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의 추억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99

by 노용헌

사람들에게 이름이 있듯이 동물이든, 사물이든 우리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은 그것과의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한 기호(sign)로서의 존재는 이름을 통해서 특별한 관계(rapport)를 맺게 된다. 상점의 경우에는 개똥이네 가게가 고바우 이발소, 화타 약국으로 특별한 의미를 만들게 한다. 상점의 이름은 그 가게의 간판인 것이다. 어릴적(6살쯤이던가?) 엄마와 함께 평화시장의 간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좁은 골목을 사이로 왼편과 오른편에 빽빽이 줄지어 있는 옷가게들은 각각 몇 평이 안 되는 공간이 자신들의 영업장이었다. 대부분 재래시장의 경우 신발가게이든, 포목집이든, 이불이나 천을 파는 곳이든 여러 집들이 모여 있다. 그 사이로 소매로 온 사람들, 도매로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로 혼잡하지만 각 상점들은 자신들의 가게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간판의 역사는 고려시대에도 있었다고 하니 그 이전에도 있었을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점들의 간판의 디자인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변해갔다. 한글이름도 있고, 요즘은 별 다방(starbucks)이라든지, 톰 아저씨 다방(Tom N Toms)처럼 영어로 된 이름들, 외래어들로 이루어진 간판들이 넘쳐난다.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FSA사진들에서는 종종 농민과 노동자들 인물들과 함께, 그들의 집, 마을과 상점, 표지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Fish라고 쓰여진 글자와 함께 앨라배마 주 버밍햄 근처의 상점의 간판(1936)은, 그 시대의 황폐한 농촌의 풍경들과 시대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또 다른 사진가 배레리스 애벗(berenice Abbott)의 1935년 이발소를 나오는 남자와 함께, 이발소의 쓰여진 문자들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전통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앗제의 파리 기록들에서부터 시작된다. 앗제(Eugene Atget)의 도심 풍경속에는 사라진 혹은 사라져 가는, 대상들을 사진에 기록하였다. 발터 벤야민은 앗제의 사진을 “진정한 증빙자료”로서 정의하면서, 사진적 “대상을 아우라(aura)로부터 해방시키는” 역사적 의미를 그것에 부여했다.


2017년 열린 MCNY에서 <A City Seen: Todd Webb's Postwar New York 1945-1960>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서 토드 웹(Todd Webb)의 사진들은 당시 뉴욕 거리의 간판들을 볼 수 있다. 그는 "인생은 나에 대해 계속되고 나는 살아 숨 쉬는 부분입니다. 사물, 사람, 건물, 거리를 느끼고 그들에 대해 할 말이 있고 내 매체는 사진입니다." 라고 말한다. 웹(Webb)의 사진은 한마디로 <도시의 간판>이다. 도시의 간판들은 그 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다. 찢어진 포스터, 글씨들, 캐릭터, 그리고 건물 측면에 가득차 있는 문자 메시지들. 문자는 그 시대의 소음을 형성한다. 그의 책 <I See a City: Todd Webb's New York>은 뉴욕의 15년간의 기록을 볼 수 있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일반언어학 강의>라는 책에서 그는 언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햇다. “언어란 사회적으로 습득된 기호체계로서, 인간이 자신의 정신활동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는 기호(symbol)로 이루어져 있다. 기호란 의미를 나타내는 것(signifie)과 그것을 표현하는 것(signigiant)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간판에 쓰여진 문자는 문자가 전달하는 메시지 이외에도, 그것이 함의(含意)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오래된 간판에서는 그런 기억들이 담겨져 있다.

노용헌 강남역 사거리ROH_787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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