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유없는 반항> 1955년
2차 세계 대전의 결말을 예측할 수 없었던 1942년부터 구상하기 시작한 이 책에서 카뮈는 개인적 차원의 부조리에서 시작해 집단의 반항으로까지 그 차원을 끌고 간다.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 이 책에서 카인의 후예들, 즉 사드, 니체, 도스토옙스키, 랭보, 로트레아몽 등 부조리를 인식하고 반항을 극단으로 몰고 간 문제적 개인을 먼저 성찰하고, 반항이란 무엇이며 그 반항 속에 내포된 원초적 정신으로부터 초래된 결과가 무엇인지를 반성한다. 이어 히틀러의 독일 나치즘과 스탈린의 러시아 공산주의가 초래한 극단적 반항과 테러를 상기시키며 ‘역사가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폭력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카뮈의 대답은 명확하다. 첫째, 폭력은 불가피한 것인 동시에 정당화할 수 없다. 둘째, 정의와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계’가 불가피하다. 셋째, 폭력적인 행동이 가져야 할 ‘예외’로서의 성격을 줄기차게, 그리고 명백히 밝혀야 한다. 카뮈를 이해하는 세 가지 코드는 부조리, 반항, 사랑이다.
영화 <이유없는 반항>은 1955년 10월 27일에 개봉한 미국의 청춘 드라마 영화로, 제임스 딘이 주연을 맡았으며, 감독은 니콜라스 레이, 제작 및 배급사는 워너 브라더스, 러닝 타임은 111분이다. 영화 <이유없는 반항>은 소설 <반항하는 인간>과는 제목만 유사하다.
[반항하는 인간]
반항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농(non)'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거부는 해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 그는 또한 반항의 첫 충동을 느끼는 순간부터 ’위(oui)'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생 동안 주인의 명령을 받기만 했던 노예가 돌연 새로운 명령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 ‘농’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이를테면, ‘언제까지건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여기까지는 따랐지만 이제 더는 안 된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뜻이며 나아가서는 ‘넘어서면 안 되는 선이 있다’라는 의미다. 요컨대 이 ‘농’은 어떤 경계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상대편이 경계를 넘어서까지 자신의 권리를 확장하여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 있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제한하게 될 때, ‘이건 너무 심하다’라고 느끼는 반항인의 그런 감정 속에서 우리는 그와 똑같은 한계의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반항의 충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어떤 침해의 단호한 거부와 동시에 당연한 권리라는 막연한 확신, 더 정확하게 말해서 ‘이건 내 권리잖아’라고 하는 반항인의 느낌에 근거해 있다. 반항은 내가 어떤 식으로든 어딘가 옳다는 감정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바로 그런 점에서 반항하는 노예는 ‘농’과 동시에 ‘위’라고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경계선을 시인함과 동시에, 그가 경계선의 이쪽 편에 있다고 짐작하고 경계선의 이쪽 안에 간직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긍정한다. 그는 자기 속에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어떤 것, 사람들이 유의할 필요가 있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집스럽게 증명하려 든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그는 그를 억압하는 명령에 맞서서 그가 인정할 수 있는 한도 이상으로 억압받지 않을 일종의 권리를 대립시킨다. (P31-32)
적어도 인간에게는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심증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내부에 지켜 간직해야 할 항구적인 것이 전혀 없다면, 무엇 때문에 반항을 한단 말인가? 노예가 명령을 거역하고 분연히 일어서는 것은 동시에 모든 인간 존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어떤 명령으로 인하여 자기 내면의 그 무엇인가가 부정된다고 판단할 경우, 그때의 그 무엇은 그 개인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심지어 그를 모욕하고 억압하는 자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인간들의 준비된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어떤 일반적 논거인 것이다.
다음 두 가지의 지적은 그 추론을 뒷받침해 줄 것이다. 우선, 반항적 운동은 그 본질에 있어서 이기적인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반항적 운동도 이기적인 동기들에 의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억압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거짓에 대해서도 반항할 것이다. 게다가 그 같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충동에 따라 반항하는 인간은 모든 것을 다 내기에 걸기 때문에 아무것도 자신의 것으로 남겨 지니지 않는다. 물론 그는 자신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그 존중은 타고난 인간 공동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점에서의 존중이다.
다음으로 반항은 오직, 그리고 반드시, 억압당하는 자에게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억압의 피해자가 되는 광경을 목격할 때에도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타인과의 동일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때의 동일화란, 개인이 상상을 통해서 박해가 자기 자신에게 가해지는 것이라고 느끼는 따위의 속임수, 즉 심리적 동일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와는 달리, 우리 자신은 반항도 못 한 채 당해 왔던 박해가 타인에게 가해지는 것을 보면 오히려 견딜 수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러시아 테러리스트들 중 일부가 감옥에서 동지들의 혹독한 매질을 당하는 것을 보고서 항의의 표시로 자살한 사건들은 이 위대한 반항적 운동을 잘 설명해 준다.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한 이익 공동체적 감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 부당한 일이 가해지는 것을 보고서도 반항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오직 운명의 동일시, 그래서 한편이라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개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가 수호하려 하는 그 가치인 것은 아니다. 그 가치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만인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반항함으로써 스스로를 넘어 타인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연대성이란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 우리의 관심사는 쇠사슬에 한데 묶인 가운데 태어나는 그런 유의 연대성이다. (P36-38)
반항적 인간은 신성한 것 이전이나 이후에 위치하는 인간이며, 인간적인 질서를 요구하는데 골몰하는 사람이다. 그 질서 속에서 모든 해답들은 인간적인 것, 즉 합리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 순간부터, 모든 물음과 모든 말은 반항이다. 반면 신성한 것의 세계에서는 모든 말이 은총의 작용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 정신의 견지에서 보면 가능한 세계는 오직 두 가지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신성한 것의 세계(기독교적 표현을 빌리면 은총의 세계)와 반항의 세계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한쪽 세계의 사라짐은 다른 한쪽 세계의 나타남 --이 나타남이 당혹스런 형태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과 일치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전체’냐 ‘무(無)’냐의 문제와 마주친다. 반항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은 오늘날 사회 전체가 신성함에 대해 거리를 두려 한 사실에 기인한다. 우리는 신성이 사라진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인간을 반항으로만 요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수많은 분쟁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반항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적 차원들 중 하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반항은 우리 시대의 역사적 현실이다.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한 우리는 반항 속에서 우리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신성한 것과 그 절대적 가치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 인간이 과연 행동의 규칙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반항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P44-45)
인간은 존재하기 위하여 반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의 반항은 그 자체 내에서 발견하게 되는 한계 --인간들은 그 한계 내에서 서로 결속함으로써 존재하기 시작한다--를 지켜야 한다. 반항적 사상에는 그러므로 기억이 필수다. 그것은 항구적인 긴장 상태인 것이다. 반항적 사상이 이룬 과업과 행동들을 추적함으로써 우리는 매번, 그 사상이 그 고귀한 초심(初心)에 충실하고 있는지, 혹시나 권태와 광기로 인하여 압제나 굴종의 도취 속에서 오히려 그 초심을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말해야 할 것이다.
그에 앞서 우선, 세계의 부조리와 명백한 불모성을 무엇보다 먼저 뼈저리게 느꼈던 하나의 성찰이 반항적 정신에 의하여 이룩하게 되는 최초의 일보 전진을 주목하자. 부조리의 경험에 있어서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다. 반항적 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그 고통은 그것이 집단적인 것임을 의식한다. 그 고통은 인간 모두의 모험이다. 이상함의 느낌에 사로잡힌 인간이 최초로 내딛는 진일보는 그러므로 이 이상함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느낀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현실은 그 전체에 있어서 자아로부터의, 그리고 세계로부터의 그 거리감이라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오직 한 사람만 앓고 있던 병이 집단적 페스트로 변한 것이다. 우리가 겪는 일상적 시련 속에서 반항은 사유의 차원에서의 ‘코기토(dogito)'와 같은 역할을 한다. 즉 반항은 원초적 자명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자명함은 개인을 그의 고독으로부터 끌어낸다. 반항은 모든 인간들 위에 최초의 가치를 정립시키는 공통적 토대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P46-47)
[형이상학적 반항]
형이상학적 반항이란 인간이 인간 조건과 창조 전체에 항거하며 일어서는 운동이다. 그것은 인간과 창조의 목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까닭에 형이상학적이다. 노예는 자신의 신분에 주어진 조건에 대해 항의한다. 형이상학적 반항인은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 대해 항의한다. 반항하는 노예는 주인이 자기를 취급하는 방식을 용납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형이상학적 반항인은 창조가 불만스럽다고 선언한다. 그 둘 중 어느 경우든, 단지 순수하고 단순한 부정(否定)의 문제가 아니다. 과연 그 두 경우 모두에서 우리는 하나의 가치 판단을 발견하게 되는데, 반항하는 인간은 그 가치 판단에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이다. (P51)
엄밀한 의미의 형이상학적 반항은 18세기 말에야 비로소 일관된 모습으로 사상사(思想史)에 등장했다. 그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현대가 막을 연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 영향이 끊임없이 퍼져 나간 결과, 바로 그것이 우리 시대의 역사를 형성했다고 해도 전혀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적 반항이 그 이전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 모델들은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시대는 즐겨 프로메테우스의 시대라고 자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를 일컬어 진정으로 프로메테우스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초기의 신통계보기(神統系譜記)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구원(久遠)의 순교자가 된 프로메테우스가 이 세상 끝에 있는 돌기둥에 쇠사슬로 묶이고서도 용서를 빌기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아이스킬로스는 그의 위상을 한층 높여 그를 더욱 명철한 모습으로 창조하고(그 어떤 불행도 내가 미리 예견하지 못한 것이라면 내게 닥치지 못하리라.) 그가 모든 신들에 대한 자신의 증오를 소리 높여 외쳐 다다가 “비운의 절망으로 요동치는 바다”에 던져진 끝에 결국은 번개와 벼락의 제물이 되게 만든다. “아아! 내가 견뎌 내야 하는 이 부당한 고통을 보라!”
그러므로 고대인들이 형이상학적 반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사탄보다도 훨씬 먼저 반역자의 고통스럽고도 고귀한 이미지를 그려 보여 주었고, 또 우리에게 반항적 지성의 가장 위대한 신화를 남겨 주었다. 무궁한 천재성을 갖춘 그리스는 찬양과 겸양에 대한 신화들을 많이 창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역에 대한 본보기 또한 제공할 줄 알았던 것이다. 분명 프로메테우스적 성격을 지닌 몇 가지 신화들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반항의 역사 속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가령 죽음과의 투쟁(“나는 인간들을 죽음의 강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메시아사상(“나는 인간들 마음속에 맹목적 희망을 심어 놓았다.”), 박애주의(“너무도 인간들을 사랑했기에 제우스의 적이 되어....”) 같은 것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 삼부작의 마지막 부분인 <불을 가져온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용서받은 반항인이 지배하는 시대가 예고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인들은 그 어느 것도 극단까지 밀고 가지 않는다. 그들은 가장 극단적인 대담성을 드러낸 경우에도,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그 한계에 충실했다. 그들의 반역은 창조 전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다만 제신(諸神)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제우스, 그 또한 수명이 제한되어 있는 제우스에 맞서 일으킨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자신도 절반만 신인 존재다. 여기서의 문제는 어떤 특별한 결판 내기, 즉 선에 대한 이의 제기일 뿐 선과 악 사이의 보편적인 투쟁이 아니다. (P56-58)
이 새로운 언어는 에피쿠소스와 루크레티우스의 동시대인들의 감수성 가운데 서서히 싹트기 시작한 인격신의 개념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반항이 개인으로서의 책임 청산을 요구할 때 그 상대는 바로 인격신이다. 인격신의 지배가 시작되는 즉시 반항은 그 가장 사나운 결의로 떨쳐 일어나 결정적인 ‘농’을 선언한다. 카인과 함께 최초의 반항은 최초의 범죄와 때를 같이한다.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반항의 역사는 프로메테우스의 제자들의 역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카인의 후예의 역사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반항적 에너지를 동원하게 될 주체는 무엇보다도 구약의 신이다. 반대로 파스칼처럼 반항적 지성의 과정을 다 밟고 나면 오히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크게 회의하는 영혼은 가장 철저한 장세니슴을 열망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약은 신의 모습을 부드럽게 하고 신과 인간 사이에 중개자를 둠으로써 세상의 모든 카인들에게 미리 대답을 주려는 하나의 기도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두 가지의 주된 문제, 즉 악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 이 세상에 왔는데, 이 두 가지 문제는 곧 반항하는 인간들의 문제인 것이다. 그의 해결책은 우선 악과 죽음을 스스로 떠맡는 것이었다. 인간신인 그 역시 인내하며 고통을 겪는다. 그가 찢기고 죽임을 당한 이상 이제 악도 죽음도 절대적으로 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게 되었다. 골고다의 밤이 인간의 역사에서 그토록 큰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그 암흑 속에서 신이 보란 듯이 자신의 전통적 특권을 버리고 절망까지 포함한 죽음의 고뇌를 끝까지 살아 냈기 때문이다.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Lama Sabactani)"와 죽음의 고통에 임한 그리스도의 그 무서운 회의는 이렇게 설명된다. 죽음의 고통도 영원한 희망의 뒷받침을 받는다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신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도 반드시 절망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된다. (P66-68)
사드는 무신론자인가? 투옥되기 이전 <어느 사제(司祭)와 어느 죽어가는 사람의 대화>에서 그가 자기는 무신론자라고 말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러나 그 뒤 그의 광적인 독신을 목격한 우리는 그같이 단정하기를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가장 잔인한 인물들 중 하나인 생퐁은 결코 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생퐁은 사악한 창조신에 대한 그노시스파 이론을 발전시켜 그것으로부터 적당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그치고 있다. 생퐁이 곧 사드라고 할 수는 없다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물론이다. 한 작중 인물이 그를 창조한 소설가일 수는 결코 없다. 그렇지만 소설가가 동시에 그의 작중 인물 모두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런데 사드의 모든 무신론적 인물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운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관심과 악독함과 잔인함의 속성을 전제로 할 것이라는 명백한 이유 때문이다. 사드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신의 어리석음과 증오를 증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죄 없는 쥐스틴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달려갈 때, 죄 있는 누아르쇠유는 만약 쥐스틴이 하늘의 벼락을 모면한다면 자신은 개종하겠노라고 맹세한다. 쥐스틴에게 벼락이 떨어지고 누아르쇠유가 승리를 거두니 인간은 계속하여 신의 범죄에 범죄로 응답하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파스칼적 내기에 응수하듯 리베르탱의 내기가 등장한다.
적어도 사드가 신에 대해 품고 있는 개념은 그러므로 인간을 짓밟고 부정하는 범죄적 신의 개념이다. 사드의 말에 의하면, 살인이 신의 속성이라는 사실은 종교의 역사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인간이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 수인(囚人)이 최초로 한 행동은 극단적인 귀결로의 비약, 바로 그것이었다. 신이 인간을 죽이고 부정한다면 아무것도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부정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신경질적인 도전은 1782년의 <어느 사제와 어느 죽어가는 사람의 대화>에서 보이던 그 조용한 부정과는 전혀 닮은 데가 없다. “아무것도 나의 것이 아니며, 아무것도 내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아니다, 아니다, 미덕과 악덕, 그 모두가 관(棺) 속에 들어가면 마찬가지가 되고 만다.”라고 결론짓는 자가 조용하고 행복할 리 없다. 사드에 따르면, 신의 개념이야말로 “그가 인간에게 용서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용서라는 낱말 자체가 이미 고문을 가르치는 교사인 이 철인에게 있어서 기인한 것이다. 사드는 자신의 절망적 세계관과 수인이라는 조건이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터인 이 개념을 정작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 사드의 추론을 이끄는 것은 이중의 반항이다. 즉 세계의 질서에 대한 반항과 자기 자신에 대한 반항이 그것이다. 이 두 반항은 학대받는 자의 소용돌이치는 심성 속에서가 아니면 어디에서든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그의 추론은 우리가 그것을 논리의 빛 속에서 살펴보느냐 아니면 연민의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살펴보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애매한 것이 되기도 하고 정당한 것이 되기도 한다. (P74-77)
낭만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실낙원>에서 사탄과 죽음의 싸움은 이러한 드라마를 상징하고 있는데 죽음은 (원죄와 함께) 사탄의 자식이므로 그 상징성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반항하는 인간은 스스로가 무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악을 물리치기 위해 선을 포기하고, 새로이 악을 낳는다. 낭만주의적 영웅은 우선 선과 악의 심각한 혼동, 이를테면 종교적 혼동을 야기한다. 이 영웅은 ‘숙명적’인 인물이다. 왜냐하면 숙명은 선과 악을 서로 분간할 수 없도록 뒤섞어 놓는데 인간은 그 숙명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숙명은 가치 판단을 배제한다. 숙명은 가치 판단을 내리는 대신 ‘이렇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 말로 모든 것이 다 책임을 면제받는다. 다만 어처구니없는 이 사태의 유일한 책임자인 조물주만이 예외다. 낭만주의적 영웅은 그의 힘과 천재가 증대함에 따라 동시에 악의 힘도 그의 내부에서 커지기 때문에 또한 ‘숙명적’이다. 권력도 과도함도 모두 다 한결같이 ‘이렇게 되었다.’라는 말로 덮어 놓기만 하면 그만이다. 예술가, 특히 시인은 신들린 사람이라는 매우 오래된 생각이 낭만주의자들 가운데서는 자극적인 공식으로 변한다. 심지어 이 시대에는 모든 것을, 정통적인 성격의 천재들까지도 다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악마의 제국주의가 지배했다. 블레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밀턴은 천사와 신에 대해서는 거북해하며 글을 썼고, 악마와 지옥에 대해서는 대담하게 글을 썼는데 그것은 그가 진정한 시인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악마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시인, 천재, 지고한 이미지에 있어서 인간 그 자체인 그는 사탄과 동시에 이렇게 외친다. “잘 가라, 희망이여, 그리고 희망과 함께 두려움도 안녕히, 회한도 안녕히..... 악이여, 네가 이제 나의 선이 되어 다오.” 이것은 유린당한 무죄의 절규다. (P92-94)
이반은 사형을 증오하면서(사형 집행 광경을 이야기할 때 그의 말투는 사납다. “신의 은총의 이름으로 그의 머리가 잘려 떨어졌지.”) 동시에 원칙적으로 범죄를 받아들인다. 살인자에게는 온갖 관용을 베풀면서 사형 집행인에게는 그 어떤 관용도 없다. 이 모순에도 불구하고 사드는 마음 편하게 살았지만 반대로 이 모순이 이반 카라마조프의 목을 조른다.
과연 그는 마치 영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추론하는 체한다. 그러나 그는 비록 영생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영생을 거부하겠노라고 말했을 뿐이다. 악과 죽음에 항의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고의적으로 그는 미덕도 영생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길을 택하고 자기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도록 방관하는 길을 택한다. 그는 자신의 딜레마를 피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딜레마는 미덕을 갖추면서 비논리적이 되거나 아니면 논리적이 되면서 범죄자가 되거나 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의 분신인 악마가 그에게 속삭인다. 말은 맞는 말이다. “너는 덕행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미덕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구나. 네가 속상해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지.” 이반이 마침내 마음속으로 제기하는 질문, 즉 도스토옙스키가 이 반항인으로 하여금 이룩하게 만드는 참된 진보의 핵심인 질문, 그것이야말로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것이다. 즉 인간은 반항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또 반항 속에서 계속 버틸 수 있는가? 이반은 이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내비친다. 즉 인간은 오로지 반항을 궁극까지 밀고 나감으로써만 반항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P110-111)
인간이 신을 도덕적으로 심판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서 신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 도덕의 근거는 무엇인가? 정의의 이름으로 신을 부정하지만 신의 관념 없이 정의의 관념이 이해될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우리는 부조리 속으로 빠지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니체가 정면으로 접근하는 부조리다. 그는 이 부조리를 보다 잘 극복하기 위하여 그것을 궁극까지 밀고 나간다. 즉 도덕이란 파괴해야 할 신의 마지막 얼굴인즉 이것을 파괴한 다음에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더 이상 우리의 존재를 보증해 주지 못한다. 인간은, 존재하기 위하여 스스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P117)
니체의 철학은 분명 반항의 문제 주위를 맴돌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그의 철학은 시작부터 하나의 반항이다. 그러나 우리는 니체가 가져온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니체와 더불어 반항은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반항은 그 명제를 하나의 기정사실로 간주한다. 반항은 그리하여 사라져버린 신을 당치 않게 대신하려 드는 모든 것, 비록 정해진 방향은 없어도 여전히 제신들의 유일한 도가니인 한 세계를 욕되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항하여 맞선다. 그에 대한 몇몇 기독교 측 비판자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니체는 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 바 없다. 그는 자기 시대의 영혼 속에서 이미 죽어 있는 신을 발견한 것이다. 사태의 엄청난 심각성을 깨달은 그는 이러한 인간의 반항은 올바르게 방향을 잡지 않으면 어떤 부활에 이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항에 대한 여타의 모든 태도는 그것이 유감의 표시든 만족의 표시든 간에 묵시록의 시대를 가져올 뿐이다. 그러므로 니체는 하나의 반항 철학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반항이라는 기초 위에 하나의 철학을 구축했던 것이다. (P126-127)
지성의 역사에서 마르크스를 제외하면 니체의 모험에 비견될 만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그에게 가해진 부당함을 결코 만회하지 못하고 말 것이다. 물론 역사에서 수많은 철학들이 곡해되고 배반당한 경우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니체와 국가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어떤 한 예외적인 영혼의 고결함과 고뇌에 의해 조명받은 한 사상이 전 세계인의 눈앞에서 거짓들의 퍼레이드와 수용소에 산적된 끔찍한 시체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된 예는 아직 없었다. 초인의 가르침이 하등 인간들의 방법적 제조로 귀결되어 버린 이 사실이야말로 기필코 고발되어야 하며 또한 설명되고 해석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만일 19세기와 20세기의 위대한 반항 운동의 마지막 귀결이 이러한 무자비한 굴종이어야 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반항에 등을 돌리고 니체가 그의 시대를 향해 외쳤던 다음과 같은 절망적 외침을 다시 한번 토해 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양심과 그대들의 양심은 이제 더 이상 같은 양심이 아니란 말인가?” (P140-141)
형이상학적 반항이 ‘위(긍정)’를 거부하고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 반항은 겉치레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형이상학적 반항이 현실의 일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것을 찬양하는 일에 달려든다면 그 반항은 조만간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두 가지 경우 사이에서 이반 카라마조프는 고통스러운 의미에서이긴 하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방관적 태도를 보인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반항적 시는 이 두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진동했었다. 즉 문학과 권력 의지 사이, 비합리와 합리 사이, 절망적인 꿈과 무자비한 행동 사이를 왕래했던 것이다. 그 진동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시인들,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은 겉치레에서 행동에 이르는 길의 놀라운 축도(縮圖)를 우리에게 훤히 밝혀 준다. (P148-149)
절대적 반항이요, 전적인 불복종이며, 합법적 사보타주요, 유머이자 부조리 예찬인 초현실주의는 그 최초의 의도로 본다면 모든 것에 대한 소송, 그것도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소송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일체의 결정(決定)에 대한 거부는 뚜렷하고 딱 부러진 것이며 도전적이다. “우리는 반항의 전문가들이다.” 아라공에 따르면 정신을 전복시키는 기계인 초현실주의는 우선 그 낭만주의적 기원이 주목되는 ‘다다’ 운동과 빈혈증에 걸린 댄디즘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무의미와 모순을 바로 그 자체로서 떠받든다. “진정한 다다는 다다 그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다. 모든 사람이 다 다다의 지도자들이다.” 또는 “무엇이 선하단 말인가? 무엇이 추하단 말인가? 무엇이 위대하고, 무엇이 강하고, 무엇이 약하단 말인가..... 모를 일! 모를 일!” 이 살롱의 허무주의자들은 물론 스스로 하인이 되어서 가장 엄격한 정통 사상을 제공하도록 위협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에는 겉으로 드러낸 그 반(反)순응주의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랭보의 유산이다. 브르통은 그것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는 정녕 여기서 모든 희망을 버려야 하는가?” (P166)
이제부터 우리는 세계 제국과 보편 법칙을 지향하는 지 발작적인 노력에 대해 논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제 반항이 모든 예속을 떨쳐 버리고 창조된 세계 전체를 제 것으로 차지하려드는 바로 그 지점에 이르렀다. 이미 우리는 반항이 실패할 적마다 매번 정복자 특유의 정치적 해결책이 제시되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반항은 그동안 습득한 것들 중에서 도덕적 허무주의와 더불어 오직 권력 의지만을 기억하며 취하게 될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쟁취하고 신과 맞서서 그 존재를 계속 지탱해 가는 것을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반항의 초심을 잊은 채, 정신적 제국주의의 법칙에 따라 무한정 되풀이되는 살인들을 거쳐 세계 제국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은 신을 그의 하늘에서 추방해 버렸다. 그러나 그때 형이상학적 반항이 노골적으로 혁명 운동에 뛰어들면서 자유의 비이성적 요구는 역설적이게도 이성을 무기로 삼게 된다. 이성이야말로 순수하게 인간적으로 보이는 유일한 정복의 힘이라는 것이다. 신이 죽자 인간들만 남았다. 다시 말해서 이해하고 건설해야 할 역사만이 남은 것이다. 반항의 내부에서 창조의 힘을 침몰시키는 허무주의는, 인간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고 덧붙일 뿐이다. 인간은 이제부터 오직 자기뿐인 대지 위에서 비이성의 범죄들에 더하여 인간들의 제국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이성의 범죄들을 추가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에다가, 반항의 온갖 기막힌 복안들, 나아가서는 반항의 죽음까지 궁리하는 가운데, 이렇게 덧붙인다. ‘그리고 우리뿐이다.’ (P185-186)
[역사적 반항]
20세기 혁명의 독창성은 그것이 처음으로 아나카르시스 클로츠의 오랜 꿈인 인류의 통일, 그리고 역사의 결정적인 완성을 실현하겠다고 공공연히 나섰다는 데 있다. 반항의 운동이 ‘전체냐 무냐’에 이르렀던 것처럼, 또 형이상학적 반항이 세계의 통일성을 원했던 것처럼, 20세기의 혁명운동은 그 논리의 가장 명료한 귀결에 이르자 손에 무기를 들고 역사적 전체성을 요구한다. 반항은 그리하여 혁명적인 것이 될 것을 강하게 요구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무용하고 시효가 지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슈티르너처럼 스스로를 신격화한다든가, 혹은 태도에 의해서 자기 혼자만을 구제하자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니체처럼 종족을 신격화하고 이반 카라마조프가 바라던 대로 만인의 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초인의 이상을 떠맡는 것이다. 이제 ‘악령들’이 처음으로 무대 위에 등장하여 이 시대의 비밀들 중 하나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즉 이성과 권력 의지의 동일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신이 죽었으니 이제 인간의 힘으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조직해야 한다. 저주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으나 무기를 가지고 전체성을 정복해야 한다. 혁명, 특히 유물론적이고자 하는 혁명은 다만 과격한 형이상학적 십자군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성(totalité)이 곧 통일성(unité)일까? 그것이야말로 이 시론이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P193-194)
1789년 혁명은 아직 인간(homme)의 신성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인간의 의지가 자연과 이성의 의지와 일치하는 한에 있어서 인민(peuple)의 신성을 확보했다. 만약 일반 의지가 자유롭게 표현된다면 그것은 이성의 보편적 표현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인민이 자유롭다면 인민은 오류를 범할 리 없다. 왕이 죽고 낡은 전제주의의 사슬이 풀린 이상 인민은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든 진리이고 진리였고 진리일 것만을 표현하게 되리라. 인민은 세계의 영원하 질서가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알기 위하여 자문을 구해야 할 신탁인 것이다. “인민의 소리는 곧 자연의 소리다.(Vox populi, vox naturae.)" 영원한 원리들은 우리의 행동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니 그것은 곧 ‘진리’요 ‘정의’요 ‘이성’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신이다. (P216-217)
이미 오래전부터 그는 사실 자신의 요구가 그의 전적이고도 아낌없는 헌신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예견했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혁명을 하는 자들, 즉 ‘선을 행하는 자들’은 무덤 속에서만 편히 잠들 수 있는 법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자신의 원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인민의 덕과 행복 속에서 절정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자신이 아마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깨달은 그는 자기가 인민에게 절망하게 되는 날에는 칼로 자결해 버리겠노라고 공공연히 선언함으로써 미리 배수진을 쳤다. 이제 바야흐로 그는 절망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가 공포 정치를 회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마비되고 원리는 약화되었다. 남은 것은 이제 음모자들이 쓰고 다니는 붉은 모자뿐이다. 독한 술이 미각을 마비시키듯 공포 정치가 범죄에 대한 무감각을 가져왔다.” 심지어 미덕조차 “무정부 시대에는 범죄와 결탁한다.” 모든 범죄는 그중 첫째가는 범죄인 전제 정치에서 태어나며, 그리고 지칠 줄 모르게 계속되는 범죄 앞에서는 대혁명 자체도 전제 정치로 치달으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범죄도 파당도 가증스런 향락 정신도 감소시킬 수가 없다. 인민에게 절망할 수밖에 없으니 인민을 길들여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죄짓지 않고 통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악의 고통을 당하든가 아니면 악을 섬기든가 해야 한다. 원리가 틀렸음을 인정하든가 아니면 인민과 인간들이 유죄임을 인정하든가 해야 한다. 그러자 생쥐스트가 그 신비스럽고도 아름다운 얼굴을 딴 데로 돌려 버린다. “악의 공범자가 되든가 아니면 악을 보고도 모른 체하는 증인이 되든가 둘 중 하나인 삶이라 하더라도 잃은 것은 별로 없다.” 만약 타인들을 죽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죽여야 한다고 했던 브루투스는 결국 타인들을 죽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타인들은 너무나 많아서 그 모두를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반항이 빗나가게 되면 타인들의 절멸과 자기 파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것이다. (P227-228)
오늘날의 세계는 이제 분명 주인들과 노예들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현대의 이데올로기들, 세계의 열굴을 바꾸어 놓는 그 이데올로기들은 헤겔에게서 역사를 권력 장악과 종속 사이의 변증법에 따라 생각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이 열리는 첫날 아침의 황량한 하늘 아래 존재하는 것이 오직 한 사람의 주인과 한 사람의 노예뿐이라면, 그리고 만약 초월자인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오직 주인과 노예 관계뿐이라면, 이 세상에는 힘의 법칙 이외의 그 어떤 법칙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오직 주인과 노예를 초월하는 곳에 오직 하나의 신, 혹은 하나의 원칙만이 끼어들어 인간의 역사가 다만 인간들의 승리나 패배의 역사로만 요약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헤겔의 노력은, 뒤이어 헤겔학파의 노력은 그와 반대로 일체의 초월성과 초월성에의 향수를 점차 파괴해버리는 데 있었다. 비록 헤겔에게서는 결국 헤겔 자신을 능가한 헤겔 좌파에게서보다 무한히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는 차원에서 20세기의 권력 정신에 결정적인 정당화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승리자는 언제나 옳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독일 철학 체계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교훈들 중 하나다. (P242)
과연 헤르첸은 허무주의 운동을 변호하면서 --그는 기성 사상들로부터 한 위대한 해방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허무주의를 변호한 것이 사실이다-- “낡은 것의 폐기는 미래를 생산하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곧 비엘린스키가 한 말의 되풀이라고 할 수 있다. 코틀리아렙스키는 급진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했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을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고 전혀 다른 전형에 의거하여 인간의 인격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 사도들이라고 규정했다. 일체의 역사를 거부하고 미래를 새로이 만들어 내겠다고 각오하는 가운데 슈티르너의 그 요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요구는 더 이상 역사적 정신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개인이 곧 왕이라는 생각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개인-왕은 혼자서 권좌에 오를 수 없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리하여 허무주의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피사레프와 바쿠닌 그리고 네차예프 등은 각자 파괴와 부정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 감으로써 이 모순을 해결하려 한다. 급기야 테러리즘은 자기희생과 살인을 동시에 행함으로써 모순 그 자체를 없애 버린다. (P271)
네차예프는 그 자신의 표현처럼 “부정의 힘도 인내도 고통도 갖추지 못한” 그런 “현상” 따위를 자기가 가하는 분석의 전면에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앞을 보지 못한 채 더듬거리기만 하다가 마침내 목숨을 걸고 싸움을 벌이게 되는 눈먼 게들의 투쟁에 비유하며 의식들을 설명할 뿐, 또 다른 이미지, 즉 어둠 속에서 힘겹게 서로를 찾아 헤매다 마침내 서로 만나 하나가 되어 더 큰 빛을 만드는 등대들의 이미지 --게들의 이미지가 정당하듯 이것 역시 정당한 이미지인 것이다-- 는 의도적으로 뒷전에 밀어 놓았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들, 연인들은 사랑이란 일순간의 섬광일 뿐만 아니라 결정적 인정과 화해를 위해 암흑 속에서 벌이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투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안다. 결국 역사적 미덕은 그것이 얼마나 큰 인내의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사랑 역시 증오 못지않은 인내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실 정의에 대한 요청만이 수 세기에 걸친 혁명적 정열을 꺼지지 않게 지탱해 주고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 혁명적 정열은, 심지어, 아니 특히, 적대적인 하늘과 맞설 때, 모든 사람들에 대한 우정의 고통스러운 요청에도 의지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정의를 위하여 죽은 사람들을 가리켜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누구나 폭력이란 억압받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하여 오직 그들의 적에게 가해지는 것일 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혁명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어 버리면 혁명은 모든 것을, 심지어 밀고까지도, 친구의 희생까지도 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폭력은 추상적 관념에 봉사하기 위하여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행사될 것이다. 갑자기, 혁명 자체는 그것이 구원하고자 하는 대상에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그리고 지금까지는 패배한 자들의 얼굴까지도 빛을 발하게 했던 우정이 아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승리의 그날까지 보류된 채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면 악령에 홀린 자들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해야만 했다. (P284-286)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슈페르가 제출한 공술 내용에 따르면 히틀러는 독일이 그처럼 총체적 파탄에 이르기 전에 전쟁을 중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가의 전반적 자살 및 물질적, 정치적 파괴를 원했다고 한다. 그에게 오직 하나의 가치는 최후의 순간까지 승리였다. 독일은 전쟁에 패했으므로 비겁자, 배신자이며 따라서 독일은 사멸해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만약 독일 국민이 승리할 능력이 없다면 독일 국민은 살 자격도 없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대포들이 이미 베를린 궁전의 성벽들을 진동시키고 있을 때 히틀러는 독일을 죽음 속으로 끌어들여 놓고 자신은 자살함으로써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히틀러, 그리고 자신들의 유해가 대리석 관 속에 안치되기를 바랐던 괴링, 힘러, 라이 등은 지하실이나 독방에서 자살한다. 그러나 이 죽음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죽음이다. 이 죽음은 악몽과도 같고 허공중에 흩어지는 연기와도 같다. 효율적인 것도 모범적인 것도 아닌 이 죽음은 허무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허영을 신성화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히틀러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몰랐다니!” 라고 프랑크는 신경질적으로 외친다. 그들은 정말 그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아울러 모든 것의 부정이란 예속이며, 진정한 자유란 역사와 역사의 승리에 맞서서 하나의 가치에 내면적으로 복종하는 것임을 또한 모르고 있었다. (P326)
역사적 관념을 가진 사상들이 자연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점을 특별히 주목하면 우리는 이 같은 단절을 보다 잘 깨닫게 된다. 역사적 관념을 가진 사상에 의하면 자연이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변형의 대상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들에게 있어서도 자연이란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연에 복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은 고대인의 우주에 대한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그들은 임박한 세계의 종말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헬레니즘은 지독교와 결합하면서 한편으로는 알비 교파를 활짝 꽃피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 프란체스코를 탄생시킬 것이다. 그러나 종교 재판과 이단으로 단죄된 카타리파(정결파)가 섬멸되면서 교회는 다시금 세계와 아름다움으로부터 분리되며, 자연에 대한 역사의 우위성을 다시금 내세우게 된다. 다음과 같은 야스퍼스의 말은 여전히 옳다. “세계로부터 실체를 조금씩 조금씩 비워 버리는 것이 곧 기독교적 태도이니..... 왜냐하면 실체란 상징들의 총체라는 바탕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징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개되는 신의 드라마의 상징들이다. 자연은 이제 이 드라마의 무대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적인 것과 자연의 아름다운 균형, 모든 고대 사상을 떠받치며 빛을 발하게 했던, 세계를 향한 인간의 동의는 우선 역사를 떠받들고자 하는 기독교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세계와 친화하는 전통이 없는 북방 민족들이 이 역사 속으로 들어오게 되자 이 같은 운동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부정되고 독일 이데올로기가 개입하면서부터 그리스도는 이제 인간신만을 상징할 뿐, 인간과 자연 사이의 매개라는 관념은 사라지고 유대적 세계가 되살아난다. 군대를 부리는 무자비한 신이 다시 지배하게 되고 일체의 아름다움은 무용한 향락의 원천으로 여겨 멸시의 대상이 되며 자연 그 자체도 노예로 변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라는 신의 예레미야이며 혁명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독트린의 순전히 반동적인 면을 잘 설명해 준다. 그와 동시대인으로 반동의 총명한 이론가인 조제프 드 메스트르와 간단히 비교해 보면 그 점을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332-334)
마르크스의 독창성은, 역사가 변증법인 동시에 경제라고 주장한 데 있다. 보다 더 자신만만한 헤겔은 역사가 물질인 동시에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역사는 오직 그것이 정신인 한에 있어서만 물질일 수 있으며, 그 역 또한 옳다. 마르크스는 최후의 실체로서의 정신을 부정하고 역사적 유물론을 주장한다. 우리는 이를 즉시 되받아서 베르자예프와 더불어 변증법과 유물론은 서로 타협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변증법은 사유에 대해서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유물론은 그 자체가 애매한 개념이다. 유물론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 속에 물질보다 상위에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말해 두어야 한다. 이러한 비판은 역사적 유물론에 적용될 때 더욱 타당한 것이 되리라. 역사는 그것이 의지와 과학과 열정이라는 수단에 의하여 자연을 변형시킨다는 바로 그 점에서 자연과 구별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순수한 유물론이나 절대적 유물론이란 있을 수 없다는 그 명백한 이유 때문에 순수한 유물론자가 아닌 것이다. 순수한 유물론자나 절대적 유물론자가 아닌 만큼 그는, 만일 무기가 이론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면 이론은 또한 무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마르크스의 입장은 역사적 결정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는 사유를 부정하지 않으며 사유란 외부적 현실에 의해 절대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에게 사유의 운동이란 다만 인간의 두뇌 속으로 운반되어 거기에 옮겨 놓이는 현실적 운동의 반영일 뿐이다.” 이 몹시 거친 정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외부의 운동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통하여 ‘두뇌 속으로 운반될’ 수 있는가 하는 난점은 뒤이어 이 운동의 ‘옮겨 놓임’을 정의하는 데 따르는 난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철학은 그의 세기에 한하는 안목 짧은 철학이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또 다른 차원들에서 정의될 수 있다. (P346-348)
그러나 니체의 비극은 여기서도 되풀이된다. 야심과 예언이 인심 좋게도 도처에 넘쳐 나는 것이다. 독트린은 편협한 것이었고 모든 가치를 오직 역사에만 귀착시키다 보니 가장 극단적인 결론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역사의 끝은 적어도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것임이 판명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믿었다. 바로 거기에 그의 유토피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시피, 유토피아란 운명적으로 그 자신은 원치 않았던 시니시즘을 섬기게 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일체의 초월성을 파괴해 놓고 나서 사실로부터 당위로의 이행을 실행한다. 그러나 당위란 오직 사실 속에서만 원리를 얻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요구는, 그것이 처음부터 정의의 윤리적 정당성에 근거한 것이 아닐 경우 불의로 귀결되고 만다. 이 사실을 잊게 되면 언젠가 범죄마저도 당위가 될 것이다. 선과 악이 시간의 차원 속에 통합되어 사건들과 뒤섞이게 될 때, 선한 것, 악한 것은 더 이상 있을 수 없고, 오직 때 이른 것과 때 늦은 것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기회주의자라면 모르되 그 누가, 적절한 기회가 언제인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나중에 보면 안다고 마르크스의 제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희생자들은 이미 죽고 없어서 나중에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희생자들에게는 현재만이 유일한 가치이며 반항만이 유일한 행동이다. 메시아사상이 성립되자면 희생자들의 뜻을 거스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물론 그것을 원치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점이야말로 따져 보아야 할 마르크스의 책임인데-- 그는 모든 형태의 반항을 적으로 삼는, 피비린내 나는 이제부터의 투쟁을 정당화한 것이다. (P365-366)
과학적이라고 자처했던 사회주의가 어찌하여 이처럼 사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사회주의는 과학적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실패의 이유는 오히려 결정론적인 동시에 예언적이고, 변증법적인 동시에 교조적이고자 할 만큼 극히 애매한 방법에 있다. 만약 정신이 사물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면, 정신은 가설에 의한 것이 아니고서는 사물의 걸음을 앞지를 수 없다. 만약 이론이 경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론은 생산의 과거를 묘사할 수는 있을지언정 단지 개연적일 뿐인 생산의 미래를 묘사할 수는 없다. 역사적 유물론의 과업은 현 사회에 대한 비판을 수립하는 일뿐이다. 역사적 유물론이 과학적 정신을 견지하면서 미래 사회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추측뿐일 것이다. 사실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 저작이 <혁명론>이 아니라 <자본론>이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의 기본 가정들과 과학적 방법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미래와 공산주의를 예언하려 들었다.
이 예언은 반대로 절대적인 의미의 예언을 중지할 때에 비로소 과학적일 수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이 아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과학주의적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야말로 탐구, 사상, 나아가 반항의 보람된 도구인 과학적 이성과, 일체의 원리를 부정하는 가운데 독일 관념론이 만들어 낸 역사적 이성 사이의 깊은 단절을 극명히 드러내 보여 준다. 역사적 이성은 그 본래의 기능으로 볼 때 세계를 판단하는 이성이 아니다. 그런데도 역사적 이성은 세계를 판단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세계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건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그것은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 역사적 이성은 교육자인 동시에 정복자다. 게다가 이 알쏭달쏭한 묘사들이 가장 간명한 현실을 뒤덮어 숨긴다. 만약 인간이 역사로 환원된다면 인간은 광란하는 역사의 소음과 분노 속으로 침몰하거나 혹은 역사에 인간 이성의 형태를 부여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게 된다. 현대 허무주의의 역사는 그러므로 오직 인간의 힘으로, 아니 그냥 강제로, 더 이상 질서를 가지지 못한 역사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기나긴 노력에 불과하다. 이 사이비 이성은 그리하여 결국 이데올로기 제국의 정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술책과 계략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여기에 과학이 끼어들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성만큼 정복과 무관한 것은 없다. 역사는 과학적 세심함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과학자적 객관성을 가지고 처신하고자 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역사 만들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이성은 설교하지 않는다. 아니 설교한다면 그것은 이미 이성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이성은 비합리적이고 낭만적인 이성이다. 그래서 때로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자의 체계화를 연상시키고 또 때로는 말씀의 신비스런 단정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P382-384)
1905년의 테러리스트들의 목숨을 앗아 갔고 지금도 우리 시대의 세계를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는 20세기의 문제가 차츰차츰 분명해졌다. ‘은총 없이, 그리고 정의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물음에 오직 허무주의가, 반항이 아니라 허무주의가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오직 허무주의자들만이 낭만주의적 반항인들이 한 말을 되받아서 ‘광란’이라고 대답했다. 역사적 광란을 사람들은 권력이라고 부른다. 권력에의 의지가 나타나 정의의 의지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처음에는 정의의 의지와 하나인 척하더니 이윽고 그것을 역사의 끝 어딘가로 추방해 버렸다. 이 땅 위에 지배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이리하여 이데올로기적인 결론이 경제적인 결론을 눌러 버렸다. 러시아 공산주의의 역사는 그것 자체의 원리들마저 부정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기나긴 도정의 끝에서 형이상학적 반항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 형이상학적 반항은 이번에는 온갖 무기들과 슬로건의 떠들썩한 소란 속에서, 그러나 그 진정한 원리를 망각하고 무장한 무리 속에서 고독에 파묻힌 채 그 부정들을 완고한 스콜라 철학으로 뒤덮으며 이제부터 그의 유일한 신으로 삼은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형이상학은 물리쳐야 할 수많은 국가와 민족들, 지배해야 할 여러 대륙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 미래와 단절되어 있다. 행동을 유일한 원리로, 인간의 지배를 알리바이로 삼고 있는 이 형이상학적 반항은 벌써 또 다른 방어진들에 맞서 유럽의 동쪽에서 이미 스스로의 방어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P392-393)
우리 시대 특유의 가속화 현상 또한 진리의 조작을 한몫 거들었지만 이런 리듬으로 나간다면 진리는 순수한 환영(幻影)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옛날 어느 왕국에서 모든 베 짜는 사람들이 임금님의 옷을 만들기 위해 실도 없는 빈 베틀에서 베를 짰다는 옛이야기처럼, 오늘날 그 이상한 일을 직업으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헛된 역사를 다시 만들었다가 그날 저녁이면 부숴 버리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날 한 어린아이가 문득 조용한 목소리로 임금님은 벌거벗고 있다고 선언하게 될 것이다. 이 조그만 반항의 목소리가 그때 모든 사람들이 이미 눈으로 보아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게 될 것이다. 즉 명맥을 유지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세계적 사명을 부정하든가, 혹은 세계적인 것이 되기 위하여 스스로를 포기하든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혁명은 거짓된 원리들에 근거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 원리들은 여전히 수백만의 사람들 머리 위에서 계속 작동한다. 시공간적 현실에 의해 저지된 제국의 꿈은 인간들을 통해 향수를 달랜다. 인간들은 다만 개인의 자격으로서는 제국에 적대할 수 없다. 그 정도는 전통적 공포만으로도 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제국에 적대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인간 본성이 역사만 가지고는 살 수 없었고, 그 어느 쪽으로든 늘 역사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제국은 하나의 확신과 하나의 부정을 전제로 한다. 즉 인간의 무한한 순응성(조형 가능성)에 대한 확신과 인간 본성의 부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선전의 기술은 이 순응성을 측정하는 데 쓰이며 또 반성과 조건 반사를 일치시키려고 노력한다. 선전의 기술은 여러 해 동안 불구대천의 적으로 여겨왔던 자와 조약을 체결하게 해 준다. 그뿐 아니라 선전의 기술은 이런 식으로 얻어진 심리적 효과를 뒤엎고 전 인민이 바로 그 적에 대항해 다시 한번 더 일어서도록 해 준다. 이 실험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으나, 그 원리는 논리적이다. 만일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순응성은 과연 무한하리라. 정치적 현실주의는 이쯤 되면 고삐 풀린 낭만주의, 효율성의 낭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P409-411)
역사가 경험한 가장 큰 혁명의 궁극적 모순은 결국 일련의 끊임없는 불의와 폭력을 통해 정의를 수립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굴종이건 기만이건 이러한 불행은 모든 시대에 공통된 것이다. 이 혁명의 비극은 허무주의의 비극이며, 보편적인 것을 지향한다면서도 인간에게 상처 내는 행동을 계속하는 현대 지성의 드라마 바로 그것이다. 전체성은 통일이 아니다. 계엄령은 그것이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확산된다 해도 화해는 아니다. 세계적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부르짖음은 오직 이 세계의 3분의 2와 수 세기에 걸친 막대한 유산을 거부함으로써만, 역사를 위해 자연과 미를 거부함으로써만, 그리고 인간으로부터 정열과 회의(懷疑)와 행복과 창의력, 한마디로 말하여 인간의 위대함을 절단함으로써만 이 혁명 가운데 유지될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가지는 원리들이 마침내 인간의 가장 고결한 의도보다 우선하게 된 것이다. 끊일 새 없는 비판과 투쟁, 논쟁와 파문, 그리고 가하고 당하는 박해로 인하여 자유롭고 우애로운 인간들의 세계 왕국은 조금씩 표류하고 있고, 역사와 효율성만이 실질적인 최고 심판관으로 군림하는 유일한 세계, 즉 심판의 세계에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P415)
여기서 프로메테우스의 놀라운 여정이 끝난다. 신들에 대한 증오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외치면서 그는 경멸하듯 제우스에게 등을 돌리고 필멸의 인간들 편으로 돌아와 그들을 이끌고 하늘을 공격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유약하거나, 아니면 비겁하다. 그들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당장의 쾌락과 행복을 사랑한다.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하여 그들에게 나날의 꿀을 거부하라고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이번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주인이 된다. 그 주인은 처음에는 가르치고, 그다음에는 명령을 내린다. 투쟁이 더 연장되어 진력나는 것으로 변한다. 인간들은 태양의 왕국에 과연 도달하게 될 것인지를, 그 왕국이 존재하기나 하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그들을 그들 자신으로부터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영웅은 그들에게 말한다. 나는 왕국을 알고 있다. 나는 왕국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다,라고. 그 말을 의심하는 자들은 사막에 내던져지고, 바위에 못 박히며, 사나운 새들의 먹이로 바쳐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후 생각에 잠긴 고독한 주인의 뒤를 따라 암흑 속을 걸어갈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혼자 신이 되어 인간들의 고독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제우스로부터 그가 쟁취한 것은 오직 고독과 잔인함뿐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 그는 황제의 것이다. 진정한 프로메테우스, 영원한 프로메테우스는 이제 그의 희생자들 중 어느 하나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기나긴 과거의 밑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르던 그 똑같은 절규가 스키타이의 사막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여전히 메아리쳐 울려오고 있다. (P422-423)
이 단계에 있어서는 그러므로 역사만으로는 어떠한 풍요도 제공하지 못한다. 역사는 가치를 낳는 샘이 아니라 여전히 허무주의를 낳는 샘이다. 영원한 성찰의 차원에서만이라도 적어도 역사에 반하는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렇게 묻는 것은 결국 역사적 불의와 인간들의 비참을 승인하는 결과가 된다. 이 세계를 비방하는 것은 니체가 정의한 바 있는 허무주의로 되돌아오게 한다. 오직 역사만으로 이루어지는 사상은 역사를 외면하는 사상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서 삶의 수단과 삶의 이유를 앗아 가 버린다. 전자는 인간을 ‘왜 사는가?’라는 극단적 추락으로, 후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몰아넣는다. 역사는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하나의 우발적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가치의 부재가 아니고, 그렇다고 가치 그 자체도 아니며, 심지어 가치의 재료조차 아니다. 역사란 여러 다른 기회들 중 한 가지 기회일 뿐이다. 그 기회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역사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가치의 아직은 막연한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반항 그 자체는 우리에게 그 가치를 약속해 준다. (P430)
반항은 과연 혁명을 향하여 점점 더 소리 높여 말하고 있고 또 앞으로 말할 것이다. 동의밖에 달리 할 것이 없는 한 세계의 눈앞에서 어느 날엔가 존재할 수 있게 되기 위하여 행동할 것이 아니라, 반역 운동 그 자체 속에서 이미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저 미지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려고 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규범은 형식적인 것도 역사에 종속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가 예술적 창조 행위 속에서 그 순수한 상태 그대로의 모습으로 찾아냄으로써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이전에 다음과 같은 것을, 즉 바야흐로 역사와 씨름하고 있는 반항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와 형이상학적 반항의 ‘그리고 우리는 외롭다.’에 추가하여, 우리 자신이 아닌 존재를 생산하기 위해 죽이고 죽을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창조하기 위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들도 살게 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P433-434)
[반항과 예술]
예술 역시 찬양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그 운동이다. “그 어떤 예술가도 현실을 용납하지 못한다.”라고 니체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떠한 예술가도 현실 없이 일할 수는 없다. 창조는 통일의 요구이며 세계의 거부다. 그러나 창조는 세계에 결여되어 있는 그 무엇 때문에, 또 때로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의 이름으로, 세계를 거부한다. 우리는 여기서 역사를 벗어난 순수한 상태 그대로, 그 복잡하게 뒤엉킨 원초적 형태로 반항을 관찰할 수 있다. 예술은 그러므로 반항의 내용에 대한 최종적 조망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P437)
반 고흐의 다음과 같은 찬탄할 말한 말은 모든 예술가들의 오만하고도 절망적인 절규의 표현이다. “나는 삶에 있어서나 그림에 있어서나 신은 없어도 잘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하는 나는 나보다 더 위대한 어떤 것, 내 삶 자체인 어떤 것, 즉 창조의 힘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예술가의 반항, 거기에는 압제에 신음하는 자의 자연 발생적인 반항과 똑같은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그 반항은 전체주의적 혁명의 눈에는 수상쩍은 것이 된다. 전적인 부정에서 태어난 혁명 정신은 예술 속에도 역시 거부 이외에 동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관조는 행동과 균형을 이루고, 미는 불의와 균형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는 것, 어떤 경우 미는 그 자체에 있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불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러므로 어떠한 예술도 전적인 부정을 바탕으로 존속할 수 없다. 모든 사상은, 우선 무의미의 사상부터, 무엇인가를 의미하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의 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세계의 전적인 불의를 고발할 수 있고, 그리하여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는 전적인 정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가 전적으로 추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미를 창조하자면 인간은 현실을 거부하는 동시에 현실의 제 양상들 중 어떤 것들을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그러나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니체는 일체의 도덕적 혹은 신적인 초월성이 이 세계와 이 삶에 대한 중상 비방을 조장하는 것이라 하여 그러한 일체의 초월성을 거부했다. 그러나 미가 약속해 주는 하나의 살아 있는 초월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누구나 언젠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이 한정된 세계를 다른 그 무엇보다도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초월성이다. 예술은 그것이 영원한 생성 번화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하나의 가치, 그러나 예술가가 미리 느끼고서 역사로부터 빼앗아 오려고 하는 하나의 가치에 스스로의 형태를 부여하려고 기도한다는 점에서 우리를 반항의 기원으로 회귀시킨다. 생성 변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결여되어 있는 스타일을 부여하고자 하는 예술, 즉 소설을 고찰해 본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더 잘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P444-446)
프루스트로 말하자면, 그의 노력은 집요하게 관찰한 현실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닫힌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었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오직 그만의 것인 그 세계는 사물의 소멸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승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미국 소설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무엇보다 먼저 소설가가 자신의 과거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으로부터 선택한 많은 유별난 순간들을 세심하게 수집하는 일이다. 수많은 거대한 공간들이 사멸하여 그처럼 삶으로부터 제외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공간들은 추억 속에 아무것도 남겨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소설 세계가 기억 없는 인간들의 세계라고 한다면 프루스트의 세계는 그 자체가 하나의 기억 바로 그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기억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요구가 많은 기억, 있는 그대로의 세계의 분산된 양상을 거부하고 어떤 되찾은 향기로부터 새롭고도 해묵은 세계의 비밀을 이끌어 내는 기억이다. 프루스트는 현실 속에서 잊히고 마는 것, 즉 기계적인 것이나 맹목의 세계와 맞서서 내적인 삶을, 내적인 삶 그 자체보다도 더 내적인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거부로부터 현실의 부정을 이끌어 내지는 않는다. 그는 미국 소설의 과오와 대칭되는 과오, 즉 기계적 세계를 말살해 버리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그는 잃어버린 추억과 현재의 감각, 헛디뎌서 발이 뒤틀리는 감각과 과거의 행복했던 날들을 고차적 통일 속에 결합시킨다. (P460-461)
그러나 결국 어떤 가치를 전제로 하지 않는 허무주의가 없고, 자기 생각에 빠져서 자기모순에 이르지 않는 유물론이 없듯, 형식 위주의 예술과 사실주의적 예술은 조리에 맞지 않는 개념들이다. 어떤 예술도 전적으로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다. 고르곤은 물론 순전히 상상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 괴물의 얼굴과 그것의 머리에 붙어 있는 뱀들은 실제로 자연 속에 있는 것들이다. 형식주의는 현실의 내용을 점점 더 많이 비워낼 수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심지어 때때로 추상화(抽象畵)에서 보게 되는 기하학적 형태들조차 여전히 그 색채의 원근법은 외부 세계에서 얻어 온다. 진정한 형식주의란 침묵이다. 마찬가지로, 사실주의도 최소한의 해석과 독단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실물과 가장 닮은 사진도 이미 현실의 배반이다. 그것은 어떤 선택의 산물로 원래 한계가 없는 것에 한계를 부여한다. 사실주의적 예술가의 형식 위주의 예술가는 둘 다 생생한 현실 속에서건 간에 일체의 현실을 추방한다고 여기는 상상만의 창조 속에서건 간에, 원래 통일이 없는 곳에서 통일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와 반대여서, 예술에 있어서의 통일이란 예술가가 현실에 가하는 변형 행위가 완료될 때 불쑥 이루어진다. 통일은 현실이 없어도 안 되고 변형이 없어도 안 된다. 예술가가 자신의 언어에 의해서, 그리고 현실에서 길어 낸 여러 요소들의 재배치를 통해서 실행하는 이러한 수정을 스타일(양식)이라고 부른다. (P464-465)
현대 예술은 허무주의적이기 때문에 형식주의와 사실주의 사이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더구나 사실주의는 사회주의적인 동시에 그에 못지않게 부르주아적이고 --이때 사실주의는 어둠침침해진다-- 그리하여 교훈적이 된다. 형식주의는 미래를 표방하는 사회에 속하는 동시에, 그것이 무상의 추상화가 되면서, 과거의 사회에 속한다. 그때 그것은 프로파간다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정한다. 비합리적 부정에 의해 파괴된 언어는 언어의 착란 속으로 빠져든다. 결정론적 이데올로기에 복종하는 언어는 슬로건으로 요약된다. 예술은 그 양자 사이에 있다. 만약 반항하는 인간이 허무의 광란과 전체성의 동의를 동시에 거부해야 한다면 예술가는 형식주의적 광란과 전체주의적 현실 미학을 동시에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 세계는 사실상 하나다. 그렇지만 그 세계의 통일성은 허무주의의 통일성이다. 형식 원리의 허무주의와 원리 없는 허무주의를 포기함으로써 이 세계가 창조적 종합의 길을 되찾을 때에야 비로소 문명은 가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에 있어서도 끝없는 해설과 르포르타주의 시대가 사라져야 비로소 창조자들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P471-472)
[정오의 사상]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반항의 세계 안에 있는 것일까? 반대로, 반항은 새로운 폭군들의 알리바이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반항의 운동에 포함되어 있는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추문도 기만도 없이 살인과 타협할 수 있는 것일까? 만인에게 공통되는 존엄성의 출발점이 곧 압제의 한계점이라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반항은 최초의 가치를 설정한 바 있다. 반항은 인간들 간의 명백한 공모 관계, 공동의 조직, 연쇄적인 연대성, 인간들을 서로 닮게 하고 결합시키는 상호적 교류 등을 제일의 준거로 삼고 있었다. 반항은 이렇게 하여 부조리한 세계와 부둥켜안고 싸우는 정신으로 하여금 첫걸음을 내딛게 했다. 이러한 진보로 인해 반항은 이제 살인과 맞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한층 더 걱정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사실 부조리의 단계에서는 살인은 다만 논리적 모순들을 야기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반항의 단계에 오면 살인은 가슴 찢는 고통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제 막 우리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동일성을 인정한 사람을 -그가 누구든 간에-죽이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의 문제이니 말이다. 이제 겨우 고독을 극복하고 난 참인데 모든 것을 박탈하는 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고독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제 막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 사람에게 고독을 강요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에 반하는 결정적 범죄가 아닐까? (P483-484)
그렇다면 여기에서 반항하는 인간의 태도는 어떤 것일 수 있을까? 반항하는 인간은 자신의 반항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세계와 역사로부터 등을 돌릴 수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 악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영원한 삶을 선택할 수 없다. 가령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그는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끝까지 간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역사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만약 역사에 살인이 필요하다면 역사와 함께 살인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살인의 정당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반항의 기원을 부정하는 것이다. 만일 반항하는 인간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는 침묵과 타인의 노예화를 선택하는 셈이다. 만일 그가 절망한 나머지 신과 역사에 동시에 맞서서 선택하겠다고 선언한다면 그는 순수한 자유의 증인, 즉 무의 증인이 되는 셈이다. 우리가 처한 이 역사적 단계에서, 우리는 악 속에서 그 한계를 발견할 만한 어떤 상위의 이유를 내세울 수 없는 만큼, 반항인의 분명한 딜레마는 침묵이냐 살인이냐라는 것이다. 그런데 두 경우 다 책임 회피다. (P494)
20세기의 혁명은 이와 반대로 경제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자처하지만 우선 정치이고 이데올로기다. 그것은 그 기능으로 보아 테러를, 그리고 현실에 가해지는 폭력을 피할 수 없다. 자체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절대에서 출발하여 현실을 거기에 억지로 두드려 맞춘다. 반대로 반항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부단한 투쟁 속에서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전자는 위로부터 밑으로 완성되고자 하며 후자는 밑으로부터 위로 완성되고자 한다. 반항은 낭만주의가 아니라 그 반대로 진정한 현실주의의 편에 선다. 만일 반항이 혁명을 원한다면, 그것은 삶을 위하여 원하는 것이지 삶에 반하여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항은 무엇보다 가장 구체적인 현실, 즉 사물들과 인간들의 살아 있는 심성과 존재가 투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직업이나 마을 등에 기반을 둔다. 반항에 있어서 정치란 이러한 진리에 복종하는 것이라야 한다. 결국 반항은 역사를 전진시키고 인간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할 때, 그 폭력 없이라고는 아니라 해도 테러를 동원하는 일은 없이, 그리고 가장 다양한 정치적 조건들 속에서 그 일을 수행한다. (P512-513)
“수확의 강박과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 내가 당기는 활의 양쪽 끝이다.”라고 르네 샤르는 절묘하게 쓰고 있다. 만약 역사의 시간이 수확의 시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역사는 사실상 인간이 더 이상 끼어들 여지가 없는 하나의 잔인하고도 덧없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 역사에 몸을 바치는 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몸을 바치는 셈이며 그 자신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삶의 시간에 몸 바치는 사람, 그가 지키는 집과 살아 있는 인간들의 존엄에 몸 바치는 사람은 대지에 몸 바치는 사람이니 그는 대지로부터 수확을 얻어 그 수확으로 다시 씨를 뿌리고 양식을 얻는다. 결국 적절한 때에 역사에 반항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것은 끝없는 긴장, 그리고 르네 샤르가 말하는 저 긴장된 의연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참된 삶이란 이 가슴 찢는 고통 한가운데에 있다. 참된 삶은 이 가슴 찢는 고통 그 자체이며, 빛의 화산 위를 비행하는 정신이며 형평에의 열광이며 절도를 지향하는 불굴의 집념이다. 이 기나긴 반항적 모험의 끝에서 우리를 위하여 메아리치는 것, 그것은 극도의 불행 속에서는 무용지물일 뿐인 상투적 낙관의 경구들이 아니라 바다 가까운 곳에서는 미덕일 수도 있는 용기와 지성의 언어다. (P521)
지난 2000년 동안 이 세계에서 악의 총합이 줄어든 적이 없다. 신의 것이건 혁명의 것이건 그 어떤 재림도 실현된 적이 없다. 모든 고통에 불의가 달라붙어 있다. 인간들의 눈에 가장 가치 있어 보이는 고통에까지도 불의가 달라붙어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를 짓누르는 힘들에 고통하며 긴 침묵 속에서 여전히 절규한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그동안 인간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조롱하는 것도 보았다. 인간의 고통과 운명, 테러와 독선 사이에 끼인 그에게, 독선의 오만에 빠지지 않고 살인으로부터 아직 구할 수 있는 것을 구해 내기 위해서 남은 것은 오직 반항의 힘뿐이다.
이때 반항은 어떤 기이한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신에게서도 역사에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처럼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을 위하여, 즉 굴욕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항의 가장 순수한 충동은 이리하여, 만일 인간들 모두가 다 구원되지 못한다면 단 한 사람의 구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카라마조프의 비통한 외침으로 귀결된다. 이리하여 오늘날 스페인 감옥에서 가톨릭 죄수들은 영성체를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용 사제들이 몇몇 감옥에서 그것을 의무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무죄의 유일한 증인들인 이 사람들 역시 불의와 압제의 대가로 얻어야 하는 것이라면 구원을 거부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너그러움은 곧 반항의 너그러움이다. 그것은 지체 없이 사랑의 힘을 주고 뒤로 미루지 않고 당장에 불의를 거부한다. 그것의 명예로움은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 현재의 삶과 현재 살아 있는 형제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앞으로 올 미래의 인간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진정한 너그러움은 현재에 모든 것을 주는 데 있는 것이다.
이로써 반항은 그것이 바로 생의 운동이라는 것을, 살기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반항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반항의 가장 순수한 부르짖음은 그때마다 한 존재를 일으켜 세운다. 반항은 그러므로 사랑이요 풍요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P523-524)
그리고 이미, 실제로, 반항은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고 나서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감당할 수는 있다. 이 순간부터 정오의 빛이 그 역사의 운동 바로 위로 쏟아져 내린다. 태워 버릴 듯 달려드는 그 불덩어리의 주위에서 서로 싸우는 그림자들이 한동안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사라지자 장님들이 눈꺼풀을 비비며 이것이 역사라고 외친다. 유럽의 인간들은 어둠 속에 던져진 채 빛을 발하는 그 고정점에서 눈을 돌려 버렸다. 그들은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망각하고, 연기처럼 허망한 권력을 위하여 희생자가 된 존재들을 망각하고, 그 무슨 찬란한 도시를 위하여 변두리의 비참을 망각하고, 헛된 약속의 땅을 위하여 일상의 정의를 망각한다. 그들은 개인들의 자유에 절망하고 인류의 기이한 자유를 꿈꾼다. 그들은 고독한 죽음을 거부하고 놀라운 집단적 임종의 고통을 영생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것을, 세계를, 살아 있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유럽의 비밀은 더 이상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장님들은 유치하게도 단 하루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 곧 수 세기간의 압제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의 칠판에서 기쁨을 지우고 그것을 훗날로 미루려 했다.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초조감, 자신들의 이중적 존재의 부인, 인간됨의 절망이 마침내 그들을 비인간적 과도함 속으로 던져 넣었다. 알맞은 크기의 삶을 거부하고 그들은 그들 자신의 우수성에 내기를 걸어야 했다. 더 나은 방도가 없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신격화하였으니 거기서 그들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이 신들은 눈이 먼 것이다. 칼리아예프와 전 세계의 그의 형제들은 이와 반대로 신성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을 가하는 무한의 권력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늘날 독창적인 오직 하나의 규칙을 선정해 우리에게 본보기로 제시한다. 즉 사는 법과 죽는 법을 배울 것, 그리고 인간이 되기 위하여 신이 되기를 거부할 것. (P525-526)
1948년 11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이 <콩바>에 발표되었는데 이는 앞의 사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글은 ‘두려움의 세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카뮈는 여기서 전 세계가 몸담고 살기 시작한 테러가 무엇인지를 정의한다.
“17세기는 수학의 세기였다. 18세기는 물리학의 세기였고 19세기는 생물학의 세기였다. 그런데 우리의 20세기는 테러의 세기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이제 막 통과한 몇 년 동안의 전율할 광경에 의하여 우리 속의 무엇인가가 파괴되었다. 그 무엇이라는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영원한 신뢰라는 것이다. 그 신뢰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다른 인간들한테서 인간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더럽히고 죽이고 포로수용소로 끌고 가고 고문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상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이데올로기의 대변자는 설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546-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