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백남기 농민

사진기록

by 노용헌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가 있던 그날, 어김없이 차벽이 있었고, 시청쪽에서 오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동화면세점 앞 세종로와 종로1가에서 오는 시위대를 막기 위한 종로 르메이르 빌딩앞 사거리에서 차벽이 세워져 있었다. 시위대의 행진을 막으려는 경찰들은 물대포로 시위를 진압하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직수살수에 한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그 농민의 이름은 백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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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부터 시작된 시위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고, 10기압 물대포를 머리에 맞고 두개골 골절과 뇌진탕으로 혼수상태인 채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317일간의 사투 끝에 1년이 지난 2016년 9월25일, 별세하셨다. 사망으로 이르게 한 살수차의 수압은 약 15bar(3000rpm)에 가까웠다고 한다. 15bar 수압은 50층 건물의 꼭대기층까지 물을 쏘아올릴 수 있는 정도의 위력을 가진다. 그러나 정부는 끝내 사과한마디조차 하지 않았고, 책임자 또한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부검을 해야 한다는 억지 주장만 했고 최순실 국정논란으로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경찰은 불법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정당한 직무집행’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사과하지 않았고, 사망진단서에는 그의 사망원인이 ‘심폐정지, 급성신부전, 급성경막하출혈’로 사망종류는 ‘병사(病死)’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고인 백남기씨의 주치의는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백선하였다. 2017년 6월15일 서울대병원은 사망종류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정정하였다. 이철성 전 경찰청장은 서울대병원의 사인 정정 바로 다음날인 2017년 6월16일 첫 사과성 발언을 했다. 그 전까지 경찰은 '물대표 사용은 적법했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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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4일, <JTBC 뉴스룸>이 최순실이 버리고 갔다는 태블릿 컴퓨터 자료를 근거로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는 국정농단 의혹과 함께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 거대한 충격으로 시작되었고 2017년 3월10일, 대통령 박근혜 탄핵 인용(파면) 결정되기 까지 20회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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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5일 시민사회장으로 장례식을 치루고 6일 망월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백남기 농민의 인생철학은 ‘호랑나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호랑은 ‘주머니’를 뜻하는데, 없는 살림이나마 서로의 주머니를 ‘나누고 비우는’의미에서 ‘호랑나비’모임을 만들어 일상에서 실천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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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z_aEndb2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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