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유> 2004년
영화 <이유>는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의 소설 <이유理由>를 원작으로 한다. 폭풍이 몰아치고 난 후 한 고급 아파트에서 네 사람의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들의 관계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수사는 난항을 겪고, 그 과정에서 아파트 입주민들의 극적인 사연이 조금씩 드러난다. 다양한 개성의 수많은 인물이 펼쳐내는 감정의 스펙트럼과 날카롭게 포착한 일본 사회의 단면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살해된 것은 ‘누구’이며, ‘누가’ 죽였는가.
그리고 사건 앞에는 무엇이 있고, 뒤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P13)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사건’은 많은 사람을 빨아들인다. 폭심지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 이를테면 각자의 가족, 친구와 지인, 근처 주민,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나아가 목격자, 경찰의 탐문을 받은 사람들, 사건 현장에 출입하던 수금원, 신문 배달원, 음식 배달부 등, 헤아려보면 한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지 새삼 놀랄 정도다.
물론 이 사람들 전부가 ‘사건’에서 등거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며, 또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 대다수는 ‘사건’을 기점으로 방사형으로 그어진 직선 끝에 있는 것이며, 바로 옆 방사선 끝에 있는 다른 ‘관련자’하고는 전혀 면식이 없는 경우도 많다. 또 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 커다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 경우, 즉 사건에서 가장 먼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P91-92)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가족은 전에 ‘이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이웃이 무섭다는 것은 곧 세상이 무섭다는 것이고, 결국은 커뮤니티 자체가 무섭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P129)
우리는 ‘매체’를 통해서 현실을 파악한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혹은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지금 이 나라에서,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정보를 얻고 있다. 육안으로 보고, 제 발로 걸어 다니며 겪고, 손으로 만져서 느끼는 정보의 양은 ‘매체’가 가져다주는 그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일하고, 즐기고, 아이 키우고, 환자를 돌보고, 공부하는 등, 자기 생활 속에서 나름대로 땀 흘리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 범위 안에는 약해(약해) 에이즈 소송도, 대장성 관료의 부정행위도, 환경보호단체가 그물을 자르고 놓아준 돌고래 떼도, 귀가하는 여학생을 납치한 위조 넘버 밴 차량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사실들을 뉴스로 전해들을 수는 있다. 사실을 알면 분노하고 슬퍼하고 걱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도’란 바로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능이라고, ‘보도’ 종사자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매체’가 발달한 현대는, 텔레비전 앞에 30분만 앉아 있어도 보통 사람이 평범하게 평생을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수십 배나 많은 양의 정보를 그 자리에서 얻을 수 있게 되어버렸다. 여기서 난해한 문제가 하나 생겨난다. ‘현실’ 혹은 ‘사실’이란 과연 무엇이냐 하는 문제다. 무엇이 ‘리얼리티’고 무엇이 ‘버추얼 리얼리티’인가. 양자를 가르는 벽은 무엇일까. ‘실제 체험’과 ‘전해 들은 지식’을 ‘입력된 정보’라는 틀로 바라본다면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정말일까? (P153-154)
고이토 씨의 웨스트타워 2025호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비극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무대에는 현재 일본 부동산 유통의 문제, 법원 경매제도의 문제, 법률의 사각지대에서 활약하는 버티기꾼의 문제 등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 2025호의 매수인이었다는 이유로 가장 강력한 혐의를 받던 이시다 나오즈미 씨는 그런 상황의 희생자가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P293-294)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널 키웠는지 네가 알기나 하냐고 하더군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아빠를 기쁘게 해줄 마음이 요만큼도 없는 거냐? 남들한테 자랑할 만한 아들이 될 생각이 요만큼도 없는 거냐? 참 한심하다. 인정머리 없는 놈 같으니, 하면서.”
나오키로서는 감정이 격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생색낼 처지가 아니잖아, 하고 내가 반격했지요. 부모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반격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누가 낳아달라고 했냐, 아빠가 좋아서 낳은 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왜 아빠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 내 인생을 엉뚱한 곳으로 바꿔야 하는 거냐, 말도 안 된다.” (P333)
“스니카와 집안 사정이나 시어머니가 겪은 일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얘기해줘도 아마 믿지 않을 거예요. 그런 일이 정말 있었나요? 지어낸 얘기 아니에요? 일본이 문화적으로 야만국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어요? 하고 말하겠지요. 나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시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뿐이지만, 나는 믿어요. 시어머니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노부오의 장례를 치른 뒤 다시 그 웨스트타워에 가 보고, 뭐랄까.... 핀트가 어긋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옴직한 그 굉장한 고층아파트에서 죽은 사람이, 따지고 보면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건드리는 구시대적인 일들 때문에 뒤틀린 인생을 살고 있었다니, 실감이 나질 않았어요. 하지만 현실이란 게 다 그런게 아닐까요? 시대는 늘 흐르고 있는 거잖아요. 어딘가에서 딱 멎게 하고 다시 맨 처음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시어머니 같은 며느리가, 아니 여자가 고통을 당해야 했던 시대가 바로 얼마 전입니다.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을 씻고, 일본인들이 모두들 말짱한 얼굴들을 하고 있지만.
나는요, 그 어지러울 정도로 높은 아파트 창문을 밑에서 이렇게 올려다보면서 생각을 했어요. 저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갑부들이고 세련되고 교양도 있고 옛날 일본인의 감각으로는 상상도 못할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어쩌면 가짜인지도 몰라요. 물론 실제로 그런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그것은 그것대로 점점 진짜가 되어가겠지요.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가 거기에 다다르기까지는, 얇은 껍데기 바로 밑에는 예전의 생활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연극이 아직은 한참 동안 계속되지 않을까요? 다들 핵가족, 핵가족 하는데, 내 주위의 좁은 세계를 보면 진짜 핵가족은 한 집도 없어요.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살거나 부모를 보살피러 자주 드나들고, 자식이 결혼해서 손자가 생기면 이번에는 저희 부모처럼 자기도 조만간 식객 취급을 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런 구차한 이야기라면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해요.
그 웨스트타워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뭐랄까, 갑자기 화가 꾹 치밀어 오르더군요. 자기 안에 살고 있는 비열한 사람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떡하니 버티고 서 있잖아요. 저런 곳에 살면 사람이 못쓰게 돼요. 사람이 건물의 품격에 장단을 맞추려고 영 이상하게 돼버리는 거 같아요. 생각해보면 노무오들이 저기 옮겨가 살게 된 것도 —물론 노부오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만— 애초에 저 2025호를 소유한 가족이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다가 빚을 갚지 못하게 된 것이 원인이잖아요.
그래도 만약에 노부오 같은 사람들이 졸지에 버티기꾼 흉내를 내면서 살게 된 곳이 그런 고급아파트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주택이었다면 살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그 4인 살해사건은 그런 고급아파트였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닐까, 다른 곳이었다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끔찍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P492-494)
왜일까? 평화롭고 평범하게 사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일가 4인 살해’ 같은 사건이 묘한 흡인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강 건너 불구경처럼 재미난 것도 없다.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꾸며내면서까지 —그 꾸며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사건에 ‘참가’하려고 하는 충동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지어낸 이야기는 파장을 일으켜 주위에 공명하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이야기로 부풀어져간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 되고, 나누지도 않았던 대화가 나누었던 것이 된다. 게이트를 닫아 주거공간을 외부와 격리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분위기와 환경만을 애지중지하면서 굳세게 지켜내려고 애를 써도 헛것에는 이길 도리가 없다. 헛것을 몰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시다 나오즈미와 2025호의 중년여성에 관한 목격담의 태반은 이런 종류의 헛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증언들이 나오는 순간에는, 적어도 증언하는 사람에게는 진실이었다. 그 자리에 없던 사람들도, 증언이 나오는 순간에는 분명 거기 있었던 것이다. 스나카와 노부오 외에 세 사람, 그 생생하게 존재하는 세 사람의 신원이 불명인 채로 남아 있는 한편에서는, 수많은 실재하는 사람들이 ‘일가 4인 살해사건’을 어떻게든 자기 인생에 얘깃거리로 남기려고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증언이 무수한 근거 없는 ‘기억’을 낳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것은....’ 이라는 추측을 낳고, ‘그러고 보니 그때 보았던 그 사람은...’ 이라는 추상을 부른다. 이렇게 해서 유령이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 (P516-517)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과거’라는 것을 야스타카는 깨달았다. 이 ‘과거’는 경력이나 생활 이력 같은 표층적인 것이 아니다. ‘피’의 연결이다. 당신은 어디서 태어나 누구 손에 자랐는가. 누구와 함께 자랐는가. 그것이 과거이며, 그것이 인간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만든다. 그래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를 잘라낸 인간은 거의 그림자나 다를 게 없다. 본체는 잘려버린 과거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P553)
이시다가 매스컴은 못 믿겠다, 매스컴 관계자는 얼굴도 보기 싫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약 4개월 동안 도피하는 동안 온갖 매체들이 그에 대해서 입방아를 떨었다. 처음부터 각오는 했지만,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위아래와 좌우로 더 넓은 영역에서 ‘이시다 나오미즈’라는 인간이 까발려져 가는 것을 그는 지켜보았다. 거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그는 말한다. ‘매스컴’이라는 것을 거치고 나면 ‘진짜’는 아무것도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것은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 뿐이다. 그리고 그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은 종종 완전한 ‘허구’속에서 끄집어 올려진다. (P607)
“2025호에 그런 사정이 생기고 명도를 둘러싸고 스나카와 씨들과 내가 지루하게 교섭을 하고....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야시로 유지는 나한테 돈을 뜯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그런 판단이 그 자를 미쳐버리게 했겠지요. 그저 염치 모르는 별난 건달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인간이 목돈을 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황당할 정도로 무서운 짓을 저지를 수 있게 된 겁니다.” (P637)
“가족이니 핏줄이니 하는 것은 누구한테나 번거롭고 신경 쓰이는 것이야.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것들을 싹둑 잘라내 버리고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하지만 실패했잖아.”
“그래, 실패했지, 그 사람들은.”
어머니는 빈 코코아컵을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돌아갈 곳도 갈 곳도 없다는 것과 자유라는 것은 전혀 다른 걸 거야.”
“응?”
“이제 그만 자렴, 노부코.”
학생이란 참 갑갑한 신분이어서, 텔레비전 방송국 관계자들이 집으로 우르르 몰려올 것이 틀림없는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꼼짝없이 등교를 해야 한다. 노부코와 하루키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있어도 생각은 온통 집으로만 쏠렸다.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서클활동을 빠지고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노부코가 농구부 연습을 빼먹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뜀박질로 집에 돌아가 보니 현관에 자물쇠가 걸려 있고 아무도 없었다. 가방을 든 채 여관 쪽으로 향했다. 여관 앞에는 낯선 밴 차량이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차량 옆구리에 ‘다카라식당’이라는 상호가 그려져 있다. (P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