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영화, 그리고 사진
193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는 미국 포토저널리즘의 황금기이다. FSA(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의 사진가들, 벤 샨(Ben Shahn), 아더 로스타인(Arthur Rothstein),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마가렛 버트 화이트(Margaret Bourke-White) 같은 사진가들은 어스킨 콜드웰(Erskine Caldwell)의 <담배 길Tobacco Road>,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arth>, 아치볼드 매클리시(Archibald MacLeish)의 <자유의 땅Land of the Free>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창조적인 시각적 결과물들을 발표했던 시기이다. 제임스 에이지(James Agee)는 1936년 잡지 <포춘 Fortune>에 근무하는 중에 앨라배마주(州)의 소작인의 실태를 그린 르포르타주를 써 내기로 결심하고 사진가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협력을 얻어서 <Let Us Now Praise Famous Men>(1941)을 출판하였다. 에반스의 사진이 정공법에 의한 르포르타주라면, 랭의 사진은 더욱 인물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유명한 사진 <이주민 어머니Migrant Mother>는 농촌의 빈곤과 그들의 삶을 더욱 가깝게 다가간다. 그녀는 1939년 남편 테일러와 함께 ‘미국의 탈출: 인간 침식의 기록’을 발표하게 된다.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1940년 존 포드(John Ford)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영화의 이미지들은 호러스 브리스톨(Horace Bristol)의 사진과 비슷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브리스톨은 대공황의 여파로 오클라호마, 아칸소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부 캘리포니아로 장거리 이주하는 사람들의 사진들을 찍었다. 그의 사진중 <샤론의 로즈, Rose of Sharon>은 소설과 영화에 영감을 주었다. 소설에서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별로 웃기지 않은 일에도 웃음을 터트리는 습관을 익혔다. 그러나 즐거움보다 더 좋은 것은 차분함이었다. 어머니가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아야만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의지할 수 있으니까. 위대하면서도 하찮아 보이는 가족 내의 그 위치에서 어머니는 깨끗하고 차분한 아름다움과 위엄을 얻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흔들리면 가족도 흔들리고, 자신이 심하게 동요하거나 절망에 빠지면 가족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분노의 포도 1, P153) 가족에게 어머니는 구심점(求心點)인 셈이다. 소설속 조드 일가는 폭풍우를 피해 헛간으로 피신하게 되고, 톰 조드의 여동생인 젊은 여자 로저샨(Rose of Sharon)은 사산(死産)을 한 후 아직 몸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때 폭풍우를 피해서 들어온 50대 가량의 남자와 그 남자의 아들이 함께 조드 일가가 피신한 헛간으로 피신해 왔고, 그 남자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병이 났고 6일간 굶어서 죽을 지경이라며 먹을 것을 구걸하였다. 그 불쌍한 사정을 듣고 난 후 로저샨과 그녀의 어머니는 그 50대 남성에게 젖을 줄 것을 합의한다. 자신의 젖을 먹여 주어 소년의 아버지인 50대 병든 죽어가는 남성의 생명을 구해 준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백만 에이커를 가진 한 사람의 대지주를 위하여 10만 명이 굶주리고 있었다”라는 스타인벡의 말을 통해서 소작인들의 분노를 공감할 수 있다. ‘분노의 포도’란 말은 미국의 줄리아 워드 하우의 ‘공화국의 싸움의 노래’에서 차용한 것이다.
영화 <모던 타임즈>는 산업화에 따른 개인의 비참한 현실, 피해자로서 보여준다면 <분노의 포도>는 자본주의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피해자이고, 피해자인 개인들은 저항을 다짐함으로써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와서 다시 옛날처럼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루 한끼를 걱정하지 않게 된 것처럼(아직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유토피아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영원해요, 우리가 민중이니까”라고 톰의 엄마는 외친다.
“도로시아는 사진기를 들고 세상을 두루 살폈어요. 아버지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들판에서 쉬지 않고 일했어요. 어머니들은 천막에서 목마르고 아픈 아이들을 돌봤지요. 어떤 가족은 먼지 폭풍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낡은 자동차에서 살았어요. 도로시아는 절뚝거리며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사진에 낱낱이 담아냈어요. 세상이 등 돌린 사람들을 마음으로 되새기고 싶었지요” <진실을 보는 눈,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 P21>
목화는 많은 노동들 사이에 그리고 여러 작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모든 다른 작물과 노동은 삶 그 자체를 의미한다. 목화는 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그것은 소작인 가족의 일을 더 많이 요구하며 다른 모든 것들보다 적은 보상을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소작인은 나머지 일을 해야 하고, 나머지 일을 수행할 수 있으며, 조금이라도, 소작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보다 적은 판매와 물물교환 그리고 철이 지난 일의 약간의 사소함을 제외하고, 그것은 그의 가능한 돈의 유일한 원천이며, 이 사실을 통해, 비록 그의 생활은 당면한 자연의 조작에 의존하는 것보다 돈에 훨씬 덜 의존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의 사용료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또한 그가 돈 외에 다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가 필요한 만큼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해야 하는, 그의 주요 계약을 맺은 의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결핍과 낭비된 삶의 중심 수단이자 상징이다. 그것은 소작인의 생활의 현 상태로는 전혀 쓸모가 없는 한 작물이고 노동이다; 그것은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많고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주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작인이 최소한으로 바랄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며, 그가 용케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장 확신할 수 있고, 항상 벗어나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일들은 그것에 부수적이다; 그것은 항상 모두의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 가장 희망과 관심이 적은 것은 소작인의 일이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다. 나는 면화 작업이 소작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데 덜 몰두했었고 자기 모순적인 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이 가진 중복성 때문에 사람은 살아있고, 자신의 인생은 기만하는 파멸로 치닫는다, 그리고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접질리고 황혼의 영향이 있다: 그러나 왜냐하면 그것은 소작인 가족이 살아 있어야 하는 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고, 다른 모든 것을 비껴가고, 그들의 개인적인 필요, 보상, 가치로부터 여전히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의 의미는 대부분의 일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것은 다른 많은 것들 중에서 더 약하고 삶과 희망에 더 영향을 받기 쉬운 강한 케케묵은 사람 마음을 끄는 것이다. <Let Us Now Praise Famous Men, P169>
“당신의 사진은 어떤 의미에서 당신의 자서전이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 방법론에 있어서 주제를 함부로 변경시킨다든가 또는 적당히 손질해서는 안되고, 대상은 환경의 일부로서 거기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이 취급해야 하며, 대상이 과거와 현재라는 흐름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라고 랭은 말한다.
“도로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이라도 저지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농사는 잘되었지만 굶주린 사람들은 도로로 나섰다. 곡식 창고는 가득 차 있어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렸고 펠라그라병 때문에 옆구리에서는 종기가 솟아올랐다.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을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 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며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분노의 포도 2, P119,120>
수년간 나의 암실 문에 나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말을 붙였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꾸거나 속이지 않고, 실수와 혼동 없이 응시하는 것은, 모든 창작물들보다도 그 자체로 더 고귀하다."
—From a Memo by Dorothea Lange to Nancy Newhall, April 13,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