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기억과 흔적
2014년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해이기도 하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이다. 내창형도 광주 망월동에서 이천으로 이장했었고, 그해 두 번의 사진전시회를 진행했었다. 추모주간(3월 31일~4월 5일)으로 학교에서 전시회를 했고, 이장 후 사진집단 현장 후배들과 함께 11월10일~11월21일까지 안성교정에서 전시회를 했었다. 2015년 11월 20일~11월27일까지 참여연대 갤러리에서 현장 30주년 기념전을 기획했었다. 2018년 사진학과 88학번 동문전시회(10월9일~10월24일)를 기획했고, 2019년 “기억하다, 마주하다, 함께하다”로 이내창 30주기 전시회를 기획하고, 이달 30일부터 11월5일까지 인사동 하나로 갤러리에서 마지막 전시를 준비한다. 전시회를 진행하면서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고마운 분들이 함께 해주셨다. 감사하다.
사진은 기억을 소환하는 매체이기도 하지만, 기억을 이어주는 매체이다. 사진으로 함께 했던 순간들이 이어지기 바란다. 우리는 흔적을 찾는 프로파일러가 되었든, 흔적을 찾는 역사가가 되었든, 기록되어진 조그마한 흔적에서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든, 사진은 흔적을 남긴다. 존재와 부재는 사진속에 남겨진 이미지는 그 대상이나 물체이건 존재하지 않더라고 그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현재 부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기억속에 남겨진 흔적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라진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심으로 사진은 신주[神主]처럼 그 기억을 신전[神殿]위에 바쳐진다.
30년이라는 긴 시간의 흔적들을 다 알긴 어렵다. 그 의미 또한 제각각 다르다. 엉킨 실타래처럼 기억의 중첩들을 다 풀기에는 정확히 기록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작가는 이런 박제된 기억들속에서 실타래를 풀어가는 작업을 한다고 생각된다. 작은 흔적에서 기억을 되찾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길 일 것이다.
“흔적은 존재도 아니며 부재(不在)도 아니다. 대상이 사라지고 없는 자리를 가리키는 흔적은 부재의 현존이다. 이미지로서의 예술작품은 기호처럼 자신을 드러내지만 그것의 미적(美的) 근본은 여전히 흔적 속에 보존되어 있다.” “사진은 재현대상과의 완벽한 유사성 덕분에 명백한 기호처럼 기능하지만 대상의 직접적인 지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호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기호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이며 이미지는 현재성의 경험으로 주어지는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이다. 예술작품을 기호로 대하는 것은 작품의 역사적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는 태도이며, 이미지로 대하는 것은 규정된 의미를 넘어서 작품을 감각적인 미적체험의 대상으로 다루려는 태도이다.” (박평종, 흔적의 미학)
사진이라는 것을 이미지로 판단을 하든, 기호나 정보로 판단을 하든 그 해석은 달리할수 있다. 그 의미체계에 있어서 내적의미를 담고 있는 흔적을 판단하는 것은 보는 이의 해석에 달려 있다. 작가의 기억과 흔적은 사진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하고 판단은 관객의 몫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