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2005년
나니아 연대기는 전세계적으로 1억 2,000만 부가 팔린 총 7편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다. <마법사의 조카>, <사자와 마녀와 옷장>, <말과 소년>,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 <은의자>, <마지막 전투>이다.
<나니아 연대기> 일곱 편 중 제일 먼저 쓰여진 이 이야기는 우리 세계 아이들이 나니아에서 펼치는 본격적인 모험의 시작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유혹과 배신, 희생. 무엇보다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페번시 가의 네 아이들은 이제, 위대한 사자 아슬란의 나라 나니아에 발을 딛는다. 디고리 교수의 말이 옳다면, 나니아의 모험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P143)
엣날에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라는 네 아이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 아이들이 전쟁 때 공습을 피해 런던 밖으로 피란 가 있는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아이들은 시골 구석에 사는 늙은 교수 집으로 보내졌다. 교수 집은 가장 가까운 기차 역에서도 16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고, 또 가장 가까운 우체국에서도 3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교수는 아내도 없이, 아주 커다란 집에서 매크리디 부인이라는 가정부와 세 하인(이름은 아이비, 마거릿, 베티였는데 얘기 속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교수는 텁수룩한 흰 머리카락이 머리뿐 아니라 얼굴까지 뒤덮다시피 한 아주 늙은 할아버지였는데, 아이들은 그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맞던 첫날 밤에 괴팍스런 표정으로 현관에 서 있는 교수를 보고 (막내인) 루시는 조금 무서워했고, (셋째인) 에드먼드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느라 계속 코를 푸는 척했다.
첫날 밤 아이들은 교수에게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하고 위층에 올라가자마자, 여자 아이들의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터가 말했다.
“우린 진짜 운이 좋았어. 일이 술술 풀릴 거야. 그 할아버지는 우리가 맘대로 하게 놔둘 것 같아.” (P147)
순간 루시는 앞에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옷장 뒷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한두 발자국도 아닌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불빛이 보였던 것이다. 뭔가 차갑고 부드러운 것이 루시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루시는 자신이 깜깜한 밤중에 눈을 밟은 채 숲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다.
루시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차하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데, 뭐.’
그러고는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불빛 쪽을 향해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10분쯤 지나 그곳에 다다르니 가로등이 하나 서 있었다. 루시는 멈춰 서서 가로등을 바라보며, 숲 한가운데에 웬 가로등일까, 이젠 또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때 루시 쪽으로 타닥타닥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괴상 망측한 사람이 나무들 사이에서 가로등 불빛 아래로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은 고작해야 루시보다 키가 조금 더 컸고,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우산을 펴 들고 있었다. 허리 위쪽은 사람 같았지만 아래쪽은 발굽이 달린 (반질반질한 까만 털에 싸인) 염소 다리 같았다. 꼬리도 하나 달려 있었는데 눈 위에 끌릴까 봐 우산을 든 팔에 걸쳐 놓아, 처음에는 루시도 보지 못했다. 목에는 빨간 털목도리를 두르고 있었으며 피부색도 약간 불그스레했다. 낯설긴 해도 호감 가는 인상의 자그마한 얼굴에는 짧고 뾰족한 턱수염과 곱슬 머리가 나 있었고, 이마 양쪽에는 머리카락 위로 뿔이 하나씩 솟아 있었다. 한 손은 아까 말했듯이 우산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갈색 종이로 싼 꾸러미 몇 개를 안고 있었다. 그 꾸러미들과 하얀 눈을 보니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온 사람 같았다. 그것은 바로 파우누스였다. 파우누스는 루시를 보자 놀란 나머지 꾸러미들을 와르르 떨어뜨리며 소리쳤다.
“세상에!” (P150-151)
“아, 정말 반갑습니다. 내 소개를 해도 될까요? 나는 툼누스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툼누스 씨.”
“이브의 딸 루시 양, 뭐 좀 물어 봐도 될까요? 어떻게 나니아에 왔죠?”
“나니아요? 그게 뭔데요?”
“여기가 나니아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죠. 저 가로등이 있는 곳에서부터 동쪽 바다의 거대한 케어 패러벨 성까지가 모두 나니아 땅이죠. 그런데 당신은 서쪽 깊은 숲에서 왔나요?”
“난...... 난 빈 방의 옷장을 통해 들어왔어요.”
툼누스 씨는 다소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어렸을 때에 지리 공부를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 그 이상한 나라들도 훤히 알 수 있을 텐데. 이젠 너무 늦었어.”
루시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그건 나라가 아녜요. 그냥 저 뒤에 있을 뿐이죠.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거긴 지금 여름이에요.”
“그런데 나니아는 겨울이죠. 아주 오랫동안 겨울이었어요. 이렇게 눈 속에서 얘기하다간 둘 다 감기 걸리겠어요. 머나먼 ‘빔방’ 나라, 영원한 여름이 계속되는 화창한 도시 ‘옷짱’에서 오신 이브의 딸, 우리 같이 차나 한 잔 할까요?”
“고마워요. 툼누스 씨, 하지만 돌아가야 해요.”
“저 모퉁이만 돌면 바로예요. 따뜻한 불도 있고 토스트, 정어리, 케이크도 있어요.”
“어머, 정말 친절하시네요, 하지만 오래 머물진 못해요.” (P153)
“그게 무슨 뜻이죠?”
“당신이 바로 그 아이예요. 나는 하얀 마녀한테 명령을 받았어요. 만일 아담의 아들이나 이브의 딸을 숲에서 보면 붙잡아서 자기한테 넘기라는 거예요. 당신은 내가 처음 만난 인간이었어요. 나는 친구인 척하면서 당신에게 차를 대접하겠다고 했지요. 그러고는 아까부터 당신이 잠들기만 기다렸어요. 당신이 잠들면 마녀한테 보고 하려고요.”
“아...... 하지만 안 그럴 거죠. 툼누스 씨? 그렇죠, 네? 진짜 그럼 안 돼요.”
툼누스 씨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마녀한테 잡히고 말 거예요. 그럼 내 꼬리랑 뿔은 싹둑 잘려 버릴 테고. 턱수염도 모조리 뽑히겠죠. 그리고 마녀는 마법의 지팡이로 내 아름다운 발굽을 후려칠 거고요. 형편없는 말발굽처럼 보기 싫고 딱딱해지게 말이에요. 마녀가 정말로 화가 나면 날 돌로 만들어 버릴 거예요. 그럼 난 마녀의 무시무시한 집에서 파우누스 석상이 되어 있겠지요. 케어 패러벨 성에 있는 왕좌 네 개가 다 찰 때까지 말에요. 하지만 언제 그런 날이 올지, 혹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죠.”
루시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툼누스 씨. 하지만 날 집에 보내 주세요.”
“물론 그래야죠. 네, 꼭 그렇게 하겠어요. 이제야 뭘 좀 알 것 같아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인간이 어떤 건지 전혀 몰랐어요. 이젠 당신을 알았으니 절대 마녀한테 넘겨 줄 수 없어요. 자,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요. 내가 가로등까지 데려다 줄 게요. 거기서부터는 혼자 ‘빔방 옷짱’으로 돌아갈 수 있죠?” (P157)
에드먼드가 맛있게 먹는 동안 여왕은 계속 질문을 해댔다. 처음엔 에드먼드도 입안에 먹을 것을 잔뜩 넣은 채 말하는 건 버릇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런 생각은 금방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터키 젤리를 뱃속에 집어넣기에 바빴다. 먹으면 먹을수록 자꾸만 더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왕이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지는 의심해 보지도 않았다. 여왕은 에드먼드에게서 남자 형제가 하나, 여자 형제가 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게다가 여동생은 벌써 나니아에 와서 파우누스를 만나고 돌아간 적이 있으며, 에드먼드 자신과 형, 두 누이를 빼면 나니아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얘기까지 속속들이 들었다. 여왕은 특히 그 아이들이 네 명이라는 사실에 관심이 쏠리는지 자꾸만 그 얘기로 돌아갔다.
“모두 네 명이 확실해? 아담의 아들 둘과 이브의 딸 둘, 더 많지도 적지도 않단 말이지?”
에드먼드는 터키 젤리를 입 안에 잔뜩 쑤셔 넣고 우물거렸다.
“네, 아까 말했잖아요.” (P167)
루시는 너무나 기쁘고 들뜬 나머지, 에드먼드의 말투가 퉁명스러워지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이상해진 걸 눈치채지 못했다.
“오빠가 올 줄 알았으면 기다렸을 텐데, 파우누스인 툼누스 씨랑 같이 점심 먹었어. 툼누스 씨는 아주 잘 지냈대. 하얀 마녀가 아무 짓도 안 했다는 거야. 아직까지 마녀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대. 어쩌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고 했어.”
“하얀 마녀? 하얀 마녀가 누구야?”“아주 끔찍한 사람이야. 여왕 자격이 전혀 없는데도 스스로 나니아의 여왕이라고 부른대. 모든 파우누스와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들, 물의 요정 나이아스들. 난쟁이들, 동물들..... 착한 이들은 너나없이 그 여자를 몹시 싫어한대. 마녀는 사람들을 돌로 변하게도 하고 온갖 무시무시한 짓을 할 수 있대. 그리고 마법을 써서 나니아에 겨울만 계속되게 했다나 봐. 크리스마스도 없는 겨울 말이야. 마녀는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마법의 지팡이에 금관을 쓰고서 주위를 돌아다닌다지?”
에드먼드는 단 것을 너무 먹어서 아까부터 속이 거북했는데, 거기다 자기와 친구가 된 여왕이 위험한 마녀라는 소리를 들으니 더욱 속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에드먼드의 머릿속에는 터키 젤리를 더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에드먼드는 슬쩍 물어 보았다.
“하얀 마녀에 대해 누가 그따위 소리를 했어?”
“파우누스가.”
에드먼드는 파우누스에 대해 루시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파우누스들이 하는 말을 다 믿어선 안 돼.” (P170)
울새는 사정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새는 아이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나무에서 나무로 계속 옮겨 가면서 약간 내리막길로 데려갔다. 울새가 내려앉는 곳마다 나뭇자기에서 눈이 조금씩 떨어지곤 했다. 이윽고 구름을 가르고 겨울 해가 얼굴을 내밀자 사방을 뒤덮은 눈이 눈부시게 빛났다. 여자 아이들을 앞세우고 30분쯤 걸어갔을 즈음에 에드먼드가 피터에게 말했다.
“나하고 말도 하기 싫을 만큼 화가 난 게 아니라면, 형이 들어 두어서 좋을 만한 얘기가 있어.”
“뭔데?”
“쉿! 큰 소리 내지 마, 누나와 루시를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형. 우리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피터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는 지금 생판 모르는 안내자를 따라가고 있는 거라고. 저 새가 어느 편인지 어떻게 알아?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지 말라는 법이 어딨어?”
“자식, 꼭 생각하는 거 하고는! 아무리 그래도..... 울새잖아. 울새는 내가 읽은 얘기에서 언제나 좋은 새였어. 난 울새가 절대로 나쁜 편이 아닐 거라고 믿어.”
“그렇담 좋은 편이 어느 쪽인데? 파우누스들은 옳고, 여왕이 (그래, 여왕이 마녀라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말이야) 나쁘다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우린 사실 양쪽 다 모르잖아.”
“파우누스는 루시를 구해 줬어.”
“그거야 파우누스가 그랬다고 말한 거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문제가 또 있어. 여기서 집으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 있어?”
“세상에! 그건 생각도 못했네.”
“이제 밥은 다 먹었군. 다 먹었어.” (P184-185)
“아슬란 님이 누구죠?”
비버 씨가 말했다.
“아슬란 님요? 아니, 여러분은 모르고 있었나요. 그분은 왕입니다. 온 숲의 왕이시죠. 하지만 여기에 자주 나타나시진 않아요. 지금도, 우리 아버지 시대에도 오신 적이 없죠. 하지만 그분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 귀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그분은 나니아에 계십니다. 그분이라면 하얀 마녀도 금방 물리치실 겁니다. 툼누스 씨를 구할 분은 당신들이 아니라 그분이십니다.”
에드먼드가 말했다.
“그 여자가 그분도 돌로 만들어 버리면 어떡해요?”
비버 씨는 집이 떠나갈 듯 웃어 젖혔다.
“맙소사, 아담의 아들,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분을 돌로 만든다고요? 그 여잔 기껏해야 꼿꼿이 서서 그분의 얼굴이나 똑바로 바라보는 정도겠죠. 아마 그것도 제대로 못하겠지만, 그럼요. 어림도 없어요. 그분은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겁니다. 옛 시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아슬란이 오실 때 악이 바로잡히리라.
그의 우렁찬 포효에 슬픔이 사라지고.
그가 이를 드러낼 때에 겨울은 죽음을 맞이하며,
그가 갈기를 흔들 때에 봄은 다시 찾아오리라.
여러분도 그분을 보면 깨달을 겁니다.”
그러자 수잔이 물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이브의 딸. 여러분을 여기 데려온 것도 다 그 때문인걸요. 제가 여러분을 그분과 만날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루시가 물었다.
“저어..... 그분은 인간인가요?”
비버 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슬란 님이 인간이냐고요! 아니에요. 그분은 숲의 왕이시고 위대한 바다 황제의 아드님이십니다. 동물의 왕이 누군지 모르세요? 아슬란 님은 사자예요. 사자. 위대한 사자!” (P194-195)
피터가 말했다.
“비버 씨. 바로 그 점이 이해가 안 가요. 그럼 마녀는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요?”
“물론 마녀는 우리가 그렇게 믿어 주길 바라죠. 또 그런 생각에서 자기가 여왕이라고 주장하는 거고요. 하지만 마녀는 이브의 딸이 아니에요. 마녀의 조상은 당신들의 선조 아담의.....”
(여기서 비버 씨는 잠시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당신들의 선조인 아담의 첫 부인 릴리스예요. 그 여자는 진(아랍 신화에 나오는 악마)이지요. 그 진이 바로 마녀의 한쪽 조상이에요. 게다가 다른 한쪽으로는 거인의 핏줄을 타고났지요. 절대로 인간이 아닙니다. 마녀한테는 진짜 인간의 피라곤 한 방울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비버 부인이 말했다.
“여보, 그러니까 그 여자는 속속들이 나쁜 거죠?”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인간들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어요. (물론 지금 여기 있는 분들을 언짢게 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요.) 하지만 인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아닌 마녀를 두고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지요.”
“나는 착한 난쟁이들도 알고 있어요.”
“당신 말대로 나도 착한 난쟁이를 알아요. 하지만 극히 일부이고, 그것도 인간하고 닮은 구석이 가장 적은 난쟁이들이라고요. 어쨌든 내 충고를 귀담아듣는 게 좋아요. 장차 인간이 될 수는 있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들. 또는 한때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아닌 것들. 혹은 당연히 인간이어야 하는데도 아닌 것들을 만나면, 그놈들한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손도끼를 준비하고 있어야 해요. 하얀 마녀가 나니아에 인간이 있나 없나 항상 경계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죠. 마녀는 지난 몇 년 동안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게다가 네 명이 왔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흉악하게 나올 겁니다.” (P197)
“그럼 내 말을 잘 들으세요. 에드먼드는 벌써 하얀 마녀를 만났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편이 됐어요. 그래서 마녀가 사는 곳을 아는 거예요. 아까는 (에드먼드가 여러분의 형제라서) 말할 수가 없었지만, 에드먼드를 보자마자 첫눈에 ‘배신자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마녀와 함께 지내면서 마녀의 음식을 먹어 본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나니아에 오래 살다 보면 그런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거든요. 그 치들의 눈초리는 뭔가 달라요.”
피터는 목이 꽉 멘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우린 가서 에드먼드를 찾아야 해요. 아무리 못된 아이라 해도 어쨌든 우리 형제니까요. 게다가 아직 어린애고요.”
비버 부인이 말했다.
“마녀의 집에 간다고요? 여러분이나 에드먼드나 목숨을 구하려면 마녀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어요?”
루시가 물었다.
“무슨 말이죠?”
“이런! 마녀가 원하는 건 여러분 넷 다예요. (줄곧 케어 패러벨 성의 네 왕좌만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일단 여러분 넷이서 마녀의 집에 들어갔다 하면, 그 순간 그 여자의 일은 이미 다 끝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아마 여러분은 입도 뻥긋 못한 채 새로운 네 개의 석상으로 변해 버리겠죠. 하지만 마녀는 자기 손에 단 한 명밖에 없는 한 에드먼드는 살려 둘 겁니다. 미끼로 쓸 수 있으니까요. 나머지 세 사람을 손아귀에 넣을 미끼 말예요.”
루시가 슬프게 흐느꼈다.
“아, 아무도 우릴 도와 줄 수 없는 건가요?”
그러자 비버 씨가 말했다.
“오직 아슬란 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어서 그분을 만나야 해요. 이제 그것만이 유일한 기회니까요.” (P199-200)
“어서 와요! 어서 봐요! 마녀가 한 방 먹은 거야! 마녀의 힘은 벌써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모두들 골짜기의 가파른 비탈을 기어오르고 있는데, 피터가 헐떡거리며 물었다.
“비버 씨, 무슨 소리예요?”
“내가 그랬죠? 그 여자가 크리스마스도 없는 겨울만 계속되게 했다고. 생각나지요? 자, 어서 와서 보세요!”
이윽고 모두들 꼭대기에 이르러 비버 씨가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썰매였고, 끌채에 종을 단 순록이었다. 그러나 순록은 마녀의 것보다 훨씬 크고 색깔도 하얀색이 아닌 갈색이었다. 썰매에는 누구든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 하나가 타고 있었다. 몸집이 커다란 그 사람은 안쪽에 털모자가 달린 밝은 빨간색 (호랑가시나무 열매처럼 밝은 빨간색) 옷을 입고, 물거품을 일으키는 폭포처럼 엄청난 하얀 턱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원래 나니아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이지만, 옷장 문 이 쪽의 우리 세계에서도 그림에서 보거나 얘기로 듣던 사람이라서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니아에서 실제로 보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조금 달랐다. 우리 세계에서는 산타 클로스 그림들은 대개 우스꽝스럽고 유쾌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산타 클로스는 딴판이었다. 그 사람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환희에 차 있고, 너무나 생생해서 모두가 말을 잃고 그대로 서 있었다. 모두들 엄숙함과 함께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P213)
난쟁이와 하얀 마녀가 이런 말을 주고받는 동안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비버 부부와 아이들이 감미로운 꿈 속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코트는 벌써 오래 전에 벗어 버렸다. 이제 그들은 간혹 걸음을 멈추고 서로에게 말을 걸었다. “봐! 저기 물총새가 있어.”, “와, 야생 히아신스다!”, “이 향긋한 냄새는 뭘까?”, “저 지빠귀 소리 좀 들어봐!” 일행은 이 모든 것들을 음미하면서 말없이 걸어갔다. 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을 지나 서늘한 초록빛 관목 숲으로 들어갔다가, 다시금 키 큰 느릅나무들이 하늘 높이 나뭇잎 지붕을 드리우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향긋한 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는 이끼 낀 넓은 빈터를 지나, 까치밥나무와 산사나무 덤불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이 사라지고 불과 몇 시간 만에 온 숲이 1월에서 5월로 변해 버린 것을 보고는 모두들 에드먼드만큼이나 깜짝 놀랐다. 이 모든 변화가 아슬란이 나니아에 왔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마녀처럼) 확실히 몰랐다. 그러나 마녀 때문에 끝없는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이 신비한 봄이 시작되자 마녀의 흉계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그것도 아주 많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차렸다. 이렇게 해빙이 계속되면 마녀가 더 이상 썰매를 쓸 수 없을 거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전보다 더 자주, 더 오래 쉬면서 길을 갔다. 물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까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온종일 밖으로 돌아다녔을 때에 누구나 느끼는 것처럼, 온몸이 나른하고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듯한 기분 속에서 걸음이 더뎌졌을 뿐이다. 수잔은 한쪽 발꿈치에 가벼운 물집이 생겼다. (P223-224)
소리 없는 정적이 흐르고 곧 달빛이 세상을 밝혔다. 여러분이 그곳에 있었다면 오래 된 그루터기와 제법 커다란 둥근 돌 위에 달빛이 내리비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테고, 계속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그루터기와 둥근 돌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곧 그루터기가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작고 뚱뚱한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테고, 더 오랫동안 지켜보았다면 그 그루터기가 둥근 돌 쪽으로 걸어가는 것과, 둥근 돌이 일어나 앉아 그루터기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리라. 그 그루터기와 둥근 돌은 바로 난쟁이와 마녀였다. 사물의 모습이 실제와 달리 보이는 것은 마녀가 마법을 부려서였다. 마녀는 손에서 칼이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그 마법이 생각났던 것이다. 마녀는 마법의 지팡이를 계속 쥐고 있는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P232-233)
“심오한 마법을 잊었나?”
아슬란은 근엄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것을 잊었다고 치고, 그 심오한 마법을 한번 말해 보거라.”
그러자 마녀는 갑자기 째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 보라고? 바로 여기 돌탁자 위에 씌어 있는 걸 말해 보라고? 비밀 언덕의 부싯돌에 창으로 또렷이 새겨진 내용을 말해 보라고? 바다 황제의 홀에 뭐라고 새겨져 있나 말해 보라고? 적어도 당신은 황제께서 태초에 나니아에 내리신 마법쯤은 알고 있겠지. 모든 반역자는 나의 합법적인 포로로서 나한테 속하며, 죽일 권리도 내게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비버 씨가 말했다.
“그랬군, 마녀는 황제의 사형 집행인이었구나. 그래서 자신이 여왕이라는 상상에 빠지게 된 거로군. 알 만해.”
아슬란은 신음 소리처럼 아주 나지막이 말했다.
“가만 있거라.”
마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니 저 인간은 내 것이오. 그의 목숨은 내가 몰수하겠어. 그의 피 역시 내 소유지.”
그러자 사람 머리를 한 황소가 쩌렁쩌렁 소리쳤다.
“그럼 와서 가져가 보시지.”
마녀는 으르렁거리는 야수처럼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머저리! 네 주인이 단순히 힘으로 내 권리를 뺏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 주인은 심오한 마법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어. 내가 법대로 피를 거두지 않는다면 온 나니아가 발칵 뒤집혀 불과 물로 멸망하리란 것도 알고 있지.”
아슬란이 말했다.
“맞는 말이다. 부인하지 않겠다.”
수잔이 사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 아슬란 님! 어떻게...... 제발, 안 그러실 거죠? 그렇죠? 심오한 마법에 대해선 우리가 어찌할 방법이 없는 건가요? 아슬란 님도 거기에 대항하실 수 없는 거예요?”
아슬란은 찡그린 얼굴로 수잔을 돌아보며 말했다.
“황제의 마법에 대항하라고?” (P234-235)
아슬란은 길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피터에게 자신의 전투 작전을 설명해 주었다.
“마녀는 이 지역에서 볼일을 마치자마자 자기 무리를 이끌고 분명 제 집으로 돌아가 우리를 공격할 준비를 할 거다. 우리는 길목을 차단하여 마녀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아슬란은 계속해서 두 가지 작전을 설명했다. 하나는 마녀 무리와 숲에서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녀의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아슬란은 설명하는 동안 줄곧 피터에게 “켄타우로스를 이러이러한 위치에 두어야 한다.” 거나 “마녀가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나 보기 위해 정찰병을 배치해야 한다.” 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작전을 지휘해야 할지 충고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피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슬란 님도 그곳에 계실 거잖아요.”
“그건 약속할 수가 없구나.”
아슬란은 이렇게 대답한 뒤 피터에게 계속해서 작전 지시를 내렸다. 수잔과 루시는 목적지가 가까워질 무렵부터 아슬란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슬란은 별로 말이 없었으며 슬퍼 보였다. 강 폭이 넓어지고 강물이 얕게 흐르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에도 여전히 오후였다. 그곳이 베루나 여울이었는데, 아슬란은 강 이 쪽 편에 멈춰 서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피터는 다른 의견을 냈다.
“더 멀리 가서 야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마녀가 야간 공격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P237-238)
두 여자 아이가 계속 덤불 속에 웅크린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을 때, 마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 다들 나를 따르라! 이 전쟁을 끝내러 가자! 저 위대한 멍청이, 저 위대한 고양이가 죽어 자빠졌으니 인간 쓰레기들과 반역자들을 해치우는 데는 얼마 안 걸릴 것이다.”
그로부터 몇 초 동안은 아이들에게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저 악독한 오합지졸들이 거친 함성을 내지르며 째질 듯이 백파이프를 불고, 뿔나팔을 귀가 따갑게 불어대며 언덕 꼭대기를 휩쓸고 비탈길로 물밀 듯이 내려와 아이들이 숨어 있는 곳 바로 옆을 지나갔다. 요괴들이 찬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고, 미노타우로스들이 옆으로 뛰어가자 땅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머리 위로는 독수리와 거대한 박쥐 들이 사악한 날개를 퍼덕이며 질풍처럼 지나갔다. 다른 때 같았으면 두 아이는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슬란의 죽음 때문에 마음 속이 온통 슬픔과 치욕과 공포로 가득 차 있어서 그런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숲이 다시 잠잠해지자 수잔과 루시는 탁 트인 언덕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다. 달은 더 낮아지고 옅은 구름에 가려 있었으나, 결박당한 채 쓰러져 있는 사자의 모습은 또렷이 보였다. 두 아이는 축축한 풀밭에 무릎을 꿇고 아슬란의 차가운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얼마 남아 있지도 않은 아슬란의 아름다운 털을 쓰다듬으며 눈물이 마르도록 펑펑 울었다. 그런 뒤에도 아이들은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쓸쓸해져 서로의 손을 잡고 마주 보았다. 그러다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주위는 다시 잠잠해졌다. 마침내 루시가 말했다.
“저 무시무시한 재갈은 차마 못 보겠어. 우리가 빼내면 어떨까?”
그리하여 둘은 재갈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추워서 손가락이 곱아 있는데다 한밤중이었던 탓에)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간신히 빼냈다. 아이들은 재갈이 없어진 아슬란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입을 맞추고 쓰다듬고 정성을 다해 거품과 피를 닦아 주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고 절망스럽고 무서운 일이었다. 수잔이 뒤이어 말했다.
“결박도 풀 수 있을까?”
그러나 적개심에 휩싸인 적들이 밧줄을 어찌나 꽉 묶었는지 두 아이는 매듭에 손도 대지 못했다. (P244-245)
“마녀는 심오한 마법을 알긴 하지만 그보다 더 심오한 마법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지. 마녀는 태초 이후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마녀가 태초 이전의 고요와 어둠이 존재하던 때를 조금이라도 더 내다볼 수 있었다면 다른 마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게다. 결박한 자가 반역자의 죄를 대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치면 돌탁자는 깨지고 죽음 그 자체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지. 이제......”
루시가 펄쩍 뛰어오르면서 손뼉을 쳤다.
“어머, 그랬군요. 그럼 이젠.......?”
사자가 말했다.
“얘들아, 내 힘이 다시 돌아오는 게 느껴지는구나. 나를 한번 잡아 보거라!”
아슬란은 순식간에 눈을 밝게 빛내며 사지를 부르르 떨면서 꼬리로 자기 몸을 쳐댔다. 그러더니 아이들 머리 위로 높이 뛰어올라 돌탁자 맞은편에 내려섰다. 루시는 깔깔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아슬란에게 다가가려고 돌탁자 위를 기어올랐다. 아슬란은 다시 펄쩍 뛰었다. 그리하여 아주 신나는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P248)
전투는 그들이 도착한 지 몇 분 만에 끝났다. 적들은 대부분 아슬란과 그 동료들의 처음 공격에 쓰러졌으며, 그 때까지 살아 있던 자들은 마녀가 죽은 것을 보고 재빨리 도망치거나 항복했다. 다음 순간, 루시는 피터와 아슬란이 악수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지금 피터의 모습이 루시에게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피터의 얼굴은 몹시 창백하고 결연했으며 전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피터가 말문을 열었다.
“아슬란 님. 이 모두가 에드먼드의 공입니다. 에드먼드가 아니었으면 우린 지고 말았을 겁니다. 마녀가 우리 병사들을 닥치는 대로 돌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에드먼드는 굴하지 않고 세 식인귀 사이를 뚫고 표범 하나를 막 돌로 만들려던 마녀에게 다가가 검으로 마법의 지팡이를 내리쳤습니다. 다른 병사들처럼 무모하게 마녀를 공격했다가 애쓴 보람도 없이 석상이 되고 마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던 거죠. 마녀의 지팡이가 동강나자, 비록 이미 많은 희생자가 난 상태이긴 했어도 우리 편이 기회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에드먼드는 심한 부상을 입었어요. 지금 에드먼드한테 가 봐야겠습니다.”
그들은 전선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 비버 부인의 간호를 받고 있는 에드먼드를 발견했다. (P258)
그렇게 해서 두 왕과 두 여왕은 덤불 숲으로 들어갔다. 네 사람은 몇 발자국도 안가서 자신들이 조금 전에 본 것이 가로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고, 이어서 스무 발자국쯤 갔을 때에는 자신들이 나뭇가지가 아닌 코트 사이로 지나가고 있는 걸 깨달았다. 다음 순간, 그들은 일제히 옷장 문에서 빈 방으로 털썩 떨어졌다. 이제는 사냥 옷을 입은 왕과 여왕이 아니라 예전에 입었던 옷을 걸친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돌아온 때는 다들 옷장으로 들어가 숨었던 바로 그날 그 시각이었다. 매크리디 부인과 방문객들은 아직도 복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행히 빈 방으로는 들어오지 않아서 아이들은 들키지 않았다.
만약 아이들이 옷장의 코트 네 벌이 왜 없어졌는지 교수에게 사실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교수는 아주 특이한 분이라서, 아이들더러 바보같이 굴지 말라거나 거짓말하지 말라는 꾸지람 대신 아이들의 얘기를 모조리 믿어 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아니다. 코트를 가지러 옷장 문으로 다시 들어가는 건 소용없을 것 같구나. 그 길로는 다시 나이아에 못 들어갈 거야. 설령 들어간다 해도 이제 그 코트 같은 건 아무 쓸모도 없을 거고! 응? 뭐라고? 아, 그래, 물론 너희는 언젠가 다시 나니아로 돌아갈게다. 한번 나니아의 왕이면 영원히 나니아의 왕이니까. 하지만 똑같은 길로 두 번씩 가려고 하지는 말아라. 정말이지 거기 가려고 절대 애쓰지 마라. 언젠가 너희들이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가게 될 거다. 너희끼리도 그 일을 가지고 너무 많은 얘기를 나누지 말아라. 또 남들한테 얘기하게 되더라도 똑같은 모험을 한 사람에게만 얘기해야 된다. 뭐라고? 어떻게 아느냐고? 오, 그야 문제 없지. 그런 비밀은 사람들의 표정이라든가 말 속에 다 나타나게 마련이거든. 그러니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이거야 원, 요즘 학교에서는 도대체 뭘 가르치는 거지?”
이렇게 해서 옷장의 모험은 끝이 난다. 그러나 만약 교수의 말이 옳다면, 나니아의 모험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P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