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모어 레너드의 <표적>

영화 <표적(Out of Sight)> 1998년

by 노용헌

레너드는 44편의 장편소설과 많은 단편을 썼고, 그중 상당수가 영화와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밸디즈가 온다Valdez Is Coming』, 『라브라바LaBrava』, 『겟 쇼티Get Shorty』, 『럼 펀치』, 『표적』, 『티쇼밍고 블루스Tishomingo Blues』, 『핫 키드』, 『로드 독스』 등이 있으며, 그 가운데 <겟 쇼티>, <조지 클루니의 표적>, <재키 브라운>, <3:10 투 유마> 등이 영화화되어 국내에도 개봉되었다. 영화 <표적>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조지 클루니, 제니퍼 로페즈 주연했다.

영화 표적 18.jpg

“누군가가 여길 뜨려 하고 있어. 내가 장소와 시간을 알려준다면 어쩌겠어?”

그 말에 펍이 그를 돌아보았다. 선글라스로 가려진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폴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갈등하는 것 같았다.

“대체 누굴 얘기하는 거지?”

“세상에 공짜는 없어, 펍.”

폴리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술 생각 나?”

“돈도 잘 버는 사람이 왜 그렇게 짜? 됐어. 그보다 난 마음의 평화를 원해. 여긴 내가 겪어본 교도소 중 최악이야. 정말이라고. 왜 이 위험천만한 놈들을 이런 중급 보안 교도소에 모아놓은 거지?”

“자네도 그들 중 하나잖아.”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많이 온순해진 거겠지. 저 친구들을 좀 봐. 얼마나 광포한지 보라고. 난 저런 놈들과는 달라. 내 문제는 범죄가 습관이 돼 버렸다는 거지. 그들은 내 기력이 다 빠질 때까지 날 풀어주지 않을 거야.”

펍은 계속해서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밀고를 하겠다고?”

“보다 나은 미래가 보장된다면야 못할 것도 없지. 자네에게 탈옥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줄게. 잘하면 이번 일로 진급도 할 수 있을 거야. 난 그 대가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는 거고. 자넨 그저 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날 잘 챙겨주기만 하면 돼. 내가 뭘 하든 그냥 내버려두라고. 작업반에서도 내 이름을 빼줬으면 좋겠고 말이야.”

펍은 여전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몇 명이나 나가는데?”

“여섯 명이라고 들었어.”

“언제?”

“오늘밤이라지 아마?”

“누구누군지 알아?”

“물론, 하지만 아직 얘기해 줄 순 없어. 저녁 점호 끝나고 다섯 시 삼십분까지 예배당으로 나와.”

폴리는 가늘게 찢어진 교도관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기다렸다.

“이봐, 펍.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아? 응?” (P7-8)

영화 표적 28.jpg

“이봐, 급하게 연락을 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 내가 먼저 써도 괜찮겠지? 안 그래?”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입을 열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친구들은 아직 애송이고, 폴리는 그들이 수표를 현금화시키기 위해 들락거린 곳보다 훨씬 많은 은행을 털다가 들어온 스타 죄수였다. 그는 AA(알코올 중독 방지회)에서 자기 존중에 대해 강연한 적도 있었다. 그가 이곳에서 무난한 수감 생활을 해나가는 법을 설명할 때면 모두가 진지하게 경청했다. 공격의 낌새가 감지되면 뭔가 묵직한 것으로 먼저 가격할 것. 폴리는 개인적으로 30센티미터 길이의 쇠몽둥이를 선호했다. 정강이 가격은 금물이다. 너무 노골적이고 음흉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강이 가격은 폭력배나 경관들이 하는 짓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턱을 부서뜨리는 것이다. 시간 여유가 좀 있다면 그의 손도 부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공격의 낌새를 감지하지 못하면 끝장이다. 그래서 항상 눈을 크게 뜨고 다녀야 한다. 애송이들에게 이보다 더 쓸 만한 가르침은 없었다. (P14)

영화 표적 29.jpg

그녀의 아버지는 일흔 살로, 반 퇴직 상태였다. 그는 지난 사십 년간 코랄 게이블스에서 마샬 시스코 탐정 사무소를 운영해 왔다. 스물아홉 살의 캐런 시스코는 연방 보안관으로, 최근에 마이애미에서 웨스트 팜 비치 지국으로 발령받아 왔다. 마이애미 대학 시절 아버지를 도와 감시 업무를 맡기도 했었던 그녀는 연방 법집행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보카 레이튼에 자리한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학에 편입했고, 그곳에서 형사 행정학을 전공했다. FBI, DEA등 여러 기관에서 인재 발굴을 위해 요원들을 학교로 파견했다. 당시 캐런은 마리화나를 즐겨 피웠고, 그런 이유로 마약 단속국은 지원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재무성 비밀 검찰국에 큰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만나본 비밀 검찰국 요원들은 지나치게 비밀이 많았다. 뭘 물어도, “그건 워싱턴에 연락해 문의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답답한 얘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 후에 만난 연방 보안관들은 다른 기관 요원들보다 진지함이 덜했다. 그래서 캐런은 연방 보안관이 되기로 결심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딸에게 미쳤다고 했다. 보나마나 답답한 관료주의에 질식해 버릴 거라고. (P23)

영화 표적 30.jpg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통하는 데가 많았다. 밖에서 같은 일을 해왔다는 공통점 덕분에 그들은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들이 함께 지냈던 롬폭 주 교도소는 태평양으로부터 8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캘리포니아의 악명 높은 마약 딜러와 사기꾼들로 넘쳐났다. 폴리는 말했었다. “버디, 우리 같은 노련한 프로들이 이런 개 사육장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부적응자와 밀고자와 기능장애를 가진 얼간이들 틈에 껴서 왜 이러고 있느냐고.”

그들은 삼 개월 간격으로 출소했다.

먼저 나온 버디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누나, 레지나 메리와 함께 지냈다. 한때 수녀였던 그녀는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생활했고, 셰리 와인을 즐겼으며, 매일 버디와 연옥에 갇힌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다. 집을 나와 은행을 털고 다니는 동안 버디는 매주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고, 돈을 부쳐주었다. 교도소에 들어가서는 자주 편지를 썼다.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면 레지나가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랑 50달러를 챙겨 나온 폴리는 버스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버디는 훔친 차를 타고 와 그를 마중했다. 그날 오후, 그들은 함께 포모나의 한 은행을 털었다. 두 사람이 파트너가 돼 벌였던 첫 작업이었다. 그들은 두 명의 금전 출납계원으로부터 총 5,600달러를 뽑아낸 후 라스베이거스로 떠났다. 그들은 그곳 여자들에게 신나게 돈을 뿌렸고, 도박으로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날렸다.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그들은 몇 달간 캘리포니아 남부를 휘젓고 다녔다. 항상 두 명의 금전 출납계원을 동시에 협박했고, 경보기가 울리기 전에 누가 더 많은 돈을 뽑아내는지 내기를 했다. 버디는 파트너가 그리웠다. (P26-27)

영화 표적 32.jpg

버디는 한눈을 팔고 있었다. 여자가 클랙슨을 올리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보기 전까지 그는 탈옥이 한창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여자는 울타리 왼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어 나온 죄수 두 명은 고속도로로 통하는 길을 내달리는 중이었다. 감시 타워의 스포트라이트가 운동장 가장자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불빛은 도망치는 죄수들을 뒤쫓아 나갔고, 멀리 보이는 감시 타워에서는 라이플총이 발사됐다. 죄수들은 오렌지 과수원으로 사라져버렸고, 교도관들의 총은 계속해서 불을 뿜어댔다. 버디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여자는 어느새 그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은 풍성한 금발 머리, 길고 가냘픈 다리, 멋진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차 트렁크를 열고 있었다.

버디는 그녀가 죄수를 트렁크에 싣고 갈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트렁크 안으로 몸을 숙이고 권총집에 꽂힌 피스톨을 꺼내들었다. 자동 권총 같아 보였다.

맙소사, 총까지 쏴댈 참인가?

하지만 그녀는 피스톨을 던져놓고 더 깊은 곳에서 또 다른 뭔가를 끄집어냈다. 펌프 액션 산탄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차 앞으로 잽싸게 돌아나가 산탄총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두 죄수는 이미 사라져버린 후였다. 그제야 울타리 안에서 호각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운동장을 나서던 수백 명의 죄수들이 주차장 쪽을 일제히 돌아보았다. 그들은 떼거리로 모여 있었고, 어디서도 교도관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차에서 내렸다. 여자는 자신의 차 앞에 서서 추가로 기어 나온 두 죄수에게 산탄총을 겨누고 있었다. 지저분한 모습의 죄수들은 자신들이 나온 구멍 앞에 서서 두 손을 올리라는 여자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 그녀가 죄수들을 도우러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대체 누구지? (P33-34)

영화 표적 33.jpg

캐런은 그들이 그녀를 트렁크에 가둬두고 도망쳐 버릴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트렁크 문이 닫히기 전에 손으로 더듬어 자신의 권총, 시그사우어를 찾아 쥐고 누군가가 그녀를 꺼내줄 때까지 소리를 지르며 트렁크 뚜껑을 발로 걷어찰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권총집에서 피스톨을 뽑아들고 방아쇠를 당길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탄창에 여섯 발, 슬라이드 안에 한 발, 총 일곱 발의 할로우 포인트탄이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벌어진 일은 그녀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 버린 것이었다. 지저분한 교도관 제복의 남자가 그녀를 트렁크 안으로 밀어넣고, 자신도 함께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트렁크 안쪽 벽과 그의 몸 사이에 꽉 끼어버렸다. 그들은 마치 서로를 껴안은 채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가 팔로 그녀의 몸을 감쌌지만 그녀에게는 몸을 틀고 그의 얼굴에 권총을 겨눌 정도의 공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트렁크 뚜껑이 닫히고, 그들은 완전한 어둠에 묻혀 버렸다. 그 어디서도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엔진이 걸릴 때까지 정적은 깨지지 않았다. 주차장을 빠져나간 차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캐런은 머릿속으로 오렌지 과수원과 관리 건물, 그리고 교도소 직원들이 살고 있는 목조 가옥들과 뜰을 그려보았다. (P37)

영화 표적 34.jpg

“더 이상은 얘기할 수 없습니다.”

“자기 차를 몰고 은행을 털러 갔던 거예요?”

“난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국엔 차가 모든 걸 망쳐놓긴 했죠..... 내가 저질러본 실수 중 최악이었습니다.”

폴리의 손가락 끝은 여전히 그녀의 허벅지를 살며시 훑어대고 있었다. 나지막한 그의 음성이 말했다.

“당신과는 말이 잘 통하는군요. 만약 우리가 다른 상황에서 만났더라면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아무 일도 없었을 거예요.”

“내가 누군지 몰랐어도 말이에요?”

“그건 당신이 솔직하게 얘기해 주겠죠. 안 그래요?”

“봐요. 내 말이 맞잖아요. 당신과는 말이 정말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허튼소리도 없고, 그냥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히잖아요. 악취 나는 지저분한 탈옥수와 어두운 트렁크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고요.”

“당연히 두렵죠.”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요.”

“그럼 내가 비명이라도 질러주길 바라나요? 그게 이 상황에서 무슨 도움이 되죠?”

폴리가 그녀의 뒷덜미에 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말했다.

“난 우리가 다른 상황에서 만났더라면, 그러니까 술집 같은 데서…….”

“지금 농담하는 거죠?”

그 후 몇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두 사람은 침묵을 지켰다. (P45)

영화 표적 35.jpg

폴리는 가슴에 턱을 붙인 채 진흙이 말라붙은 단추를 차례로 풀어 나가고 있었다. 버디가 그를 지켜보며 말했다.

“그렇게 잡아당기면 안 되지. 제대로 하고 싶으면..... 자, 이렇게.”

그가 산탄총을 잔디에 내려놓고 폴리의 죄수복 셔츠를 우악스럽게 북 뜯어버렸다. 단추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자신의 카키색 바지에 손을 문질러 닦았다. 폴리는 찢어진 셔츠를 벗어 덤불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레인코트를 잽싸게 걸쳤다.

“대체 왜 글렌을 데려온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폴리가 말했다.

“여기 친구가 좀 많거든. 그래도 널 위해 수고해 준 친군데 그렇게까지 할 거 있어?”

버디가 말했다.

“그는 뭔가를 원하고 있어. 공짜로 이런 일에 나설 친구가 아니라고. 나중에 차를 훔치거나 하다가 체포되면 경찰과 거래를 할 거야. 우리 행방을 불어버릴 게 분명해.”

“그냥 말이 좀 많을 뿐이야. 그뿐이라고.”

“그게 바로 내 말이야.”

“모자도 버려.”

“저 친구가 입을 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잭.”

“난 그녀 혼자 트렁크에 가둬둘 수 없었어. 내가 들려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야.”

“그녈 여기 놔두고 가고 싶지도 않은 거지?”

“그녀는 이미 차에 탔어. 여기서 이러는 건 무의미하다고.”

“하긴,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지.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 얘기해 봐. 대체 저 여잘 왜 데려가려는 거야?”

버디는 대답을 기다렸다.

“얘기해 보라니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폴리가 말했다. (P68-69)

영화 표적 36.jpg

“네 어머닌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어. 그냥 살짝 눈치만 줬을 뿐이라고. 난 그저 누가 괜찮고, 누가 쓰레기인지 구분해서 네게 알려주려 했을 뿐이야. 부적당한 놈들은 다 걸러내야 하지 않니, 니콜렛 그 친구는 나쁘지 않아. 하지만 지나치게 거친 구석이 있더구나. 청바지에 탄창을 꽂고 다니질 않나..... 그런 와일드한 남자가 좋으냐? 그런 거야? 그런 난폭한 형사와 무장강도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내가 얘기했었지? 그들 모두 총질 하길 좋아하는 놈들이야. 네가 폴리에게 끌리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그가 노련한 전문 은행 강도라는 사실 때문에.”

“그가 절 납치했었다니까요.”

“그래, 하지만 넌 글레이즈를 떠나 고속도로에 다다를 때까지 그랑 많은 대화를 나눴잖니. 내가 보기엔 납치라기보단 첫 데이트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혹시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에게 동조하는 비이성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범죄심리학 용어)이라고 들어봤니?”

“잠깐만요.”

“스톡홀름에서 은행 강도 사건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중 한 명이......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구나.”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

“올룹슨.”

캐런이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살짝 윙크를 해보엿다.

“어쨌거나 그들은 여성 인질들과 은행에 며칠 갇혀 지내게 됐고, 그중에 세 명은 나중에 밖으로 나와서 올룹슨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어.”

“전 인질이 아니었어요. 그냥 트렁크 안에 삼십 분간 갇혀 있었을 뿐이라고요.”

“글쎄다. 이 폴리라는 친구 말이야. 올룹슨과 흡사한 구석이 아주 많은 것 같아. 그의 전부인을 만나서 얘길 들어봐. 그녀가 그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고.”

“전 이미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요. 그는 상습범일 뿐이라고요.”

“하지만 아깐 그가 아주 느긋해 보이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고 하지 않았니. 마치 감탄했다는 듯이 말이야.” (P111-112)

영화 표적 37.jpg

캐런이 다시 속삭였다. 그녀는 아델이 침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후 현관으로 다가가 문 손잡이에 왼손을 얹었다.

캐런이 손잡이를 돌리며 어깨너머를 돌아보았다. 실내용 가운과 플라스틱 슬리퍼 차림의 아델이 침실 문간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캐런이 베레타를 흔들어 그녀에게 신호했다. 빨리 들어가서 문을 걸어요. 하지만 아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꼿꼿이 선 채 그녀를 응시했다. 하지만 캐런에게는 그녀를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캐런이 문을 몇 센티미터 열고 귀를 쫑긋 세운 채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어젖혀지며 치노의 검은 형체가 불쑥 들어왔다. 테이블을 지나 아델에게로 달려 나가던 치노가 갑자기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22구경 피스톨을 겨눈 채 서 있는 캐런의 모습이 들어왔다. 피스톨의 가느다란 총구는 그의 다리를 겨누고 있었다. 캐런은 두 손으로 쥔 베레타를 천천히 올려 그의 가슴을 겨누었다.

그녀가 말했다.

“테이블에 내려놓고 천천히 돌아서.”

“잠깐.”

치노가 왼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네가 아델이야?”

“난 연방 보안관이야. 당신을 체포하겠어. 총을 테이블에 내려놔. 어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체포하겠다는 거야? 아무 것도 안 했잖아. 게다가 당신은 아델도 아니고 저 여자가 아델이지?”

치노가 말했다. 그가 아델을 돌아보았다.

캐런은 그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몸 뒤로 살짝 감춰진 그의 오른손에는 피스톨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가 아델을 흘끔 돌아보았다.

“방으로 들어가요.”

아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치노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해요. 들어가서 문 걸어요.”

아델이 몸을 틀려는데 치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당신을 만나러 왔어.”

그가 피스톨을 들고 아델을 겨누었다. 그녀는 다시 멈칫했다.

캐런이 말했다.

“총 내려놔. 안 그러면 쏘겠어.” (P136-137)

영화 표적 38.jpg

방으로 들어서며 캐런이 말했다.

“<콘돌>이네요. 저도 좋아하는 영화예요. 원작 소설 제목을 아세요?”

“뭔데?”

“<콘도르의 6일>이에요. 참, 방금 레지나 메리와 통화를 했어요. 목소리가 아주 나긋나긋하더군요. 속삭임에 가까웠어요. ‘네? 무슨 일이시죠?’ 수녀다운 톤이랄까요? 발음에 유독 신경을 쓰는 걸 보니 이미 몇 잔 걸친 모양이에요. 제가 말했어요. ‘레지나, 전 캐런이라고 합니다. 마이애미에 사는 버디의 친구예요. 그가 불러준 주소를 받아적어 놨는데 그 종이를 잃어버렸어요.’ 그 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더군요. 그녀가 말했어요. ‘오, 나도 그 애 주소를 몰라요.’ 순간 전 기대를 접으려 했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이런 얘길 하더군요. ‘아까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긴 했어요.’ 전 제 귀를 의심했어요. 어젯밤에 출발했는데 어떻게 벌써 거기 도착할 수 있느냐고 물었죠. 그러자 그녀가 말했어요. ‘오,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그 앤 지금 캔터키의 렉싱턴에 있어요.’ 그러고 나서 뭐라고 덧붙였는지 아세요? ‘그 앤 내일쯤 디트로이트에 도착할 거예요.’”

그녀의 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멋지군.”

“제가 말했어요. ‘누님에게 전화도 드리고, 버디는 생각이 참 깊은 것 같아요, 안 그런가요?’ 그 말에 그녀가 뭐라고 대꾸했는지 아세요? ‘자신의 불멸의 영혼을 구하고 싶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그녀는 그가 가진 천국행 티켓이야. 그러니 자주 연락을 할 수밖에. 오랜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레지나에겐 아직도 수녀다움이 많이 남아 있을 거야. 그녀가 또 다른 말은 안 했어?” (P164-165)

영화 표적 39.jpg

마시 놀란이라는 젊은 여자는 <프리 프레스>의 경찰서 출입 기자였다. 그녀는 디트로이트 경찰국이 자리한 보비엔 가 1300번지로 들어서는 캐런 시스코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시는 두 블록 떨어진 그릭타운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시가 로비의 금속 탐지기를 지났을 때 캐런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간부를 만나러 3층으로 향하고 있거나 강력계가 있는 5층, 또는 강력범죄 단속부가 있는 7층으로 올라가는 중일 수도 있었다. 캐런이 죄수를 데리러 온 거라면 9층 유치장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았다. 죄수가 길 건너 웨인 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돼 있지만 않다면, 마시 놀란은 2층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녀는 <뉴스>의 또 다른 출입기자와 나눠 쓰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 <프리 프레스>의 부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마시예요.”

그녀는 캐런 시스코에 들려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그녀는 <헤럴드> 시절에 마이애미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었다. 하지만 먼저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답부터 해야 했다. 아뇨. 아직도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어요. 그들에겐 남자 네 명을 태우고 달아난 파란색 밴을 봤다는 목격자 한 명밖에 없어요. 오늘 아침에 여자 두 명이 조사를 받으러 왔었대요. 그녀는 연행돼 온 용의자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경찰의 발표를 전달했다.

“참, 그리고 마이애미에서 연방 보안관이 왔어요. 캐런 시스코..... 그건 아직 잘 몰라요. 우선 그녀부터 찾아봐야겠어요. 보나마나 불법 구금된 죄수를 데려가려고 왔을 거예요..... 저도 그걸 알아보려고 했어요. 그건 그렇고, <헤럴드>는 연방 법원 앞에서 찍은 그녀의 멋진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걸어놓았더군요..... 아뇨, 마이애미에서죠..... 그런 건 상관없어요. 정말 기가 막힌 사진이라니까요. 캐런에겐 남다른 스타일이 있어요. 매력 덩어리죠..... 보시면 무슨 말인지 아실 거예요. 그녀가 여기 와 있는게 기삿거리가 못 된다면 ‘이름&얼굴’ 섹션에 실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 마돈나 기사보다도 반응이 좋을 거예요...... 수정할 수 있는 설명문도 싣고 말이죠. 그냥 죄수를 데리러 왔다고만 덧붙여 놓으면돼요...... 그건 상관없어요. 사진을 직접 보시면 안 싣고는 못 배기실걸요.” (P179-180)

영화 표적 40.jpg

공원에서 가져온 듯한 벤치들은 벽을 따라 길게 놓여 있었다. 큼직한 링은 체육관 공간의 거의 대부분을 잡아먹고 있었다. 로프 너머로 젊은 남자 네 명이 섀도 복싱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세 명은 흑인, 한 명은 아랍 사람 같았다. 그들은 몸을 좌우로 흔들며 테이핑 된 주먹으로 잽을 날리고 있었다. 글렌은 샌드백과 벽에 도배된 선수들의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링 맞은편 벽에는 “열기를 올려라.” 그리고 “희생이 크면 보상도 크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글렌은 잠시 그 글귀들을 응시했다. 두 번째 것은 앞뒤 순서를 바꿔도 될 것 같았다. 큰 보상을 원한다면...... 링의 왼쪽으로는 각종 운동기구와 스피드 백, 트레이닝 테이블 등이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화려한 색의 운동 가방이 여럿 널브러져 있었다. 빨간색으로 “크롱크”라고 적힌 노란색 티셔츠 차림의 나이 든 흑인 남자들이 운동중인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한 링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아이들도 지켜보고 있었다. 트레이너들이었다. 모리스와 화이트 보이도 그곳에 가 있었다. 모리스는 트레이너들에게 다가가 장난스럽게 잽을 던졌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미소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트레이너가 고개를 젓자 모리스는 다음 트레이너에게 다가갔다. 화이트 보이는 셔츠를 벗은 채 운동기구에 올라가 있었다.

글렌은 셔츠에서 담배를 꺼내들며 또 다른 글귀를 올려다보았다. “고통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당연하지. 그가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꺼내들었을 때 문이 나 있는 반대편 벽에 붙어선 육중한 트레이너 한 명이 고개를 저으며 벽에 붙은 금연 표지를 가리켰다. 글렌은 레인코트를 열고 담배를 주머니에 떨어뜨렸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자 오버코트 차림의 백인 남자 두 명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들은 글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맙소사. 잭 폴리와 버디.

버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봐, 스터즈. 잘 지냈어?” (P184-185)

영화 표적 41.jpg

“당신과 함께 있었던 두 남자 말이에요. 그중 하나가 모리스 밀러인가요? 스누피의 머그 샷을 본 적이 있는데 그는 아닌 것 같더군요.”

“그에 대해 어떻게 알죠?”

불쌍한 인간, 당황해하는 게 뚜렷이 보이는군. 절망의 빛도 살짝 보이고. 그는 극장 쪽을 돌아보았다. 캐런도 같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차된 차들의 지붕 너머로 차양과 간판의 “주립”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캐런이 말했다.

“오늘도 잘 안 풀리는 날이죠? 글렌. 난 당신의 과거를 알고 있어요. 당신이 누구랑 어울리고 다니는지, 당신이 어디서 지내왔는지, 지금은 어디서 지내는지, 앞으로 어디로 갈 건지도 알고 있고요.”

“차량 절도죄로 날 체포할 건가요?”

“치량 절도, 탈옥 선동 및 협조.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음모를 꾸민 죄. 얘기해 봐요. 글렌. 이젠 가택 침입죄도 덧붙여야 하나요?”

“맙소사.”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젯밤처럼 말이에요. 당신도 거기 있었죠? 그렇죠?”

“난 아무 말 안 할 겁니다. 맙소사. 난 당신이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두 손을 핸들에 올려요.”

“왜요?”

“그래야 수갑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P265)

영화 표적 42.jpg

캐런은 열린 현관문 틈으로 들어갔다. 현관 홀에는 판지 상자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계단에는 총을 쥔 거구의 남자가 서 있었다. 위층에서 들려온 총성에 멈칫한 그는 어떻게 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캐런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귀를 쫑긋 세운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눈을 밟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발소리가 멎자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캐런?”

그 소리에 계단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 위층 복도에서 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난간 너머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그 사우어가 계단에 서 있는 남자에게 겨누어졌다. 그녀가 말했다.

“경찰이다. 총 버려, 어서 버리라고.”

남자는 어색한 모습으로 몸을 숙이고 계단에 총을 내려놓았다. 그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천천히 내려와.”

폴리는 여전히 위층 복도에 서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 친구가 바로 화이트 보이 밥입니다. 정말 그렇게 불리고 있더군요. 나머지 두 놈은 죽었습니다. 버디도 죽었고요.”

“꼼짝 말고 있어요.”

캐런이 말했다.

그녀는 화이트 보이를 열린 현관문 쪽으로 이끌었다. 문 밖에서는 제복 경관과 형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현관 불빛을 받으며 서 있는 레이먼드 크루즈에게 말했다.

“안에 한 명이 남았어요. 내가 직접 끌고 나오고 싶어요.”

레이먼드가 잠시 망설였다.

“왜죠?”

“그를 알거든요.”

“친분이 있어요?”

그는 많이 놀란 듯했다.

“그냥 아는 사이예요.”

폴리는 계단이 꺾이는 부분까지 내려와 있었다. 캐런이 현관 홀을 가로질러 계단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스키 마스크를 꺼내 얼굴에 뒤집어썼다.

그녀가 말했다.

“제발, 잭...... 이러지 말아요.”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당신을 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폴리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당신이 쏘지 않으면 밖에 있는 형사들이 쏠 겁니다. 얘기했잖아요. 교도소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고.”

어느새 현관 홀로 들어온 레이먼드 크루즈와 형사 대여섯 명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이 서부의 무법자라도 돼요? 그 총 내려놔요.”

그가 권총을 허리 높이로 들자 그녀 뒤에서 소란이 일었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은 채 한 손을 올려 그들을 말렸다. 캐런은 서두르지 않았다.

“좋아요, 잭.”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시그 사우어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계단에서 고꾸라지며 총을 떨어뜨렸다. 그의 두 손이 오른쪽 허벅지를 감싸 쥐었다. 그녀가 레이먼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줘요. 네?”

그녀는 폴리가 쓰러져 있는 계단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옆에 앉아 스키 마스크를 조심스레 벗겨냈다. 그의 눈은 슬퍼 보였다.

“미안해요, 잭. 하지만 당신을 쏠 순 없어요.”

“방금 쐈잖아요. 빌어먹을.” (P309-311)

영화 표적 31.jpg

아침 여덟 시, 캐런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시킬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대요. 제 생각엔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FBI가 구금 연장 영장을 받아왔다니 여기서 심문이 끝나면 플로리다로 보내질 거예요.”

“그들이 네게 호송을 맡길 수도 있겠구나.”

“그렇죠.”

“비행기에서 그 친구랑 얘기나 신나게 나눠. 서로 할 말이 많을 텐데, 도착하는 즉시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그는 똑똑한 사람이에요. 아무도 그에게 은행을 털라고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 왜 옛말에 이런 게 있잖아요. 교도소가 두려우면 죄를 짓지 말라고.”

“터프한 녀석, 역시 넌 내 딸이야.”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 (P312)

영화 표적 06.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POCALYPSE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