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영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976년

by 노용헌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독일의 작은 도시 베츨라어(Wetzlar)의 고등법원에서 판사 시보로 근무한 적 있다. 당시 24세의 괴테는 친구 케스트너의 약혼녀인 샤를로트(Charlotte)라는 이름의 여인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픈 가슴앓이를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친구인 예루살렘도 자신의 상관의 부인을 연모하게 되는데, 그는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괴테는 자신의 사랑으로 인한 상실감과 친구의 비극적인 사건을 결합시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탄생시켰다.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쳤고 거리에선 소설에서 베르테르가 입었던 푸른 코트와 노란 조끼를 걸친 남성들로 넘쳐났다. 유럽에선 수백여 명의 청년이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공전의 메가 히트작이 오페라화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소설이 출간된 지 38년 후인 1782년 독일의 작곡가 크로이처의 ‘샤를로트와 베르테르’를 필두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빈센트 푸시타, 카를로 코치아의 ‘카를로타와 베르테르’ 등 수많은 오페라로 재탄생됐다. 그중 지금까지도 무대에 오르며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 프랑스의 작곡가 쥘 마스네(1842∼1912)의 오페라 ‘베르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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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9일

“오늘도 나는 그녀를 만날 거야!” 아침이면 나는 유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눈부신 태양을 쳐다보며 그렇게 소리친다네, “오늘도 나는 그녀를 만날 거야!” 하고 주문을 외우듯 말하고 나면 더 바랄 것이 없어진다네. 모든 것이 이 한 가지 소망에 묶여 있는 것이지. (P60)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네. “어느 정도까지는 잘 견뎌내던 기쁨, 슬픔, 고통 같은 감정들은 어떤 한계를 넘는 순간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사람이 강하다든가 약하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어느 한도까지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윤리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 모두에서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자로 여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P73)


8월 18일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무엇이 불행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과연 불변의 법칙일까?

생동하는 자연에서 느끼는 벅찬 감정은 한때 내게 그토록 충만한 기쁨을 주고 주변 세계를 낙원처럼 만들어주었지만, 지금은 가혹한 고문 기술자가 되어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고통을 주는 악마로 변하고 말았네. 예전에 바위산에서부터 강줄기를 따라 저 건너 언덕들에 이르는 풍요로운 계속을 내려다보고, 나를 둘러싼 만물이 움트고 소생하는 것을 볼 때면, 그리고 산기슭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키 큰 나무들로 울창하게 뒤덮인 저 산들과 사랑스러운 숲 그늘 아래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저 골짜기들을 바라볼 때면, 유유히 흐르는 냇물은 소곤대는 갈대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면서 은은한 저녁 바람이 하늘에 흩뿌려놓은 아름다운 구름들을 되비추곤 했지. 그리고 숲속 여기저기에서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오고, 모기 떼는 저물어 가는 붉은 저녁놀 속에서 활기차게 춤을 추고, 반짝이는 마지막 햇살 덕에 수풀에서 풀려난 딱정벌레들은 윙윙거리며 벅찬 자유를 만끽했지. 내 주위의 시끌벅적한 소리와 기척에 놀라 땅을 내려다보면 바로 내가 서 있는 단단한 바위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이끼와, 마른 모래 언덕 아래까지 퍼진 관목이 불타오르는 자연의 생을 흠뻑 드러냈다네. 그럴 때마다 내 뜨거운 가슴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보듬어 안았던가, 넘치는 풍요 속에서 나는 신이라도 된 듯했지. 무한한 세계의 찬란한 형상들이 생동하며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지. 거대한 산들이 나를 에워싸고, 심연이 내 앞을 가로막고, 계속 물은 콸콸 흘러내리고, 내 발치로는 강물이 흐르고, 숲과 산에는 메아리가 울려퍼졌네.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힘들이 서로 뒤섞이며 땅속 깊은 곳에서 작용하고 창조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수많은 생물들이 대지 위와 하늘 아래서 우글거리는 것일 테지.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수천의 형상을 하고 모여 사네. 그런데 인간들은 조그만 집을 보금자리 삼아 그 속에 안전하게 모여 살면서 자기들이 넓은 세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네. 불쌍하고 미련한 존재들 같으니! 저 자신이 작으니 모든 것을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거지.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험준한 산악지대에서부터 황야를 거쳐 미지의 대양 끝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창조자의 정신은 충만하다네. 그리고 자기를 알아보고 살아가는 만물을 한낱 티끌까지도 기쁘게 반겨주지. 아, 그 시절 나는 머리 위로 날아가는 학의 날개를 빌려 저 넓고 깊은 대양의 건너편까지 얼마나 날아가고 싶었는지 모른다네. 그리고 무한한 절대자의 거품 이는 술잔으로 넘쳐나는 생명의 환희를 얼마나 들이키고 싶어했는지 아는가. 만물을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창조해내는 성스러운 분의 축복을 한 방울이라도 맛보기를 내 미약한 가슴으로 얼마나 바랐는지 아는가.

친구, 요즘엔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네. 형언할 수 없던 그 충동을 이렇게 다시 불러내어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고양되는 것 같네. 하지만 그런 만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의 불길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것도 사실이네. (P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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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인간관계라는 게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을 때는, 가끔 내 가슴을 찢고 뇌수를 칼로 찌르고 싶어지네. 사랑도, 기쁨도, 온정도, 즐거움도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는 한 남도 내게 베풀지 않는다네. 그리고 내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냉정하고 의기소침하다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네.

10월 27일 저녁

내가 가진 것이 이렇게 많으나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모든 것을 빼앗아가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녀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네. (P130)


11월 26일

때때로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네. “너의 운명은 특이하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평해도 좋다. 이토록 고통을 받은 자는 세상에 없었으니.” 그러고 나서 옛 시인의 시를 읽으면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네. 나는 숱한 고통을 견뎌내야만 하네. 아, 과연 나보다 비참한 인간이 나 이전에 존재했을까?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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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와 갈등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한 종이쪽지에 잘 드러납니다.

그것은 아마도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의 서두인 듯한데, 날짜도 없이 다른 서류 뭉치 사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녀의 존재와 운명, 그리고 내 운명에 대한 그녀의 연민이 다 타서 눌어붙은 나의 머리에서 마지막 남은 눈물을 짜내고 있네.

장막을 걷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걸로 모든 것이 끝이야!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주저하고 망설이지? 장막 뒤의 모습이 어떨는지 모르기 때문인가? 아니면 영영 되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 무엇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곳에는 혼란과 암흑만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는 것이 우리 인간 정신의 특성이겠지.”

베르테르는 마침내 이런 우울한 생각에 더 익숙해졌으며 각오는 더 확고해져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점은 친구에게 쓴 아래의 애매모호한 편지가 잘 입증해줍니다. (P155)

로테가 직접 권총을 건네주었다는 말을 듣자 베르테르는 감격해서 그것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는 빵과 포도주를 가져오게 하고 하인에게 식사를 하라고 이르고는 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권총이 당신의 손을 거쳐 내게 왔습니다. 권총의 먼지도 직접 닦아냈다면서요. 나는 권총에 수천 번 키스했답니다. 당신의 손길이 그 권총에 닿았습니다! 그대, 천상의 영혼이여. 당신은 나의 결심을 격려하고 지지해줍니다. 로테, 당신이 내게 그 물건을 건네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손이 죽음을 넘겨주길 바랐는데, 아! 이제 그렇게 되었네요. 나는 심부름하는 하인에게 모든 것을 낱낱이 물어보았습니다. 권총을 건네줄 때 당신은 몹시 떨었고 작별인사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더군요! 그럴 수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안녕이란 단 한 마디말도 않다니! 나를 당신에게 영원히 붙잡아 맸던 그 한순간 때문에 내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야 했나요? 로테, 천년이 지나고 그때 그 감동은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당신만을 위해 이토록 애태우는 사람을 당신이 미워할 리 없음을 나는 잘 압니다.”

식사를 마친 뒤, 베르테르는 하인에게 모든 것을 빠짐없이 챙기라고 일렀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서류를 찢어버리고는 밖으로 나가 남아 있던 자잘한 부채를 정리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성문 앞 백작의 정원과 그 일대를 배회했습니다. 그리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와 펜을 들었습니다.

“빌헬름, 나는 마지막으로 들판과 숲과 하늘을 바라보았네. 자네도 잘 지내게! 사랑하는 어머니,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빌헬름, 내 어머니를 위로해드리게! 그대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내 물건들은 모두 잘 정리해놓았네. 잘 있게!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것이네, 더 기쁜 마음으로.”

“용서하십시오, 알베르트, 나는 당신에게 배은망덕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나는 당신 가정의 평화를 깨뜨렸고 당신들 부부 사이에 불신감을 조장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이제 모든 걸 끝장내려 합니다. 내 한 목숨 희생하는 것으로 당신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알베르트! 알베르트! 저 천사와 같은 존재를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내리기를!” (P186-187)


“로테! 죽음의 환희를 들이마실 저 차갑고 섬뜩한 잔을 움켜쥐는 것이 난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당신이 그 잔을 내게 건네준 이상 난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모두가! 모든 것이! 이렇게 해서 내 삶의 모든 바람과 희망이 이루어졌습니다! 나 이제 이처럼 냉담하게, 이처럼 완강하게 죽음의 청동문을 두드릴 겁니다.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로테, 당신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삶에 평온과 행복을 되찾아줄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의연하게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 몇 갑절 더 새로운 생명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는 것은 극소수의 고결한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기회일 테지요.

로테, 당신의 손이 닿아서 더없이 성스러워진 이 옷을 입은 채로 묻히고 싶습니다. 당신 아버님께도 그렇게 부탁드려놓았습니다. 나의 영혼은 관 위를 천천히 떠돌며 모든 것을 구경할 겁니다. 사람들이 내 주머니를 뒤져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이 담홍색 리본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당신의 가슴에 달려 있던 것입니다. 오, 그 아이들에게 몇천 번이라도 좋으니 부디 키스해주고, 또 그들의 불행한 친구의 운명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사랑스러운 아이들! 언제나 나를 둘러싸고 모여 놀던 아이들이 생각나는군요! 그러니 내가 당신과 대체 어떤 인연을 맺고 있었던 것일까요!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나는 당신과 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 리본도 나와 함께 묻어주었으면 합니다. 내 생일에 당신이 선물해주었죠! 나는 그 모든 것을 탐내며 매번 내 것으로 만들어버렸죠! 아, 그렇게 뻗어가던 길이 나를 이런 막다른 곳을 이끌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 부탁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총알은 장전해두었습니다. 지금 막 열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자, 이제 때가 됐습니다. 로테! 로테, 잘 있어요! 안녕!” (P18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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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강한 흡인력을 갖는 또 하나의 이유는 괴테가 직접 겪은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베츨라어에서 법관 시보로 근무하던 괴테는 당시 친구인 케스트너의 약혼녀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서글픈 비애감에 빠져 고향 프랑크푸르트로 되돌아온다. 마침 그 무렵 상관의 부인을 연모하던 친구 예루잘렘이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케스트너한테 듣게 된다. 괴테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사실은 예루잘렘이 자살에 사용한 권총을 빌려준 이가 다름 아닌 케스트너, 즉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샤를로테의 약혼자라는 점이었다. 7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영혼의 심전도를 기록하듯 써내려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그토록 강렬한 떨림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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