,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아들에 대한, 그리고 아들을 위한 두려움을 느꼈다.
폴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머릿속에서 이미 수도 없이 수행했던 역할을 지금 수행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현기증이 날 만큼 높은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하고 엄청난 양의 지식을 지닌 사람, 그러나 그의 주위는 온통 심연이었다.
그의 기억 속 영상이 다시 바뀌었다. 초록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아트레이데스의 깃발을 따르는 광신도 군단이 예언자 무앗딥의 이름으로 온 우주를 불태우며 노략질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무앗딥이 네가 원하는 이름이냐?” 스틸가가 물었다.
“난 아트레이데스요.” 폴이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조금 더 커다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아버지가 주신 이름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오. 당신들이 나를 폴 무앗딥이라고 불러줄 수 있겠소?”
“그럼, 폴 무앗딥이라고 하지.” 스틸가가 말했다.
‘이건 내가 보았던 환영 어디에도 없었어. 내가 다른 점을 하나 만들어낸 거야.’ 폴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주위를 둘러싼 심연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시 한번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힘을 겸비한 지혜......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분명히 전설 그대로야...... 리산 알 가입..... 리산 알 가입.....”
“너의 새 이름에 대해 한 가지 말해 주지.” 스틸가가 말했다. “네가 선택한 이름이 마음에 든다. 무앗딥은 사막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동물이야. 무앗딥은 스스로 물을 만들어내지. 무앗딥은 태양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서늘한 밤에 움직인다. 무앗딥은 다산이어서 온 땅 위에서 번성하지. 무앗딥을 우리는 ‘아이들의 교사’라고 부른다. 우리들 사이에서 우슬이라고 불리는 폴 무앗딥이여, 그건 네 인생의 강력한 기초가 되어줄 것이다. 널 환영한다.”
스틸가는 한쪽 손바닥으로 폴의 이마를 만진 다음 손을 떼고 폴을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우슬.”
스틸가가 폴을 놓아주자 군중들 속에 있던 사람이 하나 나와서 폴을 끌어안으며 타브르 시에치에서만 통용되는 그의 새 이름을 불렀다. 폴은 사람들의 품에서 품으로 계속 옮겨지며 그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슬....... 우슬....... 우슬.” 그는 벌써 몇몇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윽고 챠니가 그의 뺨에 자신의 뺨을 대고 끌어안은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 (P567-569)
이 순간에 대한 해답이 그녀의 의식 속으로 폭발하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 개인의 시간이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정지된 것이다.
그녀는 염력처럼 뻗어 나간 자아에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즉시 세포의 핵심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검은 구덩이 같은 그 모습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저것이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이구나. 대모들이 그토록 언급하기를 꺼리던 장소가 여기야. 퀴사츠 해더락만이 볼 수 있는 곳.’
이 깨달음 덕분에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그녀는 다시 용기를 내어 염력처럼 뻗어 나간 자아에 정신을 집중하고, 티끌의 자아가 되어 자신의 내부에 위험이 존재하는지 찾아보았다.
그녀가 삼킨 약 속에서 위험이 발견되었다.
약의 입자들은 그녀의 몸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얼어붙은 시간도 그들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춤추는 입자들, 그녀는 낯익은 구조들과 원자의 결합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탄소 원자 하나가 나선형으로 흔들리고 있고..... 포도당 분자가 있었다. 사슬처럼 이어진 분자들이 그녀 앞에 있었다. 그녀는 단백질..... 아니, 메틸단백질 배열을 알아보았다.
‘아아!’
그것은 그녀가 독의 본질을 깨달은 순간 내부에서 터져 나온 소리 없는 한숨이었다.
그녀는 염력의 탐침으로 이용해서 독약 내부로 들어가 산소 알갱이 하나의 위치를 바꾸고, 다른 탄소 알갱이의 결합을 허용하고 산소와..... 수소의 결합체를 다시 이어붙였다.
이 변화가 번져나갔다..... 촉매 작용으로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멈췄던 시간이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다. 그녀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자루에 달린 대롱이 그녀의 입에 대어진 상태로 액체 한방울을 부드럽게 모아들였다.
‘챠니가 자루 속의 독을 변화시키기 위해 내 몸에서 나온 촉매를 가져가고 있구나, 왜지?’
누군가가 그녀를 앉은 자세로 조심스레 바꿔주었다. 그녀는 카펫이 깔린 바위 위로 라말로 대모가 옮겨져 자기 옆에 앉혀지는 것을 보았다. 메마른 손이 그녀의 목을 만졌다.
그녀의 의식 속으로 염력을 지닌 또 다른 티끌이 들어왔다! 제시카는 그것을 거부하려 했지만, 그 티끌은 가까이..... 가까이 몰아쳤다.
두 개의 티끌이 닿았다.
궁극의 일치가 이루어져 동시에 두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것은 텔레파시가 아니라 의식의 공유였다.
‘이 늙은 대모와 의식을 공유하고 있어!’ (P653-654)
밤에 챠니가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 사로잡혀서 속삭여준 경고의 말도 머리를 가득 채웠다. “창조자가 다가오는 길목에 서 있을 때에는 꼼짝도 하지 말아야 해. 자신이 모래땅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해. 망토 아래 몸을 숨기고 완전히 작은 모래언덕이 되는 거야.”
그는 천천히 지평선을 살피고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이 배운 대로 벌레가 다가오는 징조가 나타나는지 관찰했다.
벌레는 남동쪽에서 왔다. 멀리서 모래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새벽빛을 배경으로 벌레가 지나가는 길의 흔적이 멀리서 보였다. 순간 그는 이렇게 큰 벌레를 본 적도 없고, 이렇게 큰 벌레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레의 몸 길이는 2킬로미터를 넘는 것 같았다. 마치 산이 다가오는 것처럼 모래 물결이 솟구쳐 올랐다.
‘이건 환영에서도 현실에서도 전혀 본 적이 없는 광경이야.’ 폴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자리를 잡기 위해 벌레가 다가오는 길목을 서둘러 가로질렀다.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이 그의 온 마음을 사로잡았다. (P715)
벌레는 땅 위에서 파도처럼 움직이며 거대한 모래 물고기처럼 다가왔다. 놈의 체절이 꿈틀거리며 비틀리는 모습이 보였다. 거니는 사막이 잘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서서 프레멘들이 벌레를 잡는 모습을 보았다. 첫 번째 작살꾼이 대답하게 벌레의 등 위로 뛰어올라 방향을 바꾸자, 다른 프레멘들 모두 비늘이 번득이는 벌레의 옆구리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저것도 자네가 봐서는 안 될 것 중의 하나지.” 폴이 말했다.
“저도 소문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고서는 워낙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죠.” 그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라키스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저 생물을 도련님과 프레멘들은 마치 타고 다니는 짐승처럼 다루는군요.”
“아버지가 사막 작전 능력에 대해 얘기하시는 걸 자네도 들었을 거야. 이게 바로 그것이지. 이 행성의 표면은 우리 것이야. 폭풍도, 그 어떤 생물도, 어떤 환경도 우리를 막을 수 없어.”
‘우리라. 그건 프레멘을 의미하는 말이야. 공작님은 자신도 프레멘의 한 사람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어.’ 거니는 스파이스 때문에 파래진 폴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 역시 조금 푸른 기운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밀수업자들은 다른 행성의 음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는 눈 색깔이 일종의 계급을 의미하는 미묘한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원주민들과 지나치게 동화되었다는 뜻으로 ‘스파이스 붓의 터치’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항상 그런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지역에서 우리가 환한 대낮에는 창조자를 타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라반에게 남은 공군병력이 얼마 없기 때문에, 요즘은 그가 사막에서 작은 점 몇 개를 찾자고 그 병력을 낭비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어.” 그가 거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의 비행기가 여기 나타난건 우리에게 충격이었네.” (P758-759)
폴이 어머니를 언급한 후 폴과 스틸가 사이에서 오고간 얘기는 거니에게 구름 속에서 벌어진 일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라고요?” 거니가 말했다.
“습격이 있던 날 밤, 아이다호가 우릴 구해줬지.” 폴이 챠니와의 이별에 정신이 팔려 건성으로 대답했다. “지금 우리는......”
“던컨 아이다호는 어떻게 됐습니까, 공작님?” 거니가 물었다.
“죽었네. 우리에게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느라고.”
‘그 마녀가 살아 있어! 내가 복수를 하겠다고 맹세한 그 여자가 살아 있어! 폴 공작은 어떤 인간이 자기를 낳아줬는지 모르는 게 분명해, 사악한 여자! 공작의 아버지를 하코넨에게 팔아넘긴 여자!’
폴이 그를 지나쳐 바위 턱으로 뛰어 올랐다. 그는 뒤를 흘끗 돌아다보며 부상자들과 시체들이 다른 곳으로 운반되었음을 확인했다. 폴 무앗딥의 전설에 새로운 장이 하나 추가되게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씁쓸해졌다. ‘난 칼을 뽑지도 않았어.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 내가 맨손으로 사다우카 스무 명을 죽였다고 하겠지.’
거니는 스틸가와 함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발바닥에 밟히는 땅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분노 때문에 노란색 발광구가 빛나는 이 동굴도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녀가 살아 있어. 그 여자가 배신한 사람들은 외로운 무덤 속에서 뼈가 되어 있는데, 그 여자를 죽이기 전에 어떻게든 폴에게 그 여자에 대한 진실을 알려야 해.’ (P774-775)
“사내아이의 삶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 중의 하나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인간이며, 그 두 분이 자기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사랑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지. 그건 하나의 상실이자 각성이야. 그러한 세상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린 모두 그 안에 홀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각성, 그 순간에는 그 나름의 진실이 담겨 있네. 결코 그걸 피할 수 없어. 난 어머니에 대해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네. 어머닌 반역자가 아냐, 거니.”
제시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거니, 날 놔줘요.” 그녀의 말 속에는 특별한 명령도 그의 약점을 공략하는 속임수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거니는 손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폴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그러나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만지지는 않았다.
“폴, 이 우주에는 다른 각성들도 존재해. 너를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올려놓기 위해 너를 이용하고 일그러뜨리고 조종했다는 걸 나도 지금 갑작스레 깨달았다...... 물론 내가 받은 훈련 때문에 난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 그게 변명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이 메어서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폴..... 네가 날 위해서 뭘 좀 해줬으면 좋겠다.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거야. 너와 같이 있는 그 사막의 여자 말인데, 네가 원한다면 그 애와 결혼해. 그러기 위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에 맞서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네가 직접 너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거야. 난.......”
그녀는 말을 멈췄다. 등 뒤에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거니!’
그녀는 폴의 시선이 자신의 등 뒤를 향하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렸다. (P792-793)
황제는 폴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차츰 이해하면서 방 건너편에 있는 그를 노려보았다. “이제 네놈의 진짜 목적이 뭔지 알겠군.” 그가 이죽거렸다.
“그렇습니까?” 폴이 말했다.
“그럼 아라키스는 어떻게 할 거냐? 여기도 부드러운 것들로 가득 찬 정원 같은 행성으로 만들 작정이냐?”
“프레멘들에게 무앗딥이 맹세한 것이 있습니다. 이곳의 하늘 밑 땅 위에서 물이 흐를 것이고, 좋은 것들로 가득 찬 초록색 오아시스들이 생겨날 겁니다. 하지만 스파이스도 생각해야 하지요. 따라서 아라키스에는 항상 사막이 존재할 겁니다...... 사나운 바람과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시련도, 우리 프레멘들의 속담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신은 신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아라키스를 창조했다.’ 사람이 신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폴이 말했다.
진실을 말하는 자, 가이우스 헬렌 모히암 대모는 이제 폴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얼핏 지하드를 느끼며 말했다. “이 사람들을 온 우주에 풀어놓을 수는 없어!”
“당신들은 나중에 사다우카가 부드러운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요!” 폴이 쏘아붙였다.
“그래서는 안 돼.”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은 진실을 말하는 자요. 당신 말을 잘 검토해 보시오.” 그가 제1공주를 흘끗 쳐다본 다음 황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게 좋을 겁니다. 폐하.” (P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