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잔상과 잠상Lasting and Latent Images
Images
예전 2014년 4월9일부터 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윤주영 사진전이 열렸었다. 윤주영 사진가의 전시회의 타이틀은 잔상殘像과 잠상潛像이었다. 이 전시회는 그가 그동안 출판과 전시회를 열었던 주제들의 총 망라한 전시회이다. 그 내용은 <안데스의 사람들>,<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동토의 민들레>,<탄광촌 사람들>,<석정리역의 어머니들>,<갯벌의 어머니들>,<변하는 5일장>이다. 그는 “테마별로 그것들을 분류한 뒤 가슴과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쉬는 잔상(殘像)들만을 이번 책에 수록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채 뇌리(腦裏)속에 남아있는 잠상(潛像)들을 형상화하는 작업도 진행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대학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청와대 대변인, 문화공보부장관, 대사(大使)의 다양한 전직을 거쳐 50이 넘어 사진을 35년간의 작업의 완결판 전시회였다. 그가 35년 넘게 찍은 약 700,000장의 사진은 사람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이었다.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사실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작업한다는 것은 부럽기도 하고, 동경憧憬하게끔 한다. 그가 전시흘 통해서, 자신의 사진집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사진은 ‘잔상과 잠상’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사진은 분명 현실을 바꿀수 있는 힘을 가진다고 믿고 있지만 정말로 그러한지. 사진이 가진 잠재적인 힘과 렌즈를 통해서 들여다 본 현실의 기록이 어떠한 힘을 가질수 있는지 말이다. 그의 머리와 가슴 속에 들어 있었던 잠상은 이제 우리 앞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잔상이란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망막에 남아 있는 시각의 상(像)이다. 잠상은 사진에서 필름에 아직 현상되어지지 않은 할로겐 화합물의 결정체이다. 잠상은 아직 표면화되지 않은 잠재적인 기억이라면 잔상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너무 크게 남아있는 상처들, 푼크툼의 기억들일지 모르겠다. 잔상과 잠상은 차이가 있다. 잔상은 어쩌면 데자뷰dejavu와 비교할수 있을 것 같다. 잔상은 그 어떤 풍경이 뇌리속에 깊게 남아있는 거라면, 데자뷰는 처음 보는 풍경인데 어디선가 본듯한 풍경일 것이다. 잔상과 데자뷰는 기억에 대한 말이고, 잠상은 기록하는 매체의 선先기록인 셈이다. 사진의 기계적인 기록을 넘어 사진은 기억에 관한 것이다. 사진은 기억을 소환하고 환기시킨다. 사진은 기억인 셈이다. 그것은 그 현장에 있었던 사진가의 기억이자, 그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공유되는 기억인 것이다. 따라서 사진은 기억을 말한다.
기억에 대한 이론은 라캉, 들뢰즈, 바디우의 철학에서 말해진다. 라캉의 기억이론에 따르면 그는 무의식의 단계를 거울단계(the mirror stage)로부터 출발한다. 거울단계에서 그것이 실재계에 어떻게 투사되고 있는지 말이다. 어린 아기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는데 이 단계를 라캉은 <거울단계>라하고 <보여짐>을 모르고 <바라봄>만이 있는 단계이며 <상상계>라고도 하는데 이 단계는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사회적 자아로 굴절된다. 라캉은 이런 분석을 통해서 자아의 결핍과 욕망을 이야기한다. 주체와 타자의 관점에서 다시 되돌아와 기억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기억에 대해 <바라봄>의 기억과 <보여짐>의 기억은 무엇일까. 우리 의식(기억)은 보기만 하는 시선(eye)이 아니라 보여짐(gaze=응시)이 함께 하는 중첩적인 기억인 것이다. 마치 현실은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이 중첩되기도 하고, 현실계와 상상계는 중첩되어진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말에서처럼.
어떤 사진은 강렬해서 쉽게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다면, 어떤 사진은 오래보아야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다. 유독 오랜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진도 있다. 어쨌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진가가 찍은 사진에 공감하고 기억에 남는 사진이라면.... 사진은 찰나를 찍지만, 기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