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영화 <희랍인 조르바> 1964년

by 노용헌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는 미카엘 카코야니스 감독, 안소니 퀸(조르바)와 앨런 베이츠(버질)가 출연하였고, 제37회 아카데미 미술상, 여우 조연상(릴라 케드로바), 촬영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조르바를 통해 자유로운 삶을 이야기한다. 유산으로 받은 갈탄 광산을 운영하고자 크레타섬으로 가려던 영국 출신의 작가 버질은 항구에서 조르바를 만나고 그를 책임자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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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도착한 그들은 프랑스인인 오르탕스 부인이 운영하는 호텔에 거처를 정한다. 조르바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오르탕스 부인과 연인이 되고, 버질은 마을의 젊은 과부에게 끌린다. 마을 남성 모두에게 욕망의 대상인 과부는 마을의 실세인 마브란도니의 아들에게 열렬한 구애를 받지만 이를 받아주지 않고, 마브란도니의 아들은 상심한 나머지 바다에 빠져 죽는다. 격분한 마브란도니는 장례일에 그녀를 죽인다. 오르탕스 부인도 조르바와 약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한다. (장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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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과 조르바가 광산 개발과 목재 사업을 위해 거금을 들여 설치한 대규모 시설이 무너진다. 그러나 그들은 낙담하고 좌절하는 대신 쾌활하게 웃으며 술과 양고기를 즐긴다. 그러고 나서 둘은 해변에서 즐겁게 추는 춤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장면2)


"우리가 마시는 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걸 볼 거래요. 그 벌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고, 물을 못 마시면 목이 말라 갈증으로 죽어갈 거래요. 대장, 현미경을 깨버리세요. 그 괴물 같은 물건을 던져버리라고요. 그럼 벌레들이 당장 사라져서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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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p22)


1. 조르바에게 있어서 자유란?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p38-39)


2. 조르바에게 있어서 세계란?

세계란 무엇일까? 나는 궁금했다.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한순간의 목숨이 어떻게 하여 세상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조르바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물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 왜? 무슨 목적으로?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고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 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p390)


3. 조르바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걸까. 별다른 야망없이 세상의 야망을 다 품은 듯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졌지만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음식을 실컷 먹고 마신 다음에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을 머리에 인 채 바다를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가 이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기적같은 일이 진정 행복이 아닐까.“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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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희랍인 조르바>의 음악을 작곡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그리스의 국민 작곡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교향악부터 대중음악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해왔다. 영화 <페드라>(1962), <제트>(1969), <형사 서피코>(1973) 등의 사운드트랙이 그의 작품이다. 그리스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애절한 목소리로 불린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끈 곡이다. 이 곳은 소프라노 조수미가 한국어 버전으로 부르기도 했다. 1964년 의회에 진출한 그는 1967년 쿠데타로 파시스트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반독재 투쟁 조직을 만들어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그의 작품은 군사정권 시절 대부분 금지곡이 됐다. 체포·투옥 등 정치적 탄압을 받다 1970년 정권의 추방 명령으로 1970년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에도 그의 음악적 재능을 십분 활용해 해외에서 그리스 군사독재 저항 콘서트를 조직하는 등 반독재 투쟁을 이어갔다.


주교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배운 청년 같소. 여기에서는 말 상대할 사람이 없소. 내게는 내 인생을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세 가지 이론이 있소. 당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소. 젊은이"

그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말을 이었다.

"첫번째 이론은 이러하오. 꽃의 모양은 색깔에 영향을 미치고, 색깔은 속성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각각의 꽃은 인간의 몸에, 나아가 인간의 영혼에 저마다 다른 작용을 한다. 꽃이 만발한 들을 지날 때 우리가 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오."

그는 내 의견을 기다리는 듯 잠깐 말을 끊었다. 나는 이 조그만 노인이 들을 지나면서 아무도 모르는 흥분에 휩싸여 꽃의 모양과 색깔을 연구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노인은 신비스러운 경외감으로 몸을 떨었을 터였다. 봄꽃 만발한 들판이 그에게는 색색의 악마와 천사들로 복작거리는 들판으로 보였을 터였다.

"나의 두번째 이론은 이러하오. 실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관념은 실체가 있다. 실제로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대기 속을 떠다니는 게 아니라 진짜 몸이 있다. 눈, 입, 발, 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몸은 남성이나 여성이 되어 서로를 뒤쫓는다. 그래서 복음서에 이르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하는 것이오."

그는 다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의 세번째 이론은...." 그는 내 침묵을 참을 수 없었던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이러하오, 우리의 덧없는 삶 속에도 <영원>이 있다. 우리로서는 혼자서 그걸 뚫어 볼 수 없을 뿐이다. 우리는 나날의 걱정으로 길을 잃는답니다. 소수의 사람, 인간성의 꽃 같은 사람만이 이 땅 위의 덧없는 삶을 영위하면서도 영원을 살지요. 나머지는 길을 잃고 헤매니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종교를 내려 주신 것이오. 이렇게 해서 오합지졸도 영원속에 살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그는 말을 끝내고 나니 좀 살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는 눈썹 한 올 남지 않은 눈을 들어 나를 보며 웃었다. 흡사 자기가 가진 것을 다 줄 테니 다 받아 가지고 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294P~295P]


https://youtu.be/D_38iuh9W3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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