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다큐멘터리 사진의 진정성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있어서 사진은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평가하기에는 그의 삶과 그의 사상을 알지 못하기에 사진만 봐서는 알지 못한다. 그를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눠 본 것도 아닌데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말하는지는 부족하지만 그의 사진으로 유추해본다. 잘못된 정보와 감추어진 정보로 사실상 우리는 포장된 정보로 판단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착각. 나는 다큐멘터리 예술사진을 하고 있다는 착각은 정말 위험하다. 진보적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다는 착각. 분쟁지역이든, 사회모순을 드러내는 사진에서 우리는 얼마나 예술적인 컷을 만들기 위해 나름의 스타일의 기교들을 부리고 있는가. 작가적 시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현장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의 예술적 기교로 전락하는 것은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폭력성이 아닐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로 인정받으려는 사진가의 윤리성도 그 폭력을 유발한다. 사진적 틀(프레임)은 각기 다른 사진가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사진이라는 텍스트는 작가의 윤리적인 진정성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알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을 한다. 전쟁과 분쟁, 그리고 해외의 사회적 현상에서 파생하는 사건과 그 무거운 주제들을 당신을 왜 찍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사물의 현상을 기록하고 관찰하는 관찰자로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은 무엇이고, 나의 사진은 어떤 가치 있는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가. 그 기본적인 것들을 망각하고 일회적인 껍데기 정보만을 우리는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결국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하는 아트주의자들처럼, 다큐사진도 아트가 되기 위해서 평론가나, 그 외 유명세를 얻거나, 영향력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워질수 없는 것인가. 나는 그런 사진을 혐오한다. 이중적인 사진가들.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고, 정의를 이야기하고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 항상 돈에 찌들려 있고, 돈이 부족한 가난한 예술가가 어디 한가로이 외국여행이나 다니면서 풍경사진을 찍을수 있겠는가. 스폰서도 없이 말이다. 결국 돈이 없는 천민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의 영향은 나를 변화시킨다. 물론 타협한다고 해야겠지. 클라이언트가 요구한데로 촬영하는 것이. 사회부조리는 기생충영화처럼 특이한 예술적 소재로 작용하고. 그것을 보며 대리만족한다는 것에 슬픈 현실이다. 진정성 있는 진실한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자신에게 항상 던져야 한다. “나에게 사진이란 수백 분의 일 초라는 순간에 사실이 지닌 의미와 동시에 우리 눈에 비친 그 사실의 형태가 갖는 엄밀한 구성을 함께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까르띠에 브레송의 말이 떠오른다.
실제(real)에 기반을 두지 않은 사실(fact)을 근간으로 하지 않은 다큐멘터리는 사실상 거짓이다. 그 의미를 억지로 다큐사진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것은 진실성이 결여되고, 진정성은 보이지 않으며, 그 정직성은 의심스럽다. 물론 개인의 작업이고, 개인의 시선이니 개인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판단을 중지하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진정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