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20
장소와 사람
내가 만난 장소, 내가 만난 사람. 장소를 떠나서 사람을 기억할 수 없으며, 사람을 떠나서 장소만을 기억할 수 있을까. 다양한 장소는 다양한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장소에 집중하다보면 풍경사진(landscape)이 되고, 인물에 집중하다보면 인물사진(portrait)이 된다. 사진에서 주제는 장소(place)와 사람(person)을 다룬다. 그러나 이 두 요소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관계한다. 대한민국을 스캔했던 로드뷰(road view)는 지도적인 의미이다. 지리적인 공간으로서 장소의 의미를 넘어서 사회문화적 시선은 그 속에 담겨진 사람들일 것이다. 사회집단과 장소의 관계와 정치학은 그만큼 복잡하다. 앨러스테어 보네트의 저서 <지도에 없는 마을>은 사회집단이 장소를 어떻게 점유하고 인식하며 또 서로 경합하고 투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구글 어스와 스트리트뷰는 가시성의 기술이다. 보이지 않는 너머의 장소의 의미는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진다. ‘당신만의 장소’, ‘그들의 장소’는 경험된 그들의 의미인 것이다.
2014년부터 광화문광장을 기록하면서 광장은 변화를 가졌다. 2016년 촛불집회의 현장이었고, 2017년 5월에 출범한 새로운 정부는 광화문 시대를 선언하였고 광화문 일대 변화의 핵심은 길을 광장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2016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광화문포럼’을 출범시키며 논의가 시작됐고, 이후 2019년 9월 계획안을 발표했다가 비판의 목소리가 높자 다시 5개월간의 토론을 거쳐 올해 2월 확정했다. 4년에 걸쳐 전문가와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300회 이상 토론회가 열렸다. 이제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기전 3월까지 모든 공사를 완공한다고 한다. 당초 계획들은 수정을 거듭해 졸속추진인지 모를 공사가 강행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재구조화 중단을 촉구하였고 결국 법정 소송까지 이르렀다. 가운데 축선에 있던 이순신장군상가 세종대왕상은 옮겨지지 않고 가장자리에 위치하게 되는 이상한 구조가 연출될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 곳곳에는 새로운 건물, 새로운 공간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다.
어거스트 잔더(August sander)는 바이마르 공화정 시절의 사진가로 유형학적 사진의 토대를 마련했는데, 그는 농부, 상인 ,여성, 전문직, 예술가, 실업자, 불구자, 최후의 사람들로 분류해서 20세기의 인간들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서로 다른 계층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촬영했고 이들의 얼굴은 옷차림이나 배경에서 그 의미가 더해진다. 인물사진에서 배경은 형상인 인물의 조건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형상과 배경을 분리하여 아웃포커스로 촬영되어지기도 하지만, 장소는 그 인물의 특징을 설명해준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좋은 장소를 찾아 출사(出寫)를 하고, 도심이든, 자연풍광이든 장소는 장소가 주는 색깔이 있다. 사람들의 개성처럼, 장소는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매순간 다른 이야기로 이야기한다. 장소는 나를 편하게 할 수도 있고, 나를 곤경에 빠드리기도 한다. 장소는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내가 언젠가 와 봤던 데자뷔(Deja Vu)일 수도 있고, 많이 와본 곳이지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