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그림같은 사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것이 노래 가사처럼 모든이들에게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현실은 녹녹치 않다. 꿈과 환상은 어쩌면 삶의 원동력일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겐 희망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절망이겠지.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그동안 사진을 배우면서도, 우리는 많은 강박적인 교육을 많이 받아온 듯 싶다. 이걸 사진이라고 찍었냐면서 사실 무시도 많이 당하고, 내성을 키우기 위해서 자기 합리화를 많이 배웠다. 우길때는 목소리 크게 우기고, 포장을 그럴듯하게 자기최면을 많이 건다. 그래야 살아남는 법을 배운 사람들의 교육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은 두 번째 문제인 셈이다. 신문사에서 데스크는 후배기자들이 찍어온 사진에 비판도 해주고, 나름 데스크가 원하는 사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6하원칙에 의거한 사진들, 설명적인 사진들, 이 사진은 올려봐야 신문에서는 킬당하는 것들, 그러나 이러한 기준들은 모두 개인적인 것들이다. 데스크의 성향에 따라서 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데스크는 어떤 현장이든 그림을 만들어오라고 지시한다. 보도사진(Photojournalism)도 모든 것이 연출되어진다. 스포츠만 빼고,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모두 연출된다. 연출의 기준은 물론 개인적인 것이다. 나름 그 현장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기준들, 그리고 아마츄어 사진가들, 수많은 사진가들의 로망은 단연코 그림같은 사진들이다. “와 저 사진은 정말 그림같애”, “저 사진은 정말 환상적이야”, “저 사진은 정말 미적이야” 그런데 아름다운 사진은 정말 무엇일까. 자연풍경을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 많은 풍경들과 마주한다. 무지개가 뜬 하늘, 눈이 내린 풍경, 일출과 일몰등 자연은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그런 사진들을 볼 때 아름답다라고 느낀다. 사실 아름답지만 이것을 더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은 과도한 색보정과 필터등, 현실감 없이 아름다운 것들, 이거 정말 사진으로 찍은거야 하면서, 우리는 아름다움에 열광하고 아름다움에 그림같은 사진, 회화적인 사진에 심정적으로 한표를 던진다. 보케(Bokeh)라던지, 아웃포커스라든지, 이런 사진들이 사진이 멋있다고 느끼고, 기교가 들어간 조명사진을 찍어야 사진 좀 찍는다는 소릴 듣는다. 사진가들은 많은 장비들과 특수렌즈를 통해서 결국 그림같은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한다. 왜 ‘있는 그대로’를 찍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림과 사진, 그림은 재현과 기록은 사진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사진은 여전히 그림의 환상을 쫓는다. ‘그림같다’는 것이 ‘예술’의 영역에 들어가고자 하는 꿈이다. 예술가로서 인정받기 위한 사진가들은 그림같은 집(작품)을 짓기 위해서 환상을 쫓는다. 단지 회화적인 사진이 아니더라도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사진을 통해서 ‘예술’의 영역에서 예술적으로 인정받고자 한다. 그런데 놓치는 것이 있다. 사진은 사실 ‘있는 그대로’를 찍을 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사진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포장할 때’ 그 사진은 이제 사진이 아니다. 물론 예술의 세계에 넘어섰는지 모르겠지만.
“You don’t make a photograph just with a camera. You bring to the act of photograph all the pictures you have seen, the books you have read, the music you have heard, the people you have loved.” -Ansel Adams
사진은 여전히 재현과 기록, 그리고 표현의 가치사이에서 실제와의 닮음이란 많은 비판과 논란들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단지 사진일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사진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뿐만아니라 많은 왜곡이 들어가기 때문에 예술적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에서 그림같은 사진은 과연 사진적 시각과는 어떤 관계일까. 사진적이다라는 것이, 완벽한 구도, 완벽한 조명, 완벽한 무언가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모적인 논쟁에 자유롭지 못하다. 나 스스로의 기준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 사진은 정말 아름다운 사진인가, 내 사진은 정말 대중에게 먹히는 사진인가(저급한 표현일지 모르나 딱히 이것을 대체할 말이 뭔지 몰라서)하고 내 스스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