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수Goodbye Again> 1961년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 책에서 사랑은 영원한 것이 아닌, 덧없음을 강조한다. 실제 그녀에게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 두죠."라고 답한다.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서른아홉 살로 한 번 이혼을 겪은 뒤, 로제와 교제하고 있는 주인공 폴, 그리고 14살 어린 시몽을 만나게 되고, 시몽은 폴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표한다. 그리고 이 세 사람사이의 미묘한 삼각관계가 스토리이다. 소설은 대부분이 남녀간의 사랑이 단골 주제이다. 연상의 여인을 사랑했던 소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 생각난다.
얼마 후 그들은 차를 타고 돌아왔고, 그는 차에서 내려 현관 앞에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럼 잘 자. 내일 봐, 자기.”
그는 그녀에게 가볍게 키스한 다음 자리를 떴다.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그가 그녀를 혼자 자게 내버려 두는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었다.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소지품을 꼼꼼하게 정돈한 다음 침대 위에 앉았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늘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 사람이 잔 흔적이 없는 침대에서, 오랜 병이라도 앓은 것처럼 무기력한 평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운 밤들의 긴 연속처럼 여겨졌다. 침대 속에서 그녀는 마치 누군가의 따뜻한 옆구리를 만질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본능적으로 한쪽 팔을 뻗었고,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남자든 아이든, 누구든 상관없었다. 그녀를 필요로 하는 이, 잠들고 깨는 데 그녀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이라면.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로제는, 아마도, 가끔은 그녀를 필요로 하리라.... 하지만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잠들고 깨는 데 필요하다거나 열정적으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만 필요로 할 뿐임을 그녀는 때때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가슴 아프게 고독을 되 씹었다. (P17)
“로제가 다른 일로 바쁘대요.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저도 잘 압니다.” 그는 서글픈 어조로 말했고, 그녀는 그 어조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머지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몽은 어떤 치정 사건의 재판 과정 전체를 흉내 냈다. 그는 한참 변론을 흉내 내다가 어느 순간 몸을 일으키더니,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는 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언도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는 포도주를 한 모금 길게 마셨다. 폴은 반박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선고로군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가장 지독한 형벌이죠. 저로서는 그보다 더 나쁜 것, 그보다 더 피할 수 없는 것을 달리 모르겠습니다. 제겐 그보다 더 두려운 게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어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때때로 고함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나는 두려워, 나는 겁이나, 나를 사랑해줘 하고 말입니다.”
“저 역시 그래요.” 그녀는 의지와는 달리 속내를 털어놓았다.
순간 그녀는 자기 방의 침대 맞은편 벽면을 떠올렸다. 커튼이 쳐 있고 유행 지난 탁자가 놓여 있고 왼쪽에 작은 옷장이 있는 그 벽을 그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바라보았고, 앞으로도 십 년은 더 바라보리라. 지금보다 훨씬 더 외로운 상태로. 로제, 로제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그에겐 그럴 권리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늙어 가라는 선고를 내릴 권리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 자신 조차도....... (P43-44)
일요일, 자리에서 일어난 폴은 문 아래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과거에는 ‘푸른 쪽지’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던 속달우편으로, 그녀는 실제로도 그 편지가 시적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맑은 11월 하늘에 다시 나타난 태양이 그 순간 그녀의 방을 따뜻한 빛과 음영으로 채웠던 것이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 같은 걸 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P56)
“난 서른아홉 살이야” 그녀가 말했다.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되지 않아.”
“시몽,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잊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좋은 지표가 되어 준다. 스무 살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누구에겐가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p.57)
로베르트 슈만이 정신질환으로 인해 라인강에 뛰어들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뒤, 브람스는 그의 자식들과 클라라 슈만을 돌보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클라라 슈만을 연모하게 된다. 여러 저서들에서 브람스는 클라라를 사랑했음을 명확히 나타내었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스승의 부인에 대한 짝사랑으로 흠모했다고 한다.
영화 <이수>의 OST는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이다. 브람스는 4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교향곡 1번>은 친구 벨로프가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며 극찬했던 곡이다. 여주인공 폴라역은 잉그리드 버그만이고, 로제역은 이브 몽땅, 필립역은 안소니 퍼킨스이다.
“그렇다 해도 당신은 아무에게나 ‘빨리 돌아와요.’라고 쓰는 여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그는 거듭 물었다.
“나는 외로웠어요. 그리고 아주 기묘한 상태에 놓여 있었어요. 물론 그렇더라도 당신에게 ‘빨리 돌아와요.’같은 구절은 쓰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건 맞아요!”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몽이 와 있었고 그녀는 그가 거기 와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도 외롭지 않았던가! 로제는 영화에 미친 젊은 여자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그녀로서는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로제와 그녀 사이에 그 일이 한 번도 언급된 적은 없었지만, 로제는 어느 정도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댔지만, 평소처럼 그녀를 이해시키기엔 너무 잡다했다. 그녀는 이번 주에 두 차례 그와 저녁 식사를 했다. 겨우 두 차례뿐이었다. 실제로 지금 곁에 있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불행해하는 이 청년이 없다면 그녀는 극도로 불행하리라.
“자, 돌아갑시다. 지루하신가 보군요.” 시몽이 말했다.
그녀는 부정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그를 끝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다가, 이어 그런 잔인성을 뉘우쳤다. 그런 잔인성, 곧 복수에 대한 불합리한 욕구는 그녀 자신의 슬픔의 이면이었을 뿐, 시몽은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시몽의 작은 차에 올랐다. 시몽은 그들의 첫 소풍인 이 외출에 대해 자신이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폴의 손에 한 손을 내어 주고 왼손만으로도 기적적으로 능숙하게 운전하는 동안, 폴은 그 아름다운 얼굴을 자신에게 기울이고 있는 상상을 하지 않았던가. 시몽은 그녀를 보지 않은 채 그녀에게 한 손을 뻗었다. 폴은 두 손으로 그 손을 잡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불장난 같은 것은 결코, 결단코 할 수 없단 말인가?’ 시몽이 차를 세웠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몽은 가볍게 펼쳐진 폴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폴의 손은 언제라도 자신의 손을 놓아 줄 태세가 되어 있었고 분명 그것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문득 극도의 피로감이 엄습했다. 그는 그녀를 영원히 떠날 수 있을 만큼 강한 체념의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 순간 그는 서른 살은 더 먹은 것 같았고, 삶에 굴복하고 만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폴은 그런 그가 처음으로 인정할 만한 존재로 여겨졌다. (P81-82)
그는 바지를 입고 스웨터를 걸친 다음 재킷을 두고 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밖으로 나왔다. 재킷을 가지러 가려면 침대를 한 바퀴 돌아야 했는데 그렇게 되면 한달음에 박차고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밖으로 나온 그는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현기증 같은 것이 일었다. 폴을 되찾지 못할지라도 그는 파리로 돌아가야 했다. 자동차는 싱그러운 길 위를 미끄러져 달릴 것이고 자신은 포르트 도르퇴유에서 조용하기 짝이 없는 일요일의 파리 거리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리라. 그는 민박집으로 돌아와 숙박비를 계산하고 도둑처럼 살그머니 그곳을 떠났다. 메지는 그의 재킷을 갖고 돌아올 것이고 그는 비서에게 꽃을 들려 그녀의 집에 가서 그것을 찾아오게 하리라. ‘나는 처세술에 약하니까 말이야.’ 하고 그는 정색을 하며 생각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동안 운전에 몰두했다가는 이윽고 라디오로 한 손을 뻗었다. 조금 전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상대를 자기 자신만큼 소중히 여기는 건 폴과 나의 경우지.’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는 맛을 잃어버린 것이다. (P119-120)
“오늘 잘못 알고 행복해지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p.124)
그날 밤 그녀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피곤하다는 핑계로 시몽과의 잠자리를 거절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두 눈을 뜬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알고 있었다.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것, 다른 해결책 같은 것은 오래전부터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둠 속에서 목이 약간 죄어드는 것을 느끼며 그 생각에 굴복했다. 한밤중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몽이 소파에서 자고 있는 거실로 갔다. 그녀는 자기 방에서 나오는 비스듬한 빛이 비친 청년의 길게 누운 몸을 바라보면서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베개 속에 파묻고 있는 그의 고개와 목뼈 사이의 살짝 들어간 부분을 바라보았다. 젊은 자신이 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시몽이 뭐라고 중얼거리며 빛이 비치는 쪽으로 돌아눕자 그녀는 얼른 그 자리를 떴다. 그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기가 벌써 불가능해진 것이다.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