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영화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2011년

by 노용헌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폭풍의 언덕(1992), 폭풍의 언덕(1960), 폭풍의 언덕(1998), 폭풍의 언덕(1985), 폭풍의 언덕(1978), 폭풍의 언덕(1970), 폭풍의 언덕(1954), 폭풍의 언덕(1939), 폭풍의 언덕(1920)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영국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필명 엘리스 벨(Ellis Bell)로 출간한 유일한 소설이자 유작 소설이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 신부가 성공회 사제였던 가정환경상 에밀리는 어린시절을 사제관이 있던 영국 요크셔의 황량한 벌판에서 보내면서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길렀으며, 어른이 된 후 요크셔 벌판의 폐가(TopWithens)에서 영감을 얻어 <폭풍의 언덕>을 썼다. 문학사에 형제가 모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예가 얼마나 될까. 아마 브론테 자매뿐이 아닐까 싶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세 자매는 각각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 등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2011년작 폭풍의 언덕은 베니스국제영화제 촬영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히스클리프의 관점으로 진행된다. 히스클리프의 복수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히스클리프의 딜레마와 그 안에서 형성되는 캐서린과의 관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영화는 흑인 히스클리프를 내세우며 인종과 계급의 갈등을 좀 더 분명히 했다. 소설은 1801년 황량한 벌판에 위치한 폭풍의 언덕에 세입자인 록우드씨가 찾아온다. 자신이 세든 집인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주인인 히스클리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거칠었고 잘 곳도 변변하지 못하여 감기에 걸려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로크우드는 폭풍의 언덕과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가정부 넬리 딘에게 그동안 있었던 두 집안의 역사에 대해서 들으면서 넬리의 서술로 소설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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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여류 소설가들의 유명한 세가지 소설이 있다면,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있다. 그중 폭풍의 언덕은 주인공인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에서 시작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결국 복수와 애증으로 엮여져 있다. 과연 사랑은 무엇인지? 사랑과 돈 사이? 각자의 이기적 사랑으로 인한 불행은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하지만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딸과 아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해피앤딩(?)으로 끝내고 있다. 캐서린 언쇼와 에드거 린튼 사이에서 태어난 딸 캐서린(캐시)이 돋보인다. 치기와 고집 등은 여전하지만, 이 반복되는 잔혹극을 끝낼 유일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인물이었다.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한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과연 이해할 수 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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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더링 하이츠란 히스클리프 씨의 집 이름이다. '위더링'이란 이 지방에서 쓰는 함축성 있는 형용사로, 폭풍이 불면 위치상 정면으로 바람을 받아야 하는 이 집의 혼란한 대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정말 이 집 사람들은 줄곧 그 꼭대기에서 일 년 내내 그 맑고 상쾌한 바람을 쐬고 있을 것이다. 집 옆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전나무 몇 그루가 지나치게 기울어진 것이나, 태양으로부터 자비를 갈망하듯이 모두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고 늘어선 앙상한 가시나무를 보아도 등성이를 넘어 불어오는 북풍이 얼마나 거센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다행히 이 집을 지은 건축가는 그것을 감안하여 튼튼하게 지었다. 좁은 창들은 벽에 깊숙이 박혀 있고 집 모서리는 크고 울퉁불퉁한 돌로 견고하게 되어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기 전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집 정면에, 특히 현관문 주위에 새겨진 수많은 기괴한 조각에 감탄했다. 현관문 위에 부스러져 가고 있는, 사자 몸뚱이에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알몸뚱이 사내아이의 조각 가운데, 1500년이라는 연대와 헤어튼 언쇼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에 관해서 몇 마디 칭찬을 하고 퉁명스러운 주인에게 그 집의 간단한 내력을 얘기해 달라고 청하고 싶었지만 문간에서의 그의 태도가 빨리 들어오든지 아니면 나가버리라는 듯한 눈치인 데다가, 나로서도 집 내부를 속속들이 보기도 전에 그의 불끈하는 성미를 부채질하고 싶지는 않아 그만두기로 했다. (P9-10)


두 아이는 주워 온 아이와 함께 자는 것은 고사하고 한 방에 같이 있는 것조차 반대했답니다. 저도 그들보다 철이 더 든 것도 아니어서 다음 날엔 꺼져버리기를 바라면서 그 아이를 층계참에 내버려 두었지요. 우연인지 목소리를 듣고 갔는지 그 아이는 언쇼 어른의 방문까지 기어갔던 모양이에요. 그 분이 방을 나오실 적에 거기 있었거든요. 당장 그 아이가 어떻게 거기를 갔는가 하는 심문이 있었고 저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리하여 비겁하고 인정머리 없다는 이유로 저는 그 댁에서 쫓겨났답니다.

히스클리프는 그렇게 해서 처음 그 집에 오게 된 거죠. 저는 쫓겨나긴 했지만 완전히 쫓겨난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며칠 수 돌아가 보니 그 아이는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어요. 어릴 적 죽은 그분 아드님의 이름이었는데, 그 이름이 히스클리프에게 그대로 이름과 성이 되어버린 거였지요.

캐시 아가씨와 그는 벌써 매우 친해져 있었어요. 허나 힌들리 도련님은 그 아이를 미워했고 솔직히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 아이를 골려주고 고약하게 굴었어요. 저는 그때까지도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만큼 철이 들지 않았고, 그가 혼이 나고 있는 것을 보셔도 마님께서는 그 아이를 위해서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죠.

히스클리프는 무뚝뚝하고 참을성 있는 아이 같았어요. 아마 학대를 받아서 굳세어졌겠지요. 힌들리 도련님에게 얻어맞아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며 참았고, 저한테 꼬집혀도 마치 자기가 잘못해서 다쳤으니 남을 탓할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들이쉬고는 눈만 끔벅끔벅할 뿐이었어요.

이렇게 히스클리프가 참고 있었기 때문에 언쇼 어른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아비 없는 불쌍한 자식이라고 부르시고, 당신 아들 힌들리가 괴롭히는 것을 보면 몹시 화를 내셨어요. 그분은 이상하게도 히스클리프를 좋아하셔서 그가 말하는 것은 뭐든 믿으셨어요.(아닌 게 아니라 그는 매우 말이 없었고 말하는 것도 대개 진실이기는 했지요.) 그리하여 그분은 지나친 장난꾸러기에다 말괄량이여서 귀염을 받지 못하는 캐시 아가씨보다도 그를 훨씬 귀여워 하셨답니다.

이렇게 해서 처음부터 히스클리프는 집안의 미움을 샀지요. 이 년도 채 못 되어 언쇼 마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젊은 주인인 힌들리 도련님은 아버지를 자기 편이라기보다는 폭군으로 보고 히스클리프를 자기 어버이의 애정과 자신의 특권을 가로채는 사람으로 보게 되었답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점점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P62-64)


저는 그들에게 그들의 계략을 도울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말했지만, 히스클리프가 어제 점심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이번만은 힌들리 서방님을 속이는 것을 못본 체 해주고 싶었어요.

히스클리프가 밑으로 내려왔기에 불 가까이 의자를 내주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주었지요. 하지만 금세 속이 메스꺼워 거의 먹지 못했고, 그를 대접하겠다는 제 의도는 허사가 되어버렸답니다. 그는 무릎 위에 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턱을 받치고는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제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침울하게 대답했어요.

"힌들리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줄까 생각하고 있었어. 언젠가 할 수만 있다면 기다리는 것쯤은 괜찮아. 제발 나보다 먼저 죽지나 말았으면!"

"창피한 줄 알아, 히스클리프!" 저는 말했습니다. "고약한 사람들을 벌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야. 우리는 용서를 배워야지."

"아니야, 하나님은 내가 맛볼 만족감을 맛보시지는 못할거야." 그는 대꾸했어요. "나는 제일 좋은 방법을 알고 싶을 뿐이야! 나를 가만히 나둬. 생각해 내게. 복수를 하는 동안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P101)


"내가 만약 천국에 간다면, 넬리, 나는 지극히 불행할 거야."

"아가씨는 거기에 어울리지 않지요." 저는 대답했어요. "죄지은 사람들은 모두 천국에서는 불행하니까요."

"그런 게 아니야. 한번은 내가 천국에 간 꿈을 꾸었어."

"꿈이야기는 듣지 않겠어요, 캐서린 아가씨! 그만 가서 잘래요." 저는 다시 말을 가로막았어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가씨는 외쳤어요. "천국은 내가 갈 곳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려 했을 뿐이야. 나는 지상으로 돌아오려고 가슴이 터질 만큼 울었어. 그러자 천사들이 몹시 화를 내며 나를 위더링 하이츠의 꼭대기에 있는 벌판 한복판에 내던졌어. 거기서 나는 기뻐서 울다가 잠이 깼지. 이것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내 비밀을 설명해 줄 거야. 나는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에드거 린튼과 꼭 결혼할 필요도 없는 거지.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던들 내가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잇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이 말이 끝나기 전에 저는 히스클리프가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약간 움직이는 기척이 나기에 그쪽을 돌아다보니 그가 긴 의자에서 일어나서 가만히 나가버리는 것이었어요. 그는 캐서린 아가씨가 그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질 거라고 말할 때까지 듣고 있다가 그 이상은 듣지 않고 나갔던 것이지요. (P133-134)


“글쎄 우리 인간이란 결국은 자기 본위가 되고 마는가 보죠. 순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 해도 거만한 사람보다는 더 정당하게 이기적이라는 차이뿐이지요. 그리하여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로 상대가 자기의 이해를 자기 위주로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그분들의 행복은 끝장이 났던 거랍니다.” (P152)


히스클리프는 --앞으로는 히스클리프 씨라고 해야겠지요-- 처음에는 드러시크로스 저택을 방문할 때 조심을 하여 그 집 주인이 자신의 방문을 어느 정도까지 참아주는지 알아보려는 눈치였어요. 캐서린 아씨도 그를 맞이할 때는 지나치게 기쁜 내색을 않는 것이 지각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리하여 그는 차차 드러시크로스 저택에 찾아갈 수 있는 손님으로서의 권리를 굳혔답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는 남 앞에서 몹시 수줍어했는데 그 버릇이 많이 남아 있어 감정을 야단스럽게 드러내지 않는 데 도움이 되었지요. 우리 주인도 한시름 놓게 되었지만 그것도 잠깐, 그 뒤의 사정으로 한동안 또 다른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어요.

새로운 걱정거리란 찾아오는 대로 내버려 둔 손님의 히스클리프를 이사벨라 린튼 아가씨가 갑자기,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좋아하게 된 예기치 않은 불행이었지요. 이사벨라 아가씨는 그때 열여덟 살의 매력적인 아가씨였어요. 눈치도 빠르고 감정도 퍽 예민하며, 화가 나면 참을 줄을 몰랐지요. 성격은 팔팔했지만 태도는 어린애 같은 데가 있었어요. 이사벨라 아가씨를 몹시 사랑했던 아가씨의 오빠는 터무니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데 놀랐지요. 이름도 없는 사내와 결혼하는 것이 타락이라든가, 자기에게 아들이 없는 경우 자기 재산이 그러한 자에게 넘어갈 수 있다든가 하는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그는 히스클리프의 성질을 꿰뚫어보고, 비록 외모는 달라졌다 해도 그의 마음은 달라질 수도 없고, 달라지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만한 눈치는 있었지요. 린튼 서방님은 그 속내가 두렵고 싫었던 거예요. 이사벨라 아가씨의 인생을 그에게 맡긴다는 생각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하고 싶지도 않으셨지요.

게다가 상대편에선 아무 말이 없는데 이사벨라 아가씨가 혼자 좋아했고 그런데도 상대편이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서방님은 더욱 더 마음이 내키지 않으셨을 테지요. 그것은 그렇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히스클리프가 일부러 꾸민 일이라고 책망하신 걸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P165-166)


달 없는 밤이어서 지상의 모든 것은 안개 같은 어둠에 덮여 있었어요.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이 없었어요. 모두 불을 끈 지가 오래되었고, 위더링 하이츠의 불도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아씨는 그것이 보인다고 우기는 것이었어요.

"저 봐!" 아씨는 열에 들떠 외쳤어요. "촛불이 켜져 있고 그 앞에 나무가 흔들리고 있는 데가 내 방이야..... 그리고 또 하나의 촛불이 조셉의 다락방에 켜져 있네..... 조셉은 언제나 늦게까지 가지 않지? 그는 대문을 잠그려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거야..... 뭐, 좀 더 기다리게 하지. 게다가 그 길을 가자면 기머튼 교회를 지나지 않으면 안 돼. 우리는 툭하면 유령 같은 것은 무섭지 않다고 거기 있는 묘지에 들어가 유령을 불러내 보겠다고 했었지. 히스클리프, 지금도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고 내가 말한다면, 당신은 해낼 수 있겠어? 당신이 간다면 나도 같이 가지. 나 혼자 거기 누워 있기는 정말 싫어. 열두 자 깊이로 나를 묻고 교회를 그 위에 얹어준대고 당신이 옆에 올때까지는 편안히 잠들지 못할 거야." (P207-208)


“배반이나 폭력은 양쪽 끝이 뾰족한 창과 같아서, 그것을 쓰는 사람이 그걸 받는 사람보다 더 크게 다치는 법이지요.” (P287)


"내 아들은 장차 당신이 사는 곳의 주인이 될 텐데, 이 아이가 후계자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는 죽게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더욱이 이 애는 내 자식이니까 내 후손이 당당하게 그 집 재산의 주인 노릇을 하고, 내 아들이 그 집 애들에게 품삯을 주어 그들 조상의 땅을 갈게 하는 것을 보는 쾌감을 맛보고 싶단 말이야. 내가 이런 녀석을 참고 받아들이는 것도 오직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이지. 난 이 녀석 자체도 싫지만 이 녀석이 기억을 되살려 주기 때문에 더 싫어. 그러나 아까 말한 그런 요량이 있으니까 문제없어. 저 녀석은 나한테 맡겨도 아무 탈 없을 거야. 당신네 주인이 제 자식 보살피는 것 못지 않게 나도 이 애에게 잘해 줄 테니까. 저 녀석한테 주려고 위층에 방을 잘 꾸며 놓았지. 저 녀석이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쳐줄 가정교사도 2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한 주일에 세 번씩 오도록 약속해 두었고, 헤어튼에게도 저 애의 말에 순종하라고 일러놓았어. 사실 나는 저 녀석을 주위 사람들과는 달리 저 자신의 우수한 점과 신사적인 면을 유지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았지. 그런데 애쓴 보람이 거의 없게 생겼으니 몹시 섭섭하군. 내가 이 세상에서 바라는 복이 있었다면 그것은 저 녀석이 자랑할 만한 자식이 되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는데, 저렇게 허여멀건 얼굴에 울보라니 몹시 실망이야!" (P342)


그런데 우린 한 번 싸울 뻔했어. 그 애가 그러는데 7월의 더운 날을 유쾌하게 지내는 방법은 말이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벌판 가운데 있는 히스 나무위에 누워서 꽃 사이를 꿈꾸듯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벌 소리를 듣고, 머리 위로 높이 날며 지저귀는 종달새 소리도 듣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보면서, 내리쬐는 맑은 햇볕을 쬐는 거라지 뭐야. 그게 린튼의 가장 완전한 행복이라는 거야.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행복은 말이지, 살랑거리는 푸른 나무 위에 앉아 흔들거리며, 불어오는 서풍을 받으며 맑고 흰 구름이 하늘을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종달새 뿐만 아니라 지빠귀, 굴뚝새, 방울새, 그리고 뻐꾸기 같은 새들이 사방에서 울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거기에 시원해 보이는 으스름 골짜기를 드문드문 이루며 멀리 뻗쳐 있는 벌판이 보이고, 가까이는 산들바람에 물결치듯 나부끼는 긴 풀이 무성한, 굽이치는 커다란 언덕이 있고 숲이며 소리 내며 흐르는 시내, 그리고 온 세상이 기쁨에 깨어 날뛰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어. 린튼은 모든 것이 평화의 황홀경에 취해 누워 있기를 원했고, 나는 모든 것이 눈부신 환희 속에서 빛나고 춤추는 것이 더 좋다고 했지. (P408-409)


“저도 그가 성질이 고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아저씨의 아들이니까요. 하지만 다행히 저는 성격이 좋으니 그의 나쁜 점을 용서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가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도 그를 사랑해요. 히스클리프 씨, 당신은 아무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아무리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아저씨의 그 잔인한 성격은 아저씨가 우리보다 훨씬 비참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풀려요.” (P477~478)


히스클리프 씨는 린튼 서방님의 유언장을 아가씨에게 보여주려고 위층에 올라갔답니다. 린튼 서방님은 자기의 전 재산과 아가씨의 소유였던 동산 전부를 자기 아버지 앞으로 물려주었다는 거였어요. 그 불쌍한 서방님은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아가씨가 한 주일쯤 집을 비운 사이에 아버지에게서 위협을 받았든가 아니면 꾐에 빠져 그렇게 했던 것이지요. 토지만은 린튼 서방님이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손을 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히스클리프 씨는 자기 아내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여 토지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지요. 아마 합법적으로 그렇게 했을 테지만요. 어쨌든 캐서린 아가씨는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그런 부당한 소유권의 주장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답니다. (P490)


"내가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냐. 분명히 얘기해 두지만 그건 일부러 계획적으로 하는 게 아니란 말이야. 할 수만 있으면 언제든 먹기도 하고 잠도 자겠어. 그런데 지금 넬리가 하는 말은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한 팔만 뻗으면 기슭에 닿을 판인데 그대로 쉬라는 거나 같은 얘기야! 난 먼저 기슭에 닿은 다음에 쉬어야겠단 말이야. 그린 씨를 부르는 것은 그만두지. 그리고 내 잘못에 대해서 뉘우치라고 하지만 난 잘못한 것이 없으니 아무것도 뉘우칠 게 없어. 난 너무 행복하지만 아직 충분히 행복하진 못해. 내 영혼의 행복은 내 육체를 죽이고 있지만 영혼 자신은 만족하지 못하거든." (P555-556)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교회 쪽으로 돌았기 때문에 한참 걸렸다. 예배당 담 밑에 이르러 보니 겨우 일곱 달 사이에 눈에 띄게 황폐해져 있었다. 창문은 대부분 유리가 없어져서 그 자리가 검게 비어 있었다. 기왓장도 여기저기 지붕의 원래 자리에서 밀려나 있어, 다가오는 겨울 폭풍을 만나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무덤을 찾아보았더니, 벌판에서 가까운 언덕배기 위로 비석 세 개가 이내 눈에 띄었다. 가운데 것은 회색이었고 히스에 반쯤 묻혀 있었다. 애드거 린턴의 것만 비석 밑의 잔디와 이끼 때문에 어울려 보였다. 히스클리프 것은 여전히 벌거벗고 있었다.

나는 포근한 하늘 아래 그 비석들 둘레를 어슬렁거렸다. 히스오 초롱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방들을 지켜보고, 풀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저렇게 조용한 땅속에 잠든 사람들을 보고 어느 누가 편히 쉬지 못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P563-564)


소설의 내러티브는 영화에서 사건과 플롯으로 공유할 수 있지만, 소설을 차용하는 영화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에서 감동을 받은 사람은, 영화가 실망스러울 것이고, 영화에서 받은 감동은 소설과 다를 것이다. 소설의 활자가 주는 상상력과, 영화의 시각적인 감각이 전달해주는 울림은 다르기 때문이다. 한편의 소설을 보고, 영화를 읽어보면 재미가 더 할 것이다.


아네스 바르다는 “소설을 쓰듯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으며, 알랭 레네도 <히로시마 내 사랑>에 대해서 “이미지가 텍스트의 대위법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시를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장 콕토는 마지막 원리를 적용하여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시인의 피>와 <오르페우스>는 주로 현대시와 연관된 기법에 널리 의존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이 훌륭하다고 좋은 영화가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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