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 토빈의 <브루클린>

영화 <브루클린Brooklyn> 2015년

by 노용헌

영화 <브루클린>은 2016년 미국 아카데미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작품상과 함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각색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콜럼 토빈의 동명 소설 <브루클린>을 원작으로, <와일드>, <어바웃 어 보이>의 닉 혼비가 각본을 쓰고 <보이 A>의 존 크로울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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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에 들어갔을 때, 대화 중에 아일리시가 미스 켈리네 가게에서 일한다는 것과 급료 얘기를 들은 플러드 신부가 너무 낮은 급료에 충격받은 내색을 한 모양이었다. 신부는 아일리시가 어떤 조건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물었다.

“미국에서는 따님 같은 사람들이 괜찮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아주 많을 텐데요.” 신부가 안타까워했다.

“아일리시는 잉글랜드에 가려고 했었죠.”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얘 오빠들이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잉글랜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공장 일밖에 구할 수 없을 거래요.”

“제가 브루클린 교구에 있는데, 거기서라면 학력도 있고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이 일할 만한 사무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멀어요. 그게 문제군요.” 어머니가 거절했다.

“브루클린의 일부 지역은 아일랜드와 아주 비슷해요. 아일랜드 사람들 천지죠.” 플러드 신부가 대답했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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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리시는 매장 일에 관한 문장을 다시 읽었다. 계산대 보는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급료로 얼마를 받을지, 뱃삯은 어떻게 마련할지 하는 언급은 없었다. 대신 더블린의 미국 대사관에 가서 필요한 서류가 뭔지 정확히 알아 둬야 출발하기 전에 모두 준비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그녀가 편지를 읽고 또 읽는 동안, 어머니는 아일리시에게 등을 돌리고서 말없이 부엌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아일리시 역시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아서, 어머니가 자신을 돌아보며 무슨 말이든 꺼낼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만히 앉아 1초 1초를 세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어머니가 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는 아일리시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괜히 일을 만들고 있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돌아서더니 한숨을 쉬었다. (P41)


어느 날 저녁, 로즈가 아일리시를 자기 방으로 불러 미국에 가져갈 장신구 몇 개를 고르라고 했을 때, 뭔가 강력한 힘과 명료함으로 아일리시를 놀라게 하는 새로운 사실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언니는 이제 서른 살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받는 연금이 얼마 안 될뿐더러 곁에 자식이 하나도 없다면 너무 외로워할 어머니를 혼자 살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건 분명했으므로, 언니가 그렇게 빈틈없이 진행시킨 아일리시의 출국은 결국 언니가 결혼하기는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언니는 지금처럼, 데이비스 제분소 사무실에서 일하고 주말과 여름 저녁에는 골프를 치러 다니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할 것이다. 언니는 동생이 마음 편히 떠나도록 하기 위해, 이 집을 떠나 자기만의 집을 꾸미고 자기만의 가정을 꾸린다는 현실적인 모든 전망을 포기하고 있었다.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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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리시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면서 결심했다. 앞으로는 항상 커다란 모험을 앞두고 설렘으로 부푼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두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겠다고. 할 수만 있다면, 그녀가 미국을 동경하고 처음 집을 떠나는 걸 고대한다고 두 사람이 믿게 만들겠다고, 아일리시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속마음이 드러날 아주 사소한 단서도 내보이지 않기로, 그리고 집을 떠날 때까지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에게도 그것을 숨기기로. (P48~49)


전등을 찾은 아일리시는 조지나의 짐 가방을 돌아 문으로 향했고, 복도로 나가자마자 왈칵왈칵 토하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배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에 달리 몸을 지탱할 방법이 없었다. 아일리시는 다른 승객이나 승무원이 발견하기 전에 되도록 빨리, 모든 것을 토해 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킬 때마다, 또다시 속이 메스꺼워졌다. 침대 위층에 누워 담요를 덮어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복도를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 자신임을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며 객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토하고 싶은 충동이 아까보다도 훨씬 강렬하게 일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걸쭉한 액체를 토해 냈고, 고개를 들 때는 그 액체의 지독한 맛에 혐오감으로 몸서리를 쳤다. (P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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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항구에 도착하기 전날 밤, 아일리시는 조지나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조지나는 그녀의 몰골이 형편없다면서 엘리스섬에 내려서 검역을 받거나, 적어도 진찰을 받아 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선실에 돌아온 후 아일리시는 여권과 함께 미국에 입국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는 서류들을 조지나에게 보여 주고, 플러드 신부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고 얘기했다. 조지나는 놀라면서, 아일리시가 받은 것은 임시 취업 비자가 아니라 정식 취업 비자라고 말했다. 아무리 사제가 힘을 쓴다 한들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그런 서류를 얻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조지나는 아일리시에게 가방을 열어 가져 온 옷들을 보여 달라고 하더니 하선할 때 입을 적당한 옷을 골라 주며 너무 구겨진 옷은 절대 입지 말라고 했다.

“화려해도 안 돼. 매춘부처럼 보여선 안 된다고.” 조지나가 말했다.

조지나는 로즈가 준 흰색 바탕에 빨간 꽃무늬가 들어간 드레스와 평범한 카디건, 단색의 스카프를 골랐다. 그녀는 아일리시가 가져온 구두 세 켤레를 살펴보더니, 가장 무난한 것을 고르면서 구두는 반짝반짝 윤이 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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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그녀는 아무도 아니었다. 그저 친구가 없고 가족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방에서, 직장으로 가는 거리거리에서, 매장에서 그녀가 유령이라는 뜻이었다. 그 무엇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프라이어리 가에 있는 집의 방들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 방들을 돌아다닐 때면 그녀는 진짜 거기 존재했다. 고향에서는 가게나 직업 학교에 걸어갈 때면, 공기, 빛, 땅 모든 것이 견고했고 모든 것이 그녀의 일부였다. 아는 사람 한 명 만나지 않아도 그랬다. 여기엔 그녀의 일부인 게 하나도 없었다. 다 가짜였고 공허했다. 아일리시는 눈을 감고, 지금껏 살면서 수없이 해온 것처럼, 자기가 기대하는 뭔가를 떠올리려고 애써 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것조차도. (P98~99)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구나” 그가 말했다.

아일리시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다 내 잘못이다. 사람들 말이 네가 여기서 잘하고 있다고 하고 키호 부인도 네가 지금까지 본 하숙생 가운데 가장 착하다고 하기에, 내가 들러서 확인하면 싫어할 줄 알았다.”

“집에서 온 편지를 받을 때까지는 괜찮았어요.”

“너한테 생긴 문제가 뭔지 아니?” 플러드 신부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이름이 있단다.”

“그거라뇨?” 아일리시는 신부가 뭔가 여성들의 은밀한 병을 언급할 거라고 생각했다.

“넌, 향수병에 걸렸어. 그뿐이야. 누구나 그 병에 걸리지. 하지만 지나간단다. 어떤 사람의 경우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지나가지. 그 병보다 힘든 건 없어. 해법은 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을 만드는 것, 그리고 바삐 지내는 거란다.”

“전 바쁜데요.”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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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아일리시는 브루클린 칼리지의 시간표, 세 시간 수업에 10분 휴식. 모든 것을 첫 번째 원칙부터 설명하는 이상한 방식에 익숙해져 갔다. 그 가운데는 은행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돈, 날짜, 예금하거나 인출한 사람, 수표를 작성한 사람의 이름 등을 보통의 원장에 적어 넣는 것과 같은, 단순한 것들도 있었다. 이건 쉬웠다. 은행에 개설할 수 있는 계좌의 유형과 다양한 종류의 이자율 등도 쉬웠다. 그러나 연간 회계 작성법에는 아일랜드에서 배웠던 체계와 달리 더 많은 요소가 추가되어 있었고, 도시, 주, 연방의 세금을 포함해 복잡한 수치들이 많았다.

아일리시는 유대인과 이탈리아인을 구분하는 법을 알고 싶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테두리 없는 작은 모자를 썼고 많은 유대인들이 안경을 썼는데, 이탈리아인보다 유대인이 안경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학생들 대부분은 피부색이 짙고 눈은 갈색이었고, 대체로 진지하고 부지런해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아일리시네 학급에는 여자가 극히 적었는데, 아일랜드인은 아예 없었고 심지어 잉글랜드인도 없었다. 모두 서로 아는 사이인 듯 무리 지어 다녔지만, 아일리시에겐 정중했고 배려해서 자리를 내주었고, 집에 놀러 가자고 조르는 일 없이 편안하게 대해 주었다. (P115-116)


그는 중앙 문을 닫은 후 가만히 서 있었는데, 강당에 들어와 멋쩍은 듯 살짝 즐거운 듯 주변을 살피는 품이, 순간적으로 아일리시는 아버지가 자기를 찾아온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리며 외투 앞섶을 열고 목도리를 푸는 모습을 보니 꼭 그에게 다가가야 할 것만 같았다. 가만히 서서 실내 구석구석을 찬찬히 훑고, 가장 편하게 있을 만한 자리를 수줍은 듯 찾아보고, 혹은 아는 사람이 있는지 조심스레 둘러보는 태도 때문이었다. 저건 아버지일 리가 없다고,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그 남자가 모자를 벗었는데, 얼굴은 아버지와 닮은 데가 전혀 없었다. 아일리시는 당황해서, 자기를 눈여겨본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순간이지만 아버지를, 그것도 4년 전에 죽은 아버지를 봤다고 상상하다니, 이런 얘기는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될 거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P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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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가씨 글씨요?”

“아뇨, 우리 강사 선생님이 써주신 거예요. 선생님이 이 책을 추천하셨어요.”

“법학과 학생이오?”

“그건 아니지만, 제가 듣는 과정에 법학 수업이 있어서요.”

“강사 이름이 뭔가요?”

“로젠블룸 씨요.”

“조슈아 로젠블룸?”

“성만 알고 이름은 몰라요.”

“아가씨는 뭘 공부하는데요?”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야간 과정을 듣고 있어요.”

“그럼 조슈아 로젠블룸이군. 그 사람 글씨를 알 것 같아.”

노인은 다시 그 메모지와 책 제목들을 들여다보았다.

“그 사람 똑똑하지.”

“네, 아주 친절하세요.”

“상상이나 할 수 있겠소......” 노인은 시작한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계산대 쪽으로 향했다. 그는 살짝 흥분해 있었다. 아일리시는 천천히 그를 따라갔다.

“그러니까. 이 책들을 살 거요?” 노인이 거의 공격적으로 물었다.

“네, 살 거예요.”

“조슈아 로젠블룸? 상상이나 할 수 있소, 그 남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 나라를?” 노인이 소리쳤다.

아일리시는 뒷걸음질 쳤지만 대꾸하지는 않았다.

“어디, 상상할 수 있냐고?”

“무슨 말씀이신지?” 아일리시가 물었다.

“독일인들이 그 사람 식구들을 죄다 죽였소. 한 명도 남김없이 살해했소. 하지만 우린 그를 빼냈지. 적어도 우린 그렇게 했어. 조슈아 로젠블룸을 빼낸 거요.”

“전쟁 때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서점을 가로질러 작은 발 받침을 찾아서는 거기 올라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내려오면서 그는 화난 듯 홱 돌아섰다.

“그런 짓을 하는 나라를 상상이나 하겠소? 그런 나라는 지상에서 쓸어 없애 버려야 돼.”

노인이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전쟁 때 말씀이세요?” 아일리시가 다시 물었다.

“홀로코스트, 추르벤 때 말이오.”

“그게 전쟁 때였어요?” (P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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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곧 하나의 패턴이 생겨났다. 매주 목요일에 토니는 학교 밖에서 서서 기다렸고, 비가 오는 날이면 몰래 강의실에 들어와 있다가 아일리시와 함께 시가 전차를 타고 다시 걸어서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는 한결같이 쾌활했고, 둘이 만난 이후로 그가 상대한 손님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들이 배관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하는 모습을 출신 국가나 나이에 따라 서로 다른 말투로 흉내 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일해 주면 매우 고마워하면서 팁을 넉넉하게 주는데, 때로는 너무 많이 준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쓰레기로 하수구를 막히게 해놓고도 수리비 계산서를 놓고 따지고 들려고 했다. 브루클린의 모든 건물주들은 치사해, 그가 말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인 관리인들은 토니가 이탈리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치사하게 나왔다. 말하기 미안하지만, 아일랜드인들도 치사하고 하여간 째째해, 하고 그가 말했다. (P198)


“아일리시.” 신부가 불렀다. “아일리시.”

“네, 무슨 일이죠?”

“로즈 일이다.”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오늘 아침 로즈가 죽은 걸 어머니가 발견하셨다.”

아일리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다가 죽은 모양이야.” 플러드 신부가 말했다.

“자다가 죽어요?” 아일리시는 되물으면서, 언니나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었던 때를 더듬으며 뭔가 잘못되었다는 암시라도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래, 갑작스러운 일이었어. 어제 골프를 치러 나갔고 몸 상태도 최고로 좋았대. 로즈는 자다가 죽은 거야. 아일리시.”

“그리고 어머니가 언니를 발견했고요?”

“그래.”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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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내가 뭐하러 여기 왔을까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로즈는 네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어.” 그가 대답했다.

“로즈는 좋은 일을 한 것 뿐이야.”

“이제 다시 언니를 못 보겠네요.”

“로즈는 네가 잘하고 있어서 얼마나 대견해했는지 모른다.”

“다시는 언니를 못 볼 거예요. 그렇죠?”

“그건 정말 슬픈 일이다. 아일리시, 하지만 언니는 지금 천국에 있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바로 그거란다. 그리고 언니는 널 지켜보고 있을 거야. 우리는 네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로즈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겠지. 그리고 아일리시, 우리는 신께서 일하시는 방법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해.”

“애초에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P248)


언니가 자다가 죽었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뜨지 않았을까? 정말 그냥 누워서 잠잘 때처럼 편안히 숨 쉬다가, 그러다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멈춰 버린 걸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언니가 밤에 소리를 질렀는데 아무도 못 들은 건 아닐까? 하다못해 중얼거리거나 속삭이기라도 하지 않았을까? 전날 저녁에 언니가 뭔가 알았던 건 아닐까? 뭔가, 이 세상에서 숨 쉴 마지막 날이라는 단서가 될 만한 것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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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리시는 영성체를 받고 자리로 돌아와 기도를 하려고 애쓰다가, 기도하면서 물으려 했던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답이란 어떤 답도 없다는 것. 그녀가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일리시는 토니와 짐이 서로 마주 보는, 아니 서로 만나는 장면을 그려 보았다. 두 사람은 저마다 따뜻하고 친근하게, 태평스럽고 미소 짓고 있고, 짐이 토니보다는 덜 적극적이고 덜 재미있고 호기심도 덜하지만 더 의젓하고 세상에서 자기 위치에 대해 보다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서 아일리시는 이 교회에서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어머니와, 그녀가 돌아와 어느 정도 완화되긴 했지만 언니의 죽음이 어머니에게 가져온 황폐함과 충격을 생각했다. 토니, 짐, 어머니, 이 세 사람 모두 그녀가 상처만 입히게 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빛과 명쾌함으로 둘러싸인 순수한 사람들이고, 그들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은 어둡고 불분명한 그녀 자신이므로. (P338-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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