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레이스 맥코이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

영화 <그들은 말을 쏘았다> 1969년

by 노용헌

《그들은 말을 쏘았다》(They Shoot Horses, Don't They?)는 미국에서 제작된 시드니 폴랙 감독의 1969년 심리 드라마 영화이다. 제인 폰다, 마이클 새러진, 수재나 요크, 기그 영, 보니 버딜리아, 레드 버튼스 등이 출연하였다,


1970년 제42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여우 주연상(제인 폰다), 여우 조연상(수재나 요크)을 비롯해 9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기그 영이 남우 조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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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건물 밖 벤치에 앉아 있던 글로리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총알이 이제 막 그녀 옆머리에 박혀 피가 미처 솟구치지도 않은 순간.

권총의 섬광이 그녀 얼굴에 번쩍였다.

모든 것은 대낮처럼 명료했다.

그녀는 아주 차분하고 편안하게 떠났다.

총알에 맞은 충격으로 고개가 반대쪽으로 살짝 기우는 바람에 옆모습이 똑바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눈과 입은 틀림없이 웃고 있었다.

그녀가 깜깜한 밤 태평양 끝자락에서 고통스럽게, 친구 한 명 없이 살인자 손에 죽었다고 주장한 검사의 말은 거짓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죽지 않았다.

차분하고 편안하게, 웃으면서 떠났다. 내가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그녀가 고통스럽게 죽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 그러니 어떻게 그녀가 친구 한 명 없이 죽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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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날 죽이려 들 거야. 판사가 뭐라고 말할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지.

그의 표정만 봐도 사형선고를 내리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어.

내 뒤에 앉은 사람들도 사형선고를 듣고 싶어 하겠지. 안 봐도 그런 기운이 느껴져.

글로리아를 만난 그날 아침. 내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여전히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를 찾은 것은 그곳에서 폰 스턴버그(조셉 폰 스턴버그.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화감독,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와 8년여간 협업하며 ‘상하이 특급’등 다수 영화를 제작함)가 러시아 배경의 영화를 찍고 있으니 어쩌면 일자리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폰 스턴버그나 마물리언(루벤 마물리언, 러시아 출신의 영화감독,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명성을 얻음), 아니면 볼레슬라브스키(리처드 볼레슬라브스키, 러시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이며 연기 강사로도 유명했음) 같은 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은 내 꿈이기도 했다. 돈을 받으며 그런 감독이 연출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면.... 촬영 기법 같은 걸 배울 수 있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로 향했다. (P17-19)


우리는 멜로즈에서 웨스턴으로 가는 길 내내 대화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웨스턴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이름이 글로리아 비티이며 나처럼 변변찮은 엑스트라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도 나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베벌리 인근의 작은 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했다. 거기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았던 나는 그날 밤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 만남이 아니었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 그녀를 보러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수중에는 소다수 가게에서 일하고 받은 돈이 70달러쯤 있었다. (친구 대타로 한 일이었다. 친구는 사귀던 여자 몸에 문제가 생기자 그녀가 수술받을 수 있도록 함께 샌타바버라로 떠났다) 나는 글로리아에게 영화를 보러 가거나 공원에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P20)


마라톤 댄스 대회는 한때 해상 유원지의 무도회장으로 쓰인 대형 건물에서 열렸다. 바다에 말뚝을 박고 세운 다리 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건물 아래로는 파도가 밤낮으로 철썩였다.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듣는 것처럼. 나의 두 발이 파도의 솟구침을 느낄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폭 9미터, 길이 60미터쯤 되는 댄스 플로어가 나왔다. 플로어를 둘러싼 세 면에 특별관람석이 자리했고 그 뒤편으로 일반석이 이어졌다. 나머지 한 면에는 악단 무대가 들어섰다. 악단은 저녁 시간에만 공연했는데 솜씨가 형편없었다.

낮 동안에는 확성기를 연결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음악 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커서 홀 전체를 시끄럽게 메울 때가 많았다. 바람몰이 역할을 맡은 사회자가 손님들의 흥을 돋웠고, 심판 두 명이 플로어를 돌아다니면서 참가자들을 상시 감독했다. 위급 상황을 대비해 남자 간호사와 여자 간호사, 그리고 의사 한 명이 건물에 상주했다. 그런데 의사는 전혀 의사 같지 않았다. 의사라기에는 너무 앳되어 보였다.

144쌍의 남녀가 대회에 참가했으나 일주일 만에 61쌍이 기권했다. 1시간 50분 동안 춤추고 10분 동안 쉬는 것이 대회의 규칙이었다. 원하면 쉬는 시간에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었지만, 면도하고 몸을 씻고 아픈 발을 치료하는 것처럼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도 그 안에 모두 끝내야 했다. (P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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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든 부인 뒤편에 있던 형사 두 명이 어느새 삭스 도널드 옆에 앉아 있었다. 세 남자는 머리를 맞댄 채 종이 한 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로키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자, 쉬러 가기 전에 열을 좀 내봅시다. 시작하세요!” 단원들에게 연주를 지시한 그는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다. 손님들도 흥겹게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다.

우리는 시계 분침만을 바라보며 몸을 움직였다. 그때 갑자기 18호 커플로 참가한 키드 캠이 파트너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캠은 왼손으로 그녀의 몸을 붙들고는 오른손으로 뺨을 여러 차례 쳤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까무러친 것이었다. 두어 번 숨을 헐떡이더니 완전히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고 손님들은 신이 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라톤 댄스 대회에서는 언제라도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겨난다. 뭔가 일이 벌어지면 장내는 순식간에 들썩거린다. 이런 점에서 마라톤 댄스는 투우 경기와 비슷하다.

심판과 간호사들이 쓰러진 여자를 들어 탈의실로 옮겼다. 그녀의 발이 힘없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로키가 손님들을 향해 말했다. “18호 커플의 매티 반스 양이 잠시 정신을 잃었군요. 의로진이 반스 양을 탈의실로 데려가 정성껏 돌볼 예정입니다. 여러분,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계 마라톤 댄스 대회에서 이런 일은 아주 흔하지요.”

“저 여자 아까 쉬는 시간에도 힘들어했어요.” 글로리아가 말했다.

“뭐 때문에요?”

“그날이거든요. 아마 다시 못 돌아올걸요. 생리통이 심해서 생리할 때는 무조건 사나흘씩 누워 있어야 한다던데요.” (P51-52)


그렇게 마리오는 체포되었고, 키드 캠의 파트너인 매티는 농장으로 돌아갔다.

마리오가 살인죄로 체포되었을 때는 참 많이 놀랐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착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착한 사람이 살인자일 수도 있다는 게 이제는 이해가 간다.

나는 누구보다 글로리아에게 친절했다. 결국엔 그런 내가 총을 쏴 글로리아를 죽이고 말았지만. 그러니 착하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매티를 진찰한 의사는 그녀를 플로어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로써 그녀는 자연스럽게 탈락하게 되었다. 계속 춤을 췄다가는 일부 장기가 손상되어 평생 애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될 것이라고 의사는 경고했다. 글로리아에 따르면, 매티는 길길이 날뛰며 의사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고, 그만두지 않겠다고 난동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대회를 그만두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들이 그녀를 강제로 내쫓아버렸기 때문이다.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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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드리운 삼각형의 햇살 조각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마침내 삼각형이 작은 덩어리로 뭉개져 내 다리에 달라붙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내 몸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그 작은 덩어리가 턱까지 올라왔을 때, 나는 그것이 내 얼굴에 최대한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발뒤꿈치를 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창밖 태양을 똑바로 응시했다. 하나도 눈부시지 않았다. 순식간에, 햇빛은 자취를 감췄다.

나는 글로리아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무대 앞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로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대에 걸터앉은 로키도 몸을 건들거리고 있었다. (의사, 간호사, 심판, 사회자, 심지어 소다수를 파는 소년까지, 모든 직원은 참가자와 이야기할 때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 했다. 주최사는 이 규칙을 엄격히 지키도록 요구했다)

“아까 저기서 까치발 들고 있던 모습이 진짜 웃기던데요. 무용수 같았어요.” 글로리아가 말했다.

“열심히 연습하면 자네한테도 단독 공연을 마련해주지.” 로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괜찮네요. 오늘 햇빛은 어떻던가요?” 글로리아가 내게 물었다.

“당하고 있지만 말라고.” 5호 커플의 맥 에스턴이 지나치며 한마디 거들었다.

“로키!” 삭스 도널드였다. 로키는 무대에서 내려와 그에게로 갔다. (P64-65)


새로운 경험이란 건 없다. 어떤 일을 겪어본 적 없다거나 생전 처음 겪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 무언가를 보거나 냄새를 맡고, 듣거나 느끼는 순간, 처음인 줄로만 알았던 그 경험을 과거에 이미 겪어보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가 나를 무대 밑으로 끌어들이려고 발목을 잡아당긴 순간, 과거에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던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그때는 무대가 아니라 집 테라스에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열세 살, 열네 살 정도 됐을 때였고 여자아이도 비슷한 또래였다.

메이블, 옆집에 살던 그 아이.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면 테라스에서 함께 놀았는데, 어떤 때는 그곳을 동굴이라 상상하며 그 안에 갇힌 강도나 죄수가 된 척 연기를 했다. 나중에는 그곳을 집이라 상상하며 엄마 아빠 놀이를 했다. 하루는 메이블이나 엄마 아빠 놀이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은 채 나 혼자 테라스에 앉아 있었는데, 밑에서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당겼다. 내려다보니 메이블이었다. “이리 와.” 하고 그 애는 말했다.

무대 아래는 깜깜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앞을 더듬거리는데 대뜸 그녀가 내 목에 매달렸다. (P8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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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신문을 펼쳤다. 대문짝만한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마라톤 댄스 대회에서 젊은 살인자 전격 체포

해변 대회 참가 중에 검거된 탈옥수

어제 경찰은 샌타모니카 유원지에서 열리고 있는 마라톤 댄스 대회에서 살인 용의자를 검거했다. 용의자 쥬세페 로디(26)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8개월 전 일리노이주 졸리엣에 있는 주립 교도소에서 탈옥했다. 그는 시카고에서 약국에 침입해 돈을 갈취하려다 고령의 약제사를 살해한 혐의로 50년형을 선고받고 4년째 복역하던 상태였다.

쥬세페 로디는 ‘마리오 페트로네’라는 가명으로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했다. 강도 수사 전담반의 즐리스, 보이트 형사에게 검거될 당시, 그는 저항 없이 순순히 명령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들은 머리를 식힐 겸 마라톤 댄스 대회를 구경하러 갔다가 월간 범죄잡지 속 지명 수배란에서 보았던 쥬세페 로디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밝혔다.

‘라인업’이라고 이름 붙은 지명 수배란에는 악명 높은 범죄자들의 사진과 인상착의가 실리며....

“믿어져요? 나는 이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어요. 마리오가 참 안 됐어요.”

“우리 신세하고 뭐 그리 다르겠어요?”

페드로 오르테가, 맥 애스턴, 이 밖에 몇 사람들이 신문을 발견하고는 들뜬 목소리로 떠들며 다가왔다.

나는 글로리아에게 신문을 넘긴 뒤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끔찍하기도 하지. 50년이라니! 불쌍한 마리오.....’ (P88-89)


총소리와 동시에 경주가 시작되었다.

글로리아와 나는 다른 참가자들이 경주마처럼 속도를 높여 우리를 추월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굳이 힘들게 앞자리를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꾸준히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게다가 오늘 경주에는 특별 상금이 걸려 있지도 않았다. 물론 그런 게 있다 하더라도 계획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다. 그러나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이날 간이침대로 실려 간 참가자는 두 바퀴 만에 쓰러진 루비 베이츠뿐이었다.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고 무사히 경주를 마쳤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를 겁먹게 한 일은 따로 있었다. 글로리아가 내 벨트 손잡이에 의존하는 시간이 다른 날보다 훨씬 길었고 그 강도도 세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5분 동안 글로리아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말 그대로 내가 그녀를 질질 끌고 다녀야 했다. 하마터면 정말 탈락할 뻔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레이든 부인이 우리의 바퀴 수를 기록한 남자와 이야기한 후에 귀띔해주었는데, 탈락자들과 우리 기록은 두 바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찔했다.

이날 이후로는 계획일랑 집어치우고 닥치는 대로 내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날 꼴찌는 16호 커플, 배질 제라드와 제네바 톰블린이었다. 이들은 자동으로 대회에서 탈락했다. 제네바는 탈락하게 된 것을 은근히 반기는 눈치였다. 드디어 그녀는 대회 첫 부에 만난 낚싯배 선장과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13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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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음 끊이지 않는 마라톤 댄스 대회

....

시의회에 대회 중단 요구한 어머니 연맹,

대회 강행 시 시위도 불사하겠다 경고

....

사흘째 논란 이어져.....

....

도덕 지킴이 어머니 연맹이 마라톤 댄스 대회와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연맹측은 시의회에 대회 중단을 요구하며 아예 불응할 시 문제를 공론화해 시민들에게 알리겠다고 경고했다. 해변 휴양지에서 열리는 마라톤 댄스 대회는 36일째 이어지고 있다.

연맹 회장인 프랭클린 히그비와 부회장인 윌리엄 위처는 이날 오후 시의회 청사 앞을 찾아 대회 중단을 촉구했다. 시의회 측은 현재 시의회 법무관이 법적 조치 가능성을 상세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의회 의장 톰 힌스텔은 “법률 검토 전에는 어떠한 조치도 내릴 수 없다.”라며 “현재로서는 이 사안에 적용할 법령을 찾지 못했으나 시의회 법무관이 계속해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히그비 부인은 “전염병이 도시를 위협할 때도 꾸물거리고 있을 것인가?”라며 항의했다.

다음은 히그비 부인의 발언이다. “사안에 맞는 법령이 없으면 긴급 법안이라도 통과시켜야 한다. 마라톤 댄스 대회는 전염병과도 같다. 천박하고 모욕적일 뿐 아니라, 홀 안에 깡패와 건달, 끔찍한 범죄자 무리가 모이는 바까지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단연 해로운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P154-156)


글로리아는 하루 내내 침울했다. 나는 틈날 때마다 그녀에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 그녀는 “아무것도....” 라고 대답했다.

내가 멍청했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몰랐을까. 어쩜 그렇게 멍청했을까. 그때문 뭘 몰라도 한참 몰랐었어.

판사가 내 앞에 앉아 안경 너머로 날 바라보며 뭔가를 말하고 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안경을 관통하는 그의 시선처럼, 그의 말도 나오는 족족 내 몸을 관통해버린다. 판사의 안경이 그의 시선을 잡아두지도 가둬두지도 못하는 것처럼, 내 귀와 머리는 그의 말을 좀처럼 담아두지 못한다. 그의 말은 내 발 끝에, 다리에, 몸통에, 두 팔에 걸릴 뿐, 귀와 머리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내 귀와 머리는 거리에서 외치는 신문 배달 소년의 소리를, 지나가는 전차 소리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를, 깜빡이는 신호등의 경고음을, 법정 안 사람들의 숨소리와 발소리를, 의자에서 나는 삐거덕 소리를, 누군가 타구(唾具)에 침을 뱉는, 작은 소리를 듣는다.

귀와 머리로 이러한 것들에 집중하는 동안 판사의 말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P176-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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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끝나자 뷔가 메리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고 우리가 그들을 에워쌌다. 박수와 환호 소리가 터질 듯 장내를 가득 메웠다.

“잠깐, 잠깐만요!” 로키가 마이크를 잡고 손님들을 진정시켰다. “잠시 조용히 해주십시오!”

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팜 가든이 있는 홀 끄트머리에서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 돼!” 한 남자의 비명과 함께 다섯 발의 총성이 마치 한 번의 긴 총성처럼 아주 짧은 간격으로 연달아 울렸다.

장내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앉아 계세요! 다들 움직이지 마세요!” 로키가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팜 가든으로 달려갔고 나도 그들을 뒤따랐다. 삭스 도널드가 곤봉이 들어 있는 뒷주머니에 손을 갖다 대며 나를 지나쳐 뛰어갔다.

나는 삭스를 따라 울타리를 뛰어넘어 텅 빈 특별 관람석을 지나 팜 가든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바닥을 보며 웅성대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아가는 삭스 뒤에 바짝 붙어 움직였다.

바닥에는 한 남자가 죽어 있었다.

“누구 짓이오?” 삭스가 물었다.

“저기 저 남자 짓입니다.” 누군가 대답했다.

삭스는 뒤에 있던 나를 밀치고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내 바로 뒤에는 조금 놀랍게도 글로리아가 있었다.

총을 쏜 남자는 바에 팔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삭스가 그의 앞에 섰다.

“저놈이 먼저 시작했소. 맥주병으로 나를 죽이려했다고.”

“이 새끼가!” 삭스가 곤봉으로 그의 얼굴을 냅다 쳤다. 남자는 휘청거리며 바에 부딪혔으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삭스는 사정없이 곤봉으로 그의 얼굴을 치고, 치고, 또 쳤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삭스는 말 그대로 남자를 때려눕히고 있었다.

“이봐요. 삭스!” 누군가 그를 불렀다.

9미터쯤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무리가 둥그렇게 모여 수군대고 있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가보니 그곳에 어떤 여자가 누워 있었다.

“이런, 제기랄!” 삭스 도널드가 욕을 내뱉었다.

레이든 부인이 이마에 총알이 박힌 채 죽어 있었다. 무릎을 꿇고서 그녀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맥스웰이 머리를 바닥에 조심스레 눕힌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든 부인의 머리가 천천히 옆으로 떨궈졌다. 그러자 눈가에 고여있던 피가 조금씩 새어 나와 바닥을 적셨다.

맥스웰이 글로리아와 나를 발견하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곧 있을 경주의 심판을 보러 온 거였소. 하필 빗나간 총알에 맞아서.”

“나였으면 좋았을걸....” 글로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삭스 도널드였다. (P18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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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와 나는 댄스 플로어를 가로질렀다. 내 발소리가 과연 내 것인가 싶게 평소보다 크게 울렸다.

앞문에는 로키가 경찰관과 함께 서 있었다.

“어디 가는 거야?” 로키가 물었다.

“바람 쐬러요.” 글로리아가 말했다.

“다시 돌아올 건가?”

“곧 돌아올 거예요. 바깥 공기를 좀 쐬어야겠어요. 밖에 안 나간 지 한참 되어서.” 내가 대답했다.

“너무 오래 있지 말라고.” 로키가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며 글로리아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저리 꺼져요.” 글로리아는 이렇게 대꾸한 뒤 밖으로 나갔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바깥공기는 축축했지만 상쾌했다. 마치 내 폐가 맑고 묵직한 공기 덩어리를 한 입 베어 무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공기 오랜만이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몸을 돌려 우리가 지금껏 있었던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계속 저 안에 갇혀 있었단 말이죠? 요나가 고래를 보던 기분을 알 것 같아요.”

“이상한 말 좀 말아요.”

우리는 건물을 빙 둘러 다리까지 걸어 나갔다. 다리는 내 시야가 닿는 곳까지 길게 뻗어 있었고, 파도가 철썩일 때마다 위아래로 삐거덕거리며 미세하게 움직였다.

“파도가 치는데도 다리가 휩쓸리지 않는 게 참 신기해요.”

“머리에 파도 생각뿐인가 봐요.” (P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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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뭐 할 계획이에요?” 내가 글로리아에게 물었다.

“이 도돌이표에서 벗어나려고요. 이놈의 고약한 것과도 이제 끝이에요.”

“고약한 거?”

“인생이요.”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매사를 삐딱하게만 보지 말고.”

“가르치려 들지 말아요.”

“그런 게 아니에요. 어쨌든 태도를 바꾸긴 해야 해요. 좀 정상적으로. 주위 사람들한테 죄다 안 좋은 영향만 끼치잖아요. 나만 해도 그래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성공하지 못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어요. 실패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 그런 말을 주워들었어요?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테고.”

“주워들은 게 아녜요.”

글로리아는 말리부가 보이는 바다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러고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람. 달라지는 건 없어....”

나는 가만히 바다를 내다보며 할리우드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그곳을 가본 적이 있기는 했던가. 혹시 이 모든 게 꿈이어서, 곧 아칸소 집에서 깨어나 배달할 신문 더미를 안고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건 아닌가.

“한심하기도 하지.” 글로리아는 혼잣말했다. “그런 표정으로 볼 필요 없어요. 상태가 말이 아니란 건 나도 아니까.”

‘맞아, 정말 그래. 상태가 말이 아니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댈러스에서 죽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의사가 고작 이러려고 내 목숨을 살렸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바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이 아주 정확하다고, 그녀 말마따나 그녀가 댈러스에서 죽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그녀는 죽는 편이 나았다.

“나는 그냥 부적응자예요. 누구에게도 도움이 못 돼요. 그런 식으로 보지 말라니까요.”

“안 보고 있어요. 내 표정도 안 보이면서.”

“보이거든요.”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주위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안에 들어갈까요? 로키가 볼일이 있는 것 같던데.” (P199-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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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가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녀 손에는 작은 권총이 들려 있었다. 처음 보는 총이었지만 놀랍지 않았다.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여기.” 그녀가 내게 총을 건넸다.

“싫어요. 저기로 치워요. 얼른 들어가죠. 쌀쌀하네요.”

“이걸로 제발 쏴줘요.” 글로리아가 내 손에 억지로 총을 들렸다. “쏴요. 이 고통을 끝낼 방법은 이것뿐이에요.”

‘맞는 말이야. 그녀의 고통을 끝낼 방법은 이것뿐이야.’

아칸소에 살던 어린 시절.

여름이 되면 늘 할아버지 농장엘 갔었다. 하루는 아궁이 옆에서 할머니가 커다란 주전자에 잿물을 끓이는 걸 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들판을 가로질러 헐레벌떡 다가오더니 말했다. “넬리 다리가 부러졌어.”

할머니와 나는 울타리를 넘어 할아버지가 밭을 갈던 들판에 들어섰다. 쟁기에 묶인 넬리가 땅에 누워 낑낑대고 있었다. 우리는 그놈을 보기만 했다. 그저 보기만.... 할아버지가 남북전쟁 당시에 썼던 총을 들고 왔다. “이놈이 구멍에 발을 헛디뎌서 그만.” 할아버지는 넬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고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총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넬리에게 달려가 그놈의 목덜미를 꼭 안아주었다. 그놈을 많이 아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미웠다. 나는 일어나 주먹으로 할아버지 다리를 쳐버렸다. 이날 밤 할아버지는 자신도 넬리를 많이 아꼈지만,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고 내게 얘기해주었다. “그놈을 위해서 그런 거야. 가망이 없었으니까. 고통을 끝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총은 내 손안에 쥐어져 있었다.

“알았어요. 준비되면 말해요.”

“준비됐어요.”

“어디를 쏠까요?”

“여기, 관자놀이에다가.”

큰 파도가 부서지면서 다리가 넘실거렸다.

“지금요?”

“지금.”

나는 총을 쐈다.

다리가 또 한 번 넘실거렸다. 파도가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밀려 나갔다.

나는 바다에 총을 던졌다.

운전석에 앉은 경찰관이 차를 몰고, 나는 다른 경찰관과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했다. 마라톤 댄스 대회에서 우리를 깨울 때 울리던 그 소리와 똑같았다.

“왜 그 여자를 죽였어?” 옆에 앉은 경찰관이 물었다.

“내게 부탁해서요.”

“이놈 말 들었어, 벤?”

“참 친절한 새끼네.” 벤이 어깨너머로 힐끔거리며 말했다.

“그게 다라고?” 옆에 앉은 경찰관이 다시 물었다.

“사람들은 말을 쏘잖아요.... 안 그래요?” (P203-207)

영화 그들은 말을 쏘았다 0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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