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205. 사진계 황폐화

by 노용헌

돈이 문제다. 사진의 값어치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사람도 문제가 있고, 물론 사진의 내용이나 의미를 고민하지는 않고 돈벌이에만 쫓는 사진가도 문제가 많다. 사진가 스테파니 싱클레어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본인 동의없이 테크 전문매체 <매셔블(Mashable)>에서 사진을 도용한 문제에 대한 글이 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852)


스테파니 싱클레어 인스타그램.jpg


이상엽 사진가가 시사인에 기고한 글 ‘사진계 황폐화 부른 기술 발전의 아이러니’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사진가들도 비즈니스(영업)도 해야 하고, 변호사도 선임해야 하고(저작권 관련) 나의 사진이 어떻게 사용되어지는지 관리감독해야 하는 씁쓸한 현실이다. 만약 누군가 왜곡해서 사용되어진다면 더군다나 사진가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겠다.


글의 내용 중에 “〈매셔블〉은 ‘사회정의를 위해 렌즈를 든 10명의 여성 사진기자’라는 기사에 유명 사진가인 스테파니 싱클레어의 사진을 사용하고 싶다며 50달러를 제시했다. 그녀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사진가로서 그녀의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이다). 거절당한 〈매셔블〉은 싱클레어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개적으로 올린 사진을 임베드(embed:SNS 콘텐츠를 그대로 구현해 퍼갈 수 있도록 한 기능) 방식으로 그대로 기사에 포함했다. 사진가에게 사진 원고료를 주지 않고도 똑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결국 공유를 하는 모든 SNS에서는 ‘자기만보기’로 체크를 해야 한다. 그래야 황폐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인가?


모든 사진에는 사진가의 저작권 문제도 있지만, 사진에 찍혀진 대상에도 권리가 존재한다. 초상권이라든지,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라든지, 사진에 담겨진 모든 정보는 사실 사진가가 연출하거나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면 피해가기 어렵다. 여러 논란들이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법원에 출두하는 조국 장관의 자동차를 물티슈로 닦는 장면에서 우리는 광적인 사람들을 본다. 또한 정의기억연대의 기자회견과 이용수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서로 다른 관점의 차이를 본다. 씁쓸하고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의 판단의 근거는 내편에 대한 옹호라는 것에 더욱 씁쓸하다(팔은 내쪽으로 굽으니).


물론 나는 사진 자체가 말을 해주고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광적으로 믿는다. 그러나 사진의 녹아져 있는 여러 메타포들은 잘못 왜곡될 수도 있다. 사용자에 따라서 그 의미는 180도 다르게 사용되어질수 있다. 프로는 돈을 받고 움직이고, 돈을 받지 않으면 아마추어이다. 이런 기준은 무엇인가. 자원봉사자는 순수하지만, 생계형 활동가는 돈을 받고 일한다. 박봉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돈을 받고 일한다. 돈 안받고 일하는 활동가는 없다. 돈을 받고 일을 하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이 따른다. 돈을 안받고 자비로 만든 영화나, 책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지가 좋아서 나왔지 누가 나오라했는가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사진계의 황폐화'란 글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 의심하는 사회가 되었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의심환자로 보듯이 우리는 우리 모두를 경계하는 사회가 되었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경계하는 사회.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하고, 서로가 황폐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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