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영화 <두 도시 이야기> 1935년

by 노용헌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중 하나.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A Tale of Two Cities>(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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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말하자면, 지금과 너무도 흡사하게, 그 시절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좋든 나쁘든 간에 오직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고 했다. (P13)


움푹 꺼진 땅마다 증기 같은 안개가 서려 있었다. 안개는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한 악한 영혼처럼 쓸쓸하게 언덕을 배회했다. 축축하고 몹시 차가운 안개는 바다의 불길한 파도처럼, 대기 중에서 잔물결을 지어 서서히 움직이다 다른 증기들을 뒤엎었다. 안개가 워낙 짙어서 마차의 불빛이 비추는 거라고는 이런 안개의 움직임과 몇 야드의 앞 길뿐이었다. 사투를 벌이고 있는 말들이 내뿜는 입김이 안개와 뒤섞여 마치 말들이 안개를 죄다 만들어낸 것 같았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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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봐도 신기한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는 심오한 비밀을 간직한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밤에 대도시에 갈 때면, 어둠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집마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엄숙한 생각이 든다. 그뿐인가, 집 안의 방마다 비밀이 있으며, 그 방에 살고 있는 수천 수백 명의 가슴속에서 고동치는 심장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있다. 그런 면에서 두려운 어떤 것, 심지어 죽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P25)


내 친구도 죽고, 내 이웃도 죽고, 내가 목숨 바쳐 사랑한 연인도 죽는다. 죽음은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비밀을 변함없이 공고화하고 영속화 한다. 나 역시 내 비밀을 죽는 날까지 가져갈 것이다. 그렇다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보다 내가 지나가는 이 도시의 무덤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는 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아마, 자신도 이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닐까? (P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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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적포도주는 파리 생탕투안 교외의 좁은 거리를 붉게 물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손과 얼굴, 헐벗은 발과 나막신까지도 물들였다. 나무를 톱질하던 남자의 손은 나무토막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아기 엄마는 낡은 머릿수건을 다시 두르는 바람에 이마에 붉은 얼룩이 생겼다. 술통 조각을 게걸스럽게 씹었던 사람들의 입가에는 지저분한 얼룩이 남았다. 긴 자루 같은 나이트캡을 더러운 자루 밖으로 머리가 쑥 튀어나온 듯 뒤집어쓴 멀대같이 키가 큰 익살꾼은 포도주가 스며든 진흙을 손가락에 묻혀 벽에 낙서를 했다. 피.

때가 오고 있었다. 또다시 포도주가 거리의 자갈 틈으로 쏟아지고, 그 흔적이 그곳의 많은 사람을 붉게 물들일 때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탕투안, 그 성스러운 얼굴 뒤로 어슴푸레한 빛은 자취를 감추고 더러움과 무지와 빈곤은 마치 대단한 권세를 지닌 귀족처럼 모든 것을 지배했는데 그중에서 빈곤이 가장 그러했다. 늙은이를 젊은이로 바꿔주는 마법의 맷돌은 분명히 아닌 맷돌 속에서 끔찍하게 갈리고 또 갈린 적이 있는 몇몇은 모퉁이에서 떨었다. 그들은 모든 집을 들락날락했고, 창문으로 낡은 옷자락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그들을 갈았던 맷돌은 젊은이를 늙은이로 만들어주는 맷돌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찌들었고 목소리에는 근심이 배었으며 그들의 얼굴에나 어른들의 얼굴에나 세월의 고랑이 파였고, 새로 생긴 고랑은 굶주림의 표시였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다. (P49)


굶주림이 어울리는 곳 어디에나 굶주림은 풍겼다. 범죄와 악취가 그득하고 좁고 구불구불한 샛길이 많은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에는 어딜 가나 넝마를 걸치고 나이트캡을 쓴 사람들이 있었다. 넝마와 모자에서는 악취가 풍겼고 그들을 음울하게 내려다보는 것들은 모두 병색이 완연했다. 그곳 사람들에게는 궁지에 몰리면 역습할 것 같은 야생동물 같은 면이 있었다. 하도 짓밟히고 억눌려서 슬금슬금 움직여도 눈은 불처럼 이글거렸다. 무언가 억누르느라 꼭 다문 입술은 하얗게 질렸다. 이마에는, 자신이 매달리거나 누군가를 목매달아 죽일 때 생각하는 교수대의 밧줄과 비슷한 주름이 파여 있었다. 간판들(간판이 가게 수만큼 많았다.)도 하나같이 우울하게 빈곤을 보여 주었다. 정육점에는 말라빠진 고기만이, 빵 가게 간판에는 거칠고 빈약한 빵 덩어리가 그려져 있었다. 술집 간판에는 묽은 포도주나 맥주 양이 적다며 투덜거리거나 인상을 쓰고 수군거리는 술꾼들이 어설프게 그려져 있었다. 무기와 연장을 제외하고는 무엇 하나 풍요롭지 않았다. (P50)


때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하릴없이 굶주리면서 점등원만 쳐다봤던 그 지역의 여윈 허수아비들은 점차 점등 방법을 더 좋게 바꾸면 어떨까. 저 밧줄과 도르래로 등이 아니라 사람을 매달아 자신들의 암울한 상태를 비춰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프랑스에 불어오는 바람에 허수아비의 넝마는 아직 흔들리지 않았고 노랫소리와 날개가 고운 새들은 아직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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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에는 처형이 모든 직종이나 분야에서 유행했고, 텔슨 은행에서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죽음은 만물에 대한 자연요법인데, 법률문제에서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따라서 위조화폐범도 사형, 위조지폐를 사용하는 자도 사형, 편지를 불법으로 개봉해도 사형, 사십 실링 육 펜스를 훔쳐도 사형에 처해졌다. 텔슨 은행 정문에 매어둔 말을 훔쳐서 달아난 마부도 사형, 실링 은화 위조자도 사형, 범죄에 사용된 돈의 사 분의 삼을 유용한 사람도 사형감이었다. 이 방법은 새로운 범죄를 예방하는 데 별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사실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이 사회를 위해) 개별 사건의 문제를 없애 주었고, 사후에 처리해야 할 어떤 문제도 남지 않게 해주었다. (P81)


기력은 모두 소진되었고 사방은 황량했다. 남자는 조용한 언덕을 가로질러 가만히 멈춰 서 있다. 문득 앞에 펼쳐진 황무지에서 명예에 대한 야망과 자기 부정, 불굴의 의지 같은 신기루를 보았다. 그 공평한 도시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신중한 사람들이 그를 올려다보는 상상 속의 회랑이 있고, 탐욕스럽게 익은 삶의 열매가 열린 밭이 있고, 눈을 반짝이게 하는 희망의 샘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 환상은 사라져버렸다. 그는 즐비한 집들 중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 옷도 벗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헛된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슬프고 슬프게도 태양은 떠올랐다. 햇빛이 비친 광경에서 무엇이 그 남자의 일생보다 더 슬프겠는가. 뛰어난 능력과 선량한 심성을 가졌지만 그것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쓰지 못하며, 자신을 파먹는 해충인지 알면서도 그 해충이 자신을 먹어치우도록 보고만 있는 남자였다. (P132-133)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요. 이런 기분은 당사자만 알 수 있거든요. 남한테 전달하기가 쉽지 않죠. 저는 가끔 저녁이면 여기에 혼자 앉아서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어떨 때는 저 메아리가 우리의 삶을 짓밟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소리로 들려요.”

“그렇게 되면 언젠가 수 많은 사람이 우리의 인생으로 들어오겠군요.”

카턴이 우울하게 말했다. 발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서둘러 걷는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모퉁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발소리로 울리고 또 울렸다. 어떤 발소리는 유리창 아래에서 울리는 것 같고, 어떤 발소리는 방 안에서 울리는 것 같고, 어떤 발소리는 오고, 어떤 발소리는 가고, 어떤 발소리는 잠시 멈추고, 어떤 발소리는 완전히 멈췄다. 모두가 멀리에서 들려오는 듯했으며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이 발소리가 모두 우리를 향해 오는 건가요, 마네트 양? 아니면 우리 사이를 뚫고 지나갈까요?”

“나도 몰라요, 다네이 씨. 그러게 제가 바보 같은 몽상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도 물어보시는군요. 혼자 있을 때 이런 몽상에 빠져 있다보면 사람들의 발이 제 삶, 그리고 아버지의 삶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하게 돼요.”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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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도 흘렀고, 강물도 흘렀다. 낮이 흘러 저녁이 되었고, 이 도시의 많은 생명체는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시간과 흐르는 물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쥐들은 다시 컴컴한 구멍 속으로 들어가 서로에게 기대어 잠이 들었고, 무도회장은 화려한 만찬을 위해 불을 밝혔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움직였다. (P162)


마을은 거리도 황폐하고, 양조장도 허름하고, 무두질 공장도 초라하고, 술집도 누추하고 말을 갈아타는 마구간도 꼭 허물어질 것 같았으며 샘도 메말랐다. 마을의 일상적인 장소가 모두 형편없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가난했다. 모두 가난했다. 많은 사람들이 문가에 쪼그리고 앉아 몇 안되는 양파와 다른 것들로 저녁거리를 장만했고, 샘가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나뭇잎과 푸성귀 할 것 없이 땅에서 나고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물에 씻었다. 무엇이 그들을 궁핍하게 만들었는지, 겉으로 드러나는 자잘한 증거만 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국세, 교회세, 영주세, 일반세, 왕에게 내는 세금, 지방세 등등. 이 마을의 근엄한 비문에 새겨진 명에 따라 이런 세금, 저런 세금을 내느라 아직 송두리째 먹히지 않고 남아 있는 마을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거리엔 아이들도 별로 없고 개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땅에 사는 남녀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방앗간 아래 작은 마을에서 비천한 삶을 지탱하느냐, 아니면 험준한 낭떠러지에 솟아 있는 감옥에 갇혀 죽어가느냐. (P164)


“우리의 철학은 탄압뿐이다. 이 지붕이 있는 한 우리를 두려워하고 노예근성에 젖은 개들은 우리의 매질에 복종할 것이야.”

후작은 이렇게 말하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늘을 가려주는 천장 말이야.”

하지만 그 철학은 후작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오래가지 못하리라. 만약 그때로부터 불과 몇 년 후 이 저택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었다면, 불과 몇 년 후 그의 가문과 비슷한 쉰 개의 가문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날 밤 그에게 보여 주었다면, 그는 과연 불에 타 재가 비처럼 쏟아지는 으스스한 숯덩이를 자신의 집이라고 우겼을까. 아마도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지붕 때문에 새로운 하늘을 보지 못했음을, 정확히 말하면 수천 개의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이 뚫고 들어간 몸뚱이들의 눈을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P17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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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에는 이곳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지만, 하늘 아래, 태양에 비춰 실상 그대로를 본다면 낭비에 찌든, 곧 허물어질 탑입니다. 게다가 강탈한 것이고 잘못 관리되고 있으며 저당 잡힌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탄압과 굶주림, 헐벗음과 고통 위에 세워진 것이지요.”

“하!” 후작이 그만하면 이제 됐다는 듯 말했다.

“만약 이것이 제 것이 된다면 이 탑을 기울어뜨리는 책임에서 자유롭고 서서히 기울어지게 할 (그게 가능하다면) 능력이 되는 사람들의 손에 돌려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 마지막 순간까지 참고 견뎌온 불쌍한 사람들이, 설령 몇 세대를 지나서라도 고통을 덜 겪게 될 겁니다. 저는 그 역할을 맡을 생각이 없습니다. 이 집과 땅 전체에 저주가 깃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넌?” 숙부가 말했다. “내 호기심을 용서해 다오. 넌 새로운 철학을 따르며 살겠다는 말이냐? 자비롭게?”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곳에 있는 동포들처럼요. 앞으로는 귀족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일을 하면서요.”

“이를테면 영국에서 말이냐?”

“예, 그 나라에서는 제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힐 일도 없습니다. 또 가문의 명예 때문에 괴로워할 일도 없겠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가문의 명예 따위는 이용하지 않을 테니까요.” (P180)


어둠이 사방을 감싸버렸다. 때마침 교회 종이 울리고 멀리 왕궁의 뜰에서는 군대의 북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도 부인들은 계속해서 뜨개질을 하면서 앉아 있었다.

어느덧 어둠이 그들까지도 감쌌다. 하지만 또 하나의 어둠도 분명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때 프랑스 전역의 수많은 첨탑에서 명징하게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는 틀림없이 천둥 같은 대포 소리에 녹아들리라. 그날 밤 북소리는, 힘과 풍요로움과 자유와 생명을 외치는 함성만큼이나 절박하게 외치는 어떤 가련한 목소리가 파묻혀 들리지 않도록 요란하게 울려 퍼지리라. 어둠은 뜨개질을 하고 있는 부인들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축물 주위에 둘러앉아 뜨개질을 하며 잘려나가는 머릿수를 셀 날이 가까이 와 있었다. (P266-267)


한 남자가 진실로 사랑했던 한 여자를 놓치고, 그 여자가 타인의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도 변함없이 그녀를 순결한 여인으로 여기면, 이상하게도 그 여자의 아이들은 그 남자에게 묘한 연민을 느낀다. 본능적으로 솟아나는 섬세한 동정이었다. 그런 경우 혹시 감춰진 고귀한 감각이라도 작동하는 것인지, 어떤 메아리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늘 존재해 왔고, 여기에서도 일어났다. 카턴은 어린 루시가 통통한 팔을 내민 첫 번째 낯선 사람이었고, 어린 루시가 성장하는 동안 그는 아이의 마음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루시의 어린 아들도 숨을 거두기 전에 그를 보며 말했다. “불쌍한 카턴 아저씨! 저를 대신해서 아저씨에게 키스해 주세요!” (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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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어느 캄캄한 창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안, 멀리 생탕투안은 한번 찍히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붉은 발자국으로 뒤덮였고, 광란의 위협적인 발들은 분노에 차서 닥치는 대로 목숨을 짓밟으며 자국을 냈다.

그날 아침, 생탕투안에서는 초라한 몰골과 우울한 표정을 한 거대한 무리가 앞뒤로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강철 칼날과 총검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굽이치는 수많은 머리 위로 번쩍거렸다. 생탕투안의 목구멍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고, 숲을 이룬 헐벗은 팔들이 허공을 향해 내지를 때의 모습은 찬바람에 흔들리는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았다. 손가락들은 온갖 무기와 저 마음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오르는 무리 비슷한 것들을 부들부들 떨릴 만큼 꽉 움켜 잡았다.

누가 발사했는지, 방금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그것들을 뒤틀 듯 흔들며 번개처럼 한 번에 수십 발씩 군중의 머리 위로 날아가게 했는지, 군중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소총과 함께 탄약통, 화약, 총탄 따위를 배분받았고, 강철과 나무 막대, 칼과 도끼, 창, 재주껏 고안한 온갖 무기를 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피가 철철 흐르는 손으로 벽에서 벽돌이나 돌을 빼서 무장했다. 생탕투안 시민들의 맥박과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들썩이고, 질주하듯 뛰었다. 그곳의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목숨을 내걸고 기꺼이 희생할 열정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며 끓는 물의 중심이 있듯 열광하는 군중의 중심은 드파르주의 술집이었다. 커다란 냄비 속에서 소용돌이 치며 끓어오르는 물방울들처럼 사람들은 이미 화약이나 땀으로 흥건히 젖은 드파르주에게 몰려들었고 그가 건네주는 무기를 받아들고 명령에 따랐다. 드파르주는, 누구는 뒤로 빼고 누구는 앞에 세우고, 이 사람에게서 무기를 빼앗아 저 사람에게 건네며 혼란의 끓는 점 속에서 사력을 다했다. (P307-308)


“자, 진군!” 드파르주가 우렁차게 외쳤다. “애국 동지들이여, 준비는 끝났다. 바스티유를 향해 돌격!”

프랑스의 모든 숨결이 ‘증오’라는 단어로 승화된 듯 거친 함성이 울려 퍼지며,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른 군중의 파도가 도시 밖으로 흘러넘쳤다. 경보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북이 둥둥 울리며 격렬한 파도가 천둥소리와 함께 새로운 해변으로 밀려갔다. 공격이 시작되었다. (P309)


시커멓고 위협적인 인파의 바다, 파도가 파도에 밀려오며 한층 높아진 파괴의 바다, 바다의 깊이는 여전히 가늠할 수 없고 위력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형태를 만들어내는 무자비한 바다, 보복의 함성, 고통의 용광로에서 굳어진 얼굴들 위에는 일말의 동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P315)


석방된 죄수 일곱 명과 창 끝에 꽂힌 피투성이 머리 일곱 개, 튼튼한 여덟 개의 탑이 있는 저주스러운 요새의 열쇠, 발견된 몇 개의 글자와 오래전에 심장이 터져 죽은 죄수들의 다른 기념물 등등, 그리고 1789년 7월 중순 파리의 거리를 크게 울렸던 생탕투안 사람들의 발소리, 아아, 신은 루시 다네이의 상상을 무찔렀다. 신은 이 발들이 그녀의 인생을 짓밟지 못하게 하실까! 그들은 흥분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위험한 자들이었다. 드파르주 술집 문 앞에서 포도주 통이 깨진 지 몇 년이 흘렀건만 그 붉게 물든 발자국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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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척한 몰골의 생탕투안 주민들은 겨우 일주일 남짓 의기양양하게 보냈다. 그사이에 사람들은 우애 넘치는 포옹과 축하 인사를 나누며, 얼마 되지 않는 딱딱하고 쓴 빵이나마 부드럽게 넘겼다. 드파르주 부인은 여느 때처럼 카운터에 앉아 손님들을 접대했다. 머리에 장미를 꽂지 않았다. 겨우 일주일이지만 수많은 첩자들이 주민들의 자비에 자신들의 목숨을 맡기게 될까 봐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 맞은편 가로등 불빛은 음산하게 흔들리며 그들을 비추었다.

드파르주 부인은 팔짱을 낀 채 아침 햇살과 열기 속에 나와 앉아 술집과 거리를 들러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술집이든 거리든 모두 누추하고 비참한 행인들이 무리지어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의 초라함 대신 명백한 권력 의식에 취해 있었다. ‘이 모자를 쓴 내가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지만 이 모자를 쓴 내가 이제 너희 목숨 하나 날려버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전에는 할 일이 없었던 헐벗은 맨주먹들도 이제 얼마든지 할 일이 있었으니, 바로 때려 부수기였다. 뜨개질을 하던 부인들의 손가락도 사람을 찢어 죽여본 다음부터 점점 잔인해졌다. 생탕투안의 외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수백 년에 걸쳐 조금씩 두드려 만들어온 이미지에 지난번 마지막으로 가했던 일격의 흔적이 뚜렷이 남았다. (P317-318)


멀리 펼쳐진 시골 마을은 그저 황폐할 뿐이었다. 초록 나뭇잎과 풀잎, 곡식들 모두 비참한 사람처럼 불쌍하게 오그라 들었다.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축 쳐졌으며 짓밟히고 파괴되었다. 집과 울타리, 가축, 남자, 여자, 아이들, 그것들을 품고 있는 토양까지도 하나같이 낡고 지쳐 있었다.

나리(흔히 덕망이 높은 시사로 여겨졌다)는 국가의 축복을 받아 모든 면에서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으며, 호사스럽고 빛나는 삶의 표본이었고, 그런 목적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나리’라는 계급은 온갖 악행으로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 명백하게 자기들을 위해 설계된 줄로만 알았던 세상이 이렇게나 빨리, 비틀어 짠 듯 메말라가고 자신들을 압박해오다니 놀랍기만 했다! 세상사의 변치 않는 법칙을 뭔가 근시안적으로 보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렇게 된 것이다. 부싯돌에서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짜내고, 고문대의 나사못을 너무나 자주 돌려 헐거워질 때까지 나리는 그 비천하고 까닭 모를 현상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 (P3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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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심했다. 파리로 가야 한다.

그랬다. 자석 바위가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바위에 부딪힐 때까지 항해를 해야 하리라. 그는 바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완인 상태로 떠나왔지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잘 설명하면 프랑스에서도 기쁘게 인정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선량한 사람들에게 신기루처럼 떠오르는 선행에 대한 낙천적인 환상이 떠올랐다. 심지어 자신이 잔인하고 격렬해지는 분노에 찬 혁명을 바르게 인도하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 (P347-348)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빠르게 끌어당기고 있었고, 조수와 바람도 곧장 그쪽으로 나아가도록 최적의 상태였다. 그는 믿을 만한 짐꾼에게 편지 두 통을 맡기며 자정이 되기 한 시간 반쯤 전에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말이 도버를 향해 움직이자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 관대함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위하여!” 가련한 죄수의 절규는 그로 하여금 웅크렸던 가슴을 펴게 했다. 그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남겨 두고 자석 바위가 끌어당기는 대로 흘러 갔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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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영국을 떠남으로써 자초한 위험보다 지금 훨씬 큰 위험에 빠졌음을, 지금에야 알았다. 자신을 둘러싼 위험이 급격히 커졌고 점점 더 커질 거라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최근 며칠 사이의 사건으로 보건대 이 여행을 제대로 마치기 힘들 거라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불안함도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추측되는 일에 비하면 그다지 암울하지 않았다. 미래가 걱정스러운 이유는 미지의 세계인 데다 희망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시곗바늘이 두어 번 도는 동안에 밤낮으로 자행된 끔찍한 학살이 축복받아야 할 수확기에 엄청난 혈흔을 남길거라는 사실은 그에게는 일만 년 후에나 일어날 일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요틴이라는 여자 이름을 가진 새로운 발명품’을 그는 몰랐고, 일반인들에게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머지않아 자행될 충격적인 일들도 아마 당시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조차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어떻게 그렇게 온화한 마음에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어 있겠는가?

다네이는 부당하게 구금당하고 고초를 겪고, 처자식과 무자비한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아니,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감옥 마당으로 들어설 때 충분히 품을 만한 비참한 심경이 되어 그는 드디어 라포르스 감옥에 도착했다. (P363-364)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나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선 사람의 시야에는 세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듯이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보였다. 그들은 유리창에서 물러났다. 박사는 뭔가 설명을 기대하며 친구의 납빛 얼굴을 바라보았다. (P375-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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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사가 다네이를 석방시키려고, 아니, 최소한 재판은 받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에게 당시 여론은 너무 강경했고, 급격하게 변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국왕은 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자유와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공화국은 세상을 상대로 승리, 아니면 죽음이라는 전쟁을 선포했다. 노트르담의 높은 탑에는 밤낮으로 검은 깃발이 나부꼈고 삼십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 프랑스 곳곳에서 지상의 압제자에 대항해 총궐기를 했다. 마치 용의 이빨을 널리 뿌려놓은 듯 언덕과 평원, 바위와 자갈, 충적토에서, 남쪽의 환한 하늘 아래, 북부의 구름 아래, 가을과 겨울 할 것 없이, 포도밭과 올리브 과수원에서, 짧게 깍은 풀과 옥수수 그루터기에서, 넓은 강의 비옥한 강둑, 해안의 모래밭에서도 똑같이 열매를 맺은 듯했다. 그런데 어찌 사사로운 근심으로 인민 공화국 원년의 범람하는 물결을 거스르려 하겠는가. 그것도 하늘의 창문도 닫힌 상태에서,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홍수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대홍수를 말이다.

폭력에는 중단도, 동정도, 평화도 없었으며 약해진 마음으로 휴식하는 기간도 없고, 시간을 재어 일정 시간만 휘두르는 일도 없었다. 시간이 처음 생겼을 때처럼 낮과 밤이 정기적으로 순환할 뿐이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어떤 환자가 열이 날 때처럼 나라 전체가 열병에 걸려 날뛰는 바람에 시간의 추이를 잃어버렸다. 사형집행인은 이제껏 부자연스러웠던 도시의 침묵을 깨고 왕의 머리를 시민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아름다운 왕비의 머리도 보여 주었다. 남편이 죽은 후 여덟 달 동안 과부로 수감되었던, 회색으로 변한 아름다운 왕비의 얼굴을.

하지만 이런 경우에 존재하는 이상한 이율배반의 법칙 때문에 불길처럼 빠르게 연소되는 것 같았던 시간은 왠지 느리게만 느껴졌다. 수도에 혁명재판소와 전국 곳곳에 오만여 개의 혁명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자유와 안전에 대한 보장이 사라졌으며, 악독한 죄인의 손으로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을 기소하는 피의자법이 발효되었고, 법을 위반하지 않았지만 재판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감옥에 우글거렸다. 이런 것들이 질서로, 현상으로 굳어졌고, 생겨난 지 몇 주일밖에 안 됐는데도 아주 오래전부터 시행되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무엇보다 태초부터 만인의 시선을 받았던 것만큼이나 날로 익숙해지는 한 가지 무시무시한 물건이 있었다. 바로 ‘기요틴(guillotine)’이라는 앙칼진 여자 이름을 가진 물건이었다.

기요틴은 인기 있는 농담거리였다. 사람들은 기요틴이 최고의 두통 치료제이며 머리가 하얗게 셀까 걱정하는 일을 막아주고, 피부색을 독특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준다고들 했다. 심지어 말끔하게 면도하는 솜씨가 국보급 면도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누구는 기요틴에게 키스하고 작은 창문으로 들여다보는가 하면 마대 속에 재채기를 했다고 수군거렸다. 이것은 새로운 인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기요틴은 십자가의 지위를 빼앗았다. 사람들은 십자가 목걸이 대신 기요틴 모형 목걸이를 걸었다. 기요틴에게 절을 했고, 십자가가 치워진 곳에서 기요틴을 숭배했다.

기요틴이 얼마나 많은 머리를 벴는지, 그 아래 땅은 오염되고 부패하여 붉은 색을 띠었다. 기요틴은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처럼 분해했다가 원하는 때에 다시 맞출 수 있었다. 기요틴은 달변가를 침묵시켰고, 권력자를 때려눕혔으며, 아름답고 선량한 사람들을 제거해 버렸다. 어느 날 아침에는 산 사람 스물한 명과 죽은 사람 한 명을 포함해 스물두 명의 고관대작이 일 분에 한 명꼴로 목이 베였다. 이 기구를 작동하는 집행관 우두머리를 성경에 나오는 힘 센 사람의 이름에서 따와 상송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기구로 무장하는 한 그는 자신의 별명보다도 훨씬 힘이 셌고, 훨씬 무모했으며, 매일 신전 문을 넘어뜨렸다. (P39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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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요. 하지만 한번 해보는 겁니다. 잘못 사용하면 인생이란 별 가치가 없지만, 그래도 노력해 볼 가치는 있지요. 만약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런 인생은 아무 가치도 없을 테니까요.” (P483)


지금 독방에 갇힌 찰스 다네이는 법정에서 이곳으로 돌아온 후 행여나 한 가닥 위안이 될 만한 망상 따위로 자신을 지탱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낭독되는 편지의 한 줄 한 줄이 사형선고로 들렸다. 그는 어떤 개인적인 영향력도 자신을 구할 수 없음을, 자신은 사실상 수백만 명으로부터 선고를 받았기에 몇 명의 힘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눈에 밟히는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 때문에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살아야 할 이유가 많아서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서서히 이쪽으로 놓으려 하면 자기도 모르게 저쪽에서 힘껏 움켜쥐었다. 게다가 이 손에 쥐었던 것을 놓았다가도 또다시 힘이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각은 성급해졌고, 심장은 거칠고 뜨겁게 뛰며 체념하려는 마음에 반기를 들었다. 잠깐이라도 체념하려는 마음이 들려고 하면 이내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아내와 아이가 이기적이라며 자신에게 항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괴로움도 처음뿐이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이 부딪혀야 할 운명은 조금도 불명예스러운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비슷한 길을 갔으며, 지금도 매일 꿋꿋이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이 얼마나 조용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느냐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장차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도 있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점차 평정을 되찾았고 정신이 고양될수록 감정은 더욱 차분히 가라앉았다. (P49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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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거리를 따라 죽음의 수레가 덜컹거리며 지나간다. 하루에 여섯 번씩 호송하는 마차는 기요틴에 포도주를 갖다 나른다. 상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된 이래 탐욕스럽고 게걸스러운 온갖 괴물을 합쳐서 하나로 만든 것이 바로 기요틴이다. 그러나 토양이 비옥하고 기후도 다양한 프랑스에는 아직 잎사귀하나, 이파리 하나, 뿌리 하나, 후추 열매 하나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 이렇게 공포심을 자아내지 않는다면 예측한 대로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자랄 텐데. 똑같은 망치를 가지고 사람을 내리쳐 보라, 똑같이 끔찍한 모습이 될 뿐, 똑같은 탐욕의 허기증과 압제의 씨앗을 뿌려보라, 틀림없이 똑같은 열매가 열릴 것이니.

여섯 대의 호송 마차가 거리를 지나간다. 강력한 마법사, 시간이여! 이 마차를 원래의 모습으로 바꿔놓아라, 되돌려 놓아라, 그러면 절대 군주의 마차이자 영주 귀족의 장신구이며, 매춘부의 치장실이자,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 아닌 도둑의 소굴이 된 교회가, 굶주린 수백만 농부의 오두막이 보일까. 천만에. 창조주가 정한 순서에 따라 장엄하게 일하는 위대한 마법사는 자신이 바꾼 것을 절대 되돌려 놓지 못한다. “만약 네가 신의 뜻에 따라 이 모습으로 바뀌었다면,” 지혜로운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선지자들이 미혹자들에게 말했듯 “영원히 계속되리라! 다만 네가 한낱 주술에 의해 바뀐 거라면, 그때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리라!” 호송 마차는 변함없이 그리고 절망적으로 이 길을 굴러가고 있다. (P53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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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도시에는 그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거기에서 봤던 죄수 중 가장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는 이야기였다. 많은 이가 숭고한 예언자 같은 얼굴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같은 날, 카턴보다 조금 더 일찍 같은 도끼 날에 희생된 사람 중에 어떤 유명 인사는 —어떤 여인이었다— 기요틴 아래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게 종이를 달라고 청했다. 만약 카턴이 머릿속 생각을 표현했다면, 그리고 그게 예언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적었으리라.

“나는 알고 있다. 바사드와 클라이, 드파루주, 방장스, 배심원, 판사 같은 옛 체제가 붕괴된 후 기나긴 대열의 새 압제자들이 더는 지금처럼 사용하지 않아도 결국 이 보복적인 도구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깊은 구렁텅이에서 솟아난 아름다운 도시와 현명한 사람들이, 시간이 걸릴 지언정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승리와 패배를 겪음으로써, 현재의 악행과 그것을 잉태한 예전의 악행이 스스로 속죄하고 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생명을 내려놓음으로써 다시는 보지 못한 그들이 영국으로 돌아가 평화롭고 번창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이 들고 허리는 구부정해졌지만 건강을 되찾은 그녀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환자를 정성껏 돌보며 편안하게 지내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이 가진 것으로 그들을 풍요롭게 해준 인자한 노신사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편안히 세상을 떠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들, 아니 대를 이어 그들 후손에게도 마음의 성소가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할머니가 된 그녀가 나의 추도일에 나를 위해 울어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와 남편이 이승의 행로를 마치고 지상의 마지막 침대에 나란히 누우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게 귀하고 존경하는 존재인 만큼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러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내 이름을 딴 사내아이가 한때 나의 길이기도 했던 인생길을 훌륭히 걸어가리라는 것을, 게다가 그 길을 훌륭히 걸어 내 이름을 빛내주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 이름에 묻었던 오점이 지워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공정한 재판관, 명예로운 인물이 된 그가 내가 너무도 잘 아는 이마에 금발, 그리고 내 이름을 딴 사내아이를 이 장소로 —그때가 되면 지금의 끔찍한 흔적도 사라져 아름다운 곳이 되리라— 데려오리라는 것을, 그리고 들린다.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리가.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은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행위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내가 알고 있는 곳보다 더 없이 편안한 곳이리라.” (P54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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