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여인의 키스> 1985년
<거미 여인의 키스〉는 바벤코(Hector Babenco)의 4번째 연출작으로 브라질과 미국의 합작 영화이며, 바벤코로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배우들을 기용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동성연애자 역할을 섬세하게 연기한 윌리엄 허트는 85년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윌리엄 허트는 이 영화 한편으로 완벽한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그해 칸느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거미 여인의 키스〉는 군부독재 치하의 브라질의 한 감옥에서 시작된다. 바르가스 제2공화국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한 주앙 굴라르는 196년 자니우 쿠아드루스가 사임하자 브라질의 대통령이 되고, 군부는 사사건건 굴라르의 정책을 방해했고, 1964년 결국 미국 국무부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주인공 발렌틴은 군사정부의 불법 연행과 고문에 대한 정보를 해외에 알리러 가는 민주 인사에게 여권을 빌려준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다. “삶이 내게 준 건 투쟁뿐이야”라고 말하는 정치범 발렌틴(라울 줄리아)과 미성년자를 추행한 혐의로 수감된 루이스 몰리나(윌리엄 허트)는 한방에 갇혀 있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감방생활.
“남자들이 조금만 여자 같다면 폭력도 줄어들 거야”라고 말하는 매우 섬세한 감성을 지닌 게이 몰리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발렌틴에게 몇 년 전에 본 멜로드라마 영화를 짜증날 정도로 상세하게 계속 이야기한다. 소설은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이야기로 시작해서 영화이야기로 끝마친다.
몰리나가 이야기한 영화를 자신의 영화로 만들면서 끝을 맺는다.
그가 이야기했던 여섯 편의 영화 중에서 세 개는 어느 정도 원작에 바탕을 두고 변형한 것이다. 이 영화들은 터너(Jacques Tournour) 감독의 <캣피플Cat Perple>, 크롬웰(John Cromwell) 감독의 <매혹의 오두막The Enchanted Cottage>과 웨일(James Whale) 감독의 <좀비와 함께I walked with a Zombie>이다. 그리고 다른 세편의 영화 중에서 하나는 1930년대 나치의 선전물로 쓰였던 표현주의 영화이며, 또 다른 하나는 상류 사회의 분위기와 게릴라의 이야기를 병치시킨 영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1940년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카바레풍의 여러 멕시코 영화들을 발췌하여 한데 모아놓은 것이다.
첫 번째 영화 <캣피플>의 표범여인은 발렌틴의 본능을 일깨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두 번째 영화 나치와 마키(프랑스 유격대원) 사이의 스파이 활동과 테러에 휘말린 프랑스 여가수 레니의 사랑 이야기이다. 영화에서처럼 몰리나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발렌틴)을 사랑하게 되어 그의 임무를 수행하다 마키단의 총격을 받고 죽는 자신의 영화같은 이야기를 암시한다.
세 번째 영화 <매혹의 오두막>에서 멋진 젊은이와 아주 추한 하녀로 이루어진 두 주인공은 육체적 사랑을 초월한 이상적 관계를 형성한다.
네 번째 영화는 자동차 경주에 전념하고 후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게릴라가 되는 한 청년 게릴라의 이야기와 상류사회의 분위기를 서로 대조시킨 영화이다. 영화의 청년처럼 반항적 행위와 혁명적 태도, 발렌틴의 삶을 반영한다.
다섯 번째 영화 <좀비와 함께>는 몰리나와 발렌틴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 뉴욕에 사는 한 여인(몰리나)은 애인(발렌틴)이 기다리고 있는 카리브해의 한 섬(감옥)에 결혼하기 위해 도착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마법사(남성 중심주의적 억압사회)가 애인을 비롯한 모든 섬 주민에게 강요하는 섬의 터부(이미 설정된 도덕, 사회규범)와 직면한다.
여섯 번째 영화는 50년대의 카바레풍의 여러 멕시코 영화들을 조합해 놓았다. 베라크루스의 카니발 축제인 가장무도회에서 시작한 영화에서 춤을 춘 청년은 시인이며 (발렌틴처럼) 이상주의자적 기질을 가진 기자이고, 그와 함께 춤을 춘 여자는 (몰리나같이) 관능적인 여배우임을 보여준다.
소설은 영화를 읽어주고, 영화는 소설을 이야기한다.
“나도 알아. 거기서 끝날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아? 한 여인이 한 남자에게 자기 자신을 맡기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알레고리이기 때문이야. 섹스를 할 때면 여자들은 조금은 동물처럼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 너도 눈치 챘겠지?”
“과연 그럴까?.....”
“그런 부류의 여자들이 더러 있어. 일반적으로 그런 여자는 대단히 예민하고, 지나치게 정신적이며, 섹스란 더러운 것이고,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자란 사람들이야. 이런 부류의 여자들은 문제가 있어. 아니, 인생을 아주 그르칠 사람들이지. 아마 모르긴 해도 거의 십중팔구는 결혼하면 불감증으로 고생할 여자들이야. 그런 여자들은 내면에 하나의 장벽이 있는데, 그 장벽에 또 다른 장벽, 아니 두터운 벽을 쌓아. 그 벽은 총알도 뚫을 수 없어.” (P47-48)
“발렌틴, 너도 조금은 정이 있는 사람이네.”
“그런 건 어디에선가 드러나게 되어 있어.... 내 말은 인간의 나약함을 뜻하는 거야.”
“그건 나약함이 아니야.”
“사람은 정을 붙이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은 참 이상한 현상이야.... 그건 마치 우리의 정신이 쉴새없이 그런 감정을 분비해 내는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 위에서 소화액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 것 같아?”
“그래, 그건 잘못 잠긴 수도꼭지 같아. 그러면 물방울들이 아무것에나 마구 떨어지지만, 그건 멈추게 할 수 없거든.”
“왜?”
“나도 잘 모르겠지만.... 컵에 물이 가득 차면, 넘치는 법이니까.” (P62)
“행복하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면 더욱 고통스럽지 않을까?”
“몰리나, 한 가지 명심해 두어야 할 게 있어. 사람의 일생은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지만, 모두 일시적인 것이야. 영원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그래, 맞아. 하지만 조금 더 오래 가는 것은 있어.”
“우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돼. 좋은 일이 일어나면 오래 지속되지 않더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돼.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하기는 쉬워. 하지만 그걸 진정으로 느낀다는 것은 다른 문제야.”
“그러면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자기 자신을 납득시켜야 되는 거야.”
“그래, 맞아. 하지만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가슴속의 이성이 있지. 아주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가 한 말이야. 그래서 내가 널 비웃고 있는 거야. 그가 누군지 이름까지도 기억할 수 있어. 바로 파스칼이야. 어때 졌지!”
“널 그리워할 것 같아, 몰리나.........” (P342)
“발렌틴, 너한테 한 가지 약속할게. 널 떠올릴 때마다, 난 행복할 거야. 네가 나한테 가르친 대로 말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약속해 줘.... 다른 사람들이 널 무시하지 않도록 행동하고, 아무도 널 함부로 다루게 하지 말고, 착취당하지도 말아. 그 누구도 사람을 착취할 권리는 없어. 안 얘기 또 해서 미안해. 전에 한번 말했는데, 넌 그 말을 별로 달갑게 여기질 않았어.”
“......”
“몰리나, 남한테 무시당하면서 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그래, 약속할게.” (P344-345)
내 감방 동료가 총에 맞아 죽었고, 그의 죽음은 모두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며, 그를 그토록 비참하게 만든 게 미안하지도 않느냐고 묻고 계셔, <당신은 뭐라고 대답했어요?>, 내 잘못이었고 그래서 난 지금 슬퍼하고 있다고, 하지만 훌륭한 대의명분을 위해 희생하면서 그가 슬퍼했는지 기뻐했는지는 그만 알 테니까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아,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 마르타, 부디 난 그가 정말로 행복하게 죽었기를 진심으로 바래, <왜 훌륭한 대의명분이지요? 음.... 난 그가 스스로 그런 죽음을 택했다고 생각해요, 영화의 여주인공들이 그렇게 죽었으니까요, 그러니 훌륭한 대의명분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그 자신만이 알겠지, 아니 그 자신도 모를지 몰라, 하지만 난 감방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매일 밤 자장가처럼 그의 영화 이야기를 듣는 데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야, 내가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되더라도 이젠 그에게 전화를 할 수도, 저녁식사에 초대도 할 수 없어, 그는 나를 수 없이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말이야,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죠?>, 지금 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수영을 하고 있어, 그래야만 섬의 해변을 볼 수 있으니까, 모래사장까지 오니 무척 피곤해, 햇빛도 이젠 그리 따갑지 않으니 더 이상 타지도 않겠지, 밤이 되기 전에 정글에서 과일을 찾아야겠어, 야자수 숲과 칡넝쿨 숲이 어우러져 얼마나 멋진지 넌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밤에는 모든 것이 은빛으로 뒤덮인 것 같아, 영화가 흑백이거든, <그럼, 배경음악은 어때요?>, 마라카스와 북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어, <위험하단 신호가 아닐까요?>, 아니야, 스포트라이트가 강하게 비추면 반짝이는 긴 옷을 입은 아주 이상한 여인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음악이야, <몸에 꽉 조이는 은빛 라메로 만든 옷인가요?>, 그래, <그럼, 얼굴은 어때요?>, 가면을 쓰고 있어, 역시 은빛이야, 하지만..... 가엾게도..... 움직일 수가 없어, 그녀는 정글이 가장 우거진 곳에 있는 거미줄에 빠져 있어, 아니야, 거미줄이 그녀의 몸에서 자라고 있고 허리와 엉덩이에서도 거미줄이 나오고 있어, 거미줄은 그녀 신체의 일부분이야, 끈끈한 밧줄 같은 털이 수북이 나와 있어. 구역질날 것만 같은 털이야. 하지만 쓰다듬으면 아주 부드러운 실 같을 거야. 그것을 만졌을 때 아주 인상적이었어. <말은 하지 않아요?>, 응,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울고만 있어, 아니 웃고 있지만 가면 위로 눈물이 떨어지고 있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물인가요?>, 그래, 난 그녀에게 왜 우느냐고 물어, 그러자 영화 맨 마지막에 그녀의 얼굴이 스크린 전체를 덮을 정도로 클로즈업되면서 그녀는 내게 왜 우는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 영화가 수수께끼처럼 끝나거든, 그래서 난 그렇게 끝나는 게 좋다고, 그게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라고 말해, 그게 의미하는 것은.... 그녀는 내 말을 가로막으면서 내가 모든 것에 이유를 붙이려 하고, 인정할 용기는 없을 테지만 사실상 그것은 내가 배가 고프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했어, 그러고는 날 쳐다보았어, 그런데 점점 더 슬픈 얼굴을 짓고는 점점 눈물을 더 많이 흘리고 있었어, <다이아몬드 같은 문물 말이죠?> 난 내가 뭘 해야 그녀의 슬픔을 덜어줄 수 있는지 몰랐어. <난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모두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난 질투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녀는 몹시 슬퍼하고 있었어, 당신은 눈치챘지?, <하지만 당신은 그런 걸 보고 좋아했어요, 그건 절대로 용서 못해요>, 하지만 난 그녀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야, <배가 고프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래, 정말이야, 거미여인이 손가락으로 내게 정글 속에 있는 길을 가리켰어, 그래서 수많은 먹거리를 찾았는데 지금 무엇부터 먹어야 될지 모르겠어, <아주 맛있어요?>, 그래, 바비큐 닭다리 한 개, 신선하고 커다란 치즈와 둥근 햄말이, 통조림에 들어 있는 아주 맛있는 감 한 조각을 먹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저트로 내가 좋아하는 과바 페이스트를 숟가락으로 떠먹고 있어, 아주 많아서 음식이 떨어질 염려는 없어, 그러고 나니 잠이 쏟아져, 마르타, 거미여인 덕분에 발견한 음식을 모두 먹고 나니, 내가 얼마나 잠을 자고 싶은 지 넌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과바 페이스트 한 숟가락을 더 먹고 나서 잠은 잔 후에... <벌써 잠에서 깨고 싶어요?>, 아니야, 나중에 깨고 싶어, 맛있는 것들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있어, 난 당신과 꿈속에서 계속 말하고 싶어, 괜찮겠지?, <물론이죠, 이건 꿈이에요, 그리고 우린 지금 말하고 있어요. 당신이 잠을 깨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아무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할 거예요, 우린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니까요>, 우리가 깨달은 가장 어려운 일이 뭐지?, <내가 당신 마음 속에 살아 있고, 그래서 당신과 항상 함께 있다는 것, 그래서 당신은 절대로 홀로 있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죠>, 당연하지, 난 그 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거야, 우리 두 사람이 똑같이 생각한다면, 우린 함께 있게 될 거야, 비록 볼 수는 없어도 말이야, <바로 그거예요>, 그럼 내가 섬에서 잠을 깨면 넌 나와 함께 갈 수 있겠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 영원히 있고 싶지 않아요?>, 아니, 이젠 됐어, 충분히 쉬었어, 음식도 모두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니 다시 기운이 솟아나, 내 동지들이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날 기다리고 있어, <당신 동지들 이름, 그 말이 바로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에요>, 마르타,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이 말만은 당신한테 할 수 없었어, 당신이 그것을 물어볼지 몰라 두려웠고, 그러면 당신을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았어, <아니에요, 사랑하는 발렌틴,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이 꿈은 짧지만 행복하니까요.>
<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 P366-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