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유크나비치의 <숨을 참던 나날>

영화 <물의 연대기> 2026년

by 노용헌


소설 <숨을 참던 나날>은 미국 소설가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해 ‘공인된 부적응자’로 살았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은 작가가 체험한 가정학대, 성폭력, 마약중독, 자기파괴, 사산 등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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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던 나날]

나의 딸을 사산한 날, 나는 분홍색 장밋빛 입술의 미래를, 생명 없는 부드러움을 떨리는 팔로 끌어안았고, 아이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입맞춤을 퍼부었다. 언니가 죽은 아이를 넘겨받아 입을 맞추었고, 첫 번째 남편도 넘겨받아 입을 맞추었으며, 어머니는 넘겨받았지만 차마 아이를 안고 있지 못했고, 포대기에 싸인 작고 생명 없는 아이는 병실 문밖으로 사라졌다. 간호사는 내게 안정제와 비누와 스펀지를 주었다. 그러고는 특별 샤워실로 데려갔다. 샤워실 바닥에는 의자가 하나 있었고 위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간호사가 말했다. 기분 좋죠. 그렇지 않나요. 물 말이에요. 그러고는 덧붙였다. 아직 출혈이 꽤 있어요. 그냥 그렇게 두세요. 나는 질에서 항문까지 찢어져 다시 꿰맨 상태였다. 몸 위로 물이 떨어졌다. (P15)


삶의 작은 비극들을 이겨내고 살아가기란 고되다. 비극들은 뇌 속에 있는 커다란 싱크홀 안으로 푹 빠졌다가 다시 올라오고, 그 사이에서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삶의 수렁에 무릎까지 빠져있을 때는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거기서 헤엄쳐 나오고 싶고,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아우성치고 싶을 뿐이다. 게다가 당신이 수영에 능한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때 저쪽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발견한다. 그 어떤 패턴도 없는 파도에 밀려 올라간 사람들은 머리만 둥둥 떠서 이쪽저쪽으로 부유하는데, 그 바보처럼 까딱거리는 머리들을 보며 할 수 있는 일은 흐느끼다가 웃는 것뿐이다. 웃음은 상실의 슬픔으로 착란 상태에 빠진 당신을 흔들어 깨울 수 있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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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의 딸이, 죽어버린 작은 소녀 물고기가 세상으로 나오자 의사와 간호사는 딸을 내 가슴 위에 올려주었다, 살아서 태어난 아기와 다를 것 없이.

나는 딸을 꼭 안고 딸에게 입을 맞추고 말을 걸었다, 살아서 태어난 아기와 다를 것 없이, 전혀 다를 것 없이.

그토록 긴 딸의 속눈썹. 여전히 발그레한 두 볼. 어떻게? 나는 모르겠다. 볼이 파리할 거라고 예상했다.

딸의 입술은 장미 봉우리.

기어이 사람들은 아이를 데려가 버렸고, 그때 마지막으로 나는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생각을 했다. 그래, 이게 죽음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죽음의 삶을 선택하겠다. 그리고 수개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병원에서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왔고, 나는 이상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볼 수는 있는데, 누가 나를 건드리면 움츠러들었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종일 침대에 누워 울다가 긴 신음을 뱉어내는 나날을 보냈다. 그때 내 눈에서 무언가가 사라져버렸던 것 같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계속 리디아? 리디아? 하며 사라져버린 그것을 찾았다.

사람들이 나를 돌봐줘야 했던 어느 날(누군가 내게 밥을 떠먹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 부엌 창밖을 보았더니 웬 여자가 우편함에서 편지를 도둑질하고 있었다. 마치 산짐승처럼 은밀했다. 여자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눈을 이쪽저쪽으로 굴리고 있었다) 이웃집 우편함을 하나하나 털어본 후 훔칠 것과 놔둘 것을 추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여자는 우리 집 우편함에 와서 내 편지도 하나 슬쩍 챙겼다.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먹고 있던 스크램블드에그를 다 뱉어내며 웃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머리를 갸우뚱하며 걱정했다. 다들 만화 캐릭터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내가 미친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내게서 영혼이 떠난 것 같았다.

짙은 푸른색 카펫 위에 선물로 받은 아기 옷들을 돌덩이와 함께 쭉 늘어놓고 보니, 내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또다시 나를 걱정했다. 언니. 첫 남편 필립. 일주일 동안 집에 와 있던 나의 부모. 낯선 사람들.

조용히 마트 바닥에 앉아 오줌을 싼 적도 있는데, 그때 나는 내 몸에 솔직하게 행동한다고 느꼈다. 마트 직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입고 있던, 알버트슨즈라는 마트 이름이 적힌 파란 코듀로이 앞치마를 기억할 뿐이다. 옛날 코카콜라 캔처럼 빨간 입술에 60년대식 비하이브 올림머리를 한 여자도 있었다. 과거로 순간이동이라도 하게 된 걸까,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렀고, 당시 유진시에서 같이 살고 있던 언니와 쇼핑이나 수영을 하러 가거나 오리건대학에 갈 때면 사람들이 아기에 관해 물었다. 나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거짓말을 했다. “아, 제 딸은 정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예요! 속눈썹이 정말 길답니다!” 심지어 2년이 흐른 뒤에도, 도서관에서 만난 아는 사람이 딸의 소식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정말 굉장한 아이예요. 제 삶의 빛이죠. 그 어린 것이, 어린이집에 가서 그림도 그린다니까요!”

거짓말을 그만두자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 나는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야기 끝에 매달리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P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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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과 다르다. 사실을 말하자면, 여자가 아기를 갖는 것은 우리가 소설을 쓰는 것과 같다. 더 정확히는, 생명을 품어 배가 불룩한 여자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을 상징하며 그것의 은유다. 모두가 살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야기를 수정하고, 잉태하고, 길러내고, 생산하는 것.

그러니 조언을 하나 해주려 한다. 이런 장엄한 서사성이, 이런 굉장한 상태가 도래하면 써먹을 수 있을 만한, 때가 됐을 때 견뎌낼 수 있을 만한 조언을.

돌을 모을 것.

그게 다다. 하지만 아무런 돌이나 모으라는 말은 아니다. 당신은 똑똑한 여자니까. 평범한 것들을 헤집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혼자서는 웬만하면 가지 않을 곳에 가라. 강둑으로, 깊은 숲속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는 해안으로, 모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돌무더기를 찾고 나면, 그 돌들을 오랫동안 바라본 후에 골라야 한다. 눈이 적응할 때까지, 오랜 기다림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기다려라. 그리고 상상력이 기존의 지식을 바꿔놓을 수 있게 하라. 그러면 회색 돌은 갑자기 창백한 잿빛이 되거나 꿈으로 흐려진다. 둘레를 따라 선이 그어진 돌은 행운을 나타낸다. 붉은 돌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대지의 피를 발견한 것이다. 파란 돌을 보면 그것에 믿음이 생긴다. 돌 위의 무늬와 얼룩은 다른 나라와 다른 영토에서 묻어난 것이고, 얼룩이 된 질문이다. 역암은 물의 자유 안에서 움직이는 땅이고, 매끄럽고 작아서 손에 쥐고 얼굴에 문지를 수 있다. 사암은 위안과 명료함을 준다. 셰일은 물론 이성적이다. 이런 평범한 손바닥 위의 세계 안에서 기쁨을 느껴라. 자신을 도와 새로운 생명이 올 것을 대비해야 한다. 고통을 표현할 말이 없을 때, 기쁨을 표현할 말이 없을 때, 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집에 있는 투명한 유리잔을 전부 돌로 채워라. 남편이나 애인이 뭐라고 생각하든, 부엌 조리대, 탁자, 창턱 위에 작은 돌무덤을 쌓을 것, 돌을 색, 질감, 크기, 모양에 따라 분류할 것, 그리고 더 큰 돌은 모아서 거실 바닥 한쪽을 따라 쭉 세워둘 것. 손님이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 쓰지 말고 생명 없는 것들로 정교한 미로를 지어라. 그리고 굽이치는 물처럼 돌 사이로 움직여라.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돌의 냄새와 소리를 알아채야 한다. (P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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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우리가 워싱턴주를 떠나 플로리다주에 있는 도시 게인스빌로 이사할 거라고 말했다. 그곳에 미국 최고의 수영 코치, ‘플로리다 아쿠아틱 수영팀’의 코치 랜디 리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 방에 혼자 앉아 생각하던 것이 기억난다. 뭐라고? 별안간에 이사하려는 이유가 고작, 뭐? 빠,른,기,록. 때문이라고? 그것 때문에 북서부의 나무와 산과 비와 초록을 버리고 모래와 악어가 득실대는 곳으로 가겠다고? 우리 가족은 플로리다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플로리다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전부 수영장에 있었다. 내가 신뢰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 살면서 그럭저럭 기분이 괜찮던 순간들은 전부 수영장에 있었고, 그곳은 내가 누군가의 딸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나를 위해서 이사한다고 말하는 걸까? 나는 이사 가고 싶다고 한 적이 없다. 왜 떠나고 싶겠는가?

나는 나의 수영 코치를 정말 좋아했다. 내가 아는 남자 중 유일하게 내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수영 연습 도중 내 다리 사이에서 피가 흐르자 나는 내가 암에 걸려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론 코치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나는 하루에 6시간, 일주일에 6일을 론 코치와 함께 수영 연습하며 보냈다. 론 코치는 내 팔 동작을 고쳐주었다. 내가 지쳤을 때 힘을 주었다. 경기에서 우승하면 나를 안아 올렸고, 우승하지 못하면 팔과 수건을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그러면 론 코치는요?”라고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답했다. “그 사람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잖아.”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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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다섯 통 왔다.

첫 번째 장학금 제안서는 손에 드니 시원하고 묵직했다. 브라운대학교에서 온 것이었다. 브라운대학교의 빨갛고 까만 로고에서 충성심이 느껴졌다. 손가락 끝으로 봉투를 스치듯 만졌다. 봉투가 부드러웠는데, 종이에서 차별성이 드러났다. 나는 봉투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눈을 감았다. 심장에 대보았다. 봉투를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나의 내면에 무언가를 향한 믿음이 생길 뻔했다.

집에 들어와서 봉투를 부엌 식탁에 올려놓았다. 봉투는 저녁 먹는 내내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우리 가족은 거실에서 TV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시트콤 〈바니 밀러〉가 나오고 있었다. 귀에 피가 맺힐 듯했다.

저녁을 다 먹고 시트콤 〈택시〉도 끝나자, 아버지는 담배를 세 개비 피우더니 드디어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도. 나도.

우리는 부엌 식탁에 앉았다. 평범한 가족들은 아마 그렇게 모여 앉겠지. 어머니와 나는 숨을 쉬었다. 편지를 여는 아버지의 손놀림이 저능아보다 느렸다. 아버지는 조용히 내용을 읽었다. 나는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 눈처럼 파란색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수영을 했다. 어머니는 내 옆에 술 취한 바보처럼 앉아서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도닥였다. 나는 혓바닥을 깨물지 않으려 애썼다.

마침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75퍼센트 장학금이라고. 잘난 척하는 놈들 다니는 학교 주제에. 금수저 계집애들이랑 돈 많은 머저리들이 다니는 학교잖아. 어머니는 창문 너머 플로리다의 밤을 바라보았다. 나는 브라운대학교 로고가 인쇄된 종이를 응시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돈은 있었다. 아버지가 다음에 뱉은 말에서 문제가 뭔지 알 수 있었고, 담배 연기가 내 얼굴 주위를 감돌며 수치를 남겼다. 네가 그렇게 잘났냐?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나는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말을 삼켰다.

두 번째 편지는 노트르담대학교에서 왔다. 다시 우리는 부엌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 아버지, 딸. 담배 연기는 거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말한다는 것의 포악함을 알았으니까. 어머니는 머리카락을 한 타래 잡아 비비 꼬았는데, 저러다가 머리가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만두었다. 아버지는 왜 안 된다고 했을까? 그럴 수 있으니까.

세 번째 편지는 코넬대학교에서 왔다.

네 번째 편지는 퍼듀대학교에서.

안 돼.

플로리다의 한 부엌 식탁에서.

우리 집의 모든 방에서 아버지의 무거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딱 한 곳만 빼고. 내 방은 내 몸의 촉촉함과 어두움을 담고 있었다. 방에서는 내 피부와 수영장 소독약과 대마초 냄새가 났다. 그동안 나는 전면의 창문 두 개를 열고 도망친 소녀들의 밤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7월이 오고, 나약한 소녀라면 질식했을 만큼 땀 냄새로 공기가 텁텁해진 어느 밤, 나는 홀로 침대에 누워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떠난다, 방법은 상관없다. 그날 밤 어찌나 세게 자위를 했던지 피부가 까졌다. 잠이 들기 직전에는 여행 가방을 상상했다. 우리 집에 있는 가장 큰 가방을. 차고에 있는 큰 가방은, 아버지의 골프 가방과 과거의 삶이 담긴 박스 뒤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검은색이었고 크기는 저먼 셰퍼드처럼 컸다.

소녀의 분노를 넣을 수 있을 만큼 컸다. (P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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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티 말이 맞았다. 잠이 왔다. 하지만 꿈꾸는 듯한 느낌은 없었기 때문에 약을 하나 더 달라고 했다. 여자 두 명이 더 왔다. 수영 선수 같은 외모는 아니었다. 너무 말랐다. 길고 떡진 머리, 반짝이 네일 폴리시, 튜브톱에 리바이스에 플립플롭 차림이었고, 낄낄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LSD를 먹고 춤췄다.

그날 밤 에이미가 나를 데리고 기숙사에 가려고 했는데, 몬티가 나를 잡았다. “내가 데려다줄게, 내가 데려다준다니까.” 몬티가 고집을 부렸다.

집에 오는 밤길은 평소보다 더 즐거웠다. 이상하게도 기억이 생생하다. 새벽 3시, 어쩌면 4시였다. 칠흑 같은 밤, 따뜻한 공기, 우리는 캠퍼스에 있는 빛나는 인공 연못에 잠시 멈추었고, 나는 옷을 입은 채 연못에 누워 웃고 또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나 좀 봐! 나 오필리아야!”

몬티는 나를 바라보았고 약쟁이 특유의 웃음을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한꺼번에 두 개 먹어볼래?”

“어떻게 되는데?”

“뭔지 알고 싶지 않아?”

“어떻게 되는지만 알면 돼.” 내가 센 척하면서 말했다

나의 대학 수영 선수로서의 경력을 살펴보면, 그때쯤에는 근사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경기에 출전하면 끝까지 완주하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결승선에서 굳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내가 빠져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때 나는 입이 “네” 모양으로 영원히 고정되어 버린 여자가 되어있었다. 내가 원한 건 경험뿐, 특히 내 뇌를 마비시켜줄 수 있는 경험. 나만의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주의였다. 나만의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만의 ‘누군가 제발 나를 사랑해줄 수 없나요’. 그때의 나라면 입에 뭐든 넣었을 것이다.

“음, 이 작고 예쁜 알약은 먹으면 진정 효과가 있고 꿈꾸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즉시 입을 열고 그 약을 먹었다.

몬티가 말했다. “그럼 난 햄릿인가?”

“좆나 당연하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나는 소리 질렀고, 수중 조명이 반짝이는 25센티미터 깊이의 물속에서 뒹굴었다. 캠퍼스 경찰이 나타나 ‘난 진짜 경찰이 아니야’ 종이 위에 무언가를 써서 우리에게 건넨 뒤 집에 가라고 했다. 경찰이 떠나자 우리는 그 종이를 먹었다. 그러고는 나무 밑에서 섹스했다. 나는 갑자기 내 바지가 낯설어 보였고 너무 정신이 없어서 할 마음이 안 생겼지만, 몬티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우리는 있는 힘껏 달려 관목 속으로 뛰어드는 게임도 했다. 다음 날 수영 연습에 나타난 내 몸 여기저기에 풀과 나무가 붙어있었고 긁힌 상처도 있었고 머리는 솜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한 번 더.

나는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색색의 알약을 다 먹어보고 어떤 기분일지 알고 싶었다. 아니다. 색색의 알약을 다 먹어보고 아무 기분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조차 불타는 소녀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느 밤에는 몬티의 집에 가자 거울 위에 흰색 가루가 기다랗게 준비되어 있었다. “봐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야! 여기 양귀비 꽃밭이다!” 그 흰 가루를 들이마셨고, 지각과 감정을 내쉬었다.

그 지하실에 같이 있던 사람들은 색다른 교육법으로 내게 러벅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누군가의 아버지가 납치 살해되었다. 경찰이 가축우리의 말발굽과 소똥 밑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형제는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었는데, 죽기 전에 깨진 거울 조각으로 여자 애인을 살해했다. 누군가의 어머니는 누군가의 일곱 살짜리 형제와 열두 살짜리 자매를 죽였다. 예수가 죽이라고 시켜서. 그 아이들은 사악해, 예수가 어머니의 귓속에 속삭였다. 한 여자의 친척은 소아성애자였는데, 가족 중에 그를 감옥에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어서 대신 다락방에 살게 했다. 어떤 여자의 형제는 국경에서 마약 밀수를 했다. 한 남자의 친한 친구는 멕시코 사람이었는데, 두 손과 성기가 잘린 채 기찻길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잘린 손과 성기는 비닐봉지에 들어있었다. 몬티의 이복형제는 이웃에 사는 지적 장애가 있는 소녀를 상습적으로 강간해서 주립 병원에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외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극한의 이야기들…… 피와 부도덕성이 들끓는, 너무나도 무서운 이야기들…… 이런 것들은 날 기분 좋게 했다. TV 같은 효과가 있었다. 망가진 딸 같은 기분이 줄어들었다. 실패한 학생 같은 기분도. 걸레 같은 기분도. 한물간 운동선수 같은 기분도. 그 지하실에 있던 것들로 인해 내 몸에서 온갖 감정이 빠져나갈 수 있었고, 내가 누군지 혹은 내가 왜 나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 알 필요가 없었다.

똑똑.

똑똑똑.

똑.

나는 2학년이 되었고, 그 지하실에 갈 때는 거의 언제나 혼자였다. 그곳에 누가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상관없었다. 벽에 어떤 포스터가 있는지도. 똥색 소파에 뭐가 묻어 있는지도. 내가 관심 있던 건 탁자 위에 준비된 약과 도구뿐이었다. 그곳에는 숟가락과 솜이 놓인 쟁반, 라이터, 주사기가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었다. 몬티가 말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디다 놔줄까?”

나는 답했다. “여기.”

그리고 혈관이 보이도록 세게 팔을 때렸다. (P7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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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벅에 살던 시절 나는 잠시 좀비가 되었다. 실을 뜯어 먹는 좀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웩, 나는 식인종이 아니다. 그때 나는 고기능 좀비였다. 지금, 당장. 주변을 둘러보면 나 같은 사람을 잔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어느 날 밤에는 좀비랜드에서 의학 박사를 하나 만났는데, 코끼리도 못 버틸 만큼의 마약을 들이마시는 사람이었다. 그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의사가 타고 있음”이라고 쓰여있었다. 어떤 경찰은 총상 때문에 만성적인 허리 통증이 있었는데, 마약을 작은 갈색 담배로 말아 피우곤 했다. 멕시코에서 온 조각가는 환각 성분이 있는 페요테 선인장으로 약을 만들었다. 어떤 여자는 낮에는 아이 돌보는 일을 하고 밤이 되면 현실을 떠났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무거운 눈꺼풀로 아이를 돌보았다. 내 문학 교수, 수영 선수 두 명, 축구 선수, 유명한 레스토랑 주인, 음악가, 예술가, 그렇다. 전부 약에 취한 좀비였다.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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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대학에서 낙제당한 후, 오스틴의 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똥 같은 원룸에 혼자 살기 시작했다. 혼자 살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또 6주 동안 강제로 약물 및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한 상담을 받게 되었다. 상담은 소외 계층을 위한 의료 시설의 지하에 있는 굉장히 이상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는 가난한 사람들, 멕시코인, 비혼모, 아프리카계 미국인, 그리고 나도 있었다. 거기서 나는 “영혼의 장벽을 허물어뜨려 인생이란 여정의 의미를 찾을” 예정이었다. 또 다른 강령. 더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기독교인들. 그곳에는 ‘도로시’란 이름의 여자도 있었다.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이기도 했고, 나는 거기서도 형기를 채웠고, 또 증명서를 받았다. 장담하건데 나는 “인생이란 여정의 의미”를 찾았다. 결국에는.

그러니 이것은 중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단지 내게 언니가, 열다섯 살 때부터 열일곱 살 때까지 가방에 면도날을 들고 다녔던 언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언니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기까지 기다리며, 과연 자신이 그 오랜 기다림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인하려 했다.

여자의 첫 번째 시도.

나는 단지 내게 어머니가, 중년의 나이에 수면제 한 통을 집어삼킨 어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오직 수영 선수인 딸만 집에 남아 어머니의 의지를 똑똑히 목격했다.

여자의 첫 번째 시도.

이제 나는 그 의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어떤 어머니들과 딸들의 의지다. 그것은 생명을 품고 죽일 수 있는 몸으로 사는 생에서 기인한 의지다.

그것은 끝내고 싶은 의지다. (P90-91)


내가 아는 것을 말해보겠다. 우리, 망가진 여자들은 자신에게 타인의 친절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누군가가 친절을 베풀면 펄쩍 뛴다. 친절은 위협적이다. 굉장히, 왜냐하면 내가 타인의 친절을 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에는? 내게 친절을 누릴 자격이 있음에도 나를 저 깊은 곳, 슬픔의 우물 속에 숨겨놓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심이다. 우물 안에 갇혀있는 것이 자식에게 예정된 비극적인 삶보다는 낫겠다는 이유로 자식을 우물 속에 버리는 것과 같다. 내 안의 작은 소녀를 죽였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죽인 것과 꽤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다 부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저지른 짓은 어느 날 밤 술에 취해서 필립의 얼굴을 한 대 때린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재능 있는 음악가이자 화가, 세상에서 가장 수동적이고 부드러운 남자의 얼굴을 때렸다. 있는 힘껏,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고 싶다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넌 원하는 세 없어. 네가 원하는 게 없으니까 내가 죽을 것 같다고!” 우아하지 않은가. 영악하다. 성숙하고, 기막힌 감정 표현이다. 과연 나는 내 아버지의 딸이다. (P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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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아래서]

가족은 해변에 있었다. 원래 우리가 함께 해변에 놀러 가는 화목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성인이 된 언니와 나는 플로리다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러 갔다. 우리가 부모를 보러 간 것은 죄책감 때문이었다. 우리가 부모를 보러 간 것은 수치심 때문이었다. 우리가 부모를 보러 간 것은 망상 때문이었다. 우리가 부모를 보러 간 것은 다 자란 여자들은 바보이기 때문이다. 왜 갔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졸랐던 것 같다. 나는 스물여섯 살. 언니는 서른네 살이었다.

어머니는 더 짧은 한쪽 다리와 함께 모래사장을 지켰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두 딸은 세인트어거스틴의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는 물속에서 놀며 자신을 잊었다. 자매, 자아, 아버지, 기억 상실을 잊었다. 플로리다 물은 온도가 체온 같다. 파도는 날씨만 험하지 않으면 잔잔하다. 몸을 부드럽게 굴려 낸다.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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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키지가 말했다. “네 인생 최고의 사건이 뭐야?”

나는 바보처럼 앉아서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우리 둘 다 최악의 사건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최고의 사건은 없었다. 있었나? 최악의 사건만 떠올랐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대답했다. “수영을 시작한 것.”

“왜 수영인데?” 키지가 질문하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잘하는 건 그것뿐이었으니까.”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잘하는 게 수영밖에 없지는 않잖아.” 키지는 그렇게 말하고 커다란 레슬러 팔뚝을 내 어깨 위로 둘렀다.

씨발. 이거구나.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군. 키지의 피부에서 나는 냄새는..... 누군가의 아버지에게서 날 만한 냄새였다. 에프터 세이브와 땀과 위스키와 라구 소스가 섞인 냄새. 이제 키지는 내가 섹스를 잘한다고 할 것이다. 나를 ;파티 걸(창작 수업 때 키지가 내게 붙여준 별명이었다)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켄 키지를 위해 다리를 벌릴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금발이 하는 짓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고, 나 같은 여자에게 남자들이 으레 하는 짓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키지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했다. “난 작가들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걸 정말 많이도 봤어. 내겐 재능이 있어. 내 손 안에 있다고, 다음에는 뭘 할 생각이야?”

나는 눈을 뜨고 내 손을 바라보았다. 손은 끔찍이도 멍청해 보였다. “다음?”

“무슨 말인지 알잖아. 뭘 하며 살 거냐고. 다음 할 일은 뭐야?”

내게는 계획이 없었다. 슬픔은 있었다. 분노도 있었다. 성적 욕망도 있었다. 사람보다 책을 좋아했다. 술과 마약에 취하고 섹스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 이런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이 이야기를 쓰며,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서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부드럽게, 조용하고 작은 소리로, 그가 내게 했던 질문. 그건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할 만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나는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이키델릭하고 굉장한 연애를 꾸며낼 수도 있다. 아니면 섹시한 연상의 남자와 연하의 여자가 벌이는 성적인 모험을 꾸며낼 수도 있고, 뭐든 쓸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수백만 가지의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키지는 내 생애 최고의 거짓말쟁이였다.

집에 돌아온 나는 가르마 왼쪽에 있는 머리를 전부 밀어버렸다. 거울 속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한 여자는 등 위로 긴 금발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다른 여자는 머리를 바싹 깎았고 얼굴 위로 아름다운 남자의 골격을 드러냈다.

나는.

누구지.

오리건주립대로 돌아가 수업을 들었다. 한번은 문예창작과에 갔는데, 레슬러처럼 덩치가 큰 남자가 내 옆을 지나가며 짝짝이가 된 머리카락을 쳐다보다가 어깨를 부딪쳤다. 분명 작가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작가 같은 것에 누가 관심을 두는가, 나는 관심 없다. 계속 걸어가자. 하지만 내 심장은 가슴 속에서 거의 터질 듯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키지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키지는 간이 완전히 망가졌고, 결국에는 C형 간염에 걸렸다. 1997년에는 뇌졸중을 앓았다. 그 후에 암에 걸려 죽었다. 하지만 내 소견으로 키지는 물에 빠져 죽었다.

물에 빠져 죽는 데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P159-161)

영화 물의 연대기 16.jfif

[촉촉한 것들]

분노란 우스운 것이다.

분노는 평생 사람의 마음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가 완벽하고 아이러니한 순간에 밖으로 튀어 나간다. 내가 왜 문학 박사 학위를 땄는지 알고 싶은가? 오리건주립대학교 대학원의 소설 창작 워크숍에서, 작가 이창래가 내 글을 두고 “진부하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척하고 창작 워크숍에 잠입했다. 키지를 만나고 난 후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창래가 내 글과 내 글의 정서가 진부하다고 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려줄까? 이런 생각을 했다. 너, 깜깜한 술집 뒷골목에서 한번 보자, 우쭐대는 면상을 제대로 갈겨줄 테니까. 이 재수 없는 새끼야.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은 아니다. 내 말은, 생각한 것을 전부 종이에 쏟았다가는 결국..... 잡혀가게 될 거라는 말이다. (P185)


이번에는 내 삶에 관한 글을 섰다. 아버지들과 수영과 섹스와 죽은 아기들과 익사에 관해서, 조각 같은 짧은 글을 써서 두서없이 배열했다. 내가 이해하는 내 삶은 그런 모양이었다. 가장 적확해 보이는 언어로, 이미지와 글 조각과 비선형적이고 시적인 구절로, 내가 제출한 글의 제목은 <물의 연대기>였다.

내 손에서 무언가가 탄생하고 있었다. 욕망과 언어와 관련된 무언가가.

작가 이창래에게, 그런 생각을 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오래전 나를 화나게 해줘서 감사하다. 내 멋대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네메시스. (P189)

영화 물의 연대기 17.jfif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죽은 것들을 생각하는 여자였다. 항상. 어쩔 수가 없었다. 죽은 딸들, 죽은 아버지들. 죽은 무지개송어, 나는 몸과 몸이 충돌하기를, 해나가 내 안에 있는 생각을 부숴 없애주길 원했다. 그 결과로 내가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었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어쩌면 어부에게 잡힌 무지개송어가 물 표면에, 이내 땅에 몸을 내던지고 팔딱거리며 삶과 죽음의 싸움을 벌일 때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기어이 도망쳐 물로 돌아가는 물고기도 있고, 잡아먹히는 물고기도 있고, 살아남기에는 너무 약해 그저 물에 떠내려가는 물고기도 있다. 두들겨 맞고 상처 입은 몸들, 아니면 어떤 물고기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죽기도 한다. 이건 자살일까? 아니면 새 삶을 만드는 것일까? (P204)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나 자신의 끝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죽음 근처에 가고 싶었다. 정말로 죽음 근처에 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랬을 수도.

프로의 손에 맡겨져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침착한 사디스트, 지식인, 왜냐하면, 그는 내 요청을 받아들여 더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이 고통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 고통을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머니 생각이 났다. 최면 상태에서 나를 낳았던 어머니, “도로시? 아픈 곳이 있나요? 아픈 곳이 어디죠?”

처음에는 “여행”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와 같이 있고 싶었다. 그가 나를 아프고 즐겁게 해주길 바랐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짜증이 났다. 그런 질문은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그냥 하던 거 하면 안 될까? (P218-219)

영화 물의 연대기 20.jfif

나는 캐시 애커와 수영했다.

내가 캐시 애커와 수영했던 곳은 베스트 웨스턴 호텔의 조붓한 실내 수영장이었다. 물에 소독약이 너무 많았다. 정말이다. 나는 수영장 소독약에 대해 빠삭하다. 캐시의 수영복은 검은색과 파란색이 섞여있었다. 내 수영복은 진한 빨간색이었다. 캐시의 몸 여기저기에 타투가 있었다. 머리는 백금색이었고 갓 깎은 잔디처럼 짧았다. 온갖 은붙이가 얼굴과 귀에 볼록하게 붙어있었다. 나는 한쪽 머리는 바짝 깎고 다른 쪽은 브렉 샴푸 광고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금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마 우리는 예쁜 소녀의 상처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캐시 애커와 수영을 할 수 있던 것은 내가 유진에서 <투 걸스 리뷰>라는 잡지를 만든 덕이었다. 유진에서는 모두가 잡지를 만든다. 당시에 나는 두 번째 남편과 철길 옆의 임대주택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남편과 술과 약에 취해서 나란히 앉아 있다가 말했다. “캐시 애커를 불러서 낭독회나 해볼까.” 그는 느릿느릿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지.” 유진에서는 모든 일이 그렇게 쉽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은 유명인이라고 인식되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대표번호를 눌렀고, 남편이 전화기를 잡았다. 나는 대본을 적었고, 남편은 그대로 말했다. 그러고는, 짜잔, 나는 베스트 웨스턴의 수영장에서 캐시 애커와 수영하게 되었다.

캐시 애커를 만나보려고 전화를 걸어 야단법석을 떨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캐시 애커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내게 캐시 애커는 진짜배기다. 그는 문화와 젠더 속으로, 언어의 감옥 속으로 침투해서 그것들을 통째로 폭파한 작가다. 여자 윌리엄 버로스다.

캐시 애커는 수영을 마친 후 스팽킹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 안 해본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성기 스팽킹은 단순한 전희가 아니다. 세상에, 내가 아는 여자들 대부분은 이 기쁨을 느껴 본적 없지만, 착한 여자라면 경험해봤을 것이다.

우리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베스트 웨스턴의 초록색 수영장 레인을 왕복했다. 그 전에 캐시 애커는 한 시간 정도 무산소 운동을 했다. 그는 힘껏 수영했다.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물속에 있는 그의 모습은 수영장 물을 두들겨 패는 근육의 형상이었다. 호흡하려고 고개를 들면, 딱 알맞은 시간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쉬면, 온갖 은붙이가 반짝이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스팽킹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 곳은 수영장이 아니었다. 우리가 수영장에서 나와 올라탄 내 파란색 토요타 픽업트럭도 아니었다. 우리는 라이트에이드 약국에 가서 캐시 애커의 이비인후과 약을 샀고, 차 안에 앉아 이야기했다. 내가 수영하는 것을 본 그는 내 몸에 관해 물어보았다. 사실 캐시 애커가 내 몸에 관해 질문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후, 열네 명이 합류해 함께 밥을 먹는 저녁 식사자리에서 스팽킹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홀짝이는 사이 사이 그는 삽입 섹스로는 오르가슴을 느낀 적이 많지 않았고 스팽킹으로 절정에 도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 누군가의 옆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젖은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대로 의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의 발목을 핥으며, 훌쩍이며, 탁자 밑으로 내려와 내 옆에 있어 달라고 조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후에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그를 알던 사람들은 내 말에 동의할 텐데, 캐시는 전통적으로 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솔직하고 대담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적확하고 명확하며 묘사가 풍부한 언어로 이야기했다. 반면 더 작고,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는 입을 다물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거꾸로 된 여자였다. 빨갛고 축축하고 짭짤하고 부풀어 오른 복잡한 여자는 겉모습일 뿐이었다. 나처럼.

베스트 웨스턴에서 함께 수영하고 난 다음, 사람이 꽉꽉 들어찬 낭독회가 끝나고 난 다음, 작가를 술집에 데려가 사람들이 침을 흘리고 작가가 폐소공포증을 느끼게 만든 다음, 새벽 4시 23분경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으로 생각한다.

스팽킹당한 내 다리 사이에서 홍수가 날 정도로 액체가 흘렀다. 사진작가와 했던 것과는 달랐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쾌락으로 웃음이 나왔다.

캐시 애커와는 그 후로도 몇 번 연락했다. 성적 욕망에 관한 편지를 두 번 주고받았다. 트랜스젠더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을 때 캐시에게 전화했다. 그게 다다, 캐시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내 글을 읽고 난 후였다. “계속 글을 써야 해. 모든 사람이 글을 쓸 필요는 없어. 하지만 리디아는 써야 해.”

캐시는 1997년 유방암으로 죽었다.

키지는 2001년 간암으로 죽었다.

가끔 내 머릿속에서 캐시는 좋은 어머니가 된다. 키지는 좋은 아버지다. 나는 언어의 강에서 헤엄친다. (P22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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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나다]

이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이 책을 구상할 때도 이 말은 하지 않으려 했다는 뜻이다. 나는 어떤 이야기들은 빼놓고 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하지만 왜 그것들을 숨겨 놓았는지는 알고 있다.

성애화된, 젠더화된 몸으로 살았던 내 삶에 관해 물어본다면, 잔뜩 이야기해줄 수 있다. 나였던 여자에 대한, 그리고 우리 모두인 여자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를, 우리의 몸, 인간의 모든 경험에 대한 은유, 이것, 이것이 내게 일어났다. 나는 여기서 실패했다. 여기서 눈이 멀었다. 여기서 다리를 벌렸다. 여기서 손을 씹어 뜯어버렸다. 여기서 자살학려고 했다. 아니면 나를 유용한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 아니면 자존심을 버리고 사랑을 구하려 했다. 아니면 쾌락이나 고통 속을 탐험했다. 아니면 그저 술에 취해 문제를 일으켰을 뿐이다. 또다시, 여기 흉터가 있다. 나는 수영 선수다. 내 어깨는 넓다. 내 눈은, 푸른색이다. 이런 이야기 말이다. (P248)


소설에서 내가 말하기를, 뭘 할 작정이야? 강의라도 할 거야?

사람들은 종종 내 이야기에 나오는 사건이 실제로도 일어났는지 묻는다. 나는 삶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내 삶에 이런 일이 있었나?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몸에 언어를 가져오면, 이미 그것은 허구적인 행위가 아닐까? 그 구성과 채도와 패턴까지, 전부 즐겁게 설계한 것이니까. 과거를 돌아보며 형식을 구성했으니까. 유일한 목격자는 오직 몸밖에 없다는 잔인하지만 엄연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이라는 정신의 강압적인 힘만을 고집하니까, 그렇지 않은가?

거래는 이루어졌다. 여자 대 여자로,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내 말이 맞다고 해줄 것이다.

내게도 다른 사람에게 줄 만한 것이 있었을까?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에도? 진심이다. 젠장, 대체 내게 줄 만한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난 속에 구멍이 뻥뻥 뚫린 여자인데, 그렇지만 줄 것은 있었다.

언어. (P261-262)

영화 물의 연대기 06.jfif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까? 알고 보니, 내게 쌍둥이가 있었다. 내가 쌍둥이자리라는 말을 했던가?

여기서 ‘쌍둥이’라는 말은 생물학적인 쌍둥이를 뜻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유전자가 피와 세포의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같은 부족에 속한 내 쌍둥이는 금발이다. 눈은 파랗다. 문장과 특이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와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상한 관점을 갖고 있다. 불꽃이 그의 손가락에 머물고 그의 머리 꼭대기에서 솟구친다.

나는 기적처럼 샌디에이고주립대학교에서 열린 낭독회에 초대되었고, 그곳에서 쌍둥이를 만났다. 쌍둥이도 초대된 것이다. 우리가 초대된 이유는 우리가 쓴 글이, 그러니까, 이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글쓰기를 설명하기에 적당한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실험적’이란 말은 멍청하고, ‘혁신적’이란 말은 묘하게 잘난 척하는 것 같다. 캐릭터, 플롯, 줄거리 형성에 대한 기존의 지식을 전부 가져다가, 어린 시절 내가 바비 인형 머리에 폭죽을 넣어 폭파했던 것처럼 다 날려버리는 일을 설명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언어에 대한 관습과 규칙보다 언어 그 자체를 더 사랑하는 일을 설명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다. 랜스 올슨과 나 우리 두사람은 언어의 강도다. 그리고 이 말에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당신이 속한 곳에 쌍둥이가 없다면, 진지하게 말하건대 지금 하는 일을 당장 멈추고 쌍둥이를 찾아 떠나라. 쌍둥이와 동족을 찾아 떠나라. 진심이다. 왜냐하면, 언어와 피로 맺어진 관계와 동족이 있었기에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으니까. 만약 내가 1년이라도 더 내 주변 사람들처럼 살려고 노력했다면, 나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P268-270)

영화 물의 연대기 22.jfif

가끔 영혼은 파도를 뚫고 오느라 느지막이 도착하고, 그래서 더 늦게 태어난다. 결국, 당신은 한 번도 혼자인 적 없었다. 축복 아닌가, 외로움 속에서 태어나는 새 생명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함께하려면 이국에(당신에게 이국인 곳) 있는 아파트의 침대 위에 누워야 한다. 그곳은 당신이 이방인으로 느껴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이질적인 곳이어야 한다. 이름과 언어를 놓아버려라. 당신을 붙들어주는 정체성도 버려라. 생각도 버려라. 조금 열린 긴 창문에는 덧문이 붙어있어야 한다. 방은 푸른색이어야 한다. 바닥은 석재여야 한다. 당신은 발가벗어야 한다. 그 여자의 숨결이 당신의 살결에 속삭임으로 닿고, 몸을 타고 위로 흐른다. 그리고 아래로. 당신 주위로 움직이는 도시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너머에 있는 소리도, 모든 인간의 움직임 너머에 있는 바다와 바람의 소리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소리도, 귓속에서 흐르는 피와 두근거리는 심장과 당신의 몸위에 기록되는 연인의 살결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밤이 오면, 비가 내릴 것이다. 창문을 열어라. 욕망이 촉촉하게 젖는다. 안과 밖은 없고 오직 몸이 존재한다. 죽을 때가지 사랑을.

거트루드 스타인과 함께하면 음식과 종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찻잎과 돈이, 그 여자는 우아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야기할 것이다. 음식 그리고 종이, 육체가 완성한 사이클, 아주 친절하다. 그리고 그것은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침묵하라, 에밀리 디킨슨을 위해, 폭풍우가 휘몰아치다 잦아들면 부드럽게 찬가를 부를 것, 머리 꼭대기가 열리도록 둘 것, 이제 알겠는가? 사물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당신이 생각하던 것은 자신의 생을 지고 가는 무(無)였을 뿐이다.

옆방은 H.D.가 벽을 허물어 놓았다. 그렇지만 바닥에서 춤추는 빛의 움직임과 전과는 얼마나 다른지 보라. 당신의 말조차 새롭다.

앨렌 식수와 함께하려면 눈을 감고 입을 벌려야 한다. 더 크게, 목구멍도 활짝 열어 열어라. 식도도, 폐도, 더 활짝, 척추를 활짝 열어 잡음을 소거하라. 골반이 이완되어 헤엄친다. 자궁은 그 자체로 세계들이다. 더 활짝, 성(性)의 우물을 열어라. 이제 다른 입으로 당신의 몸을 말하라. 몸의 기도를 외쳐라. 이것이 글쓰기다. 진 리스는 협곡을 깎아 내는 물줄기처럼 문학의 광대한 코퍼스를 뚫고 도래했다. (P2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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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의 다른 면]

나는 제대로 태어나지 못하거나 아예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가졌던 어머니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우리는 이 세상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이고 다니는 여자들, 비밀스러운 부족이다.

한 일본인 친구의 아들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죽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없었고, 약한 호흡이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일본에는 ‘미즈고’라는 단어가 있는데 대충 번역해보면 ‘물 아이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물 아이들은 우리만큼 세상에서 오래 살 수 없었던 아이들을 의미한다.

일본에는 어머니와 가족을 위한 의식, 물 아이들을 기리기 위한 풍습과 기도가 있다. 사당도 있어서, 사람들은 그곳을 방문해 물 아이들에게 이야기와 사랑과 선물을 줄 수 있다.

서양에는 물 아이들을 위한 의식이 없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 미국 여자다. 그렇지만 물은 믿는다. (P343)


최근에 이루어진 신경과학계 연구에 의하면, 어떤 사건을 기억하는 행위는 실제로 그 사건을 경험할 때와 거의 똑같은 두뇌 활동을 일으킨다고 한다. 쥐와 여우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밝혀낸 사실이다. 동물들 머리에 새싹 같은 전선을 연결해놓고, 그렇지만, 기억을 이야기로 엮어 누군가에게 말하면 완전히 다른 효과가 생긴다. 사람은 기억을 되새길수록 그 기억을 변형하게 된다. 기억을 언어로 전환할 때마다, 그 기억은 변화한다. 기억을 설명하고 또 설명할수록, 결국 당신은 자신의 삶에 들어맞는 이야기를 만들고 과거의 앙금을 해소하며 견뎌낼 수 있는 허구를 창조해내게 된다. 이것은 작가들이 하는 짓이다. 입을 여는 순간, 사건의 진실에서 멀어지게 된다. 신경과학에 의하면.

가장 안전한 기억은 기억을 잃은 사람들의 뇌 속에 봉인되어 있다. 그들의 기억은 실제 사건에 가장 가까운 복제품이다. 그렇게 물속에 잠기는 것이다. 영원히.

아버지가 바다에 빠졌을 때, 100미터 평영 우승 기록만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갈 때까지, 내가 아버지를 끌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쯤에는 200미터 평영을 우승한 후였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쯤에는 400미터 개인 혼영을 우승한 후였다. 물에 빠지고 그 정도 시간이 흐르면 뇌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심부전이 생긴다. 기억이 떠나간다. 저산소증.

아버지의 암은 삶 동안, 아버지가 우리에게 했던 짓에 대한 기억은 전부 사라졌다. 아버지의 딸이 옛날에 어땠고 지금은 어떤지에 대한 기억도 사라졌다.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와의 연애에 대한 기억은 이미지로 남았다. 무한 반복되는 이미지로, 영화처럼, 아버지가 건축가로서 이뤄낸 가장 큰 성취인 트리니다드의 상가, 그곳의 스틸 드럼 연주와 따뜻하고 촉촉한 공기와 하얀 모래사장과 아버지의 분노와 실망감을 다독여주던 피부가 가무잡잡한 여자들에 대한 기억도 사라졌다. (P38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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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은, ‘관계’니 ‘결혼’이니 ‘가족’ 같은 단어들을 깨부수고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결혼해서 살다보니 사랑에 빠졌다는 미친 사람들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 그러면 총을 꺼낼 것이다. 맙소사, 어쨌든, 중요한 점은, 뭐든 만들라는 것이다.

살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라. 나는 그것을 글쓰기를 통해 배웠다.

글쓰기는 그런 것도 할 수 있다.

글쓰기로, 단어의 끝부분에 섬세한 꿈을 불어넣을 수 있고, 거기에 입 맞출 수 있고, 그 위에 뺨을 올려놓을 수 있다. 글쓰기로, 입을 벌려 몸에 몸을 불어넣고 자아를 소생시킬 수 있다.

살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라. 생사가 걸린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라.

나의 부활과 변신이 조금 이상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제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머니는 나를 보호하지 않았다. 여자아이로서, 나는 죽었다.

그러니 내 아이가 자궁에서 죽었을 때, 나는 어머니의 과오를 반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사랑해야 했던 아이를 죽였다.

문장을 써내는 것은 대단한 작업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한 줄.

죽은 딸의 슬픔에서 솟아오르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당신은 나 같은 여자들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그냥 몸을 던져 보는 것 말고는 다른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한다. 나는 수류탄 같은 사랑을 했던 여자, 삶이 자동차 사고의 연속 같았던 여자다. 나라는 여자아이와 내가 가진 여자아이를, 작은 인형 같은 딸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맞다, 나도 안다. 내가 엮어놓은 인생 이야기가 때로 얼마나 분노로 가득하고 자기 파괴적이고 지저분하고 심지어 망상같이 읽히는지, 그렇지만 아름다운 것들. 우아한 것들, 희망찬 것들은 때때로 어두운 곳에서 생겨난다. 게다가, 나 같은 여자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내 목적이니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진실하다.

그 일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그것은 글쓰기다. 우리에게서 멀어진 몸이다. 글쓰기, 글쓰기의 형식과 왜곡, 저항과 거짓말, 끝없는 욕망, 이어지고 이어지는 문장.

들어보라, 내 눈에 당신이 보인다. 당신이 나 같은 사람이라면, 당신이 살면서 겪은, 앞으로 겪을 일 대부분은 부당하다. 하지만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 당신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얼마나 외롭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세상에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 있다. 그것은 예술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신을 믿듯 예술의 힘을 믿으니까.

예술 안에서 나는 나의 동족을 만났다. 그들은 내 옆을 지켜주고 내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책과 그림과 음악과 영화 속에서, 이 책? 이건 당신을 위한 책이다. 내가 길을 뚫어 흘려보낸 물이다.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 그건 그저 헛소리는 아니다.

안으로 들어오기를, 이 물이 당신을 잡아줄 것이다. (P408-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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