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로버트 카파

소설과 영화, 그리고 사진

by 노용헌

헤밍웨이는 이 제목을 성공회 신부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 쓴 기도문 중 <묵상(meditations) 17>에서 인용했다.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전쟁에 무관해 보이는 미국 지식인 로버트 조던(게리 쿠퍼)은 동지적 연대를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잉그리드 버그만)을 떠나보내면서 영원히 함께 한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소설의 배경은 스페인 내전(1936.7.17.~1939.4.1.)이 한창이던 1937년이다. 내전은 1933년 극심한 좌우대립이 원인이다. 1936년 2월 총선거에서 인민전선 내각이 성립되자 이것에 반대하는 프랑코장군이 인솔하는 군부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 내전 시간 내내 반란군은 한 지역을 장악하면 그 지방의 자유주의자, 노조 가맹원, 정치적 성향이 다른 지식인들 모두를 죄다 처형했다. 영화는 정치적 성향에 대한 설명이 없이 두 유명배우의 러브스토리에 초점이 맞추어줘 있는 듯하다. 스페인 내전에 관련한 사진,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이란 로버트 카파의 사진은 유명하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주인공인 잉그리드 버그만의 구애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것에는 카파의 사진 만큼이나 잘 알려진 것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남긴 그림 <게르니카(Guernic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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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 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17세 때 유태인 차별정책과 공산주의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추방되었고, 1931년 독일 베를린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는 조국에서 쫓겨났고, 타국에서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했다. 종군기자 혹은 전쟁사진가의 대명사처럼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전설적인 사진가다.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것은 1936년 스페인 내란 중에 찍은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Spanish Loyalist at the Instant of Death, 1936년>이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가까이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그의 이 전설적인 사진이 만약 연출된 것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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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고고학자 페르난도 펜카는 이 사진이 연출된 것일 수 있다는 정황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형측량법으로 사진이 찍힌 정확한 장소와 날짜를 확인했으며, 그 결과 이 사진이 실제 상황을 담았을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코르도바 출신인 펜카는 스페인내전 당시 코르도바 지역에서 전투가 치열했던 곳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생존자 인터뷰를 통해, 사진이 찍힌 장소가 세로 무리아노에서 남쪽으로 약 50㎞ 떨어진 에스페호 마을의 '아사 델 렐로' 언덕임을 특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사진이 찍힌 날짜가 1936년 9월 4일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 경우 이 사진은 연출된 것일 수밖에 없다. 1936년 9월부터 훨씬 나중까지 에스페호에서 아무런 전투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2021년 12월 31일자>


https://www.yna.co.kr/view/AKR20211231111600009?section=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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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이 전쟁이 끝나면 따로 할 일이 있었다. 그가 이 전쟁에서 싸우는 것은 이 전쟁이 자기가 사랑하는 나라에서 일어났기 때문이고, 공화주의를 신봉하기 때문이며, 또 만약 이 전쟁에 진다면 공화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삶이 비참해지기 때문이다.이번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는 공산당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곳 스페인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가장 훌륭한 기율, 가장 건전하고 가장 진지한 기율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전쟁 동안 그들의 통제를 받아들인것은 전쟁을 수행하는 데 그가 존경할 만한 계획과 기율을 지닌 유일한 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정치적 견해는 어떠한가?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정치적 견해도 갖고 있지 않지, 하고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파블로와 정치적 견해를 토론해야 할지 모른다. 그의 정치적 성장이 어떠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확실히 재미있는 일일것이다. 어쩌면 고전적 방식으로 좌파에서 우파로 변모했을지도 몰라. 마치 레루처럼 말이야. 파블로는 레루와 아주 비슷한 데가 있지. 프리에토도 마찬가지로 좋지 않아. 파블로와 프리에토는 거의 비슷하게 궁극적인 승리를 믿고 있다. 그 둘은 말 도둑놈 같은 정견을 지니고 있다. 그는 정치의 한 형태로서 공화주의에 신념을 품고 있었지만, 반란이 일어나면 공화국은 공화국에 위기를 가져온 말 도둑 무리를 모두 제거해 버려야 할 것이다. 지도자들이 실제로 그들의 적인 그런 인민이 전에도 과연 있었던가? 인민의 적, 이것이야말로 그가 생략하고 싶은 구절이었다. 또 그가 건너뛰고 싶은 구호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P314-315>


전쟁의 참혹한 현장에서의 사진기자들을 종군기자라고 부른다. 그들의 임무는 전쟁의 반인류성(反人類性)을 고발함이겠지만,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세계의 주요 전장에서 전쟁 당사국들의 극소수 언론에 한해 부분적인 종군취재는 지난 베트남전 당시 기자들에 무체한적인 취재를 허용하여, 반전여론이 높아져 곤욕을 치룬 미국은 이라크 전쟁시 임베디드 프로그램(embedded program)을 운용하였다. 미군이 일방적으로 배포하는 보도자료와 보도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취재는 사실상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함이었다. 많은 종군기자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그만큼 많은 공간적 제약을 가진다. 분쟁의 지역에서 중립적인 시선으로 또는 제3자의 시선으로 어느 편의 입장에서도 관여하지 않고 사진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영화 뱅뱅클럽(The Bang Bang Club)>에서 보듯이, 이들의 진실이란 의미를 기록하기 위한 도덕적 딜레마와 그들의 고뇌는 사실 파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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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상륙작전을 취재할 때, 카파는 두 대의 카메라를 사용했다. 해변에서는 콘탁스 II만 사용했고, 롤라이플렉스는 상륙하기 직전과 다시 배에 올라탄 후에만 사용했다. 뒤표지에 있는 카파의 모습을 보라. 전투를 앞두고 군용 모자와 군복을 걸친 로버트 카파가 한 손을 올려 둔 채 목에 건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보호하고 있다.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필름을 카메라에 다 넣기도 전에 망가뜨릴 만큼 두려움에 떨면서도, 모든 감각을 자신의 카메라에 기울여 현장에서 목도한 전쟁의 참혹함을 사진으로 낱낱이 기록했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틀 후, <라이프>의 런던 지사 암실에서 불행한 사고가 일어난다. <라이프> 직원이 너무 서두른 나머지, 네거티브를 건조할 때 통풍을 충분히 하지 않는 바람에 온도가 너무 높아져 필름 4통 중 대부분이 사라진 것이다. 남은 것은 11장뿐이었다.

1944년 6월 19일, <라이프>는 총 6쪽에 걸쳐 카파의 사진을 공개하며 다음과 같은 캡션을 달았다. “당시 카파의 손은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떨렸다. 사진이 흐릿한 이유다.” <라이프>의 사장 윌슨 힉스는 전보에 가장 훌륭한 침공 취재였다는 축하 메시지와 함께 이런 문구를 써 보냈다. “전장에서 카메라에 물이 들어가 훼손된 필름을 구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카파의 사진은 위대했다. 5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암호명 <오마하 해변(Omaha Beach)>에서 일어난 지옥을 영화에 성공적으로 재현해 낸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버트 카파의 ‘The Magnificent Eleven(D-Day 최고의 열한 장)’이 없었다면, 나는 그 끔찍한 현실을 상상하거나 영화로 묘사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은 역사적 순간을 이미지 속에 사로잡은 유일무이한 자료다.” <로버트 카파: 살아남은 열한 장의 증언, 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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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상황에서는 대중매체가 다룰 수 있는 자극의 수위도 점차로 높아져서 웬만한 큰일이 아니고서는 독자들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감각의 마비증세는 사진에 있어서 특종이 될 만한 주제를 점차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쪽으로 몰고 간 것 같다.텔레비전은 불충분하게 선택된 영상이미지들을 흘려보내고 그 이전에 내보낸 영상들은 소멸시켜 버린다. 그러나 사진은 정리되어 있는 상태로 특정하게 선택된 순간을 간직하고 다시 볼 수 있는 대상으로 남게 된다. 따라서 신문 지면에 보여진 사진은 텔레비전의 이미지보다는 더욱더 일반인들에게 강하게 인식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충격적인 사진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충격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해내고 있다. 물론 신문지면에 폭력의 이미지가 넘쳐나는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사회의 구석구석에 구조적으로 폭력이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보도사진에 있어서 최선의 길을 찾는다면, 한 장의 사진이 단순히 폭력에 대한 묘사일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폭력의 실체를 밝혀 보여줌으로써 폭력을 반대하는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전쟁에 관한 사진은 전쟁을 반대하는 사진이다'라는 제목으로 전쟁사진에 관한 특집을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전제를 필요로 한다. 전쟁에 관한 모든 사진이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걸프전쟁 보도사진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전쟁을 찬양하는 면도 많이 있었다. 또한 어떤 사진의 경우는 폭력에 반대한다고는 하지만 어느 쪽의 폭력을 반대하는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진은 분명히 하나의 판단을 유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다음은 전쟁의 다른 두 가지 이미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사진은 퓰리처상을 받은 에디 애덤스(Eddie Adams)의 사진이다. 베트남전쟁에서 후인 콩 우트(huynh cong ut)의 강한 이미지의 사진은 군 지휘관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진이다. 많은 매체비평가들과 사회역사가들은 이 사진이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사진은 이라크 공군본부에 대한 최초의 공습작전 사진이다. 이것은 TV를 통해 생중계 되었는데 가정의 시청자들은 전쟁사상 처음으로 이라크에 대한 공습장면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 탄두에 비디오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 폭탄'은 미사일이 폭발한 후 스크린이 꺼질 때까지 가정에 있는 시청자들에게 목표건물의 이미지를 생생히 방송할 수 있었다. 이미지의 폭력은 결국 그것이 이미지로 나타나서라기보다는 대량으로 복제된다는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이 많다. 폭력의 야만성이 아니라 폭력의 문명성이다. 야만적인 폭력은 직접적이고 그만큼 영향의 범위도 좁지만 문명화된 폭력은 간접적이면서 영향의 범위는 넓다. 때로는 제도라는 이름으로 혹은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문명화된 폭력은 온갖 정당화의 장치들을 갖추고 있으므로 쉽게 그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한편으로 문명화된 폭력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세련된 언술들을 뒤에 깔고 행사되므로 많은 사람들을 속이기까지 한다. 아무런 사진설명 없이 매스 미디어(mass media)에 노출된 보도사진은 이것이 가지고 있는 모호성에 의해 관심과 호기심을 유발하고 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전쟁을 빌미로 휴머니즘을 주제로 삼지 말자. <911테러에서의 사진이미지에 대한 고찰-viscom.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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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스크 지역 광산 노동자의 딸로 공산주의자가 된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Dolores Ibaruri Gomez). 돌로레스는 프랑스로 가서 공화파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때 남긴 말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노래 가사이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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