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큘라Bram Stoker's Dracula> 1992년
영화 <드라큐라-어둠의 왕자>(1966), 영화 <스카스 오브 드라큘라>(1970), 영화 <드라큘라 A.D. 1972>(1972), 영화 <도시 속의 드라큐라>(1973), 영화 <드라큐라>(1974), 영화 <드라큐라>(1979), 영화 <드라큐라>(2000), 영화 <드라큐라 4D>(2010), 영화 <드라큐라 3D>(2012)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는 모든 흡혈귀 영화, 연극의 원조가 되어 수없이 많은 작품들로 각색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2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드라큘라>는 제65회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상, 음향편집상, 분장상 수상작/미술상 후보작이다. 배우는 게리 올드만, 위노나 라이더, 안소니 홉킨스, 키아누 리브스, 모니카 벨루치가 출연했다. 이 영화 때문에 원작 <드라큘라>도 연애담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원작의 드라큘라는 여러모로 강간범스러운 뉘앙스도 있는데다가, 드라큘라의 세 신부들이 받는 대접이나 루시의 최후 등을 생각하면, 드라큘라가 좋은 연인이 되리라곤 생각되지 않고, 소설에서 돋보이는 미나의 이지적(理智的)인 캐릭터가 완전히 죽어버리기에, 원작을 통해 팬이 된 사람들 중에서는 이 영화에 치를 떠는 사람들도 많다.
[1]
런던에 있을 때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영 박물관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트란실바니아에 관한 서적과 지도를 뒤져보기도 했다. 거기에 사는 드라큘라 백작을 상대하려면, 그 지방에 대한 사전 지식이 대단히 중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백작이 말한 지역이 트란실바니아의 동쪽 끝, 카르파티아 산맥의 한가운데, 트란실바니아와 몰다비아, 부코비나 세 지방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황량하고 후미진 곳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탓인지 그 지방 지도 중에는 영국의 군용 측량도처럼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어떤 지도를 보아도 드라큘라 성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다 만 드라큘라 백작이 말한 비스트리츠가 교통의 요지로 상당히 유명한 곳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내가 조사한 내용을 약간 적어 두는 게 좋겠다. 미나에게 나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트란실바니아에는 네 갈래의 민족이 모여 살고 있다. 즉, 남부에는 색슨 사람들과 고대 다치아 사람들의 후예인 루마니아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고, 서부에는 마자르 사람들이, 동북부에는 세케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내가 가려는 곳은 바로 세케이 사람들이 있는 곳인데, 그들은 스스로를 아틸라왕과 훈족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자르족이 11세기에 그 지방을 정복했을 때 훈족이 거기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어떤 책에서 보니까 카르파티아 산맥의 산자락에는 세상의 미신이란 미신은 다 모여 있어서, 흡사 상상력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면 그곳에 머무는 것이 대단히 흥미진진한 것이다(백작을 만나거든 그런 미신들에게 관해 모두 물어 볼 생각이다). (P12-13)
“저택이 오래되고 크다는 게 마음에 드는 군요. 나 자신이 유구한 역사를 지닌 가문에서 출생한 탓인지 새 집에 사는 것은 영 죽을 맛이오. 집이라는 게 모름지기 오래 묵어야 살만해지는 거 아니오? 겨우 며칠로 백년의 세월을 감당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오? 오래된 교회당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어요. 우리 트란실바니아의 귀족들은 우리의 뼈가 보통의 망자들 사이에 놓일 거라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소. 나는 기쁨이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소. 다사로운 햇살과 반짝이는 물 따위가 주는 밝은 쾌락을 찾지도 않소. 그런 건 젊은이들이나 명랑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요. 나는 이제 젊지 않소. 내 심장은 죽은 이들을 애도하면서 지루한 세월을 보낸 탓에 환락의 현을 퉁겨도 아무런 감응이 오지 않소. 게다가 내 성의 담은 부서졌소. 그림자가 많고, 부서진 성가퀴와 창문을 통해서는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소. 나는 그늘과 그림자를 사랑하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사색을 하면서 홀로 지내고 싶소.” (P47)
갑자기 섬뜩해졌다. 이 성 안에 백작 외에 아무도 없다면, 나를 여기까지 태우고 온 마차의 마차꾼도 백작 자신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말없이 손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 이리들을 다스릴 수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비스트리츠에서 그리고 마차 위에서, 사람들이 한결같이 나를 향해서 어떤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나타냈던 것은 또 어찌된 영문일까? 그들은 왜 나에게 십자가며 마늘이며 들장미며 마가목 따위를 주었을까? 내 목에 십자가를 걸어 주었던 그 착하디착한 여인에게 축복 있으라! 십자가를 만질 때마다 나에게는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 (P53)
드라큘라 가문의 내력을 그런대로 밝혀주는 이야기이다.
“우리 세케이족은 마땅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오. 주권을 세우기 위하여 사자처럼 용감하게 투쟁해 온 많은 선조들의 피가 우리 혈관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오. 옛날에, 유럽의 여러 부족들이 서로 세력을 겨누며 아옹다옹할 때, 토르 신과 오디 신에게서 투쟁의 정신을 부여받은 위그르족이 아이슬란드로부터 내려왔소. 위그르의 전사들은 유럽의 해안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의 해안에서까지 그 잔인한 투지를 발휘했소.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 늑대들이 왔다고 생각할 정도였소. 이 지방에도 그들이 왔었는데, 여기에서 우리의 선조인 훈족과 마주쳤소. 훈족은 격분에 휩싸여 사나운 불길처럼 이 땅을 휩쓸었소. 오죽하면 멸망해 가는 부족들이, 훈족의 핏줄에는 스키타이에서 쫓겨난 사막의 악마와 결합한 저 마녀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겠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아틸라 왕의 위대한 혈통을 그깟 악마나 마녀 따위와 비교한다는 게 말이나 되오? 우리의 이 혈관에는 아틸라 왕의 피가 흐르고 있소.”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팔을 들어 올렸다. “우리는 정복 민족이었소. 우리는 긍지에 차 있었소. 마자르족, 룸바르드족, 아바르족, 불가르족, 또는 투르크족이 떼 지어 우리의 국경으로 쏟아져 들어왔지만, 우리는 그들을 패퇴시켰소. 놀랍지 않소? 마자르족의 아르파드 족장과 그 군대가 옛 헝가리 땅을 휩쓸며 위세를 떨치다가 우리의 국경에서 우리와 마주쳤소. 그런 얘기 처음 듣소?
..... (중략) ..... 드라큘라의 패배가 가문의 다른 사람을 발분시켰소. 그리하여 후대에 다른 드라큘라가 위대한 강을 건너 투르크 땅으로 거듭거듭 쳐들어갔소. 그는 번번이 격퇴를 당했소.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에서 그 사람 혼자서 돌아와야만 했소. 그래도 그는, 궁극적으로 자기 혼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고, 다시 가고, 또 갔소. 사람들은 그가 자신만을 생각한다고 욕했소. 웃기는 소리요. 도대체 지도자 없는 백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싸움을 이끌 두뇌와 심장이 없는 전쟁의 결과라는 게 뻔하지 않겠소? 세월이 더 흐른 뒤, 모하치 회전에서 헝가리가 투르크에게 패배하면서 우리는 헝가리의 속박에서 벗어났소. 드라큘라의 가문에 속하는 우리도 그 전쟁을 이끈 지도자들 속에 끼여 있었소. 우리의 정신은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용납하려 하지 않았소. 어떻소, 선생. 세케이족과 그것의 심장이자, 두뇌이며 칼인 우리 드라큘라 가문이 합스부르크가(家)나 로마노프가와 다르다는 것을 아시겠소? 비 온 뒤에 버섯 솟듯 그렇게 생겨난 그 따위 가문들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유구한 전통이 우리에겐 있소. 이제 전쟁의 시대가 끝났소. 이 수치스러운 평화의 시대에는 피가 너무나 소중한 것이오. 위대한 종족들의 영광이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소.” (P55-57)
“너희가 어떻게 감히 이 사람을 건드리려 하지? 내가 그러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어찌 감히 이 사람에게 눈독을 들일 수 있단 말이냐? 다들 저리 가! 이 사람은 내 거야! 이 사람한테 괜히 집적거릴 생각하지 마. 너희는 나를 상대해야 되는 거야.” 그 아름다운 여인이 음탕하게 아양 떠는 웃음을 물고, 돌아서며 그에게 대꾸했다---
“당신은 사랑을 해본 적도 없고, 사랑을 하지도 않잖아요!” 이 말에 다른 여자들이 가세했다. 그러자 음울하고 메마른 금속성의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웃음소리에 거의 기절할 뻔했다. 마치 친구들끼리 즐거움을 나누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백작은 몸을 돌려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부드럽게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아니지, 나도 사랑을 할 수 있어. 옛날하고는 다르다는 걸 알아야지. 안 그래? 좋아, 내 너희들에게 이제 약속하지. 내가 저 친구하고 볼일을 끝내고 나면, 너희들 마음대로 키스를 해도 좋다. 자 이제 가라. 가! 나는 저 친구를 깨워야겠다. 할 일이 있거든.”
“오늘 밤에 우리에게 뭐 줄 거 없어요?” 여자들 중의 하나가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러면서 그 여자는 백작이 땅바닥에 던져 놓았던 자루를 가리켰다. 그 안에는 뭔가 산 것이 들어있는 듯 꿈틀꿈틀 움직였다. (P71)
전보 50개가 되는 커다란 나무 상자 중의 하나에, 갓 파낸 흙더미를 깔고 백작이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죽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잠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눈을 뜨고 있고 그 눈이 돌처럼 굳어 있으면서도 죽은 사람처럼 개개풀린 것이 아니어서, 어느 쪽인지 단정하기가 어려웠다. 뺨은 온통 파리한데도 생명의 온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입술은 여느 때처럼 붉었다. 그러나 맥박이며 호흡이며 심장의 박동과 같은 생동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로 몸을 구부리고 살아 있음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아직도 흙냄새가 물씬거리는 걸 보면, 그가 거기에 누워 있은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상자 옆에는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는 뚜껑이 놓여 있었다. 그가 열쇠들을 지니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몸을 뒤지려고 하는데, 죽어 있는 듯이 보이던 그의 눈에서, 내가 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텐데도, 증오의 빛이 감돌았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도망쳐, 창문을 통해 백작의 방을 빠져 나온 뒤, 다시 벽을 기어 올라왔다. 내 방으로 돌아오자,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침대에 몸을 던지고 생각에 잠겼다. (P87)
“젊은이,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오. 마지막 한 방울까지는 필요가 없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서의 눈은 이글거렸고, 결의에 찬 그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반 헬싱 선생은 그런 아서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치며 말했다. “자, 힘내시오! 당신은 사나이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도 바로 사내대장부이고, 그 점에서 당신은 나나 존보다 낫소.” 아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선생은 친절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루시 양은 상태가 아주 좋지 않소. 그녀에겐 피가 부족해요. 피를 제공받지 못하면 그녀는 죽을 것이오. 존과 나는 서로 상의해 이른바 수혈이라는 것을 하려던 참이었소. 건강한 사람의 혈관에서 피를 뽑아 모자라는 사람의 야윈 혈관에 옮겨 주는 것이지요. 존이 피를 제공할 예정이었소. 그가 나보다 젊고 건강하기 때문이라오.” 설명이 이 대목에 이르자, 아서는 내 손을 찾아 말없이 꼭 쥐었다. “그런데 당신이 나타난거요. 늙었건 젊었건 어쨌든 신경 쓰는 일을 많이 하는 우리 두 사람보다야 당신이 그 일에 더 적격이오. 우리 신경은 당신 것만큼 고요하지 못하고, 우리 피는 당신 것만큼 맑지 않기 때문이오.” (P217)
“목에 난 상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직 자세히 보질 않아서요.” 나는 대답과 동시에 띠를 풀기 시작했다. 경정맥(頸靜脈) 부위 바로 위에 두 개의 구멍이, 크지는 않으나 또렷하게 나 있었다. 분명히 병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었는데, 가장자리가 마치 이빨로 씹어 놓은 것처럼 하얗게 문드러져 있었다. 일순 이 상처인지 뭔지를 통해 피가 빠져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혈 전에 창백하기 그지없던 상태에 이르려면, 루시의 몸에서 흐른 피로 온 침대가 심홍빛 물이 흠뻑 들었을 것이다.
“어떤가?”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선생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오늘 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야 하네. 내게 필요한 책이며 물건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 자네는 여기서 밤을 새우도록 하게. 잠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선 안 되네.” (P220)
우리는 꽃다발을 가지고 루시의 방으로 들어갔다. 반 헬싱 선생의 행동은 확실히 이상했다. 내가 아는 어느 약전(藥典)에도 그런 식의 처방은 결코 없었다. 그이는 먼저 창문들을 닫고는 빗장을 단단히 채웠다. 그러고는 마늘꽃을 한 손 가득 쥐고서 창틀 구석구석을 그것들로 문질렀다. 혹시 바깥 공기가 새어들더라도 빠짐없이 마늘 냄새가 배도록 하자는 심산인 듯했다. 창문 쪽 일을 마친 그이는 문설주와 문지방을 아래위 양 옆 할 것 없이 마늘꽃 한 다발로 매매 문질렀고, 벽난로 주위도 그렇게 했다. 모두가 기묘하게만 느껴졌으므로, 이윽고 나는 물었다.
“저 선생님, 선생님이 하시는 일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다는 것은 저도 알지만, 이번엔 정말 영문을 모르겠군요. 이 자리에 혹 무신론자가 있다면, 선생님께서 악력을 막는 마법을 행하신다고 말하겠는데요.”
“정말로 그러는 건지도 모르지.” 나직이 대답한 그이는 루시가 목에 두를 꽃목걸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을 끝낸 우리는 루시가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루시가 침대에 들자, 반 헬싱 선생은 침대로 다가가 마늘꽃 목걸이를 직접 그녀 목에 걸어 주었다. (P231-232)
“아. 자네가 이해를 못하고 있군. 내가 웃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말게. 사실은, 숨 막힐 정도로 웃고 있는 때조차도 나는 울고 있었네. 그러나 울고 있다고 해서 전적으로 슬퍼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도 안 되네. 그 순간에도 웃음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네. 진정한 웃음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서 <들어가도 될까요?>라고 묻는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아닐세. 그럼. 아니고말고. 웃음은 왕처럼 행동한다네. 자기가 원할 때,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온다네.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적절한 때를 골라서 오지도 않네. 그는 그저 <나 여기 있다>라고 말할 뿐이네. 내가 그 아름다운 처녀 때문에 가슴 아파하던 때도 그런 경우라네. 나는 늙고 지쳐 있었음에도 그 처녀를 위해서 피를 주었고 나의 시간과 기술과 수며을 바쳤네. 그리하여 그 처녀로 인하여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모든걸 되찾게 되리라고 기대했네. 그러나 교회 인부들이 그녀의 관 위로 흙을 퍼서 던지고, 그 소리가 내 가슴에 <턱, 턱>하고 떨어지면서 내 뺨에 핏기가 사라져 버리던 그 순간에도, 나는 그녀를 보고 웃을 수 있었네. 그 가련한 젊은이 때문에 내 심장이 피를 흘리고 있었네. 나는 그 젊은이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네. 바로 내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그 나이쯤 되었을 걸세. 눈이며 머리카락이 그 애와 똑같다네. 이제 내가 왜 그 젊은이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알았을 테지. 그런데 그 친구가 수혈에 대한 얘기를 하던 그 순간에도 웃음의 왕이 찾아왔어. 그의 얘기가 얼마나 가슴을 절절히 울리는 것이었나 말일세. 그 얘기를 들으니 잃어버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뼈 속까지 사무치고, 다른 젊은이들을 보고는 느끼지 않았던 아비의 정 -- 물론 자네하고 나는 부자지간 이상 가는 사이니까 자네를 보고 아비의 정을 느끼지는 않지 -- 이 느껴지더군. 바로 그러한 순간에도 웃음의 왕이 찾아와 내 귀에다 대고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하고 아우성을 치더란 말일세. 피들이 다시 돌아와 춤을 추고 그가 가지고 온 햇살이 내 뺨에 어른거렸네. 여보게, 존, 이상하고, 슬픈 일들이 많은 세상일세. 불행과 번민과 고통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네. 그러나 웃음의 왕이 오면 그가 연주하는 곡조에 맞춰 그 모든 것들이 춤을 춘다네. 피 흘리는 심장들도 공동묘지의 말라빠진 뼈들도, 뺨을 타고 내리는 뜨거운 눈물들도 말일세. 미소를 지을 줄 모르는 웃음의 왕이 음악을 켜면, 그것에 맞추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춘다네. 웃음의 왕이 오는 건 좋은 일이네. 고마운 일이지. 우리 인간들은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과도 같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를 잡아당기는 피곤한 일들 때문에 팽팽해져 있지. 그때 눈물이 찾아오네. 밧줄에 빗물이 내리는 것처럼 말일세. 눈물은 우리를 더 팽팽하게 만든다네. 긴장이 지나치면 우리는 끊어지고 말겠지. 그러나 웃음의 왕이 햇살처럼 우리를 찾아온다네. 그가 다시 긴장을 풀어 주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수고로운 우리의 삶을 버텨 나가는 것이지. (P303-304)
“뭘 믿어 달라는 말씀이신지요?”
“자네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 달란 말이지. 말하자면 이런 거지. 어떤 미국인이 믿음이라는 것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네. 즉, <믿음이란, 우리가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것을 믿게 하는 능력>이라고 말이야. 우선, 그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게. 그 사람 얘기는,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 작은 바위 덩어리가 철도의 화차를 막는 것처럼, 진실의 작은 조각이 커다란 진실이 나아가는 것을 막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세. 알아들었나? 좋아, 그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세. 그러나 동시에, 그로 하여금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진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야 하네.”
“그러면, 선생님 말씀은 그러니까, 어떤 선입견 때문에 어떤 이상한 일에 대해 제 마음을 닫아서는 안 된다는 건가요?”
“그렇지, 자네는 역시 나의 수제자야. 자네는 가르칠 맘이 나거든, 이제 자네가 이해할 마음의 준비를 했으니, 이해를 위한 첫발자국은 디딘 셈이야. 그럼. 이제 생각해 보세. 아이들의 목에 있는 작은 구멍은 루시 양에게 상처를 낸 뭔가와 똑같은 것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P336)
[2]
따라서 흡혈귀가 있는 곳을 알아내면, 우리의 지식을 활용해 그자를 관에 가두고서 처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자는 영리합니다. 부다페스트 대학에 있는 제 친구 어르미니우스에게 흡혈귀에 관한 기록을 작성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온갖 자료를 뒤져서 그자의 경력을 알려 주더군요. 여러분, 그자는 다뉴브 강을 건너 투르크 땅으로 쳐들어가 투르크인들을 무찌름으로써 명성을 얻은 드라큘라 총독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자는 결코 평범한 인물일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자는 당대에 물론이고, 그 뒤로도 몇 세기 동안이나 <숲 저편 땅>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용감하고 가장 총명하며 가장 교활한 자로 알려진 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단한 지혜와 강철 같은 결단력은 그자와 더불어 무덤으로 갔는데, 그것들이 지금 이 순간에 우리에 맞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르미니우스 말에 따르면, 드라큘라는 위대하고 고결한 가문이었지만 그 후손들 가운데엔 같은 시대 사람들로부터 마왕과 거래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자들이 이따금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헤르만슈타트 호수를 둘러싼 산들 가운데 하나인 숄로만스에서 마왕의 비법들을 전수 받았는데, 마왕은 열 번째 제자를 그의 몫으로 요구했습니다. 기록들을 보면 마녀를 뜻하는 <스트레고이차>와, 악마와 지옥을 뜻하는 <오르도크>, <포콜> 같은 단어들이 나옵니다. 또 어떤 필사본에서는 바로 그 드라큘라를 뱀파이어wampyr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뜻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요. 이 드라큘라의 가문에서 선남선녀들이 태어났고 그들의 무덤이 대지를 신성하게 하는데, 오직 그곳에서만이 악마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것은 모든 선한 것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기억들이 깃들인 흙이 없으면 그 악마는 편히 쉴 수 없습니다. (P416-417)
뭐라고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이 일기를 쓴다. 지금 시각은 오전 6시. 30분 뒤에 우리는 서재에 모여 아침 식사를 들기로 했다. 반 헬싱 박사와 수어드 박사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식사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오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생각을 하기 위해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이상,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적어 두어야 할 것이고, 중요한 일이건 사소한 일이건 반드시 기록이 되어야 한다. 결국에는 사소한 것들이 가장 중요해질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일도 미나와 나를 오늘보다 더 비참한 상태로 몰아갈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믿고 희망을 품어야 한다. (P492)
나는 우리가 오래전의 그 원정에서 돌아온 이후로 금고 속에 보관해 두었던 문서들을 꺼냈다. 우리의 그 일을 기록한 모든 자료들 속에, 사람들이 믿어 줄 만한 문서가 거의 없다는 것, 나중에 미나와 수어드와 나 자신이 쓴 일기, 그리고 반 헬싱의 비망록만을 제외하고는 한 뭉치의 타자한 종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이 문서들을 그 황당무계한 사건의 증거로 받아들여 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고는 싶었지만, 여간해서 할 수가 없었다. 반 헬싱은 우리의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우리는 어떤 증거도 원치 않네. 또 누구에게도 우리를 믿으라고 하지도 않을 거고. 이 아이는 때가 되면 저의 어머니가 얼마나 용감하고 훌륭한 여자인지를 알게 될 걸세. 벌써 이 아이는 제 어머니의 다정한 마음씨와 사랑스러운 보살핌을 알고 있어. 나중에 이 아이는 어떤 남자들이 제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무릅썼는지 알게 될 걸세.”
조너선 하커. (P639)
흡혈귀는 원래 발칸 지역 슬라브 사람들의 민간 신앙이다. 어떤 이유로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된 망자가, 밤이 되면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마시기 위해 무덤에서 나온다고 하는 발칸 지역 특유의 흡혈귀 속신이 있었다. 이것이 서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8세기 전반으로서, 합스부르크 왕가가 발칸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슬라브인 거주지를 변경의 속주로 삼으면서 수도 빈에 슬라브의 지역 신문이 전해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정보를 정리하고, 기록을 분석하여 흡혈귀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최초의 시도가, 유명한 동 칼메(Don Calmet)의 저서, <정령 현상 및 헝가리, 모라비아의 흡혈귀와 유령에 관한 논고>(파리, 1746)이다. (P643)