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앤 해리스의 <초콜릿>

영화 <초콜렛Chocolat> 2000년

by 노용헌

초콜릿》(Chocolat)은 2000년에 개봉한 로맨스 영화로, 1999년에 출간된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였다. 비안 로셰역에 쥘리에트 비노슈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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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콜릿>은 영국의 소설가 조앤 해리스의 <초콜릿(Chocolat)>. <블랙 베리 와인(Blackberry Wine)>. 그리고 <5쿼터의 오렌지(Five Quarters of the Orange)>로 이루어진 <음식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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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육제의 바람에 실려 왔다. 2월의 따듯한 바람, 그 바람에는 바로 길옆에서 팬케이크와 소시지를 구울 때 나는 뜨겁고 기름진 냄새와 뜨거운 철판 위에 와플을 굽는 달콤한 냄새가 실려 있고, 그 바람에 실려 온 색종이 조각들은 지난겨울의 독(毒)을 씻어 내리는 듯 옷깃과 소매 위로 눈처럼 내려앉고 길가 도랑 위를 굴러다닌다. 좁은 중심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흥분으로 들떠 리본과 장미꽃 장식, 크레이프 천 등으로 뒤덮인 수레를 보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다. 한 손에는 노란 풍선, 그리고 다른 손에는 장난감 나팔을 든 아누크는 장바구니와 슬프게 생긴 연갈색 개 사이에서 눈을 크게 뜨고 구경하고 있다. 우리, 나와 아누크는 전에도 사육제를 여러 번 봤다. 작년 교회의 화요일에 파리에서 본 250대의 장식 수레 행진. 뉴욕에서는 180대의 장식 수레, 빈에서는 스물대여섯 팀의 취주악대 행진, 죽마(竹馬)를 탄 광대들, 종이로 된 머리가 흔들거리는 꼭두각시들, 번쩍거리는 지휘봉을 돌리는 배턴 걸들의 행진, 하지만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이 세상은 볼 때마다 신기한 광채로 빛난다. 금박지와 크레이프 천으로 동화의 한 장면을 어설프게 재현한 나무 수레, 용의 머리가 그려진 방패, 셀로판 꼬리를 단 인어, 번들번들하고 번쩍거리는 마분지로 만들어서 겉만 번지르르한 종이집, 양털 가발을 쓴 라푼첼. 문간에 서 있는 마녀, 엄청나게 과장된 초록 손톱을 말없이 흔드는 한 무리의 아이들..... 여섯 살 때는, 미요한 것을 예민하게 잡아낸다. 이건 한 살만 더 먹어도 불가능해진다. 비현실적인 것들, 눈속임, 인공적인 것들, 아이는 거기서 마녀와 마법을 실제로 본다. 아이는 나를 올려다본다. 그 눈은 우주 저 멀리서 바라본 지구처럼 청록색으로 빛난다. (P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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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민이 하나 새로 왔습니다. 비안 로셰라고, 아마 과부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린 딸이 하나 딸린 여잡니다. 옛날 블러로가 하던 빵집 기억나시죠? 그 사람 죽은 지 4년이 지났고, 가게는 그 후로 많이 망가졌지요. 그런데, 그 여자가 그 집에 세를 들었는데, 이번 주말쯤 다시 문을 연다고 합니다. 오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광장 건너편에 푸아투네 빵집이 이미 있는 데다가, 그게 아니라도 그 여자는 아마 적응을 못할 겁니다. 상당히 호감이 가는 여자이기는 합니다만, 저희들과는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두 달도 못 버티고 원래 있던 도시로 돌아갈 겁니다. 이상하지요? 그 여자가 어디서 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파리가 아닌가 싶은데, 어쩌면 외국에서 왔을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여자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투리를 전혀 안 씁니다. 북부 지방 사람들처럼 짧은 모음으로 말을 하기는 하는데, 그 여자 눈을 보면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혈통이 섞인 듯싶기도 하고, 피부는 또..... 하지만, 제가 실제로 그걸 본 건 아닙니다. 그녀는 어제와 오늘 종일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창문에는 오렌지색 비닐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그 여자나 그 여자의 딸아이가 양동이를 들고 밖으로 나와서 하수구에 더러운 물을 버리거나 인부들이나 다른 사람들하고 활기 있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여자한테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돕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습니다. (P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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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찾아뵙는 날이 아니라는 거 저도 압니다. 신부님. 하지만 누군가 대화 상대가 필요했습니다. 어제 빵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빵집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보니 포장이 벗겨지고, 차일과 덧문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진열장의 차광막은 올라가 있었습니다. 주변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했던, 오히려 우중충하기까지 했던 그 집이 눈부시게 하얀 바닥에 올라선 빨간색과 금색의 과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창가의 화분에는 빨간 제라늄이 피어 있었습니다. 난간에는 종이로 된 조화(造花) 화환이 감겨져 있었고요. 그리고 문 위, 오크로 만든 간판에는 손으로 쓴 검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천상의 프랄린

초콜릿 공방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짓이지요. 그런 가게는 마르세유나 보르도 아니, 아장에만 가도 많이 있지요. 관광업이 매년 발전하는 곳들이니까요. 하지만 랑스크네-수-탄에서 그런 가게를? 그것도 사순절이 시작되는, 전통적인 금욕의 기간 중에? 빙퉁그러진 짓처럼 보이는군요. 아마 일부러 그러는 걸 겁니다. 아침에 진열장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상자, 꾸러미, 금색, 은색 종이별들, 장미꽃 장식, 종, 꽃, 하트, 색색으로 말아 놓은 리본들이 흰 대리석 선반 위에 널려 있었습니다. 종처럼 만든 유리컵과 접시들 안에는 초콜릿, 절인 과자, 비너스의 젖꼭지, 트뤼프, 망디앙, 설탕에 절인 과일, 헤이즐넛 송이, 조개 초콜릿, 절인 장미꽃잎, 절인 제비꽃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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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상시처럼 문을 열었다. 오전만 열 작정이다. 오후에는 아누크와 함께 보내려고 한다. 오전에는 미사가 있기 때문에 광장에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2월이 다시 그 우중충한 모습을 드러냈고,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다. 싸늘하고 끈질긴 빗물은 포장도로를 적시고 하늘은 백랍(白蠟) 빛으로 물들어 있다. 아누크가 계산대 뒤에서 동요를 부르면서 나 대신 가게를 지키고 있는 동안 나는 주방에서 망디앙 --옛날에는 거지들과 집시들이 팔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을 구울 준비를 하고 있다. 난 망디앙을 좋아한다. 비스킷 크기의 검은 초콜릿, 밀크 초콜릿, 화이트 초콜릿 위에 레몬 껍질, 아몬드 그리고 탐스러운 말라가 건포도를 뿌린다. 아누크는 흰색 망디앙을 좋아하지만 난 최상급 70퍼센트짜리 코팅을 쓰는 검은색이 좋다.... 은밀한 열대의 맛이 나면서 혀끝에서는 씁쓸하며 부드럽다. 어머니는 이것도 역시 싫어했을 거다. 그래도 이것 또한 일종의 마술이다.

금요일부터는 높은 의자들을 가게의 카운터 앞에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놓고 보니 우리가 자주 들렀던 뉴욕의 간이식당, 크롬 도금을 한 파이프에 빨간 가죽 시트를 얹은 의자가 있던 명랑한 키치 분위기의 식당하고 비슷하다. 벽은 밝은 수선화 색깔이다. 푸아투가 준 낡은 오렌지색 안락의자는 한쪽 구석에 명랑하게 늘어져 있다. 왼쪽 편에 있는 메뉴는 아누크가 직접 쓰고 오렌지색과 빨간색으로 칠했다.

핫 초콜릿 5프랑

초콜릿 에스프레소 15프랑

초코치노 12프랑

모카 12프랑

케이크는 어젯밤에 구워 놨고, 핫 초콜릿은 벽난로 안의 시렁에 걸린 단지 안에 담겨 첫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밖에서 보이는 진열장 안에도 똑같은 메뉴가 붙어 있다. 그리고 나는 기다린다. (P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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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냐 하면, 여기는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고, 이곳 사람들은 아주 도움을 많이 주고 --아주 <색다르지요>. 하지만 파리는 안 그래요, 그렇지요?”

레노는 비웃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며 그렇다고 동의했다.

“사람들이 시골에 대해서 하는 말들이 틀린 게 없지요.” 나는 계속 밀어붙였다. “<모든 사람들>이 시시콜콜 참견하고 싶어 하지요! 전 그게 오락거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가게 세 개에 교회 한 곳뿐이잖아요.” 난 킥킥거리고 웃으면서 잠시 숨을 돌렸다. “물론 신부님께서 다 아시는 일들이지만요.”

레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만, 마드무아젤.....”

“오, 그냥 비안이라고 불러 주세요.” 나는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

“왜 랑스크네에서 머물기로 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혐오감으로 매끈매끈했고, 그의 얇은 입술은 닫힌 굴과 똑같아 보였다. “말씀하신 대로 여긴 파리와는 좀 다르지요.” 그의 눈을 보니 랑스크네가 베푸는 친절은 전혀 다르다는 뜻이었다. “이런 화려한 가게는.” --그는 우아한 손으로 억지로 관심 없는 척하며 가게와 진열된 물건들을 가리켰다 --“도시에 있어야 더 잘될 --더 적절한-- 그런 특별한 가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툴루즈나 아니면 최소한 아장 정도 되는....” 이 손님께서 이 아침에 용기를 내서 여기에 왜 오셨는지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적절한>이라는 그 단어에 예언자의 저주에 따른 냉정한 유죄 판결이 뜻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카운터 밑에서 그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좀 사납게, 레노는 그의 목 뒤를 찰싹 때렸다. 벌레에게 한 방 물린 듯했다.

“전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 도시인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끔씩 어느 정도의 즐거움, 약간의 일탈을 누릴 필요가 있습니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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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손님이 열다섯 명이었다. 오늘은 서른네 명, 기욤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플로랑틴 한 봉지와 핫 초쿄 한 잔을 샀다. 그를 따라온 샤를리는 의자 밑에 다소곳이 웅크려 있다가 기욤이 가끔씩 던져 주는 흑설탕을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먹고는 했다.

새내기가 랑스크네에 와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기욤은 나에게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지난 일요일 레노 신부는 금욕에 관해 강론을 했는데, 어찌나 적의에 차 있던지, 강론을 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바로 그날 아침에 문을 연 초콜릿 가게는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노라고, 카롤린 클레르몽이 --그녀는 또다시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있는데-- 특히 유난을 떨면서 교회에 모인 그녀의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기를 그건 <정말 충격적이고, 로마 제국의 타락에 관한 이야기와 똑같고, 아시겠지만, 그 여자가 마치 시바의 여왕처럼 이상한 춤을 추면서 이 마을에 파고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생아를 자랑스럽게 앞세우고 다니는 것만 봐도 구역질이 나는데 --뭐, 초콜릿? 특별할 것도 없고, 아시겠지만, 그리고 비싸기는 엄청나게.....> 아낙네들이 내린 대체적인 결론은 <그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거였다. 내가 2주 안으로 마을을 떠날 것이라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게의 손님은 어제의 두 배로 뛰었고, 손님들 중에는 클레르몽 부인 편인 여자들도 꽤 많았는데, 그들은 약간 면목 없다는 듯 쭈뼛거리면서 와서는 서로들 호기심에서 와봤을 뿐이다. 그게 다다. 어떤 것들인지 직접 와서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들 했다.

난 그들이 뭘 좋아하는지 다 안다. 그건 장사 요령이고 직업상의 비밀인데, 그건 점쟁이들의 손금 읽기나 마찬가지다. 엄마라면 재주를 아무 데나 써먹는다고 웃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 사람들의 삶을 그 이상으로 파헤치고 싶지는 않다. 난 그들의 비밀이나 마음속 깊이 품어 둔 생각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나를 두려워한다든가 고마워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엄마가 이런 나를 봤다면 뛰어난 재주를 하찮은 일에 써먹는 시시한 연금술사라며 놀렸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사람들이 좋다. 그들의 조그마한, 자기들만의 관심사가 좋다. 나는 그들의 눈을, 그들의 입을 보면 쉽게 알아낼 수 있다. (P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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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즐길 수 있는 예술이다. 모든 요리 과정은 일종의 마술이다. 요리 재료의 선택, 섞고, 갈고, 녹이고, 우려내고, 맛을 내는 과정, 옛날 책에서 찾아낸 조리법, 전통적인 요리 기구 --엄마가 향(香)을 보통의 가정에서 쓸 수 있도록 만들던 공이와 절구, 섬세함을 포기한 대신 저속하고 관능적인 황홀함을 맛보게 하는 엄마의 양념과 향로, 그리고 요리의 덧없음까지도 어느 정도는 나를 즐겁게 만든다. 그렇게 멋진 준비 과정을 거치고, 온갖 재주와 경험을 다 쏟아 붓지만, 그 즐거움은 오로지 한순간뿐, 남는 건 기껏해야 몇 사람에게서 듣는 고맙다는 말뿐이다. 엄마는 언제나 즐거워하는 나를 보면 우습다는 듯 놀려 대고는 했다. 엄마에게 있어서 음식은 즐거움이 아니라 항상 성가시기 짝이 없는 걱정거리였고, 우리의 자유의 대가로 내는 세금이었다. 나는 식당에서 메뉴를 훔쳤고, 과자 가게의 진열장을 간절한 눈빛으로 들여다봤다. 내가 진짜 초콜릿을 처음 맛본 건 분명히 열 살 때였지만 --아니면 그 이후일지도 모른다-- 그 황홀함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나는 조리법들을 지도처럼 내 머릿속에 간직하고 다녔다. 모든 종류의 조리법이 다 있었다. 번잡한 기차역에 버려진 잡지에서 찢어 낸 것도 있고, 길에서 사람들에게 빼앗은 것도 있고, 내가 직접 만들어 낸 희한한 조합도 있었다. 엄마는 카드 점괘를 따라 온 유럽을 떠돌아다녔다. 우리는 요리법이 적힌 카드가 정해 주는 대로 머물렀고, 황량한 국경을 넘으면서는 요리법 카드가 가리키는 목표를 향해 갔다. 파리에서는 빵과 크루아상을 굽는 냄새가 나고, 마르세유에서는 부야메스와 구운 마늘 냄새가 난다. 베를린은 자우어크라우트와 카르토펠 샐러드를 곁들인 아이스브라이이고, 로마는 강가의 조그만 식당에서 돈 안 내고 먹은 아이스크림이다. 엄마에게는 목표가 없었다. 모든 지도가 엄마의 머릿속에 있었고, 엄마에게는 어디나 거기가 거기였다. 그때부터 이미 우리는 서로 달랐다. 아, 엄마가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더라면, 사물의 핵심을 보는 법을,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는 법을, 그들의 생각과 갈망을 읽어 내는 법을, 차를 멈추고 우리를 태워 주었던, 우리를 리옹으로 데려다 주려고 천 킬로미터나 돌아갔던 그 운전사, 돈을 안 받겠다고 했던 식품점 주인, 보고도 못 본 채 눈감아 줬던 경찰, 늘 그랬던 건 아니다. 어떤 때는 웬ㄴ지 영문도 모른 채 실패할 때도 있었다. 속을 알기 힘든, 접근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 프랑시스 레노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리고 실패하지 않았을 때에도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간섭하곤 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건 그냥 참아 내기만 하면 되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초콜릿 만들기는 다른 문제다. 그래, 기술이 좀 필요하다. 가벼운 손놀림, 속도, 엄마에게는 전혀 없었던 인내, 하지만 조리 방법은 언제나 똑같다. 안전하고 무해하다. 그리고 나는 조리법의 속내를 파악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내가 필요한 것만 쓰면 된다. 그저 바라기만 하면 다 주어진다. (P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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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크를 재우고 나서 한참 뒤에, 나는 엄마의 카드로 패를 떼보았다. 엄마가 죽은 후 처음이었다. 난 그걸 백단향 상자에 보관하고 있다. 카드들은 부드러웠고, 엄마의 냄새가 풍겨 나왔다. 잠시, 나는 카드들을 그냥 치워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카드에서 나는 향기들과 함께 몰려오는 연상들을 견뎌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뉴욕, 김을 뿜어 대던 핫도그 매점. 깔끔한 웨이터들이 있던 평화 카페, 노트르담 대성당 밖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수녀, 하룻밤 묵었던 호텔 방들, 무뚝뚝한 도어맨, 의심 많은 경찰들,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에서 덮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무자비한, <그것>의 그림자.

난 엄마가 아니다. 난 도망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보고 싶고, 알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끌려 나는 침대 옆에서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상자에서 카드들을 꺼내서 펼친다. 아누크가 잘 자고 있는지 뒤돌아본다. 난 그 아이만큼은 나 같은 불안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패를 섞고, 떼고, 섞고 떼서 네 장의 카드를 뽑는다. <검(劍) 10, 죽음.> <검 3, 죽음.> <검 2, 죽음.> <전차, 죽음.>

은자(隱者), 탑(塔), 전차, 죽음.

카드는 엄마 거다. 이건 나한테는 효험이 없어라고 혼잣말을 한다. 은자가 뭔지는 확실히 알겠지만, 하지만 탑은? 전차는? 죽음은?

죽음 카드는, 내 안의 엄마 목소리가 말한다. 언제나 일신의 죽음의 전조가 아니라, 생활 방식의 죽음에 대한 전조일 수도 있어. 변화, 풍향의 변화, 이게 그 패의 의미일까?

나는 에언을 믿지 않는다. 엄마가 믿었던 방식. 우리가 돌아다녔던 궤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던 그런 방식으로는 믿지 않는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으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일을 그냥 밀고 가기 위한 버팀목으로는, 마음속의 혼란에 대한 합리화로는 믿지 않는다. 지금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우리가 탄 배에서 엄마가 말하던 목소리와 똑같다. 그때 엄마의 용기는 순전한 고집으로, 엄마의 유머는 변덕스러운 자포자기로 바뀌어 있었다.

<디즈니랜드는 어떠니? 넌 어떻게 생각하니? 플로리다는? 에버글레이드는? 미국에는 정말 볼 게 많단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이게 그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게 카드에 나타난 예언 아니겠니?> 그때부터 죽음 패는 카드마다 끼어들었다. 죽음과 검은 옷의 남자. 둘 다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로부터 도망쳤고, 그는 우리를 쫓아왔다. 백단향 상자 안에 담긴 채.

그 대비책으로 나는 융과 헤르만 헤세를 읽었고 집단 무의식에 대해서 배웠다. 예언이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말해 주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 악마는 없다. 다만 모든 문명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형(元型)의 집합일 뿐이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죽음, 추방에 대한 두려움-- 탑, 유랑에 대한 두려움 --전차.

그리고 이제 엄마는 죽었다.

나는 카드를 조심스럽게 향내 나는 상자에 담아 치웠다. 잘 가. 엄마. 여기가 우리 여행이 끝나는 곳이야. 어떤 바람이 불어오든 우린 여기서 그 바람을 맞아 내야 해. 이제 다시는 카드를 안 읽을 거야. (P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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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의 일은 정말 유감이에요.”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랑스크네-수-탄 사람들이 다 저 사람들 같지는 않아요.”

루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제 이름은 비안에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교회 건너편에서 초콜릿 가게를 하고 있어요. <천상의 프랄린>이라는.”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신중하고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그에게 --그들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들의 분노와 모욕감을 안다고, 나도 이미 겪었다고.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그들의 자존심, 모든 것이 씻겨 나간 후에도 남아 있는 헛된 저항도 또한 알고 있다. 나는 안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교감이라는 것을.

“내일 잠깐 들르시겠어요?” 나는 밝게 말했다. “맥주는 안 팔지만 제 커피는 드실 만할 거예요.”

그는 내가 그를 놀리는 게 아닌가 싶은 듯.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꼭 오세요.” 나는 다짐했다. “커피도 드시고 제가 만든 케이크도 한 조각 드세요. 여러분 모두요.” 옆에 있던 소녀가 친구들을 바라보더니 어깨를 으쓱하자, 루도 따라했다.

“봐서요.” 모호한 목소리였다.

“우린 스케줄이 무척 빡빡하거든요.” 그 소녀가 나서며 재잘댔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짬을 내보세요.”

다시 한 번, 탐색하는 듯한, 의심쩍은 시선. “봐서요.”

그들이 레 마로를 향해 내려가는 걸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아누크가 빨간 비옷 자락을 이국(異國)의 새 날개처럼 펄럭이며 언덕길을 달려 올라왔다.

“엄마, 엄마! 저기 봐, 배들이야!”

우리는 잠시, 감탄을 연발하면서 평평한 거룻배, 주름진 지붕을 단 키 큰 살림 배, 난로 연통으로 된 굴뚝, 프레스코 그림, 여러 가지 색깔의 깃발들, 구호들, 사고와 난파를 막기 위한 장치들, 작은 돛배들, 낚싯줄, 가재를 잡기 위해 매달아 두는 단지들, 너덜너덜해진 갑판 가리개들을 구경했는데, 강가에서는 양철 북이 캠프파이어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나무와 석유 타는 냄새, 생선 튀기는 냄새가 풍겨 나왔고, 신기하게도 사람 목소리를 닮은 색소폰이 아름다운 곡조로 구슬픈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음악 소리가 강을 건너 꿈결처럼 들려왔다. 탄 강을 반쯤 가로지른 곳에 정박한 소박하게 생긴 검은 살림 배 갑판에 붉은 머리의 남자가 혼자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를 보더니 그는 팔을 들어 올렸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거의 어두워질 무렵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뒤로 보이는 레 마로에서는 드럼이 색소폰 소리에 가세했고 그 드럼 소리는 단조롭게 물 위로 튀어 올랐다. 나는 공화국 카페를 지나면서 안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언적을 거의 다 올라서야, 내 팔꿈치께를 누군가가 잡고 있다는 걸 느꼈다. 돌아보았더니 조세핀 뮈스카였다. 외투는 안 입었지만 머리에 스카프를 둘러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야행성 동물처럼 창백해 보였다.

“집까지 뛰어가라, 아누크, 집에서 기다려.”

아누크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고분고분하게 돌아서서 언덕을 뛰어 올라갔다. 그 아이의 코트 자락이 심하게 펄럭였다. (P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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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시 포스터를 대충 훑어봤습니다. 글씨들은 아이들이 쓴 듯 삐뚤삐뚤이었습니다.

초콜릿 대축제

장소는 <천상의 프랄린>

부활절 일요일에 시작

누구든지 환영함

!!! 매진 직전, 지금 구매하세요!!!

그걸 다시 읽노라니, 천천히 화가 치밀었습니다. 가게 안에서는 여전히 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얘기에 정신이 팔린 그녀는 아직도 제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 한 발은 무용수들처럼 밖을 향해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비 모양의 작은 장식이 달린 끈 없는 신을 신고 있었고, 스타킹은 안 신었습니다.

부활절 일요일에 시작

전 이제 모든 걸 알게 됐습니다.

의도적이었던 겁니다. 가증스럽게도, 틀림없이 그녀는 이것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초콜릿 축제를 교회의 가장 성스러운 행사와 때를 맞춰서 벌이기로 했던 겁니다. 사육제 날 도착하던 때부터 그녀는, 저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저의 가르침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로 작정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녀와 강 위에 사는 그녀의 친구들 모두.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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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환영

그 여자가 의도했던 게 이건가요? 이런 사람들을 그러모으고 무절제의 축전을 벌이는 것?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교 신앙의 전통들을 박멸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싸웠습니까, 신부님. 어떻게 타이르고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계란, 토끼처럼, 아직도 살아 있는 이교 신앙의 집요한 뿌리의 상징들의 실체를 까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동안 우리는 순결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로 인해서 이제 정화가 새롭게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더 강력한 압력으로 우리에게 다시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신도들, 저의 그 어리석고 귀가 얇은 신도들은 그 여자에게 끌리고 있고, 그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르망드 부아쟁, 미셸 나르시스, 기욤 뒤플레시스, 조세핀 뮈스카, 조르주 클레르몽. 저는 내일 강론 시간에 이들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초콜릿 축제는 우리를 병들게 만드는 것 중의 일부일 뿐이라고 저는 그들에게 말해 줄 겁니다. 강의 집시들의 편을 들어 주는 것. 우리의 관습과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한 그녀의 계획적인 도전. 그녀가 우리 아이들에게 끼치게 될 악영향. 모든 징조들, 저는 그들에게 말해 줄 겁니다. 그녀가 여기에 나타남으로 해서 모르는 사이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모든 징조들을.

그 여자 패거리들의 축제는 실패할 것입니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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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아침 의사가 그녀에게 뭐라고 했는지, 그리고 그녀가 의사의 말을 정말 얼마나 알아들었는지 궁금했다.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하며 깨어 있다가 마침내 잠이 들었을 때, 나는 아르망드와 함께 디즈니랜드를 걷고 있고 그 옆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흰 토끼와 붉은 옷의 여왕으로 분장한 레노 신부와 카로가 만화처럼 그런 장갑을 낀 손을 잡고 따라오는 꿈을 꾸었다. 카로는 거대한 머리 위에 붉은 왕관을 쓰고 있었고, 아르망드는 양손에 솜사탕을 하나씩 움켜쥐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뉴욕 거리에서 나는 소음들, 자동차 경적 소리들이 들렸고, 그 소리들은 점차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아이고 이런, 그런 거 먹으면 안 돼요. 그건 독이에요.>” 레노 신부가 날카로운 소리로 끽끽댔지만, 아르망드는 양손에 든 솜사탕을 게걸스럽게 먹어 댔고, 그녀의 빛깔 좋은 얼굴은 냉정했다. 나는 그녀에게 택시를 조심하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나를 바라보면서 엄마의 목소리로 말했다. “인생은 사육제란다. 아가야,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건너다가 죽어. 이건 숫자로 증명이 된단다.” 그러고 나서는 끔찍스럽도록 게걸스럽게 계속 먹어 댔고, 레노 신부는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훨씬 더 공포스러운 목소리를 만들어 가며 꺅꺅거렸다. “<이건 모두 너 때문이야, 너의 그 초콜릿 축제, 네가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그런데 이제 모든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어. 죽어 가고 있어. 죽어 가고 있어. 죽어 가고 있어....>”

나는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나 때문이 아니야.” 나는 속삭였다. “그건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었어. 당신이 검은 옷의 남자였어. 당신이.....” 그러고 나서 나는 거울 속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사방에서 카드들이 내 주변을 감싸며 날아들었다 --검(劍) 9, 죽음, 검 3, 죽음, 탑, 죽음, 전차, 죽음.

내가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자 아누크가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졸음과 걱정으로 얼룩진 그 아이의 얼굴은 어두웠다.

“엄마, 왜 그래?” 내 목을 감싸 안은 아이의 팔은 따듯하다. 아이에게서는 초콜릿과 바닐라 냄새 그리고 차분하고 평화로운 잠의 냄새가 난다.

“아무것도 아니야. 꿈꿨어. 괜찮아.”

아이는 나를 재우려는 듯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고, 나는 무기력하게 세상이 뒤바뀐 듯한 느낌 속으로 빠져 들며, 마치 집 속으로 숨어드는 고둥처럼 빙글빙글 아이의 안으로 녹아 들어가고, 아이의 서늘한 손이 내 이마 위에 느껴지고 아이의 입이 내 머리카락에 와닿는 게 느껴진다. “<훠이, 훠이, 훠이.>”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응얼거린다. “<사악한 기운아, 썩 물러가라.> 이제 됐어, 엄마. 다 물러갔어.” 아이가 이런 걸 어디서 다 배웠는지 난 모른다. 엄마는 이런 말을 자주 하고는 했지만, 난 아누크에게 가르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런데 아이는 오래전부터 익숙한 처방처럼 그걸 쓰고 있다. 나는 사랑에 마비되어 아이를 꼭 붙들어 안는다.

“다 괜찮아질 거야, 그렇지 아누크?” (P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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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우리는 첫 번째 전단을 발견했다. 공처럼 둘둘 말려서 거리에 던져져 있었다. 조세핀이 가게 앞길을 쓸다가 발견해서 가게로 가지고 들어왔다. 분홍색 종이에 복사를 한 타이프라이터로 친 한 장짜리로 반으로 접혀져 있었다. 서명은 없었지만, 글투로 보니 누가 썼는지는 짐작이 갔다.

제목: 부활절과 믿음으로의 귀환.

나는 내용을 재빨리 훑어봤다. 대부분 뻔한 내용이었다. 환희와 자기 정화, 죄와 사죄 기도의 기쁨, 그리고 반쯤 지난 곳에, 다른 내용들과는 달리 굵은 글씨로 쓴 부분에 있는 부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다.

새로운 신앙 부흥 운동가들: 부활절 정신의 훼손

우리의 성스러운 전통을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이용하려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축하 카드 업체. 슈퍼마켓 체인. 훨씬 더 사악한 측은 고대 전통의 부활을 부르짖는 사람들로서, 우리의 아이들을 오락이라는 미명하에 이교도의 의식에 연루시키고 있다. 우리 중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아무런 해가 없다며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왜 우리 공동체는 바로 부활절 일요일 아침에 우리의 교회 밖에서 열리는 소위 초콜릿 축제라는 것을 허용해야 했는가? 이로 인해서 부활절이 뜻하는 모든 것들이 놀림감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의 순진한 아이들을 위하여 이 소위 축제라는 것과 그와 비슷한 모든 행사들을 보이콧할 것을 촉구한다.

부활절의 진정한 의미는 초콜릿이 아니라 교회다!

“초콜릿이 아니라 교회다.” 나는 웃었다. “정말 이건 참 잘 만든 구혼데요, 안 그래요?”

조세핀은 초조해 보였다. “이해가 안 가는군요.” 그녀가 말했다. “전혀 걱정이 안 되나 봐요.”

“왜 걱정을 해야 하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그냥 전단일뿐이에요. 그리고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 난 분명히 알아요.”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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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요일 장식을 하면서 앞 유리창을 가려 버렸고, 가게의 앞면 유리창은 우리가 여기에 막 왔을 때와 비슷하게 은색 종이 스크린이 덮고 있다. 아누크는 스크린을 색종이로 오려 낸 계란과 동물들로 장식했고, 가운데에 있는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초콜릿 대축제

<일요일, 생제롬 광장>

이제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어서, 광장은 아이들로 왁자지껄하고, 아이들은 준비가 어떻게 되어 가나 알고 싶어서 유리창에 코를 비벼댄다. 나는 주문하는 데만 --어떤 것들은 몽토방 같은 먼 곳, 심지어는 아장에까지 주문했다-- 이미 8천 프랑 이상을 써버렸고, 아직도 물건들이 오고 있어서, 가게는 이제 빈 곳이 거의 없다. 카로의 전단 작전은 중단해야 할 명분을 찾은 듯하다. 기욤이 전하기를 레노는 신도들에게, 심술궂은 수다쟁이들이 퍼뜨리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자기는 초콜릿 축제를 적극 후원하겠노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작은 창밖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를 자주 보는데, 그의 눈은 굶주려 있고 증오에 차 있다. 그가 나에게 뭔가 해코지하려 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발톱을 감추었다. 나는 아르망드에게도 물어봤고, 그녀는 뭔가를 알면서도 말하려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다.

“모든 건 지난 일일 뿐이야.” 그녀는 일부러 막연한 말을 했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해.” 그녀는 그보다도 파티를 어떤 메뉴로 꾸밀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고, 모든 걸 미리 맛보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게 넘쳐 났다. 고명으로 야생 식용 버섯을 넣고 크림과 포도주로 조리한 세 가지 버섯을 넣은 대구 블로방, 아리귈라 샐러드를 곁들인 로브스터 구이, 각기 다른 다섯 가지 종류의 초콜릿 케이크,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걸로, 그리고 집에서 만든 초콜릿 아이스크림...... 그녀의 눈은 기쁨과 짓궂음으로 밝게 빛난다.

“난 어릴 적에는 파티 같은 데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었어.” 그녀가 설명한다. “단 한 번도, 저기 몽토방으로 춤추러 간 적은 딱 한 번 있었지. 해안 지방에서 온 남자애하고. <우와!>” 그녀는 야한 몸짓을 직접 보여 줬다. “그 사람은 당밀처럼 까맸고, 달콤했어. 샴페인을 마시고 딸기 셔벗을 먹고, 춤을 같이 췄어......”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의 나를 자네가 봤어야 하는데, 비안. 지금은 상상이 안 갈 거야. 그 사람은 내가 그레타 가르보같이 생겼다고 했어, 입에 발린 말이기는 했지만, 우리는 둘 다 그 말을 믿는 척했지.” 그녀는 낮은 소리로 낄낄거렸다. “물론, 그 남자는 신랑감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달관한 듯 말했다. “지금도 그런 타입은 싫어.”

나는 요즘 거의 매일 밤 깬 채 누워 있고, 눈앞에서는 과자들이 춤춘다. 아누크는 새로 생긴 다락방 침실에서 잠자고 있고, 나는 깨어 있는 꿈을 꾸다가, 졸다가, 꿈에서 깨어나다가, 졸다가, 불면증으로 눈꺼풀에 빛이 어른거리고 방이 마치 흔들리는 배처럼 요동칠 때까지 그러고 있다. 하루만 더, 나는 혼잣말을 한다. 하루만 더.

어젯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상자에서 카드를 꺼냈다. 손대지 않기로 했던 카드였다. 손가락 사이에서 느껴지는 카드는 마치 상아처럼 서늘하고 부드럽고, 여러 색깔들 --청색, 보라색, 녹색, 검정색-- 이 내 손바닥 위에 펼쳐지고, 익숙한 그림들이 검은 유리판 사이에 눌린 꽃들처럼 내 시선으로 미끄러져 들어오고 나갔다. 탑, 죽음, 연인들, 죽음, 여섯 자루의 칼, 죽음, 은자(隱者), 죽음.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혼잣말을 한다. 엄마는 그걸 믿었다. (P27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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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는 그답지 않게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사투리도 상관없어요.” 그의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노동자의 손치고는 부드러운, 여자 손처럼 창백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나는 그가 이야기한 게 사실일까 궁금했다. 지금은 그건 문제가 아닌 듯 했다. 나는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에게서 페인트와 비누와 초콜릿 냄새가 났다. 나는 그의 입 안에 있는 초콜릿 맛을 보면서 아르망드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제나 그가 조세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키스를 하면서까지도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밤과 싸우기 위한 유일한 마술이었다. 가장 간단한 마술, 올해 초의 벨탄 축제 때 우리가 산허리에서 가지고 내려왔던 도깨비불, 어둠의 세력을 무시할 수 있는 작은 위안들, 그의 팔이 내 윗도리 밑에서 내 가슴을 찾아 나섰다.

잠시 나는 망설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미 너무나 많은 남자들이 있었다. 이 사람 같은 남자들. 관심은 있었지만 사랑하지는 않았던 좋은 남자들. 내 생각이 옳다면, 그리고 그와 조세핀이 하나라면, 이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나에게는? 그의 입은 가볍고, 그의 손길은 단순했다. 밖에 있는 꽃들에서 풍겨 오는 라일락 향기를 나는 잡아냈다. 그 향기는 난로의 온기를 타고 들어왔다.

“밖으로.” 나는 그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정원으로 가요.” 그는 아누크를 바라보았고, 아이가 아직 소파에 자고 있는 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은 함께 별이 빛나는 보라색 하늘 아래로 가만히 걸어 나갔다.

정원은 화로의 열기로 아직 따듯했다. 나르시스가 만든 격자 울타리의 고광나무와 라일락의 향기가 우리를 감싸 주었다. 우리는 아이들처럼 잔디 위에 누웠다. 우리는 약속도 하지 않았고, 사랑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거의 열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지만, 대신 천천히 달콤하게 내 몸을 따라 움직였고, 떨리는 혀의 움직임으로 내 피부를 감쌌다. 그의 머리 위로 보이는 하늘은 그의 눈처럼 짙은 자주색이었고, 이 세상을 감싸는 길처럼 은하수의 넓은 띠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지금이 우리 둘 사이의 유일한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 생각에 어렴풋하게 우울함을 느낄 뿐이었다. 그 대신 점차 커지는 존해고 있다는 느낌, 성취감이 나를 채웠고, 나의 외로움을, 심지어는 아르망드에 대한 나의 슬픔마저도 몰아냈다. 나중에 슬퍼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저 경이로움을 느끼기만 하자. 맨몸으로 풀밭에 누워 있는 나 자신에 대하여, 내 옆의 침묵하고 있는 남자에 대하여, 저 위의 무한한 공간과 내 안의 무한한 공간에 대하여, 우리는, 루와 나는,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우리의 달콤함이 차가워지고 작은 벌레들이 우리의 몸 위를 돌아다닐 때까지, 그리고 서로의 손을 맞잡고, 참을 수 없도록 천천히 돌아가는 하늘을 보면서 우리 발 끝에 있는 화단에서 라벤더와 백리향 향기가 느껴질 때까지.

루가 작은 소리로 짧은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좋은 바람이 온다. 상쾌한 바람이 온다.

좋은 바람이 온다. 내 삶이 나를 부르네.....

바람은 이제 내 몸 안에 있고, 거역할 수 없는 명령으로 나를 잡아 끌었다. 그 한가운데에 고요한, 놀랍도록 조용한 작은 공간, 새로운 그 무엇에 대한 익숙한 느낌, 이것 역시 어떤 마술이다. 엄마는 절대 이해하지 못했던 마술, 그럼에도 나는 이 마술을 더 확실하게 믿는다 --이 새로운, 불가사의한, 살아 있는 내 안의 따듯함-- 내가 이전에 했던 그 어떤 것들보다 더 확실하게, 마침내 나는 그날 밤 내가 왜 연인들 패를 뽑았는지 이해한다. 그 깨달음을 꼭 움켜쥐고 나는 눈을 감고 그녀의 꿈을 꾸려고, 아누크가 태어나기 몇 단 전에 그랬듯이, 밝은 뺨과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눈을 가진 작은 이방인의 꿈을 구려고 애를 썼다.

내가 깨어났을 때, 루는 가고 없었고, 바람의 방향은 다시 바뀌어 있었다. (P29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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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들은 뒤로 미뤄 두자. 검은 옷의 남자는 사라졌다. 이제는 나에게조차 내 목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더 힘차고 더 커졌다. 그 목소리는 뭔가를 말하고 있다. 주의해서 들으면 무슨 말인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다. 저항의, 즐거움의 그 무엇, 나에게서 공포는 사라졌다. 엄마, 엄마도 사라졌어. 엄마가 나에게 하는 말을 항상 듣기는 하겠지만, 나는 이제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을 더 이상 겁내지 않아도 돼. 아누크가 잠결에 미소를 짓는다. 나는 여기 머물지도 몰라, 엄마, 우리에게는 집이 있고, 친구들이 있어. 창밖의 풍향계는 돌고, 또 돈다. 저걸 매주, 매년, 매 계절마다 듣는다고 상상해 보라. 겨울날 아침 창밖을 바라본다고 상상해 보라. 내 안의 새 목소리가 웃는다. 그리고 그 소리는 가슴에 사무친다. 내 안의 새로운 삶이 부드럽고 달콤하게 방향을 바꾼다. 아누크는 잠결에 말한다. 의미 없는 말들이다. 아이의 조그만 손이 내 팔을 꽉 움켜쥔다.

“부탁이야.” 아이의 목소리는 내 옷에 가로막혀 둔탁해진다. “엄마, 노래 불러 줘.” 아이는 눈을 뜬다. 저 높은 곳에서 바라본 지구는 아이의 눈처럼 청록색이다.

“알았어.” 아이는 다시 눈을 감고, 나는 부드럽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좋은 바람이 온다. 상쾌한 바람이 온다.

좋은 바람이 온다. 내 삶이 나를 부르네.

지금만큼은 이 노래가 자장가로 들리기를 바란다. 지금만큼은 바람 소리가 안 들리기를 바란다. 지금만큼은 --제발, 이번 한 번만큼은-- 바람이 우리를 떼어놓고 가기를 바란다. (P3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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