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다큐멘터리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말은 <On Being a Photographer> 中에서 나온다. 이 말의 의미에 공감한다. 나 또한 예술대학 내에서의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3학년에 전공은 보도, 순수, 광고로 나누어졌다. 보도전공자들은 저널리즘이나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진로를 정한다. 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는 다르면서도 닮아 있다. 포토저널리즘이란 매체에 사용되는 사진이고, 다큐멘터리는 그보다 광의의 해석을 할 수도 있고, 예술을 지향한다고 착각을 한다고 여겨진다. 다큐작가라는 칭호가 그리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다큐멘터리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적인 작가로서 신분상승을 원하는 작가 나부랭이들의 예술적 열차에 탑승할려는 욕망일 것이다. 그 꿈은 멋진 갤러리에서 나비넥타이에 정장을 갖추고 와인을 마시고 폼을 잡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란 용어는 도큐멘트(document)에서 유래했다. 도큐멘트는 라틴어 도세르docere이다. ‘도세르’는 가르친다는 의미와 단서를 제공하는 무언가를 묘사하며, 증거를 증명하는 문서라는 뜻이다. 따라서 다큐멘터리의 기본은 기록적 문서를 의미한다. 기록-관찰-조사가 다큐멘터리의 방식이다. 때론 재미없고 지루할지 모르는 문서인 다큐멘터리가 예술로서 영향을 주거나, 예술로 승화할수도 있겠지만 예술의 구멍에 억지로 집어넣으려는 노력은 앞뒤가 뒤바뀐 행위일지 모른다. 사진의 역사에서 다큐멘터리는 여러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퍼스널personal 다큐, 개인적 다큐, 주관적 다큐에 이르기까지 되었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예술사조에서 다큐멘터리는 사실주의와 낭만주의 사이를 넘나들었다. 현대 예술환경속에서 다큐멘터리는 한 예술가의 개성으로 표현되고 이해되어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다큐의 출발은 기록과 조사에 있다고 생각하면, 충실하게 기록과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특색을 드러내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다큐멘터리는 스트레이트 사진, 르포르타주 사진에서 출발한다. 순수사진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스트레이트straight 사진은 1907년 스티글리츠의 삼등 선실에서 탄생했다. 기존 살롱사진이나 예술사진과는 달리 사진적 기록에서 시작한다. 또한 어떠한 인위적인 변형을 시도하지 않고, 조작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진 그 자체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르포르타주reportage란 원래 프랑스어로 탐방, 보도, 보고를 뜻하는 말이다. 논픽션과 같은 뜻으로도 사용되고, 저널리즘의 심층취재 속성과 닮아있다. 또한 뉴스 사진의 성격과는 달리 일상생활의 기록 또한 르포르타주에 속한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사진은 이미지라는 거울을 통해서 객관화된 기록인 셈이다.
사진의 역사에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나 세바스티앙 살가도와 같은 사진가의 작품들은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만큼 유명하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그 표현된 방식이나, 작품성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진가가 기록하려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조사하고, 기록자의 입장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사진적, 시각적 표현을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훌륭한 다큐 작가는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 지속적인 노력 뿐만아니라, 기록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