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셀던의 <천사의 분노>

영화 <천사의 분노> 1983년

by 노용헌

시드니 셀던의 작품은 한번 책을 잡으면 놓기 힘들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탄탄한 구성으로 유명하다. 그는 타자기나 컴퓨터로 직접 작품을 쓰지 않고 비서나 녹음기에 매일 50쪽 가량을 구술하는 방법으로 글을 쓴 뒤 다음날 교정하며 12∼15차례 탈고를 거쳐 최종 완성본을 내놓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사냥감인 듯 마이클 모레티가 피고석에 앉아 있었다. 30대 초반의 말수 없고 핸섬한 사내였다.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굴곡이 날카로운 얼굴 윤곽 때문에 거칠고 위험한 분위기가 풍겼다. 검은 머리는 근사하게 뒤로 빗어 넘겼고 뚜렷한 턱에는 뜻밖에 보조개가 패 있었다. 올리브색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가 깊숙이 자리 잡았다. 회색 맞춤 양복에 엷은 푸른색 셔츠, 거기에 셔츠보다 짙은 푸른색 실크 넥타이를 하고 반질반질 윤나는 수제 구두를 신고 있었다. 연거푸 법정을 휘둘러보는 눈동자 말고는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불같은 성격의 검사 로버트 디 실바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주시했다. 마이클 모레티에게서 차분한 분위기가 풍겨 나온 다면 로버트 디 실바에게서는 역동적인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그는 늘 약속 시간에 5분 늦은 사람처럼 인생을 살았다. 끊임없이 움직였고 보이지 않는 상대와 섀도 복싱하듯이 살았다. 작고 단단한 체구에 유행에 어울리지 않게 짧게 깎은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코와 얼굴에 남아 있는 흉터는 젊어서 한때 권투선수로 활약하던 때 생긴 것이었다. 한번은 링 위에서 상대를 죽였지만 후회한 적은 없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여전히 동정심이란 것을 몰랐다.

그는 불같은 성격을 가진 야심만만한 사내로 돈도 연줄도 없이 혼자 싸워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그 자리에 오르는 동안 겉으로는 시민의 공복인 체했지만 그 이면에는 냉혹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는 뭐든 잊거나 용서하는 법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법정에 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많은 수의 평검사를 거느리고 있었고 이번 재판도 그중 한 명에게 맡겨도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이번 모레티 사건만은 자신이 직접 다뤄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마이클 모레티는 신문 제1면을 장식하는 뉴스거리였다. 그는 미동부지역의 마피아 다섯 개 패밀리 중 가장 세력이 큰 안토니오 그라넬리의 사위였다. 안토니오는 늙었고 마이클 모레티가 그의 자리를 물려받기로 되어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마이클은 폭력 상해부터 살인까지 십 수 개에 달하는 죄목에 연루되어 있었지만 그중 하나라도 입증한 검사는 없었다. 마이클 모레티와 그의 명령을 받은 하수인들 사이에는 책임 소재를 은폐하기 위한 모종의 장벽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로버트 디 실바도 증거를 손에 넣으려고 3년간 애써왔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이번에 행운을 잡았다.

조직원 카밀로 스텔라가 강도짓을 하다가 살인을 저질렀는데, 사형을 면하는 대신 모든 걸 털어놓기로 한 것이다. 동부 지역의 가장 강력한 마피아 패밀리를 무릎 꿇게 하고 마이클 모레티를 사형실 전기의자로 보내는 동시에 로버트가 알바니에 있는 주지사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제까지 백악관에 입성한 다른 뉴욕 주지사들은 많았다. 마틴 밴 뷔렌, 그로버 클리블랜드, 테디 루즈벨트와 프랭클린 루즈벨트.... 로버트는 자신이 그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년에 주지사 선거가 있을 예정이었다. 뉴욕 주 내로라하는 정치 거물이 로버트에게 접근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다음 주지사 후보로 뽑힐 게 확실해, 바비(로버트의 애칭). 모레티만 잡아넣는다면 주지사 후보는 따 놓은 거나 다름없지.” (P13-15)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법정이군, 볼품은 없지만 그래도 여긴 자유의 심장이야.’

이 법정을 비롯해 다른 법정들 역시 문명과 야만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동등한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의 평결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모든 자유주의 국가의 핵심적인 권리였다. 제니퍼는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이런 제도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한밤중에 침대에서 끌려 나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란, 우간다, 아르헨티나, 페루, 브라질, 루마니아, 러시아, 체코슬로바키아 등등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만약 미국의 법정이 권위를 상실하고, 시민들이 배심원 재판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다면, 미국은 자유주의 국가로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제니퍼는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그 제도의 일원으로서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벅찬 긍지가 가슴속 깊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가치를 드높이고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제니퍼는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던 그녀는 이윽고 몸을 돌려 법정을 나왔다. (P29-30)


로버트 디 실바가 제니퍼를 향해서 말했다.

“이 여자에게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 미국 법에서 법을 운영 집행하는 권리나 의무를 가진 사람을 방해한 죄로, 폭력이나 협박을 수반하는 경우 중벌에 처해진다)를 적용하고 싶습니다. 사형 재판의 증인을 매수하고, 공모하는 등......”

그는 열을 내며 횡설수설 떠들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제니퍼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 죄목들 중 어느 하나도 증명할 수 없을 거예요. 모두 다 사실이 아니니까요. 내..... 내게 죄가 있다면 멍청했다는 것뿐이지, 다른 죄는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뇌물 같은 건 받지 않았어요. 난 당신 심부름으로 물건을 전달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월드맨 판사가 제니퍼를 보며 말했다.

“동기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주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소. 난 뉴욕 제2심 법원에서 이 일을 조사하도록 요청할 것이오.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당신의 변호사 자격 박탈에 대한 절차를 밟도록 할 것입니다.”

제니퍼는 갑자기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판사님, 전......”

“이상이오, 미스 파커.”

제니퍼는 잠시 그대로 서서는 주위의 적대적인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책상 위의 노란 카나리아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P34-35)


제니퍼 파커는 그날 저녁 단순한 뉴스거리로 언급된 게 아니라 아예 뉴스 시간 전체를 장식했다. 그녀가 지청장의 증인에게 죽은 카나리아를 배달했다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모든 방송채널마다 제니퍼가 월드맨 판사실을 나와 북새통을 이룬 취재진과 일반인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는 장면을 내보냈다.

제니퍼는 자신에게 폭우처럼 쏟아지는 언론과 세간의 관심이 믿기지 않았다. 사방에서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텔레비전 기자, 라이도 기자, 신문사 기자 등으로부터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가 노란 카나리아를 주었죠, 미스 파커?”

“마이클 모레티를 만난 적 있습니까?”

“디 실바가 이 사건을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하려고 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지청장이 당신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했는데, 맞서 싸울 생각입니까?”

모든 질문에 제니퍼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할 말 없습니다.”

CBS 저녁 뉴스에서는 그녀를 가리켜 ‘롱웨이 파커(앞뒤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Wrong Way Riegels 혹은 Wrong Way Corrigan이란 말을 패러디한 것. Riegels는 자기 팀 진영으로 공을 들고 뛴 풋볼 선수이며, Corrigan은 LA로 간다는 것이 영국으로 간 비행사이다)’라고 하며 잘못된 길을 간 여자라고 소개했다. ABC 뉴스 앵커는 그녀를 ‘노란 카나리아’라고 불렀다. NBC의 스포츠 해설가는 그녀를 공을 갖고 자기 팀 진영 터치다운 선 직전까지 뛴 풋볼 선수 로이 리겔에 비유했다. (P36-37)


애덤 워너는 그간 뒷조사했던 여자와 마주 대하게 되었다. 신문에서 제니퍼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애덤은 그녀에게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를 마주하자 비록 낡고 헐렁한 옷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리고 짙은 갈색 머리칼은 물기에 젖어 있었지만 그녀로부터 발산되는 아름다움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애덤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마이클 모레티의 재판과 관련해 당신을 조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미스 파커.”

“이제야 말인가요!”

제니퍼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전기 스파크처럼 튀긴 분노가 그녀의 내부에서 확 불길로 번져 폭발했다. 사건을 이제야 처리하다니, 나머지 인생까지도 망치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자신은 벌써 실컷 당했는데도 말이다.

제니퍼의 목소리가 떨렸다.

“더 이상 할 말은 아무것도 없어요. 돌아가서 그 사람들 좋을 대로 하라고 그러세요. 제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제가 아는 한 어리석음을 처벌할 법률은 없어요. 지청장은 제가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하지만 말이죠.”

그녀는 빈정거리는 듯 손을 내저었다.

“만일 제가 돈을 받았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있겠어요?”

목이 메여 말이 끊겼다.

“당신이..... 당신이 어떻게 하든 상관 않겠어요. 그냥..... 혼자 있게만 해 줘요. 제발, 그만...... 돌아가 달란 말이에요!” (P68-69)


애덤이 잠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만일 내가 당신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지 말라고 건의할 생각이라는 걸 알려준다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습니까?”

의외였다. 애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제니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뿔테 안경 속의 회청색 눈을 들여다보며 그를 응시했다.

“그게..... 그게 정말인가요?”

“당신에게는 변호사 자격이 굉장히 중요하겠죠, 안 그래요?”

제니퍼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안락하고 작은 법률사무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이 줄곧 나누었던 대화를, 법을 공부하며 보냈던 오랜 기간도 떠올렸다. 아버지와 약속한 그들 부녀의 희망과 꿈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동업자가 되는 거다. 부지런히 공부해서 학위를 따도록 해라.’

“네.”

제니퍼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대답했다.

“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면 당신은 아주 훌륭한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제니퍼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어요.”

그녀는 다짐하듯 되뇌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거야! 꼭.’ (P75-76)


제니퍼의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과 제도, 심지어 스스로에게조차 짓눌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벌써 오래전에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제니퍼는 그들의 두려움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자신감을 키워 준다는 것을 알고 결코 우월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녀는 자신을 성공의 표본으로 내세울 수는 없었지만, 그들과 그녀 자신 사이에는 한 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케네스 베일리가 제니퍼에게 프랜시스 조지프 라이언 신부를 소개해 주었다. 라이언 신부는 곱슬곱슬한 짙은 회색 머리칼이 귀 뒤로 말려 올라간 50대 후반의 상냥하고 정력적인 사람이었다. 언제 보아도 긴 머리칼의 그에게 제니퍼는 친밀감을 느꼈다.

라이언 신부는 때때로 교구민 중에 누군가가 사라지면 케네스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곤 했다. 케네스는 언제나 변함없이 집 나간 남편이나 아내, 딸 또는 아들을 찾아 주었지만 보수를 받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천국에 가서 받겠지요, 뭐.”

케네스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P93-94)


“조금이라도 분별력이 있다면 이 사건은 맡지 않는 게 좋아요.”

“어째서죠?”

“당신 자신을 표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오. 제니퍼, 나는 소문을 듣고 있어요. 신문이 집중사격을 하려 들고 있어요. 기자들은 얼씨구나 하고 당신에게 다시 총을 쏘아 대기 시작할 겁니다.”

“나는 변호사예요.”

제니퍼는 굽히지 않았다.

“또 에이브러햄 윌슨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나는 그 사람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녀는 베일리의 얼굴에 근심스러운 표정이 드리운 것을 보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 사건이 그렇게까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알려지지 않는다고요? 누가 기소를 했는지 알고나 있습니까?”

“몰라요.”

“로버트 디 실바예요.” (P107)


그것이 7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마이클에게는 그 7년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로자는 데리고 살기에 즐겁고 편안한 상대였으며 남편을 극진히 사랑했다. 그러나 마이클은 그녀가 죽거나 떠나더라도 자기가 별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단지 그녀가 해 주었던 일을 대신 해 줄 다른 여자를 구하면 되었다. 그는 로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실 마이클은 자기가 다른 누구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그에게서는 뭔가가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는 사람들에 대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고, 동물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였다.

마이클은 그의 아버지가 잔돈푼을 벌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을 보며 자란 탓에 자기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먼 친척이 되는 안토니오 그라넬리의 이야기를 들었던 때부터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았다. 당시 미국에는 스물여섯 개의 마피아 패밀리가 있었는데 그중 다섯은 뉴욕에 있었고, 그 가운데서도 그의 친척인 안토니오 그라넬리 마피아가 세력이 가장 컸다. 어린 시절부터 마이클은 마피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1931년 9월 10일, 권력이 다른 손으로 넘어가던 시실리아 베스퍼즈의 밤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하룻밤 사이에 마피아의 젊은 아이들이 피를 물들이며 이탈리아와 시실리로부터 건너온 나이든 40명 이상의 무스타시 페테즈를 몰아냈던 것이다.

마이클은 새로운 세대였다. 그는 낡은 방식은 내버리고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도입했다. 이제 모든 마피아가는 아홉 명의 전국위원회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마이클은 자기도 언젠가 그 위원회의 일원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P160-161)


기소된 마이클 모레티는 새로 들어온 검사보들을 살펴보면서 법정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나름대로 판단하면서 주의깊게 관찰했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일은 위험했지만 위험한 만큼 효과도 확실했다. 그는 너무 긴장되어 이것저것 묻지 못하면서도 지청장의 눈에 띄기를 열망하는 젊은 예비 검사를 이용할 작정이었다.

마이클은 마침내 제니퍼 파커를 선택했다. 그는 그녀가 경험이 없고 긴장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기려 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또 그녀가 여자이므로 남자들보다 더 많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이클은 자신의 결정에 만족해서 방청석에 앉아 있던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를 돌아다보고 제니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마이클은 지청장이 카밀로 스텔라에 대한 심문을 마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토머스 콜팩스를 돌아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반대심문하십시오.”

그러자 토머스 콜팩스가 일어섰다.

“괜찮으시다면 재판장님, 거의 정오가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제 반대심문이 도중에 중단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휴정했다가 오후에 반대심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휴정이 선포되었다. 기회는 바로 그때였다.

마이클은 그의 부하가 유유히 지청장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걸어가서 그들 틈에 끼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는 마치 검찰측의 일원인 것처럼 행동했다. 잠시 후에 그가 제니퍼에게로 걸어가서 그녀에게 커다란 서류 봉투를 건넸다. 마이클은 숨을 죽인 채 제니퍼가 그 봉투를 받아들고 증인실로 걸어가기를 바라면서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생각대로 움직여주었다. 그러나 마이클 모레티가 완전히 안심을 했던 것은 그녀가 봉투를 들지 않은 빈 손으로 다시 나왔을 때서였다. (P162-163)


그녀는 부인이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애덤 워너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이곳에 데려왔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여자들 중에 한 명이라도 그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또 그 사실이 언제나 비밀로 지켜질 수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그들은 술과 저녁 식사를 주문했고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제니퍼는 대체로 애덤이 이야기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그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미소를 짓거나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내가 이러면 저 사람에게도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제니퍼는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그녀는 불장난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환영이 그녀에게 달라붙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제니퍼의 내부에는 그녀 스스로도 풀려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깊은 열정이 있었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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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은 스튜어트 니드햄과 의논하려고 했던 일을 제니퍼에게 말해 줄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 이야기는 문제가 다 해결될 때까지 미뤘다 해도 될 것이었다.

“언제부터 캠페인을 시작할 건가요?”

“당에서는 내가 지금이라도 곧 출마선언을 해 줬으면 하고 있어. 난 만장일치로 당의 지지를 받게 될 거야.”

“그거 굉장하네요!”

그러나 제니퍼의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 꺼림칙한 것이 있었다. 말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지만 조만간 그것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정 애덤이 선거에서 이기기를 바랐지만 상원의원 경선은 그녀의 머리 위에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검(사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15세에게 아첨을 일삼아온 신하 다모클레스가 연회석에서 왕의 행복을 찬미하자 왕이 그를 왕좌에 앉히고, 그의 머리 위에 말총으로 검을 늘어뜨려 영광 속에도 항상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가르친 데서 유래함)에 다름 아니었다. 만일 애덤이 이긴다면 제니퍼는 그를 잃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개혁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출마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의 신변에 어떤 스캔들도 생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는 기혼자였으므로 만일 그에게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정치적으로 매장될 게 뻔했다.

그날 밤 제니퍼는 애덤과 사랑을 하게 된 이후 처음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깨어 있었다. (P235-236)


“코니 가레트 사건을 다시 재판에 청구해야겠어요.”

제니퍼가 단호하게 말했다.

테드 해리스가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잠깐만요, 제니퍼. 이미 기결사건이 불가능합니다.”

“기결사건이라니요?”

케네스 베일리가 물었다.

제니퍼가 설명을 했다.

“그건 민사사건의 일사부재리 원칙이 형사사건에도 적용된다는 뜻이에요. ‘소송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요.”

테드 해리스가 덧붙였다.

“일단 어느 사건이든 판결이 내려지면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재심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에겐 재심을 청구할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아니, 있어요. 우리는 저쪽 사람들에게 발표요구 수속 원칙에 관해서 따질 수 있어요.”

발표요구 수속의 원칙이란 정당한 소송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쌍방에 의해 수집된 모든 관련 사실들에 대한 상호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이션와이드 자동차회사는 재력깨나 있는 피고였어요. 그 덕분에 코니 가레트의 변호인이 정보를 얻지 못하도록 할 수 있었고요. 그들은 트럭의 브레이크 장치에 결함이 있는데도 그 사실을 기록에서 빼버린 거예요.”

그녀가 두 변호사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P252-253)


애덤은 제니퍼에게 “이혼은 메리 베스 생각이었어”라고 말하면서 베스와 나누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애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지만 제니퍼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음악을 듣는 듯 고조된 감정의 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는 애덤이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할 거라고 예상했고 그 상황을 아무런 감정의 동요없이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졌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제니퍼는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벅찼다. 그녀는 메리 베스와 있었던 일이 애덤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알고 있었다. 제니퍼는 어느 때보다도 더 애덤에게 사랑을 느꼈다. 그녀는 마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놓인 것 같았다.

애덤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믿어지지 않아. 베스는 진심으로 우리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 줬어.”

“믿기 어려워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얼마 전부터 우리는 뭐랄까..... 오누이처럼 살아왔어. 난 그걸 당신한테 말한 적은 없지만......”

그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베스는...... 성욕이 그리 강하지 않아.”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아내가 당신을 만났으면 해.”

제니퍼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난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요, 애덤. 어쩐지 불편할 것 같아요.”

“나를 믿어.”

“당신이 정 원한다면 그럴게요.”

“잘 생각했어. 차나 마시러 가지. 내가 태워다 줄게.”

제니퍼는 잠시 생각했다.

“나 혼자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P283-284)


제니퍼가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확신한 게 있었다.

“저는 법률이라는 단어와 법정이라는 단어가 약간은 두렵고 우리 생활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잠시 생각을 해 보신다면 우리 모두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 행한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가 법정 안에 있다는 것을 잊읍시다, 여러분. 그리고 다만 우리가 거실에 둘러앉아서 이 불쌍한 피고에게, 우리와 같은 인간인 피고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러면 배심원들은 제니퍼의 주문에 걸려든 듯 거실에 앉아 있는 착각을 하는 것이었다.

제니퍼가 나름대로 터득한 그 법률적 기교는 로버트 디 실바가 흉내 내기 전까지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한 재판에서 디 실바는 모두 연설을 하면서 그녀의 말을 끌어들였다. (P293)


제니퍼가 재판에서 이길 때마다 그녀의 책상에는 마이클 모레티가 보낸 카드와 함께 마흔여덟 송이의 장미가 놓여 있곤 했다. 제니퍼는 그때마다 카드를 찢어 버리고 신시아에게 꽃을 치워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마이클에게 꽃을 보내지 말라는 쪽지를 보냈다.

제니퍼가 그 사건을 이기고 법정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책상에는 예순 송이의 장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P295)


그날 오전 11시에 닥터 앙드레 몽토가 몬테카를로에서 전화를 걸었다. 교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닥토 몽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은 어떻습니까?”

제니퍼가 무관심한 듯 대꾸했다.

“그저 그래요. 검사결과는요?”

“좋은 소식입니다.”

닥터 몽토가 대답했다.

“무슨 병에 걸린 게 아니니까요.”

“그럼 왜 그런 거죠?”

“아기를 가졌습니다. 파커 부인.”

제니퍼는 멍하게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겁쟁이들은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제 생각으로는 첫아기인 것 같은데요.”

“네......”

“어서 산부인과부터 가 보도록 해요. 임신 초기에는 가능한 한 조심해야 하니까요.”

“알겠어요.”

제니퍼가 대답했다.

“전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언제 아기를 갖게 되었는진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기뻤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선물을 받은 그런 기분마저 들었다. (P308-309)


“애덤의 아기를 가졌어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메리 베스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함께 축하할 일이 생겼군요. 나도 그렇거든요.”

제니퍼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요?”

메리 베스가 웃었다.

“애덤과 나 역시 사랑했으니까요. 아가씨도 알겠지만.”

제니퍼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과 애덤은 이혼할 거잖아요.”

“이것 보세요, 아가씨. 내가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애덤과 이혼을 한다는 거죠? 난 그이를 사랑해요.”

제니퍼는 혼란스러웠다. 그 대화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은..... 당신 말로는.....”

“나는 애덤을 사랑하고 있어요. 전에도 얘기했지만 난 애덤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이를 사랑했어요.”

제니퍼는 지금 메리 베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바보 같은 말장난을 하면서 제니퍼를 놀리고 있었다.

“그만.”

제니퍼가 외쳤다.

“애덤은 당신과 잠자리도......”

메리 베스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아가씨도 참 딱하군요, 놀랍네요. 당신처럼 똑똑한 분이......”

그녀가 안됐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이를 너무 믿었군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제니퍼는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애덤은 나를 사랑해요. 우린 결혼할 거예요.”

메리 베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푸른 눈이 제니퍼의 눈과 마주쳤고, 그녀의 눈 속에 비친 적나라한 증오심이 잠시 동안 제니퍼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러면 애덤은 중혼자가 돼요. 난 절대로 그이와 이혼하지 않아요. 만일 내가 애덤과 이혼하고 당신과 결혼하게 한다면 그인 선거에서 질 거예요.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인 이겨요. 그러고 나서 우린 백악관으로 가는 거죠. 애덤과 내가요. 그이 생활에는 당신의 삶이 들어설 틈이 없어요. 절대로요! 그이는 단지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하지만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걸 알면 그런 생각은 곧 하지 않을 거예요. 애덤은 아일 원했으니까요.”

제니퍼는 끔찍한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려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뭘 좀 갖다줄까요?”

메리 베스가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니퍼는 눈을 떴다.

“그 사람에게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했나요?”

“아직은요.”

메리 베스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밤 그이가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면 얘기할 생각이에요.”

제니퍼는 메리 베스가 혐오스러웠다.

“당신은 정말이지.....”

“난 애덤의 아내예요. 당신의 그이의 창녀고요.”

제니퍼는 현기증을 느끼며 일어섰다. 그녀의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기절을 하지 않을까 겁이 났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니퍼는 문간에 멈춰 서서 잠시 문에 머리를 기댔다. 애덤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는 메리와 같이 잤고 그녀를 임신시켰다.

제니퍼는 몸을 돌려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걸어 나왔다. (P311-313)

영화 천사의 분노 03.jpg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마침내 애덤이 입을 열었다.

“제니퍼...... 메리 베스가 아기를 갖게 된 것 같아.”

그로부터 직접 그 사실을 들은 만큼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미안하게 됐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설명은 필요 없어요.”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애덤 워너가 다시 말을 이을 때까지 견디기 어려운 침묵이 흘렀다.

“오늘 아침 전당대회 의장에게서 전화를 받았어. 나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자는 얘기가 있었다는 거야.”

그가 잠시 머뭇거렸다.

“문제는 메리 베스가 임신을 했다는 건데 그것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이혼을 하기 몹시 곤란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난 사흘 동안 한숨도 못 잤어.”

그가 제니퍼를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당신한테 이런 말을 하기는 정말로 싫지만..... 일이 좀 수습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줄 수 없겠어.”

제니퍼는 절망감을 느끼면서 애덤을 쳐다보았다.

“그 사이에 우린 가능한 한 자주 서로를 볼 수 있을 거야.”

제니퍼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안 돼요, 애덤. 이젠 끝났어요.”

그가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진심은 아니겠지? 난 당신을 사랑해.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은 없어요. 당신은 부인과 아기를 어쩔 수 없잖아요. 당신과 나는 끝났어요, 즐거웠어요. 당신과 함께 보냈던 한순간 한순간이.”

제니퍼는 일어섰다. 더 앉아 있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절대로 다시 만나서는 안 돼요.”

그녀는 고통으로 가득 찬 애덤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제니퍼, 이러지 마. 제발 이러지 마! 우리는.....”

그녀는 그 나머지 말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서둘러 문 쪽으로 걸어갔다. 애덤의 삶으로부터 뛰쳐나오기 위해. (P321-322)


매키 부인이 미친 듯이 울었다.

“그놈을 마..... 막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마...... 막으려고 했지만 나는.......”

전화벨 소리가 짓눌러졌던 방 안 공기를 찢었다. 두 여인은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전화벨이 계속해서 울려 댔다. 어쩐지 그 소리에는 악마의 음성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제니퍼가 전화기 쪽으로 걸어가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조금 전 들었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저 당신이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내 아들은 어디 있죠?”

“참 잘생긴 녀석이야, 안 그래?”

“제발! 무슨 일이든 하겠어요. 당신이 원하는 거면 뭐든지 다.”

“당신은 벌서 다 했어, 미세스 파커.”

“안 돼요, 제발!”

그녀는 절망적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우는 소리가 듣기 좋은데.”

그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당신은 아들을 돌려받게 될 거야. 미세스 파커, 내일 신문을 읽어보라고.”

제니퍼는 기절할 것 같은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뭔가 빨리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애덤이 떠올려졌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유괴되어 살해까지 당할지도 모를 그 아이는 분명 그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애덤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4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녀에게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하나는 로버트 디 실바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프랭크 잭슨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아, 하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두 번째 방법은 FBI에 알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괴 사건을 능숙 능란하게 처리할 것이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여느 유괴 사건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몸값을 요구하는 일도 없을 것이었고, 설령 프랭크 잭슨을 체포한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조수아가 살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자체의 엄격한 방침에 따라 움직이는 FBI는 이 경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신속히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조수아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로버트 디 실바든 FBI든 선택을 해야 했다.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나서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전화번호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너무 떨려서 다이얼을 세 번이나 돌린 뒤에야 그녀는 제대로 통화할 수 있었다.

어떤 남자가 응답을 하자 제니퍼가 급히 말했다.

“마이클 모레티 씨와 통화하고 싶어요.” (P392-393)


제니퍼의 말을 듣기도 전에 조수아는 다시 잠이 들었다.

제니퍼가 거실로 되돌아온 것은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 간 줄 알았던 마이클 모레티가 아직까지 거기에 있었다. 어쩐 일인지 애덤 워너를 처음으로 만났던 때가 생각났다. 애덤이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그때가.

“마이클......”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그가 그녀를 보고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프랭크 잭슨은 어떻게 됐죠?”

“그 자식 이제 누구도 괴롭힐 수 없을 거요.”

제니퍼는 마이클 모레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이 사람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어. 그 보답을 어떻게 해야 하지?’

마이클은 침묵을 지키며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P422)


마이클 모레티가 조수아를 안전하게 데려오던 날 아침이었다. 묻지는 않았지만 제니퍼는 프랭크 잭슨이 죽었으며, 그를 죽인 사람은 마이클 모레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 앞에 서 있는 남자는 그녀를 위해 아들의 목숨을 구했고, 그녀를 위해 사람을 죽였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죠?”

제니퍼가 물었다.

마이클 모레티가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제니퍼는 주춤했지만 이내 자신을 마이클에게 맡겨 버렸다.

그들은 이 층에 있는 그녀의 침실로 올라갔다. 제니퍼는 빚을 갚는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제니퍼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마이클과의 섹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애덤 워너는 그녀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마이클 모레티는 그녀를 소유해 버렸다. 그는 제니퍼의 온몸 구석구석을 황홀한 느낌으로 가득 채웠고 신기한 만화경처럼 그녀 눈앞에 번쩍거리는 빛들이 매순간마다 계속 변하며 그녀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한동안 부드럽고 다감하게 그녀를 애무하다가 다음 순간에는 잔인하게 짓누르며 그녀를 요구했다. 그 시시각각 바뀌는 변화들이 제니퍼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가 그를 원하도록 애타게 만들면서 그녀로부터 물러났다가 다시 달려들었고, 그녀가 절정에 달할 때쯤이면 다시 물러나 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애원을 했다.

“제발 나를 가져요! 나를 가지라고요!”

마침내 그녀가 쾌감을 못 이겨 비명을 질렀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빚을 갚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예전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의 노예였다. 마이클은 그녀와 네 시간을 함께 있었는데 그가 떠났을 때 제니퍼는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어떻게 애덤을 아직도 사랑하면서 마이클 모레티에게 빨려 들어갈 수 있었을까? 토머스 아퀴나스는 악의 한가운데에 이르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제니퍼는 그 말이 사랑에도 맞는 말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가 일부는 깊은 외로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오랫동안 다시 만날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유령과 살아왔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기가 언제나 애덤을 사랑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사랑의 기억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P426-427)


마이클이 다음 말을 꺼냈던 것은 그들이 디저트를 먹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당신이 맡아 주어야 할 사건이 하나 있소.”

그녀는 마치 뺨을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제니퍼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떤 사건인데요?”

“내 부하 중에 바스코 감부티라는 녀석이 있는데 경찰을 한 놈 죽이는 바람에 잡혀 들어갔소. 그 녀석을 당신이 변호해 줬으면 좋겠는데.”

제니퍼는 그가 여전히 자기를 이용하려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다.

“미안해요, 마이클.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거기엔..... 당신의..... 그 친구들 일에는 끼어들 수 없어요.”

마이클이 능글맞게 씩 웃었다.

“아프리카 사자 새끼 얘기 들어 본 적 있소? 그 사자 새끼는 물을 마시려고 난생 처음으로 제 어미 곁을 떠나서 강가로 내려갔는데 고릴라가 그놈을 때려눕혔소.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고 하니까 이번엔 커다란 표범이 그놈을 길 밖으로 밀쳐 버렸지. 그다음엔 코끼리 떼가 몰려오는 바람에 밟혀 죽을 뻔했소. 그 사자 새끼는 혼쭐이 나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 제 어미한테 이렇게 말했소. ‘엄마는 알지.... 저기 바깥은 정글이라는 걸!’”

그들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저기 바깥은 정글이었어.’

제니퍼는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 정글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정글 밖으로 자유롭게 도망칠 수 있었다. 또 그녀는 규칙을 정해 두었고, 그녀의 의뢰인들은 그 규칙에 따라야 했다. 그러나 이제 마이클 모레티가 그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이곳은 그의 정글이었다. 제니퍼는 그 정글 속으로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그러나 마이클이 그녀를 위해 해 주었던 일에 비하면 그가 요구하는 것은 대단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432-433)


형사법조계는 좁은 세상이어서 소문은 재빨리 퍼져 나갔다. 제니퍼 파커가 마피아를 변호하고 있다는 말이 전해지자 선의를 품은 친구들이 그녀를 찾아와서 월드맨 판사와 케네스 베일리가 그녀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만일 그 깡패들에게 말려든다면 당신도 그들과 똑같이 먹칠을 당하게 돼요.”

제니퍼는 그들 모두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녀는 그들의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였지만 그런 충고가 자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녀는 마피아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 단지 그 조직의 구성원들 가운데 몇몇을 대리할 뿐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변호사였으며 자기가 하는 일로 인해 그 아버지가 부끄러워할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었다. 정글은 거기에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정글 밖에 있었다.

라이언 신부가 그녀를 만나러 왔다. 이번에는 친구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제니퍼. 내가 듣기로는 당신이..... 그러니까..... 나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던데요.”

“나쁜 사람이라는 게 누구죠? 신부님은 도움을 구하러 찾아온 사람들을 판단하시나요? 그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쫓아내시나요?”

라이언 신부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어떤 한 개인이 실수를 하는 것하고 타락이 조직화된 것하고는 다르지요. 만일 당신이 그런 사람들을 돕는다면 당신은 그들이 하는 일을 묵과하는 거예요. 당신도 그 사람들 중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저는 변호사예요. 신부님. 저는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있어요.” (P446-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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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마 블랑카호는 달빛을 받아 은은한 흰빛을 발했다. 제니퍼는 자기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며 그 배로 천천히 다가갔다. 애덤은 비밀경호원을 따돌리겠다고 했었다. 제니퍼는 조수아와 매키 부인이 민속춤을 구경하도록 적당한 자리를 잡아 준 뒤에 택시를 잡아탔다. 운전기사에게는 부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다 내려 달라고 했다.

제니퍼는 애덤에게 만나러 가지 않겠다는 전화를 걸려고 대여섯번씩이나 수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종이쪽지에 메모를 남겼다가 이내 그것마저도 찢어 버렸다. 그녀는 술집에서 애덤과 헤어진 이후 고민에 싸여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왜 애덤을 만나면 안 되는 지에 대해서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그를 만나보았자 좋은 일이 생길 리는 전혀 없어 보였다. 어쩌면 화를 자초할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애덤의 경력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정치인이었다. 냉소의 시대를 사는 이상주의자로, 미래를 위한 국가의 희망으로 비유되면서 그는 언론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지만 만일 그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로 뒷걸음질치게 된다면 현재의 그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던 바로 그 언론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버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제니퍼는 그를 보지 않기로 작정했었다. 그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여자였으며 이제는 마이클에게 속해 있었다......

애덤은 배와 부두를 연결하는 건널 판자 위쪽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P502-503)


마이클 모레티와 토머스 콜팩스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애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 됐든 애덤에겐 기회였다. 이번 일로 애덤은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 내가 당신을 면책시켜 준다면....”

애덤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나는 당신이 법정에서 충분한 증언을 해 주길 원합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겠죠?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원합니다.”

“그렇게 될 겁니다.”

“모레티가 당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자는 내가 죽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토머스 콜팩스가 불안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만일 그자가 나를 찾아낸다면..... 그렇게 되겠지만요.”

“그자가 당신을 찾아내지는 못할 겁니다. 우리가 협상을 하는 한은요.”

“내 목숨은 당신 손에 달렸습니다. 워너 의원.”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모레티를 원합니다. 당신과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당신은 정부가 당신에게 제공할 수 있는 모든 보호를 받게 될 겁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당신의 증언에 만족한다면 우리는 당신이 신분을 위장하고 어느 나라로든 떠나서 살 수 있도록 충분한 돈을 제공할 겁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당신은 다음 사항에 동의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마이클 모레티의 행위와 관련된 충분한 증언을 듣고 싶습니다. 당신은 대배심원 앞에서 증언을 해야 하고 우리가 모레티를 재판에 회부하면 당신은 정부 측 증인으로 나와 줘야 합니다. 동의합니까?”

토머스 콜팩스가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마침내 입을 열었다.

“토니 그라넬 리가 무덤 속에서 돌아누울 겁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또 내 명예는 어떻게 됩니까?”

애덤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은 수백 번이나 법률을 기만했고, 살인 청부업자들을 풀려나도록 한 장본인이었다. 가장 사악한 범죄 집단을 배후에서 도와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명예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고 있었다. (P523-524)


제단 위로 예수의 상이 그려진 조그만 예배당에는 제니퍼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었지만 기도를 할 수 없었다. 신앙심도 별로 없는 자신이 기도를 한들 무슨 이유로 하느님이 이제 와서 그녀의 청을 들어줄까? 그녀는 하느님과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두려움이 너무나 컸다.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힌 제니퍼는 계속 자신을 꾸짖었다.

‘만일 조수아를 아카풀코에 데려가지만 않았더라면.... 만일 그애에게 수상스키를 타게 하지만 않았더라면..... 만일 그 멕시코 의사를 믿지만 않았더라면..... 만일, 만일, 만일.....’

그녀는 하느님과 협상을 했다.

‘그 애를 낫게만 해 주세요. 그렇게만 해 주시면 당신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겠어요.’

그러나 제니퍼는 하느님을 부정하고 싶었다.

‘만일 하느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 아이에게, 다른 사람들을 해친 적이 없는 이 천진한 아이에게 이런 벌을 내릴 수 있을까?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 두는 하느님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

완전히 맥이 빠진 제니퍼는 더 이상 생각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녀는 닥터 모리스가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아드님은 어리고 몸도 튼튼해 뵈는군요. 수술이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그래, 모두 잘될 거야, 물론 그렇게 될 거야. 수술이 끝나면 조수아를 데리고 어느 곳이든 그 아이가 쉴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어. 조수아가 좋아한다면 아카풀코도 좋고, 거기서 조수아랑 책도 읽고 놀이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마침내 제니퍼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마음은 텅 빈 공간처럼 비어 있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건드렸다. 그녀는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닥터 모리스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니퍼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어떤 질문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P540-541)


집 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제니퍼는 조수아의 방으로 올라가서 문을 닫아걸고 아들의 침대에 누워 아들이 가졌던 모든 것들과 아들이 좋아했던 모든 것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세계는 이 방안에 있었다. 지금 그녀에겐 아무 할 일도 없었고 갈 곳도 전혀 없었다. 단지 조수아만이 있을 뿐이었다. 제니퍼는 조수아가 태어났던 바로 그날부터 시작하여 아들의 모든 기억들을 되살려냈다.

조수아가 첫 발을 떼고...... 조수아가 차, 차, 엄마, 가서 엄마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라는 말을 하고..... 조수아가 그 자그마하고 용감한 모습으로 혼자 학교엘 가고..... 조수아가 홍역에 걸려 아파하며 침대에 누워 있고..... 조수아가 홈런을 쳐서 제 편을 이기게 하고..... 조수아가 배를 타고..... 조수아가 동물원에서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고..... 조수아가 어머니날에 사인 온 하비스트문을 부르고...... 그 기억들이 영화장면처럼 그녀의 마음속에서 계속 지나갔다. 제니퍼와 조수아가 아카풀코로 떠났던 날에서 그 장면이 끊기기 까지.

아카풀코..... 거기에서 그녀는 애덤을 만나 그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자기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 죗값이야, 이건 내 지옥이야.’ (P550)


‘복수라는 음식은 차가울 때 먹는 게 제일이라는 스페인 속담이 옳아.’

마이클 모레티는 제니퍼가 어떤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될지 두고 볼 참이었다. 제니퍼 파커가 아직 살아 있는 건 그의 손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돌아올 것이었다. 그녀는 여자가 남자를 배반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자신을 배반했다고 마이클은 생각했다.

싱가포르에서 제니퍼는 한 번 더 마이클과 통화를 해 보려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속 통화중이었다.

“죄송합니다. 미국으로 연결된 회선은 모두 통화중입니다.”

“계속 애 좀 써주시겠어요?”

“당연히 그래드려야죠, 미스 파커.”

교환원이 교환대 옆에 서서 지켜보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가 그녀에게 의미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로버트 디 실바는 제니퍼 파커의 체포영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 계집년을 잡았어.’

그는 야만스러운 만족감에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P592-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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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죠?”

“죽은 자들의 집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저걸 명가(冥家)라고 그러지요. 그들로서는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가 어려우니까요.”

그가 제니퍼를 쳐다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제니퍼는 그의 차가운 눈을 들여다보고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다. 이어서 그들은 골든 피닉스로 갔다. 거기서 제니퍼는 그들이 채 자리를 잡고 앉기도 전에 투 경위에게 물었다.

“투 경위님, 저를 악어 농장과 이 죽음의 집들로 데려온 데는 무슨 이유가 있겠죠?”

그가 그녀를 쳐다보고 나서 분명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당신이 흥미를 가질 거라고 생각해서입니다. 특히 당신이 브조크를 풀어 주려고 여기에 온 이상에는요. 우리 젊은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유입된 마약 때문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미스 파커, 나는 당신을 그 젊은이들이 치료받는 병원으로 데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삶이 끝나는 곳을 보여 주는 것이 당신에게는 더 교훈이 되리라고 느꼈습니다.”

“그건 저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에요.”

“그건 견해차이겠죠.”

그는 차갑게 말했다.

“보세요, 투 경위님, 당신에게 돈은 얼마라도 드릴 수.....”

“누구도 내게 충분한 돈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가 일어서서 누군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퍼가 돌아다보니 회색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미스 제니퍼 파커?”

“그런데요.”

그들이 FBI 신분증을 꺼내 보일 필요는 없었다. 제니퍼 파커는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구인지를 알아차렸다.

“FBI입니다. 우리는 당신에 대한 체포영장과 국외로 달아난 범인에 대한 인도영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자정 비행기로 당신을 뉴욕으로 송환하겠습니다.” (P601-602)


콜팩스는 양고추냉이를 집어 그것을 고기 위에 살짝 얹었다. 콜팩스가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고기를 두 입째 베어 물었을 때였다. 갑자기 입 안에서 타는 듯한 느낌이 일더니 그 느낌이 온몸으로 퍼졌다. 마치 불 위에 올라앉은 느낌이었다. 곧이어 목국멍이 마비되어 숨이 막혀 갔고 그는 숨을 쉬려고 헐떡이기 시작했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해병대 상사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토머스 콜팩스는 목을 움켜쥔 채 상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리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아무 말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그의 몸에서는 불길이 점점 더 신속하게 번지면서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으로 그를 몰아넣고 있었다. 그의 몸이 몇 차례 끔찍한 경련을 일으키며 굳어들다가 마침내는 벌렁 뒤로 넘어져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해병대 상사는 잠시 그를 지켜보고 있다가 토머스 콜팩스에게 몸을 굽혀 그의 눈꺼풀을 까뒤집어 보고 죽은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나서 그는 도움을 청했다. (P622)


‘제니퍼 파커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어. 그녀는 나를 파멸시키려는 남자에게 몸을 주기까지 했어. 그 밖에 또 그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애덤 워너는 제니퍼가 낳은 아들의 아버지였다. 마이클은 이제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제니퍼는 처음부터 그를 속였었고 조수아의 아버지는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좋아, 그건 곧 실현될 예언이었어.’

마이클은 혼자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에게는 애덤 워너를 파멸로 이끌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제니퍼와의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애덤 워너를 협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폭로하게 되면 그것은 자신을 폭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도 했다. 마이클의 여자가 상원 조사위원회 위원장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마피아들이 알게 된다면 자신은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P629)


“우린 이 세상을 다 차지했어, 그런데 당신은 그걸 내던져 버렸어, 어째서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옛정을 생각해서 내가 당신을 끌어안아 주길 바라는 거야?”

마이클이 그녀에게로 다가와서 그녀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래줬으면 좋겠어?”

제니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은 이제 누구도 끌어안을 수 없어. 알아들어? 당신을 애인과 함께 강에다 처넣어 버릴 거니까, 당신들은 서로 황천길 동무가 될 수 있겠지.”

지노 갈로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기에......”

방 바깥쪽에서 뭔가 두들겨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이클이 책상 서랍에 넣어둔 권총을 꺼내 들었다. 총을 든 두 명의 연방수사관들이 뛰어들었다.

“꼼짝 마!”

일 초도 걸리지 않는 아주 짧은 사이에 마이클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권총을 들어 제니퍼를 향해 발사했고, 수사관들이 사격을 시작하기 몇 초 전에 총탄이 그녀의 몸에 박히는 것을 보았다. 제니퍼의 가슴에서 피가 튀는 것이 보인 다음 순간 그는 하나의 총탄이, 그리고 또 하나의 총탄이 그의 몸을 찢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제니퍼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자기의 죽음과 그녀의 죽음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고통스러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해머로 내리치는 듯한 총탄의 충격을 다시 느꼈고 그 뒤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P645-646)


애덤이 침대 가까이로 다가가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제니퍼의 얼굴은 하얀 베개와 대조되어 매우 창백해 보였다. 애덤은 그가 몇 년 전에 만났던 순진한 처녀, 화를 내며 그에게 대들었던 처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내게 돈을 주었다면 내가 이런 곳에서 살고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난 당신이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겠어요. 내가 원하는 건 나를 그냥 혼자 있게 내버려 둬 달라는 것뿐이라고요.’

그는 그녀의 용기와 이상주의와 연약함을 기억했다. 그녀는 정의를 믿고 그 정의를 위해 기꺼이 싸우려는 천사의 편에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는 그녀를 사랑했었고 지금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선택을 잘못했고 그 때문에 그들 모두의 삶을 망쳐 버렸다. 그는 자기가 살아 있는 한 죄책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650)

영화 천사의 분노 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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