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66. 사진은 물음일까? 답일까

by 노용헌

사진은 물음일까, 답일까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헤어진다. 하루에도 많은 사진을 만나고 잊혀진다. 사진을 셀렉하는 당사자도 사진을 데스킹하는 데스트도 많은 사진들을 보고 걸러낸다. 좋은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물음을 던지기도 하고 단순한 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당시에 항상 질문을 던진다. 왜 사진을 찍는가? 찍으면서도 다시 질문을 한다. 왜 찍으려고 했던가? 사진은 그 질문속에 다시 질문을 한다. 사진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자, 의식에 대한 물음이다. 삶이 물음이고. 오늘도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에 대한 물음.


카메라라는 도구는 칼이 될 수도 밥이 될 수도 있지만, 사진은 그 사람의 존재의 물음을 던진다. 사진은 보는 이의 시간적 또는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된다. 사진에 공감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찰칵 소리와 함께 찰라의 순간이 고정되지만, 그속에는 엉겹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중첩된 공간또한 얼마나 많은 공간들이 겹쳐지고 확장되는가. 사진은 곧 나의 의문이요, 물음이다.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旣視感]이든 한 없이 낯설어 보이든 그 풍경에 선 사진가의 물음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교만하다. 다 본것처럼, 다 알고, 이해한것처럼,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말이다. 자연의 순리앞에 인간은 얻는 만큼 잃는 것도 많으니.... 살아도, 살아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내가 내 마음도 모르면서 사는 것이 삶일지도.

항상 물음이 심오하고, 항상 질문이 어려운것도 아니다. 답은 어쩌면 단순할지 모른다. 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왜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왜라는 질문은 무엇을 찍을지, 어떻게 찍을지에 선행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수 있을까하고 방법에 눈길이 간다. 무엇을 찍고, 어떻게 찍을 것인가보다 왜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사진가에겐 존재의 의미일 것이다. 사진이 의미를 지니려면, ‘왜’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보는 이가 다시 내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내가 답을 해 줄 의무는 없지만, 그것은 스스로 내게 질문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에 많은 고민들을 한다. 풍경사진을 찍을까, 인물사진을 찍을까. 동호회를 통해서 이리저리 출사를 다니고, 그러면서 사진을 어떻게 하면 남과 달리 찍을까하고 어떻게 찍을까하고 방법에 몰두한다. 기계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어떤 렌즈를 쓸지, 어떤 카메라가 나은지, 필터를 썼는지, 플래시를 썼는지하고 그러나 이 모든 과정들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왜 찍으려고 했는가이다. 사진은 그런 물음을 던지는 매체이고, 도구이다. 그 사진 정말 잘 찍었는데 어떻게 찍었냐고 묻기 보다는 그 사진을 왜 찍었냐고 물어야 할 것이다. 오늘도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내 자신을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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