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228. 겹겹의 시간성

by 노용헌

반투명 유리판 여러장을 포개 색의 중첩으로 선보인 장승택 작가의 ‘겹회화(Layered Painting)’시리즈가 예화랑에서 최근 전시되고 있다. 겹회화에 대해 그는 시간을 색채로 물질화시켜 쌓은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 삶은 찰나의 연속이고, 그 순간순간이 쌓여서 인생이 만들어진다"라며 "그 시간의 겹을 떠올리면서 매 순간 다른 생각과 감각을 다양한 색채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510133400005?section=culture/performance-exhibition)

장승택 'Layered Painting 130-20'.jpg 장승택 'Layered Painting 130-20'

겹겹의 시간과 공간속에서 우리는 살고, 기억하고 기억은 겹겹이 쌓이고, 그리고 사라진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한 단편이기도 하지만, 사진가는 수많은 단편들을 겹겹이 보여줄려고 한다. 1837년 촬영된 다게르의 파리의 불레바르드 거리 사진에서 가로수 길 끝에서 구두를 닦기 위해 발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당시 다게르타입의 사진들은 감광도가 좋지 않아 장시간 노출을 주어야 했다. 최초의 사진에 등장한 인물사진은 8시간 동안이나 꼼짝 않고 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500분의 1초로 분절된 시간에서 겹겹의 시간을 담을려는 노력은 타임랩스(Time Lapse)나 슬로우셔터(Slow Shutter)등 장시간 촬영으로 담으려고 노력하는 사진에서 보여지기도 한다.


천경우 작가와 김아타 작가는 겹겹성을 장노출 시간의 겹겹을 표현하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인물을 30분 이상의 노출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은 굳어진, 때론 단편적인 관념이나 공간적 이미지의 의존하고 있다. 하루라는 시간은 하루이지만, 하루 하루가 모인 1년이라는 시간은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겹겹의 시간과 공간은 새로운 제3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작가는 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찍는 다는 천 경우 작가의 작업(Believing is Seeing#1)은 시간의 축적에 따른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들’을 겹겹이 보여주고자 한다.


천경우 1.png

김아타의 작업도 장시간노출에서 오는 시간성에 관한 작품들이 많다. 최근 그의 ‘온-에어’프로젝트 일환으로 시도된 ‘얼음 붓다(Ice Buddha)’ 또한 시간이 가지는 흐름, 그리고 겹겹, 그리고 사라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얼음의 독백(Monologue of ice)’ 시리즈로 확장된다. 그는 시간의 겹겹을 통해 실존의 문제를 구도하는 구도승[求道僧]처럼 질문을 던진다. 사진은 과연 겹겹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얼음은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주는 물질이지요. 여러가지 상징물이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인간과 이데올로기, 종교 등 모든 것의 영원성이 무의미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아타 1.jpg
김아타 2.jpg
김아타 3.jpg 김아타 ‘얼음의 독백(Monologue of ice)’ 시리즈

시간의 흐름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잊혀진다. 그러나 남아 있으려는 기억은 겹겹이 쌓이고, 흔적처럼 남는다. 그것이 그리움이 될지도, 여진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그리움만 쌓이네’처럼.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나 너 하나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https://youtu.be/u8DHtpKFr4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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